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41
41 章>
흑천련이 몰락했다는 소문과 함께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 소식이 눈부신 속도로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강호인들은 조가대상회의 매력적인 상품들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조가대상회가 흑천련을 대체하는 강서 권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거듭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터.
물론 이런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는 비웃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또다시 들려오는 소문에는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날아든 소문은 조가대상회의 회장이라는 자의 별호였다.
소검신(小劒神) 조휘.
전설 속 검신의 검공을 일신에 아로새긴 젊은 검호의 등장에 전 강호가 흥분으로 휩싸였다.
그의 무위를 목격한 자들의 증언 속에서 온갖 전설적인 무공의 경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의형검강(意形劒罡).
어검비행(御劒飛行).
이기어검술(以氣馭劒術).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
강서인들의 목격담이 진실이라면, 이는 강호의 대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약관의 젊은 검호가 그와 같은 경지를 보인 것은 무림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
당연히 강호인들은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에 참가하길 희망했다.
단순히 개파대전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검신이라는 새로운 절대고수의 등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별안간 무림맹주(武林盟主) 무황(武皇)이 가장 먼저 참가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림맹에서 날아온 그 소식이 시발점이 되어.
소림, 무당, 화산, 곤륜 등 구파 역시 일제히 참가 의사를 강호에 공표했고, 오대세가를 비롯한 수많은 군소문파들도 마찬가지로 동참했다.
전 정파가 들고 일어나 한 세력의 개파대전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수백 년 전 무림맹의 창맹(創盟)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조가대상회의 총단 내원 앞.
개파대전의 준비로 분주한 인파들 틈에서 조휘가 연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어어! 거기는 폭죽 설치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일꾼 하나가 온통 붉은 휘장으로 치장된 전각의 지붕 위에서 황망히 조휘에게 예를 표한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눈살을 찌푸리는 조휘.
저 지붕 위에 폭죽을 설치했다가는 기껏 치장해 놓은 휘장들이 다 타 버릴 수도 있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휘장으로 꾸며 놓은 전각에는 폭죽 설치 금지! 아시겠습니까?”
“예! 회장님!”
조휘는 이왕 개파대전을 하게 된 거 남부럽지 않게 치르고 싶었다.
개파대전이란 것도 뭐 어떻게 보면 좀 규모가 큰 강호의 회식(?)이다.
원래 회식이란, 거창하면 거창할수록, 성대하면 성대할수록 분위기가 사는 법.
개파대전을 어떻게 치르냐에 따라 조가대상회라는 세력의 이미지가 결정된다. 쪼잔하게 아끼려 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조휘가 일꾼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을 때 제갈운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헉헉! 잠깐! 잠깐만요! 회장님!”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조휘가 제갈운을 쳐다봤다.
“왜 이렇게 뛰어다니십니까?”
제갈운이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품에서 밀지(密紙)를 꺼내 들었다.
“헉헉…… 이것 좀 보세요!”
“음?”
제갈운이 꺼내 든 밀지에는 새하얀 백호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백호(白虎)……?”
무림에서 백호를 상징으로 하는 문파가 있었나?
조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밀지를 받아 들었을 때.
“사마세가(司馬世家)가 봉문을 풀었어요!”
“뭐, 뭐라고요?”
수백 년간 봉문한 채 강호에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은 무신의 가문, 사마세가.
“그들이 우리 조가대상회로 오고 있다고요!”
당황으로 물드는 조휘의 얼굴.
“사마(司馬)가 우리 개파대전에 참가한다고?”
강호인들이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을 거론할 때 항상 전제로 까는 것이 있다.
‘사마세가가 봉문(封門)을 풀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새외대전으로부터 당대까지 이어지는 사마세가를 향한 세간의 평가다.
그 명성이 그야말로 ‘천마’의 마교와 맞먹는, 가히 정파의 하늘 같은 존재가 바로 사마세가다.
처참했던 새외대전을 단신으로 종식시킨 무신(武神), 그 위대한 무인의 가문.
