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79
78 章>
밀승들은 개개인 모두가 천년 소림을 지켜 온 달마하원의 무공, 즉 제석천의 비공을 익히고 있는 아득한 경지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익히고 있는 절대방어진 제석밀밀방호세(帝釋密密防護勢).
자연재해급 위력의 공격도 막아 낼 수 있다는 그런 제석밀밀방호세가 단 일격에 처참하게 박살 나며 진의 핵(核)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밀승들의 상세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으깨진 듯 온몸이 기형적으로 골절된 채 쓰러져 있는 밀승들.
이건 결코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신(神)적인 존재들의 대결!
온몸을 벌벌 떨며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극도의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
능공허도로 허공에 몸을 운신하며 무심히 공공대사를 올려다보던 조휘가 딱딱하게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무슨 불심을 닦는 중이란 자가 흡자결(吸字決)로 자신의 공격을 상쇄하기보다 오히려 맞상대하여 파괴력을 더해 버렸다.
뻔히 재앙과도 같은 충격파가 사방으로 비산하여 무수한 인명을 살상할 수 있음을 알 터인데도 말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조휘는 저 공공대사의 본질이 중(僧)이 아님을, 그가 우리 인간들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의제(義弟)?
웬만한 일에는 동요조차 하지 않는 마신이 극도로 놀라며 말을 더듬고 있었다.
저 마신이 자신의 의제라고 밝힌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마불(魔佛)?’
혜가 이후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소림의 무승(武僧)이었으나 연원 모를 이유로 승적이 파기된 자.
저 공공대사가 그런 소림 최초의 파계승 마불이라고?
-방금의 한 수에 서려 있던 기운은 틀림없는 의제의 금마불광(金魔佛光)이다! 저토록 광대무변한 금마불광은 그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내내 침묵하고 있던 귀암자가 또 다른 의견을 보태고 나섰다.
-그가 마불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아는 한 저 존재는 금천(金天)이다. 우리 여섯 중 가장 비밀스럽고 신비로우며 조심스러운 자였지. 허나 이율배반적이게도 그는 가장 거대한 세력을 이끄는 자이기도 했다.
저 귀암자가 우리 여섯이라 말했다면 그것은 육존신이었다.
허면 저 공공대사의 진정한 정체는 금천존신(金天尊神).
허나 조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장 거대한 세력이라고요? 통천존신이 있는데도?’
비록 지하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종교 집단이라고 하나 통천교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그런 통천존신보다 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자라면 이 강호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저리도 금광으로 번쩍거리는 무공을 쓰는 세력은 강호의 역사에 전무…….
그때 조휘의 눈빛이 지극히 당혹스럽게 변했다.
‘잠깐? 아니 설마?’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무공이 없긴 왜 없나.
소림의 신공이란 모두 금광(金光)으로 번쩍거리지 않는가?
‘에이…… 아니겠죠?’
하지만 조휘의 그런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왜 아니겠는가. 금천(金天)은 중원의 선종(禪宗)을 암중으로 지배해 온 진정한 주인.
이런 미친!
소림 선종이 비록 달마의 음흉한 의도에 의해 출발했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그 후대만큼은 중생을 위해 불법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진정한 구도자들이라 생각해 왔다.
한데 정파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그 위대한 천년 소림조차도 신좌의 추종자들이 관리하는 일개 하부 조직에 불과했단 말인가!
-금천일파는 오래도록 선종을 관리해 왔지. 그 때문인지 신좌는 오직 금천에게만큼은 스스로 종파를 여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순간 조휘가 크게 놀랐다.
‘그럼 일전에 만났던 금천종(金天宗)이라 불렸던 그놈이 바로?’
-저 금천의 수하일 것이다.
금천종!
본질을 꿰뚫어보는 자신의 기이한 능력에 의해 패퇴했을 뿐이지 그 역시 가공할 능력을 지닌 천외의 존재였다.
그런 엄청난 존재조차도 저 금천의 일개 수하에 불과하다니!
-허면 의제의 그 모든 것이…….
마신이 치를 떨고 있었다.
마불이 금천존신과 동일인이라면, 자신과 의(義)를 나누었던 마불이라는 존재는 금천존신의 가공된 인격에 불과한 것이었다.
평생토록 마음을 나눈 의제가 그런 가면에 불과한 이라면 누구라도 배신감에 치를 떨 수밖에 없으리라.
-네 몸을! 몸을 내어 다오!
조휘는 마신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그의 들끓는 영력을 통해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본 좌가 놈의 가면에 놀아난 것이 확실하다면 내 친히 저놈을 찢어발길 것이다!
“아 싫어요.”
