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22
22 章>
한설현이 운차에서 내리자 객잔 앞의 분주함이 잦아들었다.
쫙 달라붙는 흑의무복.
여인의 굴곡이 완연하게 드러난 그녀의 자태에 모두 넋이 나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두 눈 아래를 모두 가리고 있는 면사를 발견하고는 하나같이 장탄식을 하며 아쉬워했다.
이미 조가대상회 내에서 한씨 남매, 그중에서도 한설현의 미색은 유명했다.
누구나 각자 미의 취향이란 것이 있을 테지만, 한설현은 그 모든 주관성을 무시할 정도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본 적은 없어도 천하제일미라는 사마세가의 사마천혜(司馬天慧)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것이라며 입을 모아 예측할 정도.
한설현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는 것이 이미 익숙한 듯 그저 차가운 눈으로 객잔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휘리리리리릭!
어디선가 거대한 사슬낫이 전광석화처럼 쇄도해 오더니 그녀의 면사를 잘라 버렸다.
한설현으로서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던 극쾌(極快).
잘라진 면사의 깨끗한 단면을 확인한 한설현이 창백한 얼굴을 했다.
얼굴과 면사와의 거리는 불과 반치(半錙 1.5cm).
육중한 쇄겸으로 이런 정밀한 한 수가 가능하다는 것은 상대가 보통의 고수가 아니라는 뜻을 의미했다.
“호오!”
어느새 회수한 쇄겸을 어깨에 메고, 새하얀 이와 함께 욕망을 드러내는 자.
희끗한 염소수염의 중년인을 알아본 저잣거리의 몇몇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마겸왕이다!”
“노독물!”
강서의 지배자인 흑천련.
그 무시무시한 흑천련의 고수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여덟 무인.
흑천팔왕.
그중 하나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마겸왕(魔鎌王) 막여소(莫吕笑).
살육의 제왕이라 불리는 노독물.
그 살벌한 흑천련의 고수들 중에서도 잔인하기로는 가장 으뜸인 자다.
그런 마겸왕이 한설현을 향해 진득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우물(尤物)이로다! 본 왕의 일생에 이런 절색의 미인은 처음이다!”
마겸왕의 번들거리는 두 눈이 끈덕지게 자신의 위아래를 살피자 한설현은 마치 뱀이 지나가는 듯한 소름을 느꼈다.
그때, 끓는 듯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중년인이 마겸왕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클클…… 진정 대단한 미인이로군.”
엄청난 장신의 중년인.
채찍을 요대처럼 허리에 둘둘 말고 있는 그 중년 사내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냉혹하고 잔인했다.
“세상에! 살왕까지!”
저잣거리의 한편에서 들려온 비명 섞인 외침.
독편살왕(毒鞭殺王) 아극(阿克).
이자 역시 흑천팔왕의 일인이다.
잔인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다.
흑천련에서 가장 유명한 노살귀(老殺鬼)들 둘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은 실로 대사건이었다.
“제자 놈들을 만나러 왔다가 그야말로 횡재로군. 아이야. 내 친히 규방(閨房)을 내줄 터이니 본 왕의 첩이 되거라.”
그런 독편살왕의 말에 마겸왕이 안면을 꿈틀거렸다.
“이미 팔첩(八妾)을 거느리고 있는 놈이 욕심이 많구나! 이번에야말로 본 왕에게 양보하거라!”
“미친놈. 네놈은 여인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저 귀한 우물을 또 목 졸라 죽일 것 아니냐?”
마겸왕은 독특한 취향을 지닌 자다.
시간(屍姦).
쾌락이 절정에 이를 때 여인을 목 졸라 죽이고는 시체를 간음하는 변태 성욕자.
마겸왕의 독특한 취향, 그 악행은 이미 포양호 바닥에 자자했다.
바로 눈앞에서 늙은이들의 살 떨리는 대화를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던 한설현으로서는 경악할 노릇이었다.
입가의 침을 훔치던 마겸왕이 사슬낫을 마저 갈무리하고 한설현에게 다가가자.
“가, 가까이 오지 마요!”
부우우웅!
한설현의 쌍장에 맺힌 새하얀 한기를 확인한 마겸왕이 주춤 멈추었다.
“빙공(氷功)?”
중원에 빙공을 익힌 집단은 극소수다.
현 천마성의 전신이었던 암흑마교.
그들의 호법마공인 구음마경(九陰魔經) 이후, 단 한 번도 강호에 출현하지 않았던 것이 빙공이다.
허나 그 옛날 암흑마교는 검신(劒神)에 의해 멸절되어 사라졌다.
“혹시 네년은 북해에서 온 것이냐?”
한설현의 얼굴이 더욱 희게 변했다.
“호오?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년이로구나! 감히 북해의 떨거지들이 벌건 대낮에 중원 한복판에 나타나다니. 낄낄!”
그 처절했던 새외대전(塞外大戰)의 여파는 아직도 강호에 남아 있었다.
만약 이곳이 정파의 영역이었다면 한설현은 무림맹에 끌려가도 할 말이 없었다.
“걱정 마라. 강호라 해도 다 같은 강호는 아니지. 이곳은 사파의 영역. 내 친히 첩실로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미친놈인가?”
객잔의 주렴을 걷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조휘.
한설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금세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녀로서도 순간적이나마 왜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지 당혹스러웠다.
“아니, 한 소저께서는 엄연히 우리 조가대상회의 과장님이신데 뭔 첩실이니 개소리를 하는 거지? 그건 직장인에게 실례되는 말이라고.”
마겸왕은 다른 조휘의 말은 모두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귀에 꽂히는 한 단어, ‘개소리’.
“미친놈인가?”
“반사 이 새끼야. 왜 따라 하냐?”
“설마 본 왕을 모르는 것이냐?”
세 살 먹은 아이도 팔왕의 이름만 들어도 울음을 뚝 그치는 마당.
포양호를 살아가는 자가 흑천련의 팔왕(八王)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조휘가 품에서 장부를 꺼내 휙휙 넘기며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잘 아는데? 커다란 쇄겸에 염소수염. 딱 마겸왕이네.”
“아는데도?”
