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53
52 章>
짜아아악!
여긴 어디인가.
짜아아악!
나는 누구인가.
짜아아악!
나는 왜 처맞고 있는가.
짜아아악!
이런 씨발!
“그마앙! 그마아아아망!”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그야말로 푸르뎅뎅해진 양 볼을 앙다물며 조휘가 벌떡 일어나자.
“이런 썅! 또 공염불로 만들려고 그래? 한번 시작했으면 내리 천 대를 쉼 없이 맞아야 한다니까?”
“시팡, 이거시 사라미 하알지시여?”
조휘는 도저히 더 맞을 수가 없었다.
맞는다는 것이 묘한 게, 그 극한의 격통도 어느 순간부터 적응이 되어 참을 만했던 것.
하지만 박살 나는 멘탈만큼은 도저히 부여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마치, 그래 짐승이 되는 것 같다.
매에 길들여지는 짐승!
오백 몇 대였던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때리기 좋게 고개를 비트는 자신을 발견하며 조휘는 그야말로 전신에 소름이 와르르 돋아났다.
아아, 이런 게 맞는다는 거였나.
한데 그때.
“어? 내 어구리 에이래?”
푸들푸들푸들.
갑자기 얼굴에 일어난 엄청난 경련들!
천변혈후가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결국 해내 버렸어! 집중해 당장! 지금 그 감각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아, 아라따!”
“아까 내가 한 말 모두 기억하지? 처음은 뇌호혈(腦戶穴)이야! 뇌호혈을 시작으로 백회혈(百會穴), 태양혈(太陽穴)을 차례대로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 끌어올릴 수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뇌호혈과 백회혈, 태양혈은 모두 사람의 머리에 위치한 혈도로서, 섣불리 자극을 했다간 그대로 이승을 하직하는 주요 사혈(死穴)이었다.
특히나 임맥과 독맥이 만나는 백회혈은 가장 중요한 혈자리로, 이를 정복하는 과정이 실로 죽음과 삶을 오고 간다 하여 따로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 불리기도 했다.
한데 이 위험한 혈도들에 전 내공을 불어놓고 원형을 그리며 가속하라니?
자칫하다가는 생명을 잃거나 백치가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의심하지 마! 날 믿어!”
“크으으……!”
조휘가 가득 이를 문 채로 그녀의 말대로 운기행공을 시작하자 영계의 존자들마저 우려하고 나섰다.
-저저……!
-허어! 무모한지로고!
검신이 그런 소란을 일거에 저지했다.
-녀석에게 내기의 역류가 일어나면 곧바로 이 내가 현신할 것이오.
그러자 마신이 반감을 드러냈다.
-그대의 영력은 그야말로 경각에 달려 있소. 현신은 내가 하겠소이다.
연신 내공을 가속하던 조휘는 그제야 자신감을 얻었다.
존자 어른들이 존재하는 이상 자신에게 주화입마 따위는 있을 수가 없는 것!
“가속이 계속되면 그 관성 때문에 내공이 외부로 흩어지려 할 거야! 때는 바로 그때! 내력이 빠져나가면서 지금 날뛰고 있는 모든 사근들을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기억해!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우우우우웅!
그렇게 벌 떼가 날아가는 소리가 조휘의 머릿속에 가득 울려 퍼질 무렵.
그녀가 말한 현상이 곧바로 찾아들었다.
가속하던 내공이 얼굴의 모든 모공으로 배출될 것만 같은 느낌이 한없이 일어난다.
따끔따끔!
엄청난 격통으로 따끔거리던 조휘의 얼굴, 그 무수한 사근들이 막강한 압력에 의해 더욱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자.
“으아아아아!”
조휘가 비명을 지르며 한계에 다다랐다.
싸아아아아아-
내력이 모공 밖으로 흩어지며 모든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허나 그런 청량한 쾌감의 와중에 기이한 감각들이 열꽃처럼 피어났다.
과거에는 전혀 인식할 수 없었던 사근들, 신경으로 통제되지 않았던 그런 기묘한 감각들이, 흩어지는 내기와 함께 마치 세류(細流)처럼 춤추고 있었다.
조휘는 더욱 입을 악다물었다.
천변혈후의 당부대로 단 하나의 감각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 정신을 집중해 사근들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두 시진쯤 흘렀을까.
드디어 조휘가 반개했던 눈을 천천히 떴다.
