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night Who Eternally Regresses RAW novel - Chapter (93)
93. 우연의 결과인가, 중첩된 필연의 순간인가?
“발라프 식 무투술, 침대 위에서는 디딤발이 불편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편하겠습니까?”
아우딘이 묻는다. 엔크리드는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좁은 침대 위 두 남자는 더없이 진지했다.
“힘을 준다?”
처음에는 일부러 좁고 불편한 곳에서 주먹을 뻗는 요령을 배우는 건 줄 알았으나.
“아니요. 못 합니다. 침대는 눕는 곳입니다. 우리는 누운 기술을 연마할 겁니다.”
침대는 눕는 곳이란다.
무투술 첫 훈련 이후 아우딘이 생각보다 자주 씻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겨드랑이에 머리가 낀 상태로 사지를 제압당했는데, 시큼한 향 따위가 나진 않았으니까.
좁은 침대 위에서 손과 발을 놀리고 관절을 꺾고 잡아서 제압한다. 아니, 제압당했다.
“침대는 좁습니다. 복잡한 동작보다는 빠른 동작으로.”
배움이다. 가르침이다. 사막을 헤매는 목마른 자에게 주는 물 한 모금이다.
엔크리드에게는 그랬다.
그러하기에, 경청의 자세 그 이상으로 집중했다.
물론 실전에서 쓰기 까다로운 기술이긴 했으나.
의뢰를 받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써먹긴 했다.
가령, 뜨내기 소매치기의 손목을 잡아 꺾을 때라든지.
“길핀이 밤의 수호자를 자처하니, 뜨내기가 늘어나는 것 같은데?”
소매치기는 잡히면 손목이 잘린다.
아직 어려 보였다. 잘해야 열두 살? 그래서 길핀 길드에게 넘겼다.
나중에 들어 보니 신명 나게 매타작당했다고 하지만.
그게 손목을 잘리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리라.
그 외에도 여기저기 쓸 수 있는 곳에서 항상 활용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만큼 좋은 기회는 없으리라.
중대장과 손날을 맞댄 순간, 엔크리드는 오른발을 뒤로 빼며 스텝을 밟았다.
왼발을 앞에 두고, 뒤로 뺀 오른발을 왼발 위치만큼 앞으로 당기며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며 바닥을 차면.
폭발적인 돌격 스텝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전신 탄력을 이용해 오른손을 쭉 뻗는다.
찌르기다. 손날로 구현했으나, 그 핵심이 변하진 않았다.
마치 크랑을 구했을 때와 같다.
의무 막사의 천막을 찢고 중대장이 들어왔을 때, 그때 엔크리드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으나, 지금은 손날로 바뀌었을 뿐.
중대장도 그때와 같이 반응했다.
오른손을 안에서 밖으로 휘둘러 엔크리드의 손목을 쳐 낸다. 그 손짓에 찌르기의 궤도가 틀어지고.
중대장의 발이 엔크리드의 발뒤축을 걷어찼다.
그때는 속절없이 당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발을 걷어차이기 직전, 발을 떼서 피하고 손날 찌르기로 틀어진 자세 그대로 왼발을 축으로 몸을 기울여 밀어냈다.
요정 중대장과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체중.’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자신의 장점으로 무너뜨리는 겁니다. 형제님.”
엔크리드는 아우딘의 말을 따랐다. 어설프게 수를 교환하지 않고 덮쳤다.
“음!”
중대장이 외마디 신음을 뱉었다. 그녀는 발바닥으로 엔크리드의 허벅지를 찼으나.
엔크리드는 충격을 견뎌 내며 결국 중대장을 몸으로 깔아뭉갰다.
깔아뭉개며 손목을 잡고 바깥으로 밀어내고, 중대장의 다리 사이를 제 다리로 휘어 감았다.
그러자 중대장이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왼손은 앞으로 뻗은 형태로 잡혔고, 다리는 엮여 사지가 결박됐다.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만.”
숨을 고른 엔크리드가 말했다.
중대장이 고개만 돌렸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곧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인간의 프러포즈는 요정과 상당히 다르군.”
중대장의 입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또 요정의 농담이었다.
그대로 붙어 있자니, 요정 중대장의 입술이 보였다.
분명 부드러울 것 같긴 하지만.
“……아닙니다. 그런 거.”
엔크리드는 곧 자세를 풀어 일어나려 했으나, 이번에는 반대로 중대장이 엔크리드의 허리를 다리로 감았다.
순간 휘청하긴 했으나, 엔크리드의 허릿심이 워낙 좋기도 했고 요정 중대장이 가볍기도 했기에 그대로 버텼다.
“허리가 튼튼하군.”
중대장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건 청자의 잘못일까.
아니면 화자의 잘못인가.
‘굳이 따질 일은 아니지.’
“내려오시죠.”
반쯤 매달렸던 중대장이 내려섰다. 그러곤 바로 서더니, 몸을 탁탁 털었다.
연무장 바닥에 부대끼는 바람에 흙먼지가 묻은 참이었다.
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려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턴 중대장이다.
오늘따라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어, 보기에 따라 참 묘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었군.”
