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336)
336.
회색 구울의 땅 렘이 왼손에 든 도끼를 던졌다.
왼팔이 원을 그린 순간, 손에 든 도끼는 화살보다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왔다.
엔크리드의 눈에는 그저 세로로 길쭉한 빛이 번쩍인 듯했다.
회피의 감이 반응, 그대로 몸이 움직였다.
검면을 앞으로 세워 원반이 된 도끼의 궤적을 가렸다.
옆에서 보자면 렘의 팔이 움직인 것과 동시였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도끼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손아귀가 묵직했다.
날아온 도끼에 실린 힘이 결코 적지 않았다.
엔크리드가 투척한 도끼를 막는 사이다.
렘의 왼손이 허리춤을 훑자, 돌멩이 하나가 허공에 솟았다.
의미 없는 행위처럼 보였다.
돌멩이 하나를 위로 던진 게 전부 아닌가.
돌을 던지는 행위 덕분에 틈이 생겼고 엔크리드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걸음을 좁히며 ‘순간’의 윌을 발동, 불티를 찔렀다.
번개 찌르기라고 이름 붙인 검술이었다.
허벅지 근육부터 시작해 전신 탄력을 이용해 날 듯이 뛴다.
이전 오늘에서 전장 안을 헤매고 또 헤맸으며.
기사의 검을 본 뒤에 단련하고 또 단련해 이제는 더없이 매끈한 찌르기로 변했다.
렘도 무시할 수 없는 빛살은 점이 되어 날았다.
까-앙!
렘은 던지지 않고 남은 도끼 하나를 옆으로 틀었다.
그리 도끼의 면으로 불티를 막자, 도끼날이 움푹 파이며 불티가 반 뼘 길이로 도끼날을 관통했다.
관통과 동시다.
불티 칼날이 옆으로 끼기긱 뒤틀리기 시작했다.
불티가 도끼날을 뚫는 순간, 렘은 손목을 비틀어 힘을 흘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도끼날 너머의 렘의 머리통에도 점 하나는 찍어 줬을 것이다.
렘은 유검도 쓸 줄 알았다.
그것도 무척 능숙했다.
무기를 다루는 기술만큼은 부대원 중 가장 뛰어나다.
인정하는 바였다.
엔크리드는 옆으로 흐르는 불티를 당겼다.
빠극!
쇠를 뚫은 칼날이 뽑혔다.
순간의 가속에 중검의 힘을 실었으니 이 정도 위력은 당연했다.
엔크리드가 재차 검을 내치려 했으나, 렘은 그사이 품에서 슬링을 꺼내곤 머리 위로 휙 한 바퀴 돌렸고, 그 움직임에 아까 던져 둔 돌이 가죽으로 만든 슬링 발사대에 착 감겼다.
곧 위이이이잉 하는 소음이 귀를 울렸다.
정해진 연극이라도 보여 주는 듯한 동작의 연속이었다.
렘은 여기까지 예상하고 움직인 거다.
예상과 예측, 계산, 사고의 순발력을 이용한 싸움의 향방을 몰아치는 것, 정검식의 응용이다.
‘한 방 먹었다.’
엔크리드 또한 무명 정검식을 단련한바, 그는 여기서 제 계산이 한발 밀렸다는 걸 깨달았다.
팽!
소음이 들림과 동시에 돌이 날아들었다.
작센이 던지던 단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아까 날아온 도끼보다도 수배는 빠르다.
회피의 감이 경종을 울렸다.
엔크리드는 눈과 머리가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느꼈다.
전에 없이 집중력이 타올랐다.
전력으로 발동한 회피의 감, 육감에 의지해 돌을 피한다.
왼발을 축으로 몸을 옆으로 던지듯 날렸다.
돌멩이가 핑- 하고 머리칼을 스치곤 뒤로 날아갔다.
뒤에서 펑 소리 따위가 터지듯 들렸다.
하늘에서 돌덩이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엔크리드는 호흡을 고를 틈도 없었다.
돌은 피했으나 이후 날아온 도끼날에 틈을 내줘야 했다.
자세가 무너진 탓이었다.
“흡.”
엔크리드는 짧게 호흡을 끊어 삼키며 은색 장검을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휘둘렀다.
중검식 수직 베기를 역방향으로 썼다.
그러자 렘의 도끼는 날아오다 말고 돌아갔다.
‘미친.’
속임수였다.