“아는데 뭐?”
사람이 너무 황당해지면 어안이 막힌다.
지금까지 포양호를 지나다니면서 이런 일는 처음 겪는 마겸왕.
당천포에서 수하들과 대기하며 지낸 시간은 고작 두 달이다.
설마 그 두 달 만에 팔왕의 명성이 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한데 미친놈의 입에서 더욱 미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아하니 당신은 당천포에서 왔군. 그러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맣게 모르는 거지. 감히 조가대상회가 행사하는 곳에 와서 깽판을 놔?”
“다, 당천포를 어떻게?”
련의 극비를 이 사람 많은 저잣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다니!
조휘가 퉁명스럽게 흑천련주의 직인이 선명한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됐고. 흑천련주의 직인을 몰라보진 않겠지? 여기는 조가대상회가 행사하는 자리다. 흑천련은 조가대상회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모든 일에 훼방 놓을 수가 없다. 감히 흑천련주의 명을 거역할 셈인가?”
“……조가대상회?”
아직 마겸왕은 련의 제반사를 보고받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련의 황당한 철수 명령에, 여독을 풀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제자를 불러 알아보려 했었다.
단지 그 제자가 이곳에 묵고 있다길래 와 봤을 뿐.
흑천팔왕이 흑천련주의 직인과 그 특유의 필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 서찰은 틀림없이 련주의 권위가 가득 담긴 계약서였다.
한데 말이 안 된다.
대흑천련이 일개 상단에게 불가침을 약속하다니!
련주의 직인도 필체도 확실했지만, 계약서의 내용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겸왕의 뒤편에 서 있던 독편살왕이 앞으로 나와 조휘의 계약서를 자세히 살폈다.
금방 인상이 찌푸려지는 독편살왕.
“……노망에 드셨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
포양호 주변의 련의 노른자 땅을 모두 무상으로 내주고 불가침까지 약속했다?
“뭔가 수작질을 부린 것이 틀림없군.”
요대처럼 독편살왕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채찍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채찍에 강맹한 진기가 주입되기 시작하자.
“팔왕씩이나 되는 놈들이 지들 주인의 직인도 못 알아보나?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는 건가?”
조휘가 여전히 퉁명한 얼굴로 계약서를 접어 품에 갈무리했다.
“판단 잘해야 될걸? 이 계약을 깬다면 아마 당신들 목이 달아나게 될 거야.”
“미친 새끼!”
쐐애애애애액!
독편살왕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자신의 독편이 허공을 가른 것이다.
‘눈이 침침했나?’
두 눈을 껌뻑이며 잠시 시력을 가다듬는 독편살왕.
그도 그럴 것이 이 가까운 거리에서 펼친 자신의 사독칠절편이 빗나가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눈이 침침해 허공을 가른 것 이 틀림없었다.
쐐애애애애액!
‘음?’
순간, 독편살왕은 자신의 공격이 무위에 그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즉각적으로 깨달았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의 무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설마 이형환위? 느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화경의 중(中)에 이른 자신의 공격이다.
비록 초식이 아니라 추(錘)의 수법으로 가볍게 펼친 한 수였다 해도, 자신의 눈을 속여 가며 피할 수 있는 수법은 아니었다.
사실, 조휘가 펼친 것은 이형환위가 아닌 남궁세가의 천풍보 제사식 뇌전풍이었다.
단지 극성으로 펼쳤기에 잔상조차 생기지 않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보일 뿐.
그때 또 다른 파공음이 들려왔다.
쎄에에에엑!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탓에 소리가 마치 귀곡성 같았다.
거대한 사슬낫이 그대로 조휘를 종(縱)으로 베어 간다.
츠캉!
그대로 돌바닥을 깨부수며 지면에 박혀 버린 사슬낫!
화경에 이른 고수의 공격을 세 번이나 피했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보법으로?
그제야 두 왕(王)의 눈빛들이 일변했다.
“고수다!”
두 화경의 고수가 드디어 진신실력을 모두 드러내기 시작한다.
살을 에는 듯한 살기, 그 잔악무도한 기도가 사위를 삼키자 조가대상회의 일꾼들이 모두 객잔의 좌우 담장 뒤로 바삐 몸을 숨겼다.
조휘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일룡의 사부도 왔다 갔다 들었다.
객잔의 이층에는 창천검협 남궁수가 와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사파의 두 연놈들의 사부까지 와서 또 지랄이다.
뭔 학부모 모임인가?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인데, 자꾸 사나운 일진만 겹치니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본신의 무위를 드러내선 곤란하다.
겨우 창천검협에게 어그로를 다 끌어 놨는데, 절대경의 경지를 드러내 버리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된다.
조가대상회는 최대한 이목을 끌지 않는 것이 좋았다.
‘후…… 어떻게 하지?’
아직 무혼(武魂)을 드러내진 않았다.
세 번의 공격을 피한 것이 그저 우연인지 진짜로 화경 이상의 고수인지 저들도 아리송할 것이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흑천팔왕이라 불리는 자신들보다 높은 경지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조휘는 일단 최대한 대화로 시간을 끌어 볼 심산이었다.
“거참, 하여간 사파 새끼들 아니랄까 봐 다짜고짜 죽이려 드네. 일단 말로 하자고.”
조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은밀히 기감을 동원해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흑천련의 세작이 분명히 이 근방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난리를 피워 놨는데 조가대상회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
마겸왕이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넌 애새끼가 왜 그렇게 말이 짧은 것이냐?”
조휘가 피식 웃었다.
“정(正)과 사(邪) 간에 항렬이니 배분이니 따지려고? 그전에 사파 새끼들한테도 예(禮)란 게 있긴 한 건가?”
“낄낄! 이거 정말 미친놈이네?”
독편살왕이 채찍을 기다랗게 늘어뜨리며 끼어들었다.
“한낱 상단이 정파를 자처한다? 어디의 휘하냐?”
조휘가 퉁명스럽게 품에서 하나의 패를 꺼내 내밀었다.
“잘들 보시라고.”
특유의 검모양 패(牌).
선연히 양각된 창천(蒼天)이라는 글씨.
강호인을 자처하는 자가 저 유명한 창천검패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검족?”
