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307)
307,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지휘관 작센은 선봉 대열 바로 뒤에 섰다.
시선은 엔크리드가 끈다.
그럼,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적병을 살폈다.
정확히는 무리가 된 적군 전체를 감각으로 읽어 냈다.
눈으로 전부 볼 필요도 없다.
단련된 오감은 듣는 것만으로 상대의 실력을 판단케 하니.
주저함이 없는 걸음, 자신감에 찬 기합, 다가오는 속도, 그 와중에 침착한 눈빛까지.
아우딘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의 실력을 파악한 작센은 대열 사이에서 검을 밀어 넣었다.
허리춤 사이로 긴 칼날이 튀어나와 앞을 찔렀다.
“다 죽여!”
처음은 묵직한 전투 망치를 든 놈이었다.
끝에 추를 달아 둔 망치가 아군의 방패를 후렸다.
꽈 때린 후 튕겨 나가는 반탄력으로 망치를 회수하는 사이다.
푹 칼날이 망치 병사의 배를 뚫었다.
쑥 찌르고 쏙 빠졌다.
“어?”
이건 뭔데?
뭐긴, 칼날이지.
방패 뒤, 시린 눈빛이 적병을 바라봤다.
쉭.
눈이 마주치자마자 뱀처럼 휘어진 칼날이 망치 병사의 목을 그었다.
이건 엔크리드의 유검식을 보고 대충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기술이었다.
검술의 궤를 보자면 기검 쪽에 가까우니, 엔크리드의 유검식과는 다른 검이라고 봐도 좋았다.
“0|,끄르륵.”
뭐라 말하려던 놈은 제 목을 쥐고 뒤로 쓰러졌다.
피거품을 물든 말든, 아군과 적군의 부츠가 망치를 놓친 병사를 밟았다.
작센은 계속 같은 일을 반복했다.
아군 사이에 숨어서 한 번씩 찌르기만 반복했다.
노리는 건 특급 이상의 병사만.
그중 눈에 띄는 놈들 몇, 그러니까 일격에 죽이기 애매한 놈들은 놔뒀다.
작센은 철저하게 제 할 일을 했다.
아군은 뭣도 몰랐으나, 지휘관 일부는 기묘한 흐름을 느꼈다.
“왜 우리가 이기는 것같냐?”
아군 소대장의 말이다.
대외적인 전력은 밀리지 않았던가?
근데 왜 이기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아니다.
“싸워!
밀어붙여어어어!”
지휘관은 제 할 일을 했다.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뭉쳐 흩어지지 마!”
대륙의 보병전은 기본적으로 난전이다.
뭉칠수록 유리했다, 떨어지면 위험했고.
양군의 싸움이 비슷한 양상이었다.
지원으로 온 보더 가드 상비군 또한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옆으로 돈다!
저 새끼들 가게 놔두지 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
“고통!”
“강함!”
이전 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전부 베테랑이 돗2다.
숙련병이 모인 부대라 이거다.
그린 펄에서 주둔하던 대대와는 질이 다르다.
그들이 우측으로 휘어지는 적군을 막아섰다.
“그레이 독이다!”
“집요한 개새끼들!”
아군에게도 유명한 적의 부대였다.
그들이 우회 기동 중이었다.
보더 가드 상비군이 그걸 막았다.
“미친 새끼들.”
그레이 독은 그레이 독이었다.
보더 가드 상비군이 숫자가 더 많음에도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괜찮다.
전면에서 날뛰는 이들이 있으니.
엔크리드는 중검식을 기조로 날뛰고 작센은 그린펄 부대의 전력 사이에 숨어들어 잘 싸우는 놈, 명령질을 하는 놈만 골라 죽였다.
그 덕이었다.
본래라면 아즈펜의 강병에 밀려야 하지만 묘하게 균형을 이뤘다.
라그나는 엔크리드의 좌측 뒤편으로 빠졌다.
