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34
34 章>
이걸 또 알아본다고?
마교의 신녀와 만났을 때도 그렇고 의천혈옥을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 가는 느낌이다.
한데 왜 저렇게 당황하고 있는 거지?
조휘가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대사님께서는 이 구슬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
크게 뜬 눈으로 연신 몸을 떨고 있던 범승대사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몹시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범승대사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휘청거리자 그를 부축하기 위해 모여든 무승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묻고 싶은 것이야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휘는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반각쯤 지났을까.
한참이나 마음을 추스르던 범승대사가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소승과 함께 방장을 만나겠소이까?”
조휘의 눈이 기이한 빛을 머금었다.
그가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을 노납(老衲)에서 소승(小僧)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자신을 낮춰 일컫는 말이었지만 소승이 좀 더 자신을 낮추는 의미.
조휘는 그런 그의 태도 변화에 이 승려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곳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니외다. 어서 산을 오르시지요.”
조휘로서는 반가운 상황.
어쨌든 자신의 목적은 소림의 수뇌를 만나는 것이다.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대뜸 소림방장을 만나게 해 주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휘는 범승대사와 함께 소림사의 산문을 넘었다.
그렇게 산문을 넘자마자 눈에 들어온 풍경.
곧바로 조휘의 얼굴에 이채가 스친다.
보통의 문파들은 터를 잡을 때 내‧외원으로 구분을 둔다.
담 안에 또 다른 담을 두어 적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함이 첫 번째요, 제자들의 성취에 따라 그 소속에 차등을 두어 소속감이나 경쟁심을 고취시키기 위함이 두 번째다.
한데 소림은 그런 내‧외원의 구분이 없었다.
소림사의 사원(寺院), 그 전각들은 그저 자유롭게 터를 잡고 있었다.
어떤 사원은 능선 아래 너르게 드리워진 그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어떤 전각은 뾰족한 기암괴석의 중턱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 모습이 신비하기도 했지만 적의 침입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전각 구조에 소림의 당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비록 당대에는 화산의 기세에 밀려 잠시 주춤하고는 있으나 그래도 강호의 역사 속에서 소림이 구가해 온 위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범승대사와 함께 좀 더 걸어가 너른 연무장에 다다랐을 때 우렁찬 기합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합! 타아아앗! 흐압!
질서 있게 도열한 수백여 명의 무승들이 엄정하게 동작을 내지르며 수련하고 있었던 것.
이에 조휘는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이놈의 소림무공은 꼭 저렇게 괴성을 질러야만 수련이 되나?
사실 소림무공의 동작들 대부분 후(吼:외침)의 구결이 가미되어 있었다.
강건하고 웅혼한 호흡으로 정신을 단련하고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소림무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끔 변태처럼 후(吼)에 엄청난 자질을 보이는 자가 나타나는데.
그런 자들은 십중팔구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 가장 독특한 무공이라 할 수 있는 사자후(獅子吼)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된다.
“흐아아아앗! 으헙! 하아아아앗!”
조휘가 보기에 맨 앞의 저 땅딸보 무승이 바로 그런 변태였다.
분명 키도 땅딸막하고 체구도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인데 목청만큼은 현대의 웬만한 확성기 저리 가라였다.
그렇게 잠시 그를 눈여겨보던 조휘가 어느덧 지객당과 나한전을 지나 소림방장이 기거하고 있는 방장실에 다다랐다.
“아미타불.”
범승대사가 나직이 불호를 외자 방장실 한편을 지키고 있던 무승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한 손으로 합장했다.
“범승 사조를 뵙습니다.”
“방장께서 안에 계시느냐?”
“예, 계십니다. 드시지요. 한데 저 시주께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무승의 눈빛이 조휘를 훑고 있었다.
“외인(外人)이나 따질 계제가 아니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그만 물러나게.”
“……알겠습니다.”
범승대사를 따라 방장실에 들어선 조휘.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방장실 한편에 몸을 기대고 있는 대나무 지팡이였다.
보통의 대나무라면 기다랗고 곧기 마련인데, 저 지팡이는 기이한 모양으로 아무렇게나 굽이쳐 자란 모습이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은은한 광채를 내뿜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가장 상단에 박혀 있는 녹옥(綠玉)의 기운 때문인 것 같았다.
비로소 조휘는 오랜 전통의 천하제일, 구파의 구심점이라는 소림사의 제대로 된 위용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강호인의 평생을 통틀어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소림의 녹옥불장(綠玉佛杖)을 봤으니 말이다.
