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46
45 章>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의천혈옥 속 세 가문의 존자들은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가장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온 쪽은 검신의 조가가 아니라 오히려 사마가문 쪽.
-아니 뭐 저런 미친놈이!
-뻔히 제 사부가 보고 있거늘 저런 천하의 망종을 보았나!
-사부의 유지를 감히 돈으로 팔겠다는 것이냐!
아니 엄밀히 따진다면 검총의 검흔은 검신 어른의 것도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기는 확!
때 아닌 사마 존자들의 소란에 조휘가 짜증 섞은 투로 뇌까리려는 그때.
조휘의 기억을 살펴본 사마의가 또다시 경악했다.
-이런! 미, 미친 놈!
결국 그도 보고 만 것이다.
달랑 불알 두 쪽 차고 중원에 도착한 조휘가 어떻게 철방을 키웠고 무슨 수로 남궁의 조력을 얻었는지를.
대상회(大商會)로 몸집을 키워 합비의 상계를 먹어 치운 후, 강서의 흑천련을 몰락시킨 그 과정은 진정 악랄하고 치밀하기 짝이 없었다.
지닌 귀계와 전술이 제갈무후와 비견된다는 사마의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조휘의 계략은 도무지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
두 개의 성(省)에 걸친 상권을 차지한 상계의 절대자.
거기에 검신의 제자라는 강호에서의 막강한 영향력.
게다가 뭐? 십만 교도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천마(天魔)?
아무리 기연이 있었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을 채 십 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이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현 세대의 사마를 책임지고 있는 사마강에게 지금이라도 당장 외치고 싶었다.
이 미친놈에게 절대로 맞서지 말라고.
이런 엄청난 놈과 적이 된다면 사마세가의 존립을 장담할 수가 없다.
다른 사마의 존자들도 조휘의 기억을 모두 살펴보았는지 여기저기서 탄성을 지르거나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허허허……!
-실로 미친놈이로다!
사부의 심처를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방금 전 조휘의 선언은 지금까지 그의 행보를 비춰 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절대경의 무공으로 흑천련의 창고만 골라 모조리 부수고, 그 와중에 철저하게 남궁세가의 무공만을 사용하여 모든 시선을 창천검협에게 돌려 버린다.
검령(劒靈)의 무공을 활용해 적으로 하여금 무형지독으로 오인하게끔 하더니 평소 먹던 자양강장제를 내어 주며 해약으로 믿게 만든다.
그 고고한 당가의 고수들을 휘어잡는 언변이며 산전수전 수라장을 겪어 온 무림맹 최상층부의 권력자 감찰교위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밀도 높은 심계까지!
사람을 옭아매는 그 방식이 도무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순간순간 놀랍도록 뛰어난 임기응변과 능수능란한 화술, 그 와중에 정교하게 구사하는 심리전은 그야말로 책략과 지략의 교본을 보는 듯하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조휘만 빼고 그 주위의 인간들이 모조리 바보 같아 보일 정도.
어찌 저렇게 조휘의 앞에만 섰다 하면 죄다 병신처럼 당하기만 하는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바보 중에 최강의 바보가 다시 입을 열고 있었다.
“허면 그 수익금은 죄다 조가대상회가 가져가는가?”
갑자기 무황이 훅 하고 들어오자 조휘의 두 눈에 잠시 당황해하는 빛이 어렸으나 이내 평정을 회복했다.
“수익금의 이 할을 맹에 드리죠.”
조휘를 바라보는 무황의 눈빛이 더없이 투명해진다.
과연 오 할에 가까운 중원 무림의 영역을 운영하고 또 지배하는 자.
“사, 삼 할! 그 이상은 안 됩니다. 넉넉하지 못한 강호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야죠. 관람료를 최대한 적게 받을 겁니다.”
“오 할.”
조휘가 기겁을 한 표정을 했다.
이런 도둑놈 심보를 봤나!
개고생은 조가대상회가 다 할 텐데 거기에 반씩이나 숟가락을 얹겠다고?
“거 너무하십니다? 양심 어디?”
무황이 피식하고 미소 짓더니 예의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인이 양심을 운운하다니 주정뱅이가 학사 나무라는 격이로군.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지 않는 말이 뭔 줄 아는가?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장사치의 말이라네.”
“…….”
과연 무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데 뜬금없이 조휘가 화사하게 미소 짓더니 넙죽 무황의 요구를 받아 버린다.
“좋습니다 오 할. 드리죠 맹에.”
“음?”