대강 한 놈씩 상대하는 거로 제 할 일을 하려 했다.
라그나는 검을 휘두르며 슬슬 의욕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의욕 따위 없이 산 지도 몇 년이 됐다.
활기차게 나서려면 아직 계기가 필요했다.
라그나는 시동이 늦게 걸리는 편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왼쪽에서 살기가 느껴졌고, 느꼈다 싶은 순간 얼굴 옆으로 쇠붙이가 날아왔다.
라그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간신히 피한 모양새다.
느리게 몸을 데운 탓이다.
다행인 건 늦든 빠르든 이런 공격에는 절로 몸이 반응하는 거고.
볼을 스친 칼날에 핏방울이 튀었다.
볼까지 감싼 가죽 투구가 예리한 칼날에 잘려 아래가 밑으로 늘어졌다.
“그걸 피해?”
검을 찌른 놈은 그대로 물러났다.
라그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잘 싸우는 놈이다.’
자신은 모르겠지만, 반가운 감정이 먼저였다.
욕구가 절로 일어나는 상대를 바라지 않았나.
엔크리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다.
피를 보고 목숨을 건 싸움, 라그나가 지금 바라는 거였다.
길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물러나는 놈의 등만 쫓으면 그만이었다.
라그나는 불편한 투구를 벗어 던졌다.
몇 걸음 나가니, 적병 하나가 짧은 검을 쥐고 앞을 막았다.
“이 새끼가!”
자기한테 한칼 먹인 놈이 어디로 물러났겠나.
뒤, 제 편이 있는 곳이다.
라그나가 그걸 따라가자니, 당연히 적진 안으로 파고드는 셈이 됐다.
적병이 반응했다.
라그나는 그보다 더 빨리 반응했다.
나아가는 걸음에 검을 찌르고 뽑았다.
푹 일격으로 목에 구멍이 난 적병이다.
창을 찌르던 힘이 남았는지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쓰러졌다.
놈이 쓰러지는 사이, 라그나는 다섯을 더 베고 적진을 뚫고 나갔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돌진이나, 적군 진형이 엉망으로 흐트러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고로 주변에 있던 아군 지휘관은 또 한 번 전투가 묘하게 편해졌다고 느꼈다.
‘ 만만한데?’
수틀리면 후방 전진, 즉 퇴각 준비를 해 둔 게 무색했다.
“싸워라!
싸워 다 죽여 !”
전열은 흐트러진 지 오래다.
난전이 된 싸움은 많이 죽이면 그만이었다.
소대 지휘관은 그걸 잘 알기에 쉼 없이 외쳤다.
“고통은!”
어느새 퍼져 버린 구호였다.
누 누 누 “아군이 밀립니다.”
부관의 말에 아브나이어는 웃었다.
생각대로 돌아가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
“생각대로다.”
부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작전은 이해할 수 없다.
성공이 곧 실패나 다름없지 않나.
“난 천 명의 병사를 죽인 희대의 멍청이가 될 거다.”
아브나이어가 말했다.
“이게 맞습니까?”
“마[가”
의심이라곤 조금도 없다.
천재의 목소리는 맑고 곧았다.
부관은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말릴 수조차 없었다.
‘자, 숨겨 둔 걸 보여 주라고.’
크라이스는 적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뭐라도 할 것이다.
엔크리드가 저리 날뛰고 있지 않나.
작센 덕에 적병의 기세도 훅 꺾였다.
그 와중에 라그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끝이 아니잖아?’
시나르와 둔바켈을 비장의 카드로 남겨 뒀다.
본래 상대의 수를 다 보기 전에는 자신의 수 또한 다 보여 주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왕눈아, 나 싸우고 싶은데?”
옆에서 시미터 손잡이에 손을 올린 둔바켈이 옆구리를 찔렀다.
“기다려.”
“내가 개냐?
기다리란다고 기다리게.”
그 옆에서 시나르는 눈을 반쯤 감고 팔짱을 낀 채로 말없이 서 있었다.
