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83
82 章>
공공대사.
소림의 활불(活佛).
정파 최고의 원로이며 그의 권위와 영향력은 무림맹주에 필적한다.
더욱이 지금까지 벌인 모든 일들은 그의 구상 아래 행해진 것.
정파 최고의 원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자신이 무림맹의 총군사라고 해도 이번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존재인 공공대사가 저리도 소검신의 수하를 자처하며 몸을 낮추어 오체투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런 걸 누가 예상할 수나 있단 말인가!
전술과 책략의 범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말 그대로 제갈찬휘는 정신이 붕괴되는 듯한 충격이 도저히 가시지가 않았다.
“아,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그와 같은 충격이 같은 맹의 수뇌들이라고 다를 리가 있겠는가.
“대, 대사님! 지금 무슨 짓을 하고 계신 겁니까!”
“대사님께서 대체 왜 저 무도한 자에게 고개를 조아리시고 계시는지요!”
허나 공공대사, 아니 금천(金天)으로서는 자신의 가면 따위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잊어버렸을 따름이었다.
주(主)께서 좌에 오르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다.
인세 최고의 비밀을 공유해 준 위대한 존재를 주인으로 맞이한 이상, 그 외의 모든 가치는 더 이상 자신에게 무의미했다.
“미천하고 우매한 자들이여.”
이내 몸을 일으킨 그가 조휘의 광휘(光輝)를 벗어나 맹도들이 서 있는 어스름한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눈을 뜨고 있어도 위대한 신성을 알아보지 못하니 너희들은 우매하다. 보아라. 저분이 바로 그대들의 구원자시다.”
“구원자라니요?”
“저분이 바로 진정한 신중좌(神中座)이시다. 모든 것이 거짓된 자, 위신(僞神)에 불과한 그놈에게 내가 속았고 너희가 속았으며 천하가 속았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금천이 다시 조휘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무한한 경외심으로 몸을 낮춘다.
“그대들은 진정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저 오롯한 의지로 천지만물의 운행을 자유로이 하신다. 그 힘의 원천이란 역설적이게도 법칙과 인과를 무한히 부정하는 의지. 너희들은 반드시 크게 귀를 열어 들어야만 하느니, 저 위대한 존재께서 하늘에 새기신 성좌(星座)의 신명은 ‘존재(存在)를 부정하는 자’이시다.”
“조, 존재를 부정하는 자?”
웅성웅성.
우우우우우웅-
조휘의 주위로 발하고 있는 광휘가 한층 더 밝아졌다.
수만의 맹도들이 동시에 그의 신명(神名)을 인식하자 그의 존재감이 한층 뚜렷해진 것이다.
총군사 제갈찬휘가 힘없는 눈빛으로 금천을 향해 걸어왔다.
“허면 대사님, 달마진경은…….”
“위신(僞神)의 간교함에 놀아난 이가 어디 너와 나 둘뿐이겠느냐. 달마진경이 주는 사악한 마력에 의해 사람들은 본연의 존재력이 크게 약해질 것이다. 이는 그놈의 섭식(攝食)을 돕는 행위이니 어서 그 흉악한 물건을 주인님께 바치도록 하라.”
“…….”
소검신이 주장하고 나섰던 어처구니없는 음모론이 그렇게 공공대사의 입을 빌어 다시 한 번 공변되었다.
그러자 맹도들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다.
대관절 사람의 영혼을 먹어 치우는 존재라니!
그런 엄청난 재앙은 고대의 전설부터 전해지는 대요괴(大妖怪)들이 부렸던 술수가 아니던가?
“그런 천하에 사악한 대요괴가!”
무림의 역사가 태동한 이래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전설들은 수도 없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허나 인간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저주를 ‘실체’로 맞이한 적이 없었다.
“그놈은 요괴 따위가 아니다! 비록 간교한 위신에 불과하나 ‘위대한 석판’에 신명을 새긴 엄연한 성좌! 일을 가벼이 보지 말라!”
위신이니 성좌니 위대한 석판이니 하는 말들은 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연히 맹도들은 그런 금천의 말에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밝아진다.
작열하는 태양광이 다시금 무림맹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조휘는 천하에 드리웠던 자신의 의지를 거두고서 담담한 얼굴로 총군사 제갈찬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말귀는 다 알아들은 것 같은데.”
“…….”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황당함에 차마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 제갈찬휘.
예상되는 이런저런 소검신의 책략들을 치열하게 대비해 왔지만 이런 건 도무지…….
만약 소검신과 공공대사의 말이 진실이라면 유사 이래 벌어질 최악의 재앙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으킨 것이 된다.
중원 문명의 존속마저 위태롭게 만들 대악몽의 효시(嚆矢)를 무림맹의 이름으로 당겼다?