이렇게 싱겁게 협상이 마무리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무황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 할을 준다고?”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
찔러나 보자는 심산으로 질렀는데 그걸 받는다고?
무황으로서는 조휘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 길이 없었다.
“무려 무림맹, 아니 무황님의 요청인데 힘없는 상회 따위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협조를 하는 수밖에요.”
그런 조휘의 대답에 무황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찝찝함이 몰아쳤다.
“어쩔 수 없이 저희는 뭐 이런저런 잡다한 원가를 다 빼면 이문을 얼마 남겨 먹지도 못하니 협력 상단으로만 이름을 올리겠습니다. 사업 소득의 절반이나 가져가시는 맹이 주축이시니 관람권표(觀覽券票)에 맹의 인장을 찍으십쇼.”
그제야 조휘의 의중을 알아챈 무황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사업 소득을 오 할이나 처받을 거면 검신의 무덤을 유적지로 만들고 은자를 받고 관람시키는, 이 모든 일의 운영 주체를 확실하게 무림맹이 가져가라는 뜻.
하지만 당최 무림맹이 어떤 곳인가?
정도 무림의 하늘, 무림 정의의 수호자라 불리는 맹(盟)이다.
그런 고고한 무림맹이 전대고수의 무덤을 돈 받고 판다는 소문에 휩싸인다?
“허허…….”
무황은 이 조휘라는 눈앞의 청년이 결코 만만치 않은 사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할만 받도록 하지.”
조휘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때,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인상을 찌푸리는 무황에게로 감찰교위 단백우가 서둘러 다가와 귀엣말을 건넸다.
단백우가 건넨 귀엣말을 모두 들은 무황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사마세가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웅성웅성.
뭔가 소란이 일어난 모양.
이내 심각하게 얼굴을 굳힌 무황이 조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곳에 북해의 후예가 당도해 있는가?”
“아!”
사마세가와 한설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마세가와 북해빙궁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수지간!
아니나 다를까.
사마세가의 선두에서 급속도로 의념이 응축되는 기운이 느껴졌다.
분노로 가득한 그 의념의 기운은 사마강의 그것이었다.
“저 새끼가.”
조휘의 신형이 푹 하고 꺼지자 무황과 자하검성의 신형도 동시에 흐릿해졌다.
순식간에 사마강의 전면에 나타난 조휘가 의념의 장막을 풀며 강렬한 눈빛을 빛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사마강이 주먹에 맺힌 의념을 여전히 풀지 않은 채로 짓씹듯 말했다.
“중원에 빙백여제의 후예를 들이다니 네놈이야말로 무슨 짓이지?”
“빙백여제의 후손인지 내 알 바 아니고요. 그녀는 우리 조가대상회의 한 과장일 뿐입니다. 살의(殺意)를 거두시지요.”
사마강이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네놈은 중원인이 아니더냐? 아무리 평화로운 세월이 흘렀다 하나 북해와 중원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정 모른단 말이냐!”
“아, 여인을 벌거벗겨 정주 대로변에 개처럼 묶어 굶어 죽게 만든 것을 말씀하시는지? 그것도 아니면 무공을 모르는 북해인까지 몰살시킨 일을 다시 되새기자는 건지요?”
“놈! 새외가 중원에 일으킨 살겁(殺劫)을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 네놈도 새외의 끄나풀인가 보구나!”
조휘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마강은 자신이 접한 절대경의 무인들 중 인품도 성정도 가장 덜떨어진 자였다.
그 흑천련의 사악한 흑천대살조차도 그래도 품위는 있었다.
근데 이 사마강이란 사내는 무황과 비등한 경지의 절대이면서도 동시에 매사의 행동이 그야말로 아이와 같았다.
이래서 방구석 여포가 무섭다.
수백 년간 가문의 울타리에 갇힌 채, 우리 가문이 중원에서 최고야 우리가 새외대전을 종식시킨 무신의 후예야 세뇌받으며 자라 왔을 것을 생각하니 조휘는 소름이 다 돋았다.
결국 조휘는 준비한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조가대상회에서 나가 주시죠.”
“……그게 무슨?”
“조가대상회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자가 왜 아직 내 눈앞에 있는 겁니까?”
지금 사마(司馬)의 이름 앞에서 초대장을 운운하고 있단 말인가?
교묘하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을 보니 일부러 강호의 명숙들이 모인 자리에서 창피를 주려는 태가 역력했다.
삽시간에 분노가 일어나 사마강의 전신에서 막강한 기세가 피어날 무렵, 도저히 곁에서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자하검성이 결국 한 입 거들었다.
