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82
81 章>
한낮에 태양빛이 내리쬐는 현상은 태초부터 이어진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질서다.
개기일식과 같은 특별한 때가 아니라면 한낮에 태양빛이 없어지는 경우는 중원의 길고 긴 역사에 처음 있는 일.
문제는 어쩌면 자연재해라 여겨질 이런 엄청난 일이 일개무인에 불과한 소검신이 부린 조화라는 것이었다.
모든 맹도가 어둠 속에 웅크려 숨죽인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이런 신위를 과연 ‘경지의 높낮이’로 구분할 수 있을까?
무공의 경지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잣대.
허나 대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이런 불가해의 현상은 결코 사람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부리는 조화란, 사람에게 길흉화복과 운수를 걸어 보고 싶은 경배의 대상.
그런 일월성신을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는 무인?
강호무림이라는 세상이 발원한 후 모든 역사를 뜯어본다고 해도 그런 신위를 보인 무인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삼신(三神)이라는 천하에 다시없을 위대한 무인들조차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총군사를 불러오라니까?”
“대, 대체 어디로…….”
천지사방이 분간조차 되지 않는데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단 말인가!
곧 조휘는 그런 진천수호대주 하륭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가볍게 의지를 발현하였다.
그 순간.
팟-
무언가가 점멸하는 듯한 가벼운 소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오직 하륭의 주위로만 밝음이 되돌아왔다.
마치 작열하는 태양광선의 운행이 그에게만 미치는 듯 그의 주변만 ‘낮’이 된 것이다.
경악의 빛이 담긴 모든 맹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륭을 향한다.
그것은 앞서 천지사방이 암흑으로 변한 것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지금의 이 모든 조화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
이로써 저 소검신이 일월성신의 운행조차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아, 내 쪽도 확인해야겠군.”
팟-
그렇게 소검신의 주변도 밝은 낮이 되었다.
“으음…….”
하륭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신음하다 곧 장내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무림맹의 모든 맹도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소검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대는 위대한 일월성신조차 의지로 운행하는 자.
그야말로 검을 잡을 의지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천하에 어둠을 드리운 채 오직 하늘 아래 홀로 빛나는 자.
어쩌면 지금 자신들은 천하에 다시없을 전설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조휘는 그런 맹도들을 무심히 관조(觀照)하고 있었다.
역시 모든 것이 자신의 예상대로였다.
기실, 눈앞의 맹도들을 일거에 압도할 만한 무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만의 병력을 상대하면서 일일이 힘을 통제하여 살상(殺傷)을 자제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 분명할 것이고 이는 강호를, 아니 세상을 구한다는 자신의 명분을 송두리째 쓰레기통에 구겨 처넣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영혼마저 으스러진 채 소멸하신 존자 어르신들의 염원, 장삼봉 진인의 숭고함이 함께하는 이상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그들의 뜻까지 함께 대변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숙명(宿命).
수많은 이들의 사명(使命)을 짊어진 무게다.
조휘는 이 중원 세상의 사람이 현대인들과는 상황 인식을 어떻게 달리하는지 또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학을 모르는 중원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재해다.
한 계절만 가물어도 수백만 단위의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삶이요, 겨우내 북풍이 조금만 모질어도 길거리에 동상자가 수없이 속출했다.
무서운 전염병이 돌면 그 마을, 아니 그 지방 전체의 인구가 삼분지 일 토막 나는 것은 부지기수요,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가면 한 해의 농사를 모두 망쳐 눈물짓는 것이 중원인들의 한스런 삶이었다.
그런 중원인들에게 일식(日蝕)이란 모든 불길한 일의 전조(前兆).
이제 저들에게 소검신은 인간사 모든 재해의 화신처럼 여겨질 것이 분명했다.
굳이 무력을 떨치지 않아도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
단지 어둠으로 저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소검신은 저들에게 진정한 신의 반열에 이른 존재로 비춰질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조휘의 동료인 남궁장호와 사마중 역시, 맹도들과 같은 상식을 지닌 중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털썩 주저앉은 채 멍하니 조휘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마중.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무신에 비해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조휘의 오만한 주장을 허언(虛言)으로 여겼었다.
한데 이런 건…….