“흥! 안휘검족의 끄나풀이었군!”
안휘검족(安徽劒族).
사파 측에서 남궁세가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그때.
“갈!”
노성을 터뜨리며 객잔의 주렴을 걷고 나오는 창천검협 남궁수.
조휘는 그런 남궁수를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쳐다봤다.
“아니 나오면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이미 창천검협의 무위가 포양호 한복판에 드러난 마당이었다.
얼마나 더 흑천련을 자극해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남궁수가 예의 노성을 또다시 내질렀다.
“조 봉공! 도대체 그 창천검패를 얼마나 더 써먹을 참인가! 본신의 무위가 그리도 뛰어나거늘 어찌하여 남궁의 그늘에 숨으려고만 한단 말인가!”
조휘가 지끈거리는 미간을 매만지다 먼 산을 쳐다보며 허탈한 얼굴을 했다.
“에라이.”
이젠 틀렸다.
순간.
조휘의 두 눈이 눈부신 백안(白眼)으로 화했다.
천검류(天劒流).
천하절대검령(天下絶大劒靈).
사방 백 장을 절대의 검령, 그 극한의 의념으로 가둔다.
시전자 외에는 모든 물리학적 동력을 분쇄하는 위대한 검신의 독문무공.
그렇게, 백 장 이내의 모든 사람들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스르르 허물어졌다.
바로 곁에 있던 창천검협 남궁수조차 쓰러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위대한 검신의 전설이 수백 년을 격하고 다시금 강호에 재현된 것이다.
무학에는 엄연히 상리(常理)라는 것이 있다.
이를 자연에 빗댄다면.
물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나 겨울을 지나면 완연한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결코 어떤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절대성, 그 내제된 법칙을 의미할 터.
하지만 지금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분명 내공은 원활히 돌아갔다.
육체의 의지도 일으킬 수 있었다.
한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는 순간 귀신같이 ‘뭔가’가 개입해 모든 힘이 잦아든다.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릇.
과연 이런 것이 무공의 범주에 들 수 있단 말인가?
병신처럼 사지를 땅바닥에 붙인 채 그저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마겸왕.
문득 그의 시선이 조휘의 등에 닿는다.
‘뭐 이런 미친놈이……?’
아니 이게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정신이라도 혼미하다면 괴이쩍은 사술(邪術)이라 의심이라도 해 볼 텐데 정신은 오히려 서 있을 때보다 더 말짱했다.
내부를 굽이쳐 흐르는 강맹한 마화진력공(魔火眞力功)도 그대로였고, 전신을 휘감아 도는 활력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움직일 수가 없다.
육십 평생 풍진강호를 주유해 온 강호의 노고수인 자신에게도, 이런 괴이한 무공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수법을 썼기에 화경에 이른 무인을 이토록 허망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한편, 희다 못해 투명하리만치 빛나는 조휘의 백안이 연신 사위를 살피고 있었다.
분명히 흑천련의 세작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욱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터.
천하절대검령(天下絶大劒靈).
조휘의 비기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에 속하는 무공.
오직 검천전능지체를 이룩한 자만이 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의념을 극한으로 일으켜 방원 백 장의 모든 물리학적인 동력에 개입하여 상쇄하는 무공이다.
지금 조휘의 백안(白眼).
그 지독한 흑백의 세계, 눈에 보이는 모든 물리학적 도식들을 하나하나 의념으로 비틀고 있었다.
이 무공은 소모되는 내공보다도 극한으로 구동되는 정신력, 그 의념의 고갈이 더욱 문제가 된다.
검신 어른의 말에 의하면, 절대경에 이른 무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반각 이상 지속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그 이상 지속한다면 뇌(腦)에 극도의 타격을 입어 평생을 백치로 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조휘가 극성의 뇌전풍을 일으켰다.
그의 희끄무레한 신형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백 장 이내에 쓰러져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목 뒤를 살피고 있었다.
흑천련에 소속된 무인이라면 반드시 목 뒤에 작은 전갈 문신이 새겨져 있다.
과연 조휘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저잣거리 곳곳에서 이 객잔을 지켜보던 흑천련의 세작들은 무려 열일곱 명.
상상 이상의 숫자에 조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목덜미를 채인 채 객잔 앞으로 던져진 열일곱 흑천련의 세작들.
가판대 위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던 장사치부터 경극단원, 만담가, 점소이, 짐꾼, 마부, 쟁자수 등 그 면면과 행색도 다양했다.
한데 이채로운 것은 이들 모두에게 무공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휘가 여전히 세작들을 향해 서 있는 채로 입을 열었다. 두 왕들에게 백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아는 놈들이지?”
마겸왕이 조휘의 질문에 악에 받힌 듯 소리쳤다.
“간악한 놈! 감히 무형지독을 하독하다니! 개소리하지 말고 당장 해약을 내놔라!”
결국 마겸왕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하독(下毒).
이건 필시 무색무취의 극독, 그 전설의 무형지독이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이 모든 현상이 설명될 수가 없었다.
듣던 대로 전형적인 무형지독의 특징이었다.
처음에는 내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활력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계속 움직이거나 운기를 했다가는 결국 모든 공력이 흩어져 폐인이 되고 만다.
마겸왕 역시 내부를 휘감아 돌던 모든 내가기공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역시 노련한 사파의 노고수!
조휘의 표정이 찰나에 묘해졌다가 일순 돌아왔다.
원래 인간이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이 겪어 온 경험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생각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저 사파의 노고수 꼰대들의 경험 속에는 ‘천검류’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전설의 무형지독으로 여겨 주면 조휘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조휘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품에서 생약(生藥) 두 개를 꺼내 어깨 너머로 던졌다.
늘 정무에 지쳐 있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 이 총관이 어렵게 구한 활력진단(活力眞丹)이었다.
그 유명한 생사의문(生死醫門)의 활력진단은 매우 비싸게 유통되는 자양강장제로서 고관대작이 아니면 입에도 대지 못하는 약이었다.
조휘로서도 아까웠지만 일단 급한 대로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해약(?)들을 마겸왕과 독편살왕이 묘하게 바라봤다.
