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70
69 章>
핵심을 짚는 조휘의 논리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신좌가 되어 자신의 신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거대한 교단(敎團)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통천교는 역사상 교주에 대한 우상화가 가장 심한 종교였다.
통천교의 교주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신이며 황제보다 더한 존경과 우러름을 받고 있었다.
통천존신의 인간 같지도 않는 얼굴에서 처음으로 감정 비슷한 것이 서렸다.
“허면 넌 본 신(神)과 적대하겠다는 뜻인가?”
이야.
엄연히 저놈도 강호의 절대자니 ‘본 좌’까지의 자존감은 이해할 수 있다.
한데 저렇게 낯 뜨겁게 본인을 신이라 말하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할 지경이다.
조휘가 천천히 검을 들며 피식 거렸다.
“통수야 이 새끼야. 네놈들이 한 일 중에 가장 바보 같은 짓이 뭔 줄 알아?”
여전히 무감각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을 뿐 통천존신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신좌고 네놈 존신들이고 온 중원 대륙에 똥을 싸질러 놨다는 거야. 나 같은 놈이 정말 안 나타날 줄 알았어? 후환 같은 건 정말 안중에도 없는 건가? 검총이나 석판 같은 것들을 도대체 왜 남겨 놓은 거냐? 특히…….”
조휘가 눈짓으로 천괴를 가리킨다.
“네놈들의 실험 대상이었던 저런 자들을 온통 중원에 싸질러 놓은 이유는 도대체 뭐냐? 뭐 나한테 주는 서비스 같은 건가?”
츠츠츠츠츠-
이내 가공할 거력이 조휘의 검극에 맺힌다.
그 위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그저 검 끝에 어린 기운만으로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왜곡되고 있었다.
“저자의 검을 보자마자 말이지. 그간 어렴풋이 심상으로만 떠돌던 삼신융합절기(三神融合絶技)가 이제는 머릿속에서 또렷해지더라고.”
그것은 조휘의 손을 빌어 우연적으로 몇 번 발휘되었던 힘.
한때 귀암자가 신좌의 힘이라 착각했을 만큼의 절대적인, 그야말로 삼라만상의 법칙마저 왜곡하는 거력이었다.
비록 방심했다 하나 육존신이었던 휘영존신을 단숨에 참살한 힘이기도 했다.
“진정 그게 네놈이었나.”
통천존신이 처음으로 그 얼굴에 무심함을 지워 냈다.
“휘영(輝靈)을 죽인 자가 정녕 네놈이었구나.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군. 본 신조차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닦고 또 닦아 얻은 탈능의 경지라…….”
탈능의 경지?
처음으로 저들의 입에서 신좌의 경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튀어나왔다.
“허나 탈능(脫能)과 진량(眞量), 무법(無法)과 천익(天益)을 지나온 본 신에게는 한없이 미약하구나. 본 신을 휘영처럼 생각한다면 그 판단은 한없이 틀린 것이다.”
탈능, 진량, 무법, 천익.
분명 신좌에 이르는 길을 구분하는 경지로 추정되는 단어들이었으나, 이를 모두 듣고 있던 귀암자로서도 금시초문인 단어들이었다.
함께 육존신이라 불렸지만 그중에서도 통천존신이 가장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였다.
“그대의 말대로 본 신은 아직 좌(座)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허나 본 신의 격(格)은 그들과 반드시 동일한 것. 본 신이 하늘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인 이유일 것이다.”
조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스스로를 향해 저렇게 낯 뜨겁게 칭찬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나르시시즘이 극에 달한, 그야말로 연구대상인 놈이었다.
“거 민망하지도 않나? 본인 자랑은 이쯤 했으면 됐잖아? 이제 나도 궁금해 미치겠으니까 빨리 그 대단한 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고.”
“…….”
허나 조휘가 막강한 거력을 일으켜 검을 치켜세우고 있음에도, 통천존신에게서는 티끌만큼의 존재감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자신더러 무려 신(神)이라 칭하는 놈이다.
이 정도로 자신을 내리깎는 발언을 일삼은 상대를 용납하지 않을 텐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그의 심중을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조휘는 좀 더 그를 자극해 보기로 했다.
“설마 그거 다 허세야? 니미럴, 말로는 나도 신좌하겠다. 뭐? 나는 진실로 하늘에 통달하였다? 하하하하!”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에서 벗어난 통천존신에게는 그 어떤 자극도 무용한 듯했다.
“탈능의 인연이 닿은 자여. 이미 본 신에게 있어서 인간의 감정이란 모두 사라져 무의미하다. 본 신의 마음을 흩트리려는 의도라면 그 뜻을 거두어라.”
조휘가 순간 익살스런 표정이 되어 예의 느금을 시전했다.
“응 느금.”
“느금…….”
그 뜻을 반추해 보다 이내 고개를 갸웃하는 통천존신.
“인간 혈족(血族)의 어미를 뜻하는 단어로군. 이 상황에서 그건 무슨 의도인가?”
“응, 느개비.”
“느개…….”
인간 혈족의 아비를 뜻하는 단어.
하지만 기이하게도 왠지 모르게 점점 울화의 감정 비슷한 무언가가 그의 내부에서 꿈틀거린다.
이런 인간의 감정이?
설마 아직도 이 통천(通天)에게 인간의 기질 같은 것이 남아 있단 말인가?
비로소 처음으로 통천존신의 얼굴 이 꿈틀거린다.
그렇게 상대는 신(神)인 자신을 인간의 위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분노라…….”
오래전에 잊어버린 인간의 기질.