“아미타불, 방장을 뵙습니다.”
소림방장 공천대사(空天大師).
그 유명한 칠무좌 공공대사의 사형이며, 하늘 끝에 다다른 불심과 지혜로 당대의 선종(禪宗)을 이끌고 있는 자.
하지만 그런 위명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평범한 행색이었다.
화려한 법복은커녕 오래 묵은 태가 역력한 싯누런 가사(袈裟)를 단출하게 걸치고 있었고.
체구나 외모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노승이었다.
만약 소림사의 방장실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소림방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노스님이었다.
“허허허…… 어서 오시게. 그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지객당주께서 갑자기 어인 일이신가?”
범승대사의 직책은 지객당주.
날마다 밀려오는 향화객들을 맞이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때문에 그는 다른 수뇌와는 달리 매우 바쁜 몸이었다.
범승대사의 두 눈에 어린 현기가 더욱 깊어졌다.
“방장 어른, 저는 오늘 지객당주로서의 신분을 잠시 벗을까 합니다.”
“아미타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범승대사가 가사의 품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것은 시커먼 염주.
칙칙한 묵광으로 뒤덮인 그 염주는 기이한 문양으로 가득했다.
한데 그 문양들은 일반적인 불문의 상징이 아니었다.
악마들을 이끌었던 아수라(阿修羅), 그와 싸웠던 제석천(帝釋天)을 상징하는 문양!
“하원(下院)!”
항시 여유를 잃지 않던 소림방장 공천대사가 벌떡 일어나 정중히 한 손으로 합장하며 예를 표하고 있었다.
달마하원(達磨下院).
어둠 속에서 소림을 수호하는 자들.
구성원 모두가 비밀에 쌓여 있는 그 은밀한 달마하원이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공천대사가 경외감이 어린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천년소림을 수호하는 자에게 어찌 방장의 권위나 배분을 앞세울 수 있겠는가.
그의 입에서 무거운 공대가 흘러나왔다.
“아미타불, 하원을 뵙소이다. 지객당주께서 하원에 몸담고 있을 줄은 몰랐구려. 한데 소림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달마하원은 소림이 위기에 빠지지 않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집단이다.
허면 소림이 어떤 화(禍)라도 입을 지경이란 말인가!
범승대사는 갑작스런 방장의 공대에 당황해했다.
“저는 하원의 밀승(密僧) 중에서도 가장 말단 계급인 무영승(無影僧). 속세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요. 제가 비공(秘功)을 익힌 파마승(破魔僧)도 아닐진대, 방장 어른의 공대는 제게 너무 무겁습니다.”
공천대사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미타불, 천년소림을 지켜 온 하원의 이름 앞에 그 어떤 소림의 제자가 권위를 내세울 수 있겠소. 그것보다 어서 말씀해 보시오. 무슨 일이 생긴 거란 말이오?”
범승대사가 침중하게 굳힌 얼굴로 조휘를 응시했다.
“그 옛날 우리 천년소림의 역사에 단 한 번 멸문의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공천대사는 크게 놀랐다.
강호의 역사에 벌어졌던 난(亂)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혈겁은 ‘천마교의 난’.
허나 소림은 그런 커다란 재앙 속에서도 결코 산문을 마인들에게 내어 주지 않았다.
“이 공천이 모르는…… 또 다른 혈겁이 있었단 말이오?”
범승대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일은 혈겁같이 세상에 알려진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방장 어른.”
“……허면?”
순간, 범승대사의 두 눈에 짙은 어두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 일은 단 한 명의 신인(神人)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어진 달마하원의 비사.
어느 날 소림에 한 명의 무인이 찾아와 소림사를 향해 일갈했다.
-제석천의 법보를 내놓아라!
그가 말하는 제석천의 법보란 달마하원으로서는 결코 내놓을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
당연히 고대의 전설 속 불문밀공(佛門密功), 제석천의 비공을 이은 십팔 파마승들이 사력을 다해 그와 맞서 결전을 벌였다.
한데 아수라와 그를 따르는 마귀를 상대했다는 전설의 비공이 단 한 사람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
같은 무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신위는 가히 신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림의 모든 불제자들이 경전을 외며 참혹한 마음으로 멸문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당대의 신(神)이 나타났다.
그는 놀랍게도 당시의 십여 년 전, 천마교의 난을 일으켰던 장본인 마신(魔神)이었다.
“그 마신이…… 신인(神人)의 단 십 초도 견디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뭐라!”