“호오…….”
한껏 불그스레해진 얼굴, 그런 조휘를 바라보며 천변혈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친, 진짜로 홍면개화를 단숨에 이뤄 낼 줄이야.”
지난 날 조화면천변의 제일 단계인 홍면개화(紅面開花)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바쳤던 대가, 그 엄청난 노력과 시간들을 생각하니 문득 허탈함이 밀려온 것이다.
과연 천하에 소검신이라 불릴 만한 자.
과감하면서도 정밀한 내기의 운용과 때를 놓치지 않는 천부적인 감각, 또한 극한의 인내력까지!
그 모든 것이 놀라운 사내였다.
양 볼에 피가 주르륵 흘러 붓기가 빠지자 그제야 조휘는 본래의 발음으로 돌아왔다.
“놀랍군. 얼굴에 그야말로 무수한 통로들이 새롭게 생긴 느낌이다. 이 내기의 통로들이 사근을 통제하는 새로운 감각인 거냐?”
과연 인간의 얼굴에 팔천 개가 넘는 사근이 존재한다는 그녀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천변혈후가 화사하게 웃었다.
“응.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되진 않을걸? 처음에는 제멋대로일 거야.”
그녀의 말에 조휘는, 내력을 미세하게 운용해 새롭게 생긴 통로 하나에 조심스레 흘려보냈다.
꿈틀.
“음?”
분명 턱선 쪽으로 흘려보낸 것 같은데 이마 쪽이 꿈틀거렸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
눈썹 부근의 사근을 통제하려 하면 입가가 씰룩였고, 눈꺼풀을 떨게 하려다 귓불이 파르르 떨렸다.
조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멋대로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모든 사근의 감각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 될 터였다.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수천 개의 감각들을 빠짐없이 암기해야만 가능할 텐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는 것이다.
조휘는 새삼스레 천변혈후가 대단해보였다.
보통 머리가 좋은 년이 아닌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이룬 건 첫 단계인 홍면개화. 이제 막 사근의 감각들을 통제하기 시작한 상황이야. 그 후로도 세 단계의 경지가 더 남아 있지.”
“총 네 단계란 말인가.”
“응. 나도 아직 마지막 단계는 이루지 못했어.”
“마지막 단계?”
“삼보면천변(一步面千變). 세 걸음에 일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때 진정한 조화면천변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미친.”
누가 이런 엄청난 무공을 창안했는지는 몰라도 실로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역체변용술에 있어서만큼은 가히 종사에 이른 자이리라.
이어 조휘는 천변혈후에게 다음 단계의 연성법을 두 시진에 걸쳐 모두 전수받았다.
“정말 고맙다.”
조휘가 묵묵히 품 안의 전표 다발을 꺼내며 그녀에게 내밀자.
천변혈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눈치였다.
한눈에 봐도 금화 천 냥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던 것.
그가 가지고 있던 전표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꺼내 든 것이다.
“와, 이게 대체 얼마야?”
“대충 금화로 이만 냥쯤 될 거다.”
천변혈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작은 현(縣) 하나를 사고도 남을 엄청난 돈을 현물로 가지고 다니는 놈이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하기야 조가대상회의 회장이란 자다.
안휘와 강서를 송두리째 거머쥔 대상(大商)인 그에게 있어서 이 정도 금화는 돈도 아니리라.
그렇게 조휘가 처음에 합의한 금액의 스무 배에 달하는 금화를 내어놓자 천변혈후의 얼굴에는 더욱 흡족한 미소가 만발했다.
조화면천변의 진정한 가치를 그가 알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런 사내의 호탕함을 알아봐 줘야지!
“필요 없어.”
천변혈후가 자신이 건넨 전표를 스윽 하고 밀어내자 조휘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이만 냥인데? 그것도 금화로?”
“다른 걸로 받고 싶은데.”
“다른 것?”
갑자기 천변혈후가 저고리를 풀었다.
“여기서 어때? 난 야외취향인데.”
“또 시작이냐?”
조휘가 소름 돋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며, 이어 망설임 없이 의념을 구동했다.
우우우우웅-
“하! 허공섭물?”
조휘의 전면에 두둥실 떠오른 철검을 응시하며 경악하고 있는 천변혈후.