무인으로서, 아니 한낱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후기지수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놈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도무지 해도 해도 너무하다. 그를 향한 경쟁의식조차 완벽히 사라진다.
그저 어찌하여 한낱 인간이 저런 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만 증폭될 뿐.
그때 남궁장호의 예의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 봉공.”
조휘가 두 눈에 이채를 가득 머금더니 이내 은은한 미소를 드러냈다.
“말씀하시지요. 소검주.”
함께 피식 하고 웃어 버리는 남궁장호.
“그래 그거면 된다. 네가 아무리 고금에 다시없을 신(神)이 되어도, 아니 설사 하늘 신(天神)이 된다고 해도 내가 기억하는 네놈이 변하지 않는 이상 난 그것으로 되었다.”
조휘의 동료를 중에서 남궁장호가 가장 오래된 친우.
좌가 된 것을 누구보다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조휘였기에, 그런 남궁장호의 응원이 실로 뜻깊게 다가왔다.
“고마워.”
그래도 남궁장호에게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내 그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도 이런 건 참…… 아무리 봐도 너무하군.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이냐?”
조휘가 말없이 사방을 돌아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의념을 수천 년 동안 닦다 보면 더 이상 의념의 총량이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난 그것을 극의념계(極意念界)라 부르기로 했어. 분명 그다음 단계의 경지는 없는 줄로만 알았지.”
의념을 수천 년 동안 닦는다는 말만 해도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일이거늘, 의념이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건 더욱 황당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애초에 인간의 의념(意念)이란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양을 운운하는 것 자체부터 아직 절대경에 이르지 못한 남궁장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를 어찌 양으로 가늠할 수 있는 거지?”
조휘는 어찌 설명해야 할까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억력을 예로 들어 볼까.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총량의 한계는 존재할까? 아니면 한계가 없을까?”
“음…….”
조휘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을 톡톡 쳤다.
“허면 왜 우리는 자꾸만 뭔가를 잊어버리는 거지?”
“그건……!”
뭐라 항변하려다 결국 입을 꾹 닫아 버리고 마는 남궁장호.
“새로운 기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지난 기억을 지워야 하기 때문이지. 인간의 망각(忘却)이라는 것은 기억력의 총량에 한계가 있음을 완벽히 증명하는 방증.”
조휘가 다시 남궁장호를 응시한다.
“의념(意念)도 마찬가지야. 생각이라는 것도 엄연히 인간의 연산력에 해당하지. 물론 단순히 두뇌의 연산력으로는 의념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어. 다만 포괄적으로는 충분히 ‘의념은 연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
조휘의 말인즉, 의념도 결국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연산력의 일부분이니 기억력과 마찬가지로 그 총량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휘의 그런 주장은 아직도 남궁장호에게는 너무도 모호하고 추상적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사람의 생각하는 힘에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
이는 두뇌의 십 할을 모두 활용했다는 소린데 자신이 아는 한 그 정도의 경지를 이룩한 인간은 역사 이래로 전무했다.
현대의 최첨단 뇌 과학 분야조차도 아직은 개척할 영역이 엄청났다.
현대인들에게도 인간의 두뇌를 백 퍼센트 활용한다는 건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물며 중원인인 남궁장호로서는 더욱 괴이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
“참…… 상상조차 되지 않는군. 그럼 이 어둠이 그 극의념계가 다루는 영역이라는 것이냐?”
“아니.”
조휘가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그 빌어먹을 석판에 괴이한 이름을 새긴 후로 내 안의 뭔가가 개화(開花)됐어. 인식할 순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설명할 수는 없는 힘. 이걸 어떤 초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말 그대로…….”
설마 이것이 정말 신의 힘일까라는 말은 끝내 조휘의 입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좌가 된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뜻이니까.
“극의념계를 초월한 어떤 경지를 이루고도 그 경지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단 뜻이냐?”
“그거지.”
강호사에 존재해 온 모든 무학에는 반드시 구결(口訣)이 있었다.
조휘는 그 오묘한 느낌이라도 설명할 수 있어야했다.
“허면 그것은 무공(武功)이 아니다.”
“왜?”
단호한 남궁장호의 음성.
“오랜 세월 무(武)를 수련한 구도자의 경지에는 어떤 성질이건 반드시 자아(自我)가 있다. 설명할 수 없다면 네 그 경지에는 너만의 자아가 없다는 뜻이다.”