그렇게 서서히 데워지는 선연한 감정은, 통천존신에게는 실로 인정하기 싫은 기분을 선사하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감히 본 신을 이렇게까지…….”
“응 느금.”
“…….”
쩌저저적-
대기를 진동하는 묵직한 공명음이 들려온다.
순간, 통천존신의 육신에 서서히 금이 가더니 그를 구속하고 있던 뭔가가 모조리 깨어지고 있었다.
-저것은 혹 영봉갑(靈封鉀)의 일종이 아닌지?
-확실하다. 화엄산(火嚴山)의 영기를 구속하고 있던 영봉갑과 그 기질이 실로 비슷하다. 허나 그보다는 훨씬 강력하구나.
천우자와 귀암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휘가 의문을 드러냈다.
‘영봉갑? 그게 뭡니까?’
-영력의 기질을 감추는 보패다.
영력의 기질을 감춘다고?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존재가 왜 자신의 영력을 감춘단 말인가?
-영봉갑을 착용하는 이유는 자신보다 상위 존재의 이목을 피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이 중원 세상에 저놈보다 상위 존재라니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존재는 결코 실존하지 않을 것이다. 허면?
-허어! 설마?
-놈은 하늘의 제약(制約)을 받고 있구나!
조휘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토해 냈다.
‘하늘의 제약이라니요?’
천우자가 친절히 설명을 이어 갔다.
-개미들의 전쟁에 인간이라는 거대한 존재력이 개입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사람이 발로 밟는 즉시 전쟁은커녕 개미들의 세상 자체가 사라진다.
조휘가 이해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이번에는 귀암자가 설명을 이어 갔다.
-범인의 존재력을 개미에 비한다면 저놈은 사람 정도라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때문에 하늘이 인과(因果)의 제약을 통해 세상을 향한 저놈의 개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조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야말로 인간의 격을 아득히 초월한 자!
과연 본인더러 신이라 칭할 만한 놈이었다.
한데 가만 보니 뭔가가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저 통천존신의 처지란 실로 애매하지 않은가?
진정한 신이라면 하늘이 정한 법칙에 의해 제약을 받을 것이 아니라, 모든 법칙을 초월하여 우주 만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정상.
그 존재력이 고작 사람보다 나을 뿐, 저런 영봉갑이나 입고 하늘의 눈을 피해 다니는, 사실상 귀암자와 별다를 바 없는 처지이지 않은가?
그제야 조휘는 왜 상대가 입만 털어 댔는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어휴, 순 사기꾼 새끼. 그런 사정이 있었단 말이지? 이제 보니 입 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이었네?”
이미 통천존신은 영계 속 존자들의 대화마저 들을 수 있는 신안통(神眼通)을 자랑한 마당이었기에 지금의 대화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나 영봉갑을 벗어 던져 드러난 그의 영력!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져 미쳐 버릴 만큼, 그 존재력이란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만약 의천혈옥 속 존자들이 영계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모두 엄청난 영압에 고통받으며 신음할 것이었다.
사실 조휘도 그런 가공할 영기의 압박을 가까스로 버텨 내고 있었다.
“그대는 오늘 본 신의 의지에 의해 소멸할 것이다.”
아직은 혼세일계에 자신의 오롯한 힘을 드러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통천존신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법천뢰(法天雷)가 떨어져 수백 년 적공을 다시 쌓아야 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감히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다시 자신을 인간의 위치로 끌어내리게 만든 상대를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
무엇보다 ‘그때’로부터 오백 년이 지난 마당이었기에 과연 다시 법천뢰가 떨어질지도 의문이었다.
비록 도박과 같은 일이었으나 이참에 하늘의 의중을 살피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법천뢰를 정통으로 맞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고절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
그러나 자신은 틀림없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법력으로 붙잡아 두지 않는다면 자꾸만 흐트러지는 자신의 영혼이 바로 확실한 증거다.
자신의 경지는 오백 년 전의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우우우우웅-
그것은 기(氣)의 파장도 의념도 법력도 아니었다.
존재, 그 자체에서 오는 순수한 존재력!
그 장엄한 광경이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이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츠츠츠츠츠-
조휘는 발 언저리부터 사라져 가는 자신의 육체를 황당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육체가 미세입자 단위로 쪼개어지며 허물어져 가는 데도 그 흔한 고통조차 일지 않았다.
무공? 법력?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 힘을 과연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에 조휘는 서둘러 삼신융합절기를 발휘하려 했으나, 자신의 가공할 의념으로도 단 한 치의 의지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체계가 무너진 것처럼, 자신이 빠져 있는 곳은 끝없는 무저갱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자신의 육체가 모두 사라져 시야마저 붕괴될 즈음.
그때.
오오오오-
천지(天地)가 가늘게 진동한다.
조휘에게 존재력을 투사하고 있던 통천존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늘을 응시했다.
빛이라면 빨라야 한다.
섬광(閃光)이란 그런 것이니까.
한데 그 오색찬란한 한 줄기 빛.
그 빛이란 마치 춤사위처럼 하늘거리다, 느릿하게 또 어지럽게 지상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오백 년 전 악몽이 그의 뇌리에 선연히 떠올랐다.
“법천뢰……!”
저것은 하늘의 의지.
혹은 신의 의지다.
감히 신이 신을 징벌하려 드는 건가!
통천존신이 천익(天益)의 존재력을 모두 끌어올린다.
이 능력을 얻어 신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나온 길이란, 인간의 시선으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도정.
그 억겁과 무량의 도정을 지나온 자신을 도대체 누가 징치할 수 있단 말인가!
“신좌-!”
