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36
36 章>
조휘가 흑천련 총단의 하늘을 어검비행으로 누비며 무차별적으로 강기 세례를 퍼붓고 있을 때.
저 아래 내원의 중심에서부터 시커먼 장포를 걸친 흑천련의 고수들이 질풍처럼 전장에 합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흑천련주? 마겸왕?”
조휘가 안력을 돋워 살펴보니 선두에서 맹렬히 경공을 펼쳐 오는 자들은 분명 흑천련의 수뇌들이었다.
련주와 수뇌를 따르는 고수들이라면 틀림없이 정예 중에 정예.
더구나 그 수 역시 이천(二千)은 가볍게 넘어 보였다.
수가 너무 많았다.
자신의 의형강기와 공공력이 아무리 천하의 절초라고 하나 저들 모두를 무력화시킬 수는 없었다.
저들의 사분지 일만이라도 정문 밖을 빠져나가 버린다면 남궁의 검수들과 동료들이 위험에 빠진다.
“쳇!”
조휘가 곧바로 지상을 향해 어검비행을 시전했다.
이어 그의 전면에 거대한 푸른 강기가 서린다.
그 푸르른 기운이 점점 밝게 빛나더니 곧 엄청난 빛무리로 화해 적을 향해 폭사되었다.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劒).
후삼식(後三式).
창궁무진천하(蒼穹武震天下).
남궁세가의 절초 중에서 가장 강력한 광역 절초이자 가공할 압력을 자랑하는 중검(重劒)의 묘!
한데 그 위력이 남궁성찬이 알고 있는 그런 위력이 아니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궁성찬의 얼굴은 그야말로 경악.
세상에!
하늘을 뒤엎어 버리는 검력이라니!
하지만 흑천련은 조휘의 검공을 가장 많이 겪은 집단이었다.
순간 화경의 무위 이상인 자들만 조휘의 검력을 상대하기 위해 허공으로 솟구쳤고 나머지 고수들은 모두 사방으로 산개한다.
쩌저저저적!
흑천대살이 뾰족한 회색빛 강기를 일으켜 조휘의 푸른 검력을 직선으로 찢어 내자.
그 틈을 탄 화경의 고수들도 일제히 강기를 일으켜 분산된 조휘의 검력을 와해시킨다.
푸른 강기의 빛과 어울리는 수십 줄기의 강기 다발들!
그 장면은 가히 일대 장관이었다.
콰콰쾅!
콰콰콰쾅!
거센 폭음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기운을 잃어버린 창궁무진천하!
화경의 고수들 중 몇몇만 부상을 입었을 뿐 조휘의 절대검력을 기어이 막아 낸 것이다.
화경의 고수 다섯이면 절대경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 강호의 격언!
과연 한 명의 절대경과 수십 명의 화경이 모이자 조휘의 검세를 끝내 막아 내 버린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엄청난 폭음이 천지를 진동했다.
퍼퍼퍼펑!
시뻘겋게 달궈진 천화대포들의 포열에서 수백 발의 포탄이 동시에 튀어나온 것이다.
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백 발의 포탄이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비처럼 쏟아지려 하고 있었다.
경악한 얼굴로 포탄들의 궤적을 살피던 조휘는 내심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천하공공도를 아무리 많이 난사해 본들 저 많은 수의 포탄을 모두 빨아들일 수는 없다.
게다가 무한에 이르는 내공을 지닌 자신이었지만 의형검강의 묘용이 담긴 수십 번의 절초와 그와 짝을 이루는 천하공공도를 남발한 상태라 제법 탈력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
맹렬히 두뇌를 회전하던 조휘가 이내 최적의 판단을 내렸다.
천하절대검벽(天下絶大劒壁)!
단 일 검으로 당가의 만천화우를 막아 낸 검신 어른의 검초, 천검류 최강의 방어 초식이 흑천련의 상공에 현신한 것이다.
곧 흑천련의 상공에서 한 자루의 의형검이 생겨나 한 개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네 개로 끝없이 분화해 갔다.
촤라라라라락!
마침내 생겨난 거대한 검림(劒林)!
콰콰쾅!
콰콰콰쾅!
검벽에 부딪치고 있는 엄청난 수의 포탄들!
가히 일대의 장관, 그 기상천외한 광경에 흑천련의 고수들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쩍 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포탄의 궤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의형검이 분화하기 전에 빠져나갔거나 검림의 바깥을 스치며 나아간 포탄들이 흑천련의 정문 밖을 향해 모조리 쏟아져 내린 것이다.
이내 수십 발의 포탄들이 천룡전위대와 남궁세가의 대열을 휩쓸어 버렸다.
콰콰콰쾅!
이어 들려온 참혹한 비명 소리들!
-으아아악!
-크아아아악!
새하얀 연기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포탄흔!
포탄과 함께 폭사되어 시커멓게 변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궁 무사들!
그런 조휘의 시야에 이윽고 한설현까지 들어온다.
아직도 희뿌연 서리가 일렁이고 있는 그녀의 두 손.
그녀가 빙백신장을 일으켜 포탄을 막다가 온몸의 의복이 찢긴 채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온몸에 낭자한 피.
내면에서 일어난 이유 모를 분노가 순식간에 그의 몸을 지배한다.
툭-
이성의 필라멘트가 뚝 하고 끊겨 버리는 듯한 기이한 느낌과 함께 그의 두 눈에서 분노의 광망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화르르르르르!