그 당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절대경의 경지를 넘어, 자연경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마의 신이 단 십 초도 견디지 못했다고?
도대체가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경악을 넘어 망연자실해진 공천대사의 얼굴.
“아미타불…… 한데…… 그렇게 모든 혈전이 끝났을 때…… 마신이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에서 고색창연한 서기(瑞氣)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목걸이?”
범승대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 순간 신인이 경악하며 그 자리에서 달아났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
그렇게 간단하게 마신을 물리친 자가 마신의 목걸이를 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갔다고?
범승대사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휘를 쳐다보며 담담히 손으로 가리켰다.
“이 시주께서 목에 걸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목걸이입니다.”
돌연 공천대사의 눈에 의아함이 물들었다.
“……아미타불,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마신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아득한 과거.
한데 당대의 인물인 범승이 어찌 그런 전설 속 귀물을 알아본단 말인가.
당시의 예인이 화폭으로 남겨 두었더라도 실물을 알아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런 의아함은 조휘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뭔가 착각하신 것 같군요. 이것은 저희 가문의 보물입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조 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 의천혈옥.
이것이 그 옛날에 존재할 수는 있었겠지만 마신이 조가(曹家)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면 혈옥 속 선조들 틈에 마신이 끼어들어 있었어야 정상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선조들은 마신에 대해 반드시 무언가를 언급했을 것이다.
“아미타불, 착각이 아니외다 시주.”
“아니 이건 제 가문의 보물…….”
범승대사가 조휘의 말을 잘랐다.
“아직 그의 시체가 소림에 남아 있소.”
“네? 누구의? 설마 마신……?”
범승대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조휘뿐만 아니라 소림방장 공천대사 역시 깜짝 놀라고 있었다.
“아미타불! 우리 소림에 마신의 유해가 남아 있단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방장 어른.”
“허어……!”
묵묵히 생각을 정리하던 조휘가 별안간 눈을 빛냈다.
“혹시 그 마신의 유해에 아직…….”
그것은 조휘의 예상대로였다.
“아미타불, 그렇소이다. 그의 유해와 함께 잠들어 있는 그 목걸이는 지금 시주가 차고 있는 목걸이와 한 치도 틀림없는 동일한 물건이오. 내 목숨을 걸고 확언할 수 있소.”
공천대사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흐으음…… 적어도 이 녹옥불장의 권위가 미치는 곳은 내 모두 알고 있는바, 도대체 그곳이 어디란 말이오?”
“달마동입니다. 방장 어른.”
공천대사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달마동이라면 무승들이 면벽 수련을 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 아닌가?
“아미타불, 또한 마신의 시체는 유해(遺骸)라 부르기도 좀 애매합니다.”
“음?”
“그의 생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방장 어른.”
조휘는 황당하게 굳어 버렸다.
도대체 마신이 언제 적 인물인가?
현대의 과학을 알고 있는 이상, 인간의 시체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현대인이 아닌 공천대사에게도 마찬가지.
“아미타불…… 천하에 기이한 일이로고.”
강호의 전설 속에 수많은 기사(奇事)가 있다지만 이런 기사는 그에게도 금시초문.
조휘가 범승대사를 쳐다봤다.
“그 현장을 제가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공천대사 역시 범승대사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전설 속의 마신.
수양이 깊은 공천대사에게도 그런 마신의 모습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갈증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필시 달마하원이 관리하고 있는 곳일 터.
“아미타불, 방장 어른께 찾아온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외인을 불마동에 데려간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
“……불마동(佛魔洞)?”
그곳은 달마동 내부의 숨은 심처로 속세를 어지럽히는 마인이나 주화입마에 빠진 파계승들을 가둬 놓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전 무림맹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
지금은 강호를 어지럽히는 공적이 출현하면 모두 무림맹으로 압송되거나 추살된다.
때문에 불마동은 현재 소림의 운영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아미타불, 그 불마동 어딘가에 마신의 유해가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허어……!”
소림의 법도에 따르면 달마동은 결코 외인에게 허락되지 않는 장소.
해서 아직 공천대사에게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아미타불, 한데 하원(下院)은 어찌 저 시주를 보자마자 소림의 비처인 불마동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한 것이오?”
“…….”
잠시 뜸을 들이는 범승대사.
“아미타불…… 그것은 마신의 유언 때문입니다.”
“마신의 유언?”
자꾸만 자신이 모르는 비사가 흘러나오자 조금씩 언짢아지는 공천대사.
