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367)
367. 단단한 돌은 머리도 좋다.
달빛이 도시를 밝게 비췄다.
즉, 곧 달빛 야수가 나타날 수 있음에도 엔크리드는 뛰지 않았다.
타박타박 소리를 내며 적당한 속도로 걸을 뿐이었다.
걸으며 가끔 주변을 살피고 있자니, 장대 램프에 불을 밝히던 주민 몇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어디 가쇼?”
주민의 눈이 엔크리드의 뒤를 힐끗 보고는 물었다.
“밤 산책.”
태연한 대답.
“위험하다니까.”
익숙한 응답이 오갔다.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건지, 에이시아의 눈이 둘 사이를 오갔다.
엔크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속삭였다.
“과일 장수다. 요즘 딸의 결혼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군. 얼굴은 반반한데 여러 여자에게 손을 대는 놈팽이를 좋아한다더라고.”
“……그런 건 어떻게 알았는데?”
“얘기하다 보니 나온 말이지.”
거리낌 없이 구는 건 에이시아 자신의 특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는 못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며 엔크리드가 입을 열었다.
“작센.”
“소란이 일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에이시아가 작센이란 남자를 힐끔 봤다.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남자다. 감은 듯한 눈, 단정한 입매, 외모만 봐도 여자 여럿 울릴 터.
에이시아는 저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얼추 알았다.
‘감각이 남달라.’
사흘 동안 먹고 자고 마시고 싸우고 대련만 했다.
에이시아에게도 농밀한 재미를 가져다준 시간이다.
루아가르네가 그랬던가.
엔크리드란 남자 주변에는 괴물이 득실거린다고.
프록의 눈으로 본 것이니 맞는 말일 거다. 그래서 알긴 했으나 직접 경험해 보니, 그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다들 괴물이었다.
작센의 싸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계산.’
나서지 않겠다던 작센도 결국 검을 몇 번 잡았다. 처음 엔크리드와 겨룰 때처럼 목숨 반 개쯤 건 대련은 아니지만, 겨루긴 했다.
검을 나눴기에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았다.
그는 동작을 보고 계산하고 예측하며 싸운다. 모든 것을 제 머리 안에 넣고 다음을 본다.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것, 예민한 감각이다.
보고 듣는 수준이 남달랐다.
준기사가 된다는 건 오감 또한 단련한다는 거다.
기사로 향하는 길에 어디 만만한 게 있던가.
에이시아 또한 기사단원이기에 그런 훈련도 병행했다.
그런데도 작센의 감각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한 걸음 먼저 움직이고 싶다면 상대의 걸음이 어찌 움직일지를 먼저 알아야지.’
스승이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작센이란 남자가 그렇게 했다.
자신의 검을 예측하고 먼저 움직였다.
자신의 특기인 ‘검 끝 겨누기’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다.
기술을 시작하기 전에 어김없이 검이 날아왔다.
정확히 자세를 흩트리게 하는 궤도로.
또는 검면을 때려 방향을 틀어지게 하거나.
‘재주가 남달라.’
물론 제대로 붙으면 이기는 건 자신일 것이다.
보고 듣고 예측하는 건 뛰어나지만, 정작 한 자루 장검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대단하지 않다고 해서 장검의 살상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해볼 만해.’
에이시아는 그렇게 판단했다.
작센이 계산이라면.
라그나는 본능 덩어리 같았다.
문제라면, 이 본능 덩어리 괴물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곧 정답이고 맞는 길이 되곤 했다는 거다.
‘이 새끼.’
자신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고 과거를 돌아보게 만든 새끼의 검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재능, 오롯이 재능으로 뭉쳐진 괴물이다.
계산하는 괴물, 재능으로 뭉쳐진 괴물이다.
에이시아는 라그나를 상대론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다.
“이건 뭔데.”
“빠르고 무거운 검.”
대뜸 물었더니 답이 돌아왔다.
빠르고 무거운 검이란다.