사실 조휘는 단순히 자신의 몸에 강신(降神)하는 것이 싫다기보다, 마신의 능력으로 저 금천을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천마삼검이 비록 공전절후의 위대한 검공이라 하나, 좌의 신력(神力)에 근접해 있는 금천의 힘은 인간의 경지로는 대적이 불가능했다.
조휘의 신형이 허공을 부유하며 금천에게로 나아갔다.
“공공…… 아니 금천 양반.”
금천존신의 얼굴이 조휘의 천하공공도를 맞이했을 때보다도 더욱 동요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허허…….”
조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와…… 천년 소림을 지켜 온 하원의 밀승들을 저렇게 피떡으로 짓이겨 놓고도 그 와중에 계속 중 흉내를 내고 싶은 거야?”
금천존신이 빙그레 웃었다.
“가공된 인격이라고 해도 그 역시 인격이네. 오래도록 나조차도 속여 온 가면일진대 어디 쉬이 벗어지겠는가.”
“허! 돌직구 보소. 지나치게 솔직한 거 아니야? 너무 쉽게 인정하는데?”
“비밀이 가치를 지닐 때는 오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뿐이지. 그래 어디 보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금천존신의 두 눈에 금빛이 일렁이자, 조휘는 마치 자신의 본질이 일거에 꿰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단지 기분만이 아니었다.
“그대가 지닌 영옥(靈玉)의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네. 역시 그것이 그대의 본질을 여는 열쇠였군. 오호라?”
조휘의 영계에 직접 침입했던 금천종의 보고를 들었다면 금천존신이 혈옥의 존재를 아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호오, 이건 정말 의외로군. 허허, 우리 여섯 중 하나가 그곳에 속해 있다니. 게다가 이건 또 누군가?”
금천존신이 이내 푸근한 웃음을 그려 낸다.
“이 몸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독고 형(獨孤兄)도 함께 그곳에 있구나.”
그 순간.
마신의 영력이 순식간에 불어나 영계를 폭풍처럼 휘감았다.
-개 같은 새끼! 내 당장!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차지하려는 마신의 의지를 조휘가 강대한 영력을 일으켜 가볍게 무마시켰다.
그러자 울부짖는 듯한 마신의 분노가 또다시 영계를 휘감았다.
-당장 내놓아라! 반드시 저놈을 내 손으로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끄아아아아!
신안통을 통해 그런 마신의 영언을 들은 듯 금천존신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허허…… 그 폭급한 성정은 육신을 잃고도 여전하시구려, 독고 형.”
마신의 분노는 이내 허탈함으로 이어졌다.
의제를, 고작 저 가증스러운 가면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그토록 자신의 인생을 허비했었단 말인가!
그를 위해 정마대전을 포기했다.
그를 위해 마교를 버리고 달빛 아래 몸을 숨겨 월하림주로 불리게 되었다.
그를 찾기 위해 평생 헤매인 결과 마침내 그가 남긴 여래불상을 얻었다.
허나 소림에 그친 그의 종적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공허한 허상과도 같은 자신의 의제를, 소림의 불마동에서 평생토록 기다렸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괴롭혀 온 그런 처절한 비원(悲願)이, 고작 오늘의 결과를 초래하기 위한 고통에 불과했단 말인가!
용서를, 아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휘아야! 제발 그 몸을 내게 달라! 본 좌는…… 나는……!
그것은 마신(魔神)의 흐느낌.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사내의 절망이었다.
마신의 그런 절망스런 심정을 연결된 심령으로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밖에 없는 조휘로서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마신이 잠시 떠올린 짧은 기억이 물론 그의 인생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인생에서 마불의 비중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는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진짜 역대급 쓰레기 새끼구만.”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지 이건 뭐 거의 농락한 수준이 아닌가?
“아미타불, 굳이 독고 형의 집착을 의도하려던 것은 아니었네. 다만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예측하지 못했을 뿐.”
그는 단지 필요에 의해 마불이라는 가공의 가면을 만들어 냈고, 결국 쓸모가 다하자 가면을 없앤 것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공공대사’라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있듯이 말이다.
그는 본디부터 금천(金天)이라는 이름으로만 오롯했으며 신좌를 따르는 여섯 제자일 뿐이었다.
조휘의 두 눈에 금세 지독한 살심이 어렸다.
“하나만 묻자.”
“아미타불…… 말하시게.”
“땡중 흉내는 그만 내고 이 새끼야.”
“말했다시피 아무리 가면이라 하나 인격(人格)은 그리 갑작스럽게 거둬지는 것이 아니네.”