해약을 달랬다고 곧바로 주는 경우는 또 평생 처음이었다.
조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무형지독을 우습게 보는군. 그저 보름짜리 해약이다. 보름 후에 또다시 복용하지 못한다면 그 즉시 오장육부가 흘러내리고 절명하게 되지.”
그제야 두 왕(王)들이 그럼 그렇지 하며 악독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독을 하독하고 주기적으로 해약을 내주어 적을 길들이는 악당들의 전통적인 수법.
하지만 당장은 재고 자시고 할 수가 없다.
두 왕이 해약을 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거렸다.
조휘가 의념을 느슨하게 풀어 주자 결국 그들은 기어가 해약을 꿀꺽 삼키는 데 성공했다.
조휘는 상황을 더욱 리얼하게 살리기 위해 그 순간 그 둘에게만 천하절대검령을 해제했다.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왕.
마겸왕이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그 위대한 팔왕이 곧바로 공대를 해 온다.
놀라운 태세 전환의 처세에 조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저런 지독한 처세가 있었기에 험악한 사파의 세계에서 팔왕이 될 수 있었을 터.
저 노련한 사파의 노고수들이 굴러먹던 세월을 절대 얕잡아 보면 안 된다.
“일단 저 세작들을 잡음 없이 처리하고 싶은데.”
조휘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마겸왕의 거대한 사슬낫이 그대로 세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짓쳐 들었다.
쐐애애애애액!
툭! 투툭!
순식간에 열일곱 명의 목을 따 버리고 되돌아간 사슬낫!
조휘는 극도로 당황해했다.
“아, 아니 이런 미친 새끼!”
순식간에 사람을 열일곱 명이나 죽이고도 그 흔한 감정의 동요 하나 없다.
과연 살육의 제왕이라더니 인간의 인성이 결여된 놈인가?
“이거보다 더 깔끔하게 처리할 수가 있소? 죽여서 뒤탈을 없앤다면 잡음이 있을 수가 없지.”
그의 화끈한 돌직구에 조휘는 뭐라 반박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흑천련으로 돌아가. 일이 생기면 알아서 기별하지. 해약도 제자들을 통해 보내겠다. 그리고 당분간 제자들 만날 생각도 하지 마. 허튼수작 부리면 해약은 없다.”
“알겠소.”
“그리하리다.”
조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광석화처럼 장내에서 사라져 버린 두 왕(王).
조휘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천하절대검령의 술(術)을 풀었다.
백안에서 천천히 돌아오는 검은자위.
사람들이 서서히 꿈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모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끄으으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잣거리에서 함께 살을 부대끼던 사람들이 열일곱이나 목이 잘린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의 놀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창천검협 남궁수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과연 천하의 악적들이로다. 무황께서는 저런 악랄한 자들을 징치하는 데 도대체 무얼 망설이고 계신단 말인가.”
무황(武皇).
당대의 무림맹주를 높여 부르는 칭호다.
무당제일검 청운 진인(淸雲眞人).
화산의 자하검성과 더불어 천하제일을 논할 때 늘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남궁수의 안타까운 얼굴과는 달리 조휘는 오히려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흑천련의 세작(細作)을 결심한 이상 저들도 강호(江湖)라는 칼날 위에서 곡예를 하는 인생들이지요. 무인이 아닐지라도 강호인의 운명을 비껴갈 수는 없습니다.”
남궁수가 그도 그렇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들의 죽음은 조 봉공의 업(業)일세. 장사는 조 봉공께서 치러 주도록 하게.”
조휘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창천검협 남궁수는 그제야 괴물 보듯 조휘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는 진정 사람이 맞는가?”
“예?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방금 자네의 무공 말일세.”
“아…….”
이제는 조휘에게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상승의 무공 이론에 의하면 세상만물의 조화, 그 중심에는 모든 흐름을 관장하는 결과 법칙이 존재했다.
이는 신(神)이 아닌 이상 사람이 읽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미 절대경에 올라 칠무좌라 불리는 자신조차 그저 희미하게 느끼기만 할 뿐 그 실체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데, 눈앞의 이 청년은 그 ‘결’을 알고 있었다.
조휘가 펼친 그 지독한 의념의 바다는 반드시 같은 절대경의 눈으로만 느낄 수 있다.
모든 움직임(動)의 기조를 훼방하는 의념 공세.
그 비틀린 의념들은 ‘결’을 모르고서는 결코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결을 파훼하며 들어오는 조휘의 그 비틀린 의념들에 의해 얼마나 당황했던지.
세상의 법칙 속에 어떤 ‘결’이 있다는 것을 겨우나마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그것도 절대경에 오른 지 십여 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겨우 인식할 수 있었던 것.
더욱 소름이 돋는 것은 그 비틀린 의념이 어떤 특정 부위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반경 백 장 내의 모든 결을 통제한다는 점이었다.
그 모든 광경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면 미친 소리라 치부했을 터였다.
방원 백 장 이내의 ‘모든 결을 본다’는 자체로 이미 신의 영역이었다.
한데 수없이 많은 움직임(動)의 ‘결’에 초절하게 쪼갠 의념들을 일일이 보내며 비튼다?
그런 건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런 걸 과연 무공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창천검협 남궁수의 입에서 드디어 실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 봉공, 혹시 자네 자연경에 들었나?”
자연경(自然境).
피륙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
천지만물과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 정(精)과 기(氣), 신(神)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나아가 천지교태의 권능으로 한낱 인간의 몸으로 자연의 위대한 숨결을 발휘할 수 있는 전설상의 성취.
그것이 아니라면 조휘가 발휘한 초절한 한 수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강호의 긴긴 역사 이래 자연경에 이른 무인은 단 세 명.
지금 남궁수는 조휘를 그런 삼신(三神)들과 동일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조휘는 그저 쓴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검신 어른이 빙의했을 때, 궁극의 자연경 그 실체를 직접 목격한 자신이었다.
단 일 검에 그 광활한 화산을 지워 버릴 수 있었던 검신 어른의 무위. 지금의 자신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한 위대한 경지다.
“하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자연경이라니요. 제가 신(神)처럼 여겨지십니까?”