조휘의 무혼, 그의 절대를 상징하는 색은 새하얀 백색이었던바.
그런 그의 무혼이 갑자기 자줏빛 겁화(劫火)로 변하자 흑천대살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갔다.
“피……!”
흑천대살은 수하들에게 피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가 않았다.
덜덜덜.
아래를 보니 자신의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 없는 공포.
무혼을 아로새긴 사파의 절대자인 자신에게 아직 이만한 공포가 남아 있었단 말인가?
갑자기 모든 것이 불길하다.
그의 그런 공포 섞인 예감은 이내 현실로 변해 버렸다.
조휘가 두 눈에 자줏빛 귀화를 일렁이며 짓씹듯 중얼거린 그 순간.
“천마삼검(天魔三劒)…….”
두근.
뭐, 뭐라고?
흑천대살의 경악한 얼굴이 부서지듯 조휘를 향해 꺾어졌다.
불같이 타오르는 자색 귀화.
단 한 톨의 이성도 느껴지지 않는 나찰 같은 표정.
그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것만 같은 공허한 얼굴이었다.
“제일식(第一式).”
귀기마저 섞인 조휘의 음성에 흑천대살은 이내 목청이 터져 갈 듯이 부르짖었다.
“피, 피하라! 모두 산개하라! 여기서 벗어나란 말이다!”
흑천련 총단에 귀곡성과 같은 조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천마멸겁무(天魔滅劫舞).
인간이 펼치는 무공인 이상 반드시 어떤 형태나 소리, 빛깔 등의 요소가 외부로 발현될 수밖에 없다.
체내에 쌓은 내공을 발출, 가공하여 물리적인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무공의 기본적인 성질이기 때문이다.
허나 천마멸겁무(天魔滅劫舞)는 그런 무공의 상식을 모조리 파괴했다.
그것은 강기(罡氣)도 아니었고 기공(氣功)도 아니었다.
그 어떤 빛살도 굉음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눈 깜빡할 사이에 이백여 장의 장방형 공간이 말 그대로 ‘소멸’했다.
그야말로 멸겁(滅劫).
흑천련 총단은 왼편의 구류산의 산등성이를 끼고 만들어진 성채였다.
한데 그 구류산 전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광활했던 총단의 터가 반 이상 소멸해 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 새롭게 자리 잡은 것은 지하 세계로 이어질 것만 같은 거대한 장방형의 무저갱.
그 시커먼 장방형 구덩이는 얼마나 깊은지 그 끝이 짐작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흑천대살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멍하니 조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조휘의 발밑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장방형 구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축축한 물기가 번져 가는 흑천대살의 사타구니.
사도의 사패황이자 흑천련의 련주, 절대경의 무인이 그야말로 지려 버린 것이다.
“허으…… 어헐…… 어흑흑……!”
극고의 충격으로 인해 침과 눈물, 오줌 등 인간의 몸이 배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있는 흑천대살.
필생의 갈망, 평생토록 이룩한 업(業)…….
그렇게 한 남자의 야망, 사랑했던 모든 것이 세상에서 송두리째 지워져 있었다.
그제야 수하들에게 피하라고 고함쳤던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흑천대살.
그 순간 무저갱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조휘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파고들었다.
“……흑천련은 사라졌다.”
그렇게 조휘의 공언(公言)이 염라대왕의 판결처럼 흑천대살의 폐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한 고통.
순간 흑천대살은 살아남기 위해 조휘의 발밑을 파고들었던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놈들은 양민을 학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황실의 대포를 강호의 분쟁에 사사로이 활용했다. 이 일이 황실에 알려지면 네놈들 모두 ‘구족(九族)의 멸’의 형벌을 받게 될 터. 네놈은 그렇게 되길 바라나?”
공허한 흑천대살의 시선이 조휘의 뒤편 정문 쪽, 자신의 수하들을 향하고 있었다.
전의를 상실한 수하들.
모두가 바닥에 무기를 버린 채 멍하니 자신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이 흑천대살이…… 어떻게 하면…… 되겠소이까…….”
조휘의 두 눈에 맺혀 있던 마화의 기운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흑천련의 모든 사업장은 조가대상회에게 양도 혹은 해체된다. 살아남은 흑천련의 잔당들 역시 새롭게 편성될 조가대상회의 계열상, 조가건설(曹家建設)의 노동자가 된다. 이 둘을 약속한다면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내가 막아 주지.”
불만이란 것도 제정신일 때야 생기는 법.
모든 감정들이 재처럼 모두 타 버린 흑천대살로서는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그리하겠소…….”
조휘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더 이상 사람을 죽이긴 싫었다.
마신공의 마화에 온몸을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현상을 초래하는지, 방금 전의 결과로 충분히 증명되고 남음이었다.
검신 어른께서 펼쳐 보이셨던 화산에서의 환상(幻想).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 신의 힘, 그 마(魔)의 힘을 끝내 자신 스스로가 발휘하고야 만 것이다.
“……기다려라.”
콰아앙!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나며 이내 흑천대살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조휘.
그렇게 검천전능보를 일으켜 단숨에 한설현에게 다가간 조휘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남궁성찬은 물론 조휘의 동료들마저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의 표정에 전에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 차례 한설현의 상세를 살피던 조휘가 남궁장호를 응시했다.
“외상보다 내상이 훨씬 심해. 장호 형. 어서 한 소저를 우리 장원으로…… 부탁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남궁장호가 진중한 얼굴로 다가와 한설현을 부축하자 그제야 조휘는 한시름 놓았다.