지닌 힘을 네 스스로 설명할 수 없으니 그것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
조휘의 얼굴이 금방 일그러진다.
“이게 내 힘이 아니라면 혹시 타인의 힘이라는 말이야 그럼?”
“강호에도 너처럼 자신의 경지를 설명할 수 없는 자들이 있지. 그들이 바로 마인(魔人)이다. 마공이 지닌 힘에 먹혀 마성(魔性)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자아가 없는 이들. 네 설명은 그들과 유사하다.”
“하…….”
조휘가 펼친 칠흑 같은 어둠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남궁장호.
지금 그는 조휘가 위험한 마성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조휘가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이건 사악한 마공 따위가 아니야.”
사마중이 조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역시 조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궁장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증명해라.”
지금 조휘의 신위가 마공이 아니라는 증명.
조휘의 대의를 따르기로 한 이상 그들에게 이것은 더없이 중요한 문제였다.
찌이이이익-
조휘가 말없이 자신의 옷깃을 찢어 안대처럼 만든 후 남궁장호와 사마중에게 건넸다.
“눈을 가리는 게 좋을 거야.”
찢어진 옷깃을 받아 들며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마중.
“왜지?”
조휘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보여 달라며?”
그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자, 남궁장호와 사마중이 서둘러 조휘의 옷깃으로 두 눈을 가린다.
그 순간.
갑자기 조휘가 커다랗게 입을 벌린다.
그가 토해 낸 무언가가 목젖으로부터 살짝 드러나자.
“으아아아악!”
“끄아아악! 내 눈!”
조휘를 바라보던 맹도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들의 두 눈을 감싸 쥔 채 쓰러지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조휘가 토해 낸 것은 살인적인 밝기의 광구(光球).
그렇게 맹도들의 거친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자 남궁장호가 한껏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도, 도대체 그건……!”
분명 옷깃으로 두 눈을 가렸음에도 그 눈부심을 막을 길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밝음이었다.
이어 조휘의 예의 퉁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원성(太原省) 일대의 모든 광원(光源)을 모아 체내에 갈무리하고 있었단 말이야.”
“아, 아니……!”
“미친! 말도 안 돼!”
조휘가 배시시 웃는다.
“거봐. 마공은 아니지?”
사마중이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마공은 아니다.
그런데 그건 결국 신(神)이며 좌(座)의 신위이지 않은가?
* * *
무림맹 총군사 제갈찬휘와 내원주 서강후가 구룡대회의(九龍大回議)의 진행조차 잊은 채 멍하니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구파를 대표하는 대원로들, 즉 구룡원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촛불을 켜지 않았다면 회의실 내부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찌하여 갑자기 이런 어둠이…….”
“으음…….”
이건 개기일식도 아니다.
일식이라면 태양을 가린 흔적의 테두리라도 희미하게 천공에 드러났을 테니까.
분명 아무리 하늘을 살펴봐도 일식의 흔적 같은 건 없었다.
“소검신……?”
내원주의 기묘한 물음에 총군사 제갈찬휘가 거칠게 고개를 도리질했다.
“하, 한낱 인간이 그런 능력을 지녔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중원에는 해를 가리며 나타난 신적인 존재들에 대한 설화가 제법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고대 전설 속의 신(神).
한낱 강호의 무인에 불과한 소검신이 그런 설화 속의 신들과 동일한 격(格)을 지닌 존재라니!
강호의 장구한 역사를 모두 뒤진다 해도 그런 엄청난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외원에 모든 맹도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는 시점에서 하필 이런 기묘한 재앙이 일어났소. 너무 공교롭지 않소이까?”
“음……!”
내원주 서강후는 무림맹 내에서 가장 날카로운 안목과 냉정함을 지닌 이였다.
상황과 판세를 읽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연히 회의장 내 모든 간부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만약 이 어둠이 그의 의지가 깃든 현상이라면 지금까지 본 맹의 모든 계획은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하오.”
구룡원주를 대표하는 일룡태주(一龍太主) 우방윤이 의문을 드러냈다.
“소검신이 그런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면 과연 강서를 우리의 힘으로만 도모할 수 있겠소이까?”