“요정 중대장님처럼 좀 차분해져 봐라.”
“내가수인이지, 요정이냐?”
둔바켈을 달래면서도 크라이스의 시선은 전장을 떠나지 않았다.
전장 전체는 묘하게 균형을 이루지만, 세부적인 전장에서는 승산이 높아진다.
결국, 저 자잘한 싸움이 쌓이고 쌓여 전장 전체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크라이스가 그린 그림이다.
변수를 변수로만 끝내지 않고 전장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했다.
상대가 뭐라도 하면 뒤로 빼고 시간을 끌 궁리도 해 뒀는데, 쓸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상황은 그렇다.
그럼, 왜 아즈펜은 구경만 하는 건가?
왜 숨겨 둔 수를 꺼내지 않지?
뭔가 있긴 있는데, 뭐가 분명히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왜 느리게 진격하고 겨울의 끝에서 싸움을 시작했단 말인가.
‘숨겨 둔 수작이 없어?
그냥 병신이야?’
당연히 아니었다.
“전려어엉!
전려어어어엉!”
뒤에서 뛰어오는 전령이다.
일부러 눈 밝고 발 빠른 부대를 이끄는 누라트를 뒤로 뺐다.
개럿은 지휘부 막사에 상징적으로 남겨 뒀다.
그린펄 대대의 실질적 전투 지휘관이 누라트였다.
그녀는 눈도 밝고 머리도 잘 돌아갔다.
안 그래도 지금 필요한 일을 적절히 해 준 순간이다.
“일부 병력이 우회,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보고를 받은 크라이스의 머릿속으로 지도가 떠다녔다.
숙지한 지형, 적이 움직이는 궤도.
상대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보더 가드.’
뒤를 노린다.
이미 일부 병력은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후방으로!”
둔바켈과 시나르가 움직였다.
상대가 꺼낸 카드를 막을 차례였다.
“두 번째 우회 병력이 발각됐습니다.”
“좋다!”
그 말에 아브나이어는 짝 하고 손뼉을 쳤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될 순 없다.
전장은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의 목표만을 노린다면.
‘그건 이룰수 있지.’
전장은 소수 정예가 지배한다.
아브나이어도 잘 아는 말이다.
그럼, 그 정예를 죽이면 어떨까.
인재는 유한하다.
무한하지 않다.
한 시대에 천재가 몇이나 될까.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기사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게 그걸 증명하니.
그러므로.
‘전장 하나를 내주고.’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
그거로 인해 희대의 학살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지휘관이라 불려도 아브나이어는 웃을 터였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래, 진행한다.”
부관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 # # 크라이스의 예상대로 아브나이어는 기병대 일부를 보더 가드로 보냈다.
“적군이다!”
보더 가드도 당연히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미리 알았다.
렘은 종일 툴툴거리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순간 추위도 잊게 하는 소식이었다.
“누가왔어?”
십 년 만에 헤어진 연인이 찾아와도 이보다 반갑진 않을 터.
“형제님, 마음이 급하면 웅덩이를 못 보고 신발이 젖는다고 했습니다.”
뒤에서 아우딘이 나서며 하는 말이다.
“몽둥이는 놓고 오면서 말하지, 그래?”
“허허, 형제님.
주께서 말씀하시길 제 한 몸을 지키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라 하셨으니.”
전쟁 신의 사도다웠다.
다 때려죽이겠다는 태도 아닌가.
테레사는 자기도 일어 나려 다가 아우딘의 눈빛을 보고 멈췄다.
늑대 주교를 죽이며 얻은 부상이 심하다.
지금 상태로 사우는 건 몸을 망가뜨리는 행위였다.
아우1긴은 그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자매님은 기다립니다.”
“……네.”
테레사는 몹시 아쉬웠지만, 참았다.
신난 렘과 비슷하게 신난 아우딘이 적군을 맞이하러 나갔으나, 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뭔데?”
상황이 묘했다.
