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92)
92. 비범함과 미친 건 한 끗 차이임에
엔크리드는 부츠와 장갑을 손질한 뒤, 기름 먹인 천으로 검을 닦는 중이었다.
이전 마수 무리를 처리한 게 행상을 불러들이는 일이 됐고.
그건 곧 엔크리드에게 새 검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부러진 검의 소재였던 발레리산 강철을 다시 녹이고.
거기에 누아르산 연철을 섞었다.
대륙에서 알아주는 양질의 철 두 개를 섞는 일이다.
“이거 나 아니면 못 한다고.”
대장장이가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럴 만도 했다.
마법검을 주조할 수는 없어도.
쇠를 다루는 솜씨만큼은 마법사 못지않은 사람이었으니까.
보더 가드 내에서는 이름 높은 장인이라 하겠다.
물론, 간신히 도시 내에서만 유명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결국, 그 장인이 자신의 검을 만들어 줬음에야.
무기, 특히 검에 관해서 까칠한 라그나조차도 고개를 반은 끄덕여 줬다.
“그럭저럭 괜찮군요. 제가 쓰기에는 나쁘지만.”
고개를 반만 끄덕여 줬다는 게 이런 말을 덧붙여서였다.
엔크리드가 기름 먹인 천으로 칼날을 정성스레 닦고는 칼날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팅.
꽤 괜찮은 공명음이 흘러나왔다.
엔크리드로서는 처음 쓰는 명검이라 불릴 수준의 검이었다.
그러니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까.
정작 검에 관해 쉬이 만족하지 않는 라그나는 굴러다니는 쇠붙이라면 아무거나 잡고 썼다.
일전에 이가 나간 아밍소드도 직접 숫돌로 갈기 귀찮아하기에 엔크리드가 대신 칼날을 갈아 주기도 했으니.
그게 아니었다면 이가 빠진 검을 그냥 들고 다녔을 것이다.
“에스터, 그거 장난감 아니야.”
엔크리드는 검 손질을 끝내고 에스터를 살살 달랬다.
일전에 하수도의 시체 애호가를 죽인 뒤 가져온 물건이 몇 개 있었다.
팔아 치우려고 크라이스에게 말을 해 뒀는데.
그중 하나는 뒷골목에서도 처리하기가 골치 아파서 그냥 들고 있었다.
“그거 사람 가죽으로 표지를 싸 놨더라고요. 정말 하수도에 마법사가 있었어요?”
크라이스에게 물건을 맡기자 나온 말이다.
그런데 되묻는 말이 하수도에 있던 마법사를 죽였다는 걸 안 믿는 것처럼 들렸다.
“안 믿었냐?”
“믿었는데, 이제 조금 더 믿고 있습니다.”
⋯⋯안 믿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래서 그건 처리가 좀 어렵고, 지팡이랑 나머지는 네, 잘 팔았습니다.”
세상에는 진귀한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크라이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엔크리드는 관심이 없는 분야니.
그렇게 까만 나무 지팡이와 돌 몇 개를 팔았다.
지팡이는 마법사가 만든 조악한 물건이라 했고.
돌 몇 개는 연금술과 관련된 물건인데,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 했다.
그렇게 크라이스가 약속한 길핀 길드의 상납금과 마법사를 죽이며 얻은 크로나와 물건을 판 대금, 의뢰 수행 대금 등.
그걸 전부 다 쏟아부어 검을 산 거고.
애초에 누아르 산 연철도 더럽게 비싼 판이었으니.
크로나가 아깝진 않았다.
‘발레리산 강철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 큰돈으로 검 한 자루라니.”
크라이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만, 엔크리드는 만족했다.
칼밥 먹고 사는 사람한테 무기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소모품이라고 해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싸움에서 무기의 우월함을 가져갈 수 있다면, 크로나를 아끼겠는가.
“이 정도면 됐지 뭐.”
그렇게 마도서가 남았는데, 사람 가죽이라 찝찝해 그 위를 다시 얇은 천으로 덧대서 감싸 두고 자리에 대강 보관해 둔 것을 에스터가 찾아 제자리로 가져간 거다.
그 위에 오줌을 싸지르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마도서란 무엇인가.
마법사가 평생을 걸쳐 제가 가진 것을 기록하고 채워 두는 보물이라 하겠다.
마도, 마법의 도를 추구한다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을 만큼이나 중요한 것.
그런 마도서를 표범이 깔개로 쓰는 중이다.
‘이거 놔둬도 되나?’
적어도 저 위에 오줌을 싸지르진 않을 것 같긴 했다.
에스터는 절대 부대원 앞에서 대소변을 보지 않았다. 이게 고양잇과의 습성인지 몰라도, 반드시 어딘가 숨어서 해결하고 왔다.
씻는 것도 자주 씻었고.
엔크리드는 마도서에 신경을 껐다.
마도서가 얼마의 가치를 지닐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가져가려고 손을 뻗으면.
“하악!”