“법보 가져와.”
“아, 알겠소.”
순간, 조휘의 두 눈에 지극한 황당함이 물들었다.
“와 이건 예상 못 했네. 그걸 직접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총군사 제갈찬휘가 품에서 꺼내 보인 것은 손바닥 크기의 작은 원반.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고차원적인 기술이 집약된 초미래의 물건이라는 것을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조휘가 허공섭물의 수법을 일으키자 원반이 제갈찬휘의 손을 벗어나 천천히 날아왔다.
원반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조휘가 막강한 의념을 일으켜 그대로 압착(壓搾)하려고 들었다.
“이런 벨붕 사기템은 역시 고전 시대에 있어선 안 되겠지.”
그러나.
“뭐, 뭐야?”
가볍게 펼친 의지에 불과했으나 그 힘에는 산맥마저 으스러뜨릴 수 있는 막대한 거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잠시 진동하다 잦아들 뿐 마치 자신의 힘을 흡수라도 한 듯 원반의 외관에는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던 것.
도대체 경도(硬度)가 얼마나 엄청나기에 흠집조차 나지 않을 수가 있는 거지?
분명 최고의 경도를 지닌 다이아몬드조차도 가루처럼 바스러져야 정상인데!
오기가 치민 조휘가 의념을 유형화하여 자신의 철검에 칼날처럼 드리웠다.
이것은 자신으로서도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었으나 아마도 일반적인 강기(罡氣)에 비해 그 강도가 수십 아니 수백 배는 상회할 것이다.
가가가가각!
그렇게 상상할 수도 없는 날카로움이 가해지자 엄청난 불꽃이 튀며 원반이 진동했다.
“와! 이런 미친!”
그저 용암처럼 붉은빛만 잠시 감돌다 사라질 뿐 이번에도 멀쩡하다.
힘이 넓은 면적에 가해졌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지, 설마 강기처럼 의념을 날카롭게 유형화했음에도 생채기 하나 만들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무슨 신비의 우주 금속이라도 되는 건가?
금천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조휘를 바라보더니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신력이 깃들어 있사옵니다.”
“그놈의 신력(神力)?”
“그렇사옵니다. 주인님의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물건이란 존재할 수 없사옵니다. 신력이 아니고서야 설명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지만 조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저 금천은 자신과 달리 미래를 모른다.
자신이 살아온 현대 시대 때만 해도 나노공학을 활용한 다양한 탄소 합성 물질이 탄생되었다.
하물며 그보다 훨씬 미래 시대라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 물질보다 훨씬 뛰어난 인장 강도와 초고경도를 지닌 합성 물질들이 무수히 탄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상식 밖이다.
지금 자신의 힘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신의 힘이라 불린다.
그런 초월적인 힘이 이리도 뾰족하게 작열했음에도 흠집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무슨 기술이 적용되었기에 신력조차 닿지 않는다는 말인가.
미래 세계의 나노 기술에 대한 경외감마저 생길 정도.
“그럼 일단 압수.”
그렇게 원반 법보를 품에 갈무리한 조휘가 다시 제갈찬휘를 힐끔 바라보았다.
“칩…… 아니 달마진경은 얼마나 만들어 놨지? 아직 재고가 남아 있을 거 아니냐고.”
제갈찬휘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대략 만 개 정도가 아직 남아 있소.”
“어휴, 많이도 찍어 놨네.”
이마에 칩이 박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맹도들을, 조휘가 또렷한 눈으로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알아들었으면 그 마물들을 모두 이마에서 떼어 내라고요. 당신들 말대로 대요괴에게 산 채로 영혼을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아,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던 조휘가 문득 사방을 훑어보다 피식 웃었다.
“쫄보 새끼.”
분명 맹의 수뇌들이나 맹도들 사이에 놈의 화신(化身)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거늘.
자신이 일을 이렇게까지 망쳐 놨음에도 신좌는 끝내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하나만으로도 조휘는 무섭도록 치밀하고 은밀한 그의 성향을 읽을 수 있었다.
놈으로서도 오늘의 일은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어 금천에게로 조휘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총군사를 추궁해 남은 달마진경을 전량 회수하여 복귀하도록.”
“존명!”
* * *
무림맹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으로 인해 강북 전체가 흉흉한 소문으로 혼란에 빠질 무렵.
자신의 집무실에 돌아온 조휘는 벽면에 펼쳐진 너른 중원 전도에서 무림맹의 표식이 있는 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달마진경은 수천 년 동안 철저하게 계획된 음모의 종착역.
그러므로 자신이 무림맹에서 했던 모든 일들은 신좌의 계획을 완벽한 백지로 만들어 버릴 만큼 엄청난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조휘를 못내 불안하게 만들었다.