그래도 자신은 명색이 소림을 대표하는 방장이다.
한데 소림의 명운이 달려 있었던 이런 엄청난 사건에 지금까지 까막눈이었다니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고 강호에 자신의 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차고 있는 자가 출현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유해로 데려오라는 유언이었습니다.”
“허어…….”
공천대사의 눈빛이 깊어진다.
천년소림의 역사 속, 외인을 달마동에 들여보낸 것은 죄인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없었기 때문.
천하의 그 어떤 문파보다도 계율과 법도가 엄정하게 살아 있는 소림임에, 공천대사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미타불…… 허면 지객당주의 뜻이 하원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오?”
달마하원 전체의 의사인지 묻고 있는 공천대사.
“달마하원은 무림의 역사에서 마신의 진면목을 아는 유일한 단체입니다. 마신은 그 이름처럼 마(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후우…… 아미타불…… 아무튼 방장 어른. 달마하원의 밀승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마신의 유지를 받들 것입니다.”
엄정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공천대사가 방장실 한편에 세워져 있던 녹옥불장을 치켜들었다.
“아미타불, 시주의 불마동 입장을 허하오.”
조휘는 장일룡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한 마음이었으나, 다른 의천혈옥의 존재와 마신 역시 간단한 사안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주 합장했다.
지금으로선 빠르게 마신의 유해를 확인한 후 여래진토에 대해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범승대사가 먼저 길을 잡자 공천대사와 조휘도 그를 따라나섰다.
* * *
‘……와 씨.’
조휘는 염불을 외는 소리가 이렇게도 무서울 수가 있구나 싶었다.
음습한 동굴 속 거의 모든 방향에서 중얼중얼 염불 외는 중저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음습하고 무서운 곳에서 최소 삼 년, 길면 구 년 동안 벽곡단만 씹으며 면벽 수련이라니!
계율을 어겨 어쩔 수 없이 갇히는 건 이해가 된다지만, 수련 때문에 제 발로 달마동에 입동하는 소림제자들은 도대체가 제정신이란 말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고작 사흘조차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저벅저벅.
그런 염불 외는 소리 사이로 범승대사의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 손으로 합장한 채 일정한 보법으로 나아가는 그의 얼굴에는 극고의 진중함이 느껴졌다.
마치 불도의 완성을 위해 고련하는 수도승처럼 엄정하기 짝이 없는 몸가짐.
그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지 단숨에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진중하게 걷던 그가 일순 멈춰 서더니 어느 한 벽면의 기관을 작동시켰다.
쿠쿠쿠쿠쿠쿠
엄청난 진동과 함께 먼지가 떨어지자 벽면에 커다란 석문(石門)이 드러났다.
이내 석문에 일필휘지로 새겨진 글자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불마동(佛魔洞)이었다.
마침내 불마동의 석문이 모두 열리자 갑자기 엄청난 악취가 확 풍겨 왔다.
조휘가 기겁을 하며 코를 막았다. 황급히 가사의 소매로 코를 막는 건 공천대사도 마찬가지.
“아미타불, 유장독(油障毒)입니다. 극독은 아니나 사람의 심신을 지치게 하지요. 내력을 운용하여 배출해내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내력을 운용해 독기를 몰아내자 금방 머리가 맑아졌다.
불마동의 내부에 들어서자 곧 거대한 공동이 조휘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방 천지에 종유석으로 가득한 거대한 공동은 협소한 달마동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곳부터는 반드시 소승이 지나가는 자리로만 따라오셔야 합니다.”
범승대사의 얼굴이 한껏 신중해졌을 때 공천대사의 깊이 탄복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허어, 이와 같은 심처에 기관이 있는 것도 놀라운데 아직 작동하고 있단 말이오?”
“아미타불, 본디 불마동은 죄인들을 가두기 위한 곳입니다. 이곳 입구 외에도 수많은 기관이 아직도 건재하니 저를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방장 어른.”
“알겠소.”
계속 신경을 쓰지 않으면 범승대사가 밟았던 자리를 그대로 따라 밟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유장독이 은은한 연기처럼 동굴의 바닥에 흩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범승대사를 따라나서기를 이각쯤 지났을까.
거대했던 공동이 좁아지는 부근에 끝도 보이지 않는 깊은 구멍이 조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아득한 깊이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조휘.
그때 범승대사의 황당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미타불, 저를 따라 뛰어내리시지요.”
“……예?”