“어휴, 신의 제자란 놈이 메소드 연기나 자랑하고 있다니. 중원 세상도 말세다 말세야.”
그렇게 조휘가 연신 조롱을 쏟아 냈지만 금천존신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공공대사라는 가면에도 엄청난 열과 성의를 쏟았을 거잖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호에서 공공대사의 위상이 있는데 그리 쉽게 버릴 수 있는 가면은 아니란 말이지.”
“부정하지 않겠네.”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인정하는 금천존신.
“그렇지?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아직 엄청나게 쓸모가 많은 가면을 버려 가면서까지 달마진경을 세상에 뿌린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뻔히 소림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는 일이잖아? 게다가 그 진위 여부도 강호가 끝장나는 날까지 논란이 될 테고 말이야. 강호에 영민한 자들만 있는 건 아니거든.”
달마의 깨달음이 담긴 경서(經書)라 함은 틀림없이 엄청난 난해함을 수반할 것이다.
높은 경지의 깨달음일수록 문자로 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깨달음의 파편들을 순간순간 기록하려다 보니 모든 문장이 추상적이고 현학적일 수밖에 없을 터.
그런 추상적인 문자의 나열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진리에 이르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었다.
한낱 이론서 따위로 경지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강호는 절대경으로 가득해야 정상.
유명한 정치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법전(法典)을 마구 뿌려 댄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판검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조휘가 모를 리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테지.”
“뭐야? 그것도 인정한다고?”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인정이 빠르고 성격이 유한 거지?
금천존신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 온 나머지 육존신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온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 모습이 본래의 인격인지 꾸민 인격인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얻는 것에 비해 잃을 것이 훨씬 많은데 왜 그런 짓을?”
금천존신의 인자한 얼굴이 일순 무심해진다.
“모든 것은 그대 때문이지 않은가.”
“나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조휘.
“아미타불, 이제는 내가 물어보지.”
“뭐? 말해.”
이어진 금천존신의 음성에 조휘의 가슴이 서늘해진다.
“미래, 혹은 과거에서 왔는가?”
“무, 무슨 소리냐 갑자기.”
금천존신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이내 상념에 빠져든다.
“그대는 고금의 역사에 가장 뛰어나고 강력한 보패(寶貝)를 지닌 자. 중원 역사에 전설로 남은 영웅들의 모든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신력에 비할 수 있겠지.”
“…….”
“그럼에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네.”
순간, 금천존신의 두 눈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자금을 불리는 방법론, 집단을 장악하는 방식, 인재를 조달하고 활용하는 수법, 적을 상대하는 심계, 갈등을 조장하고 해결하는 수완 등…… 그대에게는 지금까지 중원을 지배해 온 그 어떤 주류(主流)들에게도 발견하지 못한 어떤 ‘무엇’이 존재한다. 그대의 행동 양식 전반을 관통하는 사상은 분명 ‘이 세상의 것’이 아닐 터. 내 말이 틀렸는가?”
단지 몇 마디만 들었을 뿐인데도 조휘는 상대가 엄청난 지략의 소유자라는 것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잘 맞히면 거짓을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
“억측과 궤변이 너무 심해 굳이 반박할 가치도 없겠는걸?”
“허허, 억측과 궤변이라…….”
금천존신의 얼굴에 또다시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이어 그가 황색 가사를 걷고 품에서 꺼낸 것은 하나의 장부.
조휘는 그런 장부를 보자마자 거칠게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장부의 겉장에 조가대상회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새끼가…….”
뿌득.
거래되는 모든 물품의 가액과 출납을 기장하는 장부(帳簿)는 상단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상단의 속곳이라 할 수 있는 장부가 외부인의 손에 노출되어 있으니 금세 꼭지가 돌아 버린 것이다.
“이 별난 문자들.”
금천존신이 조가대상회의 장부를 펼쳐 보이며 아라비아 숫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이 문자 체계가 과연 중원의 것인가?”
상회의 산법수들에게 아라비아 숫자를 가르친 것이 이리도 후환이 될 줄이야!
“그, 그건 중원의 산법이 어지럽고 불편하여 이 몸이 손수 만든 새로운 산법 체계다!”
“허허허! 허허허허!”
그런 조휘의 대답에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하는 금천존신.
그렇게 금천존신은 한참 동안이나 박장대소하더니, 갑자기 황색 가사를 벗어 던지며 속저고리마저 풀고는 자신의 상체를 드러냈다.
이내 표표히 뒤돌아서서 자신의 등을 조휘에게 내보이는 금천존신.
그의 등을 본 순간 조휘의 안색이 극도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리 여섯은 제자이면서 동시에 그의 실험체다. 이 금천의 몸에는 그의 네 번째 실험체라는 증거가 확실하게 새겨져 있지.”
