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351)
351. 암살자는 함정을 판다
끄워어어!
인면견, 구울과 함께 익사체도 몇 보였다.
익사체는 이제 막 만들어진 싱싱한 놈들일까?
며칠 전에 쏟아진 폭우로 죽은 시신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물은 생후 한 시간이든 일주일이든 큰 차이가 없을 테니.
가끔 오래 묵으면 위험한 놈들이 되기도 하지만, 갓 태어났다고 해서 아장아장 걷는 놈 따위는 없다. 그러므로 갓 태어나든 말든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숫자다.
“많다.”
채찍 호위의 말이다. 그 숫자가 그래, 많긴 했다.
많은 것도 문제지만, 종류도 눈에 문제였다.
앞에 보인 세 종류의 마물 개체보다 월등한 위험을 보이는 마수도 보였다.
본래 마수란 마물보다 위험도가 떨어지나 예외는 어디에든 있다.
가장 쉬운 예로 곰 마수가 있다.
곰은 마수가 아닐 때도 위험한 짐승이다.
그런 곰이 마수화가 되면 당연히 더 위협적이며 위험하다.
그 가장 쉬운 예시 두 마리가 마물 사이에서 머리를 들었다. 그중 한 놈은 다른 놈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커르르르르르으으.
침을 질질 흘리며 눈깔이 빨개진 곰 마수가 눈에 확 띄었다.
그걸 본 렘이 말했다.
“종교쟁이 새끼 친구가 있수다.”
“그러네.”
라그나가 답했다.
아우딘이 들었다면 언제나 그렇듯 인자한 미소와 함께 제 신의 곁에 서겠노라고 물었을 대화였다.
다만 곰은 아우딘과 달랐다.
놈은 웃지 않았다.
크허허허헝!
대신 제 가슴을 치며 포효했다.
전신을 찌르르 울리는 울림이었다. 순간적으로 피식자의 몸을 굳게 하는 외침이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 같았다.
“온다.”
둔바켈이 말했다. 마물이 파도가 되어 덮쳐들었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면견이 땅을 차며 제 배를 진흙으로 더럽히고.
익사체가 양팔을 허우적대며 내달려 온다. 구울은 손톱을 자랑하듯 앞으로 손을 뻗곤 땅을 움켜쥐듯 팍팍 찼다.
그 숫자가 물경 백을 넘어갔다.
마물 떼가 덮치고 곰 마수가 움직일 때마다 쿵쿵하고 땅이 울렸다.
만약 여기에 있는 이들이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골치 아픈 걸 넘어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절로 공포에 질릴 만한 풍경이다.
다만, 여기에 모인 인간들은 평범이나 보통이란 단어와는 괴리가 있는 이들이니.
피식자라면 마수가 된 곰의 포효에 몸이 굳어야 했을 테지만, 더없이 자유로운 사람들만 모였다.
여기에 저딴 마수를 보고 몸이 굳을 인간은 없었다.
훙, 뻑!
달려오는 곰 마수 한 마리의 머리통에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투척 도끼였다.
세찬 괴성을 지르던 놈의 주둥이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나고.
곰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돌아왔다. 강인한 목 근육이 머리통이 떨어져 나가는 걸 막았다. 하지만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곧 머리통에 도끼 장식을 얻은 곰은 달려오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며 앞으로 굴러 넘어졌다.
곁에 있던 인면견 몇 마리가 곰 마수 몸통에 깔렸다.
꿰에엑.
인면견의 비명이 터졌다.
그거로 끝이었다. 머리통이 쪼개진 채로 살아남아 움직이는 마물은 히드라뿐이지 않을까?
그놈은 머리통이 여러 개니까.
물론 히드라는 엔크리드도 직접 본 적 없는 마물이다.
머리통이 수직으로 갈라진 곰 마수는 죽는 게 당연했다.
“아, 내 건데!”
둔바켈이 불평을 토하고.
꾸워어어어!
