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rn Man Who Got Transmigrated Into the Murim World RAW novel - Chapter 92
91 章>
수확하는 틈새.
오랫동안 자신에게 좌절을 안긴 간교한 존재이자, 성좌 진영의 실질적인 수장이며, 인간종의 영육을 수도 없이 잔인하게 섭식해 온 자.
상상을 벗어난 계략으로 우주의 법칙을 유린해 온, 그야말로 성좌계의 절대악(絶對樂)인 그가 어떻게 도가의 도조(道祖) 장삼봉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도가를 떠나 민간에서조차 성자(聖子)로 추앙받아 온 인물이며 대협(大俠)이라는 칭호와 가장 어울리는 위인이었다.
그 온후한 성품과 기질이 너무도 깊어 때론 우둔해 보일 정도로 선인(仙人)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
그런 위대한 선인의 정체가 추악하기 짝이 없는 수확하는 틈새라니!
조휘는 도저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조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가 바로 오랜 세월 동안 중원의 절멸을 막기 위해 ‘지하 공동’을 건설해 온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지하 공동의 중심에서 그의 유해를 직접 확인한 조휘.
한데 이렇게 아직 그가 살아 있으며 그것도 격을 이룬 성좌(星座)라니?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감정은 장삼봉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이렇게 쉽게 내 본체를 찾아낼 줄이야. 그것은 혹 미래 세상의 법보(法寶)인가?”
장삼봉의 무심한 시선이 조휘의 품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갓박스를 향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을 수가 있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조휘의 태도가 언짢은 듯 장삼봉이 미간을 찌푸렸다.
“주위를 살펴보시게.”
조휘의 황망한 두 눈이 천천히 장삼봉의 시선을 좇는다.
사방 삼 장(三丈) 정도의 작은 방.
한데, 시야에 들어오는 집기나 도기 따위의 양식이 자신이 살던 중원과는 다소 달랐다.
수없이 환생을 반복해 온 조휘는 그것이 고대 중원의 양식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설마 이 시대는……?”
“원말(元末)이지. 이제 곧 원은 북원(北元)으로 전락할 것이고 명(明)이 태동할 것이야.”
그 순간 조휘가 황급히 창밖을 바라본다.
준엄한 기세로 솟아오른 첨봉들.
또한 도사들의 도경 외는 소리와 그윽한 선기가 사방에서 느껴진다.
그 험준한 산령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이곳은 분명 초기의 무당(武當)이 아닌가?
‘장삼봉이 생존해 있는 시대의 무당파!’
조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장삼봉을 바라봤다.
“좌의 격을 돌파한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시대의 영혼을 화신(化神)으로 삼을 수 있다고?”
“당신의 말대로 고작 다른 시간대의 영혼을 화신으로 삼는 수준이지. 시간을 초월하는, 환생의 인과(因果)를 직접 다스릴 수 있는 그대에 비한다면 한참이나 모자란 경지다.”
성좌의 경지에도 여러 단계가 있었다.
다른 시간대의 영혼을 자신의 화신으로 만들 수 있는 단계는 분명 시간을 다루는 경지의 초입이라 할 수 있었다.
높은 존재력과 영격을 통해 시공간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단계.
조휘는 이 ‘수확하는 틈새’, 아니 장삼봉의 경지가 거의 자신의 목전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분명 당신의 시체를 봤는데…….”
장삼봉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이 장삼봉이 좌(座)의 격을 돌파하지 못한 인과율이 적용된 시대. 그곳의 나는 당연히 도사(道士)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은 채로 생을 마감했겠지.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네.”
조휘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장삼봉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달마로 살았을 때 그를 제자로 맞이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
그의 경지는 물론이요, 그의 드높은 학식과 도력, 올곧은 심성까지 그는 결코 악인(惡人)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제자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또 이어 간 존재.
그는 완벽한 선인(善人)의 표상, 그야말로 성선설(性善說)의 화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장삼봉이 피식 웃었다.
“이 시간대의 내가 좌의 격을 돌파한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인가?”
“결코 불가능하다!”
무림의 대문파라 자처하는 문파들조차도, 절대경의 무인이 한 명 탄생하는 것을 기적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물며 무림의 신(神)의 경지라 불리는 자연경을 돌파하고 그 너머의 무수한 벽들을 모두 뛰어넘어 고귀한 좌(座)의 영역을 넘보는 것.
그것은 인간의 수명을 수도 없이 초월해야 겨우 가능한 것이었다.
그 과정이 그리도 쉬웠다면 각 문파의 개파조사나 드높은 경지의 원로들 중에서 무수히 좌가 탄생했을 것이었다.
“으음…….”
장삼봉이 다소 음울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품에서 옥환(玉丸)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조휘는 그것을 보자마자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다, 달마옥(達磨玉)?”
다른 시간대의 환생체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손수 만들었던 법보!