그렇게 악착같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오히려 상공으로 치솟아 법천뢰를 맞이하려던 통천존신의 두 눈이 점점 황망함으로 물든다.
저 느릿한 법천뢰의 빛이.
자신이 아니라 그대로 소검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아아아아악!
일순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빛살이 일어났다.
미증유의 거력 법천뢰가, 사라져 가던 조휘의 육신을 그대로 휘감았다.
법천뢰의 잔광으로 뒤덮인 소검신의 육체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육신이, 법칙이 닿지 않는 공간 즉 무법공계(無法空界)로 사라진 것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절대무량(絶對無量)으로 흘러간다.
지금 이곳의 시간으로는 찰나에 불과할 것이나, 무법공계에서는 억겁과 같은 시간.
오백 년 전, 그런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억겁을 이미 거닐어 본 통천존신으로서는 법천뢰의 잔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아득해지는 심정이었다.
순간 통천존신은 자신의 그런 감정에 당황스러워했다.
불과 반각전만 해도 신의 경지를 자부하며 강렬한 고양감에 불타올랐으나, 막상 법천뢰의 잔광을 대하니 그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진 것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교차되는 것은 그만큼 오백 년 전의 고통이 자신의 영혼에까지 아로새겨져 있다는 뜻.
그것은 마치 또다시 사람의 위치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솟구치는 화.
허나 그 분노는 단순하게 법천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법천뢰는 인간사에 불균형을 초래하는 자가 나타날 때면 이를 징벌하려는 하늘의 뜻(天意).
한데 그 당사자가 신이 된 자신이 아니라 저 소검신이라?
무엇보다 더욱 분노를 치솟게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법천뢰를 두려워해 안도하는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다.
법천뢰의 징벌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해괴한 감정.
오래전에 인간성을 초월하여 신성(神性)을 이룩했다 자부해 온 자신이었다.
한데 지금 자신은 인간성 중에서도 가장 구질구질한 속성인 번뇌(煩惱)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통천존신은 절감했다.
자신은 인간의 도정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진정한 신좌를 이루었다면 이런 감정은 결코 느끼지 않을 것이며 애초부터 저 법천뢰가 두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스스스스-
순간, 다시금 오색찬란하게 영롱한 빛살이 천지간에 그윽해지며 소검신의 육체가 현신했다.
다시 나타난 그는 알몸이었으며 특이한 것은 그의 목에 걸려 있던 의천혈옥이 칙칙한 검은빛을 띠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나 혈옥을 감싸고 있던 그 어둠은 이내 점점 그 색을 잃고 다시 평범하게 변해 갔다.
소검신(小劒神).
내내 감고 있던 그의 두 눈이 점차 뜨여지더니 마치 세상의 모든 만사가 무료하다는 듯 무기력한 기운을 발했다.
“하…….”
길게 이어진 소검신의 가는 한숨.
통천존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백 년 전 그때.
무법공계에서 돌아온 자신은 저렇게 한숨이나 내쉴 여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억겁과도 같은 시간 동안 무한한 고통에 신음해 온 것.
그때 정신이 붕괴되지 않고 정상적인 사고를 유지한 것만으로도 기적으로 여길 지경이었다.
한숨이나 내쉬는 소검신의 여유는 분명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도대체…….”
조휘가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싯팔, 이건 또 뭔 상황이야? 어? 얘들아!”
조휘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저 멀리 진가희와 염상록, 강비우가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와! 이건 도대체 뭐지? 분명 삼천 년이 넘게 흘렀을 텐데?”
통천존신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삼천 년이라고?
그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도정이다.
자신도 무법공계에 갇혀 보았지만 그 시간은 이백 년 남짓에 불과했다.
“와 나무! 나무다! 저거 분명 나무 맞지?”
조휘의 신형이 점멸하듯 사라졌다 이내 우거진 풀숲 속에서 잔광과 함께 나타났다.
한 아름 나무를 끌어안으며 그대로 대성통곡하는 조휘.
“으흑흑! 내가 이제 중과 도사들이 왜 그렇게 산에 집착하는지 그 심정을 알겠다고! 자연은 이토록 소중한 거였어! 더 푸르게 더 우거져 자라라 나무야!”
그렇게 조휘는 바닥에 누워 흙냄새를 킁킁거리며 뒹굴거렸고, 미친 사람처럼 개울가에 뛰어들어 헤엄쳤으며, 이내 벌거벗은 그대로 진가희에게 뛰어갔다.
“어맛!”
진가희가 날 선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지만 조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가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악! 오빠 왜 이래!”
“흐흐, 내가 삼천 년을 굶어 보니 말이지, 별의별 게 다 생각나더라고!”
막상 이렇게 조휘가 저돌적으로 행동하니 진가희는 오히려 놀라 조휘를 밀어내고 말았다.
“뭐, 뭐래! 이거 안 놔?”
“그런 게 아니라고! 난 이제 모두를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음…… 킁킁! 그렇지 이게 여자 냄새였군! 상록아!”
이번엔 염상록 차례.
“뭐, 뭐냐 네놈!”
이어진 조휘의 행동은 진가희에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를 끌어안고 얼굴로 비벼 대다가 이리저리 킁킁 냄새를 맡더니 신기하다는 듯 다시 염상록을 쳐다봤다.
“크으, 늠름한 사파인! 과연 내내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야! 좋아! 이게 바로 사파의 당당한 사내지! 너도 사람! 사람이야!”
“미, 미친 거냐?”
“그럼 이게 정상으로 보이냐?”
오, 이건 좀 새롭다.
미친놈이 미쳤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와우! 당신은 천괴!”