에스터가 흔치 않게 하악질을 해 댔다.
“놔두쇼. 편한가 보네.”
옆에서 렘이 한마디 거들기에 엔크리드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마법사가 죽어가며 물려준 유산을 처리해 검으로 바꾼 뒤다.
엔크리드는 여전히 훈련에 매진했다.
매일 해가 뜨는 것보다 일찍 일어나 일상의 시작을 조금 더 당기기도 했다.
소대장은 열흘에 한 번 따로 근무를 서면 그만이다.
보통은 4시간에서 6시간 내외로 순찰병이나 불침번을 서는 이들을 불시에 감독하는 근무고.
이렇듯, 일반 근무를 서지 않게 된 덕분에 시간이 남아 본래보다 하루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일반병의 기상 시간보다 2시간 앞서, 엔크리드의 하루가 시작되는 셈이었다.
“꺄릉.”
그렇게 일어난 여느 날의 아침, 품에 안긴 에스터를 내려놓은 뒤.
밖으로 나갔다.
아직은 추위가 전부 가시지 않았기에 새벽의 공기는 살을 에는 바람을 동반했다.
이런 걸 삭풍이라고 하던가.
그런 바람 앞에서 엔크리드는 호흡부터 가다듬었다.
시작은 ‘고립의 기법’부터다.
몸을 움직여 열을 낸다. 무거운 돌 따위로 만든 기구로 근육에 부하를 건다.
그리 몸을 달구다 보면 아우딘이 숙소 밖으로 나와 엔크리드 곁에 서서 자기도 고립의 기법을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소대장 형제님.”
이건 대우를 해 주려는 건가.
형제님 앞에 이제 소대장이란 호칭이 붙었다.
그걸 들으니, 곧 부대원 머릿수를 채워 준다던 중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집중.”
잡생각에 빠지니, 곧바로 아우딘이 나무랐다.
“알았다.”
정신을 산만하게 해서는 기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호흡과 근육에 집중하는 법.
아우딘이 강조하는 바이다.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다시 몸을 단련하고 또 단련하는 그런 과정.
또 고립의 기법만 한 건 아니었다.
가진 걸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으니.
‘야수의 심장, 칼날의 감각, 한 점의 집중, 고립의 기법.’
중검식을 비롯한 검술.
검술의 응용.
몸을 보고 상대의 단련 정도와 특기를 알아채는 안목.
육감과 직감을 토대로 공격을 예측하는 것.
검술로 치자면 본래 자신이 지니고 있던 발렌 식 용병검도 있다.
‘활용할 수 있나, 아니면 버려야 하나.’
버릴 필요는 없다. 그게 엔크리드가 내린 결론이었다.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개인의 역량에 따른 것.
‘역량이 부족하면 키우면 될 일.’
대담함은 언제나 필요하다. 중요한 순간에 눈을 감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증명함에야.
엔크리드는 야수의 심장을 모든 것의 기초로 봤다.
‘담담하게.’
그렇게 어느 날은 육감을 단련하고.
또 어느 날은 감각과 집중력을 섞어도 봤다.
‘섞어서 몸에 새기자.’
검을 한 번 내지르는 것에는 다양한 경험이 녹아 있는 법이다.
감으로 체득하고 머리를 인식하고.
다시 몸에 때려 박는 과정이다.
물론 쉽게 될 리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엔크리드는 슬슬 자신만의 패턴이자 방법을 다잡았다.
‘단련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필요한 건 실전.
단련과 훈련이 병행된 실전이다.
기왕이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전.’
“이전에 말했잖수.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살아남으면 얻는 게 많다고. 그런데 목숨이 한 개니까, 그렇게 실력을 쌓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지.”
렘이 농담 섞어 꺼낸 한마디가 정답이라는 것.
이제는 안다. 목숨을 건 실전의 중요성을.
물론, 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죽음을 거듭 이겨 내는 게 중요한 거지.
실전의 필요성을 알기에 엔크리드는 의뢰를 받았다.
자잘한 것부터 과격한 것까지.
어떤 것도 가리지 않았다.
“뭘 찾아 달라고 한 겁니까?”
“내 고양이를 좀.”
한 귀부인의 의뢰다. 이런 의뢰까지 받는 부대가 잘못한 걸까.
아니지, 이 또한 필요한 일이니까 하는 거다.
엔크리드는 굳이 의뢰를 가리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순간이든.
‘모든 건 단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뇌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엔크리드는 나무 위에 오른 고양이를 찾았다.
“얌전히 가자.”
고양이는 도망갈 기세였다. 육감, 직감의 영역에서 볼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또한 깨달음이 되긴 했다.
고양이의 본능을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거다.
살기, 기세를 쏘아 내어 나무에서 뛰어내리게 만들고.
폭 하고 품에 받아 낸 뒤, 눈빛으로 제압했다.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했다.
“육감의 문을 열었으니까요.”
작센이 덧붙인 한마디다. 이제, 작센은 시도 때도 없이 엔크리드를 괴롭히지 않았다.