“무량수불, 사마 가주께서는 어서 기세를 거두시구려.”
그런 천하제일인의 엄중한 경고에 사마강은 가득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장막을 헤치고 그 본질을 헤아릴 수 없는 유일한 고수였다.
하나 자신은 사마(司馬)다.
천년화산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무신의 이름은 결코 숙여질 종류가 아니었다.
“화산 역시 중원의 검종(劒宗)인바 감히 새외의 편에 서시겠다는 뜻이오?”
자하검성 단천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량수불, 그런 뜻이 아니외다. 본 도는 지금 사마세가의 안위를 살피고 있는 것이오.”
“사마세가의 안위?”
자신의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뭐 화산이 사마를 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사마강이 거칠게 노성을 지를 찰나, 그의 귓가에 고절한 의념이 깃든 전음성이 들려왔다.
˂외견(外見)만 살피고 그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마시오. 그는 진정한 검신의 경지, 자연검(自然劒)을 이룩한 지고의 선인(仙人)이외다.˃
뭐라? 자연경이라고?
그리고 뭐 선인?
사마강이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조휘를 쳐다본다.
아무리 살펴봐도 의심할 여지없는 절대다.
무조(武祖)의 경지를 고스란히 접해 본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절대경의 초입에 머무르고 있던 자신.
무조께서 보여 주신 초절한 의념의 환상, 장장 삼 개월 동안 이어졌던 그 깨달음의 홍수가 아니었다면 무량(無量)은 꿈도 꿔 보지 못할 경지였다.
무신의 무공을 익힌 몸으로 그런 엄청난 기연까지 얻은 자신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한데 자하검성의 이어지는 전음이 더욱 가관이었다.
˂무량수불, 부디 재고하시오. 그는 단 일 검에 화산(華山)의 터를 모두 지워 버릴 수 있는 존재요. 그래도 그와 적이 되고 싶다면 더 이상 말리지 않겠소이다.˃
화산의 너른 터는 구파의 으뜸.
그런 화산을 일 검에 지우는 검초?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의 자연검이다.
사마강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자하검성을 다시금 쳐다보았으나, 그는 두 눈을 반개한 채 나직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량수불…….”
무려 천하제일인 자하검성의 공언.
결국 사마강은 그 위대한 칭호에 담긴 권위를 믿어 보기로 했다.
“중천수호가! 철수한다!”
때 아닌 사마강의 선언에 이를 지켜보던 모든 강호명숙들이 기경했다.
설마하니 저 고고한 사마세가가 꺼지라는 조휘의 한마디에 정말 꺼진다고?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일!
그렇게 거대한 백호기가 움직이자 사마의 행렬이 기다랗게 회전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제야 현실을 인지한 듯 중인들의 신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허…… 저 사마세가가…….”
“아미타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비정한 무림의 세계에서 한 번이라도 고개를 조아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강호인들은 모르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사마세가는 조가대상회의 깃발 아래에서는 결코 그 도도함을 내세울 수 없었다.
한데 그때.
무황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조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맹(盟) 역시 북해를 용인할 수 없네.”
그를 향해 홱 하니 돌아간 조휘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 서려 있었다.
“아니 맹주님은 또 왜요?”
무황이 더없이 진중한 눈빛을 빛냈다.
“저 여인을 북해로 추방하거나 맹으로 압송하는 것. 조가대상회가 그 둘 중 하나를 결정짓지 못한다면 맹과의 동맹은 없었던 것으로 하지.”
“하…….”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조휘.
이 꽉 막힌 정파의 노땅들은 남의 개파대전 행사에 찾아와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온갖 어깃장만 들어 놓기만 한다.
도대체 축하를 해 주러 온 것인지 시비를 걸기 위해 온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
강철의 맨탈을 자부하는 조휘였지만 이쯤 되면 슬슬 정신이 가루가 되기 시작한다.
“그쯤하시죠. 진짜 화나려고 합니다. 자꾸 그러시면 저 안 참아요.”
한데 무황은 이 문제만큼은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지나친 자신감이로군.”
“아니 이건 자신감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맹의 행사가 어찌 그리 가볍습니까? 동맹을 약조해 놓고 이깟 문제로 파기라고요?”
“허어, 이깟 문제라니? 아무리 맹이 자비롭기로서니 북해(北海)마저 용인할 거라 생각했는가? 새외대전의 상처는 아직 중원에게 깊다네.”
조휘가 버럭 짜증을 냈다.