창천검협 남궁수는 더욱 혼란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조휘의 무위가 신에 이르렀다면 한눈에 그 실체를 알아봤을 터.
“그렇다면 방금 그 무공은 무어란 말인가? 분명 그것은 강호무림의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었던 종류였네.”
그 말은 맞았다.
천하절대검령(天下絶大劒靈)은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고 검신 어른께서 완성시켜 이름을 붙여 준 무공이었다.
검신 어른도 검천전능지체의 백안(白眼)을 과거에 이뤘지만, 그 특유의 물리학적 도식을 제대로 알아볼 순 없었다.
그 도식들은 오직 수학을 배운 현대인인 자신만이 올곧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때문에 모든 동운동의 벡터값, 그 식을 의념으로 파훼한다는 것은 검신 어른으로서도 당혹스러운 개념이었다.
조휘는 이제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찬란한 유산들과 소중한 가르침을 이만큼이나 받고도 계속 숨기고 외면한다면 어찌 후손된 자라 할 수 있겠는가.
조휘는 엄숙한 표정으로 오연히 섰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검신(劒神) 조천(曹天). 제 사부님의 위대한 성명(聖名)입니다.”
무림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세 명의 무인.
무신(武神). 마신(魔神). 검신(劒神).
무신이나 마신은 그 후예들이 현 강호에 존재했다.
무신의 사마세가(司馬世家).
마신의 천마성(天魔城).
신(神)들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당대에도 대단한 명성과 세력을 구가하고 있었기에 강호인들의 경외와 찬사를 받았다.
하나 그런 삼신들 중에서도 항상 최강으로 거론되는 것이 검신이었지만, 기이하게도 강호에 남아 있는 그의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검(劒)의 신(神).
한 자루의 검만으로, 그 옛날 천마신교의 성세를 능가했다고 평가받던 암흑마교를 단 하루 만에 멸절해 버린 고금무적(古今無敵)의 신화.
강호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검수들의 꿈이자 종착역이요, 닿고 싶은 갈망이며 위대한 전설인 그 이름.
지금 조휘는 그런 위대한 검신을 자신의 사부라 칭하고 있는 것이었다.
“검신!”
남궁세가도 엄연히 검을 추앙하는 가문.
위대한 검의 조종, 검신을 향한 존경심은 창천검협 남궁수에게도 가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의 남궁수.
“……그게 정말 사실인가?”
“예.”
오연한 조휘의 얼굴.
검신의 위대한 검공을 사사(師事)한 자긍심이 그득하다.
“허면 그 천검류라는 것이?”
“맞습니다. 검신 어른의 독문검공입니다.”
기이한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남궁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천검류(天劒流).
하늘에 이른 검.
한때, 그 오만한 이름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신의 검공이라면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당연했다. 그라면 충분히 오만할 만하니까.
“검신 조천(曹天)이라…….”
검신의 실명, 그 이름도 오늘 처음으로 듣는다. 한데 가만 보니 조휘와 같은 성(姓)이지 않은가?
“혹시? 조 봉공의 뿌리가?”
“예. 저희 가문의 선조이십니다.”
“호오!”
단순히 검신의 후예가 아니라 그 가문의 후손이라!
남궁수는 정말로 기꺼웠다.
조휘가 진실로 검신의 직계 후손이라면 엄청난 정통성을 지니게 된다. 사마세가와 필적하는 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허허! 그 말이 틀림없다면 이는 정파 무림에 큰 홍복(洪福)이라네. 하루라도 빨리 이 사실을 맹(盟)에 알리고 그 후손임을 검증받게.”
그러나 조휘는 마뜩치 않은 표정을 했다.
“그건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왜인가? 맹의 검증을 받아 정식으로 검신의 후손임을 증명한다면 세가(世家)를 열 수 있네. 무인들도 구름같이 몰려들 테지. 능히 정파 무림의 일익(一翼)을 담당할 기회 아닌가?”
조휘가 묘하게 웃었다.
“글쎄요. 제가 조씨세가(曹氏世家)를 열어 얻는 이득이 조가대상회보다 클까요?”
“아니 그건…….”
무슨 돈이 전부인가?
강호에 세가를 연다는 것은, 가문의 명성과 역사를 천하에 널리 알리는 영예로운 행위다.
한데 조휘는 오직 돈을 좇고 있다. 남궁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역시 세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은자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네. 허나 세상의 가치가 어디 돈이 전부인가. 가문의 명예와 역사는…….”
“아뇨. 돈이 전부입니다.”
진실로 돈이 최고이더이다.
그 빌어먹을 돈 때문에 부모님들은 매일같이 전쟁을 벌였고, 그 빌어먹을 돈이 없어 어머니께서 제때 항암 치료를 받지 못해 돌아가셨지요.
방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무능한 놈이라 미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어디 가서 술 한 잔 살 수 없는 놈이라 친구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제 별명이 뭐였던 줄 아십니까.
계산할 때만 신발 끈을 묶는다고 ‘신발 끈’이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의 청첩장이 두려워 본 적이 있으십니까?
소주 한 병 살 수 없는 그 비참함을 아시는지요.
꽁초를 주워서 피우며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눈물이 나더이다.
막말로 이십 대에 결혼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하나였죠.
그래도 집이 중산층은 된다는 것.
최소 이삼천 보증금이라도 자식에게 융통해 줄 수 있는 부모 아래 있는 놈들만 결혼을 하더이다.
수천씩 학자금 대출이 쌓여 있는 우리네 인생에게 결혼?
웃기는 소리, 그전에 취업부터가 급선무지요.
우리 결혼 언제 해?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애교 어린 질문을 농담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그 비루한 심정을 아시는지.
딩크족?
독신주의?
그거 다 가난을 숨기려는 포장지죠.
현대에서도 그랬었는데 이 험난한 강호에 그런 비참한 인생들이 없는 줄 아십니까.
강호를 대표하는 다섯 세가의 일원으로 살며, 금수저 중의 금수저인 당신이 돈의 소중함을 알 턱이 없지요.
돈이 한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며, 얼마나 괴물로 만드는지 당신은 죽어도 모를 겁니다.