품에서 원반을 꺼내 무심한 표정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조휘.
‘분명 이걸 회수하려 들면 놈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는데.’
분명 금천도 신좌로부터 전해 받은 법보는 이것 하나뿐이라고 했다.
모든 사물을 복제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물건은 결코 흔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지? 왜 방관하고 있는 거지?’
강림(降臨).
모든 인간을 섭식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준비해 온 신좌의 마지막 대계.
그런 엄청난 대계를 완성시켜 줄 물건이 이렇게 쉽게 자신의 손에서 노리개가 되어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입장을 바꿔 만약 자신이었더라면 아무리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나서고 봤을 것이다.
인기척도 없이 집무실에 들어온 제갈운이 생각이 복잡한 조휘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너 그런 표정일 때 꼭 사고를 치던데.”
“흰소리 그만하고. 남궁 형은?”
제갈운이 피식 거렸다.
“사마 공자와 함께 대취해서 뻗었어.”
마주 씁쓸하게 웃는 조휘.
사마(司馬)와 남궁(南宮)의 이름이 무림맹에서 먹힐 거라고 둘 다 큰소리를 크게 쳤었다.
한데 소검신의 신위가 모든 일을 해결했을 뿐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휘의 뒤에 서 있는 병풍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히 쓰디 쓴 술이 생각날 수밖에.
제갈운이 의자를 가져와 탁자에 당겨 앉더니 조휘의 손에서 놀아나는 원반을 향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게 법보?”
“그래.”
조가대상회의 어엿한 군사가 되었으니 제갈운도 모든 전후 사정을 들은 상태였다.
그로서도 모든 사물을 복제할 수 있다는 저 무한의 법보란 가히 신비의 대상 그 자체.
“맹이 그 법보로 대륙전장의 전표를 찍어 왔다는 게 사실이야?”
“그게 총군사의 실토다.”
“…….”
황실이 이번 일을 먼저 알아 버렸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화폐를 무단으로 찍어 내는 행위란 황법이 정한 최고형의 대상이었다.
제갈세가가 구족멸문(九族滅門)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제갈운은 마음이 끝도 없이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미쳤군. 정말 다들 미쳤어…….”
도대체 그 똑똑하다는 신기제갈가가, 그 명망 깊은 가문의 어른들이, 왜 그런 짓을 벌인 것인지 제갈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한히 화폐를 찍어 내다 보면 결국 가치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상식이었다.
게다가 대륙전장이 보유하고 있는 은자가 무한한 것도 아니었다.
전표를 무한히 매입하다 보면 결국 그들이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끼고 황실에 보고했을 것이다.
자연히 수개월 내에 그 무시무시한 동창의 추적이 완료될 것이고, 무림맹은 역도(逆徒)의 무리로 규정당해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제갈운을 향해 조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뻔하잖아? 절멸(絶滅)의 때가 그보다 빠르단 거지. 그나저나 이건 대체 어떻게 쓰는 거지?”
그렇게 제갈운이 처연한 얼굴로 말없이 굳어 있을 때.
삐빅-
-소유자의 염동(念動) 파동 확인.
갑자기 유려한 미색의 기계음이 들려온다.
-확인 완료. 고유 염동의 보유자는 개발자로 확인됩니다. 개발자 모드로 진입하겠습니까?
아, 아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염동 파동?
게다가 뭐 개발자 모드?
이건 뭐 황당하다 못해 사고마저 정지되는 기분.
‘염동 파동이란 게 도대체 뭐지?’
-인간의 스피리츄얼 파워는 모두 고유의 파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영혼(靈魂)이 지닌 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휘는 그야말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요상한 원반이 자신의 생각을 읽는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읽었다고?’
-염동의 파동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뜻과 동일합니다.
조휘가 침중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내 염동 파동이라는 것이 널 만든 개발자의 염동 파동과 일치한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현 사용자님께서 본 프로그램의 개발자가 아닐 확률은 계산상 한없는 무한소(infinitesimal)에 가깝습니다.
확률이 한없이 무한소에 가깝다는 말은 달리 말해 제로(0)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다는 뜻.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자신은 이런 걸 만든 적이 없었다.
아니, 이렇게 보고 만져 보는 것조차 처음이거늘 어떻게 자신이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개발자 모드로 진입하겠습니까?
전에 보았던 달마진경, 아니 뉴럴링크 칩도 방화벽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의식이 닫히는 막대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덜컥 개발자 모드라는 괴이한 프로그램 내부로 진입할 수는 없었다.
“일단 개발자 모드는 거절한다. 사물을 복사할 수 있는 네 능력만 사용할 수 없나?”