저 끝도 모를 구멍으로 뛰어내리라니? 이 땡중이 지금 정신이 나간 건가?
“그럼…….”
휘리릭!
승포 자락을 휘날리며 곧바로 구멍으로 뛰어내려 버리는 범승대사.
곧이어 그가 하강하면서 일으키는 엄청난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하.”
공천대사가 조휘를 지그시 응시했다.
“아미타불, 그는 하원의 밀승이외다. 그의 말은 천금의 무게보다 무겁소.”
휘리릭!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공천대사도 뛰어들어 버렸다.
“아니 이 땡중들이……!”
황당한 얼굴로 한참이나 끝도 보이지 않는 구멍을 바라보던 조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매만졌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의념을 일으켜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나 허공답보(虛空踏步)를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도 아닌데 굳이 자신의 무위를 소림에 드러내기는 싫었다.
쏴아아아아아!
중력에 의해 조휘의 몸이 미친 듯이 구멍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가공할 풍압에 의해 몸이 제멋대로 휘날린다.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면 죽기 전에 기절한다더니 과연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조휘는 천근추를 일으켜 몸의 중심을 바로 했다.
아래로 향하던 머리가 위쪽으로 고정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그러나 천근추로 인한 가속은 막을 수 없었다.
‘깊다!’
아래로 하강한 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구멍의 끝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데.
촤촤촤촤촥!
“커흑!”
갑자기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온몸이 구속되는 느낌이 몰아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조휘가 황급히 검천전능지체를 일으켜 안력을 돋우자 그의 두 눈에서 눈부신 백광이 흘러나왔다.
“헐!”
자신의 주위로 광활한 은빛 그물이 펼쳐져 있었다.
초거대 상회의 주인인 조휘가 그 그물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게 다 천잠사라고?”
놀랍게도 공동을 막고 있는 수십 장의 그물은 모두 천잠사로 짜여 있었던 것.
제법 먼 곳에서 범승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시주의 안목이 꽤 고명하외다.”
“와 씨.”
이걸 모두 잘라 팔면 도대체 돈이 얼마야?
검천전능지체를 거둔 조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불마동이오.”
과연 거대한 그물의 끝자락으로 시선을 옮기자 죄인들을 가두는 수많은 동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와……!”
한번 들어오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곳!
어검비행(御劒飛行)을 발휘할 수 있는 절대경의 상위 경지를 이룩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만한 경지를 이룩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이런 곳에 마인을 가두면서 내공과 근맥을 폐하지 않을 리가 없다. 탈출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 가시지요 시주.”
그 말을 끝으로 범승대사가 곧바로 보법을 일으켜 그물에서 벗어나자 조휘도 남궁의 보법 뇌전풍(雷電風)을 일으켜 첫 번째 동굴의 전면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던 공천대사는 파리해진 안색으로 굳어져 있었다.
“……아미타불! 도대체 이런 마기가!”
‘마기(魔氣)?’
조휘도 황급히 기감을 끌어올려 동굴 내부를 감지해 보았으나 공천대사가 말했던 마기라고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순하고 강건한, 그리고 친숙한 기운이 자신의 기감에 포착되고 있었다.
‘마신공!’
틀림없었다.
이건 자신의 마신공과 한 치의 틀림도 없는 동일한 기운.
“아미타불, 벌써 느껴지십니까? 방장 어른, 저기 동혈의 끝자락에 마신의 유해가 있습니다.”
“노납의 평생을 통틀어 이런 정순하고도 지독한 마기는 처음이오!”
조휘는 내심 의아했다.
정순하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독한 마기라고?
조휘의 입장에서는 검천대신공이나 마신공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기운의 성질이나 특성에 그다지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검신 어른의 검천대신공이 본래 마공 계열에 더 가깝다는 말인가? 내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그건 또 그것대로 말이 안 되는 것이 자신이 남궁세가의 내공을 무수히 겪어 왔다는 것.
검천대신공과 남궁의 내공을 비교해 보면 내기의 성질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궁금증보다는 오히려 풍겨 오는 마신공의 기운 그 자체가 더 궁금했다.
“분명 시체라고 안 하셨습니까?”
이건 분명 살아 있는 무인이 내공을 운용할 때 느낄 수 있는 내기의 파장!
“아미타불, 말로는 설명이 불가하오. 직접 보는 수밖에 없소이다 시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조휘가 보법을 일으켜 앞서 나아갔다.
어느덧 마신공의 기운이 진득하게 느껴지는 공혈 앞에 도착한 조휘.