적어도 내 공시생 생활은 그랬지요.
그다지 떠올리기 싶지 않은 과거가 생각나 음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조휘.
돈이 없어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그 더러운 느낌을 결코 다시는 느끼기 싫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한 조휘의 반응에, 남궁수는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중한 얼굴을 하던 남궁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 봉공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일단 망인(亡人)들부터 모시게.”
조휘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수가 발걸음을 옮겼다.
“내 조 봉공의 뜻대로 일단 세가로 돌아가겠네. 차출할 무인들이 정리되면 서신으로 소식을 전하겠네.”
“알겠습니다.”
* * *
조휘가 객방에 들어서자 일행 모두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들도 천하절대검령의 백 장 안에 있었던 터.
무인이라면 그것이 조휘의 실력 행사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조휘는 합비에서 데려온 간부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일행에게 소개했다.
어차피 지금부터 계속 부딪히며 함께 일할 사람들이다. 미리 친분을 다져 놓아서 나쁠 것이 없는 것이다.
“헉!”
“으악!”
문제는 진가희.
간부들에게 소개를 시키는 족족 기겁을 하며 도망가니 조휘로서는 성가시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너, 그 머리만이라도 좀 묶으면 안 되냐?”
기다랗게 늘어뜨린 저 머리칼부터가 문제다.
스타일이라도 좀 정상적으로 꾸미면 덜할 텐데, 굳이 저렇게 길게 늘어뜨려서 사람을 식겁하게 만들어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지독히도 창백한 얼굴에 눈빛마저 음산한 터라 조휘로서도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간혹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기이하고 음산한 눈알이 삐죽 튀어나올 때면 오금이 저릴 정도.
“당신…… 혹시 묶은 머리를 좋아하는 거야?”
가볍게 얼굴을 붉히는 진가희.
조휘는 온몸의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섬을 느끼며 처절하게 도리질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머리칼이 이리저리 부대끼면 불편하지 않냐는 소리다.”
“전혀? 어릴 때부터 이 머리라서.”
“…….”
그때, 이 총관과 함께 한설현이 객방으로 들어왔다.
반쯤 잘린 면사 아래 드러난 월궁항아와 같은 얼굴.
마치 하늘이 빚은 듯한 그 미모에 모두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헐……!”
허파에 바람이 세는 듯한 장일룡의 감탄성.
“와 씨! 미친!”
믿기지가 않은 듯 연신 눈을 비비고 있는 염상록.
“험, 험험!”
괜스레 헛기침만 해 대고 있는 남궁장호와 부끄러운지 봉황금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제갈운.
이처럼 강호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에게도 한설현의 미모는 천상의 그것이었다.
도무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미모에 진가희조차 잔뜩 찌푸린 얼굴로 경계의 빛을 내비쳤다.
진가희가 곧바로 머리를 묶는다.
“이제 됐죠?”
조휘가 한결 나아진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 이쪽은 북해에서 온 한설현 소저.”
“……북해?”
“빙궁의 끄나풀?”
누가 정파의 후기지수 아니랄까 봐 남궁장호와 제갈운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격앙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조휘가 재빨리 정리에 나섰다.
“자자, 몇백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은원을 가집니까? 그리고 원래 직장에서는 사적인 감정을 접는 겁니다. 인사 안 하실 겁니까?”
그제야 남궁장호와 제갈운이 예를 표했다.
“음…… 남궁장호요.”
“제갈운이에요.”
“핫핫! 나는 장일룡이요! 만나서 참으로 반갑수다!”
녹림은 새외와 그다지 은원이 없다. 그리고 장일룡이라는 인간 자체가 원래 이리저리 재는 것을 싫어한다. 그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다.
괜히 가슴 근육을 거칠게 용트림하며 한껏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장일룡.
한설현은 그런 장일룡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북해(北海)에서는 저렇게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사내의 흉측(?)한 몸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자, 다들 앉으시죠. 의자가 부족하니 알아서 양보들 좀 하시고요.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조가대상회의 간부들이 각자 자리에 앉고 이어 소란이 잦아들자 조휘가 회탁 위에 포양호의 지도를 폈다.
“먼저, 가장 시급한 것은 조가대상회의 각 사업부를 이 포양호에 세우는 일입니다. 목이 좋은 후보지 몇몇을 골라 봤는데 여기 지도에 붉은 점으로 표시해 뒀습니다. 의견들 내 보시죠.”
한 차례 지도를 살피던 이 총관이 고개를 모로 꺾었다.
“합비와는 그 배치가 완전히 다르군요. 이건 무엇을 고려한 동선이신지?”
당연히 합비와 다를 수밖에 없다.
합비의 모든 동선은 성도의 중심에 있는 대석빙고의 위치를 고려해서 짜여 있었다.
무겁고 깨지기 쉬운 얼음의 특성상, 최단 거리의 유통로를 확보해야만 했다. 더욱이 여름철에는 녹는 속도가 빨라져 일각일각이 소중했다.
하지만 걸어 다니는 대석빙고를 확보한 이상 그런 얼음길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얼음길에서 자유로워지니 장사 목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객점을 배치할 수 있었다.
“포양호에서는 대석빙고(大石氷庫)가 필요 없기 때문이죠. 각 객점별로 소규모 빙고(氷庫)를 비치해 놓고 그때그때 한 소저께서 방문하여 얼음을 만들어 줄 겁니다.”
“아!”
“오오!”
조휘의 설명에 하나같이 감탄을 했다.
대석빙고를 건설하고 관리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거기에 운송하는 인력들의 품도 만만치 않았다.
그 엄청난 은자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사업의 기회비용이 늘어난다는 소리다.
이미 포양호의 땅을 매입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 것을 감안하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이 총관의 얼굴에 한껏 화색이 돌았다.
“그야말로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겠군요! 자금이 바닥나 여정 내내 걱정했었는데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이 총관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설현을 쳐다보았다.
한 사람의 재주가 이토록 상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무공(武功)이라는 것에 새삼 경외심이 생긴다.
다시 바라본 포양호의 지도.
조휘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야 시야가 밝아졌다.
얼음길에서 자유로워지자 철저하게 목 위주로 배치되어 있었다.