-나노 클로닝(nano cloning)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물질계에 존재하는 원소 기반의 모든 물질들은 클로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양한 동위 원소를 필요로 하는 물질은 클로닝 과정에 복잡성이 부여되므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클로닝할 원본을 스캔하시겠습니까?
원소 기반의 모든 물질들을 복제할 수 있다는 대답에 조휘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실상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들을 복제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
이 말인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보물인 만년빙정(萬年氷精)조차도 무한으로 찍어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조휘가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조가철검(曹家鐵劒)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복제하겠다.”
-스캔을 시작합니다.
이윽고 원반에서 마치 레이저와 같은 수십 갈래의 광선이 흘러나와 철검을 스캔하기 시작한다.
-스캔 완료. 클로닝에 필요한 재료의 자체 수급 불가 판단. 재료의 공급을 요청합니다. 요청 재료는 다량의 철 원소(Fe)가 포함된 광물입니다.
“자체 수급도 가능하다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처럼 비교적 간단한 클로닝은 대기 중에 떠도는 원소로도 가능합니다만, 저 물체는 특정 원소의 함유량이 과다하여 재료가 필요합니다.
이쯤 하면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이 원반의 능력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됐어. 하지 않겠다.”
-활성화를 종료합니다.
내내 은은한 빛이 일렁이고 있던 원반은 그렇게 발광을 멈추었다.
하지만 조휘는 여전히 그런 원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물질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복제할 수 있는 나노 클로징이 무려 ‘기본적인 기능’이란다.
허면 또 다른 엄청난 기능들이 숨겨져 있다는 뜻.
개발자 모드에 진입하면 어떤 다른 기능들이 드러날지 조휘는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제갈운이 때 아닌 의문을 드러냈다.
“왜 뭔가를 하다가 만 거야? 혼자 구시렁구시렁거리다가 그렇게 끝내 버리면 난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잖아.”
“이 원반이 물건을 복제할 수 있는 건 확실해. 굳이 번거롭게 확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실이라고?”
당장 제갈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공청석유(空靑石油)나 야명주(夜明珠)와 같은 무가지보의 보물들.
단 한 방울이라도 섭취할 수 있다면 엄청난 내공의 증진이 가능한 천고의 영약들이나 웬만한 성(城)의 가치와 맞먹는다는 야명주 따위를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니!
제갈운은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오직 절대적인 신(神)만이 할 수 있다는 창조(創造)가 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원반은 단순히 보물이라 칭하기조차도 무색했다.
과연 이런 물건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것인가?
저 작은 원반의 가치란 가히 제국 전체, 아니 중원 문명 전체의 가치조차 능가할지도 모른다.
저 엄청난 보물 앞에서 감히 누가 부(富)와 희귀성을 과시할 수 있단 말인가!
“넌 정말 엄청난 걸 얻었군.”
중원 문명 전체가 경악할 저런 보물을, 그 엄청난 인의 장막 뒤에 숨어 있는 적의 수뇌에게서 빼앗아 오다니.
분명 소검신은 자신의 친우이거늘 왠지 점점 멀어져만 가는 기분이 드는 제갈운이었다.
“이 물건은 규격외다. 쓰여서는 안 되는 물건이지. 파괴할 수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수밖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조휘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품 안에 원반을 도로 넣는다.
“바로 내 품 안이지.”
“미친놈.”
갑작스런 친우의 오만함에 입으로는 미친놈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지만 사실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제갈운은 조휘의 진정한 신위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의 품 안보다 더 안전한 곳이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는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인, 아니 어쩌면 고금 제일의 무인일지도 몰랐다.
“다음 계획은?”
제갈운의 의문에 조휘의 얼굴이 금방 침중해졌다.
“없어. 도무지 모르겠네.”
“계획이 없다고?”
조휘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토끼 굴에 불을 지피면 당연히 토끼가 정신없이 튀어나와야 정상인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참 이상한 노릇이지. 이런 엄청난 보물을 빼앗겼다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서 뛰쳐나와야 정상인데 말이야.”
제갈운은 신좌라는 엄청난 존재를 고작 토끼에 비유하는 조휘의 담대함에 질려 버릴 것만 같으면서도 책사답게 곧바로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넋 놓고 상대의 반응만 기다릴 수는 없잖아. 일단 무림맹의 동요가 심각하니 그쪽의 동태를 살피는 건 야접에게 맡겨 놓고 우린 우리대로 대책을 세워야지.”
“대책?”
“네가 신좌라면? 달마진경을 통해 섭식할 인간이 줄어들었다면? 그다음에는 뭘 하겠어?”
“음…….”
제갈운의 봉황금선이 거칠게 펄럭였다. 마음이 급해지면 나오는 그 특유의 버릇이었다.