내원주 서강후가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백만 무인을 어찌 홀로 감당할 수 있겠소? 더구나 달마진경으로 인해 본 맹의 전력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소. 조가대상회의 병력 수준이라고 해 봐야 한낱 사천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모든 정보 조직의 중론이오.”
이렇듯 무림맹은 조가대상회를 이미 징치의 대상, 즉 적(敵)으로 간주한 상태였다.
하루가 다르게 강북으로 뻗어 가고 있는 조가대상회의 영향력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무림맹이 걷잡을 수 없이 약화될 것은 분명했다.
총군사가 소림과 담판을 지어 달마진경이라는 최강의 패를 들고 오지 못했더라면, 천하제일세(天下第一勢)의 칭호는 조가대상회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조가대상회에서 나온 모든 문물과 체계들이 전 중원을 뒤덮었다.
이미 대부분의 무림맹도들은 조가대상회의 가죽옷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객잔 배달업에 표물 운송 사업을 접목시키는 사업 방식이 성행하면서 표국 업계는 거의 고사 수준에 이르렀고, 객잔들 역시 배달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허나 조가대상회가 개발한 기묘한 문물인 ‘자전거’의 생산은 그들이 독점하고 있었으며, 그런 자전거를 외부에 판매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 다른 객잔들은 조가대상회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들이 개발한 운차(雲車)의 파급력도 매한가지.
마차를 생산하는 거의 모든 공방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노면의 마찰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마차와는 달리 운차는 가히 혁명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가대상회의 독특한 바퀴 구조는 오직 그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기술.
다른 공방들이 운차의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며 비밀을 파헤치려고 수도 없이 노력했지만, 그 독특한 연결 구조와 적정한 강도의 판형 철판 제련법은 끝내 파악하지 못했다.
요식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엄청난 대량의 얼음을 무슨 방법으로 조달하고 있는지, 호족들조차 아껴 먹는 그 비싼 돌꿀을 어디서 그렇게 대량으로 들여오는지, 그야말로 그들의 모든 것이 철저한 기밀.
결국 그렇게 모든 강북인들이 한빙주와 흑청수에 미쳐 가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을 대표하는 종주 소검신이 검신과 무신이라는 전설적인 명성을 대리하고 있으므로 그 파급력은 점점 더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조가대상회는 단순한 상단(商團)이 아닌, 중원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강력한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위험 수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황실조차도 조가대상회를 매서운 눈초리로 주시하는 상황이었다.
무림맹에게 있어서 조가대상회를 징치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세력 다툼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삼태공(三太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소?”
한 원로의 질문에 섭선을 부치는 제갈찬휘의 손놀림이 일순 멎는다.
“황실과 강호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오래도록 지켜 왔습니다. 어렵다하여 황실의 지원을 받아들인다면 이번 일이 강호의 일이 아닌 중원의 일이 되는 게지요. 그들의 지원으로 조가대상회가 정리된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결국 황실의 간섭이 시작될 겁니다. 선례를 남길 수는 없습니다.”
제갈찬휘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윽하게 두 눈을 감았다.
“우리에게 달마진경이라는 최강의 패가 건재한 이상 맹도들은 계속 불어날 겁니다. 백만, 이백 만, 삼백 만…… 결국 강북인들을 모두 맹의 휘하가 될 것이고 이에 본 군사는…….”
그가 다시 눈을 뜨며 강렬한 안광을 발했다.
“여기 계신 모든 원로분들께 강남인들의 입맹 허가에 관하여 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총군사의 엄청난 안건이었다.
허나 원로들은 그의 제청(提請)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불가(不可)!”
“아니 될 말이외다!”
원로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내원주 서강후도 동의의 뜻을 보탰다.
“그것은 결국 천하정도를 자처하는 본 맹이 사파인들까지 규합하자는 뜻이지 않소?”
제갈찬휘가 모호한 표정으로 의구심을 드러냈다.
“황실의 지원마저 받아들이자는 분들께서 강남인들의 입맹에는 왜 그리 인색하십니까. 또한 모든 강남인들이 사마외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허……!”
장내가 그렇게 소란스럽게 변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호위 하나가 파리한 안색으로 회의장 내부로 들어왔다.
