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384)
384. 살았다
“반나절이다. 처음부터 내 계획은 반나절만 벌면 되는 거였어.”
싸우기 직전 크랑은 말했다. 매튜도 처음 듣는 거였다.
매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깥을 살폈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다. 노을이 지기도 전이었다.
‘저녁까지 버텨야 하는 건가.’
쉽지 않을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훙.
손목을 약간 꺾음으로 채찍 끝이 살아 있는 것처럼 춤을 추듯 앞으로 쭉 나아간다.
상대는 그걸 보지도 않고 팔꿈치로 채찍 끝이 아니라 가죽 부근을 때렸다.
툭 쳤을 뿐인데도 채찍에 전해진 힘이 사라지며 흐트러지고 늘어진다. 힘이 전달되는 부분을 정확히 끊어 냈기 때문이었다.
매튜는 맥이 탁 끊기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금니를 악물고 힘을 줬다.
팔을 크게 휘둘러 다시금 채찍 끝에 달린 추를 앞으로 던지듯 쏘아 냈다.
훙.
허공을 가르는 채찍이다.
그사이 엔크리드가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밑으로, 수직으로 꽂히는 벼락이었다.
그 안에 담긴 힘이 매튜에게도 느껴졌다.
‘막으면 틈이 생긴다.’
아무리 준기사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상대는 엔크리드가 휘두른 검의 리캇소 바로 윗부분을 때리며 밀쳤다.
힘 대 힘으로 싸운다기보다는 요령으로 상대 힘을 옆으로 튕겨내는 거였다.
엔크리드의 몸이 한순간 한쪽으로 쏠린다. 전력을 다했기에 순간적으로 균형이 틀어졌다.
하지만 그는 틀어진 채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불티를 뽑아 찔렀다.
변칙적인 한 수이자, 에이시아를 무너뜨리고 오며 단련된 기술이다.
순간의 윌로 불리는 찌르기였다.
훙.
상대는 그걸 어린아이가 던진 돌멩이를 피하듯 허리를 틀어 피했다.
그 피하는 태도가 하도 태연해서 당연해 보였다.
엔크리드는 이후 불티를 다시 검집에 넣곤 실버를 양손으로 쥔 뒤에 휘두르고 찌르고 베고 발을 옮기며 거리를 몇 번이고 바꾸기도 했다.
매튜도 맥이 탁탁 끊기면서도 몇 번이고 채찍을 휘둘렀고.
삼지창을 든 동료 또한 틈틈이 창을 내질렀다.
아무리 부상이 있다곤 해도 그녀 또한 만만찮은 실력일 텐데.
상대는 삼지창 따위는 제대로 피하지도 않았다.
귀찮은 파리를 쫓듯이 몸에 닿을 때쯤 틀어내 흘리고, 닿기 전에 검으로 쳐 내서 궤도를 틀어 버릴 뿐이다.
자신의 채찍도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고.
그나마 엔크리드가 버티는 중이었다. 그러하기에 매튜는 절망했다.
‘이런 상대를 저녁까지?’
말도 안 된다.
엔크리드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의 볼 위로 검이 스쳤다.
픽 하고 스친 상처에서 핏방울이 나와 허공에 흩날렸다. 엔크리드는 검이 스치든 말든 옆으로 몸을 날리며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훙.
공기 자체가 갈라질 것 같은 참격인데도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날 뿐이다. 그가 있던 자리로 엔크리드의 검이 지나갔다. 바닥을 밟는 소리조차 없이 피한다. 그걸 보고 있자니, 허탈감이 가슴을 채웠다.
벽이다. 다른 존재다. 재능이 다르다. 태생조차 다른 거다.
저런 걸 상대로 버티라니.
‘말도 안 돼.’
절망과 괴로움이 가슴을 채운다. 채찍을 휘두르는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채찍을 휘두르는데 절벽을 탁탁 치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론 백 년을 쳐도 절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눈앞을 가로막은 절벽을 채찍으로 후려쳐 언제 없앨 수 있을까.
그사이에 삼지창을 든 동료가 치명상을 입었다.
숨은 쉬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섭게 쇄도하고 휘두르고 덤비는 엔크리드가 있음에도 그렇게 됐다.
상대가 뒤로 단검 한 자루를 던졌는데, 호흡의 틈을 헤집고 날아오는 단검은 그대로 동료의 목덜미를 크게 헤집고 지나갔다. 단검을 던지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운 솜씨다.