“그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이유야 뻔해. 이미 자신의 화신(化身)이 너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걸 통천존신을 통해 확인했잖아?”
“화신 따위의 능력으로는 날 막을 수 없으니 굳이 화신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너 같으면 굳이 자신의 화신을 드러내 소모시키겠어? 그 화신이라는 것도 오랜 세월 공을 들여야 한다며?”
“막대한 인과가 필요하지.”
제갈운의 두 눈에 더없이 진득한 빛이 발했다.
“화신으로는 결코 널 도모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신좌가 그다음에는 뭘 할 것 같아?”
조휘의 등줄기에 소름이 좌르르 돋아난다.
“설마……!”
“그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강림(降臨)하려 들겠지. 곧 그의 본체가 이 중원에 현신하게 될 거야. 그의 계획이 앞당겨지는 거지.”
제갈운이 봉황금선을 접으며 침울한 신색으로 굳어졌다.
“조가대상회나 무림맹. 그런 인간적인 전략 놀음은 이제 모두 끝났어. 뭐 애초에 인간들의 싸움은 아니었잖아?”
“음…….”
조휘의 충격은 제법 심했다.
신좌가 중원에 뿌린 달마진경을 회수하는 것.
조휘는 그런 자신의 행위가 중원의 절멸을 막기 위한 것이라 여겨 왔다.
한데 역설적이게도 신좌의 강림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제갈운의 말을 모두 듣고 보니 사전에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모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원래 일이란 것이 그래. 벌어지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오류투성이고 한심해 보이지. 그런 식으로 결과만 따질 거면 원래부터 최선의 책략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제갈운의 이 말이 과연 조휘에게 위로가 될까.
자신의 손에 중원 문명의 존속이 달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중압감은 한낱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 그 법보를 빼앗아 온 것, 그리고 달마진경을 모두 폐기시킨 것이 그에게 어떤 타격을 가하게 되었는지 사실 우린 예상만 해 볼 뿐 정확하게는 모르잖아? 상상외로 엄청난 타격일 수도 있어. 너무 자책하지 마.”
조휘가 여전히 침중한 표정을 풀지 못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신좌의 강림이 앞당겨진다면 우린 무슨 대비를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비? 그런 게 있을 리가.”
눈살을 찌푸리는 조휘.
“무슨 소리냐 그건 또.”
피식 웃던 제갈운이 봉황금선으로 조휘를 가리켰다.
“책사로서의 내 판단은 소검신의 능력을 최대한 개화시키는 것. 나머진 모두 보조적인 것들이라 무의미해.”
아니 세상이 절멸하는 마당에 모든 것을 한 사람의 역량에만 기댄다니!
“이보세요. 소검신님. 당신은 가벼운 의지 하나만으로 성(省) 단위의 거대한 땅을 일거에 지워 버릴 수도 있는 엄청난 무인이에요. 본인이 수만의 무림맹도들을 단신으로 제압하고서 유유히 보물을 들고 빠져나와 놓고는 왜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실까.”
“…….”
“신들의 전쟁은 신들끼리 알아서 하라고요. ‘존재를 부정하는 자’님.”
제갈운이 내린 그런 판단을 조휘는 감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막연히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 사실 좌들의 힘 앞에서는 화경이든 절대경이든 ‘인간의 힘’은 모두 무의미했다.
그 존재력 차이란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까마득했다.
더욱이 극의념계를 초월하며 얻은 자신의 힘조차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군림해 온 진정한 성좌들에게 통할지도 사실은 미지수였다.
그러나.
“내 싸움만으로 몰지 마라.”
조휘의 표정이 극도로 침잠한다.
“좌들의 일수에 태산이 뒤집어지고 대호(大湖)가 사라지는데 한낱 필멸자에 불과한 인간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조휘의 질리도록 서늘한 눈빛.
“억(億)에 달하는 모든 중원인들이 한 삽씩만 퍼도 산야가 지워지고 포양호를 메울 수 있다.”
그것은 조휘가 평소 생각하던 ‘인간’에 대한 확신.
“모두의 열정으로 함께 대적해야 한다. 그전에 이 싸움은 결코 쉬이 끝나지 않아.”
이것 역시 왠지 모를 조휘의 예감.
짧은 생을 누릴 수밖에 없기에, 그런 ‘사람의 열심’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굳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절로 깨닫게 된 자신만의 철학이었다.
조휘가 꽉 쥔 주먹을 제갈운에게 내민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죽을힘을 다해 맞서야 한다. 이건 내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고.”
* * *
‘좌의 이름’까지 얻은 마당에 자신의 성취를 점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제갈운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소검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개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그의 판단을 자신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휘는 한적한 전각을 연공실로 급조하여 폐관에 들었다.