인두 따위로 지져진 듯한, 그의 어깨 부근에 새겨져 있는 선명한 글귀.
다시 묵묵히 황색 가사를 여미던 금천존신이 희미한, 하지만 명백한 조소가 담긴 미소를 드러냈다.
“이 미천한 종복의 오롯한 주인이시여. 인간의 굴레를 벗어던지시고 머나먼 우주천공의 좌(座)가 되신 사부님을 몰라 뵙고 이리도 무례를 저질렀나이다.”
금천존신의 그런 행동은 조휘가 이 문자를 발명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이 달마이며 신좌일 것이라는 조롱이었다.
“…….”
자신의 모든 비밀이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조휘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마와 신좌가 동일인이라는 추측이 더 이상 추측이 아니라 사실로 드러난 결과이기 때문.
심지어 금천존신의 어깨에 새겨져 있던 필체는 검총과 천마삼검의 석판을 남긴 신좌의 그것과 동일했다.
달마가 신좌라는 것이 비로소 명확해진 것이다.
그는 이 중원무림에 떨어진 또 다른 현대인.
그것이 지금으로써 알 수 있는 신좌의 정체에 관한 전부였다.
도대체 현대인이 무슨 수로 스스로 달마가 될 수 있었지?
그것도 아니라면 달마가 현대인의 삶을 잠깐 유희하다 온 것일 수도?
잠깐만? 그럼 마치 자신에게 남긴 듯한 ‘신좌로 오라’는 메시지는 또 무슨 개소리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어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와중이거늘, 또다시 귓가로 금천존신의 음성이 파고들고 있었다.
“허허, 농담…… 농담일세. 그리 얼굴을 구기지 마시게나. 하지만 말이네. 시간을 다루는 것은 오직 좌(座)들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 이렇게 멀쩡히 인간의 육신으로 존재하는 그대가 설마 좌일 리는 없으니 직접 시공을 타고 오진 않았겠지. 허면 남은 것은…….”
“환생(還生).”
“호……? 역시 그랬단 말인가?”
의외로 조휘가 순순히 인정하고 나섰지만 금천존신의 생각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것도 말이 안 되네. 물론 인간인 이상 모두 윤회(輪回)의 권리를 갖게 되지. 하지만 그런 환생의 도정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것이 ‘기망(記忘)의 율(律)’ 즉 기억의 소멸이네. 그 어떤 인간도 좌에 이르러 격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이 우주적인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순 없지.”
조휘가 피식 웃으며 조롱조로 대꾸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드디어 본심을 드러내는 금천존신.
“그대는 도대체 좌(座)인가? 인간인가? 아니면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다른 격을 지닌 존재인 것인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어딜 봐서 내가 규격 외의 존재라는 거냐.
굳이 대꾸할 가치도 없거니와 자신은 저 입심에 말려들 생각 자체가 없었다.
“됐고. 달마진경으로 뭘 하려는지나 빨리 말해. 아니면 다른 놈들처럼 죽여 줄 테니까.”
“그렇지. 그러고 보니 통천(通天)…… 가장 이용 가치가 높았던 그자를 그리 허망하게 잃어버리고 말았군.”
“그 반짝거리던 휘영(輝靈) 놈은 왜 빼는 거냐.”
“그자는 일찍이 버린 패다.”
어휴 반짝아 반짝아.
너는 같은 사형제들에게도 이토록 인심을 잃었구나. 참 잘 죽었다.
“빨리 말해 달라니까?”
“차라리 그대와 싸우는 편이 났겠군.”
“진심이야?”
진짜 전심전력으로 싸우자고?
한 차례 가볍게 격돌한 것만으로도 그 충격파에 의해 소림, 아니 광활한 숭산(崇山)이 주저앉을 뻔했다.
하물며 전력으로 부딪친다면?
숭산은 물론 하남 전체가 엄청난 재해에 직면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렇듯 좌에 근접한 자들끼리의 충돌이란 자연재해나 다름이 아니었다.
“잘 생각해. 결국 네놈이 주인이 섭식할 영혼도 남아나지 않을 거다.”
“허……?”
소스라치도록 놀라고 마는 금천존신.
설마 소검신이 거기까지 파악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허공에서 하릴없이 이빨만 터는 거 보면 뻔한 거 아니겠어? 당신도 나와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거야.”
때가 무르익어 오롯한 주인께서 강림하기도 전에 먼저 중원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조휘의 존재감을 접하자마자 금천존신이 내린 판단이었다.
