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45
44 章>
빙백여제가 이끄는 새외군단의 파죽지세에서 중원을 수호해 낸 위대한 가문이 기백 년 만에 강호에 나타났다.
그렇게 사마가 수호한 대지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벌써 그 은혜를 모두 잊어버렸단 말인가?
아무리 조가대상회가 펼쳐 놓은 신문물에 호기심이 치밀기로서니 사마의 행렬을 거들떠도 보지 않다니!
사마강은 와글와글 모여 가죽옷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강호인들을 바라보며 화가 나기보단 당황스러웠다.
설마하니 사마가 이런 취급을 당할 줄이야!
‘후…….’
사마강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구파와 함께 얽혀 강호를 운영하지 않은 지 수백 년이 지난 마당.
사마세가는 저들에게 너무나도 성스러운 전설, 드높은 명성의 가문이어서 오히려 쉽게 다가오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마강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채 일다경도 못 가서 흐트러지고 말았다.
맹(盟).
거대한 깃발에 금실로 수놓아진 단 하나의 글자.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그런 무림맹의 상징은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음이었다.
척척척.
그렇게 맹의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기수를 선두로.
육중한 은빛 갑주로 무장한 채 무황을 호위하며 들어서고 있는 무림맹 최고의 무력단 정무수호대(正武守護隊)가 사마강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 무황의 양옆에는 맹의 지낭이라 불리는 총군사 제갈찬휘와 맹의 저승사자(?) 감찰교위 단백우, 정무수호대주 진강천 등 쟁쟁한 맹의 권력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데 특이한 것은 그럼 무림맹이 화산파의 행렬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붉은 자수로 수놓아진 거대한 매화기(梅花旗)가 무림맹의 깃발과 나란히 입장하고 있으니 가히 그 위용이 하늘에 닿을 듯했다.
무림맹과 나란히 설 수 있는 문파!
그 하나만으로도 당대의 무림에서 화산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마강이 눈짓하자 사마세가의 기수가 백호기를 더욱 높이 치켜세웠다.
저 무림맹과 화산파의 명성 앞에서도 결코 사마세가는 고개를 숙일 수 없었기에.
한데 점차 들려오는 무황의 목소리에 사마강은 또다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총군사! 저것이 내가 말하던 개천운차네!”
“…….”
무황은 조가대상회의 총단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행사장을 발견하고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연신 신이 난 얼굴로 주변을 못살게 굴고 있으니 총군사 제갈찬휘로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군사부의 예산으로 한 대만 사 주면 안 되겠는가……?”
“맹주님. 저건 사치품입니다. 출납 기록이 다 남는데 어찌 군사부의 예산을 운운하실 수 있습니까? 감찰교위를 옆에 두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곁에 시립해 있던 감찰교위 단백우가 쓰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맹주님. 맹 지휘부의 향락을 위한 사사로운 지출은 감찰 대상입니다.”
“햐앙락? 지금 향락이라 했는가?”
무황이 버럭 성을 냈다.
“구름을 떠다니는 듯 부드럽다 하여 운차(雲車)라 불리는 마차라 하네! 자네들은 이 맹주가 이곳저곳을 마차로 이동할 때마다 지독한 요통(腰痛)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매, 맹주님.”
“말로만 허구한 날 건강하십시오, 존체 보중하십시오, 맹주께서 강건하셔야 강호의 안녕을 바랄 수 있습니다. 허!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이 모진 인사들 같으니라고.”
이미 포양호 변에서 한번 운차택시(?)를 경험해 본 무황으로서는 그런 운차의 승차감이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종류였다.
“단 교위, 자네도 타 보지 않았는가? 이 맹주가 꼭 그렇게 평생 요통에 시달려야만 하겠는가? 입이 있으면 말해 보게!”
“맹주님…….”
이를 지켜보던 총군사 제갈찬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럼 천상운차로 하시지요. 개천운차는 군사부의 예산으로 그 값을 치르기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예끼!”
무황은 남궁세가를 방문했을 때 개천운차의 영롱한 자태를 은근히 자랑하던 남궁수가 떠올랐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의 맹주인데 남궁세가보다도 급을 낮추라니!
섭섭하다.
이럴 땐 이 고지식하고 꽉 막힌 정파의 후배들이 너무나 꼴 보기 싫다.