곧 그녀가 미약한 의념으로 조휘의 철검을 훑더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아니네. 미쳤네. 허공섭물이 아니라 검령(劒靈)이네. 와! 그럼 소검신의 어검비행이 진짜였어?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꾸며 낸 헛소린 줄 알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조휘가 가볍게 도약해 철검 위로 올라섰다.
“난 분명 대가로 재물을 약속했다. 자꾸 이상한 요구만 늘어놓으면 재미없을 줄 알아. 그리고…….”
입술을 삐죽이는 천변혈후.
“또 뭐?”
“나 곧 유부남이야. 괜히 혼삿길 막지 말라고.”
천변혈후가 피식 웃었다.
“방패로 막는다고 몸이 안 꿰뚫려?”
“어휴 미친년, 비유 보소.”
조휘가 상체를 숙이며 어검비행을 하려 하자 천변혈후가 뾰족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야! 소검신! 넌 사부의 이름도 한 번 안 물어보냐!”
조휘가 흘깃 그녀를 쳐다본다.
“이름이 뭔데?”
“백화린(白花璘). 그게 내 이름이야.”
거 이름은 예쁘네.
쏴아아아아아아-
조휘가 말없이 어검비행으로 나아가자 숲속에서 백화린의 뾰족한 음성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조가대상회에서 봐!
* * *
개봉(開封).
성도인 정주(鄭州)와 더불어 하남성(河南省)을 대표하는 양대 도시라 할 수 있는 곳으로서, 그야말로 온갖 행색의 상인들로 들끓는 대표적인 하남의 상업 도시였다.
더불어 정파의 구대문파를 논할 때 항상 함께 거론되는 일방(一幇), 즉 개방(丐幇)의 하남 총타가 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유명한 개방의 하남 총타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대게 정보를 다루는 집단의 특성이 그렇듯, 개방 역시 접선책을 보호하기 위해 은밀하게 방도들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거지 떼가 모여 구걸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개방의 하남 총타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돌 정도.
사실 그런 풍문은 틀린 것도 아닌 것이, 개방도들은 특별히 장소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아직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장신구 상인이 깔아 놓은 좌판의 근처에서 진득한 눈빛을 발하고 있는 젊은 거지 사내의 이름은 등조걸.
등조걸은 개방의 이름 높은 의혈단(義血團)에 소속된 거지로서, 개방의 후기지수라 할 수 있는 신개(新丐)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이결제자였다.
‘내가 장소를 잘못 알고 있나?’
등조걸은 연신 의아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약속한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이틀 뒤면 달포 동안 신개들이 모은 정보를 취합하여 의혈단주 어르신께 보고해야 하건만 그런 신개들이 한 놈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시간도 확실하고 장소도 정확한데 신개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각지에 흩어져 정보를 모으던 놈들이 한둘 빠진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전부?
당연히 등조걸은 지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의 그 어떤 행동 강령에도 이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
그도 그럴 것이 육십 명에 달하는 의혈단의 개목(丐目:개방의 정보원)들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을 확률?
그것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아니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데 그때, 등조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스름한 골목 어귀 부근의 한 포목점에서 의혈단의 신개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기 때문.
이에 등조걸이 그들에게 화급히 달려갔다.
“장산! 왜 다들 여기에서 나오나?”
장산 역시 등조걸을 바라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뭐, 뭐야? 조걸이가 둘?”
“그 무슨 황당한 소리냐?”
“바, 방금 네가 포목점 안에서 신개들의 밀지를 모두 거둬 가지…….”
순간, 장산의 안색이 싯누렇게 변했다.
“헉! 설마!”
“일개들은 모두 흩어져서 흉수를 찾는다! 장산 넌 잠시 남아!”
의혈단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의혈단이 달포 동안 모은 모든 정보들을 통으로 털린 것이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장산에게로 등조걸의 신경질적인 음성이 날아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나와 용모가 똑같았다고?”
“트, 틀림없이 너였다. 게다가 의혈단의 접선 방법과 심지어 음어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우리의 음어(陰語)까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오히려 장산은 등조걸을 의심하고 나섰다.
“호, 혹시 네, 네놈이!”
“빌어먹을!”
등조걸이 신경질적으로 앞섬을 열어재꼈다.
그의 가슴께에 인두로 지진 듯한 저 자국은 틀림없는 후개(後丐)의 상징!
장산은 등조걸이 방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시간이 없다. 놈의 용모파기……! 아 맞다 이런 제길! 목소리는? 목소리는 어땠나?”