구울 특유의 비명이 쟁쟁하게 울렸다.
라그나와 작센이 잡초라도 뽑듯이 무심한 동작으로 구울의 머리통을 베고 팔다리를 썰었다.
간결한 동작의 연속이다.
걸음은 최소화하고 제 주변에 들어오는 놈들을 죄다 썰었다.
엔크리드도 나섰다.
보통 구울 하나에 훈련된 장창병 셋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잘 훈련된 병사라면 혼자서도 구울을 죽이기도 한다.
이런 놈들은 천 마리가 와도 엔크리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치고 빠지길 반복하면 그만.’
혼자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크랑을 호위하면서는? 업고 뛰면서 싸워도 무방하다.
다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중대원과 함께다. 피할 필요도 없었다. 몰아쳤다.
때리고 죽이고 삽시간에 썰었다.
마물의 검은 피가 비에 젖은 땅을 적셨다.
“마물 던지기군요.”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에 작센이 말했다.
누군가가 마물을 몰아서 이쪽으로 던졌다는 말이다.
마물 던지기, 밀어내기, 올려치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고명한 수법이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작센이 제 검을 천으로 닦고 그 천을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그가 보기에는 그렇다.
영지로 몰려오는 마물을 무시하거나 유인해 넘기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임의로 한 무리를 보낸다는 건 보통 솜씨가 아니긴 했다. 그러니 포기할 놈들은 아니다.
“얼마든지 오라고 해.”
둔바켈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마물 따위 위협도 아니었다.
짝눈이까지 자기한테 침을 흘리며 달려든 인면견의 머리통을 발로 깠다.
대가리가 터진 인면견이 야생마 주위에만 다섯 마리가 넘었다.
히이잉.
짝눈이가 고개를 털며 울음을 토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추잡한 짓이 이어질 겁니다.”
작센은 계속 말했다. 단호한 어조였다. 추측과 예측이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수없이 해 왔던 일이었으니까.
물론 수비가 아니라 공격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모였나.’
길드 한두 곳이 움직인 건 아닐 터였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크다.
나우릴리아에도 당연히 암살 길드 같은 게 있었다.
그들 전부가 모여 연합 길드라도 된 걸까?
단순한 추측이었으나, 확신이 들었다.
이만한 규모, 한 나라의 왕족을 노리는 대담함.
길드 하나가 할 일이 아니다.
‘왜 모였지?’
몇 가지 추측과 예상을 통해 답을 도출했다.
의뢰자는 사냥개를 원했고, 사냥개로 선택받은 놈은 혼자서 먹고 죽느니 다 같이 해 먹고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작센의 추측은 완벽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
* * *
아즈펜에는 몽테르의 늪이란 암살 길드가 대부분 그쪽 세계를 장악했으나 나우릴리아는 아니었다.
이들은 경쟁하며 공생했다.
그 숫자도 적지 않았다.
국내 정세가 복잡하고 수년 동안 여기저기서 전쟁이 벌어지니, 이걸 기회로 삼아 귀족 몇이 모여 만든 길드도 있었고.
사람 죽이는 재주를 앞세워 양민 사이에서 일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긴 시간 이런 생태계에서 살아남은 길드는 총 열두 곳이었다.
그리고 현재 각각 길드를 만들어 버티던 이들이 모여 열두 개의 비수라는 연합 길드를 형성했다.
“용병을 수십 명을 고용하고 우리 쪽 사람도 보냈는데 전부 실패했습니다.”
“상대가 그 미치광이 중대였으니까.”
암살자 길드는 당연히 정보에 예민하다. 당하자마자 알아챈 건 당연했다.
이들은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모여 저택 하나를 개조해서 머무는 중이었다.
당연히 방비와 보안을 철저히 했다.
“이대로 넘길 거요?”
“의뢰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알 텐데.”
열두 개의 비수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길드장이 있기 마련이었다. 연합이 되기 전까지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여자가 모두에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포기란 죽음이다.
