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443)
443. 그럼 지금 갈까?
엔크리드는 인지의 밖에서 들어오는 칼날을 마주한 경험이 있었다.
작센이 번번이 그래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인지의 밖이다. 얼마나 빠른지, 오아라의 말이 뒤늦게 들린 것 같았다.
“배.”
외마디 단어가 귀에 닿았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칼날이 배를 그었다.
한 점의 집중과 회피의 감이 발동했다.
엔크리드는 뒤꿈치에 힘을 줘 무게 중심을 옮겼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 듯이 뒤로 움직이며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오아라의 얼굴이 보였다.
옅은 미소, 아까보다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무릎.”
엔크리드는 제 배 위를 가르는 칼날이 환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의지로 부린 마법과도 같았다.
아니, 이것 또한 경험한 바 있었다.
시나르가 보여 준 정기로 만든 검과 비슷했다.
이번에는 오롯이 기세와 암시로만 한 거지만.
오아라의 말과 동시였다.
무릎을 노린 칼날이 위에서 밑으로 수직으로 꽂혔다.
엔크리드는 피하는 대신 사선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채찍처럼 휘어진 검이 오아라가 있던 자리를 그었다.
오아라는 엔크리드가 휘두른 칼날을 피하면서도 제 손에 든 검의 궤적을 바꾸지 않았다.
수직 찌르기 그대로다. 오른손은 그대로 두고 몸만 틀어 피한 셈이었다.
툭.
칼끝이 무릎을 찍었다.
상처는 없었다. 딱 옷깃에 자국만 남겼을 뿐.
“오늘은 여기까지!”
오아라가 외치듯 말했다.
“후우, 후우.”
엔크리드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오아라는 착- 하고 제 검을 수납하곤 가까이 다가왔다. 엔크리드를 빤히 보던 그녀가 눈웃음을 보이며 톡톡 볼을 쳤다.
“너무 쉬운 기술에 당한 것 같아?”
엔크리드는 상대가 보여 준 게 고작 두 번의 검격뿐이라는 걸 알았다.
하나는 배를 때리는 듯한 칼질.
속임수로 쓴 하나다.
둘은 무릎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는 칼질.
두 번째에서 승부가 갈렸다.
엔크리드는 많은 걸 느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았다.
‘경험치가 달라.’
오아라는 능숙했다.
이제 막 기사의 위에 오른 게 아니라, 이미 이리 산 지 수년이 넘었다. 노련함이 엿보였다.
“나이가?”
엔크리드는 사우전드 브릭 방식의 질문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적응은 빨랐다.
농담을 섞은 질문이었다.
그 말에 오아라의 눈가가 웃음을 보인 채로 굳었다.
“넌 잘생겨서 봐줬다. 레이디의 나이를 물으면 머리통에 구멍 나서 죽는다는 말도 못 배운 거냐?”
엔크리드는 침묵했고, 오아라는 웃으며 지나쳤다.
“아, 배고프다.”
그녀가 휘적휘적 걸어서 떠나자 루아가르네가 다가왔다.
“무릎을 찔렸으니 기동성을 잃었을 거고. 끝까지 가지 않아도 졌을 거다.”
“알아.”
“두 가지 동작은 단순하지만, 간단한 이치를 담고 있다.”
루아가르네는 말하고 잠시 기다려 줬다. 엔크리드는 혼자 고민했고 답을 냈다.
“상대보다 빠르고 더 강하면 막을 수 없다.”
기사라는 이들은 그런 이들이었다.
더 나아가 생각하자면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제압할 자신이 있다는 거였을 거고.
화려함이 아닌 단순함, 단순하다고 해서 칼날에 담긴 살상력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부드럽게 친다고 해서 날붙이가 솜뭉치가 되진 않는다. 이미 자신도 깨달은 이치였다.
즉, 효율적인 칼질로 이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맞다.”
루아가르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졌다고 해서 좌절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만족하지도 않았지만.
엔크리드는 대강 씻은 뒤에 배를 채우곤 술집 주인을 찾았다.
“벌레는 없군.”
중간에 루아가르네가 음식 투정을 했다. 프록이 먹기에 편한 음식은 없어 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엔크리드는 술집 바에 앉은 주인을 보며 눈짓하자 그가 다가왔다.
주점은 한가했다. 금주령 때문이었다.
“사교도인지 사이비인지 하는 애들 위치 압니까?”
“그것보단 오아라 경한테 가서 금주령 좀 풀어달라고 해 주쇼. 굶어 죽게 생겼으니.”
생활의 대부분은 기여도로 해결하지만, 몇 가지는 아니었다. 당연히도 크로나가 오갔다.