“됐네. 내 월봉을 모아 개인적으로 사겠네.”
제갈찬휘를 측은한 눈으로 응시하는 단백우.
무황께서는 한번 토라지시면 꽤나 오래간다.
앞으로 당분간 몸이 안 좋다거나 무공을 가다듬는다는 핑계로 맹의 행사나 일정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확률이 한없는 십 할에 가까웠다.
제갈찬휘도 못내 그 점이 몸서리 처지는지 이를 꽈득 깨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구입해 드리겠습니다.”
단백우가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저 옹골찬 제갈찬휘의 성격상 군사부의 예산을 사사로이 유용하진 않을 터.
필시 제갈세가의 가산을 동원하거나 본인의 사비로 구입할 것이다.
졸지에 맹주에게 재산을 털려 버린 꼴이니, 그 씁쓸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던 제갈찬휘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그런 상황을 살피던 사마강이 무황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려고 할 그때.
별안간 무황의 시선이 다른 행사장으로 향했다.
“또 무슨 진귀한 물건이 있기에 저리도 사람들로 북적이는가?”
“매, 맹주님?”
다가오는 사마강을 발견하고서 어색하게 굳어 버리고 마는 제갈찬휘.
맹주가 이미 저만치 나아가 사람들의 틈에 섞여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아…….”
실로 지독한 극한직업!
그렇게 제갈찬휘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사마강에게 예를 표하는 그 순간, 무황은 사람들 틈에서 라이더 재킷을 바라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호오? 저건 무슨 옷인가? 특이한 양식이로고.”
몇몇 강호명숙들이 무황을 알아보고는 기겁을 했다.
“매, 맹주님!”
“무림의 하늘을 뵙습니다!”
한 차례 손을 흔들며 명숙들의 인사에 화답하더니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무황.
열심히 선주문을 받고 있던 조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황을 발견하고서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음.’
의념의 장막, 그 너머의 경지를 살필 수 없는 초극고수를 두 번째로 맞이하는 조휘.
과연 무림의 하늘이라 불릴 만한 자다.
“호오, 겉감에 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복식은 처음 보는군. 더욱이 투박한 가죽을 이토록 정교한 양식으로 다루는 자가 있다니 가히 놀라운 손재주로다.”
무황이 라이더 재킷의 주머니들을 이리저리 들춰 보더니 조휘를 쳐다봤다.
“주머니를 바깥으로 뺀 이유가 따로 있는가?”
“실용성 때문이죠. 중원의 의복 양식 대부분은 소지품을 꺼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가죽옷은 쓰임이 다른 소지품들을 각기 따로 주머니에 넣어 둘 수 있고 다시 꺼내기도 매우 편리합니다.”
“호오! 그 발상이 놀랍기 그지없도다! 한데 혹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면 물건이 빠지지 않겠는가?”
조휘가 라이더 재킷의 주머니를 살짝 벌려 단추를 드러내 주었다.
“이 단추로 옷감끼리 결착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추라고?”
이때까지만 해도 중원의 단추란 동물의 뼈나 금속, 옥(玉) 등을 양 옷감에 매달아 서로 끼우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저렇게 둥근 모양의 단추를 한쪽 옷감을 찢어 실매듭으로 마감한 후 옷감 자체에 꿰는 형태는 중세 이후에나 등장하는 양식.
그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인 형태에 당연히 무황으로서도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단추가 주렁주렁 매달리지 않고 저렇게 본래의 옷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니 더욱 태가 사는 것이다.
“대단한지고! 참으로 신기한 묘수를 부렸구나! 이 단추를 생각해 낸 자의 놀라운 지혜가 느껴지네!”
무학(武學)은 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찌울 뿐이지만, 이런 혁신가는 세상 전체를 풍요롭게 한다.
무황은 조가대상회의 그런 점을 평소에도 높이 사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광세의 의복을 생각해 낸 자가 누구인가?”
무황의 질문에 행사장의 아낙네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모두 회장님의 지혜셨어요.”
아낙네의 눈짓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조휘가 있었다.
“자네가?”
“음, 일단 그렇습니다.”
왠지 조휘는 조금 양심이 찔렸다. 현대의 문물, 그 지적 재산권들을 베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흡!”