“하! 그럼 방법을 말씀해 주시죠. 저는 한 소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맹이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조휘의 그런 반응에 그제야 무황이 본색을 드러냈다.
“맹의 처마 아래로 들어오게.”
동등한 지위의 동맹을 포기하고 맹에 복속되라는 의미.
지금 무황은 단백우와 담판을 지었던 모든 협상을 뒤엎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휘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단백우에게 향했다.
“교위님과 제가 협상하고 합의한 내용을 맹주님께 전달하지 않은 겁니까?”
대답은 무황이 했다.
“그 내용은 잘 전달받았네. 하지만 맹으로서는 너무나 불리한 내용이더군.”
“하…….”
“공식적으로는 본 맹과 조가대상회 사이에 오간 친서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애초에 공식적인 합의 내용이 없는 마당에 합의의 파기 운운하는 것부터가 부적절한 처사지.”
조휘와 단백우 사이에 오간 합의가 밀실에서 이루어진 구두 합의라는 맹점을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는 것.
하지만 무려 무림맹 감찰교위의 언행이었다. 감찰교위라는 직책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수하를 바보 취급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그럼 왜 무림맹밖에 모르는 저 감찰교위님께서 그런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가 보여 드리는 수밖에요.”
이미 조휘와의 대담을 모두 감찰교위에게 보고받은 상황.
무황이 진득한 눈을 빛냈다.
“무림맹과 쟁(爭)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뜻인가.”
조휘는 틀림없이 맹과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또 다른 삼패천인 사천회(邪天會)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내비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검신의 이름으로 중원의 검종들을 모두 모으고 그렇게 영향력을 키워 정파를 둘로 쪼갤 것이라 선언하거나.
한데 그런 조휘의 망동을 무림맹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있겠는가?
허나 조휘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뇨. 무림맹의 힘이 이토록 온 천하를 진동하는데 제가 미쳤다고 맹과 전쟁을 벌이겠습니까?”
“사천회와 손을 잡겠다는 뜻이 아닌가?”
조휘가 씨익 웃었다.
“조가대상회가 사천회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는요? 맹이 과연 찾을 수 있겠습니까?”
무황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아니 설마 자네?”
“양지에서 절 내치시겠다면 하는 수 없이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요.”
순간 무황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능수능란한 수완과 엄청난 계략으로 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안휘와 강서를 먹어 치운 상계의 절대자가 지금 무림맹주의 앞에서 암상(暗商)의 길을 천명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인과 암상은 그 결이 다르다.
암상은 철저한 비밀 조직.
저 엄청난 심계를 가진 놈이 조가대상회의 외견을 모두 정리하고 지하상계(地下商界)로 숨어들기 시작한다면…….
필시 암중으로 천하를 조종할 놈이다.
무황은 그런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졌다.
“개파대전부터 없었던 것으로 하죠. 강호명숙 여러분!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은 취소되었…… 읍!”
무황이 벼락같이 보법을 밟아 조휘의 입부터 틀어막고 있었다.
“이, 이놈이!”
조휘가 발광하듯 무황의 손을 뿌리쳤다.
“와 씨. 이제 아예 놈놈 하기로 한 겁니까?”
무황, 청운진인.
그는 도가의 영예로운 최고 칭호인 진인(眞人)의 반열에 오른 후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며 살아왔다.
한데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 고절한 다짐이 모조리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저 조휘가 너무나 얄밉고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황이 다소 음침해진 눈으로 조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어 조휘의 귓가로 날아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럼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이 내가 북해를 용인한다면 저들이 맹을 따를 것 같으냐? 북해를 포용할 명분이 없지 않느냐! 명분!”
과연 무황에게도 나름대로 난처한 입장이 있었던 것.
조휘에게만 들리도록 읊조리듯 작게 말한 무황이었지만 바로 곁에 있었던 자하검성 단천양에게는 천둥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무량수불…… 도조시여. 혹 그 옛날 무림의 공적이었던 호조마녀(狐爪魔女)가 어찌 강호의 은원을 벗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호조마녀요?”
조휘도 얼핏 강호풍운록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수많은 정파 고수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파의 괴녀(怪女).
그녀의 진신무공인 귀호마조(鬼狐魔爪)는 당시의 무림에서도 그 적수를 찾기가 힘들었다.
온갖 원한으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정협군(正俠君) 사위영.
본디 그는 호조마녀를 추살하는 임무를 지닌 무림맹 척사대(斥邪隊)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추적하면 추적할수록 그녀의 딱하고 한스런 과거를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정협군은 강호를 향해 호조마녀가 자신의 처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오른팔을 잘라 자신의 각오를 드러내었다.