너울거리는 촛불에 의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의 얼굴에서 끝 모를 긴장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지, 진천수호대주께서 입장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구룡대회의의 권위란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그가 맹 서열 백위 내의 대주급 인사라 하나 구룡대회의의 입회 자격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도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어찌 입회를 요청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원로들의 의문을 읽었는지 호위가 재차 입을 열었다.
“회의에 참가하기 위한 입회 요청이 아니라 단순히 총군사님에 대한 접견 요청입니다.”
“본 군사를?”
구룡대회의의 엄중함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저 원칙의 화신인 악 호위가 강제로 입장하여 진천수호대주의 요청을 보고해 왔다.
이는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
“설마 소검신이 끝내 맹도들을 살상(殺傷)한 것인가?”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소? 감히 본 맹성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만으로도 강호 공적이 될 일이거늘 하물며 맹도들을 참혹하게 도륙한다? 무서운 심계로 이름 높은 소검신이 그런 멍청한 짓을 벌일 리가 있겠소?”
“암, 그건 강북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지.”
의구심으로 가득해진 원로들처럼 제갈찬휘도 한껏 궁금해졌다.
“그를 들이라.”
“충!”
잠시 후.
악 호위가 진천수호대주를 대동한 채 나타나자 회의장 내부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정적으로 휩싸였다.
툭-
섭선을 떨어뜨리고 마는 총군사 제갈찬휘.
“대, 대체…….”
내원주 서강후 역시 평생을 통틀어도 단연코 오늘처럼 놀란 적이 없었다.
“자, 자네……! 자네의 몸이!”
진천수호대주 하륭이 뿜어 대는 광휘(光輝)로 인해 대낮처럼 밝아진 회의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내뿜는 광휘가 아니라 이건 마치 ‘대낮’이 그에게만 적용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천하에 이보다 더 괴이한 일이 있을까?
“지금 자네의 그 모습은 어찌된 영문인가?”
“어, 어서 말해 보시게!”
그렇게 진천수호대주 하륭이 소검신과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원로들이 더욱 딱딱하게 안색을 굳혔다.
“그럴 수가…….”
“어찌 인간이…….”
제갈찬휘의 얼굴에도 핏기가 싹 사라진다.
상상하기조차 싫었던 최악의 가정이 현실로 변했다.
삼신의 경지를 넘어서는 대적 불가(大敵不可), 불가해(不可解)의 고수.
그것은 자신이 소림에서 구해 온 달마진경처럼 모든 판도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위험한 변수였다.
결국 모든 일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다.
뿌드득-
제갈찬휘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상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를 이룬 고수.
또 한 번 ‘그들’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가 총군사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본 군사를 청하는 이유는 듣지 못했소?”
“모릅니다. 다만 그의 요청을 전할 뿐입니다.”
맹성의 입구를 수호하는 대주가 감히 싸워 보지도 않고 적의 전령을 자처하다니!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제갈찬휘가 거칠게 입을 열었다.
“진천수호대주를 당장 뇌옥에 가둬라!”
제갈찬휘가 끝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위를 드러내며 거친 노성을 발하자 악 호위를 비롯한 모든 호위들이 일제히 하륭을 에워쌌다.
허나 하륭은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 * *
수만에 이르는 새까만 군중의 중심에서, 오직 자신의 주위로만 태양광을 드리운 채 오연히 서 있는 소검신.
그런 그의 모습이란 가히 장엄할 지경이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심정이었다.
제갈찬휘를 비롯한 모든 원로들이 그런 소검신을 향해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오호, 총군사님은 역시 여전하시네.”
싱긋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조휘를 바라보며 제갈찬휘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밝게 빛나는 소검신 쪽과는 달리 이쪽은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수많은 맹도들 사이에서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며 손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분명 그것은 고작 안법(眼琺)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휘에 전면에 다가간 제갈찬휘가 무거운 음성을 토해 냈다.
“날 부른 연유가 무엇이오.”
“급하시네.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용무부터 말하자고요? 뭐 그편이 나도 편하기도 하고.”
조가대상회의 개파대전에서 봤던 소검신도 대단했지만 지금은 아예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마치 전혀 다른 종류의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짧은 세월 안에 또다시 경지를 개척하다니 진정 그대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무인인 것 같소. 대공을 경하드리오.”