“허면 나와 싸울 수 없는 것은 그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무표정하게 금천존신을 응시하는 조휘.
“글쎄, 그럴까?”
그런 조휘의 태도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판단하기에는 그 눈빛이 지나치게 냉정했다.
순간.
조휘의 광대무변한, 너무나도 아득한 의념의 기운이 급속도로 현신해 천지를 그득 메워 갔다.
그런 상대의 의념이, 일종의 결계와 같은 기막(氣幕) 같은 성질로 변해 가자 금천존신의 만면에 황당함이 서렸다.
“……무슨?”
“당신이 도망가면 안 되잖아.”
그제야 안심하며 예의 여유를 되찾는 금천존신.
“단지 나를 가두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의념을 발휘해 단지 도주를 막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물며 이런 거대한 의념을 유지하려면 자신을 공격할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한데 조휘의 입매가 사악하게 비틀리고 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당신을 가두는 건 내가 아니야.”
기이한 의문으로 꺾이는 금천존신의 고개.
“대관절 그게 무슨 소린가?”
이렇게 광대무변한 의념을 펼쳐 결계를 생성하고 있으면서 자신을 가두려는 의지가 없다?
“거 법칙 좋은 게 뭐야?”
“음?”
순간, 조휘가 전력으로 의념, 아니 자신의 ‘존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쿠구구구구구구-
가늘게 진동하는 천지.
그렇게, 우주를 관통하는 미지의 법칙이 발동되기 시작한다.
“서, 설마!”
인간에게 허락된 힘에는 엄연히 임계점이 존재한다.
우주를 관장하는 법칙은 이를 돌파하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았다.
법천뢰(法天雷)!
지금 조휘는 그런 법천뢰를 강제적으로 발동시키려는 것이었다.
“낄낄! 삼천 년 동안 오랜 상담 좀 해 보자고. 뭐 그렇다고 큰 걱정은 하지 마. 이 현세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니까.”
법천뢰(法天雷).
인간 세상에 펼쳐질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재앙.
문자 그대로 하늘의 율법이 정한 최악의 재앙이기에 어떤 형벌이 내려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하늘의 율법으로 정해진 재앙이기에 필멸자인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데 저 소검신은 그럼 끔찍한 재앙을 인위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다.
좌에 이른 불멸의 존재들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무량(無量)의 확률을 지닌 재앙!
미친!
금천존신의 얼굴이 악귀처럼 구겨지자 눈을 뜨고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금광이 그의 전신에 작열했다.
이처럼 그를 상징하는 찬란한 금마불광(金魔佛光)이 태양처럼 밝게 빛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모든 존재력을 끌어올렸다는 반증.
어설픈 힘으로는 소검신이 펼쳐 놓은 의념의 결계를 결코 뚫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 들려오는 소검신의 음성에 금천존신은 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 법천뢰를 발동시키려면 조금 모자란 감이 있었는데 결국 모두 채워졌군!”
이미 한 차례 법천뢰를 맞아(?) 본 조휘는 얼마만큼의 힘이 발현되어야 법천뢰가 구동되는지 그 임계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제 금천존신의 존재력까지 더해졌으니 법천뢰의 발동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것이다.
“이런 찢어 죽일……!”
육존신 중 몇몇은 법천뢰를 경험하고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타격을 입은 상태.
그렇게 혼탁해진 영력으로는 결코 좌에 이를 수가 없다.
자신과 더불어 가장 상위의 존재였던 휘영존신(輝靈尊神)이 그렇게 약해져 버린 것도 모두 이 법천뢰 때문!
자신마저 약해진다면 이 땅 위에 펼쳐질 그분의 모든 대계가 무너진다.
이를 악다문 금천존신이 조휘가 펼쳐 놓은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쌍장(雙掌)을 치켜세우며 빛살처럼 운신했다.
지이이이잉-
금천존신의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자신이 펼친 한 수의 금불쌍장(金佛雙掌)에는 산맥마저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초월적인 거력이 담겨 있었다.
한데 별다른 타격음도 없이 그저 움푹 파였다가 돌아올 뿐 소검신의 결계는 끄떡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이한 광경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
갑자기 이와 비슷한 힘을 구사하는 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곧 주먹을 으스러지게 말아 쥐는 금천존신.
“원도(原道)……?”
나머지 다섯에게는 늘 실험체의 번호로 불렀으나 오직 원도에게만큼은 그분은 항상 제자로 대우했다.
그토록 각별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그분께서 손수 내려 주신 존신(尊神)의 휘호도 거부한 채 도망쳐 버린 배신자!
그런 원도 놈의 힘이 왜 저 소검신의 의념에서 느껴진단 말인가?