아무리 강호가 비정하다 하나 집안의 일을 묻지 않는 것은 불문율.
더욱이 적수공권이 주특기였던 그가 스스로 팔을 잘라 각오를 드러냈으니 정파인들은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보던 조휘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저더러 그녀와의 혼인을 선언하고 스스로 팔을 자르라는 건 아니겠죠?”
“무량수불…… 여인이 혼인을 한다는 것은 가문의 성을 잊고 지아비의 가문에 귀속된다는 뜻입니다.”
그제야 조휘의 두 눈에 이채가 발했다.
한설현과의 혼인.
그 이후에 강호인들이 그녀에게 칼을 겨눈다면 그것은 북해를 향해 겨누는 것이 아니게 된다.
바로 ‘소검신의 처’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된다는 뜻.
이미 지아비를 섬기고 그 가문에 종속된 아녀자에게, 본가의 수백 년 전의 원한을 왈가왈부한다면 명분과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약자를 핍박하는 모양새가 되거나 억지스럽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행동이 되는 것.
조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설현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동시에 마주친 시선.
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이쪽의 대화를 그녀가 들었을 리 만무했지만 그녀 역시 조휘의 눈빛에서 어떤 뜨거운 감정을 느낀 듯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엄청난 의념이 가미된 사자후(獅子吼)가 조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조가(曹家)의 이십삼 대손! 순(順)의 차남 휘(輝)! 북해(北海) 설풍한가(雪風寒家)의 설현(雪賢) 소저께 정식으로 청혼하는 바이오!
꾸르르르릉!
총단 전체를 휘감고 있는 조휘의 충격적인 선언에 의해, 구파의 명숙들은 하나같이 멍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설현에게 향하고 있었다.
“…….”
한설현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이 수백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난데없이 청혼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 닥치자 어쩔 줄을 몰라 사고가 마비된 것이다.
한데 모두가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아…… 모르겠어요? 아, 아니아니…… 저는…… 저는…….”
횡설수설.
도대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그녀가 떨리고 놀란 가슴, 긴장되며 부끄러운 감정을 도무지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촤아아아악!
기다란 채찍을 휘두르며 놀라운 속도로 경공을 시전해 다가오는 진가희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야 이년아! 당연히 거절해야지! 당장 거절하라고! 끼아아아아악!”
창백한 악귀처럼 변한 소름 돋는 진가희의 얼굴을 바라보자 오히려 한설현은 이성이 되돌아왔다.
“……하겠어요!”
웅성이던 좌중이 또다시 침묵에 휩싸이자.
“그 청혼을 승낙하겠어요!”
벼락같이 짓쳐 달려오고 있던 진가희가 화폭처럼 멈춰 선다.
“……씨발! 씨바아아아알년아!”
이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우는 진가희.
“으흑흑! 으흑흑흑흑!”
그렇게 진가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다란 머리칼을 늘어뜨리며 귀곡성과 같은 울음소리를 내자.
오한이 치민 듯 장내의 모든 중인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조휘도 소름 돋은 얼굴로 팔뚝에 치민 닭살을 매만지더니 무황을 힐끔 쳐다보았다.
“좋아하시는 그 명분. 드렸습니다.”
무황도 얼이 빠진 얼굴로 멍하게 굳어 있다가 이내 목청을 터뜨렸다.
-북해의 후예가 비로소 소검신(小劒神)의 처가 된바, 이는 그녀가 이제 조가의 사람이 되었음이오. 이에 맹은 더 이상 그녀와의 은원을 거론치 않겠소이다.
“흑흑……!”
무황의 그 한마디에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한설현이 나직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빙가지명을 이은 후손으로서 어찌 북해인임을 부정할 수가 있으며, 어찌 선대의 유지를 거짓되게 고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그런 행동은 조휘의 행보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그간 복잡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끝난 마당에 그녀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고민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진심인 걸까?
아니면 그의 임기응변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자신에게 호기롭게 청혼을 했던 사내는, 야속하게도 이미 저만치 나아가 준비된 단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단상 위에 오연히 선 조휘가 좌중을 훑어보며 다시 거친 일갈을 토해 냈다.
-무력(武曆) 일천이백육십이 년! 이 조 모가 감히 천하의 동도들 앞에서 조가대상회의 개파(開派)를 선언합니다!
중원을 살아가는 백성이 제국의 오롯한 역법(曆法)을 쓰지 않고 사사로이 다른 역법을 쓴다는 것은 대역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무림의 무력(武曆).