조휘가 피식 웃었다.
“총군사님이 가지고 있는 법보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죠.”
제갈찬휘가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법보라니,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거 또 시치미 떼신다. 나를 그리 겪고도 아직도 파악을 못 하고 있으시네.”
조휘가 주변을 돌아보다 다시 투명한 시선으로 제갈찬휘를 응시했다.
“총군사님께서 파악한 이 소검신이, 아무런 자기 확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인사입니까.”
소검신.
큰일을 벌이는 데는 지나칠 정도로 과감하다.
허나 그 목적을 완연하게 드러내기 이전에는, 그는 천하의 그 어떤 종주보다 은밀했다.
그런 그가 수만의 맹도를 모아 놓고 어쩌면 자신의 최대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진실된 신위를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는 반드시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럴 인사는 아니지. 그러니 이제 그만 목적을 드러내시오.”
“이미 말했잖아요?”
“무슨……?”
조휘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달마진경을 무한히 찍어 내는 그 미친 법보를 빨리 내 앞에 대령하라고. 무림맹 총군사님아.”
내원주 서강후는 총군사의 안색을 살핀 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가 저리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소검신이 말한 법보라는 물건은 대체 뭐란 말인가?
동요를 보일 것도 하건만 의외로 제갈찬휘의 신색은 고요하고 침잠했다.
“정말 놀랍군.”
제갈찬휘가 담담한 얼굴로 칠흑 같은 외원의 전경을 훑어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놀라운 수완과 심계도 입신지경에 이른 무위도 놀랍지 않았다. 무림의 상궤(常軌)를 벗어난 영웅은 언제고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조휘의 반문에 제갈찬휘의 눈빛이 짙은 두려움으로 물들어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두렵군. 법보의 존재는 천하의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본 군사는 맹의 어떤 수뇌들에게도 그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랬겠지.”
제갈찬휘의 어투가 갑자기 다시 공대(恭待)로 바뀐다.
“허면 그대는 ‘그들’과 동류(同流)라는 뜻이오?”
“그들?”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니오. 천하를, 아니 사람의 문명 전체를 암중으로 조종하는 모든 신화적인 존재들의 우두머리. 당신도 그를 추종하는 것이외까?”
조휘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그렇게까지 그놈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 설마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는 거요?”
“역시 당신은 알고 있단 말이오?”
갑자기 조휘가 웃음기 싹 가신 냉랭한 얼굴로 변해 갔다.
“명색이 무림맹의 총군사이자 천하제일의 지낭(智囊)이라는 작자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을 앞에 두고도 그 정체도 모르고 있다니…… 세상이 망할 징조로군.”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닥쳐.”
조휘의 기색이 일변했다.
그것은 마치 표정으로 모든 분노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평생을 이인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제갈세가의 비원(悲願)이든, 천하에 우뚝 서고자 하는 공명심의 발로이든, 결국 당신의 그 우매한 사심이 사람 세상의 멸망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은 그 달마진경의 진정한 용도를 알고 있긴 한 것인가?”
그런 무시무시한 조휘의 기세에 제갈찬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봉황십금(鳳凰十禁)의 기수식을 취했다.
단지 상대의 눈빛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무, 무공 비급에 무슨 다른 용도가 있단 말이오.”
“하, 무공 비급?”
조휘가 여전히 살기를 풀지 않으며 예의 무시무시한 눈을 빛냈다.
“달마는 신좌다.”
“……신좌(神座)?”
제갈찬휘로서는 당최 처음 듣는 별호였다.
강호의 역사 이래 신(神)의 휘호를 일신에 새긴 무인은 삼신과 소검신이 유일하지 않은가?
“도, 도대체 그가 누구란 말이오?”
조휘는 일순 헛웃음이 나왔다.
과연 눈앞의 이자가 천하제일의 지낭이 맞긴 한 건가.
“달마가 신좌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당신이 받은 그 법보의 정체도 몰라? ‘달마’진경이라고.”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제갈찬휘.
보리달마는 이 너른 중원 땅에 선종(禪宗)이라는 신성한 종교를 뿌리내린 불가의 위대한 신성이다.
그런 위대하며 고결한 존재가 천하 문명 전체를 암중으로 조종해 온 존재라고?