순간 조휘는 갑자기 거대한 의념이 칼날처럼 변해 자신의 장막을 헤치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올 정도로 광대무변한 기운!
한데 그 놀랍도록 강맹한 의념의 기운이, 자신의 의념 장막을 헤치자마자 마치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변하여 온통 주위를 희롱하고 있었다.
열기와 냉기가 어우러지고, 산 기운과 죽은 기운이 교차하는 그야말로 기오막측한 기운.
어쩜 저리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질들끼리 조화로이 섞일 수가 있는지, 조휘의 가슴속에 그런 의아한 마음이 품어졌을 때 머릿속에서 검신 어른의 잦아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오롯한 경지의 혼원태극이구나. 과연 진인(眞人)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무당 도사다.
혼원태극(混元太極).
소림의 반야(般若), 화산의 자하(紫霞)와 더불어 무림의 삼대 무리(武理)라 불리는 공능이었다.
가볍게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그런 고절한 무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
그 부드럽고 음유한 기운이 그야말로 현묘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왜 무당이 무림의 남존(南尊)으로 불리며 강호인들의 존경을 받아 왔는지 단숨에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과연 절대적인 역량을 지닌 무인을 직접 겪어 본다는 것은 만 일의 수련보다도 더욱 진한 깨달음의 잔향을 남겼다.
수많은 강호인들이 왜 그렇게 칠무좌를 한 번 보기를 갈망하는지 조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당조사 장삼봉의 경지를 본 좌의 아래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니, 그가 세상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신의 휘호를 일신에 새겼으리라.
조휘가 깜짝 놀라며 되뇌었다.
‘장삼봉이 그 정도라고요? 삼신 어른들과 비등할 정도로?’
마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다. 그가 무당에 남긴 무공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진실된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그의 혼원태극은 자연경을 가장 잘 이해한 무론(武論)이다.
‘호오……!’
조휘는 평소 장삼봉을 무당파의 유명한 시조라고만 여겼다.
그가 중원에 남긴 이미지란 무인이라기보다 평생을 수양에 힘쓴 도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그의 경지가 설마하니 삼신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경의 경지였다니!
하긴 중원선종의 대가람이라 할 수 있는 달마와도 늘 비교되는 자이니 그럴 만도 하다.
“뭣이? 자하신공(紫霞神功)……?”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황.
조휘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예? 그게 무슨?”
“이건 자하의 기운이 아니더냐?”
결국 조휘의 무혼을 한 차례 살핀 무황이 마신공의 기운을 발견해 낸 것이었다.
조휘가 일부러 검천대신공만 극도로 일으키며 황망한 듯 입을 열었다.
“자, 잘못 보셨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검신의 유지를 이은 검수(劒手)입니다만?”
무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나를 노망난 노인네 취급하는 것이냐? 뻔히 그 무혼 속에 자화가 너울거리고 있거늘! 감히 내 눈을 속일 생각이더냐?”
“아, 아니…….”
자화(紫火)가 아니라 마화(魔火)겠지 이 노인네야!
“검성(劒聖)께서 후학을 들이셨을 리가 만무하거늘…… 도대체 어떻게 소검신(小劒神)이라 불리는 자가 화산 장문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자하신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더냐? 이는 더없이 중요한 문제이니 한 치의 거짓도 있어선 아니 될 것이다.”
“…….”
한데 이 마신공은 마신에게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검신 어른에게 적법(?)하게 전수받은 신공이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틀림없는 검신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 모든 사실들을 설명하려면 의천혈옥의 비밀을 말해야 했고, 그것은 자신도 존자들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신좌를 추종하는 자들의 손길이 어디서부터 어디에까지 미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휘로서는 결코 혈옥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충 둘러댈 수도 없는 것이 무황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하다.
그렇게 조휘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화산파의 행렬 쪽에서 고고한 발걸음으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 자하검성!”
“천하제일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인, 자하검성 단천양이었다.
무황이 그런 단천양에게 예를 표하려다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무혼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성께서 설마?’
자연경에 도달했다고?
무황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굳어진 그때.
“무량수불, 도조님을 뵙습니다.”
공손한 도가의 예법.
그런 천하제일인 단천양의 극진한 예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조휘가 서 있는 곳.
“도, 도조?”
무황이 두 눈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도조(道祖).