의뢰자는 왕궁 안에 있다. 실패도 포기도 같은 결과를 부를 뿐이다.
살려면 선택지는 두 개였다.
쌓아 둔 기반이고 뭐고 간에 도망가거나.
‘아니면 성공하거나.’
그녀도 다른 길드장도 당연히 이후에 따라올 보상을 꿈꿨다.
기반을 버리고 튀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럴 바에는 무리해서라도 일을 성사시키리라.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다.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이 따를 터였다.
볼장 다 봤다며 버릴 수는 없게 하도록, 자존심을 버리고 똘똘 뭉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이 모였다.
구심점이 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전장에서 이름을 날린 이들이 상대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건 글렀습니다. 우리 무대에서 우리 방식으로 싸웁시다.”
“옳소.”
그녀의 정부가 된 남자가 먼저 호응했다.
“당연한 말을.”
그녀를 질투하는 다른 길드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상대가 암살자의 수법을 전부 알 순 없을 테니, 한 번은 당하리라.
그러면 끝이었다.
그들 중에 현상금 사냥 경험은 있어도 작정하고 파 둔 암살자의 함정을 다 파악할 사람은 없을 것 아닌가.
다들 전장에서 굴러먹었던 이들이니까.
그들의 판단은 당연했다.
* * *
“살려 주세요!”
가도를 따라가는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다.
어린 티가 가득한 청년 하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덫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피를 줄줄 흘리며 엔크리드 일행을 발견하자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살려 주십시오! 제 아버지는 소작농을 거느린 지주입니다! 보은하겠습니다! 보답하겠습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하는 말이다.
“어쩌다가 갇혔습니까?”
엔크리드가 나서기도 전에 작센이 먼저 물었다.
평소와 다른 말투다. 작라이스 때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크라이스를 흉내 낼 때 말이다.
그리 선함과 친절을 가장해 물으니.
“그게 밀을 팔러 가는 길이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자기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단 거다.
“도울 건가?”
채찍 호위가 물었다. 기묘한 불안감에 지나치고 싶었다.
엔크리드는 덫에 걸린 상대를 봤다. 진심으로 보였다.
“제발, 제발. 데발.”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말은 혀를 깨물었는지 발음도 샜다.
“함정입니다. 주변에 트랩을 파 둔 것 같군요.”
작센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청년 주변을 훑었다.
바닥에 꺼지는 함정과 독기가 은근히 코를 간지럽혔다.
“놔두면 죽을까?”
“죽습니다. 그러라고 잡아서 파 둔 함정입니다.”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는 함정이나, 그걸 노리는 바이기도 했다.
“무시하면 저자는 우리가 죽인 거로 되어 있을 겁니다.”
“이중 함정이란 거지?”
엔크리드가 물었다. 작센은 최대한 간결하게 이어질 상황을 설명했다.
보급 및 휴식을 위해 닿을 도시에 있을 일의 예측이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함정이었다.
구하려 하면 함정을 넘어야 하고.
무시하면 이후에 들르는 도시에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한다.
“내 아들을 죽인 자가 저기에 있소!”
연기 잘하는 놈을 쓰든, 인질, 협박, 중독 모든 걸 써서 지주라는 작자가 일행을 향해 저 말을 하게 할 것이다.
‘도시에서 손발이 꼬이게 하고.’
당황하게 되면 끝이다. 뒤에서 단검으로 푹이다.
그걸 위한 팀도 준비했을 거다.
‘얍삽하군.’
작센은 생각했고, 엔크리드는 결심했다.
“둔바켈.”
“응?”
“주워 와.”
이전 전투에서 봤듯이 둔바켈의 몸놀림은 잽싸고 빠르다.
그 정도면 함정 따위 무시하고 저 남자만 건져 올 수 있다.
“응.”
이유를 묻진 않는다.
엔크리드가 시키면 한다. 둔바켈의 사고 구조다.
본래 지금의 함정은 사람을 구하겠다고 다가가면 바닥에 이것저것 깔아 둔 것들을 터트리는 거였으나.