“그야말로 너와 똑같았다. 몸짓이나 버릇까지 완벽히 너였어.”
“와…….”
등조걸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름 높은 의혈단 신개들을 단숨에 속여 버린 고절한 변장술은 일단 제쳐 두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와 습관까지 흉내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은 누군가가 자신의 정체를 미리 눈치채고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해 왔다는 뜻.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미행당한다는 느낌은 결코 받지 못했다.
그때 등조걸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서, 설마!”
얼마 전 이름 모를 한 사내와 의기투합하여 함께 진탕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는 말을 얼마나 기똥차게 하는지 그야말로 혼이 나가 버릴 정도의 화술을 지닌 젊은 사내였다.
‘보자…… 그놈의 이름이 조영훈이라 했나?’
중원인의 이름치고는 특이해서 그 취중에서도 확실히 기억이 났다.
등조걸이 별안간 괴성을 질렀다.
“조영훈이라는 자를 찾아라! 호리호리한 체구에 큰 키! 흰 피부에 계집처럼 곱상하게 잘생긴 놈이다!”
“아, 알았다!”
한데 그때 그의 귓가로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들었다.
˂친구야 안녕? 밀지 찾고 싶지?˃
등조걸이 미친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개자식! 어디냐!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다 태워 버리기 전에 내색하지 말고 내가 정한 장소로 와라. 장소는…….˃
등조걸이 이를 꽈득 깨물며 온몸을 부르르 떨다 결국 발길을 옮겼다.
* * *
등조걸이 찾아간 곳은 비룡객잔의 어느 한 침소였다.
과연 자신의 예상은 한 치도 틀림이 없었다.
분명 얼마 전 자신과 죽어라 화주를 들이마셨던 그놈이다.
등조걸이 그 희멀건 면상을 바라보다 씹어뱉듯 말했다.
“조영훈 너 이 새끼!”
조영훈, 아니 조휘가 화사하게 웃으며 그의 앞섶을 가리켰다.
“인두 자국은 또 몰랐네? 좋은 정보 감사.”
등조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 오히려 애처로운 표정을 했다.
“도대체 전생에 너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내게 이러는 것이냐? 제발 그 밀지들을 돌려 다오.”
등조걸은 보통의 거지가 아닌 후개(後丐)다.
저 조영훈이라는 놈의 교활한 심계와 재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게다가 틀림없이 무공을 익힌 놈이 분명한테 자신의 눈에 읽히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말인즉 상대가 적어도 화경 이상의 강자라는 뜻.
“당연히 돌려 드려야지. 아니면 의혈단주께서 타구봉으로 매타작을 하실 텐데.”
등조걸이 더욱 뜨악한 얼굴을 했다.
“아니, 사부님의 정체마저 알고 있단 말이냐?”
타구봉(打狗棒)은 개방 방주의 신물.
의혈단주가 개방 방주 구천기(具天紀)의 위장 위계라는 것을 상대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훗, 그 정도가 무슨 거창한 비밀이라고. 대충 정보상 몇 곳 돌아보니 딱 답이 나오던데.”
“뭐, 뭐라고?”
“딱 보면 모르나? 의혈단의 명성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나, 개방의 서른여섯 개에 달하는 단(團)의 하나에 불과한데, 왜 개봉의 모든 정보들이 의혈단으로 모이는 거지?”
“…….”
“정보 집단을 자처하는 개방에서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자…… 그는 가장 높은 권력자일 확률이 높지. 적어도 그가 일개 단주(團主)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어. 아, 또 하나 유추한 것이 있는데 혹시 개방의 하남 총타란 특정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혈단주 그 위계 자체를 뜻하는 거냐? 맞지? 의혈단주가 하남 총타인 거지?”
순간 등조걸은 등줄기에서 소름이 좌르르 일어났다.
과연 자신의 눈은 틀림없었다.
지닌 심계와 재지가 가히 탈인간급!
“도, 도대체 내게서 원하는 게 무엇이냐?”
등조걸의 두 눈에 떠오른 것은 지극한 두려움이었다.
상대는 후기지수인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완과 심계를 일신에 지닌 자.
더욱이 그 무공조차 가늠할 수 없으매, 두려움이 치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고.”
“무, 무슨?”
조휘가 씨익 웃었다.
“접선책(接線責).”
