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366)
366. 준기사라고 다 같진 않다
붉은 망토 기사단에는 세 명의 기사가 있으며 그 기사의 이름을 따온 부대도 각각 있으니, 그들의 위명이 대단하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기사단이 기사 셋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
실제 기사단의 핵심은 준기사이며 이들의 숫자는 스무 명이 넘었다.
그중 수도에 남은 준기사는 다섯이 채 되지 않았다.
스콰이어도 대강 오십 명이 넘었으나 수도에 남은 건 열 명도 되지 않았고.
에이시아의 설명에 따르면 그랬다.
“뭐, 실력이 준기사 수준인 사람은 몇 있지. 로열 가드 단장도 기사단 출신이고, 후작의 호위로 이름 높은 쌍둥이도 있고.”
“그 둘이 쌍둥이였나?”
이야기 중간에 엔크리드가 물었다.
“옥토의 후작을 만났다고 했지? 어, 이란성. 안 닮았지? 쌍둥이라고 들었을 때는 나도 놀랐다.”
에이시아는 소탈했다. 앤드류가 보기에는 그랬다.
끝이 갈라지긴 했으나 주황색 머리칼은 그녀의 발랄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탈하고 발랄하다. 걱정 없이 자란 농가의 처녀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모로 보자면 에스터란 마법사나 킨 바이사르가 더 뛰어나지만, 매력 측면을 보자면 에이시아란 준기사도 남자 다수의 가슴에 열병을 안겨 줬을 것 같았다.
‘저런 외모로 저런 쾌활함은.’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니까.
거기에 거리감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친밀하게 군다. 서슴없다는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식탁에 합류하여 먹고 마시며 어제도 여기에 있던 것처럼 굴었다.
“그 빵 좀 주쇼.”
웃긴 건 렘을 비롯한 이들도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는 거다.
무려 붉은 망토 기사단의 준기사를 말이다.
앤드류는 적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곧 모든 심각함을 버렸다.
‘나도 모르겠다.’
엔크리드와 엮이면 뭐든 말이 되지 않게 흘러가는 법이다.
대장과 처음 작전에 나갈 때와 다를 것도 없다.
그때도 믿을 수 없는 일만 했다.
‘무슨 수풀 속에서 적군 위치를 다 파악한 것처럼 굴었잖아.’
게다가 막사에 불을 지르며 싸웠고, 도망가고 나서야 그때 알았다. 이 인간은 좀 다르다고.
지금은 일의 규모도 커지고 위치도 더 높아졌으나 다를 건 없다. 앤드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
에이시아가 둥근 빵을 슥 잘라서 던졌다. 허공에서 그걸 낚아채 램이 마멀레이드를 발라 씹었다.
라그나는 염장 햄을 자르고 빵의 거친 부분을 잘라서 안쪽만 먹었다.
“편식쟁이 새끼.”
그걸 본 렘이 한마디 했고.
“저 여자가 싸우는 걸 보니까 맞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런 거라면 기다려라, 식사 중이니까. 야생 동물아.”
라그나가 태연히 받아쳤다.
“저 여자 아니고 에이시아.”
에이시아가 중간에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아, 그래. 에이시아.”
라그나도 자연스레 말을 놓는다. 에이시아는 저택의 주인인 앤드류에게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물론 초대라는 말은 꺼낸 적도 없었다.
대뜸 들어와선 대련하고 식사하는 중일 뿐이니까.
앤드류는 ‘별말씀을’이라고 답하며 그녀에게 무안함을 주지 않았다.
“저쪽은 얼굴이 내 취향인데.”
에이시아가 작센을 향해 말했다.
“대부분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속지 마슈. 만나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우.”
렘이 말을 덧붙였다.
“다 친구다.”
드물게 작센이 부드럽게 받아쳤다. 에이시아는 그런 작센을 보며 여자가 좀 많이 따르긴 하겠다고 생각했다.
제 취향이라고 해서 바로 반했다는 건 아니었다.
에이시아는 맞은편에서 빵을 씹는 엔크리드를 봤다.
보고 또 봐도 신기한 인간이다.
“난 친구로 만나는 여자도 많지 않다.”
신기한 놈, 엔크리드가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물어보지도 않았어.”
“어. 끝나고 대련?”
에이시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화는 시키고.”
그 소화 과정 중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면 될 것이다.
에이시아는 여기에 놀러 온 게 아니었다.
“달빛 야수를 잡기로 했잖아.”
“벌써 이름도 지었다고?”
“달빛 아래서만 나타나는 야수니까.”
수도에도 바보 병신 천치만 모인 게 아니었다.
적의 외형이나 나오는 장소, 시간을 특정하긴 했다.
설명을 듣던 엔크리드가 물었다.
“왜 아직 놔둔 거냐?”
준기사가 다섯이 남았다고 했다.
스콰이어도 있고 경비대도 있다.
한 나라의 수도다. 이만한 일을 해결할 사람들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런데 놓쳤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론 상대를 얕봤기에 그렇고.