상인이 와서 묵을 때도 크로나를 받았고 술이나 홍등가도 마찬가지였다.
술집 주인은 신세 한탄을 했고 엔크리드는 특별한 요리를 주문했다.
“잘 구운 유충 한 접시 부탁합니다.”
“……그런 걸 어디서 구하……는지는 내가 알아서 해야지 암.”
덜그럭.
주인이 말하던 중 주머니 하나가 바 테이블 위에서 주둥이를 벌리고 내장을 슬쩍 보였다. 은빛이었다. 술집 주인은 순발력이 좋았다.
“내일 점심에 주시면 됩니다.”
바 위에 올려 둔 은화 십여 개가 반짝거렸다. 술집 주인은 크로나를 챙기고 아는 대로 말했다.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에이시아도 대강 어디 쯤에 있으리라 말했지만, 그들은 유목민처럼 싸돌아다닌다고 했다.
근데 여기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그렇게 다니는 건가?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사이비 교도를 모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탈영병 조금, 마경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 조금.
그런 식으로 마음이 약해진 이들에게 다가가 그 틈바구니로 제 사상을 끼워 넣는 거다.
규모가 커지면 그때는 멀리 도망가서 떵떵거리며 살면 되는 거였다.
뭐, 그 새끼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처리해야 할 놈들이라는 게 중요한 거였지.
종일 도시를 돌아다니며 얻은 소득이 얼마 안 됐다.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야 할 겁니다.”
그나마 얻은 말 중 가장 쓸모 있는 게 이거였다. 밀리오가 해 준 말이었다.
그는 오아라와 엔크리드의 대련을 지켜보기도 했다.
“저도 대련 한판 해 주시죠.”
열의가 있는 친구였다. 엔크리드는 상대해 줬다.
우직하고 묵직한 망치를 무기로 썼는데 한 방에 적을 깨부수는 데는 적합하지만, 상대가 피하거나 막으면 다음 동작이 너무 느려졌다.
“이렇게 잡고 이렇게 꺾으면 어때?”
“아아, 아픕니다.”
엔크리드는 동작 사이에 쓸 만한 발재간 몇 개와 관절기 몇 개를 가르쳤다. 발라프식 무투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러면 크게 한 번 휘두르며 생기는 빈틈을 노린 상대의 방심을 이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 시간을 보내는 사이, 렘이 깨어났다.
늦은 오후에 눈을 뜬 렘이 말했다.
“그 무슨 사이비 같은 놈들? 하루거리에 있던데?”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단서였다. 숫돌을 구하러 갔다가 렘이 봤단다.
“……봤다고?”
“멀리 모여서 뭘 합디다. 도적 무리인 줄 알았는데 들어 보니 사이비 애들 같았수다.”
“거기가 어딘지는 알고?”
“내가 그 멍청한 칼잡이로 보이는 거요? 길도 못 찾고 방향도 못 잡는?”
렘은 고리눈을 뜨며 불쾌감을 표했다. 대뜸 도끼라도 뽑을 기세였다.
그걸 보며 엔크리드는 이게 굳이 미룰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이 할 일이었다.
탈영병을 잡고 콜로니도 처리하기 위해 지원군으로 온 것 아닌가.
‘사이비 교주가 된 탈영병.’
이 일대에 이름을 날렸다고 해도 사교도의 주교 수준은 절대 아닐 것이다.
잘해야 스콰이어 수준의 무력일까?
소수 정예, 그것도 자신과 렘, 둔바켈, 루아가르네라면 상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상한 주문을 쓴다지만, 직감적으로 그게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귀찮은 수작질에 불과할 것이다.
이 정도 전력이면 과잉 진압에 가깝다.
엔크리드는 현재 제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았다.
무엇보다 위험하면 잠시 뒤로 물러나면 되는 거 아닌가?
지킬 게 있는 게 아니라 기습에 가까운 임무였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찾기 어려워져서 골치 아파질 놈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온 말이었다.
“지금 갈까?”
답을 정해 놓고 던진 물음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때다. 태양은 인간의 편, 어둠은 마물의 편이란 말이 있다.
밤눈이 밝고 빛을 싫어하는 마물들에게 유리한 시간이란 거였다.
지금이 그랬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그딴 걸 신경 쓸 이들은 없었다.
“넷만 가?”
둔바켈이 물었다.
“여기 아는 사람 있냐?”
엔크리드가 되물었다. 데려갈 사람도 없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병사를 차출해서 갈까?
도움도 안 될 게 뻔했다.