“와 진짜 당황한 것처럼 보이네? 그럼 내가 그저 무식하게 의념을 유형화한 결계만 펼쳐 놓은 줄 알았냐?”
가소롭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검신을 향해 금천존신이 발작하듯 외친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어떻게 네놈이 원도(原道) 놈의 비술을!”
“그거야 뭐 벽면에 잔뜩 새겨져 있는 걸 보고 그냥 줍줍했지.”
장삼봉의 거대한 지하 공동에는 그의 예언만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일생(一生), 그 위대한 심득 역시 모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과연 장삼봉이 남긴 힘은 결코 삼신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결계…… 그거 모두 태극(太極)이야.”
금천존신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음(陰)과 양(陽).
무(無)와 유(有).
실(實)과 허(虛).
공(空)과 만(滿).
태극이란 이런 만물의 법칙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진리.
모든 구별함이 없는, 아니 구별되지 않는 태초의 혼돈(混沌)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천고의 이론이었다.
때문에 신좌께서는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좌(座)에 도전하는 원도 장삼봉을 각별히 아끼고 또 응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좌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그런 원도의 궁극기예를 어떻게 소검신이?
원도는 나머지 다섯 사제들에게 자신의 이론을 아낌없이 내주었으나 그의 태극이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네놈……!”
하지만 금천존신의 음성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왔군!”
머나먼 상공.
뇌전처럼 작열하다 이내 흩날리듯 사선으로 어지럽게 낙하하고 있는 빛살 무리.
그것은 마치 춤사위와 같은 황홀한 빛의 향연이었으나,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우주적 법칙(法則)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의념이나 법력 따위 같은 인간이 익힐 수 있는 힘과는 비교조차 무색한 무진장(無盡藏)의 거력.
저것이 바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재앙, 법천뢰(法天雷)!
“깔끔하게 가자고!”
소검신이 펼친 의념의 결계가 점차 축소되기 시작한다.
작아지는 의념의 결계는 소검신과 자신이 맞닿아 서로 꽉 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화아아아악-
그렇게 소검신과 금천존신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네노오오옴-!
금천존신의 기다란 비명 소리만이 천공에 메아리처럼 울릴 뿐이었다.
처참하게 짓이겨진 몸으로 그런 광경을 바라보던 밀승들이 전율하며 몸을 떨고 있었다.
자신들이 본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것은 역사 속의 신화와 전설에 다름이 아니었다.
지객당주 범승이 선장에 기댄 채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절규하듯 외쳤다.
“한시라도 빨리 맹으로! 천년 소림의 비술이 천하에 공개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렇게 달마하원의 밀승들이 서둘러 장내를 수습했다.
숭산의 정취가 다시 고요로 물들고 있었다.
* * *
온몸이 잘게 쪼개어지고 또 쪼개어진다.
이윽고 시야마저 붕괴되며 오직 의식만이 망망대해와 같은 시공간을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희미해져만 가는 의식이 끝자락에 다다랐을 무렵, 저 멀리 천공의 위에서 괴이한 탑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깼냐?”
갑작스럽게 육신의 감각이 돌아오자 금천존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와 그대로 널브러졌다.
“끄으으으…… 우웨에에엑!”
“지랄을 해라.”
조휘가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듯 금천존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토해 봐라.
찌꺼기 비슷한 것이라도 나오나.
육체로 존재했다면 삼천 년은커녕 세 달도 버티지 못하고 굶어 미라가 됐겠지.
감각만 그럴싸할 뿐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식과 영육(靈肉)뿐이었다.
그렇게 금천존신은 몇 차례 토해 보다 기이함을 느꼈는지 드디어 주변을 살피는 여유를 되찾았다.
“도대체 이곳은……?”
광활한 공허 속.
사방에 별빛이 반짝거리는 우주적 공간이었다.
그런 무량한 공허 위에서 자신은 유리(琉璃)처럼 투명해진 장방형 공간에 갇혀 있었다.
“그래 어서 오고. 뭐긴 감옥이지.”
“감옥?”
조휘가 시선으로 머나먼 공허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보이지?”
조휘의 시선을 쫓아 바라본 곳에는 거대한 탑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 가장 꼭대기에 가느다란 쇠침 같은 것이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 주위로 펼쳐져 있는 괴이한 문자.
읽을 수는 없었으나 그 뜻은 곧바로 머릿속에 전달되고 있었다.
“사, 삼천 년……!”
저 쇠침들이 가리키는 시간이 다하기까지는 앞으로 삼천 년.
금천존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조휘를 쳐다보았다.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이냐?”