몰라서 조휘에게 되물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되물음 속에는 그런 불신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제갈찬휘의 반응에 조휘가 다시 예의 무덤덤한 음성을 이어 나갔다.
“달마는…….”
이후 장장 한 시진 이상 이어진 조휘의 일장연설.
그 이야기는 조휘가 아는 달마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취합한 모든 정보들을, 이곳에 모인 맹도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의념을 운용해 외원 전체에 자신의 음성을 드리운 것이다.
달마는 스스로 만든 달마옥을 세상에 던져 놓았고 그렇게 흡수한 인간의 영력을 법력으로 치환하여 환생을 거듭했다.
환생을 거듭하며 그가 행한 일은 선종의 발원(發源).
달마를 추앙했던 최초의 세 제자들은 그런 달마의 음모를 인지하기 시작하고서 각자 영옥을 만들어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모든 인과를 완성하고 스스로 신좌(神座)에 오른 달마는, 새롭게 받아들인 여섯 제자, 즉 실험체들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 비원인 ‘창조자’라는 우주적인 경지에 다다르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중원의 역사 이래 최대의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휘가 모든 맹도들에게 알려 버리자 남궁장호와 사마중이 석상처럼 굳어져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허…….”
“대체 어쩌려고……?”
조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여기 모인 맹도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달마 놈이 펼칠 절멸(絶滅)의 당사자다.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지.”
“그래도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것이 틀림없거늘…….”
조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반문했다.
“싯팔, 다 같이 뒈지는 마당에 혼란? 그게 무슨 문제가 돼?”
이 소검신이라는 놈의 행동은 언제나 상식과 달리한다.
아무리 상황이 엄중하다고 해도 그런 중차대한 문제는 맹도들을 이끄는 지도부와 담판을 지어야 하는 일이었다.
굳이 모든 일을 맹도들에게 알려 앞으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휘는 소수가 정보를 선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역사를 초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현대인이었다.
왜 정보의 공유를 인류 공영(共榮)의 가치로 삼았는지, 언론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모두 역사로 배워 알고 있는 현대인 조휘.
현재 강호무림의 상황은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기 직전의 지구와 같다.
약탈과 방화, 혹은 자살과 같은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운석이 떨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대중에게 쉬쉬한다?
그럼 일반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자다 뒈지란 말인가?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는 각자도생의 기회, 혹은 생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같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것이 조휘가 믿는 인도(人道).
무엇보다도 지켜야 할 현대인의 지성(知性)이었다.
“하핫핫핫!”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맹도들의 동요를 참혹한 얼굴로 지켜보다 결국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제갈찬휘.
소검신(小劒神).
칠흑처럼 내리깔린 어둠 속에 홀로 고고히 빛나니, 그의 음성이란 가히 신의 음성에 다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서책에서 수많은 지략과 귀계를 배워 왔지만 그 어디에도 저 소검신과 같은 심계를 펼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무인이 자신의 신위와 명성을 저런 식으로 활용한단 말인가.
그가 말한 정보의 객관성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부터 달마진경이라는 위대한 무공서에 반드시 ‘절멸의 음모’라는 꼬리표가 쉬쉬하며 따라붙을 것이다.
왜?
삼라만상, 일월성신의 운행조차 자유롭게 통제하는 저 빌어먹을 소검신의 주장이니까.
영웅이라기보단 차라리 악마에 더 가까운 자.
그것이 제갈찬휘의 두 눈에 비친 소검신의 실체였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법보 내놔.”
“싫소.”
“뭐?”
제갈찬휘가 사방에 도열한 맹도들을 훑어보며 엄정하게 말했다.
“당신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그대가 천하를 구할 신성인지 그 신좌라는 자의 멸절을 도울 추종자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겠소.”
조휘가 피식 웃었다.
“당신, 그거 오기야.”
“아니오.”
“미친 새끼.”
조휘의 철검이 천천히 허공 위로 떠오른다.
“그저 손에 쥔 패를 놓치는 것이 아까운 전형적인 책사의 오기다. 내가 달마 놈의 추종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
“아니라고 판단할 어떤 근거도 없소.”
“하…….”
조휘의 철검이 천천히 미끄러지다 제갈찬휘의 미간 근처에서 멈춘다.