각 저잣거리의 특성과 유동 인파의 규모.
각 포구로 이어진 최적의 동선, 적절한 간격까지.
조휘가 얼마나 고심하여 배치했는지 그 태가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총관은 자신의 노련한 경험을 과시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 이곳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총관이 가리킨 곳은 조가통운이 들어설 자리였다.
“조가통운이 들어설 곳은 역참(驛站)과 너무 가깝습니다. 이 동선을 고집한다면 백이면 백, 관(官)과의 마찰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역참을 관리하는 고관들의 가장 큰 뒷구멍 수입은 표국의 표물 대행이다.
제국의 역참을 사사로이 활용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나 이는 역참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대부분의 역참은 대형 표국과 한 몸처럼 공생 관계였다.
자그마한 역참으로 발령받을 수만 있다면 관리들은 금자 수백 냥의 뇌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관과 마찰을 빚어서야 되겠습니까?”
“음…….”
조휘는 한껏 아쉬운 기색.
저 동선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포구와 관도를 북과 남으로 잇고 있는 저런 목 좋은 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간헐적 천재(?)와 소제갈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간단한 문제 같은데요?”
“거 뭘 그리 고민하시우?”
조휘는 장일룡의 의견이 더 궁금했다.
“해결책이 있습니까?”
장일룡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붉은 면적으로 표시된 부분이 우리가 전부 사들인 땅 아니우? 저 포구도 우리 거잖수.”
“그래서요?”
“역참은 반드시 관도와 포구를 함께 껴야 하잖수. 이런저런 공사를 핑계로 저 포구를 한두 달만 막아 버리면 역참은 여기로 이동할 수밖에 없수.”
“음?”
장일룡의 손가락이 훨씬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도 관도와 포구가 연결된 지점이었다. 물론 상권을 한참이나 벗어난 곳.
그러나 역참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상권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제갈 과장님의 의견은 뭡니까?”
조휘의 질문에도 제갈운은 대답 없이 장일룡만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뭐야?”
천하의 소제갈이, 대산(大山)의 근육 사내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제갈일룡’이라 불러야 되는 건가.
문득 조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장일룡이 정도명가에서 수학(修學)했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기재가 되었을까.
아직 남궁장호나 제갈운의 진면목을 모두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일룡이라면 충분히 그들을 능가하는 기재가 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 아둔해 보이는 근육 속에 엄청난 지낭(智囊)이 들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인지력, 핵심을 관통하는 판단력, 난관을 돌파하는 추진력과 동물적인 감각까지!
그야말로 강호제일기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제갈운의 놀람이 가장 컸다.
포양호의 광활한 지도를 한 차례 살핀 것만으로 저만한 묘수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십여 년이 넘게 지략과 병법을 공부한 자신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
제갈운이 그런 장일룡을 향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조휘의 음성이 재차 들려왔다.
“좋습니다. 어차피 가장 먼저 포구들부터 재정비하려고 한 마당입니다. 일단 장 부장님의 전략대로 해 보지요. 조가통운은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다음.”
조휘의 품에서 또 다른 서류가 나왔다.
그것은 일종의 도해(圖解)였는데, 조휘가 회탁 위에 펼치자마자 이 총관이 바로 반응했다.
“혹시 이건 철공(鐵工)의 도해입니까?”
조휘가 그의 눈썰미를 칭찬했다.
“역시 이 총관님이군요.”
오래도록 철방을 관리해 온 이 총관답게 곧바로 철골을 알아본 것이다.
허나 H빔의 형태는 이 총관에게 생소한 것이라 무슨 용도인지 곧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목골(木骨)대용으로 쓸 철골(鐵骨)입니다. 과거 운차의 개발 때처럼 기산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가장 하중을 잘 견디는 튼튼한 철골의 개발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철방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주십시오.”
“철골이요?”
자신의 주인이 또 무슨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는지 이 총관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철은 목재와 강성 자체가 다르다.
저 정도 길이와 두께, 크기라면 일반적인 목골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장력을 지니게 될 터.
“어느 정도의 무게를 견뎌야 합니까?”
이 총관의 질문에 대답은 제갈운이 했다.
“최소 만 근을 버텨야 합니다.”
만 근이라면 6톤.
도대체 뭘 만들길래 기둥 하나가 그 정도 하중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이 총관이 조휘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운을 떼었다.
“외람되지만 무얼 만들고자 하시는지…….”
조휘가 침중하게 얼굴을 굳히더니 곧 객방의 모든 창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의념을 동원해 객방 안의 모든 음파를 차단했다.
“철골의 제작 전까지 이는 극비입니다. 저는 십 층(十層) 이상의 전각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시, 십 층?”
“십 층 이상이라니!”
“말도 안 돼!”
백 년 전, 중원제일의 기관토목가로 칭송받던 기산노공(機算老工) 모용여학 선생.
그가 필생의 염을 다해 완성한 기관도해로, 장장 칠 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 항주의 육 층 전각 천상황홀루(天上恍惚樓)다.
강호에서 가장 높은 전각이라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곳곳에 기산노공의 고명한 수법이 녹아 있는 기관장치들로 인해 더욱 천하에 이름이 높았다.
이 총관이 경악 어린 얼굴로 고개를 도리질했다.
“철골이라면 어쩌면 십 층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 천문학적인 비용은 어디서 조달할 것이며 더욱이 저희에게는 과거 중원제일의 기관학자이셨던 기산노공과 기인(奇人)부터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제갈운이 발끈했다.
“중원제일?”
현재의 모용장(慕容莊)이 과거 모용세가였던 때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갈세가와 함께 강호의 지낭을 다투었으나, 마신교의 난 이후 완전히 쇠락일로에 접어들어 일개 장원 규모로 전락한 것.
그 이후 모용씨는 단 한 번도 제갈세가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허나 기산노공은 예외였다.
그의 기관토목지술과 산법술, 특히 도해를 그리는 능력은 당시의 중원제일이었다.
그가 신출귀몰한 방랑벽을 참고 후인이라도 남겼더라면, 어쩜 기관토목지술만큼은 모용장이 최고로 남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신기제갈가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
“눈앞에 신기제갈을 두고 무례하시군요.”