범승대사와 공천대사도 뒤따라 도착했다.
“여기군요.”
“흡!”
“허어어!”
공혈의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대경하더니 돌연 경전을 외기 시작하는 두 대사(大師).
둘 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그때 범승대사의 꽉 문 잇새 사이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주…… 어서 들어가시오.”
아니 왜 고통을 느끼는 걸까?
순간 그런 의문이 차올랐지만 조휘는 이내 걸음을 옮겨 공혈의 문을 밀었다.
두근.
저 멀리 보이는 강건한 신체.
그자를 보자마자 가슴 언저리에서 익숙한 감각이 전해져 온다.
놀랍게도 마신의 유해로 추정되는 자가 가부좌를 튼 채로 공중에 두둥실 떠 있었다.
한데…….
조휘의 시선은 그의 아래에 부서져 있는 불상(佛像)의 잔해에 닿아 있었다.
‘여래불상……?’
놀라 크게 뜬 눈으로 안력을 돋우자.
“어?”
그의 피부가 붉었다.
분명 머리는 새하얗게 쉬어 있었지만 그의 온몸은 새살이 돋아난 듯 붉디붉었다. 마치 아기 피부처럼.
“홍인(紅人)?”
여래불상.
홍인.
분명 이건 소위강 의원이 묘사했던 월하림주(月下林主)의 모습이 아닌가?
조휘는 잠시 뇌 정지에 돌입했다.
소위강이 묘사했던 ‘월하림주’는, 분명 ‘천마교의 난’에 의해 부상을 입어 기이한 계곡에 갇히게 된 정파 무사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천마교의 난을 일으켰던 ‘마신’이 그 월하림주가 될 수는 없다.
다시금 마신의 유해를 자세히 살펴보는 조휘.
마치 마신의 정체를 아는 듯한 조휘의 반응에, 마기와 사투를 벌이던 범승대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시주! 뭔가 짚이는 바가 있단 말이오?”
“저 사람 혹시 월하림주 아닙니까?”
범승대사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의 용모가 워낙 독특하기 때문에 그런 조휘의 반응은 예상했던 바였다. 이미 월하림주의 풍문은 강호에 제법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그렇소. 그는 월하림주임과 동시에 마신이오.”
조휘가 마신의 유해를 향한 시선을 풀지 않은 채 당황한 음성을 이어 갔다.
“아니 이건 앞뒤가 맞지 않은 상황인데요? 월하림주는 분명 마신의 난에 의해 부상을 입은 정파인으로 알려져 있잖습니까?”
“아미타불…….”
범승대사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마신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달마하원이 알고 있는 비밀의 대부분을 밝혀야 했다.
처음 보는 외인에게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꺼려지는 것이 당연한 것.
조휘도 눈치가 있다.
그가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파악한 조휘가 가늘게 한숨을 쉬며 천천히 마신을 향해 걸어갔다.
익숙한 마신공의 파장이 더욱 짙어진다.
일단 검천전능지체를 일으켰다.
자신의 것과 기운은 동일했지만 성취의 결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훨씬 진일보한 느낌.
이것이 검신 사부님이 말씀하셨던 진정한 신의 경지, 제칠경 마신지경(魔神之境)이란 말인가.
그렇게 좀 더 걸어가자 마신의 용모가 더욱 자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기다랗게 늘어진 백색 미발(美髮).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진 입과 다부진 얼굴.
새살이 돋아난 듯한 아이 같은 피부를 제외하면 그다지 특징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용모일 뿐.
일 장 이내로 접근하자 상상도 못할 강대한 기운이 몰아쳐 조휘의 내부를 진탕시켰다.
“흐읍!”
조휘는 당혹스러웠다.
절대경의 무극에 근접한 자신의 경지로도 이만한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그 순간.
사르르르르르르…….
흘러내리듯, 또 나부끼듯 환상처럼 사라져 가는 마신의 유해.
또한 그가 내뿜고 있던 강대한 마신공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렇게 그의 육체가 허무하게 사라진 자리에는 새파란 귀기를 뿜고 있는 목걸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아!”
똑같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의천혈옥의 모양과 단 한 치도 틀리지 않는 동일한 목걸이!
옥(玉)을 감싸고 있는 저 금박의 문양도 금줄의 꼬인 형태도 틀림없는 의천혈옥의 모습 그대로였다.
휘우우우웅.
탁.
마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잠시 바람결이 일어나더니 이내 목걸이가 바닥에 떨어진다.