“개방의 거지 어르신들을 뵙고 싶은 것이냐?”
후개인 자신에게 접선을 강요한다면 필시 개방의 대장로들이나 방주와의 만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거지는 너 하나로 충분해. 후개의 행동거지를 공부하고 몸에 익히는 것만으로도 며칠 동안 머리에서 쥐가 났다고.”
“그럼 어디와 접선을?”
“만금상단.”
“마, 만금상단?”
순간 조휘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최소 위계는 행수(行手). 포섭하기 쉬운 자로. 내부에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자면 더욱 좋다. 한없이 은밀하게. 시간은 사흘 이내.”
무려 만금상단의 행수를 포섭하시겠다?
국가 간의 무역까지 중계하는 초거대 상단이다.
그런 만금상단의 행수급 인물이라면 사실상 지방 현령 정도의 위세를 누리는 엄청난 자.
그런 자를 도대체 무슨 수로 포섭할 수 있단 말인가?
“너네 거지들, 만금상단을 샅샅이 꿰고 있잖아? 만금상단을 드나드는 물품의 출납 기록과 재고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도대체 개방이 왜 그런 정보까지 모으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리와 가장 가까운 행수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거 아냐?”
등조걸의 얼굴이 더욱 핼쑥해졌다.
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뭐길래 개방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리도 샅샅이 꿰고 있단 말인가?
“내, 내 선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조휘가 의문스런 눈을 했다.
“후개님인데?”
등조걸이 나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제자로 거두긴 했지만 나는 아직 공식적인 후개가 아니다. 정보를 관할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흐음.”
조휘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하기야 이놈의 행동반경을 살펴보니 정보를 취합하고 보고하기만 할 뿐, 정보를 활용하는 위치에 있는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휘는 후개라면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다른 비밀스런 직책을 갖고 있다든지, 혹은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든지 하는.
“제길, 아무런 쓸모도 없는 놈이었나.”
순간 등조걸은 뭔가 속에서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차라리 사부님과 담판을 지어라. 그것은 내가 도와줄 수 있다.”
그제야 조휘의 표정이 다시 흥미롭게 변했다.
“호오, 개방 방주를 직접 소개해 주겠다?”
개방 방주 구천기, 즉 취선개(醉仙丐)는 황제보다도 보기 힘들다는 강호의 걸출한 신비인.
그런 신비스러운 존재를 직접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등조걸을 점찍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조휘였다.
“흐음.”
하지만 그가 도중에 딴마음을 먹을 수 있었기에 조휘가 다시 밀지들을 품속에 넣었다.
“날 못 믿겠다는 뜻이냐?”
“날 거지 소굴로 끌고 들어갈 것이 뻔하잖아? 개방의 방도가 무려 십만이라는데 나로선 대비를 할 수밖에. 쪽수에 장사 없다.”
등조걸이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내가 먼저 사부님께 죽는다.”
조휘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로 별호에 선(仙) 자가 들어가신 분들은 착하시던데.”
“왜 앞에 붙은 취(醉)는 생각지도 않는 거냐.”
“아?”
술만 취하면 미친 신선이 된다는 건가.
‘으음…….’
등조걸이 밀지를 건네받고 잠적하면 답이 없었다.
이미 그와 한 차례 술자리를 가져 본 조휘로서는 등조걸이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쉽게 허리를 숙이는 자가 아니다.
자신의 품속에 있는 신개들의 밀지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굽실거릴 인물이 아닌 것이다.
뭔가 믿음직한 구석이 하나라도 생기면 모르겠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를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조화면천변을 활용해 그로 위장해서 방주를 만난다고 해도 본래의 목적을 드러낼 수 없으니 말짱 꽝이었다.
그때, 별안간 조휘의 머릿속에서 조강 어르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허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내 아직 네놈의 시야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러니 저자의 귓불을 다시 살펴보거라.(볼드, 기울기)
‘귓불요?’
조휘가 안력을 돋우어 등조걸의 귓불을 자세히 보니, 과연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점(點)이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찍혀져 있었다.
검천전능지체를 일신에 새기고 절대경에 이른 조휘의 안력으로도 겨우 보일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허허허…… 이런 묘한 일이…….
이어 조강 어르신의 말을 전해 들은 조휘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가 환하게 웃었다.
“이 새끼 이거 알고 보니 왕건이네?”
“와, 왕건이?”