피가 솟구치고 꿀렁꿀렁 흐른다. 동료가 제 목을 손으로 감싸고, 지켜보던 크랑이 다가와선 천으로 꽁꽁 싸매 주었다.
그가 하는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버텨라.”
뒤를 돌아볼 틈 따윈 없다. 다만 아까부터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이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
크랑을 살린다면 의미가 있다. 그걸 위해 버틴다면 자신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조차 없다.
여기서 더는 못 막을 것이고 크랑은 죽는다. 끝까지 도망가게 둬야 했나?
아니, 그러면 마음부터 죽는 사람이 된다고 크랑이, 자신의 주군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 마음 위로 까만 물감이 칠해질 때다.
“핫!”
꽝!
기합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기합이나 그 뒤에 터진 폭발음 둘 다 고막을 학대할 만큼 큰 소리였다.
그만한 기세를 담은 기합이고, 그만한 충격이 담긴 부딪침이 있었다.
매튜는 옆구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검을 맞대고 있는 자를 보았다.
검은 머리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큰 등이 보인다. 자신과 달리 기세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작자가 보인다.
“잡았다.”
그가 말했다.
“잡혀 준 거다.”
상대가 답했다.
꼬불꼬불한 갈색 머리칼이 몇 가닥씩 뭉쳐 이마 위로 흘러내린 적이 뱉는 말이다.
매튜는 그제야 적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더 해보자.”
그리고 엔크리드가 말한다. 그 목소리에 어린 건 무엇인가.
어느새 둘의 위치가 변했다. 엔크리드가 끊임없이 두드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다.
그 덕에 매튜의 눈에는 엔크리드의 얼굴이 보였고, 그걸 보자 매튜는 가슴이 찡하니 울렸다. 발끝부터 시작해서 전신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매튜는 안다.
절대 저녁까지 버틸 수 없다는 걸.
엔크리드가 새로 나타난 상대를 이기는 건 너무도 요원한 일이라는 것도.
그 증거로 엔크리드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고 볼도 긁혔으며 왼쪽 팔뚝 보호대는 언제 썰렸는지 너덜거렸다.
그런데도.
‘웃어.’
엔크리드는 웃었다. 검을 교환하고 번번이 맥이 끊기면서도 그렇게 웃었다.
그걸 보는 순간, 마음을 검게 칠한 절망이란 물감이 흐려졌다.
어디선가 햇살이 비췄고 하얀빛이 검은 물감 사이로 가로질렀다.
매튜의 팔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채찍을 들어 휘둘렀다.
몇 번의 공방이 더 오갔다.
그사이 매튜는 날아온 단검을 세 번 피했다.
세 번 다 운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피하지 못했을 거다. 매튜는 인정했다.
그 세 자루 단검조차 엔크리드가 방해했기에 이 정도 위력이다.
혼자였다면 막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피하지 못한 네 번째 단검은 허벅지에 꽂혔다.
‘당연히 단번에 목을 노릴 줄 알았더니.’
자신보다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적을 상대하면서 기동력부터 봉쇄한다.
‘아니, 그 또한 엔크리드 때문이겠지.’
엔크리드가 있기에 단검이 목에 꽂히지 않고 다리로 끝났다.
매튜는 뒤로 물러났다. 이제는 방해만 될 판이었다.
뒤에 있던 크랑이 제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부축했다.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지겠지?”
“버티는 겁니다.”
“그런데 쟤 왜 웃냐?”
“……모릅니다.”
정작 말하는 크랑의 눈도 반짝였다. 매튜는 엔크리드가 보여 준 무언가로 간신히 버텨 냈다.
그럼에도 아직 해가 떨어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긴 했다.
“조력은 언제입니까?”
매튜가 물었다. 크랑을 지키는 게 그의 의무다. 하지만 그 전에, 그 위로, 또는 다른 형태의 소원이 절로 생겼다.
‘여기서 저자를 죽게 둬선 안 된다.’
엔크리드를 살려야 한다. 매튜는 그걸 위해 필요하다면 제 몸을 던질 각오도 생겼다.
이유? 모른다. 그저 고양감이 전신을 채울 뿐이다.
여기서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작자도 눈치가 있다면 조금 빨리 오겠지.”