육감의 영역으로도 속을 만한 속임수라면 공격하기 직전까지 진심이었다는 거다.
이후 두 번째 돌멩이가 날아왔고, 엔크리드는 그걸 재차 피하다가 도끼날에 목을 긁힐 뻔했다.
그대로 긁혔다면 목이 반쯤 썰렸을 테니, 뒈질 뻔했다는 거다.
살아남은 이유?
반사적으로 목을 젖혔고 마지막 순간 렘도 힘을 뺐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수다.”
렘이 숨을 몇 번 고르고 말했다.
“그럼 그것대로 제대로 즐기다 가는 거지.”
엔크리드가 바닥에 쓰러졌다가 일어나며 답하니.
“대련하다가 뒈지는 게?”
그게 즐기는 거냐?
이 새끼는 진짜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렘이 되물었다.
엔크리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답했다.
“응.
신나.”
“미친 새끼.”
렘이 참지 못하고 속내를 밝혔으나, 이후에도 대련은 이어졌다.
특히나 엔크리드는 새로이 배우는 것들이 늘었다.
특히나 렘에게서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도끼, 창, 철퇴, 프레일 등의 무기를 상대하는 법 중 제일 좋은 훈련 방법이 뭔지 아슈?”
모른다.
답하지 않았다.
렘도 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보름 동안, 정말 죽음의 강에 발을 반쯤 담근 것 같은 대련 이후 나온 말이었다.
“직접 써 보는 거요.”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나머지 보름 내내 철퇴, 도끼, 창, 미늘창 따위를 사용해 봤다.
렘은 그 모든 무기를 도끼만큼 능숙하게 사용했다.
엔크리드 경험치는 이제 녹록한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그는 금세 몇 가지 요령을 깨닫고 실행했다.
요령만 있다면 기본기 정도 익히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씹, 이렇게 느리다고?”
렘은 더없이 불만을 표했지만 말이다.
이후에도 내내 대련과 훈련, 단련의 반복이었다.
어쨌든 엔크리드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값졌다.
값지다고 느끼기도 했다.
곧이어 그 값진 시간을 활용할 순간도 왔고.
이미 얘기가 끝난 일이었다.
“자, 회색 구울이란 놈인데.
위험합니다.”
한창 바삐 돌아다니던 크라이스다.
그가 일을 물어왔다.
정확하게는 중앙과 연계해 이쪽에 공적을 얹는 일이었으나, 그 과정 따위는 엔크리드가 알 바 아니었다.
그저 대련으로는 불가능한, 제대로 된 실전이 찾아왔음에 조금은 기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출발하는 건 아니었으며 지금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게 먼저이기도 했다.
아직 대련이 끝나지 않았으니, 오늘은 아우딘과 겨루는 날이었다.
“어, 기다려.
마저 하고 온다.”
겨울이 끝나고 시작된 봄의 어느 날이다.
크라이스는 제 대장을 말리지 못했다.
아니, 말릴 필요도 없었다.
구울 처리가 급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화로를 끼고 엔크리드와 일행을 기다렸다.
봄이라지만 아직 바람이 쌀쌀하다.
화로의 안온한 열기가 몸을 덥혔다.
졸렸다.
크라이스는 기다리며 이 일이 보더 가드의 자체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했다.
그럴 만한 이유는 많았다.
크라이스는 점점 눈이 감겼다.
그리 졸면서도 할 말은 머릿속에서 착착 정리됐다.
* * *
뱃사공은 심상 너머에서 지금 자신과 엮이고 묶인 인간을 바라보았다.
죽음이 보였다.
몇 번이고 보였다.
벽이 아님에도 홀로 죽겠다는 발악이었다.
그러니까 저건 그저 훈련에 미쳐서 제 목숨을 돌보지 않은 거였다.
오늘의 반복을 믿고?
그런 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알았다.
그저 미친놈이어서 그런 거였다.
그렇다고 죽었나?
아니, 죽었어야 할 순간에도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이건 기량인가 아니면 운인가.
뱃사공은 기량이라고 판단했다.
상대의 기량과 본인이 가진 기량의 합이 확정된 죽음을 비틀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을까.’
오늘의 뱃사공은 가벼운 말투였다.
그는 상대를 관찰했다.
극찬은 이제 남기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그 말을 듣고서 자극제 삼아 나아가는 놈이니.
그러니 이제는 지켜만…….
“미친 새끼가.”