그들은 그대로 도시 밖으로 나갔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나가신다고요?”
“안 되나?”
상대는 악마 살해자, 내전의 영웅이었다. 병사는 고개를 저었다.
병사는 엔크리드 일행이 잠시 산책을 나가는 거로 생각했다.
렘이란 야만도 어제 그리 잠시 나갔다가 오기도 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 쓸 음어를 가르쳐 줬다.
“아닙니다. 성문 앞에서 ‘망토는 역시 빨강이지’라고, 외쳐 주시면 됩니다.”
밤중에 아무나 성안으로 들일 순 없는 노릇이니까.
뒤에 올 근무자에게 이 얘기를 전하면 될 일이었다.
병사는 그렇게 했다. 뒤이어 온 근무자가 고개를 끄덕였고, 근무가 끝날 때까지 오지 않기에 뒷 근무자에게도 똑같이 상황을 인계했다.
“좀 늦네?”
“별일이야 있겠냐?”
보통 병사에게 준기사란 드높은 경지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길 가다가 마물 몇 마리 만났다고 문제가 될 사람들이 아니었다.
거기에 프록, 수인까지 함께였다.
동이 텄다.
아침 근무자가 새벽빛을 등지고 돌아오는 이들을 봤다.
엔크리드 일행이었다.
“문 열어 줘.”
피로 물든 갑옷 따위가 눈에 띄었다. 검은 피와 빨간 피가 섞였다.
“마물이라도 만난 겁니까?”
“비슷한 거.”
엔크리드는 말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 * *
막 성문을 나섰을 때, 엔크리드는 찾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찾는 게 어렵지, 처리는 쉽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방향은?”
“이쪽.”
렘이 그들을 이끌었다. 구름에 달이 가려져 주변이 어두웠지만, 지금 모인 이들에게는 어슴푸레한 달빛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 쫓는 법 배워 보시겠수?”
“지금?”
뜬금없는 렘의 물음에 엔크리드가 되물었다. 되물었다는 게 거절은 아니었다.
렘은 여기서 사이비 무리를 찾는 게 쉽다고 판단했다.
이유가 있었다.
렘의 눈이 수인에게 향했다. 둔바켈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황금색으로 빛났다.
예전부터 생각하는 거지만, 독특한 색의 눈이었다.
저 수인은 후각 또한 보통의 수인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렘은 그걸 알았다.
둔바켈은 렘의 눈길을 느끼자마자 곡도 위로 손을 올렸다.
“미친 수인아, 냄새 맡아. 대련 아니다.”
“이게 그 방법이라고?”
엔크리드가 중간에 물었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갈 이유라도 있수? 우리한테는 수인이 있고, 저건 지 몸에서 나는 냄새 빼고는 신통할 정도로 냄새를 잘 맡으니까.”
틀린 말이 없었다. 둔바켈조차도 그 말에 호응했다.
한쪽을 향해 코를 씰룩이더니 말했다.
“저쪽에서 냄새가 나는데.”
일행은 움직였고,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정말로 이동 천막 같은 걸 가진 놈들이 보였다.
“누구냐?”
막 앞에서 코를 파는 놈이 보였다.
엔크리드는 대답 대신 힘을 썼다. 발을 내밀고 검을 올려쳤다.
수직으로 솟은 칼날이 상대의 턱부터 이마까지 빨간 선을 만들었다.
푸드득.
피가 뿌려지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시신 하나.
“미친 새끼들인가.”
바로 옆에 있던 삐죽삐죽한 금발 놈이 놀란 어조로 말했다. 놈의 목소리가 떨렸다.
퍽.
놈의 얼굴로는 곡도의 칼날이 날아갔다.
그걸 빤히 보고 있으니.
“왜? 참아?”
둔바켈이 물었다.
“아니.”
엔크리드는 답하고, 보이는 대로 찌르고 벴다. 도망가는 놈들은 놔뒀다.
“악마의 하수인이 왔구나!”
교주란 놈이 보였다. 딱 봐도 어디서 도적질로 도가 튼 놈처럼 보였다. 엔크리드는 감각으로 놈을 바라봤다.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법 같은 짓을 부리긴 했다.
거리를 좁힌 놈이 손을 뻗었다. 그 손에서 보이지 않는 칼날이 날아들었다.
엔크리드는 비슷한 공격을 이미 시나르에게도 당했으며, 오늘 낮에는 오아라에게도 당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었다. 기는 그대로였다.
팅. 글라디우스를 뽑아 비틀어 튕겨 내자, 교주란 놈의 손이 뭔가 검이라도 쥔 것처럼 아귀가 틀어졌다.