“네, 늘었습니다.”
이후 뱉은 한마디.
엔크리드는 순순히 수긍했다.
실제 실력을 보이려고 시작한 일 아닌가.
순간의 빈틈,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기를 잡은 것.
거기에 섞인 발라프 식 제압술.
모든 게 다 실력이 늘었다는 방증이기에, 중대장의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중대장은 잠시, 아주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곤 말했다.
“일단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해 두지.”
밑도 끝도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니.
“소대 보충 인원은 오늘 내로 간다고 알고 있으면 되고.”
엔크리드는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다가 관뒀다.
중대장이 어느새 몸을 돌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따진다고 뭘 알려 줄까?
안 그럴 것 같은데.
말하는 내용을 보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기도 할 터였다.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으니.’
그보다 윗선에서 내려온 어떤 명령이라는 것도 알겠고.
눈치로 치자면 엔크리드도 어지간한 수준이다.
어설픈 실력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품이었으니.
‘곧 알게 되겠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괜한 것에 신경 쓰느니, 그 시간에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나았다.
* * *
대대장이 교체됐다.
그럴 만도 했다. 국지전으로 야금야금 싸우는 전장이 아니라 전면전을 예고했다.
이전 전장에서 일어난 일이 이어져 전장이 확대됐고.
싸움은 커졌다.
그러니 대대장도 전투에 특화가 된 이가 와야 하는 법.
“내 이름은 마커스다.”
마커스 대대장.
한때 기사의 위를 넘봤으나, 결국 재능의 벽을 넘지 못한 자.
변방 수비대를 거쳐 갖가지 부대에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이프러스 휘하의 핵심 장교라 하겠다.
그는 이전 대대장이 했던 멍청한 짓 따윈 관심도 없었다.
“주력이라 할 만한 건, 변방 수비대와 거북이 중대 정도인가? 그 외 땅개는 머릿수 채우기 용도잖나, 그에 따른 전략 수립이다. 할 수 있겠지?”
오롯이 전쟁만 머릿속에 가득한 남자였다.
그리고 부대 내 도는 소문이 그의 귀에도 들어갔다.
“사고뭉치 분대장? 이제 소대장인가? 독특하군. 운이 좋았다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보고받은 뒤다.
고작 운이 좋다고 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했고.
여기서 마커스 대대장은 한 발 더 나갔다.
“그 운, 한 번 더 시험해 보는 건 어떨까?”
고작 병사 하나, 희생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정말 행운의 여신이 눈여겨봐 살려 준다면 그걸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운이 아니라면? 죽으려나? 그래 봤자, 고작 병사 하나다.
이래저래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요정 중대장이 한 말의 전모가 이거였다.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
“보내.”
첩보이자, 공작을 위한 부대 편성이다. 대대장의 직접 지시다. 막을 도리가 없었다.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농담처럼 진짜 반려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만한 인재.’
뒤도 깨끗하며 ‘크랑’과 엮였다.
그가 부탁한 바도 있고 자신이 생각해도 아깝기에 그런 거다.
실력도, 패기도, 담력도.
전부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그러니.
‘살아와라.’
이렇게 바랄 뿐이었다.
* * *
“그냥 지원 임무가 아닌데.”
엔크리드는 렘도 자신만큼 눈치가 빠르다는 걸 안다.
이런저런 의뢰를 하는 사이 내려온 임무다.
보더 가드 북쪽, 펜-하닐 강을 넘어서 주변 지형을 파악하라는 임무가 내려왔다.
엔크리드가 머릿속에 지형도를 그렸다.
보더 가드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나가면 그린 펄.
그 위는 펜-하닐 강이다.
그리고 펜-하닐 강을 도강한 뒤 동북으로 나아가면 도시가 하나 나왔다.
철저히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진 아즈펜의 요새 도시, 크로스 가드다.
임무의 목적지가 크로스 가드가 있는 자리다.
그러니까 이건 겉보기에는 지형 파악 임무지만.
‘실제로는 첩보.’
임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강을 넘어서면 알 수 있다는 말이 덧붙었다.
“콕 집어서, 대장만?”
작센도 옆에서 하달된 임무 내용을 파악한 뒤 미간을 찌푸렸다.
골치 아픈 일인가?
맞다. 엔크리드도 안다.
하물며 자신에게 내려올 종류의 일도 아닌데.
‘이거구나.’
요정 중대장이 한 말이.
“왜요? 지형 파악? 곧 전면전이 벌어질 거라는 말이 파다한데 어딜 나간답니까?”
새로 온 소대원이 말했다. 엔크리드는 잘 아는 얼굴이었다.
엔리. 평원 사냥꾼 출신의 병사다.
이전 전장이 끝나면 다시 평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있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차피 평원에서 살긴 그른 거 아닙니까.”
그게 이유였다.
그 외에도 둘이 더 합류했다.
앤드류, 철없던 분대장이 이제 진짜 분대장이 됐다.
그 옆은 당연히 맥이 함께였고.
그렇게 합류한 인원이 셋이고, 공식적으로는 앤드류가 이 부대의 분대장이 됐다.