이유는 아무도 모르나 새외대전 직후 그들은 봉문을 선언했고, 그 봉문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한데, 그 위대한 가문이 봉문을 깨고 강호 출도를 선언한 것이다.
‘왜……?’
조휘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긴 세월 동안 강호에는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으나 그들은 결코 강호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
한데 무림 역사상 정파 세력, 즉 무림맹이 가장 강성한 지금 같은 태평성대의 시대에 봉문을 깬다?
정도 세력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무신의 가문이 이런 평화의 시대에 무슨 할 일이 있단 말인가.
-단순히 영옥들의 인력(引力) 때문만이 아닌 것 같구나.
담담한 천우자의 음성.
독고일가의 존자들은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던 생령봉인술을 깨기 위해 막대한 영력을 소모해 가면서 혼세천옥의 능력인 ‘인과 조작’의 술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그런 인과 조작이 아무리 엄청난 술법이라고 해도 한 가문의 영속적인 신념을 깰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 현상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뭐죠? 봉문을 깬 것까진 그렇다 쳐도 왜 출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개파대전에 참여하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구나.
순간 뿌득 이를 깨무는 조휘.
지금까지는 강호의 모든 이목이 조가대상회와 소검신에 쏠려 있었다.
한데 이런 타이밍에 뜬금없이 무신의 사마세가가 봉문을 깨고, 또 하필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에 참가해서 수백 년 만에 그 위용을 드러낸다?
모든 강호인들의 시선이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이 아니라 사마세가에 쏠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자신의 행사에 재를 뿌리겠다는 소리다.
-멸(滅)! 다 쓸어버려라!
-모두 죽여 없애야 한다!
-원래 그치들은 그런 자들이다!
그렇게 조가의 선조들이 길길이 날뛰고 나섰을 때, 갑자기 조휘의 표정이 일변했다.
‘가만? 잠시만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니 그렇게 열 받을 상황만은 아니다.
사마세가의 엄청난 명성을 오히려 역이용할 방안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런 조휘의 생각을 읽은 조가의 선조들이 경악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허! 이 와중에?
-이, 이런 미친놈!
이 후손 놈은 겪으면 겪을수록 차라리 두려워질 지경이다.
검신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무(武)로써 징치하여 무신가(武神家)의 자부심을 깨는 것이 어떠하냐?
‘싫습니다!’
초를 치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놈들인데 그렇게 자비로운(?) 방식으로 대접해 줄 수는 없지. 후후.
무엇보다 자그마치 무신의 가문.
사마세가에 무황(武皇)이나 자하검성(紫霞劒聖)보다 더 강한 무인이 존재할 확률은 굉장히 높았다.
섣불리 무력으로 상대했다가 혹여나 패하게 되면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은 그야말로 끝이었다.
그런 조휘의 생각을 읽었는지 검신의 허탈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놈이 이룬 경지를 그토록 자신하지 못하겠느냐?
‘에이, 이제 겨우 절대의 무극에 불과한데요.’
그런 조휘의 대답에 검신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일평생 무(武)에 일로정진한들 절대는커녕 화경에 이르지도 못하는 자들이 부지기수거늘.
조휘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일반인들과 비교하지 마시죠.’
-지금 네놈의 무학은 단순히 경지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기오막측한 터, 스스로 자신을 가져도 되느니라.
검신의 검공과 마신의 마공이 정교하게 혼합된 조휘의 무공은 그야말로 무림사에 전무후무한 경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고금의 위대한 무인들인 검신과 마신이 진심으로 탄복할 정도이니만큼 조휘의 무공은 가히 천외천(天外天), 그 자체였다.
‘흠,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휘는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더니 멀뚱히 서 있는 제갈운을 응시했다.
“사마가 참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일단 계획대로 진행하죠.”
“아니,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죠. 참가 의사를 표시해 온 만큼 배첩부터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조휘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보내지 않습니다.”
“네?”
제갈운이 황망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려 사마세가라고요! 천하제일가! 그런데 초대하지 않는다고?”
조휘가 피식 웃었다.
자신의 음모(?)는 배첩을 보내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네. 그렇게 알고 처리하세요.”