거듭 말하니, 오늘의 사공은 성격이 나풀거렸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잠시 기절한 엔크리드의 뇌리에 제 말을 남겼다.
극찬이었다.
심상 세계에 잠시 들어온 엔크리드가 눈을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공은 긴 세월 살았고, 긴 세월 살아온 이들은 대부분 경험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눈치가 발달하기 마련이었다.
그는 눈빛만으로 말을 읽었다.
뜻을 전해 들었다.
엔크리드의 눈은 안 바쁘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바쁘다!”
사공은 외치고.
심상 세계는 흐려졌다.
사실 바쁠 일은 없었다.
구경하는 게 그의 삶이자 전부였으니까.
* * *
눈을 뜬 엔크리드는 마지막 순간을 되새겼다.
아우딘의 주먹이 휘어지며 머리를 후렸다.
그 흐름과 과정, 궤적이 기억에 선명했다.
‘스텝을 밟았는데.’
회피 기동을 했는데 아우딘도 같이 발을 놀렸다.
몸뚱이 크기와 별개로 날래도 너무 날랜 발이었다.
보통 이만한 충격을 받으면 그 순간의 기억이 끊기기도 하나, 야수의 심장 덕인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상대의 잔상, 기술, 흔적, 기세 따위를 몸에 담으려는 노력 덕인지 끊긴 기억은 없었다.
‘닿기 직전에 꺾었는데.’
몸으로 충격을 흘렸다.
아우딘에게서 배워 이제는 몸에 익은 기술이다.
“중대장 형제님의 뱀검에서 착안했습니다.”
그걸 또 아우딘은 새로운 기술로 가격했다.
엔크리드는 새삼 느꼈다.
아우딘 또한 천재라고.
제 검을 보고 뭘 만들어서 쓰다니.
렘도 작센도 라그나도 사실 비슷하게 가져다 썼다.
전부 천재였다.
그렇다고 새삼 박탈감을 느낄 일은 없다.
대련을 마치고 막사에 들어가자, 테이블을 두고 화로를 낀 크라이스가 보였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잠이 부족한 듯했다.
에스터 또한 한쪽 구석에 있었다.
그녀는 무심히 엔크리드를 봤다.
“왔나?”
이게 인사다.
“응.”
표범과 인간의 모습을 오가는데 오늘은 인간이었다.
여전히 검은 로브에 이전과 달리 로브 안쪽으로 검붉은색의 부드러운 셔츠를 입었다.
로브 안을 좀 가리라고 했더니 가렸다.
퍽 잘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아, 왔어요?”
인기척에 크라이스가 눈을 떴다.
회색 구울이란 말만 남기고 대련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때아니게 낮잠을 잤다.
잠깐이지만 개운했다.
“으어, 요새 너무 무리했다니까요.
어디 귀한 약 있으면 먹어야 하는데, 작센은 안 돌아온대요?”
크라이스에게 갖가지 약을 공수해 주던 사람이 작센이다.
그중 몇 가지는 역으로 자신이 구해 주기도 했으나 약초와 자양강장에 관한 약은 작센이 더 전문이었다.
“올 때 되면 오겠지.”
엔크리드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크라이스도 굳이 그를 찾지 않았다.
“자, 설명을 시작해 볼까요?”
크라이스는 눈곱을 떼며 말했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중요하며 인과 또한 중요하다.
알고 하는 일과 모르고 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다.
크라이스의 생각은 그러했다.
다만, 렘과 휘하 부대원의 생각은 달랐다.
라그나는 요새 부쩍 자는 시간이 늘었고.
렘은 알게 뭐냐고 한쪽으로 가서 슬링을 만들거나 엔크리드가 구해 온 무기를 숫돌로 갈았다.
제 손에 드는 무기를 관리하는 건 전사의 기본 소양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예전에는 대강대강 썼던 것 같긴 하지만.
뭐,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긴 했다.
기사 새끼가 튀어나오는 일이 생겼다.
렘도 들어서 안다.
‘나오면 구경만 할 수는 없지.’
그가 나고 자란 곳은 기사가 없다.
대신 용사라 부르는 이들은 있다.
용맹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 불리는 데야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고 보면 수인 또한 그들 사이에 특출난 자들을 용사라고 한다고 했던가?
렘이 알 바는 아니었다.
다만, 기사란 족속이 나오면 어찌할 것인가.
그냥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엔크리드가 하는 짓과 같았다.
단련과 훈련이다.