멍하게 굳어 있는 천괴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뛰어간 조휘가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크, 역시! 역시 당신도 실존하는 사람이겠지?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아무튼 당신의 검법은 확실히 예사 검법이 아니었어. 기억에 꽤 오래가더라고. 분명 자하검성님보다도 당신이 강해. 이건 확실히 자부해도 좋아. 아? 당신의 검이 끝자락에 다다르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겠지?”
스스슥-
의미 없이 허공에 휘갈긴 듯한 가벼운 손동작. 허나 이를 바라보던 천괴는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봤어? 느꼈어? 대단하지? 당신의 검은 검신 어른의 공(空), 마신 어른의 멸(滅)에 비해서도 결코 아래가 아니야. 나는 이 검을 극(極)이라 이름 지었는데, 어때? 어울려? 제발 어울린다고 해 줘. 어? 와 씨!”
조휘가 계곡의 비탈면을 따라 웅장하게 자리 잡은 사천회의 총단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내 강호다…….”
인간이 홀로 삼천 년을 갇힌다면 어떤 심정이 들까?
그야말로 과거의 모든 것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한데 놀랍게도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한 모든 추억들 중에서도 가장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현대인 시절이 아니라 오히려 이 무림이었다.
무림강호(武林江湖).
그토록 그리워한 이름.
자신은 이제 무림에 떨어진 현대인이 아니었다.
강호인.
조영훈이 아니라 조휘가 자신이 지향해 온 삶인 것이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통천존신이 미끄러지듯 조휘 일행이 서 있는 지상으로 날아왔다.
“……도대체 그대는 무법공계에서 무엇을 겪은 것인가?”
“겪어?”
조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로서는 무법공계라는 말도 금시초문이었고, 무엇보다 뭔가를 ‘겪었다’라고 말할 만한 사건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단지…….”
그렇게 말을 이어 가던 조휘가 순간 얼굴을 엄혹하게 굳혔다.
“가만? 너 이 새끼? 나 죽이려던 놈 아니야?”
비로소 기억해 냈다는 듯 두 눈을 있는 대로 치켜뜨는 조휘.
“맞아! 내 존재력 자체를 소멸시키던…… 뭐였더라? 아 육존신! 육존신 중의 대가리! 별호는 기억이……? 아 그래 통수! 통수존신!”
“…….”
통천존신은 상대가 해괴한 별칭으로 자신을 칭하고 있는 것에 화가 나기보다 그가 겪은 법천뢰의 저주가 무엇인지가 더욱 궁금했다.
“진정 열해(熱海)의 주박과 팔한(八寒)의 경계를 겪지 않았단 말인가? 흑암(黑暗)의 허무는?”
조휘로서는 온통 처음 들어 보는 것으로서 도무지 통천존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검신이여, 부디 말해 다오. 무법공계가 아니었다면 법천뢰가 그대를 보낸 곳은 어디란 말인가?”
법천뢰?
그 오색의 빛살을 말하는 건가?
한데 그게 도대체 왜 궁금한 거지?
아! 그래! 이놈은 신이 되고 싶은 놈이었지?
“말해 주기 싫은데? 평생 그렇게 궁금해 뒈져 버리세요 낄낄!”
통천존신이 또다시 자신의 존재력을 일으켰다.
상상할 수도 없는 거력이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다.
“오? 이번에도 힘으로 하시게? 흐음.”
조휘가 그 즉시 생각에 골몰했다.
제압을 하려니 그의 목숨을 거두지 않고서는 그를 구속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그러다 정말 죽는 수가 있어. 잘 생각해 봐.”
“뭐라?”
조휘가 피식 웃고 있었다.
“말했을 텐데? 삼천 년이라고.”
조휘가 털썩하고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존재력에 대해 나도 많은 고민을 했지. 사실 의념이나 법력도 모두 존재력이라 할 수 있잖아? 존재 그 자체가 내뿜는 힘이니까.”
분명, 존재력을 극한으로 강화하면 신성을 이룰 수 있었다.
한데 그런 존재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의념, 법력 따위에서나 찾고 있었다니.
“그 긴 시간 동안 그리 하찮은 도를 꿈꾼 건가.”
“뭐? 하찮아? 그 말 후회할 텐데?”
존재력을 의념이나 법력에서 찾는다는 것은 완전한 헛발질이다.
통천존신은 내심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존재력을 진화하는 가장 확실하고 증명된 방법은 바로 영력의 강화.
영력을 깊이 이해하고 다루지 않고서는 발을 들이기도 힘든 것이 바로 존재력이었다.
신좌의 인간 시절, 그 달마조차도 영력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달마옥을 만들었다. 물론 그의 세 제자들도 마찬가지.
그들의 유산인 영옥(靈玉)을 걸치고 있는 주제에 저런 궤변이라니!
“정말 못 믿는 눈치네? 그럼 뭐.”
조휘가 가부좌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서서히 의념을 끌어올렸다.
“자, 이게 의념이다.”
의념은 영력과는 다르게 그 한계가 명확했는데, 인간 본연의 미약한 존재력 때문에 확장성이 좁았기 때문.
한데,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소검신의 의념이.
그의 오롯한 자아가.
그야말로 천지(天地)를 뒤덮고 있었다.
그의 의지가 도대체 어디까지 미쳐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지경.
인간의 미약한 의념으로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건지?
무공의 경지로 천지교태(天地交泰)라는 것이 있었다.
천지 만물 자연과 교감하는 경지.
그런 오롯한 무공의 경지를 무인들은 자연지경(自然之境)이라 불렀다.
허나 이건 자연경 따위가 아니었다.
자연경이 대자연의 속성과 기질을 자신의 몸을 매개로 발휘할 수 있는 경지라면.