그리고 감히 그런 무력을 언급할 수 있는 존재는 세력의 종주가 유일했다.
방금 조휘는 그런 종주로서의 위엄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뿌우우우우우우-
나팔 소리가 기다랗게 울려 퍼지자 조가대상회의 무력단 조가천무대(曹家天武隊)가 입장하기 시작한다.
척척척척!
절도 있는 걸음으로 들어서고 있는 조가천무대의 위용은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휘황찬란한 광휘로 번쩍이는 용린갑!
거기에 철호완과 우갑각반, 조가철검 등 그야말로 완벽한 무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요대에도 각종 보조 무기, 신호탄, 연막탄 등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물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조가대상회가 자랑하는 상품들이 기다란 수레의 행렬을 이루어 입장하고 있었다.
안휘철방이 자랑하는 개천운차를 필두로 값싸고 질 좋은 병장기들, 인력차, 설화신주와 한빙주, 냉차와 흑청수, 육겹면포 등 그야말로 조가대상회를 총망라하는 상품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는 것.
그런 조가대상회의 행렬이 정해진 동선을 모두 돌자 조휘가 불끈 쥔 주먹을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세웠다.
-조가대상회! 이 조휘가! 강호를 한번 이롭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상도(商道)에도 협의지도 못지않은 대도(大道)가 있음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조휘가 조가대상회라는 새로운 세력의 개파를 선언하고 종주로서의 신념을 밝히자.
수백여 명의 시비들이 준비된 술상과 음식들을 총단의 마당에 차례대로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강호의 경사를 알리는 수많은 축포가 하늘에 수놓아졌다.
퍼퍼퍼펑!
퍼퍼퍼퍼펑!
개파대전이라는 성대한 축제가 마침내 열린 것이다.
* * *
꺼어억!
꺼어어어억!
사방에서 들려오는 트림 소리!
흑청수를 맛본 강호의 명숙들은 하나같이 놀란 토끼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미친 소화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청량한 쾌감이 몰아치자 모두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육겹면포(肉裌面包)를 씹은 후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용권문주 막여평!
설화신주가 담긴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더니 아으아으 괴이한 비명만 흘리고 있는 곤륜검노!
독째로 한빙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 무극도왕 팽율천까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에 다름이 아니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개파대전의 엄숙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통 흥분의 비명 소리와 감탄성만이 난무했다.
이 와중에 가장 당황해하고 있는 것은 소림과 무당.
화산과 곤륜으로 대표되는 중용(中庸)의 도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자들에게 육식과 술을 허용했다.
하지만 소림과 무당은 지금까지도 계율과 법도로써 엄중히 금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사실상 맛볼 수 있는 것은 달랑 냉차와 흑청수뿐이었던 것.
특히나 소림의 화상(和尙)들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는 육겹면포를 앞에 두고 도무지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조휘는 흡족한 얼굴로 그런 장내를 살피다 이내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어? 저 중은?’
조휘의 눈을 사로잡은 사내는 과거 소림사에서 보았던 그 땅딸보 무승이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엄청난 기합성의 무승!
그대로만 성장한다면 반드시 소림칠십이종절예 중 사자후를 익힐 자였다.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무림 최강의 확성기!
그런 그가 육겹면포를 앞에 두고 연신 침만 꿀꺽 삼키고 있는 것이다.
조휘가 은근슬쩍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 본 적 있으시죠?”
확성기(?) 무승은 한 손으로 합장하며 푸근하게 웃고 있는 조휘를 발견하고는 한껏 당황해했다.
“아, 아미타불! 소검신을 뵙습니다!”
무려 검신의 유지를 이은 자!
더욱이 그가 엄청난 신위로 사마세가에 맞서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마당이라 무승의 얼굴에는 경이로 가득 차 있었다.
“혹시 법명이……?”
“아, 제 법명은 혜웅(慧雄)이라 합니다!”
마치 이등병처럼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조휘는 왠지 모를 귀여움을 느꼈다.
저 반짝반짝 대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싶을 지경.
“혹시 속세로 탁발수행하실 때가 안 되셨는지?”
소림의 무승들은 정해진 시기가 되면 반드시 속세로 수행을 나가게 된다.
그런 소림의 탁발수행은 강호를 경험시키려는 것도 있었지만 중생의 어려움을 살피고 불법을 설파하는 포교의 목적이 더욱 강했다.
“아! 저는 금년이 지나면 탁발수행을 나갈 수 있습니다!”
“오오!”