성벽을 공격하러 온 것치고는 초라한 숫자의 기병대만 보일 뿐이다.
그것도 멀리서 눈치만 보다가 덤빌 듯 말 듯 간만 봤다.
렘은 이틀을 기다렸다.
“이 새끼들이.”
적은 덤비지 않았다.
시간만 끌었다.
아브나이어가 부린 수작이었다.
일전에 마커스가 아즈펜의 도시인 크로스 가드로 가는 척하며 거하게 엿을 먹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상황은 달랐으나 결과는 비슷했다.
아브나이어는 보더 가드의 발을 묶었다.
이 정도 기병으로는 성벽을 칠 수도 없고, 보급로를 끊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보급은 아즈펜의 기병 쪽이 더 급한 판이었으니까.
하물며 숫자도 많지 않았다.
렘이 자세히 보니 기병 하나당 말이 두 마리, 세 마리다.
말을 이용해 몸집을 키운 허세로 가득한 부대였다.
“할일이 없나, 이새끼들이.”
그 덕에 렘은 욕구 불만이 됐으나, 아브나이어는 자신이 노린 바를 명확히 취했다.
보더 가드에서 지원군이 나오는 길을 임시로 막은 거다.
잠깐의 시간을 벌었고 아브나이어에게는 그거면 충분했다.
에스터는 주문의 향기를 맡았다.
꽤 고위의 주문 냄새였다.
그 향을 쫓아 움직였다.
사박사박, 작은 산을 오르니 거기에 모인 이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주시했다.
“너.”
강줄기를 틀어쥔 갈라프 제 주문 세계로 이명을 거머쥔 남자, 마법사다.
짧은 갈색 머 리칼과 곱상한 얼굴이 특징 이었다.
실제 나이는 모르나, 그는 십 년 전부터 저 얼굴이었다.
생명의 강물을 마셨다고 했던가.
물론 소문일 뿐이다.
에스터가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주에 걸려 망가졌다고 하더니.
헛소문이었나.”
인간이 된 에스터를 보고 놀란 갈라프가 말했다.
에스터는 말없이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남자의 주문 흔적을 느껴서 여기까지 왔다.
그건 우연이었다.
마나의 흐름과 더불어 준비된 주문의 흔적까지.
그게 마침 에스터의 감각에 걸려들었으니.
별의 인도이자, 운명의 부름일까.
알바아니었다.
그녀는 신을 믿지 않으니.
그녀가 믿는 건 자신이며, 제 주문 세계다.
자신이 이룩한 것만 믿기에, 마법사였다.
“마스터.”
갈라프의 제자 중 하나가 나서려 했다.
그는 제자를 여럿 기르는 거로 유명했다.
지금도 여섯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가라.”
갈라프는 말하며 에스터를 살폈다.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게 있었다.
‘저주를 다푼게 아니구나.’
마녀는 본래 실력의 반도 못 낼 터.
“투쟁의 마녀야.
싸울 거냐?”
갈라프가 물었다.
제자 무리만으로 준비된 일은 할 수 있으니, 자신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마녀와 싸울 이유 또한 없었다.
에스터는 이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이 머무는 둥지에 해가 되는 일이라는 건 당연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정도 되는 마법사가 여기에 왜 있겠나.
자신이 지금 있는 둥지, 엔크리드란 남자다.
마법은 그 남자에게도 위험할 것이다.
둥지에 머물고 얻은 것이 있으니.
‘이정도는 막아줘야겠지.’
“드뮐레르의 낫.”
에스터는 대답 대신 준비한 주문을 읊었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진공 계열 절삭 주문이 물리적으로 구현되어 허공을 갈랐다.
특기 주문 중 하나임에도.
“바르탄의 방패.”
파란 방어막이 일어나 낫 바람을 막는다.
방어막은 물결치듯 일렁였다.
푸른빛을 뿌리는 둥근 막을 사이에 두고 마법사 둘이 주문 세계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