둘째로는 기사단을 제외한 이들이 제가 가진 무력을 꺼내려 하지 않기에 그렇다.
“다들 제 안위를 지키기 바쁘니까. 뭐, 이해는 가.”
에이시아는 시원시원하게 말하고는 덧붙였다.
“스콰이어 하나가 당했어. 중상이지. 그 친구는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스콰이어라면 무려 기사단원인데 당했다는 건 달빛 야수라는 놈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방증이었다.
“신관은?”
당한 건 당한 건데 왜 치료가 미흡할까.
스콰이어란 재능을 인정받고 수백 수천 중의 하나가 되어 뽑힌 자다.
기사란 무력의 상징.
그리고 기사단이란, 기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향한 대우는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다.
요리사가 따로 배정되는 건 기본이고 신관의 기도 정도는 받을 수 있다.
신성이라면 중상이라도 치료할 수 있다. 죽지 않을 정도로 회복은 시켜 주리라.
“지금은 수도 내에 있던 신관도 자리를 비웠거든. 왕궁 전속 신관은 다른 이유로 신성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하고.”
엔크리드는 오가며 봤던 수도 내에 신전을 떠올렸다.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몇 개의 신전이.
나우릴리아는 종교를 박해하지 않으므로, 수도 나우릴에도 몇 개의 신전이 있다.
신성 도시라는 레기온 정도는 아니지만, 이곳도 신전은 꽤 많다.
그중에 신관이 하나도 없다?
“정확히는 신성력을 발휘하는 신관이 없어. 그중 하나는 이미 야수에게 당해 버렸고.”
처음 달빛 야수가 나타났을 때는 대응이 늦었다.
놈은 곧장 신성을 깨달은 신관 하나를 노렸다.
결과적으로 신관인 그녀 역시 숨을 껄떡거린단다.
오늘내일하며 버티는 중이란 거다.
그 외 신성을 발휘하는 신관 중 일부는 국경으로 향했고.
“본래 신성력은 귀한 거니까.”
그나마 왕궁 소속 치료사가 나서서 이것저것 하고 있단다.
연금술로 만든 물약도 있고.
“죽진 않을 거야.”
에이시아가 말했다.
덤덤하게 말해서 오히려 원한이 깊은 것처럼 들린다. 아니,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가 절로 느껴졌다.
“잡을 거요.”
렘이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 줬다.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한 어조다. 그럴 만도 했다. 렘에게 이런 사냥은 익숙한 일이니까.
“그래, 고마워. 렘이라고 했지.”
엔크리드는 에이시아가 꽤 신기했다.
이렇게까지 붙임성이 좋았던가?
이전에는 깊게 이야기할 시간은커녕 상황도 아니었기에 몰랐다.
하긴, 그때도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오늘도 날이 흐립니다.”
작센이 무심한 어조로 말한다. 그의 말대로였다.
오늘 밤에도 달이 뜨진 않을 거다.
무엇보다 달이 뜬다고 무조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왜 그럴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는 된다. 생각하다 보면 가설을 만들 수도 있고.
“하여간, 스콰이어를 죽이고 도망가는 걸 준기사 하나가 쫓았는데 놓쳤다. 발이 엄청 빠르다는 거지. 이전처럼 뒤에서 쫓으면 잡기 어렵다고 생각해.”
“기사단이 나서지 않은 이유가 있나?”
대강 식사를 끝낸 엔크리드가 먹고 남은 걸 치우자, 하녀가 그 앞으로 차를 내왔다.
살구를 반으로 쪼개 입으로 넣은 에이시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신 듯했다.
“뭐겠어?”
두 번 물을 필요도 없었다. 왕궁 내 상황 때문이다.
“우리는 여왕을 섬겨.”
여왕을 호위하는 걸 로열 가드에게만 맡기진 않는다. 왕좌를 지킨다는 거다.
“그럼 넌?”
“후작의 권력이면 준기사 몇 명은 빼돌리고도 남지. 뱃속에 구렁이를 하도 키워서 히드라의 내장이라고 불린다니까, 그 사람.”
그 말에 앤드류가 눈짓을 했다.
보십시오,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 의미의 눈짓이다.
엔크리드는 대강 고개를 끄덕여 줬다.
후작이 쉬이 속내를 비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첫눈에 알아봤다.
그래서 그게 어쨌단 거냐.
달빛 야수란 놈이 검은 칼과 연관되어 있으며, 검은 칼의 수장을 찾아야 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작센의 원수라니까.’
잡아서 죽이든 살리든 고문하든 육포를 뜨든, 그건 작센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찾는 것 자체는 작정하고 나설 것이다.
부대원의 일이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부탁을 들은 것과 같았다.
달빛 야수를 잡아 족치는 이유 중 첫째가 그것이다.
두 번째가 피해를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세 번째쯤이 후작의 부탁이다.
상대가 히드라의 내장이든, 능구렁이의 생식기든 알 바 아니란 거다.
“그럼 내일까지 시간이 빈다는 거지?”
엔크리드가 물었다. 달이 떠야 대기라도 하는 거다.