조휘의 얼굴이 금방 음흉해졌다.
“야 이 씨, 귓불에 떡하니 일곱 무지개(七虹)의 또 다른 상징인 북두칠성을 새긴 채 활보하고 다니면서 비공일맥을 부인하고 싶은 거냐? 와 씨! 후개가 비공일맥의 암상이라니 이 새끼들 이거 완전 막 나가는구만!”
등조걸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순간, 등조걸이 조휘를 향해 벼락같이 출수했다.
그의 손바닥이 쏟아 낸 힘은 천하제일장(天下第一掌)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항룡십팔장(亢龍十八掌).
개방은, 이 열여덟 초식에 달하는 하나의 장법만으로도 천하에 엄청난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 위력은 가히 명불허전!
제일 초인 항룡유회(亢龍有悔)부터 제오 초 비룡재천(飛龍在天)까지 이어지는 그 연환장법의 위력은, 그 압력만으로도 조휘의 침소를 일거에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객잔의 주요 기둥이 미친 듯이 흔들거리며 지붕 전체가 터져 나갔다.
조휘는 등조걸이 처음부터 자신을 노렸던 것이 아니라 객잔의 천장을 노렸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순간, 등조걸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개방이 자랑하는 보법 취팔선보(醉八仙步)에 이은 절정의 질풍운룡행(疾風雲龍行)이었다.
-허어! 경지의 고저를 떠나 실로 대단한 개방무공의 이해도다! 마치 걸룡제(乞龍帝)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만 같구나!
검신 어른께서는 한 사람의 무인을 평가할 때 그 무공의 경지보다도, 오히려 기질과 재능과 같은 떡잎을 더 대단하게 쳐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검신 어른의 이만한 감탄성은, 남궁장호와 청운소 이후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려 그의 신위를 걸룡제에 비유하다니!
걸룡제는 개방의 유구한 역사에서도 전설적인 인물로, 그 경지가 개방의 개파조사와도 동일시되는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였다.
개방무공은 항룡십팔장만 하더라도 평생을 연마한들 그 완성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무공이었다.
더욱이 그와 비슷한 난이도의 취팔선보와 질풍운룡행조차도 능숙하다.
자신이 아직 진정한 후개가 되지 못했다는 등조걸의 말은 필시 새빨간 거짓말인 터!
저 정도라면 후개의 후보들 중에서도 군계일학(群鷄一鶴)임이 틀림없었다.
질풍처럼 나아가 이미 저만치 점(點)이 되어 버린 등조걸을 응시하며 조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감히 내 앞에서 토껴?”
저 정도 거리라면 어검비행을 시전할 필요도 없었다.
콰앙!
조휘가 강대한 일보를 내딛자 객잔의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검신의 전설적인 독문보법인 검천전능보(劒天全能步)가 또다시 강호에 현신한 것이다.
“어헉!”
이미 관도를 벗어나 풀숲으로 몸을 던지던 등조걸이 기혈이 역류한 듯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아니, 이 무슨……!’
바위 위에 올라 오연히 뒷짐을 진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조휘를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개방의 질풍운룡행은 중원의 삼대 경공술이라는 명성에 빛나는 천하의 경공절기.
그런 질풍운룡행을 일보(一步)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경공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왕건아, 어디 가냐.”
희멀건 얼굴로 싱긋 웃고 있는 조휘를 바라보며 등조걸이 이를 가득 깨물었다.
“그대 역시 비공의 암상(暗商)이 분명하지 않소! 대관절 내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천하가 아무리 너르다 하나 비공(秘公)의 이름을 아는 자는 극소수.
더욱이 천하에 비밀스런 일곱 무지개(七虹)를 언급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표식까지 알아보는 자라면 무조건 비공일맥의 암상이라고 봐야 했다.
같은 비공의 암상이라면 설사 서로를 알아볼지라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불문율(不文律).
한데 왜 이렇게 자신을 핍박한단 말인가?
조휘는 오히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더욱 싱그러운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호오, 암행수가 아닌 암상이시다? 쫄병은 아니었네?”
비공일맥 내에서 암상(暗商)의 칭호로 불리는 자는 그야말로 극소수.
후개라는 그의 위장 신분은 실로 대단한 것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당신이 칠홍(七虹)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소만, 부디 금도를 어기진 마시오.”
조휘의 눈빛이 진득해졌다.