비명처럼 들려오는 범승대사의 목소리.
“아미타불! 아아! 마신이여!”
그를 기리는 듯 연신 불호를 외며 예를 다하는 범승대사.
그의 곁에 있던 공천대사도 나직이 불호를 외며 마신의 내세를 축원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당황해하는 태가 역력한 조휘.
아니, 그 긴 세월 동안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마신이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환상처럼 사라져 버린단 말인가.
멍하니 굳어진 채 한참이나 서 있던 조휘.
그가 곧 천천히 걸어가 마신의 의천혈옥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우우웅-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반응하는 마신의 의천혈옥.
조휘가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찌릿한 감각을 느꼈을 때 또다시 방금 전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니 또?”
사르르르르-
마신의 의천혈옥도 환상처럼 빛살로 변하다가 이내 물결치며 허무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 새파란 기운들은 흩어질 듯 하면서도 한참을 허공을 노닐다가 순간 조휘의 의천혈옥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크게 눈을 부릅뜨는 조휘.
“……크윽!”
뇌가 부서지는 듯한 처절한 격통이 밀려오자 조휘가 몸을 비틀거렸다.
조휘가 동혈의 벽면을 손으로 짚으며 깨질 것만 같은 머리를 매만진다.
‘이건……?’
이 느낌은 흡사 환생 직후 처음으로 중원에서 깨어나던 그날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런 조휘에게로 범승대사와 공천대사가 다가왔다.
“허어…… 이런 기사(奇事)가!”
탄복하는 소림방장 공천대사.
마신의 유해가 기백 년 동안 강력한 마기를 뿜으며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경할 마당이었다.
한데 눈앞의 청년이 다가가자마자 마치 열반(涅槃)에 이른 고승처럼 육체가 흩어져 버리다니!
그럼 저 마신이라는 자가 달마, 혜가, 혜능 조사님들과 같은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를 눈앞에서 보았으니 그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반면, 범승대사는 눈시울을 붉힌 채 연신 합장하며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마신은 달마하원 역사상 최대의 은인이자 귀인.
달마하원의 밀승으로서 그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으니, 그 감개무량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허나 마신의 마지막 유훈을 이룬 셈이요, 오랜 약조를 지킨 셈이니 뿌듯한 마음도 동시에 일어났다.
“아미타불, 시주가 마신의 연자(緣者)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구려. 노납이 보기에 분명 무슨 기사가 일어난 것 같긴 한데…… 시주에게 어떤 변화라도 생겼소이까?”
곤혹스런 얼굴로 미간을 매만지던 조휘가 공천대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뇨. 갑자기 원인 모를 두통이 몰아친 것 외에는 변화랄 게 없습니다.”
“흐음…….”
또 다른 의천혈옥을 지닌 마신이라 해서 내심 거창한 정보라도 파악할 줄 알았던 조휘는 갑자기 모든 게 짜증이 났다.
‘아오, 이게 무슨 시간 낭비냐.’
고작 마신의 최후나 보자고 이렇게 긴 시간을 의미 없게 소모해 버렸다고 생각하니 열이 치밀어 오를 대로 오른 것.
조휘의 짜증 서린 얼굴이 그대로 범승대사를 향했다.
“여래진토에 대해 아십니까?”
곧바로 본론을 꺼내는 조휘.
범승대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하원(下院)은 그 일에 대해는 아는 바가 없소이다.”
당황해하는 조휘.
“아니 방금 전에 마신이 월하림주라고 인정하셨지 않습니까?”
“강호의 소문이란 것은 본디 진실에 살이 붙어 왜곡되거나 왕왕 부풀려지게 마련인 법이오. 소승 역시 여래진토의 풍문을 듣긴 하였으나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오.”
“하…….”
마신의, 아니 월하림주의 용모를 분명 눈앞에서 직접 봤다.
새살이 돋아난 듯한 불그스레한 피부, 그 아기 같은 살결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아미타불, 혹 시주가 여래진토의 풍문을 추적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소?”
곧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그간의 사정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조휘.
장일룡의 딱한 사정을 모두 들은 범승대사가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시주 그런 문제라면…….”
동혈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 가는 범승대사.
“이곳을 살펴보시오. 이곳에는 그가 지내며 남긴 많은 흔적들이 있소이다. 그 흔적들 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오.”
“흔적이요?”
“그렇소. 그는 불가에 귀의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업(業)을 뉘우치기 위해 이곳에서 지냈소.”