가부좌를 튼 채 스스로를 관조하기며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 벌써 두 달째.
심상 수련이야 이미 공허의 주계에서 질리도록 해 온 수련이지만 기이하게도 현실에서의 수련은 또 느낌이 달랐다.
이곳에서는 깨달은 심상(心想)을 제대로 현실에서 구현해 낼 수가 없었다.
기묘한 수가 떠올라 초수로 펼치려 해 봐도 그 오묘한 느낌을 제대로 의념과 몸으로 펼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조휘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해답은 공허의 주계.
그 공간은 다름 아닌 일정한 격(格)을 이룬 자가 존재력을 수련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어떤 이치가 숨어 있는지 몰라도 조금의 의념만 일으켜도 그 위력이 수십 배로 증폭되었으며 무엇보다 떠올린 심상을 구체화하는 것에 어떤 막힘도 없었다.
집중하면 사고가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던 공허의 주계와는 달리, 이곳 현실에서는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오히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모든 것이 모호하고 의뭉스러웠다.
궁극에 이른 수법을 발견했다며 기뻐하다가 삼재검법의 횡소천군보다도 어리석게 느껴진다.
답을 찾았다 싶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게 되는 허망한 느낌.
결국 조휘는 이제 이런 심상 수련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그렇게 폐관을 접기로 마음먹고 연공실을 박차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남궁장호가 달려왔다.
“뭐야? 나만 기다린 사람처럼?”
“네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과연 남궁장호를 살펴보자 오랫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기다린 사람처럼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아니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인기척을 내면 될 것이지 그걸 또 무식하게 기다린 거야?”
“무인에게 연공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이다. 네가 깨달음을 얻어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함부로 방해할 수 있겠느냐.”
“어휴, 무식해.”
조휘가 오랜만에 맞이하는 햇살을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다 자신의 옷을 툭툭 털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말해 봐.”
“일단 당가(唐家)의 가주께서 찾아오셨다. 당가타의 쟁쟁한 원로들을 모두 대동하고서. 이미 한 달 전부터 너를 기다리고 계시지.”
“당가주가? 왜?”
사천당가는 특유의 폐쇄적인 가풍으로 인해 웬만한 일로는 결코 당가타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물며 원로원 전체를 함께 대동하고서 나타났다?
사천당가의 가주가 특별한 일도 없이 출도를 결심했다는 것부터가 기이한 일이었다.
“허…….”
조휘가 저런 순진한 얼굴로 ‘왜?’라고 되물어 오니 남궁장호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본인이 무림맹에서 벌였던 일이 얼마나 엄청난 짓인지 모르고 있단 말인가?
강호에 무서운 심계로 이름 높은 소검신이 스스로 벌인 일로 초래될 여파를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로 우스운 일.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사마세가와 하북팽가 또한 마찬가지며 아버지도 와 계신다. 오대세가 전체가 조가대상회와의 회합을 원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왜? 무슨 일인데?”
“모두 네놈이 수만의 맹도들을 앞에 두고 세상의 절멸을 운운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 아니더냐! 그 공표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무려 팔무좌인 소검신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확인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더냐!”
“아, 난 또 뭐라고.”
그렇게 조휘를 거칠게 쏘아붙이던 남궁장호가 귀를 후벼 파다 휘휘 부는 조휘의 태도에 결국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후…… 그들이 다인 줄 아느냐. 방장께서도 널 찾아오셨다.”
“방장(方丈)?”
드넓은 천하를 통틀어 방장이라 불리는 이는 단 한 명.
“공천대사(空天大師)가 왔다고?”
팔무좌급의 명성을 자랑하는 천하의 기인인 그가 어째서?
더욱이 소림은 무림맹의 주축 격인 문파가 아닌가?
“소림의 가장 큰 어른인 공공대사께서 조가대상회의 휘하를 자처한 것으로도 모자라 네놈 앞에서 종복처럼 굽실거리는 모습을 전 무림맹도가 다 보았다! 소림에게는 그 금천(金天)이 아직도 공공대사이지 않느냐!”
“음…….”
“그게 어디 보통일이냐? 당연히 방장께서는 그 일이 어찌된 영문인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오래도록 천하제일의 명성을 구가했던 소림의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 소검신의 종복을 자처했다.
그들로서는 얼마나 날벼락 같은 일이겠는가. 그들에게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몇 달 동안 그런 정파의 대원로들을 대접하기 위해 진땀을 뺐을 동료들을 생각하니 조휘는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다들 고생들이 많았겠네.”
“…….”
저 얄미운 얼굴.
제발 한 대만 때리고 싶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런 남중장호에게로 다시 예의 퉁명한 조휘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오대세가와 소림이 왔다 그 말이지? 차라리 잘됐네. 어디야? 같이 가 보자고.”