도교의 세 신, 삼청(三淸)을 일컫거나 그들과 비슷한 반열에 이른 선인(仙人)이나 산신(山神)을 높여 칭하는 말이다.
“그, 그간 강녕하셨죠?”
극진한 예를 보이고 있는 자하검성이나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조휘나 둘 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대관절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무황.
그의 출도 이래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공손히 예를 표하고 있는 자하검성 단천양의 두 눈에서 잠시 이채가 일렁이다 사라졌다.
화산에게 자하(紫霞) 속에 담긴 마(魔)를 경고해 준 위대한 선인이, 기이하게도 그런 자하를 일신에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기이한 것은 화산의 자하와는 또 묘하게 궤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강맹함 속에서도 정순하고 폭급하면서도 너르다. 불같이 이글거리면서도 도도했고 군림하면서도 포용적이다.
강호의 내로라하는 개세신공을 수없이 접했지만 이런 기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신공을 마주하는 것은 단천양으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가 왜 스스로의 실력을 숨기고 절대(絶大)의 외견을 두르고 있는지, 왜 대상회의 주인으로 활동하는지도 의문스러웠다.
그는 분명 전설적인 검신의 검공을 자신에게 드러냈다.
그것으로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는 점은 눈앞의 이 청년이 선계의 법력으로 인세에 둔갑하여 나타난 실제 역사 속의 검신이거나, 아니면 검신과 인연이 깊은 또 다른 선인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위해 검신의 외견만 두른 것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에게 친히 가르침을 내려 준 위대한 선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산도가를 이끄는 종주의 예를 받기에 충분했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지극한 존경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
‘허어……!’
천하제일좌 혹은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단천양의 그런 선언적인 행보에 무황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하검성은 자신보다도 한 배분이 높다.
그야말로 무림 최고의 배분을 지닌 자가 단천양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보다도 한 세대를 앞서 명성을 뿌리던 자가 하필 강호명숙이 모두 모인 이와 같은 자리에서 조휘에게 지극한 예를 보이며 도조(道祖)라고 칭해 버린 것.
그것은 가히 무림 최고 원로의 공대(恭待)를 받은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휘의 능수능란한 계략 때문에 조가대상회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무림맹.
그런 대단한 놈을 천하제일좌의 이름으로 무림 최고의 배분이라 인정해 버렸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무황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곤혹스러운 얼굴로 자하검신을 응시했다.
“정말 이 소협이 검신의 적전제자란 말이오?”
단천양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위대한 선인께서 검신의 적전제자라고?
일 합(一合)에 화산파를 지워 버리는 검공을 지닌 이가 어찌 검신의 적전제자 따위로 불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자연검(自然劒)은 자연경의 초입에 이른 자신으로서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초월적인 경지였다.
하지만 그가 그런 행세를 하고 있다면 장단을 맞춰 줄 수밖에 없는 노릇.
위대한 선인이 왜 이토록 인세에 개입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런 선인의 존재가 강호에 드러난다면 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소 맹주. 화산 검종의 이름으로 그의 신원을 보증하겠소.”
“허!”
검신의 적전제자라니!
그 말인즉 이제 조가대상회의 종주가 무림의 모든 세력을 통틀어 최고의 배분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 된다.
무황으로서는 그야말로 기경할 노릇.
“어떻게 수백 년 전의 인물인 검신의 심득을 직접적으로 사사할 수 있단 말이오? 그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도 아니거늘 도무지 말이 될 수가 없소!”
화산의 종주가 조휘의 신원을 보증한 마당에 그 뜻을 부정한다는 것은 무림맹주인 무황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 했다.
정파에서 배분에 관한 문제는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닌 것이다.
“사승(師承)을 잇는 방도에 꼭 존장의 생존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오. 그 옛날 무상검황께서도 무상도원록(無上道元錄)의 존재를 강호에 드러내고 공표함으로써 수백 년 전의 기인인 무상도인(無上道人)의 제자임을 공증받지 않았소.”
단천양의 그런 대답에 무황이 조휘를 쳐다보았다.
“검신의 제자임을 공증 받을 수 있는 증좌가 있는가?”
조휘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검신 어른에게 물었다.
‘강호에 검총(劒塚)을 드러내도 됩니까?’
의외로 검신은 흔쾌히 수용했다.