지랄도 풍년이지.
말은 쉽다. 말한 대로 되게 만드는 건 재능의 영역이고.
에이시아로서는 넘볼 수 없다. 그러니 질투가 날 법도 했지만, 그런 질투 따위에 잡아먹혔다면 지금 수준까지 이르지도 못했을 거다.
“남이 가진 빵이 더 커 보이나? 너보다 잘난 기술을 가진 새끼는 많다. 널렸어.”
스승의 가르침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만큼 이번 대련이 에이시아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다는 거다.
‘내 것도 뛰어나.’
상대의 것이 좋아 보인다지만, 그걸 자신의 것으로 꺾으면 된다.
재능을 탓하고 한계를 직시하고 물러서기엔 에이시아 자신이 가진 것도 적지 않다.
‘마음이 무너지면 의지가 무너지고, 의지가 무너지면 검 또한 무너지니.’
주문처럼 되새김으로써 질투를 자극제로 남겨 둔다. 그게 에이시아의 발전 비법이었다.
그 상태로 렘을 바라보니, 이건 뭐랄까.
‘미친 새끼인가, 미친 천재인가.’
둘 다다.
작센이 계산이고 라그나가 본능으로 무장한 재능 덩어리라면.
렘은.
“어때? 못 막겠지?”
재미다. 재미를 위해 사는 새끼다. 기술의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는 게 태반이다.
그 외 자신이 가진 걸 보여 줄 때도 비슷했다.
변칙적이며 과격하다.
자잘한 상처 따위는 무시하고 들이친다.
라그나 또한 즉흥적인 게 많지만, 그쪽과는 궤가 달랐다.
오롯이 재미다.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 싸운다.
이거 가능케 하는 것도 당연히 재능이다.
렘은 거기에 자신의 경험까지 덧붙였다.
말도 안 되는 동작을 말이 되게 만드는 것, 재미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야만인, 그게 렘이었다.
“어때?”
그중 제일은 자신의 검 끝 겨누기를 파훼하며 보인 기술이다.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도끼날 겨누기? 도끼날 가리기?
그는 자신의 검 끝을 도끼날로 가렸다.
그것으로 검 끝이 향하는 기세를 죽였다. 없앴다. 과감하며 특이한 수다. 그 상태로 거리를 좁힐 때는 뭐랄까.
‘무서웠지.’
과격한 놈보다 미친놈이 더 무서운 법이다. 미친 야만인은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서라면 제 몸에 꽂히는 칼날까지 무난히 받아 낼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렘이란 놈이 제일 신기할까?
아니지.
엔크리드가 남았다.
‘신기하고 또 신기하지.’
독특하고 또 독특하다.
에이시아는 엔크리드를 보며 독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성을 들여 즈려밟고 뭉치게 해서 만든 돌덩이 같아.’
기초가 탄탄함을 넘어 단단하다. 그렇다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초를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해서 몸에 완벽하게 붙인 듯한 그런 검술이다.
뭐랄까, 마치 시작을 수십,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서 절대 깨지지 않는 질그릇을 만든 것 같았다.
그게 무척 신기했다.
보통이라면 자신의 특기를 살린다. 기초를 기반으로 발전시킨다.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검을 갈고닦는다. 체술을 익히고 기술을 늘리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거다.
‘재능을 기반으로.’
그런데 엔크리드는 그 반대다.
하나하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못 넘어간다. 재능으로 넘어온 길이 아니다.
기초를 하나하나 되새기고 파헤치며 억지로 뚫고 나온 듯한 그런 검이다.
한계에 부딪히고 또 부딪혔는데도 끝내 넘고 뚫고 나아간 듯한 그런 인간.
그렇게 보였다.
한계는 인간을 좀먹는다. 의지를 삭힌다.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며 절망을 선물한다.
‘그 모든 걸 넘어섰다?’
아니겠지, 자신의 착각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지금 수준까지 올라왔을까.