크랑은 말하고 의자를 하나 끌어와 매튜를 앉혔다. 그러곤 허벅지 상처를 살폈다.
크랑 또한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상을 돌보다니.
자연히 시선이 돌아갔다. 목덜미에 치명상을 입은 동료를 향해서다.
“죽진 않는다.”
크랑이 말했다. 이 시간만 잘 버티면 그렇게 되겠지.
둘 다 몸을 돌리고 한쪽을 바라봤다.
쉬이 끼어들기 힘든 싸움이 그곳에 있었다.
한쪽은 감정 따위가 없는 인형처럼 검을 내치며 맥을 끊었고.
다른 한쪽은 질주하는 야생마 같았다. 폭발했고 내달렸고 힘을 아끼지 않았다.
* * *
맥이 끊긴다. 무슨 짓을 해도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
에이시아보다 윗줄 정도가 아니라 확실히 렘 급이었다.
아니, 그보다 못하나? 모른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아니었다.
종으로 베고 횡으로 베고 찌르고 휘어서 치고 그 안에 발렌 식 용병검을 섞었다.
속임숨이다. 숨이 차는 척해서 끌어들이니 상대는 서슴없이 거리를 좁혔다.
그걸 노리고 불티를 찌른다.
순간의 윌, 에이시아를 통해 단련된 기술의 극한이다.
그 찌르기는 번개와 같았다. 찌르는 순식간에 목표점까지 도달했다.
첫 번째 오늘에서 찌르기 병사에게 배운 것과 지금까지 빠름에 관해 배운 모든 것을 섞었다.
그럼에도 막힌다. 그것도 허무할 정도로 단순한 동작에 막혔다.
팅. 티디딩.
숏소드 한 자루를 장난치듯 들어서 옆면을 틀어내자, 불티 끝이 검면을 타고 흘렀다.
환상적인 섬세함으로 보이는 유검의 일종이었다.
엔크리드는 불티를 허공에서 놓고 실버를 쥔 채 앞으로 뛰었다. 몸을 화살 삼아 내달렸다.
상대가 공간을 좁히는 것만큼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공간이 좁혀진다. 검을 놓고 박투의 거리로 들어선 거다.
하지만 어느새 상대는 물러났다. 훅 하고 사라지듯 뒤로 뛰었다.
맥이 딱 끊겼다.
무시했다.
엔크리드는 발을 뒤로 뻗어 떨어지는 불티의 칼날 중간쯤을 뒤꿈치로 차올렸다.
퉁- 하고 검이 머리 위로 나는 걸 공중에서 잡아챈 뒤, 떨어지기 전의 실버는 손을 뻗어 허공에서 낚아챘다.
그걸 지켜보던 상대가 어느새 다가와선 검을 찔러 넣었다.
틈을 쑤시는 데 특화된 놈이었다. 맥을 끊고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만 싸운다.
그럼에도 버텼다.
보통이라면 이런 방식의 싸움에 질릴 것이다. 불합리함을 말할 것이다. 괴로움을 토로할 것이다.
엔크리드는 그러지 않았다.
‘처음 본다.’
새롭다. 색다르다.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희열이고 재미다.
“널 죽이고 에이시아를 죽여야겠다.”
남자는 오늘 저녁에 으깬 감자와 구운 오리고기를 먹겠다는 투로 말했다.
평이한 어조다. 사실의 나열이다. 저자가 자신을 죽이면 오늘이 반복될 테지만, 에이시아만 죽는다면.
그럼에도 오늘이 반복될까.
“더 잃으면서 나갈 생각은 없다.”
아니. 크랑의 말에도 의지가 담겼음에.
오늘을 반복한 자신에게, 걱정이 지금을 허무하게 날려야 할 이유가 될까?
‘몰라.’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 하나만.
그거면 충분한 순간이었다.
“후하!”
기쁨과 희열을 섞은 기합과 함께다.
그리 즐기고 즐기며 검과 자신, 상대와 검, 공격과 방어, 검술과 체술만 머릿속에 가득하고 그 안에서 기쁨이 차오르다 못해 넘쳐흐르는 순간이다.
엔크리드는 반복된 오늘에서 응축된 경험이 하나로 합치되는 걸 느꼈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마치 신이 자신의 팔다리를 붙들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상대의 움직임이 미리 보였다.