“내가 달마의 추종자라면 세상을 멸절할 계획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말하겠어? 이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있나?”
“부족하오. 한고조 유방은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 홍문지회(鴻門之會)의 그 모든 치욕을 감내하였소. 사람의 귀계라는 것이 어디 보통 무서운 것이외까.”
“와…….”
“더욱이 방금 전에도 말했듯, 본 군사에게 법보가 있다는 사실은 천하의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은 나만의 비밀이었소. 한데 당신은 알고 있었소. 이는 당신이 그들과 동류(同流)라는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요.”
“결국 그거 때문이었단 말이지.”
조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무림맹의 총군사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 무장을 해제시키려면 뭔가 다른 수가 필요했다.
물론 힘으로도 가능하겠으나 이 많은 맹도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간 모든 명분이 부질없이 날아간다.
조휘는 다시 진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계속 그렇게 달마진경을 찍어 낼 거야? 뻔히 내 말을 모두 듣고도?”
“모든 것이 그대의 주장일 뿐 사실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소. 추이를 지켜볼 것이오.”
“지금처럼 맹도들을 모으는 것을 유지하며 관망하시겠다?”
“그렇소.”
갑자기 조휘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다른 걸 묻지. 그 많은 돈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무, 무슨 소리요?”
예의 피식 웃는 조휘.
“누굴 바보로 아나. 백만(百萬)이 무슨 장난인가? 그 엄청난 숫자의 맹도들을 받아들이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대한 비용이 드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조휘가 시선으로 맹도들을 일일이 가리켰다.
“저들이 입고 있는 무복과 무장하고 있는 도검들만 해도 한 사람당 은자 수십 냥. 더욱이 그들이 먹는 음식, 묶는 숙소, 그들의 월봉까지…… 나 원 참 백만이라니 감히 상상도 안 되는군. 아무리 봐도 지금 무림맹의 여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다른 뒷배가 없이 이게 가능해?”
“본 맹은 천하 정도무림의 총본산 무림맹이오.”
“하, 무림맹이니 가능하다? 장난치지 마. 나 상인이야.”
조가대상회 휘화의 모든 상인들과 직원들을 다 합한다고 해도 아직 만 단위를 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거늘, 십만도 아니고 무려 백만이라니!
그런 엄청난 단위의 군사를 운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중원에 존재해 온 제국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성한 제국만이 가능했다.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도 힘에 부치는 일을 무림맹이 가능하다고?
한데, 총군사 제갈찬휘가 오히려 조휘를 향해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휘의 귓가에 들려온 것은 그의 육성이 아닌 전음성이었다.
(기울임)
법보(法寶)?
은자와 법보가 대체 무슨 상관?
잠시 멍해져 있다가 순간 뭔가에 생각이 미친 조휘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솟구치는 의문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조휘는 결국 총군사에게 법보를 건넨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이 황금이, 이리 나와 봐.”
순간.
화아아아악!
어둠 속에서 공간이 찢어진다.
이내 온몸에 강렬한 광채를 드리운 금천(金天)이 나타나 주인의 부름에 공손히 오체투지하고 있었다.
“하명하십시오. 위대한 주(主)이시여.”
조휘의 무심한 눈이 끝없는 의문을 발했다.
“설마 저자에게 건넨 그 법보라는 게 단순히 달마진경만 찍어 낼 수 있는 법보가 아니었던 거야?”
이어 금천에게서 들려온 놀라운 대답.
“생기(生氣)와 영기(靈氣)를 지닌 존재, 즉 동식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복제가 가능하옵니다.”
“뭐, 뭐라고?”
와 씨!
이런 무식한 개 사기템을 봤나!
그럼 지금까지 제갈찬휘는 무려 ‘돈 복사’를 무제한으로 해 왔다는 소리잖아?
“와 나! 아예 중원 경제를 씹창을 내라 씹창을!”
한편, 제갈찬휘는 절망적인 얼굴로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고, 공공대사(空空大師)께서 어째서…….”
무림 최고의 원로이자 무림맹을 수호하는 절대적인 존재 공공대사가 어찌 소검신의 수하가 되어 버렸단 말인가?
총군사 제갈찬휘가 그대로 굳어져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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