* * *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소림의 방장.
그들은 각자의 지방에서 혁혁한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절대적인 강자들이며 그야말로 무림의 대명숙들이었다.
조휘는 그런 엄청난 인사들을 모아 놓고 태연자약하게 절멸의 때와 신좌의 정체를 낭창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니…….”
창천검협 남궁수는 뭐라고 운을 떼려다 어안이 막혀 다시 입을 꾹 닫고 말았다.
자신의 아들에게 대충 듣긴 했지만 저렇게 소검신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나니 도저히 어지러운 마음을 살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반대로 기다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연신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공천대사였다.
“아미타불! 그대는 감히 본 소림을 능멸하려 드는 것이오!”
언제나 인자한 미소와 엄정한 기도를 자랑하던 공천대사가 저리도 분노로 몸을 떨고 있는 까닭은 바로 조휘가 소림의 역사와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조휘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으로 담담히 공천대사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보리달마가 그토록 사악한 존재였다는 것이 소림의 승려들께는 큰 충격이겠죠?”
순간, 공천대사에게서 막대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갈(喝)-!”
꾸르르릉!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림의 사자후가 현신하자 함께 회의에 참여하고 있던 오대세가 가주들조차도 황급히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무려 소림방장의 용력이 담긴 사자후(獅子吼).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회의장 전체가 태풍이라도 만난 듯 거센 충격파에 휘감기고 있었다.
피식-
히죽거리던 조휘가 가볍게 의념을 일으키자 사자후가 떨치던 기파가 급격히 한 점으로 응축되더니 그 위력이 모두 상쇄되어 버렸다.
이를 한껏 당황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공천대사.
“거 목청 한번 시원하네. 평소에 좋은 걸 많이도 드셨나 보네요.”
소검신의 엄청난 신위를 목도했음에도 공천대사는 결코 노기를 풀지 않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대는 본 소림의 천 년 역사를 능멸했소! 소림은 이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오!”
“어쩔 건데요?”
“소림의 저력을 계속 그렇게 무시했다가는 그대는 결단코 후회하게 될 것이외다!”
조휘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어휴, 무시는 무슨. 소림이 제일 무섭죠. 달마 한 놈 때문에 이렇게 모두 피똥 싸고 있는데.”
공천대사는 그런 조휘의 행동이 모두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보니 이 소검신이라는 자는 예의범절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천하의 무도한 놈이지 않은가!
세력의 종주는커녕 일개 문파의 문주 자리조차도 벅찬 인사였다.
감히 이런 자가 천하 검종(劒宗)의 우두머리라니!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창천검협 남궁수가 서둘러 중재하고 나섰다.
“일단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 봄이 어떻소? 조 봉공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기실 소림의 대사(大事)란 것도 따질 수 없는 계제가 아니오?”
공천대사가 남궁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가주께서는 남궁의 역사가 짓밟히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소이까?”
“우리 사람들 모두가 절멸(絶滅)한다고 하오. 이 마당에 남궁이니 소림이니 무슨 의미가 있겠소이까.”
“아미타불……!”
독룡제 당무호의 매서운 눈초리가 조휘를 향한다.
“달마…… 아니 그 신좌란 자의 경지가 어느 정도나 되오?”
조휘가 잠시 생각해 보다 가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죠. 단 이 소검신보다는 훨씬 상위일 겁니다.”
이제 막 좌(座)에 이름을 새긴 자신과는 달리 신좌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존재력을 갈고닦아 왔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보다 하위의 존재일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했다.
“허면 그대가 이룬 경지를 진실되게 말해 줄 수 있겠소?”
이번에도 역시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조휘는 부정의 뜻을 내비쳤다.
“저도 다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도저히 무학의 경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네요.”
기이하게 비틀리는 창천검협의 고개.
“강호 무학의 경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네.”
그 말은 엄청난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강호의 일반적인 무학의 경지라면 그 끝은 자연경(自然境)이었다.
바로 그 전설적인 삼신(三神)이 이룩했던 고금 무적의 경지.
한데 저 소검신은 그런 자연경으로도 자신의 무학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천명하고 있었다.
“설마 조 봉공의 말은 자연경조차도 초월했다는 뜻이오? 아니 그보다 상위의 경지가 존재할 수 있소이까?”
천지만물 자연과 교감하는 경지, 즉 천지교태(天地交泰)의 자연경은 그야말로 신(神)의 경지라 불린다.
“아뇨. 저는 자연경에 단 한 번도 이른 적이 없습니다. 제 경지는 그런 일반적인 강호의 경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죠.”
“어떻게 다르단 말이오?”
“의념을 무한히 수련하다 보면 더 이상 의념의 총량이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저는 그걸 극의념계라 부릅니다.”