그게 못내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무슨 짓을 해도 나아가겠다는 지독한 향상심이 그 기반이겠지.’
보기만 해도 지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죽기 직전에도 웃게 만드는 지독한 광기.
자신과 대련하면서도 몸을 단련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둔바켈이란 수인을 시켜서 돌덩이 같은 걸 옆구리로 받아 내는 걸 봤을 때는 혀를 내둘렀다.
기사단 훈련에도 없는 것들이다.
수양의 의미로 사제가 손바닥으로 돌을 깨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 났다.
단련할 때마다 조용한 광기, 그런 게 보였다.
그 외 수인도 실력이나 재능이 범상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특출난 걸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궁금하긴 했다.
어디서 하나같이 이런 이들만 모았을까 싶은 그런 것.
그 시작이 지금 왕궁에선 눈치만 보며 줄을 타는 전대 보더 가드 대대장이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모아 놓은 거라는 걸 알았다면, 에이시아도 황당함을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신기한 이들이라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터다.
그리 제 생각을 정리하며 걷다 보니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은 곳에 다다랐다.
“여기서 흩어지자.”
바로 옆에서 엔크리드가 말했다.
곳곳에 어둠이 자리 잡은 곳.
빈민가와 인접한 구역이었다. 범죄 길드가 똬리를 튼 곳이기도 했다.
“여기?”
에이시아가 되물었다.
“여기.”
엔크리드가 답했다.
“왜?”
“가면서 설명하지.”
“에이시아만 나랑 같이 가고. 라그나는 둔바켈이랑. 작센이랑 렘은 흩어져.”
저 둘은 붙여 두면 문제가 생긴다. 며칠 보지 않았지만, 에이시아도 아는 사실이다.
라그나는 저택 주변에서 산책만 시켜도 길을 잃을 만한 놈이고.
“놓치는 새끼는 병신 새끼, 쪼다 새끼, 멍청한 새끼.”
렘이 이상한 음률에 더 이상한 가사를 붙이며 흥얼거리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엔크리드가 먼저 발을 떼고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담벼락 하나를 잡고 위로 올라갔다.
나무와 짚을 엮어 만든 허술한 지붕도 있지만, 몇몇은 단단한 회반죽을 발라 놓은 것도 있었다.
성채 내부 생활이 발달함에 고급 주택가가 아니라면 주거 지역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 덕에 지붕도 연이어 붙어 있었기에, 균형 감각만 뛰어나다면 지붕 위도 뛰어다닐 만했다.
그중 몇 개 건물은 다른 것보다 높아서 떨어지면 뼈 몇 개는 부러질 법도 했으나, 엔크리드가 거기까지는 올라가지도 않았다.
적당히 단단한 지붕 위에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여긴 왜?”
에이시아가 재차 물었다. 그녀로서는 궁금할 따름이다.
이 일이 그녀, 그러니까 기사단의 의무에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그녀 자신이 정한 서약 안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은 일이었다.
그러니 실패보단 성공하는 게 맞다. 놔두면 죽는 사람이 더 늘 테니,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처리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물었다. 자신도 알아야 대응할 것이다.
“습성을 파악하면 상대를 알기 쉽지.”
엔크리드가 말했다. 그가 이어 설명하고, 에이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달이 뜨는 밤에만 나타난다는 건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광증과 같다는 거다.”
맞는 말이었다. 광증과 같으니 조절하는 게 불가하고, 조절이 어려우니 흔적이 남게 됐다.
“자신이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시끄럽게 굴지도 않았을 거고.”
이것도 동일한 의미로 맞는 말이었다.
만약에 에이시아 자신이 몰래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목표물을 정하고 그 목표의 동선부터 딸 것이다.
이후 으슥한 곳에서 슥삭이다.
암살까지 가진 않아도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
기사단 내에서는 암살술에 관한 훈련도 받지만, 그걸 쓸 필요도 없는 일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이제까지 당한 사람은 사제 하나를 제하면.
‘평민.’