지금 소검신은 자신의 의념으로 자연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단순히 힘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닌, 본인의 순수한 의지로 자연을 통할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그 수법이란 것이 고작 의념지도라는 것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수도 없는 실험으로 모두가 실패했던 시도였다.
“이런 경지가 고작 의념으로 가능하다니! 말도 안 된다!”
천 년에 이르는 자신들의 고난과 역경의 세월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더러운 기분!
조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통수존신 양반. 당신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조휘가 그 음울한 눈빛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의념이란 말 그대로 ‘생각하는 힘’이야. 한데 인간이 골방 비슷한 곳에 갇힌 채로 삼천 년 동안이나 스스로의 사고(思考)만 확장했다면?”
“뭐, 뭐라?”
지극한 황당함으로 물든 통천존신에게로 조휘가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신들의 수많은 계획과 시도 중에서 단 하나 빠져 있었던 것. 그건 바로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이야.”
통천존신은 억울했다.
온갖 무공과 법술, 비약과 선단으로 인간의 수명을 수도 없이 거스르며 마침내 당도한 세월이 천 년이었다.
대체 그 누가 삼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실험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단 말인가?
“억울하지? 하지만 현실이야. 신좌에 이르는 길? 애초부터 그딴 건 존재하지 않았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좌가 될 운명을 지닌 놈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라고.”
“그럼 누가…….”
“아무튼 좌(座)에 그리 집착하지는 마. 우리가 일반 양민이라면…….”
조휘가 슬며시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놈들은 강호인 정도에 불과하니까.”
조휘가 삼천 년 동안 갇혀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지름 다섯 장(丈) 정도에 불과한 작은 구체였다.
그 어떤 자연적인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던 무색의 구체 속.
빛과 어둠, 심지어 공기조차 없었던 곳.
자신의 육체는 모든 생체 활동이 정지되어 있었고 오직 의식과 사념만이 잔존하는 그야말로 ‘공허의 공간’ 그 자체였다.
미쳐 버릴 것만 같은 그런 공허의 공간에서 그나마 자신의 인간성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톱니바퀴 모양을 하고 있는 일종의 시계.
무색의 구체의 바깥, 머나먼 공허 위에 두둥실 떠 있는 톱니바퀴.
그 톱니바퀴의 외각에는 그 어떤 인간의 언어 체계로도 읽히지 않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신적인 의지가 수도 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자들은, 비록 읽을 순 없었지만 보는 순간 그 뜻이 그대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렇게 인식된 톱니바퀴의 존재 이유.
톱니바퀴의 한 바퀴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천 년이며, 총 세 번의 완전한 회전을 마치면 그 공허의 공간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영원히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때가 차면 해금(解禁)이 된다는 것.
물론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 동안 갇혀 있어야만 하는 상황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런 희망은 무너져 가던 의식과 절망을 막아 주었다.
허나 말이 삼천 년이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야말로 영원(永遠)에 가까운 세월이었기에, 조휘의 정신은 미쳤다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겪은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는 인간의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초월자가 될 것이라고.
물론 조휘도 처음에는 그랬다.
삼라만상이 모두 무의미해했고 인간의 욕념과 투쟁은 무가치해 보였다.
허나 찬찬히 기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한 사람의 ‘인생(人生)’이란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이룬다.
서로 사랑하다 때론 시기하고 눈물지으며 마주 손을 잡는, 그런 모든 ‘인생의 활극’이란 이 참을 수 없는 권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삶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필멸자의 한정된 생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짧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려고 그야말로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오롯하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혀 강호의 패자가 되고자 하는 무인의 갈망.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치열한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끝내 모두를 물리치고 권좌에 오르려는 정치가.
봇짐 하나 등에 메고 천하제일상(天下第一商)을 꿈꾸며 천하를 주유하는 상인들.
자신도 그런 ‘열심(熱心)’의 본능을 지닌 인간들 중 하나였다.
인간의 기억이란 묘한 면이 있어서, 과거의 추억들은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신좌라는 목표를 위해 천 년이란 엄청난 세월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 저 통천존신.
쓰리고 아린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끝내 그런 심마를 극복하고 사파의 풍운 속을 질주해 온 쾌활한 성정의 진가희.
검에 미친 부나방 강비우와 세속에 찌들어 얄팍한 처세만 일삼는 염상록까지…….
모두가 열심의 본능을 지닌,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의 인생’들이었다.
자신은 그들 모두가 기꺼웠다.
시간은, 길고 짧음의 상대성으로는 결코 그 가치를 온전히 평가할 수 없다.
그들은 아등바등, 처절히도 살아가지만 그들의 시간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인간은 신의 영원불멸을 흠모하지만, 그런 신의 영원은 사람의 한정된 일생(一生)보다 결코 가치의 우위를 증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흠모를 받아야 하는 건 신이 아니라 사람.
그러니 좌(座)란 새끼들이, 그 신적인 존재라는 놈들이, 이토록 이 세계를 탐내는 거겠지.
물론 그게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데 저놈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이 시선이, 과연 인간의 눈높이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조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안 돼!”
쉴 새 없이 도리질하며 정신을 다잡는 조휘.
자신은 좌(座)에 이르러 영원히 무의미한 시간만 보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자꾸 자신의 의식 체계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절로 존재력이 상승하어 좌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비록 종내에는 죽어 한낱 영격으로 남더라도, 차라리 필멸자로서 짧고 가치 있는 인생을 즐기련다.
그것이 조휘의 삼천 년이 내린 결론.
카르페디엠(carpe diem)!