둔바켈은 도움닫기와 함께 뛰는 거로 모든 걸 무용케 했다.
빵!
아직 진흙 형태가 된 땅이 터졌다. 둔바켈이 힘을 줘 밟은 곳이다.
그대로 날아간 둔바켈은 덫이 있는 곳에 도달했고, 퍽 하고 떨어졌다.
멀리 뛰기로 덫을 뛰어넘은 둔바켈이 덫을 힘으로 열었다.
발목을 옥죄던 쇳덩이는 우직 소리와 함께 용도를 잃고 부서졌다.
남자는 눈물, 콧물을 쏟은 채로 둔바켈에게 안겼다.
공주님 안기로 지주의 아들내미를 안고 둔바켈은 다시금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도움닫기 할 공간을 확보한 뒤에 훌쩍 뛰어선 함정을 통째로 뛰어넘었다.
수인의 대퇴부 근력이 보여 주는 묘기다.
“우어어어!”
덫에 걸렸던 남자의 비명만 허공에 남을 뿐이었다.
지주의 아들내미가 일행이 됐다.
엔크리드가 구한 인질의 상처를 살핀 뒤 가루약을 뿌려 출혈을 막고 붕대를 감았다.
“감, 감사합니다.”
일반인이다. 그러니까 민간인이다. 암살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질이다. 직감이 말해 주는 사실이었다.
작센도 비슷한 결론이었다.
놔두고 갔다면 도시 유력가의 아들을 죽인 살인마가 되는 거고.
살린다면 함정을 파헤쳐야 하는 이중 덫이었으나.
그 모든 함정이 수인의 대퇴부 근력과 작센의 경험 덕에 격파됐다.
이후에도 암살 시도는 끝이 없었다.
“구해 주시오!”
상단 무리였다. 마물에게 쫓긴다며 여기저기 피를 흘리는 채로 다가왔다. 아니, 달려왔다.
엔크리드는 달려오는 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상인이 맞나?
자신을 숨기고 적의를 감춘다. 암살자의 기본이다. 그들이 그렇게 했다.
의심은 드나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 뒤로 구울 서너 마리까지 보였다. 그건 저들의 말에 무게를 실어 주는 증거다.
그럼에도 마음 어딘가가 틱 걸린다. 직감의 경고다. 이유는 무엇인가?
검을 단련하며 발달한 가속화된 사고력이 빛을 발했다.
‘다친 부위가.’
다리를 다친 놈이 하나도 없다. 거기에 두려움에 질려 도주한다는 놈들의 호흡이 일정하다.
이 모든 것이 직관의 영역에서 해석되고 정리됐다.
“적이다.”
그렇게 내린 결론, 거기에 작센이 고개를 끄덕임으로 확인까지 해 줬으며.
그것도 부족해 엔크리드는 작센에게 배운 탄검식으로 단검을 던졌다.
목을 노리듯 날아가다가 밑으로 뚝 떨어지는 단검에, 구해 달라고 외치던 배가 불룩한 상인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피하지 않았다면 허벅지에 예쁜 단검 장식 하나만 생기고 말았을 텐데, 그는 피했다.
더욱이 저 몸에 저런 날랜 움직임이라니, 훈련받은 태가 나지 않나.
몸놀림 자체가 놀라운 재주라고 봐야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구나.”
옆으로 피한 배불뚝이 암살자가 말했다.
암살자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엔크리드는 가볍게 혀를 놀려 선제공격을 가했다.
“임신했나?”
자신의 남성성을 훼손당한 암살자의 미간이 좁혀졌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다년간 해 왔으나,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기에 생기는 순간적인 불쾌함이다.
그는 그걸 감추지 못했다.
그의 반응이 전체적으로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되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배불뚝이 암살자가 소리 없이 날아간 단검의 기척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으니까.
푹.
목덜미에 사일런트 나이프가 꽂히자, 놈이 제 목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