“하……!”
사마세가에 정식으로 배첩을 보내지 않는다면 막대한 후환이 조가대상회를 덮쳐 올 것이 분명하다.
“난 몰라요. 분명 전 지시대로 할 거예요. 나중에 책임을 물기만 해요.”
“공증인이라도 세울까요?”
“아 몰라! 갈게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 가는 제갈운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던 조휘가 철검을 허공 위로 띄웠다.
철검 위로 뛰어오른 조휘가 문득 북편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 그리운 사람들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 * *
촤아아아아아아!
찰랑거리도록 가득 담은 수백 개의 물통들이 일거에 꽝꽝 얼어 버린다.
빙백신장 제오결 설설백천하(雪雪白天下)가 극성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한설백은, 어두컴컴한 석빙고의 중심에 우두커니 서서 회한 서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두 손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는 한설백.
그때, 저 멀리 계단 위에서 쪽문이 열리는 소음이 일더니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식사요.
아직 음식을 확인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 빌어먹을 만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운 만두, 찐 만두, 삶은 만두, 튀긴 만두, 볶음 만두, 삭힌 만두…….
만두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이처럼 다양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중원의 음식이란 것이 만두가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가끔 특식으로 나오는 음식을 몇 번 접한 후로는 배고픈 이리 새끼마냥 특식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고작 음식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굴해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
그래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렇게 한설백이 묵묵히 계단을 오르며 쪽문 근처에 당도했을 무렵.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석빙고의 거대한 돌문이 굉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돌문의 틈으로 엄청난 빛살이 쏟아지자 한설백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상쾌한 공기가 석빙고 내부로 흘러들어 오자 한설백은 감동의 얼굴로 굳어졌다.
아아, 이거야말로 살아 있는 세상의 냄새!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맡아 보는 세상 내음이었다.
“……오라버니!”
아직도 개지 않는 시야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는 동생의 목소리였다.
“……설현? 설현이냐?”
한설현은 봉사처럼 주변을 더듬거리며 다가오는 오라버니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곧바로 눈물을 쏟아 냈다.
“흑흑! 오라버니!”
짓쳐 달려가 한설백을 와락 끌어안는 한설현.
이어 그녀는 오라버니의 행색을 살피다가 더욱 오열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푸석푸석해진 피부, 수척한 얼굴.
아무렇게나 거칠게 자라나 있는 수염과 지독한 악취.
북해의 모든 여인들이 한 번 보기를 갈망하는 선망의 대상이자, 북해가 자랑하는 절세의 미공자가 어쩌다 이 지경이?
곧 한설현이 표독해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거죠? 오라버니를 가둬 놓는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조휘가 황당한 얼굴로 되묻는다.
“아니, 본인의 의지였거든? 이왕 수련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다고 입구를 봉해 달랄 때는 언제고! 음식만 제공해 주면 된다면서!”
한설현이 오라버니를 쳐다봤다.
“그게 사실이에요?”
“그렇다. 다 내가 자처한 일이다.”
“왜! 왜 그랬어!”
대답 없이 씁쓸한 표정만 짓고 있는 한설백.
한설현도 모르지 않았다.
북해의 마지막 후예라 할 수 있는 오라버니의 중압감을.
절대빙인을 향한 그의 광적인 집착은 소싯적부터 함께 자라 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지독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다니…….
“음? 빙정(氷精)의 기운?”
동생이 내뿜고 있는 빙정의 기운 때문에 화들짝 놀라고 있는 한설백.
그러고 보니 동생에게서 진무화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빙인(氷人)? 설마 화경을 이룬 것이냐?”
“네! 오라버니!”
“허?”
지금까지 만년빙정과 함께 수많은 날을 피눈물로 보내며, 그렇게 와신상담 이룩한 자신의 경지와 비등하다고?
“조 소협께서 천빙령을 내어 주셨어요!”
“처, 천빙령을?”
크게 놀란 눈으로 굳어져 버린 한설백.
그 귀한 천빙령을 내준 것도 놀라운데, 도대체 그 양을 얼마나 취했길래 단숨에 빙인의 경지를?