-검총을 접한 검수들이 스스로를 깨고 경지를 돌파한다면 오히려 무림의 홍복인 터. 허나 검총의 검흔만을 접하고 깨달음을 얻을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현대의 한글과 수학, 물리학을 모르는 중원인들이 검총을 접하고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굳이 강호에 검총이 드러난다고 해서 조휘로서는 경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고작 검흔만을 접하고 깨달음을 얻어 자연경에 이른 검신이 비정상적인 인간인 것.
하기야 그것은 의천혈옥에 영혼을 귀속시키는 대가로 얻은 하늘의 무재(武才)가 그에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휘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섬서 감천현(甘泉縣), 추회곡(秋回谷). 그곳의 어느 봉우리에 검총이라는 동굴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검신께서 남긴 심득을 얻었습니다.”
느닷없는 조휘의 엄청난 선언에 장내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적막에 휩싸였다.
“…….”
“…….”
무황도 자하검성도, 그 외의 모든 강호명숙들도 그저 뜨악한 얼굴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강호인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섬서 감천현 추회곡!”
“거, 거, 검신(劒神)의 심득이라니!”
무황은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살면서 이토록 당황스러웠던 날은 단연코 없었다.
무려 검신의 심득이 남겨져 있다는 심처를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공개해 버리다니!
지금까지 전대 고수의 비처가 담긴 한 장의 장보도로 인해 강호에 얼마나 많은 피바람이 몰아쳤는지 진정 모른단 말인가?
그런 무황이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진정 사실인가?”
조휘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렇게 수많은 강호의 명숙들 앞에서 어찌 제가 함부로 입을 놀리겠습니까?”
“허……!”
이어진 소검신의 확언(確言)에 많은 강호인들이 술렁이며 자파의 행렬로 되돌아갔다.
정파인들의 특성상 체면 때문에 곧바로 움직이진 않겠지만 사실 확인을 위해 곧 저들의 본산으로 수없이 많은 전서구들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섬서 감천현은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가 될 것이 자명했다.
진득이 이를 물고 있던 무황이 자신의 전 의념을 일으켜 사자후로 맹주의 권위를 드러냈다.
-갈(喝)!
그의 음성에 담겨 있는 가공할 의념의 파도로 인해 조가대상회 총단 전체가 거친 진동에 휘감겼다.
꾸르르르릉!
웅성이던 소란과 혼란이 일시에 잦아든다.
늘 호협한 인품과 넉넉한 인상으로 뭇 강호인들의 존경을 받던 무황이 이토록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 시간부로 모든 정파인들에게 섬서 감천현의 출입(出入)을 금(禁)한다! 이는 맹령(盟令)이자 이 무황의 공표(公表)! 이를 어기는 자는 맹의 법도에 따라 처결할 것이니 그대들은 결코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라!
엄정하지만 일견 과격해 보이는 무황의 선언에 강호의 명숙들은 한결같이 두려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무림맹주라 불릴 수 있는 이유다.
단순히 무공의 높고 낮음을 떠나 무황이라는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천연적인 위엄.
중원의 하늘 아래 가장 강력한 세력을 이끄는 종주로서의 위엄을 잔뜩 드러내고 있던 그가 다시 조휘를 응시했다.
“감히 무림맹주의 앞에서 검신의 적전제자를 참칭하진 않았겠지. 만약 그것이 허언(虛言)이라면 동맹이고 뭐고 개의치 않겠네. 내 친히 맹의 모든 무력대를 동원하여 조가대상회의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을 것이야.”
무황의 엄혹한 표정, 진득한 살기를 조휘는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을 뿐, 오히려 그는 역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곳에 검총이 실제로 존재한다면요? 그때는 무황께서 제게 무엇을 약속할 겁니까?”
“그거야!”
잠시 생각하던 무황이 다시 맹주의 권위를 드러냈다.
“맹의 이름으로 자네의 배분을 인정하고 본 무황이 공증인이 되어 이를 강호에 공표할 것이다. 당연히 자네는 이 무황에게도 공대를 받게 되겠지.”
조휘가 피식 웃었다.
“아니 그 정도로는 안 되죠. 이쪽은 총단의 주춧돌까지 모두 걸었는데 고작 맹주의 공대나 받자고 그런 모험을 한답니까?”
“고, 고작?”