조휘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얼굴을 하다가 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혹시 그때가 되면 알바…… 아니, 단기로 일을 해 보실 생각이 있으신지?”
“일이라시면?”
조휘가 한껏 푸근하게 웃었다.
“탁발이라는 것이 말만 그럴싸하지 사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 얻어먹는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공양을 받는 것이 어디 쉬운 일도 아니고…….”
“아미타불! 불경합니다!”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발우(鉢盂:승려의 밥그릇)에 담는다는 것은 불자의 목숨을 발우에 기탁한다는 의미다.
그 엄숙한 불자의 행위를 고작 밥 얻어먹는 행위라고 폄하하다니!
감히 소림의 행자승을 개방도와 동급으로 묶는단 말인가!
“아니 불경이라뇨? 따지고 보면 사실이 아닙니까? 소림의 이름 높은 무승이 밥덩이 하나 얻으려고 집들을 온통 헤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묘하게 띄워 주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평소 소림사의 무승으로서 자부심이 하늘에 닿아 있었지만 왠지 오늘에 이르러서야 걸인 취급을 당하는 기묘한 기분.
조휘가 혜웅의 어깨에 팔을 걸치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좀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시, 시주?”
“호오? 역시 몸이 보통이 아니네요? 소림사의 외공이 천하일절이라더니!”
“헤.”
띄워 줄 때는 확실히 띄워 주는 조휘의 능수능란한 화술에 눈 뜨고 코 베이듯 조휘를 따라나서는 혜웅.
어느덧, 한 전각 아래의 음습한 그늘로 혜웅을 데려간 조휘가 두 눈을 반짝였다.
“불심을 마음에 새기고 계율을 닦는 수련승의 기간만 삼 년, 법명을 받고 무승(武僧)의 위에 오르기까지는 칠 년, 본격적으로 소림진산기예를 익힐 수 있는 나한(羅漢)에 이르는 것은 아예 기약도 없죠.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소림인데 혹시 틀렸습니까?”
“…….”
두 눈만 껌뻑이고 있는 혜웅.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나한이 되어 나한전에 입성한다 해도 뭐? 나한기공? 나하안기공?”
“나, 나한기공이 어때서 그러십니까?”
조휘가 두 눈을 부라렸다.
“아니, 수음(手淫)도 안 된다면서?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겨우 받는다는 것이 정(精)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동자공(童子功)이라고? 거 너무 잔인한 것 아니요!”
“…….”
소림의 제자가 된 후로 저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어차피 법명을 받고 소림의 계율에 속한 이상 여인과의 혼인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조휘가 저토록 소림의 무승들을 대변해서 열변을 토해 주니 왠지 혜웅은 고개가 끄덕여지며 묘하게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아니, 아무리 동자공이 내공을 모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건 제자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처사죠. 막말로 지들은 한 번도 안 쳤답니까?”
“……치다니요?”
아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이다.
조휘는 그 순진한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됐고. 그렇게 십수 년을 절차탁마 소림무공에 매진하다 겨우 강호에 나왔는데 밥덩이나 구걸하러 다니라니? 오히려 고생했다고 여비를 챙겨 줘도 모자랄 판국이거늘! 천하제일 소림은 개뿔이!”
혜웅이 놀란 토끼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겁을 했다.
“모, 목소리를 낮춰 주십시오 시주!”
“왜요! 제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아미타불, 시주 제발!”
조휘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앞섶을 뒤져 한빙주가 담긴 호리병을 꺼냈다.
꿀꺽꿀꺽!
이내 거침없이 한 모금 들이켜더니 혜웅에게 호리병을 건네는 조휘.
“크으. 쭉 드십쇼.”
“예?”
“아니 열도 안 받습니까? 한 잔 쭉 드시지요.”
꿀꺽.
분명 침은 넘어가는데 머리는 거부하고 있었다.
간혹 민간의 땡중들 중에서 무슨 곡차(穀茶) 운운하며 술을 즐기는 자들도 있다고는 하나 천하의 소림승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율의 엄정함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소림의 무승이 어찌 술을 맛볼 수 있겠는가.
“으, 음주는 불가합니다!”
“여긴 아무도 없는데?”
혜웅이 엄숙한 얼굴로 눈을 부라렸다.
“불존의 가르침이 이 소승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누가 보지 않는다 하여 어찌 불자로서 참람한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참람? 허, 술도 음식이거든요? 그 계율부터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술을 무슨 고기로 만들었냐고요. 쌀로 만든 거라고요, 쌀! 소림은 낫으로 벼를 베는 것도 살생(殺生)으로 치나 보죠?”