어쨌든 북해인에게 천빙령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의 가치.
한설백이 조휘를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동생이 큰 은혜를 입었구려. 오라비로서 대신 감사드리오.”
조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하하, 뭐 다 같이 잘살자고 한 일인데 개의치 마시죠.”
“천빙령은 중원인들도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보물이라 들었소. 얼마나 어렵게 구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소이다. 정말 고맙소.”
한설백이 계속 예를 풀지 않자 조휘는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한 소저, 그럼 회포 나누시죠. 저는 이만 봉태현(鳳台縣)으로…….”
“네 고마웠어요. 조 소협.”
한설백이 그런 자신의 동생을 묘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은 저렇게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런 동생의 행동에 한설백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에게 연심(戀心)을 품었느냐?”
“네 오라버니? 갑자기 무슨! 아니에요 절대!”
붉어진 얼굴로 극도로 당황해하는 한설현.
한설백은 자신의 동생이 어엿한 여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 컸구나.”
“…….”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키우다시피 동생을 돌봤다.
그래서인지 사내를 알게 된 동생이 아쉬우면서도 대견했다.
“얼굴 봤으면 됐다. 그를 따라가거라.”
“오, 오라버니!”
어느덧 길고 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 한설백.
그가 뒤를 돌아 한설현을 다시 응시했다.
“나는 절대빙인(絶大氷人)이 되기 전까지는 결코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다. 회포는 그때 풀자꾸나.”
“오라버니!”
“네 녀석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련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동생의 경지가 빙인에 이른 것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자극이 되었다.
만년빙정을 확보한 이상 북해의 한을 푸는 것은 자신의 손에 달린 일.
빙궁주가 되어 북해를 재건하려면 절대빙인을 반드시 이루어야만 했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
“두 번 말하지 않겠다.”
한설현은 멀어져 가는 오라비를 슬픈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다, 결국 입술을 꼬옥 깨물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대호산을 경계로 길게 이어진 관도를 지나 봉태현에 도착했을 때 조휘는 절로 탄성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호오!”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봉태현의 규모가 더욱 커져 있었던 것.
그야말로 안휘철방 하나로 인해 마을 자체가 다른 마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가히 과거의 합비와 엇비슷한 규모!
아직 포양호의 철방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은 상황이라 거의 대부분의 철제 제품을 봉태현의 안휘철방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엄청난 부가 가치를 지닌 운차(雲車) 시리즈를 독점으로 생산하고 있으니, 그 부(富)가 봉태현 전체에 두루 미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이제는 봉태현의 현령이 합비성주보다 안휘철방주를 더욱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니 안휘철방의 바뀐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총관이 강서로 부임하면서 조휘의 아버지인 조순(曹順)이 안휘철방주의 위(位)에 올랐다.
그렇게 조순은 안휘철방주로서의 위세와 강서성에서 전해 오는 조휘의 명성에 더욱 힘입어 그야말로 봉태현 제일의 유력자로 거듭나 있었다.
사람이란 으레 그렇듯 졸부가 되면 거만해지거나 사람을 업신여기는 등 인격이 변하게 마련인데 조순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늘 평소대로 검소했고 인정이 많았으며 나눌 줄을 알았다.
그런 조순의 호협한 인품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으로 들끓고 있었다.
인산인해(人山人海).
마침내 안휘철방에 도착한 조휘는 순번표를 손에 쥔 수많은 손님들을 쳐다보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가히 그 수가 소림사를 향하던 수많은 향화객에 비견될 정도.
그 자그마한 철방이 이만한 규모가 되어 손님으로 들끓게 되었으니 조휘로서는 실로 감격적인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었다.
“잠시 길 좀 터 주십시오.”
손님들 틈에서 순번표를 나눠 주던 조휘의 어머니 곡아영(鵠娥永)이 이내 조휘를 발견하고는 얼어붙고야 말았다.
“휘아야!”
버선발로 달려와 조휘를 와락 끌어안는 곡아영.
조휘가 활짝 웃으며 그런 어머니의 등을 쓰다듬었다.