분명 소검신은 법천뢰가 떨어지기 전부터 삼천 년을 운운하고 있었다.
“당연히 미리 알고 있었지 그럼 모르고 왔냐?”
법천뢰가 선사하는 재앙의 수는 무량대수(無量大數).
당연히 이를 예측하는 것은 좌(座)들조차 불가능하다.
한데 어떻게 정확하게 무슨 재앙이 떨어질지 미리 예측할 수가 있으며, 또한 정확히 의도한 바대로 자신을 이곳에 끌고 올 수가 있단 말인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좌들조차 그토록 닿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차원의 경지가 있다.
법칙을 오롯이 발현시킬 수 있는 자.
그 경지에 이르면 더 이상 우주적 율법에 통제받지 않는다.
즉 자신만의 차원을 가꿀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한, 저렇게 법칙을 예측하고 의도할 수 있는 자는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 창조자(創造者)들밖에 없었다.
창조자들은 가벼운 의지로 좌들조차 벌레처럼 죽일 수 있다고 들었다.
덜덜덜-
신좌께서 좌들의 온갖 위협과 견제를 받으면서도, 끝끝내 영혼의 섭식이라는 패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그런 창조자의 경계에 닿기 위함이었다.
한데 설마하니 소검신이 그 경지에 닿아 있을 줄이야!
“경계의 위대한 분이시여!”
금천존신은 그야말로 벌레처럼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다.
“만물의 창조와 파괴를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억겁의 시간에도 무량한 공간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런 모든 경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존재! 창조자 아니십니까?”
“뭐래 또. 무섭게.”
신으로 불리는 좌들보다도 더한 상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조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좌들이 진정한 신이라면 인간의 세상에 함부로 개입하거나 침범할 수 없는, 그런 우주적 율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런 법칙의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롯해진 격으로 좌(座)에 이른 존재들 역시 어떤 미지의 힘에 의해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
이 말인즉, 그런 엄청난 법칙의 힘을 투사하는, 보다 상위의 존재가 반드시 있다는 뜻이었다.
“왜 그런 소릴 하는 거지?”
저 위대한 존재의 위선에 결코 속으면 안 된다.
무슨 이유로 ‘가면’을 쓴 채 인간사에 개입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상대는 가벼운 의지 하나로 인간의 영혼을 가볍게 소멸시킬 수 있는 자.
“손수 이 미천한 몸에게 법천뢰의 재앙을 의지대로 부리는 위대한 신위를 보여 주셨습니다! 물론 저는 한낱 하찮은 필멸자에 불과하나 나름대로 수양을 쌓은지라 위대한 존재를 알아보는 눈은 있습니다!”
조휘가 실소를 머금었다.
“흐흐…… 난 또 뭐라고. 아니다 그런 거. 그냥 이미 한 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뿐이야.”
“저는 비록 미천한 필멸자이나 우둔하지 않습니다!”
이 새끼 이거…….
착각 오지게 하고 있는 거 같은데?
“하늘의 율법이 정한, 법천뢰에 속한 재앙의 개수는 그야말로 무량대수! 아무리 미리 겪어 본다 한들 다음번에도 같은 재앙이 펼쳐질 거라고 감히 누가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너 몰랐구나?”
조휘가 머나먼 허공의 시계탑을 다시 시선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렇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적혀 있잖아. 모든 것은 인과율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나니 그대의 운명에 정해진 시련은 ‘공허의 속박’이다. 안 보여? 아니 안 느껴져?”
그것은 일종의 조휘를 향한 경고였다.
인간의 몸으로 또다시 허락된 존재력의 임계점을 돌파한다면 반드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경고.
물론 조휘도 이곳으로 다시 오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이 음흉한 금천존신에게 모든 정보를 빼낼 수만 있다면, 그렇게 세상을 구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는 삼천 년의 기나긴 고통이겠으나, 저 하계의 중원인들에게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일 테니까.
“무슨 말이 적혀 있다는 것인지 저는 아무리 살펴도 도통 모르겠습니다.”
금천존신이 조휘를 올려다보며 의문 가득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저기 적혀 있는 문자를 통해 삼천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저 탑에서 더 이상 다른 문자는 어디에도 제겐 보이지 않습니다.”
“뭐?”
조휘의 당혹스런 시선이 다시 거대한 시계탑을 향했다.
“아니…….”
분명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을 해 봐도 그 뜻만큼은 정확히 머릿속에 전달되고 있었다.
다시 금천존신을 바라보는 조휘.
오해를 단단히 했는지, 무릎을 꿇은 채 연신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분명 가식은 없어 보인다.
그럼 도대체 저 문장을 왜 나만 인식할 수 있는 거지?