“또 어디 가려고?”
남궁장호의 질문에 조휘의 시선이 북쪽을 향했다.
“대곳간.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지.”
끝도 없이 깊이 파인 장방형 구덩이와 조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장일룡이 별안간 호탕하게 웃었다.
“와하하하! 우리 조휘 형님! 이젠 정말 지려 버릴 오줌도 없수! 저런 게 무공이 맞긴 한 거요?”
팔왕을 비롯한 수십여 명의 화경 천살들, 그들을 따르는 이천여 병력을 단 일 검(一劒)에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무공이라니!
겸연쩍해 애써 호탕하게 웃어 보는 장일룡이었지만, 그 표정에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공포(恐怖)를 숨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청뇌(淸腦) 장일룡마저 이러할진대 다른 이들은 어떠할까?
조휘가 염상록과 진가희를 불러 세웠다.
“그래도 네놈들이 가장 멀쩡하군. 빨리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상회로 복귀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조, 조, 존명!”
“존명! 아, 알겠어요!”
자신들이 평생 받들어 모시던 흑천련주 흑천대살이 조휘의 면전에 개처럼 엎드린 마당.
그들은 마치 오체투지라도 할 기세였다.
조휘가 참혹하게 부상을 입은 자들을 슬픈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의외로 가장 선두에서 적을 막고 있었던 남궁세가의 검수들보다 후방의 천룡전위대 쪽이 더욱 처참했다. 남궁세가의 검수들은 하나같이 용린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분노가 치미는 조휘.
설마하니 흑천련이 황실의 대포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다시 흑천대살에게 향하려던 그때.
“……잠시 이야기 좀 하자꾸나.”
조휘를 불러 세운 이는 다름 아닌 남궁성찬이었다.
남궁성찬은 이 젊은 놈과 터럭 같은 인연 하나라도 남기기 위해 무기명제자로 받아들인 과거가 생각나 피식 웃고야 말았다.
무기명 제자는 무슨…… 이놈은 무림사의 신(神)에 근접한 놈이었다.
“중한 일입니까?”
지금도 대곳간에서는 남궁의 검수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어 가고 있을 터.
조휘로서는 단 한시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더없이 중한 일이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조휘가 의념을 일으켜 순식간에 음파를 차단했다.
절대경의 초입에 이른 남궁성찬이었기에 조휘가 펼친 그 의념의 한 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가히 바다와 같은 존재감, 놀랍도록 농밀한 조휘의 의념공에 그는 질식할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말씀하셔도 됩니다. 어르신.”
“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남궁성찬이 길게 한숨을 쉬다 입을 열었다.
“혹, 선주일계와 인연이 닿은 것이냐?”
선주일계의 뜻은 선인들의 세상.
조휘가 나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인들을 본 적은 없습니다.”
남궁성찬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변했다.
“내 너에게 사부된 자로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린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사부로서 당부하마. 방금 전과 같은 신위를 다시는 강호에 드러내지 말거라.”
당혹해하는 조휘의 두 눈.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저런 힘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묻지 않으마. 하지만 분명 네 힘은 사람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다. 인간의 인과율을 벗어난 힘을 발휘하던 자들…… 그 옛날 무림의 신(神)으로 추앙받던 이들은 모두 그 힘을 발휘하자마자 얼마 가지 못하고 실종되었다.”
중원을 혈겁으로 몰아갔던 마신.
암흑마교를 단신으로 무너뜨린 검신.
새외대전을 일거에 종식시킨 무신.
그들 모두가 신의 위용을 드러내자마자 강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특히나 무신의 가문인 사마세가는 새외대전 이후 아직도 봉문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강호의 이름 높은 식자(識者)들의 공통된 견해. 선주일계가 나섰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지만…… 아무튼 약속해 줄 수 있겠느냐?”
조휘도 일전에 조상님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신좌(神座)와 그 추종자들.
그들이 선계라는 곳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호를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그 공명정대한 검신 어른께서 단숨에 은봉령주를 죽인 것만 봐도 그들이 선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자중하도록 하지요.”
그제야 조금은 편안해진 남궁성찬의 얼굴.
그렇게 긴장이 풀리니 무인의 호기심을 드러낼 여유가 생겼다.
“그것이…… 검신의 무공이더냐?”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깨달은 마신공은 마신이 익혔던 그것과는 좀 달랐다.
검천대신공과의 합일(合一).
천마삼검에 그 공능이 그대로 녹아 있었기에 자신의 천마삼검은 그 옛날 마신의 그것과는 분명 결이 다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실 아까 전부터 마신이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네놈! 도대체 나의 천마삼검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조휘는 자신의 선조들과 전혀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이는 독고의 존자들에게 그다지 정을 느끼지 못했다.
조휘가 그런 마신의 음성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다시 남궁성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의혹으로 가득한 남궁성찬의 눈빛.
마화로 불타던 조휘의 전신을 똑똑히 지켜본 마당이다.
그 인간 같지도 않는 엄청난 패도지력이 검신의 그것이라고?
하지만 조휘로서는 정파를 대표하는 남궁세가의 원로에게 차마 마신공을 언급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일단 알았다. 어서 가 보거라.”
“예.”