그런 위험천만한 물건이 어떻게 장삼봉의 수중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저 달마옥은 자신의 영혼이 다른 시간대의 환생체에 스며드는 순간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걸 어찌 당신이……?”
장삼봉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조휘를 끈덕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 법보를 알고 있단 말인가? 달마옥? 이것이 달마옥이라 불린다고?”
“어떻게 그걸 당신이 가지고 있을 수 있냐고!”
장삼봉은 이상하리만치 거칠게 반응하는 조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오히려 반문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법보의 이름은 여의환(如意丸). 과거의 이름 모를 선인들이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완성한 일종의 영옥이지.”
“영옥(靈玉)이라고?”
자신이 아는 한 여의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옥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 여의환이라는 법보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력의 성질은 자신의 달마옥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어쨌든 이 법보가 내가 좌(座)에 이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장삼봉으로서는 자신의 비밀과 근원을 밝히는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의 앞에서 얕은 수를 써 봐야 어차피 소멸에 가까운 타격만 입게 될 뿐.
상대가 흥미를 보인 이상, 최대한 자신의 법보를 활용하여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탈출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그때.
삐빅-
-경고! 경고! 무한(infinity)에 가까운 에테르 에너지가 포착되었습니다! 시공간의 역류나 왜곡, 혹은 그 이상의 변수가 예상됩니다!
여의옥을 향한 조휘의 황당한 눈빛.
무한한 에테르 에너지라고?
완벽한 AI를 자랑하는 갓박스는 인간의 수억 배에 달하는 연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갓박스는 결코 함부로 무한(無限)이라는 단어를 내뱉지 않았다.
그 말인즉 저 여의환이라는 법보에 담긴 인과율과 존재력이 성좌급 이상이라는 뜻.
대관절 물질계에서 그만한 존재력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법보로 무얼할 수 있지?”
“상대의 존재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치환(置換)할 수 있다.”
“뭐라고!”
마치 무림의 흡기공(吸氣功)처럼 상대의 존재력을 흡수할 수 있다니!
그것은 저 빌어먹을 ‘수확하는 틈새’의 고유한 권능이 아니던가?
비로소 조휘는 이 장삼봉이 어떻게 ‘수확하는 틈새’라는 신명(神命)을 부여받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의 수명을 수없이 초월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좌의 격을, 단지 상대의 존재력을 흡수하는 법보로 도달할 수 있었다니!
한데 그 순간.
“설마……!”
조휘의 낯빛이 극도로 창백해졌다.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치환하는 법력을 구사하던 존재.
달마 시절, 처음으로 맞이한 제자들 중에서 그런 능력을 지닌 사악한 도사가 있었다.
혼세마(混世魔)!
선계의 선인들이 인간들의 세상을 따로 칭하는 단어인 ‘혼세일계(混世一界)’의 유례는 바로, 당시의 하계(下界)가 혼세마가 장악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세상에는 사람의 정기를 수도 없이 갈취하여 무시무시한 법력을 완성한 혼세마를 감히 선계의 선인들도 당해 내지 못했다.
그 사악한 법력 앞에서 무수한 도맥(道脈)과 선가(仙家)들이 무너졌으며, 중원의 황제조차 혼세마의 말 한마디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던 마당.
그래서 하계는 혼세마의 소유라 하여 혼세일계라 불렸던 것이었다.
그 당시 ‘달마(達磨)’의 환생체로 살아가던 자신이 그를 징치하여 제자로 삼아 구속하지 않았더라면?
이 중원은 그의 완악(完惡)한 마수 아래 벌써부터 멸망했을지도 몰랐다.
“이리 줘 봐.”
조휘가 죽일 듯이 자신을 노려보며 요구하자 놀랍게도 장삼봉은 순순히 여의환을 내주었다.
“여기 있네.”
여의환을 받아 든 조휘가 존재력을 끌어올려 천천히 주입하기 시작하자.
조휘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다.
이 여의환이라는 법보 속에는, 혼세마 고유의 사악한 법력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다른 제자였던 의천존자와 무천진인의 도력까지 담겨 있었던 것.
‘이럴 수가……!’
순수한 그들의 도력이 혼세마의 사악한 법력과 혼탁하게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고명했던 두 제자들이 혼세마에 의해 흡수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장삼봉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이곳은 자신이 달마옥을 통해 다른 환생체로 떠난 후의 시간대였다.
허면 자신이 안배한 대로 남겨진 세 제자들이 ‘달마’를 증오하며 각자의 영옥을 탄생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가?
그들이 남긴 세 영옥.
의천혈옥(義天血玉).
혼세천옥(混世天玉).
무천진옥(武天眞玉).
조휘는 그들의 영옥을 통해 중원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엄청난 기인들의 경험과 실력을 함양하고 다시금 성좌로 각성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의 안배는 그야말로 철저했으며 결코 비틀릴 수가 없었다.
분명 이것은 자신의 안배와 예측 이외의 결과.
“이것을 어디에서 발견했지? 이 법보의 근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나?”