비공일맥의 암상들이 이처럼 중원 천하 곳곳에 잠입하여 위장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일이 좀, 아니 많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비공일맥이 고대 현대인, 즉 신좌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크다 할 수 있었다.
“너는 칠홍 중 어느 가문에 속해 있지?”
그런 조휘의 질문에 등조걸이 금세 황당한 눈을 했다.
“미치셨소? 율법을 어길 참이오?”
같은 임무로 엮이지 않은 이상 비공일맥의 암상끼리 서로의 신상을 캐묻는 것은 절대 금지.
그것이 바로 비공일맥의 제일 율법이었다.
“어이가 없네. 후개라는 놈이 비공일맥의 암상이라면 정파의 육대신룡 중 누가 암상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소리잖아? 설마 혹시?”
순간 조휘는 남궁장호를 떠올려 보다 자책하듯 실소를 머금었다.
성정상 그 양반은 결코 그럴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어이 암상,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지 않으면 정말 재미없을 줄 알아.”
“그, 그게 무슨…….”
마치 취조라도 하겠다는 양 두 소매를 걷어 올리는 조휘를 바라보며 등조걸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첫 번째 질문. 네놈의 비명(秘名:암호명)은?”
미친!
비공일맥의 암상더러 고유의 비명을 밝히라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그걸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오?”
순간, 조휘의 두 눈이 눈부신 백안으로 화했다.
천하절대검령(天下絶大劒靈).
상대의 모든 물리학적 동력을 분쇄하는 절대의 검령이 현신한 것이다.
철퍼덕-
순식간에 쓰러져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등조걸의 얼굴에는 황당함을 넘어 경악이 드러나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눈알과 성대뿐.
“아, 아니 이게 무슨……! 헉!”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조휘의 철검이 어느덧 그의 눈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철검이 조준하고 있는 곳은 자신의 뇌호혈.
일 촌(一寸:약3cm)의 깊이만 허락해도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사혈이었다.
“다, 당신은 도, 도대체 누구요?”
그의 두 눈에서 타오르고 있는 저 눈부신 백화(白火).
그것은 틀림없는 무혼(武魂)의 상징, 절대경을 의미했다.
상대가 자신을 능가하는 경지의 고수라고는 어렴풋이 인지해 왔으나 설마하니 절대경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연배가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한데 자신이 아는 한 비공일맥 내에서 절대경을 이룩한 암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묻겠다. 네놈의 비명은?”
등조걸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죽이시오.”
“호오.”
과연 비공일맥의 암상이라 이건가.
이번에 조휘는 장심(掌心)에 의념을 모아 그의 단전에 드리웠다.
도도하고 강맹한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개방이 자랑하는 천하의 절륜한 신공, 항룡순천신공(亢龍順天神功)이 틀림없었다.
“단전부터 부숴 주지.”
“아, 안 돼!”
등조걸의 반응에 조휘의 얼굴에서 음흉한 미소가 피어났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던 자가 무인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단전이 전폐될 위기에 처하자 간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미뤄 보아 그는 암상이기 이전에 천생 무인이 확실했다.
“목숨보다 더한 무공에 대한 갈망이라…… 암상답지 않군. 혹시 너는 비공일맥에 포섭된 외부인인가?”
“…….”
그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독기(毒氣)를 조휘는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그런 열등감을 표출하면 어떡하나? 과연 전통의 칠비(七秘) 출신 가문은 아니라는 거군. 그러면 처음부터 키워진 놈은 아니라는 말인데…….”
조휘의 엄청난 관찰력과 심계에 당황해하는 등조걸에게로 다시 조휘의 무심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럼 돈이겠군. 엄청난 자질과 재능을 지닌 확실한 후개의 후보는 도대체 그 값이 얼마지?”
순간 등조걸의 두 눈에 악독한 빛이 어렸다.
“그깟 돈이 아니오!”
“호오.”
흔한 격장지계에 곧바로 반응하는 강골(强骨)을 지닌 놈이다.
그런 야성(野性)은 무인에 가까운 것이지 절대로 상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그들이 뭘 약속한 것이지?”
등조걸이 핏발 선 눈으로 노호성을 터뜨렸다.
“당신이 진정 암상이라면 그들이 회유하는 방식을 모를 리가 없지 않소!”
“회유하는 방식?”