물론, 렘을 비롯한 분대원에게 먹힐 턱이 없는 편제이긴 했다.
실제 인원도 겨우 아홉이 전부인데, 여기에 분대장까지 뭐가 필요한가.
하물며 누가 그 말을 들을까.
“이런 거면 차라리 제가 나을 것 같은데.”
엔리가 말했다.
“그냥 지형 파악이 아니니까 그런 겁니다. 형제님.”
아우딘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는데, 그걸 본 엔리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우딘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오는 반응이다.
거구의 사내가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어투로 말을 건다. 위압적인 주먹과 덩치가 눈에 가득 차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한동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대대장 직속 명령? 무시하면 안 되나.”
기웃거리던 라그나가 생각 없는 말을 던졌다.
무시하면 명령 불복종이다. 이 새끼야.
본래라면 더럽게 걸렸다는 생각이 들 거다.
누가 봐도 위험도가 높은 임무니까.
곧 전면전이 벌어질 적국의 요새 도시다. 근처까지 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목적은 도시 내에 있는 첩자에게서 정보를 받아 오는 건가.’
엔크리드는 대충 임무 목적을 떠올려봤다. 그럴듯했다.
필요한 일이긴 하다.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일이다.
보통은 이런 종류의 임무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을 따로 쓰는 게 맞는데.
‘중대장이 못 막았다고 한 걸 보니.’
대대장이 직접 나선 일이라는 거고.
그게 여기에 대대장 직인이 찍힌 이유겠지.
“어쩌냐?”
임무를 전하러 온 소대장이 주변 눈치를 보다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뭘 어떻게 합니까.”
엔크리드는 고민 따윈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실전이라면.’
언제나 반길 뿐이니.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새로이 배우고 익히고 깨달을 게 있다는 걸 되새긴 시점이었다.
오히려 두근거리기도 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건 뱃사공이 준 벽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저 흘러가는 일일 뿐인가.
우연의 결과인가.
했던 일이 중첩된 필연의 순간인가.
전부 알 바 아니었다.
눈앞을 막아서는 게 있다면 그저 치고 나아갈 뿐.
그게 엔크리드의 삶이었다.
“임무 접수합니다.”
엔크리드의 말에 분대원 전부의 인상이 안 좋아졌다.
“따라가야겠는데.”
라그나가 말했으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대장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으나, 엔크리드를 제외한 분대원은 새로 온 분대장의 명령에 따라 대기하라는 명령이 덧붙었다.
명령을 통해 추측하자면.
‘전장에서 활약할 게 뻔한 이들은 남기고. 나만 빼낸 건데.’
어떤 생각으로 이런 지시를 한 건지는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누가 알겠나.
행운이 따르는 병사라는 말에, 그 행운을 시험해 보자는 미친 짓을 했다는 걸.
마커스란 대대장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게 당연하기도 했다.
전쟁에 미친 장교, 마커스에게 따라붙는 별명이었으니.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작자였다.
그 시작이 엔크리드일 뿐.
“걱정하지 마라. 알아서 잘하고 돌아올 테니까.”
죽을 일은 없다. 오늘이 반복되는 이상, 그 오늘을 넘어서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이상.
툭 하고 엔크리드가 말하자, 렘의 앞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알아서? 자아아아알? 그게 될 것 같수? 아직 멀었수다. 안 되겠네. 오늘 특훈합시다. 특훈!”
라그나와 작센, 아우딘도 렘의 반응과 별반 다르진 않았다.
“리듬은 탔습니까?”
“뒤에서 사람 찌르는 법을 배워 보죠.”
“허허, 발라프 식 침대 무투술을 더 깊게 배울 때가 됐군요.”
거기에 선 앤드류가 모두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연다.
“자, 내가 분대장이니까 다들 내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은데.”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앤드류는 전처럼 건방 떠는 게 아니라 명령을 따르려 했다.
그게 전부였으나.
“웃기시네!”
렘이 발작했다. 평소의 발작이다. 대단한 것도 없는.
그가 팍 하고 뛰어들더니, 곧바로 앤드류의 머리통을 때렸다.
주먹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앤드류가 반응하기도 전, 쇄도했고 후려쳤으니.
뻑 하고 머리통을 얻어맞은 앤드류의 눈이 풀리고 모로 쓰러졌다. 옆에 있던 맥이 그를 받았다.
“뭐?”
쓰러진 앤드류를 보고 맥이 발끈하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걸 본 렘의 말이다.
상관 폭행.
렘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명칭이다.
렘이 노려보고, 맥은 잠시 그를 보다가 앤드류가 기절만 했다는 걸 확인한 뒤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쩌겠나. 이리 무력 차이가 나는걸.
어설픈 반항은 폭력으로 돌아온다는 것.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서 여기 오기 싫었고.
하지만 앤드류가 자원하는 걸 막을 수도 없었다.
‘하.’
인생, 참 꼬인다. 맥은 한탄했고.
엔리는 눈치를 보며 확신했다.
‘함부로 입 털면 뒈지는구나.’
그제야 이곳이 왜 사고뭉치 분대인지 알 것 같았다.
엔크리드만 보고 오긴 했는데, 조금은 후회가 되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