“……아, 죄송합니다.”
이 총관의 당황스러운 기색에 조휘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감히 신기제갈의 소제갈을 앞에 두고 중원제일의 기관술 운운하시다니! 이 총관님께서 잘못하셨네요! 벌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이 총관이 소제갈이라는 별호를 듣자마자 기겁을 했다.
아무리 무림강호에 문외한인 그로서도 신기제갈가의 보물이라는 소제갈의 명성은 익히 들어온 것이다.
“소, 송구합니다. 제가 강호의 견문이 일천하여 소제갈님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제야 봉황금선을 활짝 펴며 희미한 웃음을 띠는 제갈운.
조휘가 함께 웃으며 말했다.
“도해 걱정은 마시죠. 저 역시 제갈 과장님을 보조할 겁니다. 아마도 최고의 설계도해를 보게 될 겁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이 총관은 그래도 뭔가가 찜찜했다.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이 경험한 주인은 평범한 사고는 치지도 않는 인간이었다.
이 정도로 장인들을 데려왔다면 필시 또 어마어마한 규모일 터.
그 불길한 예감에 이 총관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혹시 한 채가 아닌 겁니까?”
조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일단 계획은 스무 채 이상요.”
“예? 허……!”
역시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십 층 이상의 전각 스무 채라!
십 층짜리 전각 하나를 짓는 것만 해도 엄청난 대규모 공사다.
더구나 저 도해 속의 철골 하나만 해도 가격이 엄청날 터.
십 층짜리 전각 하나에 저런 철골이 몇 개나 들어갈까?
대충 셈을 해 봐도 백 개 이상.
철골만 해도 그 비용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스무 채라고?
일단 자금은 논외로 치더라도 주괴공방에 인력을 얼마나 갈아 넣어야 그만한 양을 생산할 수 있을까?
뭔가에 한번 꽂히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휘의 특성상 이 일의 진행을 엄청나게 옥죌 것이 분명하다.
이 총관은 벌써부터 피로가 아득하게 밀려오는 듯하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금은 준비되신 겁니까?”
포양호의 땅을 매입하느라 조가대상회의 가용 자산을 모조리 투입했다.
합비에서의 수입을 지속적으로 조달해 온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공사라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음.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그래, 또 어디서 귀신같이 은자를 구해 오겠지.
이제 이 총관은 그 출처를 물어보기도 무서웠다.
한데.
“흑천련이 과연 그 많은 은자를 내줄까요?”
묘한 얼굴로 묻는 제갈운.
조휘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들이 안 내주면 어떡할 겁니까? 뒷감당이 안 될 텐데. 뭐, 그럼 성주(城主)에게 달려가지 뭐.”
“서, 성주는 왜요?”
“강서성주는 그 황실 외척 황의현의 차남이잖습니까. 어차피 흑천련이나 강서성주나 황실의 병기고에서 화약과 대포를 빼돌린 공범들입니다. 둘 다 좆 돼 봐야죠.”
“…….”
“음. 이왕 이렇게 된 거 양쪽 다 작업을 해 봐야겠네요.”
황실의 외척 황의현이라면 황궁 내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절대 권력이다.
그런 엄청난 권력자와 척을 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저 엄청난 기개를 용기라 불러야 할지 만용이라 불러야 할지.
“어차피 황제가 중원의 대가리 아닙니까. 황제의 측근에게 불어 버린다고 협박하면 지들이 어떡할 건데요.”
“대, 대가리! 아니 그래도 황제 폐하께 말이 좀…….”
“원래 없는 자리에서는 황제도 욕먹는 겁니다. 도대체 외척이 저만큼 날뛰도록 왜 내버려 둔단 말입니까. 그렇게 집안 관리가 허술해서야…… 읍!”
삿갓무사 남궁장호가 조휘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듣는 귀가 많소. 조 봉공.”
없는 자리에서는 대통령도 욕할 수 있다는 말은 현대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제국의 권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아직 조휘는 몰랐다.
현대의 대한민국과 중원의 제국은 그 권력의 근본 자체가 달랐다.
황실의 이목은 천하에 두루 깔려 있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이들 중에 황실의 끄나풀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안휘의 상계를 지배해 버린 조가대상회는 충분히 황실의 이목을 끌 만하니까.
조휘가 남궁장호의 손을 밀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에이. 저는 조가대상회의 전 직원을 가족같이 여깁니다. 설마 이 중에 배신자가 있을 리가요. 다들 뻔히 그 최후를 아실 텐데.”
조가대상회의 간부들이 하나같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녹림의 제일무력집단이라는 그 엄청난 고수들이 조휘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 모두 지켜본 간부들이다.
자신들의 회장은 인간이 어떤 지점에서 수치심을 느끼는지 악랄하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자자, 일단 기산각주님 어디 계십니까? 이리 오셔서 도해부터 받아 가시죠.”
객방의 구석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기산각주 국수문이 버선발로 다가와 시립했다.
“예 회장님!”
조휘가 도해를 내밀며 눈을 빛냈다.
“길이와 너비, 무게는 변해도 됩니다. 하지만 형태는 무조건 이 형태로 성형해 주시기 바랍니다. 버틸 장력은 만 근입니다. 아까 들으셨지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조휘가 좌중을 훑어보다 다시 포양호의 지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자, 이 지도에 각 사업체별로 분타를 세울 곳을 모두 표시해 두었습니다. 일단 각자 현지 시찰을 나가 주시고 필요한 재원은 이 총관님께 계획서와 함께 보고 바랍니다. 이상 상계일통!”
“대상평천하!”
“대상평천하!”
조휘가 흡족하게 웃으며 회의를 마쳤다.
무림에 떨어진 현대인 4
BUKDU NEO ORIENTAL FANTASY STORY
청루연 신무협 장편소설
지은이ㆍ청루연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청루연 / Good World Co.,LTD
ISBN : 979-11-391-0708-1
Printed in Seoul, Korea
•(주)조은세상에서는 E-Book 투고(장르무관)를 받고 있습니다.
소설 : [email protected]
Blog : http://goodworld24.blog.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