그렇게 조휘는 인간사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가장 유명한 단어를 수도 없이 마음에 되새겼다.
한데 그때.
-으음……!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오?
영계의 존자들이 다시 시끌시끌해지자 조휘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선조님들! 존자님들!’
지난 삼천 년이 그토록 허망하고 허망했던 것은 존자들과의 생이별 때문이었다.
무슨 연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공허의 공간 속에 진입하자마자 존자들의 영계와 자신이 완전히 단절되었던 것.
-허어! 본 좌의 영력이……!
-이런 영력이!
한데 그들은 조휘에게 안부를 묻기도 전에 각자 엄청나게 상승한 영력을 느끼며 당혹해하고 있었다.
조휘는 그런 지금의 현상을 감동한 얼굴로 설명해 주었다.
“어르신들, 세월이 좀 많이 흘렀습니다.”
조휘는 삼천 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자신의 영격이 자연히 상승하는 것을 수차례나 느껴야만 했다.
영력을 상승하는 방법에 무슨 거창한 수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시간!
지나온 시간의 길이만큼 정확히 비례하는 것이 영력이었다.
혈옥의 첫 계약자가 존자들 중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영혼으로 존재하여 그 영력이 유일무이했기 때문.
이미 자신은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능가하는 영력을 지니게 되었고, 그것은 존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간 별 탈이 없으셨는지요?”
검신이 황당하다는 듯 되묻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냐! 네 녀석이 천겁(天劫)에 휩싸이는 것을 본 것이 불과 바로 전이거늘!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이지?
허면 존자들의 영계는 자신이 속해 있던 공허에 함께 당도하지 않았다는 뜻.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삼천 년이라는 시간만큼 정확히 비례한 존자들의 영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정말 저의 의식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해괴한 소리냐? 그나저나 천겁(天劫)은 어찌되었느냐? 내 생애에 그런 무시무시한 힘은 본 적이…… 헉!
조휘는 검신이 느끼고 있는 두려운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아, 아니 대관절 무슨 영력이……! 게다가 이런 거대한 의념이라니……!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너른 세상, 이 천하(天下)가 좁아 보일 지경.
도대체가 이런 것이, 인간으로서 가능한 존재력이란 말인가?
마치 비명과 같은 천우자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아아!
그저 존재력을 견뎌 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고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이 느낌.
마치 삼도천(三途川) 앞에 서 있는 심정처럼, 그 마음이 온통 절망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이런 재앙과 같은 존재력을 지니게 되었단 말인가?
-이미 이건 인간이 아니오! 이 정도면 신격(神格)이라 불러야 하지 않소?
조휘가 그런 천우자의 음성을 듣고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시죠!”
허나 조휘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존자는 한 명 더 있었다.
-아아, 오롯한 좌(座)이시여! 본 도의 긴긴 생애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좌의 현신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니……!
조휘가 소름이 돋은 듯 창백한 얼굴로 얼굴을 굳혔다.
설마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죠?
-좌, 좌라고?
-저놈이 진정 좌에 이르렀단 말인가?
영계의 존자들이 하나같이 경악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암자는 신좌의 실체를 접한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
“칙칙한 양반, 그 입 찢어 버리기 전에 그 주둥이 닫으슈.”
-히익!
조휘의 살벌한 엄포에 그야말로 식겁한 듯, 귀암자는 재빨리 법력을 일으켜 영계의 구석으로 사라져 갔다.
신안통(神眼通)을 통해 그런 영계의 동요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통천존신이 이내 처절한 음성을 토해 냈다.
“허허…… 좌(座)라니…….”
그의 입가에 매달린 허망한 웃음.
조휘를 응시하는 그의 동공이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어서, 그 어떤 의지도 느껴지지 않은 무기력한 눈빛 그 자체였다.
이건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소검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좌에 오르기란 애초에 인간의 도정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뜻.
한데 너무도 기이하다.
법천뢰(法天雷)가 자신에게 선사한 것은 억겁과도 같은 고통이요 저주였다.
한데 왜 저 소검신에게는 영원의 축복으로 깃들었단 말인가?
좌라는 것이 오로지 영원에 가까운 시간으로만 당도할 수 있는 길이라면 도대체 달마는 어째서 신좌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통수 양반, 포기하지 마.”
마치 그의 그런 허탈한 심정을 위로라도 하는 듯 조휘는 푸근하게 웃고 있었다.
“때가 무르익으면 아마도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시간이 올 거야.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마. 그때까지 죽을힘을 다하라고.”
“힘을 합하다니…….”
조휘가 머나먼 창공을 올려다보았다.
“난 느낄 수 있어.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저 가공할 적의(敵意)를. 저 소름 돋으리만치 강렬한 야욕은 그 무엇도 가리지 않아. 그 대상은 아마 모든 인간이 되겠지.”
조휘가 마치, 숭고한 선언이라도 하듯 장중하고 묵직한 음성을 이어 갔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먹어 치우려는 저 새끼들을 기필코 막는다. 통수 양반. 더 이상 좌의 환상에 얽매이지 말고 다가올 환난에 대비해 전력을 다해. 좌 그거 별거 아니니까.”
진가희가 의문을 드러냈다.
“오빠! 난 뭘 해야 되지?”
조휘가 예의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하던 대로 남자를 꼬셔! 강비우 당신은 역시 검을 미친 듯이 갈구하는 거다! 상록이 넌 나와 함께 이 세상의 은자를 모두 먹어 치우자!”
또다시 황망한 표정이 되어 가는 통천존신.
그의 말대로라면 좌로 추정되는 신적인 존재가 이 너른 천하의 인간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그 오롯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뜻.