우우우웅-
두둥실 떠오른 철검 위로 올라탄 조휘가 멍하니 굳어 있는 흑천대살을 그대로 낚아채며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 * *
남궁수가 도합 스물에 달하는 천살들과 어지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천살들은 모두 역천살혼대의 고수들.
개개인의 무위는 분명 남궁수의 절대경에 비해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은 철저한 합격술과 차륜전으로 남궁수와 맞서고 있었다.
“후우.”
남궁수는 진정한 제왕의 검, 제왕검형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제왕검형의 후삼식을 모두 완성했더라면, 지금의 경지인 절대경의 무령(武靈)을 넘어 무극(無極)을 이룩했을 터였다.
남궁수가 창천검을 곧추세운 채 슬쩍 사위를 살펴보았다.
분명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무사들은 흑천련 쪽이 훨씬 많았다.
허나 수적 열세로 인한 난전은 피할 길이 없었다.
대부분의 남궁 검수들이 흑천련 무사 대여섯씩을 상대하고 있었다.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한 시라도 빨리 눈앞의 천살들을 정리하고 전장에 합류해야 한다.
하지만 저 약아빠진 놈들은 절대경의 무인을 상대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법 사이사이에서 가끔씩 강기(罡氣)를 일으키며 튀어나오는 화경의 고수들이 문제였다.
진법 속 화경의 고수는 셋에서 다섯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들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저 진법을 뚫을 길이 없었다.
다시 호흡을 길게 늘어뜨리며 검을 쥐는 남궁수.
곧 그의 검에서 창공의 푸른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자.
역천살혼대의 진이 다시 풍차처럼 휘돌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쇄검에서도 수많은 검기와 강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때.
쏴아아아아아아아-
대곳간의 상공에서 바람을 가르는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어검비행으로 날아오고 있는 조휘!
진법 속의 천살들이 하나같이 기절할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려, 련주님!”
“허억!”
어느새 장내에 도착한 조휘가 멱줄을 쥐고 있던 흑천대살을 장내에 던져 버렸다.
흑천대살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듯한 그의 공허한 두 눈.
철검에서 내린 조휘가 그런 흑천대살의 머리를 지그시 지르밟았다.
그 순간.
병장기 부딪히던 소리로 가득한 대곳간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적막이 찾아들었다.
“니들 대장 대가리 터지는 꼴 보기 싫으면 전부 칼 버려.”
조휘가 다리에 힘을 주자 흑천대살의 얼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크으으으으……!”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흑천대살의 신음이 울려 퍼지자.
조휘의 두 눈에서 불같은 광망이 흘러나왔다.
“전부 칼 버려 이 새끼들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와 살점,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던 대곳간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
“…….”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흑천대살이 누군가?
사파를 삼분하고 있는 삼패천의 주인이다.
사파에 단 네 명 존재하는 절대지경의 고수, 사패황의 일인이며 정파의 팔무좌를 칠무좌로 만들어 버린 살아 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한데 그런 엄청난 자가 개처럼 엎드려 그 얼굴이 조휘에게 짓밟혀 있음에도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초점 없는 흐릿한 동공.
그의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광경을 수많은 귀살과 천살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들의 지존인 흑천대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이 처음인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장면이 갑자기 시야로 들어오니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쨍그랑.
대곳간의 천살들을 대표하는 혈우독비 추룡이 열두 자루의 비도를 바닥에 버렸다.
그렇게 대곳간에서 가장 강한 흑천련의 고수가 굴복하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이천에 달하는 흑천련 병력이 조휘라는 단 한 사내에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다.
“허어…….”
허탈함마저 느껴지는 남궁수의 감탄성.
흑천대살 이경진.
사십 년 이상 남궁세가를 괴롭혀 온 대적(大敵)이다.
남창 포양호의 지배자였던 그의 처참하리만치 초라한 모습을 대하니 이상하게도 시원하기보다는 답답한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조 봉공…….”
조휘는 단숨에 남궁수의 말을 잘랐다.
“설마 적장으로서의 예우를 해 줘라…… 뭐 그런 말씀을 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침잠한 조휘의 두 눈.
일체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조휘의 무심한 시선에 남궁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새끼의 명령에 의해 우리 조가대상회의 사원 이백사십칠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초반식의 무공도 익히지 못한 상인들을 죽였다고요. 이번 일만큼은 제게 인(仁)을 강요하진 말아 주십쇼.”
그 순간 조휘의 철검에서 눈부신 백광이 흘러나왔다.
기다란 백색 검강(劒罡)이 그대로 흑천련 제일지부의 편액을 향해 쏘아진다.
콰콰콰쾅!
거친 굉음과 함께 흑천련 제일지부의 거대한 편액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오늘부로 강호에서 흑천련이란 세력은 해체되었다.”
광오한 말이었으나 그의 발밑에 흑천련주의 머리가 깔려 있으니 결코 그 선언이 협박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본 조가대상회의 휘하에 들어올 자는 무릎을 꿇어라.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떠나도 좋다. 대신 조가대상회의 일원이 될 기회는 영원히 박탈될 것이다.”
조휘가 철검을 허리에 차며 다시 좌중을 향해 강력히 일갈했다.
“련에 바칠 상납금 때문에 피를 말릴 필요도 없고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임무도 없을 것이다. 무공의 고하에 따른 차별도 없을 것이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줄 것이며 오직 실력과 성과대로 월봉을 지급하겠다.”
이번에도 혈우독비 추룡이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이름이 뭐지?”
“추룡입니다.”
조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그를 불러 세웠다.