마신이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드리워진 이 불길한 동굴 속에 스스로 갇혀 말년을 보냈단 말인가.
조휘는 공천대사와 범승대사를 번갈아 쳐다보다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검천대신공을 운용했다.
츠츠츠츠츠츠-
조휘가 치켜든 철검에서 눈부신 백색의 강기(罡氣)가 흘러나오자.
“아, 아미타불!”
“허어!”
그 광대무변하고도 강맹한 기운에 기겁을 하는 두 대사.
무엇보다 이어진 조휘의 행동이 더 황당했다.
눈부신 백색 강기의 빛살로 동혈의 이곳저곳을 비추며 살피기 시작하는 조휘.
검수의 극의(極意)라는 검강을 고작 횃불처럼 활용한다고?
게다가 검강을 저렇게 길게 지속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아미타불…… 절대지경란 말인가?”
“허어! 그럴 수가!”
순간적으로 강기를 발출하는 것과 지속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저리도 쉽게 강기를 발출하고 또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무혼을 이루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
순간, 소림방장 공천대사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달마동에 들어서기 전 인사를 나누었을 때 분명 이자는 남궁세가의 봉공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다.
남궁세가의 창천담로원주가 창천안(蒼天眼)을 이뤘다는 소문도 파다한 마당이었다.
최근 남궁세가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은 상황.
한데 거기에 절대지경의 무인이 또 한 명 추가된다니!
한 세가(世家)에 세 명의 절대지경이라…….
오랜 강호의 역사 속에 그런 가문이 있었던가?
무신의 가문, 사마(司馬)를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그런 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구대문파에서조차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제왕의 가문이 천하를 누비겠구나.’
구파의 권위를 대변하는 무림의 북두(北斗), 자신은 그런 소림을 이끄는 방장이었기에 마냥 속 좋게 축하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동혈의 벽면을 살피던 조휘가 별안간 깜짝 놀라는 듯 했다.
“음?”
그가 발견한 것은 수많은 글귀들.
그러나 그 글귀들은 이어지거나 어떤 체계를 지니고 있진 않았다.
대부분이 그때그때 심경을 파편처럼 휘갈겨 놓은 느낌.
그 흔적들은 문자였다가 때론 그림이기도 검흔이기도 했다.
조휘는 그런 마신의 흔적에서 어떤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이성이 냉철하고 차가웠다면 이렇게 복잡한 파편처럼 남겨 두지 않았을 테니까.
“아미타불…… 뭔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겠소?”
하원의 밀승들은 이 마신의 흔적들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그가 남긴 심득의 한 자락이라도 연구하여 밝혀낼 수만 있다면 소림의 무공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 하지만 밀승들은 그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
조휘가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아니 도대체 저더러 뭘 보란 거죠?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되요.”
대분이 검흔에 의해 패인 흔적이나 격정이 가득 느껴지는 낙서 따위에 불과하다.
“아미타불…… 시주께서 찾고 있는 그 치유력은 마신의 능력 중 하나였소이다. 소승이 알고 있는 건 그것이 전부이오.”
“……마신의 능력?”
이 무슨 또 개소린가.
그럼 그 계곡에서 신비로운 흙에 몸을 담가 온몸이 치유되었다는 그 이야기가 모두 구라란 말인가.
‘그에게 자체 치유 능력이 있었다고?’
제 몸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천마삼검(天魔三劒)의 마신이라!
아니 그런 마신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무인을 이름 모를 신비인이 단 십 초 만에 죽였다고?
천마삼검은 검신 어른조차 받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판국이었다.
천마삼검의 위력이 얼마나 광대무변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조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미타불, 그렇소. 그의 불가해(不可解)한 치유력은 당시의 밀승들이 모두 지켜본 틀림없는 진실이외다.”
그런 범승대사의 말을 들은 조휘가 다시 동혈의 벽면을 살펴 갔다.
지금도 장일룡은 극한의 고통 속에 죽어 가고 있는 터.
조휘로서는 혹시라도 마신의 치유력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조휘의 시선이 멈춘 곳.
분명 저건 낙서가 아닌 그림의 형태다.
아니 그런데 이건 좀…….
-크윽! 이런 이혼(移魂)의 격통이라니……! 그런데 여긴 어디……?
조휘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온 그 순간.
-앗! 그건 안 돼. 보지 마! 고개를 돌리란 말이다!
조휘가 발견한 것은 춘화도(春畫圖).
곧 조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아니, 설마 혹시 마신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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