한데 태평하게 남자나 꼬셔 대며 돈이나 벌자?
조휘가 피식 웃으며 시선으로 자신의 발치께를 가리켰다.
“통수 양반. 개미가 왜 무서운 줄 알아?”
“…….”
줄지어 지나고 있는 개미 무리들.
“사람의 몸을 순식간에 갉아 먹어 치우는 전투개미만이 강력한 게 아니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왕은 쉴 새 없이 알을 낳고 일개미는 저토록 열심히 짐을 나른다. 개미들의 보모들은 병사들의 호위 아래 수많은 굴을 파고 방을 만들지. 그들이 강력한 이유는 바로 군집(群集)이라는 거다.”
조휘의 시야가 천하로 확장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이토록 강렬한 열망으로 군집하여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 힘은 그놈들의 비해서도 결코 모자란 것이 아니야. 내가 이곳에, 이렇게 너와 마주하여 대사(大事)를 주고받고 있는 것은 그런 인간의 군집의 인과(因果)다.”
조휘의 일장연설은 일견 쉬워 보이면서도 그 속뜻을 살피기가 힘들었다.
단순한 인간의 군집 그 생태계가, 왜 좌(座)의 존재력과 비등한 힘인지를 그가 설명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휘는 그런 통천존신의 의구심을 읽은 듯했다.
“몰라. 나도 그냥 ‘인식’할 수만 있을 뿐 무슨 이유인지는 정말 몰라. 그걸 알아 버리면 틀림없이 좌가 되는 건데 그건 또 내가 싫거든.”
그때 조휘는 쪼그려 앉아 개미들의 기다란 행렬을 방해하기 위해 작은 조약돌 하나를 옮겨 놓았다.
“힘의 우위가 확실하다면 놈이 지금까지 망설일 이유가 없는 거지. 예측하자면 놈은 분명 이 군집의 힘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할 거다. 우리 사람들을 약화시키려는 거지.”
다시 통천존신을 올려다보는 조휘.
“한데 조금 이상한 게…… 지금 그걸 통수 양반 당신이 다 하고 있거든? 암상들을 꼬드겨 상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황실과 관부를 조종하거는 힘이라니.”
조휘가 천천히 일어난다.
“당신, 그냥 순수하게 신좌에 미친 사람이 맞긴 한 거야?”
순간.
쿠쿠쿵-
세상을 울리는 나지막한 공명음과 함께 통천존신의 기질이 일변했다.
이어 형언할 수 없는 신력(神力)이 그의 온몸에서 발산되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그득한 음성.
조휘는 듣자마자 그것이, 톱니바퀴에 새겨진 문자와 같은 체계의 언령이라고 곧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너, 조종하고 있었구나?”
전신에 드리워진 찬란한 서기.
말로 형언하기가 불가능한 막대한 존재감.
영력이 미약한 조휘의 동료들조차도 그런 통천존신에게 깃든 신령(神靈)을 곧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
그는 누가 봐도 전혀 다른 존재로 변모한 것이 확실했다.
“화신이라…….”
조휘는 그런 통천존신을 흥미롭다는 듯 응시하고 있었다.
좌(座)들의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은 이해가 됐다.
격이 높아져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 버리면 물질계에 강림하는 데 막대한 ‘뭔가’가 소요된다.
조휘는 그것을 ‘인과’라고 믿고 있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좌의 격을 지닌 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를 심어 놓은 화신(化身)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 화신의 본체, 즉 신좌로 추정되는 놈은 좌(座)에 이른 존재 중에서도 격이 상당한 듯 느껴졌다.
좌의 신령이 깃들기 전 통천존신의 행동들을 미뤄 봤을 때, 그는 스스로를 신좌의 화신인지 자각조차 하지 못한 듯 보였기 때문.
통천존신은 긴 중원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영력을 이룩한 존재다.
그런 엄청난 인간의 자유의지조차 조종하는 존재라면 대체 그 격이 얼마나 아득하단 말인가?
조휘로서는 감히 그런 신좌의 능력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휘는 상대에게 공허의 주계라는 말을 듣자마자 자신이 겪었던 삼천 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공허의 주계?”
인간의 어떤 언어 체계에도 없는 고고하고 신령스러운 저 언령은, 언제나 그 뜻이 정확히 뇌리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허나 다른 좌들로 추정되는 존재들을 지칭할 때면, 어김없이 엄청난 두통과 함께 불확실하게 들려왔다.
인간의 미약한 격으로는, 그 존재의 신명(神名)을 듣는 것조차 우주의 법칙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좀 알아듣게 말해. 확 네놈의 화신을 죽여 버리기 전에.”
그 순간, 통천존신의 두 눈에서 급격히 생기(生氣)가 사라져 갔다.
털썩.
결국 생기를 잃고 쓰러져 버린 통천존신.
조휘가 전광석화처럼 다가가 그를 살폈으나 그는 이미 영과 육이 분리되어 사자(死者)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저 강대한 영력을 지닌 인간이, 고작 좌의 신령을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그 영혼이 견디지 못하여 저리도 허망하게 죽어 버린 것이다.
극도로 황망해진 조휘의 표정.
뭐 저런 새끼가?
실로 괴이한 말들만 늘어놓고 사라져 버린 신좌.
“와…… 방금 뭐였냐?”
아직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누기 힘든 듯, 염상록이 미친 듯이 고개를 도리질하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도대체가 무슨…… 저게 신이라고?”
너무도 아득하고 아득하여 한없이 일어나는 절망.
감히 시선으로 그 격(格)을 마주 바라볼 수 없으며.