“잘 지내셨죠?”
곡아영이 아들의 팔과 가슴 등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더니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다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어쩜 이리 더 여위였을까? 그간에 더욱 고생이 많았구나.”
“어머니도 참. 고생은 무슨…… 그리고 내가 무슨 살이 빠졌다고 그래요?”
곡아영이 눈을 흘기며 아들을 책망하고 나섰다.
“이렇게 너는 하루하루가 달리 기도가 변하고 훤칠해지는데 도대체가 자주 볼 수 있어야 말이지! 사실은 네가 살이 찐 건지 빠진 건지도 모르겠구나! 이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어?”
그제야 조휘의 뒤편에 서 있는 한설현을 발견하고서 놀란 토끼 눈이 된 곡아영.
“세상에 저런 빼어난 미모의 규수(閨秀)가……!”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연신 발그레 홍조를 그리고 있던 한설현이 어색한 얼굴로 곡아영에게 예를 표했다.
“처음 뵈어요. 설풍한가의 설현이라고 합니다.”
설풍한가(雪風寒家)?
곡아영으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가문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던 태를 풀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저는 휘아의 애미 되는 사람입니다.”
“네…….”
한설현은 인자한 어머니의 얼굴, 그렇게 살가운 태가 잔뜩 묻어 나오는 곡아영을 바라보며 마치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왠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그리운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었다.
그때, 저기 멀리서 뾰족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라버니!”
그녀는 하나뿐인 조휘의 여동생, 조연이었다.
“휘아야!”
철방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조휘의 형 조혁도 환한 얼굴로 뛰어오고 있었다.
와락!
조연이 눈물을 터뜨리며 조휘의 품에 안기자 조혁이 호방하게 웃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하하핫! 없을 때는 그렇게 휘아의 욕을 하더니 막상 보게 되니 눈물을 터뜨리며 안기는구나!”
“시끄러!”
한 차례 큰 오빠에게 눈을 흘기던 조연도 한설현을 발견하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엄청나게 예쁜 언니다!”
“허헐!”
가장 놀라고 있는 사람은 조휘의 형 조혁.
남궁세가는 늘 미인들로 붐빈다.
남궁세가의 자제들과 혼인을 희망하는 합비의 수많은 유력가 규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세가를 방문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궁세가의 무사로 활동하며 제법 견문을 쌓아 왔다 자부했던 그로서도 실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인이었던 것.
그야말로 저런 미모의 여인이 화폭 속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조혁의 멍한 얼굴이 조휘를 향했다.
“넌 진짜…….”
진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놈이다.
상재(商才)면 상재, 무재(茂才)면 무재…… 하다 하다 이제 여복(女福)까지!
도대체 저놈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약간은 허탈한 표정이 된 조혁이 한설현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안녕하십니까, 제수씨.”
“반갑…… 네?”
제수씨?
그대로 얼어붙고 마는 한설현.
“그런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형.”
“오해?”
조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여인에 관심이나 있었던 놈이냐? 그런 놈이 생전 처음 집 안에 여자를 들였는데 연인이 아니라고?”
“뭘 여자를 집 안에 들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각자 볼일이 따로 있었지만 조금 계획이 틀어져서 함께 온 거니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여전히 미심쩍은 조혁의 표정.
“아닌데. 딱 봐도 뭔가 있는데.”
“아니라고!”
분명 그런 관계가 아닌 건 맞는데, 그렇다고 저렇게 화를 내며 부정하니 괜스레 섭섭한 마음이 드는 한설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아가씨도 이리 와요.”
“예. 어머니.”
“아! 네!”
조휘와 한설현이 어머니와 함께 철방으로 들어가자 조연이 조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이참! 그렇게 언니를 부끄럽게 하면 어떡해!”
“내가 뭘?”
“어휴, 이러니 여자를 못 만나지. 딱 보면 몰라? 아리송한 사이잖아!”
조혁이 황당한 표정을 했다.
“서로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아리송한 사이는 또 뭐냐?”