“추룡 사원, 첫 번째 임무를 하달하겠다. 대곳간의 모든 쌀을 염가에 매입했던 값 그대로 상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지금 즉시 그 일부터 처리하도록.”
“존명!”
털썩털썩.
일다경의 시간 동안 흑천련의 병력 중 칠할 이상이 무릎을 꿇었으나, 대곳간을 벗어나는 자들의 수도 상당했다.
조휘는 떠나는 자들을 일일이 눈에 담으면서도 미련은 없다는 얼굴이었다.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그제야 조휘가 남궁수를 바라보며 좀 사람다운 얼굴을 했다.
“대충 일단락된 것 같습니다. 가주님.”
“허허…….”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탈하게 웃고 있는 남궁수.
비로소 모든 것이 실감됐다.
장강 이남의 성(省) 중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을 자랑하는 강서성(江西省)을 무림의 세력도 아닌 일개 상단이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강호의 판도를 뒤집어엎는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조가대상회와 조휘라는 이름이 전 강호를 위진하기 시작했다.
* * *
조휘는 가장 먼저 흑천련의 기습에 의해 사망한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또 일자리를 약속했다.
그 일을 진행하는 데 조가대상회의 재산 사분지 일을 투입했을 정도로 보상금의 규모는 막대했다.
사실 표국이나 상단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로, 강호의 상회가 이렇게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주는 예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어떤 상단도 보여 주지 못했던 파격적인 조가대상회의 행보에, 수뇌부 이하 사원들 모두의 충성심이 더욱 단단해졌다.
이어 조휘는 조가대상회의 부서진 강서분타를 총단으로 승격시키고 대(大)개편을 예고했다.
일개 장원의 규모였던 예전과는 달리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총단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제갈세가의 진법이 가미된 수십 채의 전각이 내·외원의 구분을 두어 건설되고 있었다.
그 전각들은 긴밀한 협력을 요하는 계열상들끼리는 함께 배열되었고, 독립성을 요하는 계열상들은 따로 분리되었다.
총단의 건립이 모두 끝날 무렵 조휘는 몇 개의 새로운 조직을 창설했다.
조휘는 외부에서 정보를 조달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번 흑천련의 기습만 해도 독립적인 정보 단체를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충분히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래서 출범한 것이 조가신비각(曹家神祕閣).
조휘는 조가신비각을 강호일비라는 야접 못지않게 키우려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이어 조가대상회 최초의 무력단체라 할 수 있는 조가천무대(曹家天武隊)도 동시에 탄생되었다.
총 십이 개 조로 구성된 조가천무대는 흑천련 출신 천살들이 초대 조장을 맡게 되었으며 그 휘하에도 최소 절정 이상의 무위를 지닌 고수들로 빡빡하게 구성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제일 조부터 제십이 조까지의 월봉이 달랐는데 일 조의 월봉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시합과 대무를 통해 언제든지 상위의 조에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고 이는 맹렬한 경쟁 의식을 통해 끊임없이 조가천무대를 발전시키려는 조휘의 조련 수법이었다.
마지막은 조가건설(曹家建設)의 창설이었다.
특이한 것은 조가건설의 모든 구성원들이 절정 이하의 흑천련 무인들이라는 점이었다.
과거 사천행 당시 조휘는 깎아지른 듯한 그 험난한 천애의 절벽에 사람이 지날 수 있는 소로를 기똥차게 뚫어 놓은 광경을 직접 목격했었다.
당시 그 경이로운 광경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떠올랐던 아이디어!
무공의 고수들을 건설 인부로 고용한다면?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근력을 지닌 무인들!
게다가 자유자재로 벽을 오를 수 있는 벽호공과 날렵한 경공을 구사하는 무인들이라면 그 노가다의 효율이란 실로 미쳤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조가대상회의 구조 개편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이어 조휘는 사업 개편에 돌입했다.
일단 조휘는 강서에서 흑도(黑道)의 묵은 때를 모두 벗기고 싶었고 이에 흑천련의 사업장 중 매음굴, 도박장 등 떳떳하지 못한 곳들은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그다음으로 착수한 일은 포양호를 지나는 뱃길을 더욱 정비하고 확장하는 일이었다.
조휘는 포양호의 핵심 가치가 ‘물류 운송’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 가치를 확장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선순환의 구조가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낸 조가대상회의 위용이란 가히 위풍당당 그 자체.
한데 묘한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과연 조가대상회가 강호의 대문파인지 중원을 대표하는 상회인지 정체성이 아리송하다는 점이었다.
그야말로 무상복합체(武商複合體)!
놀랍도록 괴이쩍고 전무후무한 집단이 강호에 출현한 것이다.
* * *
조가대상회 총단.
조휘가 바쁜 걸음으로 조가자원각(曹家資源閣)을 지났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진가희가 떨어졌다.
“아오 시발! 깜짝이야!”
사업 구상에 골몰하며 걷고 있던 조휘로서는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서프라이즈였다.
조휘도 사람인 이상 늘 기감을 끌어올리며 사주 경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 멀쩡한 길을 놔두고 지붕만 타고 다니는 거냐?”
진가희에게 수십 채의 전각이 세워진 조가대상회의 총단은 그야말로 천국.
진가희는 뚱한 얼굴로 조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약속 왜 안 지켜?”
조휘의 두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무슨 약속?”
“반 홉! 주기로 했잖아!”
와, 그걸 또 기억하고 있냐.