“그들이 달포마다 건네주는 우벽환(藕碧丸)이 없이는 내 어머니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단 말이오!”
“음…….”
그의 어머니에게 몹쓸 병환이 있었단 말인가.
상대에게 가장 간절한 것을 쥐여 주며 포섭하는 것은 고전적인 방식이나 가장 강력한 회유책이기도 했다.
“우벽환이라…… 무슨 약이지?”
조휘의 질문에 등조걸의 얼굴이 금세 회한으로 물들었다.
“심통(心痛:심장병)을 가라앉히는 묘약이오.”
“으음…….”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고민하던 조휘가 다시 등조걸을 응시했다.
“당신 어머니의 심통 치료를 이 내가 해결해 준다면? 그대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새 정중한 예의를 다하는 조휘의 모습에 등조걸의 얼굴에 더욱 당황의 빛이 어렸다.
“그 어떤 의원도 어머니의 심통은 치료가 불가하다 하였소. 그저 약으로 연명하는 것만이 최선이란 말이오.”
“그 의원이 생사의문(生死醫門)의 약선(藥仙)이었습니까?”
“그, 그 무슨……?”
등조걸을 응시하는 조휘의 눈빛이 더욱 진중해졌다.
“약선의 치료와 처방을 받게 해 드리죠. 물론 비용은 제가 모두 부담하고요.”
약선이라면 칠무좌에 버금가는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강호의 절세기인.
그런 그의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를 한 번 만나는 것만으로도 강호인들은 기적처럼 여겼다.
하늘의 인연이 닿지 않으면 한 번 보기도 소원한 약선을 이자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당신이 어떻게 약선을?”
“아아, 오랜 거래처라서.”
생사의문이 생산하는 칠십 종의 단약들을 조가대상회가 시장에 독점으로 공급한 지도 벌써 오년이 흘렀다.
약선의 생사의문은 조가대상회와 이미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소! 대관절 당신이 누구기에 약선과 같은 천하의 기인과……!”
“소검신(小劒神).”
“뭐, 뭐라고?”
조휘가 빙그레 웃었다.
“조가대상회의 소검신, 그게 접니다.”
조가대상회의 소검신은 개방의 모든 정보 자산이 주목하고 있는 강호풍운의 핵 그 자체였다.
“그, 그게 사실이오?”
“뭐 따로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아, 이거면 되겠죠?”
탓!
아직도 두둥실거리고 있는 철검 위로 조휘가 가볍게 올라타자.
“허!”
검을 탄다는 것은 검수가 검령을 이뤘다는 의미.
당금의 천하에 그런 어검비행을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이는 조가대상회의 소검신이 유일했다.
그러고 보니 방(幇)에서 나누어 주던 소검신의 용모파기와 그 모습이 흡사하다.
“정말 당신이 그 소검신이란 말이오?”
이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팔무좌로 언급되는 당대의 신성(新星)이다.
그의 명성은 후개의 이름으로도 덮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경지!
그렇게 등조걸의 얼굴에는 무인의 순수한 존경심이 가득 드러나 있었다.
“속고만 사셨나. 생사의문은 우리 조가대상회의 오랜 거래처입니다. 아무리 약선님이라고 해도 소검신의 청을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자, 이제 거래할 마음이 생긴 겁니까?”
허나 등조걸은 호의의 이면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협조할 수 있겠소? 비공일맥이라면 당신이 나보다 더욱 많이 파악하고 있는 것 같소만…….”
조휘가 씨익 웃었다.
“당신의 인생 육 개월을 내게 파시죠. 물론 비공일맥이 당신에게 하사한 비명(秘名)과 하달한 임무, 접선책들을 모두 제게 알려 주셔야겠죠?”
그런 조휘의 음성이 이어지는 도중에 그의 얼굴에 미세한 파도가 물결치다 이내 꾸물꾸물하더니 금방 다른 얼굴을 만들어 냈다.
“허억!”
보는 앞에서 자신의 얼굴로 변한 조휘를 바라보며 등조걸은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혼백이 달아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저렇게 못생겼었나…….’
금세 음울해진 등조걸의 어깨 위로 조휘의 팔이 걸쳐졌다.
“자 이제 다 말해 봐요. 전부. 우리 왕건님.”
무림에 떨어진 현대인 8
BUKDU NEO ORIENTAL FANTASY STORY
청루연 신무협 장편소설
지은이ㆍ청루연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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