기가 차는 조휘의 논리에 혜웅이 한껏 당황해하며 불호를 뇌까릴 그때.
조휘가 그의 입에 호리병의 주둥이를 냅다 꽂아 버렸다.
“아, 아미타…… 꺽!”
꿀꺽꿀꺽!
청량한 기운의 곡차(?)가 그의 식도를 거침없이 내달리자.
혜웅의 두 눈이 더 이상 크게 뜨여질 수 없을 정도로 동그랗게 변했다.
아아, 그것은 가히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기묘한 맛.
그토록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이 배 속에 당도하자 용암처럼 뜨겁게 변하여 온몸을 후끈 데우기 시작한다.
그 뜨거운 기운은 순식간에 취기가 되어 온몸을 짜릿하게 만들어 갔다.
취기가 오른 인간은 대담해진다.
결국 혜웅은 조휘의 호리병을 받아 들더니 마치 팽가의 근육 사내들처럼 호탕하게 앞섶을 적시며 들이켰다.
꿀꺽꿀꺽!
“크으……!”
한껏 들이마신 혜웅.
“자, 여기 안주!”
조휘가 꺼내 든 것은 육겹면포!
이미 취기가 달아오를 대로 오른 혜웅은 이성이 마비되고 말았다.
덥석!
와구와구!
육겹면포를 씹고 있던 혜웅이 그대로 눈물을 쏟아 냈다.
소림의 소채(蔬菜)는 소금 간 외에는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는다.
그런 자연적인 사찰 음식을 누군가는 천하의 진미라고 칭송하나 그거 다 실없는 개소리였다.
실로 미친 단짠의 조화!
육즙으로 가득한 풍미의 향연!
씹자마자 기절할 것만 같은 맛의 폭풍이 몰아친다.
그것은 가히 맛의 기적.
왜 다른 문파의 고수들이 육겹면포를 처음 맛보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혜웅은 알 것 같았다.
그동안의 삶이 억울했던 것이다.
평생 산중에 처박혀, 오로지 소금만이 느낄 수 있는 맛의 전부인 줄 알았던 불쌍한 중과 도사들.
조휘가 그런 혜웅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탁발수행을 나오면 저희 조가대상회에 바로 찾아오시죠. 혜웅 스님께서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 수행을요?”
조휘가 호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육겹면포와 흑청수, 한빙주를 무한으로 대접하겠습니다. 대신.”
“대신?”
“저희 조가홍보과에 자리가 하나 남는데 탁발 기간 동안만 맡아 주시면 됩니다.”
싱긋.
혜웅은 걸어 다니는 인간 확성기다.
그저 좌판 하나 깔고 목청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완판은 따 놓은 당상.
혜웅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미타불, 저는 소림승…… 무욕의 계율에 매인 몸입니다. 상업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허어, 가발(假髮)과 인피면구(人皮面具)면 해결될 일을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시는지?”
“가, 가발과 인피면구요?”
“당연하죠. 저희가 유통하는 인피면구는 정교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아무리 경험 많은 강호의 노고수일지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지요. 더욱이 수행자라면 많은 경험을 해 보는 것에 그 목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 아미타불…….”
이쯤 되면 다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조휘는 벌써부터 침 발라 놓은 상계의 재목을 결코 놓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앞섶에서 예의 근로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월봉도 섭섭하지 않게 쳐 드리겠습니다. 여기하고 여기 사인, 아니 서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딸꾹!”
혜웅은 조휘가 푸근하게 웃으며 건네고 있는 목탄을 멍하게 응시하다 결국은 건네받고야 말았다.
스스슥.
꼼꼼하게 서명을 살피던 조휘의 얼굴이 이내 화색으로 밝아졌다.
“하하하, 혜 대리!”
“혜, 혜 대리라뇨?”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벌써 보법을 밟아 저만치 사라져 가는 조휘.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혜 대리(?)를 뒤로한 조휘는 그 후로도 계속 인재 줍줍에 나섰다.
능력 있는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자리는 소룡대연회가 아니고서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제 발로 조가대상회에 모두 모여든 마당이니 이번 기회에 최대한 인재들을 끌어모아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가대상회는 심각한 인력난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상황.
나이가 차 소룡대연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조휘로서는 이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이미 동료들 중에서 수완과 입심이 가장 좋은 장일룡과 제갈운도 후기지수들을 포섭하기 위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강호의 명숙들이 흥청망청 술을 퍼마시고 있는 개파대전의 축제 속에서 조가대상회의 수많은 사원과 대리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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