피를 향한 광적인 그녀의 집착에 조휘는 질린다는 듯 진가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쁘다. 나중에.”
“흥! 흑천련 총단 앞에서는 왜 그랬어?”
짜증이 난 듯 얼굴을 와락 구기는 조휘.
“또 왜! 뭐가!”
“남궁 형! 장 부장! 한설현 과장! 전원 정문에서 대기 타세요!”
“…….”
조휘가 그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멍한 얼굴을 하고 있자 진가희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희게 변했다.
“다른 애들은 다 일일이 불러 주면서 왜 나만 쏙 빼놔? 나 혼자 배다른 식구야?”
진가희를 더욱 열 뻗치게 만드는 조휘의 행동은 또 있었다.
“그 빌어먹을 폭탄에 나도 다쳤거든? 그런데 왜 한설현 그년만 돌봐 줘? 한 소저는 ‘그녀’고 난 ‘싯팔년’이야?”
“아, 아니…….”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양 볼, 마치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그 창백한 얼굴은 그야말로 신선한 소름이었다.
“그년도 내가 구한 거잖아! 당신의 얼음 공주를 내가 구했다구!”
“아 싯팔.”
조휘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철검으로 자신의 팔에 생채기를 내며 피를 냈다.
쭙!
울음을 터뜨리다 그대로 조휘의 팔을 베어 무는 진가희.
“어어? 야 이년아! 반 홉 넘는다?”
“읍……!”
피를 빨다 말고 급격하게 수축하는 그녀의 동공!
진가희가 그대로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자 조휘가 기겁을 하며 그녀의 상세를 살폈다.
“아오 또 갑자기 왜 이래?”
“흐으으…… 으으……!”
두 눈이 완전히 뒤집어져 허연 흰 자위를 모두 드러내니 그 창백한 얼굴이 가히 그로테스크할 지경!
“정신 좀 차리라고!”
그때, 진가희가 작살 맞은 물고기마냥 부르르 떨더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기묘했다.
극도의 쾌락과 고통이 함께 어우러져, 고통의 비명인지 쾌락의 교성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각쯤 흘렀을까.
벌어진 입으로 헤 하고 웃으며 침을 흘리다 벌떡 일어나는 진가희.
“다, 당신 피는 진짜 미쳤어! 내 혈사심천공이 단숨에 구성에 올랐다구!”
“구성(九成)?”
십성(十成)까지 단 한 단계만을 남겨 두었다고?
조휘가 설마 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곧 절대라는 거냐?”
“글쎄? 구성에서 십성을 이루는 것은 일성부터 구성까지의 노력보다 더욱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어쨌든…….”
“어쨌든?”
“지금의 내가 화경의 극(極)인 것만은 확실해.”
“호오.”
조휘로서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물론 절대경 무인의 피를 이토록 쉽게 취할 수 있는 그녀의 주변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조휘는 이 혈사심천공이라는 내공심법이 강호일절의 신공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의 발전 속도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진가희가 뜸을 들이자 왠지 조휘는 불길한 예감에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았다.
“내가 진짜 조금만 더 먹으면 뭔가 또 될 거 같거든?”
“미친년.”
소름 돋은 얼굴로 자신의 소매를 내리는 조휘.
“바쁘다. 이만 가라.”
진가희가 다급하게 조휘의 옷깃을 잡는다.
“아니,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 될 거 아니야?”
“아! 거참! 또 뭐!”
진가희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그려졌다.
이어 양 검지를 맞부딪치며 몸을 배배 꼬는 진가희.
“어차피 폐인이 된 놈이잖아. 그놈…… 나 주면 안 돼?”
“누구?”
진가희가 환하게 웃었다.
“흑천대살.”
팽각으로도 모자라 사파의 거두였던 흑천대살마저 자신의 피노예(?)로 길들이겠다는 진가희의 당혹스런 발상에 조휘는 잠시 뇌 정지가 왔다.
하지만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직은 조가천무대의 구성원 대부분이 흑천련 출신의 고수들이다.
만약 전 흑천련주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강서 일대의 사파인 전체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조휘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돌아가.”
진가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왜? 왜 안 돼? 후원에 처박혀서 허구한 날 술만 처먹고 있는 폐인에 불과하잖아? 어차피 쓸모도 없는 인간인데 나 주면 안 돼?”
“안 된다고! 그게 말이 돼? 조가대상회가 사파의 거두였던 흑천대살의 피나 빨아 먹는 집단이라고 소문이 난다면 네가 책임질 거냐? 흑천련 출신 애들이 잘도 충성을 바치겠다!”
“아니 나한테 그 정도도 못 해 줘? 나도 다 들었거든? 당신이 사천에서 무슨 짓까지 했는지!”
뜬금없이 진가희가 사천 이야기를 꺼내자 자못 당황해하는 조휘.
“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계집에게 천빙령을 선물해 주려고 아주 개고생을 했던데? 당가주의 만천화우까지 맞았다며? 게다가 그놈들한테 환심을 사려고 천마성까지 정찰을 나가셨어요?”
“뭐! 내, 내가 언제!”
조휘의 천연덕스러운 오리발에 진가희가 제대로 화가 난 듯 도끼눈을 떴다.
“와! 겁나 뻔뻔해! 철광석 때문에 조가대상회를 오가는 사천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을 죄다 거짓말쟁이로 몰 거야?”
“하…….”