미치고 않고 겨우 자신의 자아를 유지하는 것, 오로지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 절망 속에서 붕괴되던 자아를 겨우 부여잡고 있던 것은 강비우도 마찬가지.
아직도 치가 떨리는 듯, 연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던 강비우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소검신, 하나만 말해 주시오.”
조휘가 여전히 시선을 허공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그런 조휘의 시선을 좇아 그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강비우.
“과연 인간이 검(劒)의 길을 이어 감으로써 저런 존재와도 싸울 수 있는 것이오?”
조휘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죠. 진리에 이르는 길에는 마땅한 구별이 없습니다(大道無門). 인간의 그 어떤 도정으로도 가능합니다. 고작 저런 놈이 무서워요?”
염상록이 여전히 치 떨리는 목소리로 거친 노성을 발했다.
“그럼 저게 안 무섭냐! 그냥 놈의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려 버릴 지경인데!”
“난 안 무섭고?”
순간 조휘가 또다시 세상을 뒤엎어 버릴 기세의 엄청난 의념지도를 일으켰다.
“히익!”
존재감만큼은 방금 접했던 신의 화신과 대등, 아니 그 이상이었다. 물론 신령스러운 기질과는 궤가 달랐지만.
“야, 이런 건 단지 ‘긴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힘이야. 오히려 저들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건 다른 이유이지.”
“시, 신이 고작 인간 따위를 부러워한다고? 도대체 뭐가 부러워?”
조휘가 염상록과 진가희를 번갈아 응시했다.
“진가희를 향한 네놈의 설명할 수 없는 호감, 소싯적의 절망을 딛고 일어나 끝내 꽃피운 가희의 의지, 저 검에 미친 검귀 강비우, 순식간에 중원 상계의 삼분지 일을 먹어 치운 이 소검신의 열정,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불꽃’이다. 별들(星座)의 성광보다도 우리 사람들이 더 눈부시다. 그들이 질투를 느낄 만큼.”
방금 전에 했던 말과 비슷한 말들을 또다시 늘어놓고 있는 조휘.
허나 조휘의 동료들로서는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사람의 열정이나 태도, 마음, 인생관과 같은 것들이 아니오? 대체 그런 것들에 왜 신이 질투를 느낀단 말이오?”
조휘가 짜증스런 표정을 짓다가 풀숲에 아무렇게나 몸을 뉘였다.
“그냥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니까요? 모든 비밀을 알아 버리면 나도 좌(座)가 된다고. 난 그런 무료한 영원을 사는 것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아니 그럼 충분히 신적인 존재가 되어 영혼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음에도 그걸 참고 있었단 말이오?”
“거참 싫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아무튼! 사람의 열심(熱心), 그 불꽃들은 저 머나먼 곳의 좌들조차 두려워하고 흠모하게 만드는 힘! 이유는 몰라! 그냥 알게 되었어! 더 이상의 질문과 반박은 사양한다!”
하지만 조휘의 동료들이 그치라고 그칠 위인들이 아니었다.
진가희가 예의 희멀건 얼굴을 누워 있는 조휘를 향해 드리웠다.
“그럼 방금 그놈의 목적은 뭐야?”
“아놔, 그러니까 사람의 불꽃, 그런 열정의 마음들을 혼돈과 절망으로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겠지! 이것도 이유는 몰라! 뭐 본인한테 무슨 이득이라도 생기겠지!”
누워 있던 조휘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들이 열심히 사는 게 저놈들을 한 방 먹이는 거야! 가자!”
“어디로?”
앞서 걸어가던 조휘가 뒤를 동료들을 향해 두 눈을 번뜩인다.
“어디긴 어디야? 우리 조가대상회지! 흑천대살이야 사천회 놈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처리할 거고! 우린 수급한 비단을 정리하고 그놈과 담판을 짓는다!”
염상록이 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하! 그 잘생긴 대물?”
두 손으로 감싸 쥔 진가희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져 있었다.
“아니 그놈 말고! 함께 우리 조가대상회를 찾아온 놈이 하나 더 있잖아.”
“아? 그 천화상단?”
무너져 가는 만금상단의 세력권을 수습하기 위해 조가대상회의 협조를 구하러 왔다가 곧바로 소검신에게 호구 잡혀 버린 소천화(小天華) 담희(譚熙)!
역으로 조가대상회의 신문물에 흠뻑 취해 버린 그는, 지금도 눈을 번뜩이며 조가대상회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가자고! 모든 거래는 확실히 인장을 찍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그렇게 조휘가 철검 위로 올라타자 진가희가 휘파람을 불며 소매에서 혈강편을 꺼내 자신을 먼저 묶었다.
“앗흥.”
“그건 또 뭐 하는 짓이오?”
진가희가 새침한 얼굴로 강비우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혼자 경공으로 뛰어오시든지.”
곧바로 혈강편의 쓰임을 알아차린 염상록이 서둘러 진가희에게 후다닥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좋지 않은 옛 기억(?) 때문인지 혈강편에 묶인다는 것이 그리 탐탁치가 않았다.
“그냥 널 안고 있으면 안 될까?”
“지랄 마. 냄새나니까.”
“모진 년. 창백한 년.”
곧 줄줄이 엮어진 염상록과 진가희가 그대로 머나먼 상공 위로 치솟아 올랐다.
-꺄하하하핫!
-으아아아아악!
기다랗게 메아리치는 각양각색의 탄성과 함께, 그렇게 그들은 소검신의 어검비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
강비우가 하늘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굳어져 있다 곧 궁신탄영의 자세를 잡았다.
그 머나먼 포양호까지 경공으로 달려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그는 단전이 아려 왔다.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