“잠깐만. 하나만 물어보자고.”
“하, 하문하시옵소서!”
“에이 씨! 나는 창조자 뭐 그딴 거 아니라니까!”
“…….”
하지만 금천존신의 입장에서는 조휘가 아무리 아니라고 가식을 떨어 봤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법천뢰의 재앙을 예측한다는 건 좌(座)들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니까.
“법천뢰에 속한 재앙의 종류가 무량대수라는 근거가 뭐야?”
“그것은 이미 역사로 증명된 일이옵니다.”
“역사?”
“그렇사옵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격(格)에 올라 좌(座)가 되려는 인간은 제법 많았사옵니다. 위대하신 저희 신좌(神座)께서도 법천뢰를 수도 없이 맞이한 끝에 비로소 격에 올라 좌에 이르셨습니다. 법천뢰의 파훼는 좌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이옵니다.”
제법 상세한 설명이었으나 조휘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 여섯 중 몇몇은 좌에 엄청나게 집착하잖아? 하지만 당신이나 그놈이나 법천뢰를 굉장히 두려워하던데?”
통천존신이 그러했듯 눈앞의 금천존신도 법천뢰 앞에서 굉장히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도 좌에 이르고 싶다면, 법천뢰를 계속 경험하려 했을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육존신쯤 되는 존재들에게는 수명이야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좌의 격에 이르는 존재력을 얻으려면, 의미 없는 수련보다야 법천뢰를 통해 경험을 쌓는 편이 더욱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러나 금천존신의 얼굴은 허탈함만 그려 내고 있었다.
“……법천뢰는 우주적인 재앙이옵니다. 함부로 도전했다가는 자칫 소멸되거나 영력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어 그간 쌓아 온 모든 존재력을 잃게 되는 것이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휘는 이내 무료한 얼굴이 되어 다시금 머나먼 허공의 시계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량한 공허 속에서 삼천 년을 버텨 내야 하는 것은 극도의 고통이라 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무한한 기회이기도 했다.
한데 영력을 잃거나 아예 소멸될 수도 있다니?
오히려 자신은 이곳에서 의념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단순히 재앙이라는 단어로 부르기에는 뭔가 이상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저희들 중 법천뢰를 가장 많이 겪은 자는 통천(通天)이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마지막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어 존재력이 절반 이하로 퇴화될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오호, 그게 고작 절반의 경지였다고?”
“그 일만 아니었다면 여전히 통천은 저희들 중 최강이었을 것이옵니다.”
어쩐지 자신의 교단까지 손에 넣은 최강의 존신(尊神)치고 허탈하리만치 약하더라니.
“그가 겪은 법천뢰만 해도 모두 결이 다른 재앙이었사옵니다.”
열해(熱海)의 주박.
팔한(八寒)의 경계.
흑암(黑暗)의 허무.
분명 조휘도 다양한 재앙을 언급하는 통천존신의 말을 들은 바가 있었다.
“아, 젠장 머리만 아프네. 야, 그만해.”
조휘가 그대로 투명한 바닥에 널브러지며 무료한 눈빛을 발했다.
“됐고, 저기 쇠침 밑에 톱니바퀴 보이지?”
저 톱니바퀴의 한 바퀴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천 년이며, 총 세 번의 완전한 회전을 마치고 나서야 이 공허의 공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미 저도 인식하고 있사옵니다.”
조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한 바퀴는 함께 수련하는 데 쓰자고. 복잡할 땐 머리를 비우고 수련하는 것이 최고니까.”
“수, 수련이라시면?”
조휘의 입가로 사악한 미소가 번진다.
“의념을 갈고닦는 것은 이미 질리도록 해 봤으니까 이제 투로를 닦아야겠지?”
투로(鬪路)!
그런 조휘의 말에 금천존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이 미친 창조자(?)가 천 년 동안 자신과 함께 싸우자고 천명한 것이다!
“간다!”
“자, 잠시! 사, 살려 주십시오!”
조휘가 유형화된 의념의 기운을 두 주먹에 덧씌운다.
“어차피 죽지도 않아. 육체처럼 느껴지겠지만 본인의 몸을 한번 잘 살펴보라고. 생체 활동이 모두 멈춰 있지 않아?”
“허면……?”
“영체(靈體)다! 다만 고통은 비슷할 거야!”
“아, 아니! 잠시만…… 커헉!”
공기가 없어 충격파만 울리지 않을 뿐, 그의 명치에 꽂힌 일권(一拳)의 위력은 그야말로 재해 수준의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곧 금천존신의 영체에도 장엄한 금마불광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저 미친 창조자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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