아니, 무려 무림맹주의 공대인데?
무황의 공대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무림 최고의 배분을 인정받는다면 소검신이라는 별호가 갖는 권위와 명성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으로 변할 것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조휘는 귀계가 담긴 상인의 음습한 표정으로 두 눈을 번뜩였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제게 사업권을 주시죠. 어차피 맹주께서 우려하시는 것은 강호의 혼란이지 않습니까? 사업권을 주신다면 제가 깔끔하게 해결하겠습니다.”
“어떤 사업권을……?”
조휘가 활짝 웃었다.
“헤헤, 제가 검총을 명승고적(名勝古跡)으로 가꾸겠습니다. 무려 신(神)의 검혼이 숨 쉬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 분명한데 이를 관리하는 체계가 있어야죠.”
“과, 관리?”
“당연히 관리해야죠. 괜히 어중이떠중이 다 몰려들면 피바람이 불 것이 분명한데 반드시 체계를 잡아야 합니다. 게다가 저는 검신의 적전제자 소검신 아닙니까? 명분에도 이치에도 맞는 일입니다. 대신…….”
“대신?”
“헤헤, 관리는 은자가 드는 일이니 검총에 드는 이들에게 소정의 관광료를…….”
무황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무려 전설적인 검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비처를 유적지로 만들겠다? 그것도 관광료를 받는?
그때 조휘의 머릿속에서도 검신의 당황해하는 음성과 마신의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이, 이놈! 지금 뭐 하자는 짓이냐?
-껄껄껄!
조휘는 들은 체 만 체 다시 얼이 빠져 있는 무황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이게 무슨 고민이나 할 계제입니까? 무황께서는 맹령이라는 강압적인 통제를 철회하는 셈이니 보기에도 좋고, 또 다른 명승고적이 탄생하는 셈이니 뭇 강호인들의 홍복이며, 거기에 무림의 혈겁을 미리 막은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이번에는 조휘의 시선이 무황과 함께 얼타고 있는 자하검성에게 향했다.
“아니, 검성께서도 한 말씀 보태셔야죠. 혹 제 말에 틀린 점이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무림이라는 세상이 탄생한 이래 사부의 심처를 돈 받고 팔겠다는 제자 는 이놈이 처음일 것이다.
강호의 도리와 상식으로는 도무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 무황과 자하검성에게 닥친 것이다.
“게다가 감천현은 화산과 지척이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관광객…… 아니 강호인들이 몰려들면 저희 계열상들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화산파도 저희 조가대상회의 선진적인 문물을 한번 경험해 보시죠.”
이것이 조휘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구대문파 중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화산과 거래를 트는 것!
단천양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난감해했다.
아니 무슨 선인이 이리도 돈을?
화산의 불의를 엄정하게 꾸짖던 과거 그의 모습과 도무지 어우러지지 않는다.
“본 파는 도문입니다. 어찌 함부로 물욕을 앞세울 수 있겠는지…….”
“에이, 도사들이라고 밥 안 드십니까? 옷도 안 입으세요?”
“무량수불, 그런 건 아니지만…….”
조휘가 버럭 인상을 구겼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희가 무슨 미혼약이나 독을 거래하는 마상(魔商)입니까? 내 자하검성님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섭섭합니다.”
“…….”
조휘는 이 와중에도 개천운차의 행사장을 한 번씩 힐끔거리고 있는 무황을 살피더니 두 눈에 기광을 발�했다.
“제게 사업권을 주신다면 개천운차를 한 대 드리죠.”
무황이 화들짝 놀랐다.
“개, 개천운차를?”
“예. 최고급 편의 사양을 추가하여 한 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최고급!”
조휘의 그 말에 무황의 눈이 돌아갔다.
“좋네! 자네의 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사업적인 측면에서 검총으로 벌어들일 어마어마한 돈을 생각하면 개천운차는 그야말로 미미하다고 할 수 있는 투자.
그렇게 조휘는 신(神)의 명성마저 사업에 접목시켰다.
검총(劒塚).
무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적지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무림에 떨어진 현대인 7
BUKDU NEO ORIENTAL FANTASY STORY
청루연 신무협 장편소설
지은이ㆍ청루연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청루연 / Good World Co.,LTD
ISBN : 979-11-391-0711-1
Printed in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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