결국 조휘의 입에서 진가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 흘러나오고야 말았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한 소저가 없으면 냉차고 한빙주고 죄다 생산이 끊기는 마당인데 네가 한 소저와 어떻게 위치가 같을 수 있냐? 한 소저는 우리 조가대상회의 귀인 중의 귀인(貴人)이다!”
조휘의 음성, 그 낱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힌 양 음울한 표정으로 변해 가는 진가희.
“그래…… 그런 취급이란 말이지…….”
마치 여인의 한이 담긴 듯한 음습한 음성, 그 몸서리치는 불길함에 조휘가 오히려 불같이 화를 냈다.
“무극에 이른 무인이 피를 나눠 주는 게 어디 보통일인 줄 알아? 네가 자꾸 이런 내 순수한 호의를 짓밟으면……!”
조휘가 크게 뜬 눈으로 협박한다.
“그땐 인마 나도 사파가 되는 거야! 힘으로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고!”
“힘으로?”
진가희의 처연한 얼굴에서 점차 호기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힘으로 뭐 어떻게 해 줄 건데?”
“아, 안 떨어져?”
조휘가 기겁을 하며 세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났다.
진가희가 가볍게 보법을 일으켜 그런 조휘에게 바짝 다가갔다.
“조, 좋은 말로 할 때 떨어져라.”
“나도 직책 줘.”
“……직책?”
진가희의 시선이 총단의 전각들을 두루 훑고 있었다.
“제갈 놈은 부회장 겸 조가천기각주, 그 장가 근육 놈은 강빈관주, 팽가 놈은 조가자원각주, 한…… 아니 그년은 뭐 조가빙천주? 심지어 염상록 그 새끼도 조가신비각 부각주가 되었더라?”
“…….”
조휘로서도 할 말은 많았다.
그녀의 성격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다. 게다가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터라 그녀를 믿고 따를 수하가 생길 리 만무했다.
하다못해 염상록처럼 이(利)에 밝거나 돈을 탐하는 성격도 아닌지라 상단과도 맞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그녀의 결점은 외모였다. 그녀의 창백하고 스산한 얼굴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겁을 하며 도망치려 할 뿐 도무지 그녀와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고강한 무공. 하지만 또 휘하를 이끄는 자질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년인지 재주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람인 이상 각자 지닌 재능과 특성이 있게 마련인데 진가희는 모든 점에서 애매한 것이다.
하지만 뭔가 당근을 줘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진가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변할 것이다.
“그럼 흑천련주가 묵고 있는 후원이라도 관리할래?”
“관리?”
“사실 관리라기보다는 감시하는 거지. 사파의 전대 거두가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잖냐.”
“호호, 하긴.”
“너 지붕 위 좋아하잖아? 적성에 딱 맞는 일인 것 같은데.”
“좋아! 알았어!”
호기롭게 주먹을 불끈 쥐는 진가희를 바라보며 왠지 귀엽다고 생각해 버린 자신에게 조휘는 소름이 돋았다.
“그럼, 이만…….”
조휘가 전광석화처럼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졸지에 흑천련의 살수들을 동료로 맞이하게 된 남궁장호는 날마다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연무장에서 버젓이 남궁가의 제왕검식을 수련하고 있는데 천살들 몇몇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타 문파의 무인이 수련하는 장면을 훔쳐보지 않는 것은 정파의 예법, 아니 상식이었다.
허나 전통과 예법에 무지한 사파인들에게는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
제왕의 검을 사파인들에게 계속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곧 남궁장호는 엄정하게 검을 거두고서 연무장 바깥으로 물러났다.
털썩 주저앉으며 후 하고 한숨을 내쉬는 남궁장호.
내후년쯤 되면 세가로 복귀해 아버지 곁에서 가주의 정무를 함께 봐야 했다.
그것이 소가주의 숙명.
그 전까지 자신의 무공을 최대한 발전시켜야만 했다.
한설현과 진가희.
비록 그녀들에게 기연이 있었다지만 여류 후기지수들에게조차 밀렸다는 점이 그에게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타앗! 합!
강력한 기합성과 함께 천살들의 대무(對武)가 시작되자 남궁장호는 조가신비각 쪽을 향해 돌려 앉았다.
깡깡!
그들의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를 뒤로한 채 금방 명상에 빠져드는 남궁장호.
한데 천살들의 대무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덧 무기를 거두며 남궁장호에게 다가온 천살들.
천살, 마염랑 위지악이 가득 이마를 구기며 남궁장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우리의 대무를 보지 않는 거지?”
위지악의 대무 상대였던 패염귀 적염도 한 수 거들었다.
“뻔한 것 아니냐? 제왕이라 거들먹거리는 남궁 놈들이다. 사파의 무공이라 볼 가치도 없다는 거지.”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빠져 있던 남궁장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나?
“명불허전 사파 놈들답군. 네놈들은 타인의 수련 광경을 탐하지 않는 강호의 법도도 모른단 말이냐?”
마염랑 위지악이 피식 쪼갰다.
“과연 고지식하기 그지없다는 정파 놈들이라더니 실제로 보니 못 말릴 지경이군. ‘정파의 법도’를 강호의 법도라고 우기는 수준하고는.”
“정파 놈들이 법도 운운하면서 자신들의 무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이유야 너무 뻔하지 않은가? 겉으로는 한없이 당당하고 자신만만해하지만 내심 자신들의 초식이 파훼당할까 봐 조마조마한 게지. 낄낄낄!”