갑자기 밤 중에 구름이라도 걷히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에이시아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단 거다.
“어.”
“그럼?”
“더 해 보자.”
말하는 에이시아도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엔크리드도 다시금 그녀의 검을 받아 보고 싶었다.
“너희들과도 붙어 보고 싶은데.”
거기에 에이시아의 불길은 더 크게 번졌다. 시나르가 본다면 당장 물을 끼얹고 싶을 정도로.
렘과 라그나가 그 열기에 반응했다.
“좋지.”
“얼마든지.”
둘 다 피하는 성격이 아니다.
“난 빼 주십시오.”
작센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같이 해.”
그사이, 둔바켈이 평소보다 톤이 낮은 목소리가 합류했다.
“좋아!”
에이시아는 호쾌하게 외치고 밖으로 나갔다.
곧바로 대련이란 거다.
다들 움직였다. 앤드류도 함께했다.
수련생 다섯은 한쪽에서 몸을 굴리다가도 이들의 대련이 시작되면 구경하기 바빴다.
맥까지 시간을 내서 봤다.
무려 준기사 간의 대련이다. 구경하지 못하면 손해다.
물론 본다고 당장 실력이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게 된다면 상상의 결과를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 그건 아주 큰 차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행운이란 소리였다.
엔크리드는 매사 진지했다.
에이시아는 전에 없이 신나서 대련하고 먹고 마시며 아예 저택 방 하나를 차지했다.
날이 흐려지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당분간 하늘에서 달빛은 보기 어려운 듯했다.
그 와중에 엔크리드는 배우고 또 배웠다.
“야, 준기사라고 다 같을까? 기사라고 다 같아? 용병은 같았니? 나우릴리아의 병사 등급제로 말해 볼까? 하급 병사라고 해서 하급끼리 전부 같았어?”
아니, 다르다. 하급, 중급 병사 중에서도 실력 차이는 여실히 존재한다. 상급 위로 올라갈수록 그 격차는 더 선명했다.
“그게 준기사쯤 되면 차이가 꽤 벌어지기도 하거든. 그리고 난 중간쯤이다.”
재능은 인정받았으나 실력으로는 중간.
“실제 준기사 중에서는 어설프고 고작 몇 합이지만, 기사와 겨룰 수 있는 사람도 있어.”
말하는 에이시아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리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몰랐다.”
너무 멀고 높기에 보이지 않았다.
오르고 나서야 그들의 차이가 보였다.
가령 앤드류가 보기에 에이시아나 엔크리드나 렘이나 라그나나 똑같은 괴물이지만.
대련 중에 에이시아는 렘이나 라그나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가끔 렘과 라그나가 붙으면 렘은 한 번도 라그나를 이기지 못했으며.
엔크리드는.
“환검을 깨기 위해 정검을 고집하는 게 맞을까?”
에이시아에게 번번이 깨졌다.
엔크리드는 대련으로 그녀를 이기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검.’
그녀가 가진 기술이 무엇인지는 안다. 어떤 방식인지도 궁리와 복기를 통해 깨달았다.
환상을 심고 상대의 시야를 잠근다. 거리감을 어지럽힌다. 거기에 빠름을 담는다.
아니, 빠름만 담지는 않았다. 전에는 그걸 노리고 쳤다가 유검에 당했다.
환검 안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검이 숨었다.
그 자체가 기만이었다.
환검을 제대로 익히고 무기로 삼은 모습이었다.
엔크리드는 그걸 보면 웃었다. 어려울수록 더 의욕이 생긴다. 그건 엔크리드란 인간의 핵심 요소였다.
비는 나흘 동안 내렸다.
궁리, 복기.
대련, 단련.
그렇게 나흘이 지났을 때, 날이 화창하게 갰다.
진흙탕에서 뒹굴며 대련하고 씻고 수다를 떨고.
달빛 야수를 잡는 법을 상의하는 사이, 에이시아는 어느새 모두와 친해졌다.
“이야, 마법사? 신기하네.”
무려 에스터와도 불편한 사이가 되지 않았으며.
“이거 네 말이야? 눈이 왜 이래? 뭐야, 너 내 말 알아듣니?”
짝눈이와도 인사를 텄다.
붙임성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 이게 그녀의 특기가 아닌가 싶었다.
엔크리드는 간간이 그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평민 출신이야, 뻔한 이야기지. 어릴 때 우연히 검을 잡았고. 재능을 깨닫고.”
“나 기사가 되는 거 말고 바라는 게 하나 더 있다.”
“누구한테 말할 내용은 아니고. 별 얘기를 다 하네. 너 좀 이상하다. 사람 마음을 방심하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그렇게 나흘째, 해가 떨어지기 직전의 늦은 오후가 됐을 때다.
“보름달이 뜰 겁니다.”
작센이 말했다. 노을이 지기 전 하늘이다. 연무장 가운데서 엔크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높은 하늘이 보였다.
작센의 말이 맞았다. 해가 지기도 전이지만, 어렴풋이 달의 모습이 보였다.
둥근 보름달의 형태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