살기에 시달릴 시기는 지난 거다.
이제는 그게 의미가 없기도 했고.
의뢰는 고양이를 찾아 주는 것부터.
“누가 강도질하고 도시에 숨었다는데?”
이런 의뢰도 있었다.
어떤 뜨내기가 도시에 들어와 어설픈 짓을 저지른 거다.
“찾아.”
길핀 길드를 먹어 치웠을 때, 이렇게 쓸 줄은 몰랐으나.
크라이스는 예상한 바였는지, 능숙하게 필요한 일을 척척 해냈다.
뒷골목 도박장이었다.
이마에 칼자국이 난 퇴역군인이었다.
“나랑 싸우자고? 시발, 변두리로 오니까 별의별 경우를 다 겪네. 보더 가드 상비군이 좀 한다며? 덤벼 보든가.”
자신감, 그만한 실력도 겸비했는가.
아닌 것 같은데.
그동안 기른 안목을 시험해 보기 좋은 기회였다.
적당히 밀리는 척, 상대의 수를 시험해 본 결과.
‘잘해야 중급에서 상급.’
나우릴리아 병사 등급제를 기초로 보자면 그렇다.
예상 밖의 실력은 없었다.
“헉, 헉, 너 뭐냐.”
“보더 가드 상비군.”
그 말을 끝으로 적당히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압송했다.
잡힌 놈은 부대 내 감옥에 갇힐 것이고.
누군가 대신 벌금을 내지 않으면 평생 못 나올 것이다.
“두고 보자.”
라고 말하긴 했는데.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 뒤 상단 호위끼리 붙은 싸움을 말리러 여관에 출동한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실력이 꽤 출중했다.
그와 붙으며 엔크리드는 한 점의 집중과 칼날의 감각을 섞는 훈련을 겸했다.
감각의 문을 연 상태로 집중하는 것.
이전에도 몇 번 했지만, 새삼 깨닫는 것도 있었다.
집중력의 차이가 많은 것을 바꾼다는 거다.
‘느려져.’
전만큼은 아니지만, 상대의 검이 느리게 보이는 효과다.
예측한 그대로 움직이기에 그렇고.
실제, 인지 속도의 차이가 나기에 그렇다.
모든 것이 훈련의 연속이었고.
단련과 단련의 계속됨이었다.
이런저런 의뢰를 하다 보니.
“아니, 무슨 의뢰에 미친 새끼세요?”
병사 사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난은 아니었다.
“몸이 열 개인가. 안 쉬어, 왜 안 쉬는데.”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비난보다는 놀람, 놀람보다는 감탄이다.
“괜히 소대장이 된 게 아니라고.”
“시벌, 나도 좀 일찍 일어나서 창이라도 몇 번 찔러 버릇해야겠는데.”
엔크리드 덕에 때아닌 훈련 열풍이 불기도 했다.
실력으로 증명했고.
병사 사이에서 평판도 좋다.
상급 병사 이상이라는 말이 떠돌며 소대장이 되기도 했으며.
엔크리드 덕에 목숨을 구한 병사도 있다.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대 내에서 훈련 열풍이 불었다.
다들 조금 일찍 일어나 제 몸을 단련하는 상황이 됐다.
엔크리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자기 앞길 살피기 바쁠 뿐이니.
훈련하는 내내 엔크리드는 가슴 속에서 은은하게 불길이 타오름을 느끼기도 했다.
본래 전장에 나설 때의 자신은 어떠했는가.
두려움까진 아니어도 즐기기는 어려웠다. 전장이 반갑진 않았다.
‘이게 정상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이제는 전장이 기대됐다. 나가서 싸우고 싶었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 실력을 내보이고 싶다.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다시 한번 사선을 넘고 싶다.
미친 소리가 맞았다.
그리고.
“비범함과 미친 건 한 끗 차이라는 거 모르슈?”
렘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비범함으로 나아가는 길이 미친 자들에게만 허락된다면.
미쳐야 하지 않겠나.
단련과 의뢰로 점철된 어느 날.
“다시 한번 붙으면 재밌겠는데.”
중대장이 제 개인 연무장으로 엔크리드를 부르더니 하는 말이다.
“대련?”
당연하지만, 엔크리드는 거절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이전과 상황은 같다. 그럼, 결과도 같을까.
그건 모를 일이었다.
아직 엔크리드의 안목으로 요정 중대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처럼 당할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이 모든 건 직접 손이든 칼이든 맞대 봐야 알 일이었다.
곧, 중대장이 손을 반듯하게 세워 손날을 만들며 말했다.
“오늘은 이거로 하지.”
이게 시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전, 자신의 부족함을 일깨우게 한 게 중대장과의 대련이기도 했으므로.
그때 부족했던 것, 근접 박투다.
레슬링이라 부르던 것들이다.
엔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둘의 손날이 허공을 격하고 만났다.
툭.
짧은 격타음이 곧 인사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