“어휴, 진짜 내가! 아니 그런 거 몰라? 서로 연모하지만 아직 확인은 하지 않은 관계!”
“음? 그게 뭐야? 좋아하면 좋다고 말하면 되지 참긴 왜 참아?”
“아, 네. 그러세요. 평생 혼자 사세요.”
“요 조막만한 게!”
연예 고자 조혁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조순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철방 내부를 휘젓고 다니며 온갖 지도(?)를 늘어놓는 것을 쉬지 않고 있었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할까! 죄다 굼벵이를 먹은 게야?”
기산각의 일꾼 유소방이 얼굴에 죽을상을 그렸다.
“지금도 모두 충분히 바삐 손을 놀리고 있습니다, 철방대부님! 제발! 보채지 좀 마십시오!”
“이놈이? 하 해 봐.”
“아, 아니 왜 또 그러십니까?”
“네놈들이 어제 진탕 술판을 벌였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 그걸 어떻게?”
기산각의 경험 많은 일꾼들은 어느덧 꽤 높은 월봉을 받게 되었다.
한데 높은 월봉이 꼭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살림살이가 넉넉해진 일꾼들 중에서 술과 도박에 빠지는 이가 많았던 것.
그래서 조순은 지난달부터 휴일 외에는 철저하게 금주(禁酒)를 명령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일을 하던 몇몇 일꾼들이 큰 사고를 친 게 이미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아셨지?’
일꾼 유소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자주 가는 주루에도 들리지 않았다.
진가 놈의 집에 모여 몰래 먹었거늘!
한데 그 진가 놈이 축 처진 어깨로 철방주의 뒤편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저 새끼가!’
다 불었단 말인가!
“철방령(鐵房令)에 의해 죄다 잘렸을 놈들을 겨우 용서하고 복직시켜 줬더니 그새를 못 참고 술판을 벌여?”
“죄, 죄송합니다.”
“전부 나가! 기산각 생산 중지!”
“히익!”
또다.
철방주가 일꾼들을 죄다 내보내고 할 일이야 뻔했다.
또 네깟 놈들 다 필요 없다며 본인 혼자 다 하겠다고 밤새도록 망치를 두드리겠지!
그 망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일꾼들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방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야 이 자식들아! 뭐 해? 빨리 무릎 꿇지 않고!”
“방주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기산각 일꾼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으며 조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놔라 이것들아! 놔라고!”
그때, 조휘와 가족들이 어색한 얼굴로 기산각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이!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헐레벌떡 뛰어가 일꾼들을 해산시키는 곡아영.
“그만 됐어요! 어서 일들 보세요! 아니 하루라도 그냥 좀 조용히 지나가면 안 돼요? 왜 조용한 날이 없어 이 양반아!”
“어허, 이 여편네가 또! 자꾸만 사내들 일에 이렇게 끼어들 거요?”
“뭐라고요? 사내들 일?”
조순이 곡아영의 매서운 눈초리에 애써 시선을 외면하다 조휘를 발견했다.
“이, 이놈!”
오랜만에 둘째 아들을 보았으니 반가워할 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노한 기색이었다.
쌩하니 달려가 조휘를 매섭게 노려보는 조순!
“네놈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놈이냐? 상회에서 통보해 오는 주문량은 터무니없이 늘어만 가는데 철방의 일꾼들을 죄다 강서로 빼 가 버리면 도대체 나보고 어떡하란 소리냐?”
조휘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새로 고용하시면 되죠.”
그 말에 조순의 이마에 불끈 핏줄이 돋아났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냐! 초짜하나를 제대로 된 일꾼으로 키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만데! 바빠 죽겠는데 교육이나 하고 있으라고?”
“아니, 철방대부님들이 있잖습니까?”
하!
철방대부들도 칠 할이나 포양호로 데려가 놓고 저렇게 뻔뻔하게 나올 수가!
“어휴 말을 말자 이 녀석아.”
“아니, 일 년 가까이 못 본 아들한테 할 말이 그거밖에 없으세요?”
결국 조순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조휘의 머리를 향해 아버지의 거친 꿀밤이 강타했다.