뱀 같은 눈빛을 빛내는 패염귀 적염을 남궁장호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남궁의 검수에게 함부로 시비를 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겠다.”
차아앙!
남궁장호가 창천검을 빼어 들며 엄정하게 기수식을 취하자, 마염랑 위지악이 등에서 한 쌍의 귀두도(鬼頭刀)를 빼어 들었다.
피식.
“화끈한 건 마음에 드네.”
묘한 호기심으로 물든 남궁장호의 얼굴.
‘쌍수도(雙手刀)?’
무인이 쌍수 무기를 취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보통 무기가 둘이면 유리하다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무공을 모르는 자들이 하는 이야기였다.
쌍수는 독수(獨手) 검에 비해 많은 것이 불리했다.
초식의 위력이란 단단한 무게 중심, 안정화된 보법으로부터 나오게 마련.
강호의 많은 문파들이 제자들로 하여금 입문공으로 마보나 참춘공을 가장 먼저 익히게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쌍수무도(雙手武道)는 화려한 변초를 구사하기 쉽다는 장점은 있으나 몸의 무게 중심을 잡기가 훨씬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쌍수무도를 익힌 자가 독수검을 취한 자 만큼의 단단한 보법을 구사하려면 수배의 고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호의 문파들은 웬만하면 제자들에게 쌍수무도를 권하지 않는다.
강호의 역사 속에서도 쌍수무도로 명성을 떨친 고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데 상대가 쌍수도를 빼어 들고 나섰으니 남궁장호가 호기심이 치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단한 패기군.”
남궁장호의 시선이 자신의 귀두도에 향해 있자 마염랑 위지악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천살이라는 칭호에 왜 천(天) 자가 들어가는지 내 똑똑히 보여 주마!”
샤샤샥!
남궁장호의 눈빛에 기광이 스쳤다. 상대의 보법이 일반적인 상궤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가가각!
캉캉캉!
선공을 허용당한 남궁장호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매 초(招)마다 동귀어진의 수법이 느껴질 정도!
상대의 반격 따위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는, 오로지 공격만을 위한 저런 움직임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남궁장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친 순간 위지악의 귀두도가 더욱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토해 냈다.
촤촤촤촤촤촤!
한 쌍의 쌍수도에서 눈부시게 일어난 도기(刀氣)를 바라보며 남궁장호가 경악했다.
‘쌍수로 도기를 뽑았다고?’
도기는 강기를 다룰 수 있는 성강(成罡)의 바로 전 단계.
당연히 극고의 심력과 내공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쌍수무도로 도기를 발휘했다는 것은 뒤를 생각하지 않는 극고의 결의!
소모되는 내공의 양과 정신력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남궁장호도 이를 꽈득 깨물며 푸른 검기를 일으켰다.
까강!
까가가강!
검과 도가 부딪히는 파열음이 쉴 새 없이 사위를 진동했다.
위지악이 눈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회오리처럼 몸을 휘돌며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밀려들어 오는 시뻘건 도기의 물결!
선공(先攻)의 이점을 극도로 살리는 필살의 도법 그 자체였다.
수세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자, 결국 남궁장호는 제왕의 검식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제왕지세(帝王之勢)!”
제왕지세는 제왕검형의 전이식으로 남궁세가의 중검(重劒)을 대표하는 검공!
한데, 남궁장호의 창천검에서 육중한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자 위지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공을 시전해 장내에서 벗어났다.
검식을 시전하다 말고 멍하게 굳어 버린 남궁장호.
위지악이 저 멀리 벗어나 쌍수를 휘휘 돌리며 비아냥거렸다.
“초식을 말해 주네? 병신인가?”
남궁장호의 입에서 ‘제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뺀 것이다.
그런 위지악의 힐난에 남궁장호는 이상하게도 상대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장일룡이 틈만 나면 자신을 지적해 주었었다.
예(禮)가 골수에 미친 정파 인간이라고. 강호에서 그런 행동은 독이라고.
한데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는다.
만약 지금의 대무가 실전이었더라면?
예를 지켰다는 정도의 자부심만으론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할 수가 없다.
저 쌍수무도도 그랬다.
강호의 일반적인 상식, 그 궤를 달리하는 괴이신랄한 도법.
매 초마다 동귀어진의 수법이 적용된 그 연환 절초들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기괴한 모습 그 자체였다.
어떻게 상대의 공세를 대비하지 않을 수 있지?
어떻게 무인이라는 놈이 상대의 절초를 마주하지 않고 도망갈 수가 있지?
게다가 뭐? 나보고 병신? 저놈은 무인으로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는 건가?
나는……!
나는…………!
콰콰콰쾅!
순간 머릿속에서 거대한 폭음이 터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이는 남궁장호.
그를 제한하고 있는 어떤 단면, 그 둑이 터져 버린다.
순간 창공처럼 푸른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너울거리며 일어났다.
화르르르르르!
눈부신 포말처럼 빛나고 있는 푸른 아지랑이들.
위지악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갑자기 진무화(眞武花)라고?”
남궁장호의 끝없이 침잠한 두 눈이 위지악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림에 떨어진 현대인 6
BUKDU NEO ORIENTAL FANTASY STORY
청루연 신무협 장편소설
지은이ㆍ청루연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청루연 / Good World Co.,LTD
ISBN : 979-11-391-0710-4
Printed in Seoul, Korea
•(주)조은세상에서는 E-Book 투고(장르무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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