상대는 검을 머리 오른쪽 위로 들어서 찌르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막 두 손으로 검 그립을 쥐고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그걸 보며 엔크리드의 왼발이 반 발짝 앞으로 나간다. 앞으로 밀어 넣어 공간을 점유했다.
엔크리드는 허리를 중심으로 몸을 틀며 검을 내쳤다.
머리가 아닌 팔뚝을 노리며 내려치는 검이다.
이제까지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나 처음으로 타이밍을 뺏었다.
반 박자 빠른 검격이었다.
조금 전까지와 비교하자면 평범한 속도와 평범한 궤적이라 해도 좋았다. 그럼에도 검이 닿았다.
팍!
상대의 팔뚝 보호대를 갈랐다. 피가 튀었다. 상대는 순간적으로 왼팔을 내밀어 막았다. 그러며 뒤로 물러났다.
“……흠.”
상대는 놀랐으나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팔이 베였네, 그렇군. 이런 반응이다.
그러곤 다시금 싸움을 이어 나갔다.
엔크리드는 고양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상대는 무미건조함의 극치였다. 간이 되지 않은 닭가슴살이었다.
퍽퍽하고 건조한 무감정을 무기로 삼았다.
희열도 없고 호승심 따위도 없다.
그래서 어쩌란 건가.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다.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한 번 된다면 두 번도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되진 않았다.
반 박자 빠른 검격은 한 번만 성공했다.
싸움에서 박자라는 건 결국 상대적인 거다.
지금 상대의 박자 사이로 끼어드는 건 한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기에 가능했다.
그게 안 돼? 그것도 상관없다.
엔크리드는 앞으로 달리는 척하다가 땅이 아닌 벽을 밟았다.
에이시아의 가벼운 몸놀림을 흉내 냈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검을 휘둘렀다. 대각선으로 훅 사라지듯 달려드는 검이다.
조금 전보다 딱 반 배 빠른 검이었다.
예상했으나 막기 어려운 틈에 칼날이 머리를 비집고 들이밀었다.
엔크리드는 뻗던 검을 급히 당겨 막았다. 이건 못 피하면 뒈진다.
뻑!
막았으나 이젠 오른쪽 손목이 완전히 뒤틀렸다.
비틀어 흘리려 했지만 그 또한 실패했다. 검에 실린 힘에 뒤로 몸이 붕 날았다.
쿵 하고 등부터 떨어진 엔크리드는 뒤로 구르며 일어났다.
“웩.”
그리고 입에서 피를 토했다. 조금 전 일격을 막으며 내장이 상한 탓이다.
윌이 담긴 참격이었다.
엔크리드는 몰랐지만, 정확히는 윌로써 막는 사람의 몸에 충격을 전하는 형태의 기술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한계를 넘어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엔크리드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그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죽이려면 나부터다. 대신 뒤는 살려 주는 거고. 내 목숨이 그 정도 값은 되는 것 같은데.”
크랑이었다.
엔크리드는 일어나려다가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걸 알았다.
“주군!”
매튜가 외친다. 엔크리드는 끝내 일어나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상대는 크랑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을 터다.
“나랑 마저 해야지?”
엔크리드는 다시금 죽음을 각오했다. 오늘의 반복 또한 각오했다.
이 또한 벽인가?
그렇다면 넘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벽이 아니었다. 적어도 뭔가 뒤틀리고 변했다. 똑같은 오늘이 아닌 건 확실했다.
상대는 무심히 검을 들었다. 크랑이고 엔크리드고 그 사이에 끼어들 매튜고 간에, 베고 또 베는 동작을 반복할 참이었다.
딱 그 순간 섬뜩한 육감이 발동했다.
뒤쪽이었다.
뭔가가 훅 날아왔다.
꽝!
폭음이 들렸다. 부서진 창문을 넘어 창틀 자체를 부수며 들어온 덩어리가 있었다.
그는 단숨에 공간을 좁히고 엔크리드의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곤 곧바로 맥 끊는 준기사를 향해 뭔가를 내리쳤다.
엔크리드의 가물가물한 시야에 나타난 사람이 손에 쥔 게 보였다.
일반적인 검보다 길고 두꺼운 칼날이다.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했기에 창가로 주황빛이 들어왔고, 그걸 몸으로 깨부순 작자의 등도 눈에 들어왔다.
엔크리드는 들어온 이가 누군지 알았고 말했다.
“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