빡!
“악!”
“자랑이다 이 녀석아! 아예 동네방네 나 내놓은 자식이요, 나 불효자요, 이제 본격적으로 떠들고 다닐 참이냐?”
와 씨 겁나 아파!
평생을 망치질로 살아온 장인답게 꿀밤에 담긴 아버지의 근력은 가히 외공의 고수 못지않았다.
“……그건 잘못했습니다.”
“그래도 효(孝)를 영 잊진 않았구나.”
“네? 갑자기 무슨?”
어느새 한설현을 발견하고서 푸근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도저히 답이 없는 첫째 놈을 대신해 네가 먼저 이 아비에게 손주를 안겨 주겠다는 어여쁜 마음이렸다!”
“하아…….”
이젠 해명도 하기 싫다는 듯 한숨만 내쉬고 있는 조휘.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을 들은 한설현도 지극히 당황해했다.
“저, 저흰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어르신!”
“어허, 아버님! 아버님이라고 불러야지!”
“아, 아버님?”
“옳지! 아버님!”
“…….”
한설현이 멍한 얼굴로 굳어 버리자 조휘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버지. 적당한 후임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후임자?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안휘철방주를 맡길 만한 인사가 있냐고요. 저는 철방대부님들 중에서 찾고 싶은데요.”
“이 녀석이! 아직 나는 건재하다! 이렇게 팔팔한 나보고 은퇴를 하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제가 사고를 좀 쳤습니다.”
황망한 얼굴로 굳어진 조순.
남궁세가의 창천검패를 받아 왔을 때도, 합비에 대상회를 일구어 냈을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놈인데!
이 둘째 아들 놈이 제 스스로 ‘사고를 쳤다.’라고 자인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도대체 얼마나 또 대단한 일을 벌였단 말이냐?”
“에, 그게…….”
침을 꿀꺽 삼키는 조순에게로 조휘의 음성이 이어졌다.
“조가대상회가 무림의 세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 가족은 떨어져 살 수가 없습니다.”
“뭐, 뭐라?”
조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절 노리는 강호인들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계속 여기에 계시면 제가 가족의 안전을 책임지기가 힘들거든요.”
조휘의 가족은 모두 황당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아니 대상회(大商會)가 어찌 무림의 세력이 되어 버렸단 말인가.
조가대상회가 강호의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조순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디 세력이라 함은 그 유명한 무림맹과 같은 거대한 집단을 뜻하는 것이 분명할진대, 한낱 상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규모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문에 불과한 남궁세가가 이 거대한 안휘성을 지배하고 있는 판국이며, 그런 안휘의 백성으로 살며 오랜 세월 남궁세가를 흠모하고 경원해 온 조순의 입장으로는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
무엇보다 그의 기억 속에 자신의 둘째 아들은 무인(武人)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조휘는 지금까지 형을 제외한 가족들에게는 단 한 번도 무공을 선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소검신의 위명이 전 강호를 위진하고 있다지만 강호인들에게야 발 빠른 소문이지 철방의 일꾼들에게는 그저 하늘 밖의 이야기였다.
조순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도 진지해져 있었다.
“자고로 무인이라 함은 의(義)와 협(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 들었다. 또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으며 그렇게 온갖 은원으로 얽히고설켜 비정하고 무정한 세상의 사람들이라 들었다.”
조순의 눈빛은 지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자신의 둘째 아들을 투시(透視)라도 할 것처럼.
“한데 네가 무인(武人)이더냐?”
그런 아버지의 진지한 물음에 조휘는 단호하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예?”
또다시 황당함으로 물든 조순의 얼굴.
자신의 기억 속에 둘째 아들 조휘는 차라리 학사(學士)에 가까운 인재였다.
서책을 품에 안고 방에 들어가 사흘을 주경야독하면 이내 척척 글을 외던 아이.
조순이 휘황해진 얼굴로 다시금 조휘를 위아래를 살핀다.
‘조가철검(曹家鐵劒)?’
그러고 보니 둘째 아들은 자신이 만든 조가철검을 허리에 차고 있다.