렘도 그렇게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굴렀다.
그러니 피로가 쌓이기도 했다.
지난 몇 달간은 정말 숨도 안 쉬고 몰아친 격이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열심히 해 본 것도 처음이네.’
처음 무기를 잡은 시절을 제외한다면, 아니 그때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기도 했다.
엔크리드의 실력도 늘어서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 순간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수틀리면 지거나, 죽이게 된다.
그나마 엔크리드의 손에 익지 않은 무기 활용법을 가르치며 그 위험도가 낮아졌으나, 그거로 만족하면 미친 새끼가 아닐 터.
‘하여간 미친 인간.’
렘은 평소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누웠다.
이미 끝나고 욕탕까지 들린 뒤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근 여파가 졸음으로 돌아왔다.
아우딘은 기도할 시간이라고 빠지고 둔바켈과 테레사라고 관심이 충만하진 않았다.
에스터야 애초에 관심 따위 전혀, 조금도 없다.
엔크리드만 남았으나, 크라이스 또한 예상한 바였다.
언제부터 열심히 설명을 듣던 인간들이라고.
그는 엔크리드만 보고 입을 열었다.
그나마 대장이라고 듣기는 해서 다행이다.
이 사람까지 안 들었으면 그건 문제 아닌가.
“보더 가드 주변에 위험이 산재한 건 압니까?”
크라이스의 말은 길었으나, 엔크리드는 역시나 훌륭한 청자였다.
그리고 길긴 길어도 핵심을 요약하고 말하는 법은 크라이스도 잘 알았다.
요는 이거였다.
보더 가드 주변으로 이 일대를 위협하는 마경과 같은 곳이 세 곳 있고.
그중 하나를 처리해야 한다는 거다.
회색 구울의 땅이란 곳인데, 보더 가드 서남쪽에 있는 탓에 서쪽 영지와의 교역 간 교역로를 우회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 이겁니다.”
이외 정치적인 이유, 그러니까 왜 이제까지 이걸 처리하지 못했는가에 관한 내부적인 이유 따위도 알았지만.
‘말한다고 들을까?’
벌써 관심도 없어 보였다.
“구울?”
보라, 엔크리드는 제가 베고 죽일 마물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엔크리드를 찾는 모든 이들을 향해 크라이스는 같은 말을 뱉었다.
“내년 봄에 중요한 일전을 준비합니다.
일대에 변화가 있을 테니, 그걸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변화란 게 뭔가?”
언젠가 찾아온 몰센 백작 휘하의 귀족이었다.
당연히 일전에 덤볐던 밴트라 자작은 아니었다.
일전의 싸움으로 감정이 상했는지, 엔크리드를 향해 구애의 손길을 내밀진 않았다.
그런 걸 보면 크라이스는 새삼 몰센 백작의 그릇이 대단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 짓을 해 놓고 잘도 제 밑으로 오라고 하다니.’
백작이 외면해서 생긴 문제가 어디 한두 개였나.
하물며 몰래 손을 쓴 것도 있다.
제 휘하 사람을 보내 보더 가드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거다.
증거는 없으나 심증은 분명했다.
작정하고 증거도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뭐, 부인하면 아무 의미 없으니 증거를 찾은 것도 당연히 전혀 의미는 없는 일이지만.
“보더 가드의 규모가 커질 겁니다.”
성을 넘어 영지로.
그걸 위한 준비라고 은근히 말하면 그만이었다.
엔크리드는 그걸 위한 검이었다.
그럼 보더 가드는 제 마음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건가?
이전 성주인 마커스를 부르면서 반역을 논하기도 했는데?
규모를 늘리려면 중앙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
즉, 왕궁에서 직접 손을 댄다는 거다.
“허.”
주변 귀족 나부랭이가 엔크리드를 데려가 버리면 왕궁의 얼굴에 먹칠하는 격이다.
이리 질러 놨으니, 크라이스는 당연히 제 말을 입증할 행동이 뒤따를 필요가 있었다.
그 시작이 회색 구울 소탕이었다.
이처럼 은근히 정치 역학을 섞어 말했으나, 엔크리드에게 관심 따위는 없었다.
크라이스는 말을 끝냈다.
더 말해 뭐하겠나.
이미 나가서 싸울 생각만 가득한 사람인데.
그렇다고 위험을 자초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장은 그런 사람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대장은 대장의 일을.
크라이스는 크라이스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될 터였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