빈민가에서 한 번, 주거 지역에서 세 번.
이것도 엔크리드가 말해 준 거다. 언제 했는지 조사한 흔적이 여실했다.
“며칠 내내 내린 비로 광증은 심해졌을 거고. 달빛에 영향을 받는다면 보름달은 대상에게 강력한 욕구와 욕망을 불러일으킬 거다.”
맞지, 그럴 수도 있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수는 없어도 가능성은 있다.
“내가 만약 광증에 걸렸고 인지하고 있다면, 내 주거 구역에서 가장 먼 곳에서 욕구를 풀려고 할 거다.”
그 말은 이미 범인의 위치를 어느 정도 특정했다는 거다.
‘빈민가 주거 구역에서 가장 먼 곳?’
에이시아의 시선이 자연스레 달빛 너머, 도시의 중심으로 향했다.
내성 성벽이 따로 있는 곳, 왕궁 근처다.
궁 내부에 머물 수 없는 귀족 무리가 저 근처에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욕구는 소란을 불러올 테니까, 의심을 지워야 할 것이고.”
설명이 끝났다.
에이시아는 납득했고 수긍했다.
듣고 있으니 소름이 돋았다.
“언제 이런 걸 다?”
“그동안 몇 번 돌아다녔잖아. 그때 들은 걸 토대로 생각했지.”
밟히고 또 밟혀 단단해진 돌이 왜 머리도 좋아?
에이시아의 눈에는 그런 의문과 놀람이 담겼다.
엔크리드는 무난히 시선을 넘겼다.
시장을 몇 번 오갔고 그들에게 들은 정보를 취합했을 뿐이다.
에이시아가 모른 이유?
‘관심이 없으니까.’
애초에 이 일에 제대로 나섰다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평민과 희생자가 몇 명인지 따위는 고민하지 않았다.
스콰이어가 당했기에 준기사가 나설 명분이 됐을 뿐.
지금 왕궁은 내전으로도 정신이 없었기에, 달빛 야수 따윈 부가적인 문제일 터였다.
수도에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게 처음도 아니니까.
암살 연합이 대낮에도 돌아다니는 판이니, 치안이 개판이라는 건 진즉에 알았다.
엔크리드는 당연히 누구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으리라 판단했기에 직접 이것저것 알아봤다.
첫 희생자부터 이후에 늘어난 희생자까지.
자세한 청취까지 필요하지도 않았다. 괴담에 가까운 소문이 퍼지고 또 퍼져서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였다.
과일 장수에게 몇 마디.
대장간에서 몇 마디.
도박장 가드에게서 몇 마디.
나무꾼, 목재상, 유리 상인, 음유시인, 도서관 사서, 술집 여급, 귀족의 호위.
모두에게 들은 말을 취합하고 정리하며 내린 결론이다.
특히 수도사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옷을 입고 있었소. 꽤 값비싸 보이는 코트였지. 그리고 그 마물은 달빛을 등진 채로 날 무시하고 사제를 덮쳤지.”
살육의 충동에 휩싸이면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병행한다는 것.
그럼 상대가 나올 위치를 예측하는 것도 쉽다.
마물이나 마수는 본능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아니다. 이성을 앞세운다. 즉, 상대가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그 생각의 기반을 엿보면 된다.
‘신성은 위협적이니 먼저 처리하고, 이후에는 걸릴 일이 없도록 자신의 구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란을 피우고.’
광증으로 마물이 된 인간이 비싼 코트를 훔쳐서 입진 않았을 테니, 본래 입었던 것일 테고.
이후에는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간 걸 보니 옷을 전부 벗고 있다가 변했겠지.
작센의 추측으로는 라이칸스로프.
엔크리드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오오오오.
어디선가 밤 새의 울음을 닮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엔크리드는 소리가 들린 곳이 아까 라그나가 향한 쪽과 가깝다고 봤다.
“가자.”
엔크리드는 그제야 뛰었고, 에이시아도 그 뒤를 쫓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