최고의 검을 주문하길래 필시 여느 장군부(將軍府)에 진상하는 줄로만 알았거늘.
“보여 다오.”
“예.”
그렇게 말끔하게 대답하던 조휘가 이내 철검을 허공으로 띄웠다.
“읏챠!”
가벼운 도약으로 철검 위에 올라탄 그가 담담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어검비행(御劒飛行)이라는 건데요. 전설의 검신 어른의 검공입니다. 아! 아버지는 모르셨죠? 검신 조천(曹天) 어른은 저희 선조님이십니다.”
“…….”
쨍그랑!
한 일꾼이 망치를 떨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철방 전체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적막으로 휩싸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쩍 하고 입만 벌린 채 멍한 얼굴이 되어 버린 것.
그렇게 조휘가 검을 타고 철방 내부를 한 차례 빙 날아돌더니 다시 아버지의 앞에 섰다.
“이 어검비행이 말이죠. 이걸 펼쳐 보였던 검수가 무림의 역사를 통틀어도 셋 정도가 전부라네요. 당대에는 아마도 저하고 음…… 자하검성(紫霞劒聖) 정도면 가능하려나?”
“미, 미친놈!”
조혁이 그런 조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검비행술을 펼쳐 보이는 신위는 분명 전설적인 초극고수의 면모로 손색이 없었다.
한데 그 모습에 도무지 품위나 겸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으니 황당하기가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강호풍운록에서 언급되던 전설의 초극고수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힘을 서푼 숨기는, 그야말로 비정하고 냉혹하며 철두철미한 무인들.
하지만 조휘의 풍모(?)는 너무도 판이했다.
당연하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늘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PR하며 어떻게든 스펙을 쌓고 표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즉 현대인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조휘가 가볍게 지면으로 내려와 철검을 회수하더니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내 익살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인하셨죠? 저는 확실한 검수(劒手)입니다.”
검수가 아니고 검선(劒仙)이겠지 이놈아!
조순은 당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본 마당.
결국 조순은 조휘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야 말았다.
“짐 쌉시다.”
“네?”
아내 곡아영이 멍하게 굳어 있다 화들짝 놀랐다.
“이놈이 우릴 짐짝이라 하지 않소! 짐짝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제 품으로 가 줘야지.”
“여보! 그래도……!”
“허참, 아들이 검을 타고 날아다니는 걸 보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소?”
봉태현에서 사십 년이 넘게 지내 온 세월이었다.
조순은 그런 고향의 정겨움을 모르지 않았으나 아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긴 싫었다.
“내 꿈도, 지금 우리 가족의 행복도 모두 이놈이 이루어 주었소.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으이.”
“여보…….”
“그런 아들의 행보에 아비인 내가 돌부리가 되긴 싫소이다.”
“…….”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조휘는 자신이 불효자라는 것을 뼈아프게 실감해야만 했다.
부모님들에게 봉태현은 정겨운 고향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
자식 된 자가 그런 부모님의 추억을 앗아 갔으니 앞으로 천 길을 효(孝)로 갚아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는 것보단 나은 법.
비정한 강호의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자처했으니 앞으로 쌓일 은원이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은원의 회오리 속에서 가족을 지키려면 반드시 총단으로 부모님들을 모셔야 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침울한 신색도 잠시, 조휘는 금방 활기찬 얼굴이 되어 어머니를 닦달했다.
“아 배고파, 둘째 아들이 이 먼 길을 왔는데 밥은 언제 줄 겁니까?”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가씨도 시장하시죠?”
“아, 아니에요.”
곡아영이 황급히 사라지자 조순이 조용히 조휘를 불렀다.
“한데 검신이라는 전설적인 무인이 우리 조가의 선조라는 말은 또 무엇이냐? 조천이라고?”
“아버지, 제가 또 운 하나는 겁나게 좋지 않습니까? 기연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강호인이 아니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그렇게 조휘가, 의천혈옥의 비밀은 건너뛴 채 검총(劒塚)의 이야기부터 늘어놓자 조순과 조혁이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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