“극의념계(極意念界)?”
특별히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었지만 금천(金天)을 제자(?)로 받아들이고부터나서야 자신의 무론은 체계화되었다.
조휘가 그런 자신의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로서는 의념을 내공처럼 총량 따위로 규정한다는 것이란 도무지 금시초문이었다.
그들에게 의념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었기 때문.
“의념이 무슨 내공이오? 허면 의념도 일 갑자, 이 갑자 따위로 양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오?”
“충분히 가능하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허어…….”
중원 무림의 장구한 역사에 기라성 같은 무인이야 모래알처럼 많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도 의념의 극한을 경험한 이는 없었다.
그들에게 의념이란 무한(無限)에 가까운 개념이나 마찬가지.
그 끝을 본 자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이어진 조휘의 말이 더욱 황당했다.
“극의념계를 초월하면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감각(超感覺)이 개화(開花)됩니다. 여기부터 전 제 경지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말로는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극의념계조차도 불가해의 영역인데 그런 경지를 더 초월한 뭔가가 존재한다?
독룡제 당무호가 다시 의문을 드러냈다.
“허면 그런 소검신의 경지를 자연경과 비교한다면 어떻소?”
조휘가 씨익 웃었다.
“극의념계 선에서 이미 자연경은 능가했죠.”
“뭐, 뭣이? 어찌 그걸 그리도 단호히 장담할 수 있소이까?”
“전 삼신(三神)을 모두 겪어 본 유일한 무인입니다.”
“…….”
모든 것이 더없이 황당하다.
전설의 삼신을 모두 직접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허나 이들 중에서 창천검협 남궁수만큼은 그런 조휘의 주장을 모두 믿고 있었다.
“이보게 조 봉공. 허면 지금 그대의 경지로 최대한으로 가능한 것을 말해 보게.”
“음…….”
조휘가 눈을 감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읊조리듯 말했다.
“병력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무한(無限)으로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무언가를 파괴하는 목적이라면…….”
모두가 긴장으로 목이 타고 있을 때.
“호남, 강서, 절강, 복건, 광동…… 정도의 영역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겠네요.”
소검신(小劒神).
그가 단 일수(一手)를 펼쳐 파괴를 장담한 영역은 장강 이남의 절반이었다.
“…….”
“…….”
모두가 멍한 눈빛으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강호 역사상 가장 엄청난 신위를 보인 무인은 바로 그 유명한 무신(武神).
새외대전의 마지막 대혈투 당시, 북해빙궁의 칠천 고수와 남만야수궁의 일만 육천 병력을 단신으로 맞이한 무신은 그 유명한 무해파천황(無解破天荒)을 펼쳐 협곡 전체를 무너뜨리는 신위를 과시했다.
그렇게 지축이 뒤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협곡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북해빙궁과 남만야수궁의 병력들은 손쓸 틈도 없이 대부분 암석 더미에 의해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장면이 바로 강호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전설적인 무위의 한계 지점.
한데 지금 소검신은 그런 협곡 따위가 아니라 한 지방, 아니 중원 대륙의 사분지 일을 통째로 지워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조휘의 주장이 너무나 터무니없으니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공천대사는 뭐라 반박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뭐?
병력이라면 무한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그 말인즉 상대가 팔무좌든 삼류 무사든 ‘사람’이라면 무한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뜻에 다름이 아니었다.
강호라는 세상이 탄생한 이래 이보다 더 오만한 선언을 했던 무인이 존재했던가?
그런 조휘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사람은 창천검협 남궁수가 유일했다.
“허허, 신좌라는 이가 이런 조 봉공보다도 더 상위의 고수라는 건 정말 믿기 힘든 노릇이군.”
하북팽가주 무극도왕(無極刀王) 팽율천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남궁수를 응시했다.
“창천검협께서는 저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단 말이오?”
눈썹을 꿈틀거리는 남궁수.
“그는 본 가의 봉공(奉公)이자 팔 무좌이며 이제는 한 세력의 종주요.”
남궁수가 엄정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자 팽율천은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사실 팽율천이 조가대상회에 맏아들을 남겨 둔 채 떠난 이유는 막 강호에 혁혁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소검신과 친분을 더욱 다지라는 의미였다.
맏아들이 그렇게 폐인이 되어 가문으로 돌아올 줄 알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
당연히 그런 그에게 있어 조휘는 세력의 종주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은 까마득한 후배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소검신은 함께 팔무좌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더욱 강력한 고수가 되어 있었다.
팽율천은 그런 현실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곧 그가 쓴맛을 겨우 집어삼키며 조휘를 향한 어투를 공대(恭待)로 바꾸었다.
“그대의 신위를 증명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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