신기했다. 마치 투명한 검을 들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엔크리드는 주저하지 않고 검을 들어 놈의 어깨를 내리쳤다. 장작이라도 쪼개는 것처럼 무심한 칼질이었다.
쩍!
“으아악!”
어깨가 갈라져 피가 솟자 교주가 뒤로 굴렀다. 몸 하나는 무척 잽싼 놈이었다. 지금도 어깨가 아니라 머리를 노린 칼질인데도 피하지 않았나.
“시발, 살려 주십시오. 살려 줘요.”
악마의 하수인이 왔다고 외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교도가 뒤를 봐준다던데?”
“그건 제가 낸 소문입니다.”
남자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고, 렘은 저런 새끼와 왜 말을 나누는지 몰랐기에 엔크리드가 몇 마디 하는 사이 투척 도끼를 던졌다.
후우웅! 뻑!
날아간 도끼가 이마 위의 장식품이 되고 쓰러진 채로 몸이 뒤로 가볍게 떠 날아간다.
엔크리드는 놈의 손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걸 보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횃불 빛을 은은히 반사하는 뭔가가 보였다.
“금화 수십 닢이 있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카르멘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명장이란 소리는 괜히 듣는 게 아닙니다. 저 칼 한 자루가 암시장에 나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일기도 합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암살자 길드끼리 카르멘 컬렉션의 세 번째 작품인 카타르가 나와서 소란이 인 적도 있었죠.”
작센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말하며 카르멘 컬렉션이 무엇인지, 그중 마지막 단검의 이름이 뭔지도 말해줬다.
인비저블 블레이드.
뜬금없는 선물이었다.
엔크리드는 선물을 챙기고 도시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마수 몇 마리가 덤볐다.
들개 무리가 통째로 마수로 전직한 듯 꽤 많았지만, 전부 베고 찔러 죽였다.
어느새 동이 텄다. 도시로 갈 시간이었다.
그렇게 도로 들어가 먹고 씻고 조금 자고 또 성문을 향해 나섰다.
“콜로니 찾는 법? 그건 더 쉽수다. 주변 지형을 보니 뻔하기도 하고.”
나서는 길에 렘이 말했다. 찌는 듯한 더위는 그대로였다. 이쪽 지역은 다른 곳보다 더 습도가 높고 온도도 높았다.
하피 무리가 콜로니를 이루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이미 눈으로 보았다.
엔크리드와 일행은 곧바로 움직였다.
어쩌다 보니 낮에 들어와 쉬고 또 저녁에 나가는 길이었다.
“또 나가십니까?”
우연히 같은 시간에 근무를 서게 된 병사는 어제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근무를 두 번 연속으로 서는 바람에 홀로 투덜거리던 중 엔크리드 일행이 나타난 거였고.
“문제라도?”
“아닙니다.”
엔크리드와 일행이 나갔다. 렘은 마물 사냥 경험이 많았다. 둔바켈은 냄새를 잘 맡았고, 루아가르네는 전반적으로 여러 면에서 아는 게 많았다.
어디 집단에 소속되어 단련하며 살아온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야생에서 구른 경력이 더 많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뭉쳤으며 둔바켈의 후각은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했다.
여기에 경험이 더해지니 하피의 둥지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
“숨기도 좋고, 모여 살기도 좋고. 딱 봐도 여기네.”
둔바켈과 렘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엔크리드는 높게 솟은 절벽을 바라봤다.
마경은 지형지물이 제멋대로였다.
이건 절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천연 탑이라고 불러야 할까?
원형으로 된 바위는 엔크리드가 고개를 꺾고 바라봐야 그 위가 간신히 보였다.
대강 눈으로 가늠해 보니 렘이 열 명이 있어도 꼭대기에는 닿지 않을 듯했다. 그러니까, 높았다.
그 위로 하피 무리가 하나둘 보이기도 했다.
주문을 쓰지만, 그리 대단치 않은 바람 주문 따위만 쓰는 놈들이었다.
“나부터 하겠수.”
렘이 말하며 슬링을 꺼냈다. 투창으로는 어렵지만, 여기 돌멩이를 투창보다 매섭게 쏘아내는 야만인이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밝았다.
두 개의 달이 번갈아 가며 빛을 뿜어냈다. 큰 달과 작은 달이다.
두 개의 달 밑으로 후웅, 훙, 훙.
파공음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음은 곧 공기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되었다.
위이이이이잉!
달빛 사이로 렘이 슬링을 돌리기 시작했다.
곧 렘의 머리 위로 세 번째 달이 떴다. 슬링으로 만든 보름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