장삼봉이 가늘게 눈을 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 나로서도 아는 바가 없네.”
조휘는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웃겼다.
여의환이라는 법보의 이름까지 파악하고 있는 자가 아무런 연원도 모르다니.
어쨌든 장삼봉이 그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여의환을 자신에게 내준 것은 명백한 실수.
조휘가 여의환을 묵묵히 품에 갈무리하는 데도 장삼봉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위험한 물건이니 내가 갖겠다.”
“좋을 대로.”
사실 장삼봉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여의환은 좌의 격을 이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법보일 뿐, 이미 좌의 권능을 일신에 아로새긴 상황에서 자신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날 소멸시키지 않을 순 없겠는가.”
조휘가 무당산의 전경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후…… 이 법보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존재력을 흡수해서 성좌가 된 거지?”
“…….”
분명 수없이 많은 인간들을 희생시켰을 것이다.
도사(道士)의 신분으로, 선인(善人)의 얼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며 악행을 이어 온 것인지를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도망치려고?”
장삼봉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법보까지 내어 주며 끊임없이 도주하려고 틈을 살피는 것을 조휘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조휘가 천천히 존재력을 끌어올렸다.
“무(無)로 되돌아가거라. 내가 의지를 거두기 전까지는 결코 되돌아오지 못하리라.”
* * *
조휘는 장삼봉이 오랜 세월 도력을 닦아 온 위대한 선인이지만 동시에 힘을 추구했던 강호인이라는 것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궁극(窮極)의 경지를 향한 목마름, 그 처절한 욕망을 어떤 무인(武人)이 피해 갈 수 있겠는가.
또한 그가 어떤 경로로 여의환을 손에 넣었든 간에 여의환이라는 위험한 법보의 탄생 비화가 제자들로부터 출발한 이상, 이 끔찍한 결과는 모두 자신의 책임이었다.
때문에 장삼봉, 아니 수확하는 틈새를 처단하는 것이 마음 편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과(過)가 너무 크다.’
모든 원인이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지만 그렇다고 장삼봉이 벌였던 참혹한 살인들이 정당화될 순 없다.
조휘가 존재력을 끌어올려 장삼봉을 서서히 압박하기 시작하자.
“고, 고작 나를 죽인다고 이 모든 업(業)과 겁(劫)이 끝날 것 같은가!”
잠시 주춤하는 조휘.
“그게 무슨 뜻이지?”
장삼봉이 조휘가 품에 갈무리한 여의환을 시선으로 가리키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나라고 번뇌와 참회가 없었겠는가! 나 역시 때론 욕망에 집어삼켜진 스스로를 지극히 혐오했었다!”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의 생령을 죽여 삼킨 당신의 죄과(罪過)가 진정으로 참회가 되던가?”
“그, 그건!”
“이보게. 장삼봉. 그대의 말대로 나는 창조자에 필적하는 존재력을 닦은 이다. 그런 내가 단 한 번도 악(惡)의 유혹을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조휘가 존재력을 풀며 한없이 회한 서린 한숨을 내뱉는다.
“후……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봐라. 무수한 인간들의 생령을 자신의 존재력으로 치환하고 닿은 그 성좌(星座)란 도정에 어떤 가치가 있던가? 한없는 전능감에 희열과 전율로 몸을 떨었나?”
“…….”
“아니었겠지. 인간의 격을 돌파하고 아득한 불멸의 존재가 된 그대였지만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욕망으로 닿은 곳에는 또 다른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지.”
“본 도는……!”
“부정할 셈인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수확하는 틈새’의 역사가 너무나 완악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조휘가 품에서 여의환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그대가 성좌대전에서 승리하여 모든 인간종을 섭식하고 창조자의 반열에 오른다고 해도 그대의 욕망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기어이 창조자들을 다스리는 ‘태초(太初)’와도 대등해지려 들겠지. 그때는 창조자들을 섭식할 텐가? 법칙을 모두 먹어 치울 텐가? 영겁을 살며 태초와 대등해지면? 그 후에 당신에게는 무엇이 남지?”
“태초? 그는 어떤 존재지?”
단지 입을 열어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물들어 가는, 하지만 그런 경원과 함께 호기심과 투쟁심으로 얼룩지는 장삼봉의 표정.
이내 조휘의 얼굴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수확하는 틈새. 당신은 욕망에 중독…… 아니 집어삼켜졌다. 욕망이라는 거대한 마(魔)에 섭식(攝食)당한 건 다름 아닌 당신이란 말이다!”
그 순간 장삼봉이 큰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새파래졌다.
“가, 감히! 무엄하다! 섭식은 나의 위대한 권능! 나는 섭식을 하는 존재지 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갈(喝)!”
조휘의 무한한 존재력이 발현되더니 이내 장삼봉의 목을 움켜쥐었다.
“인간의 생령으로 쌓아 올린 존재력! 끝없는 욕망에 집어삼켜진 그 더러운 영혼! 경지를 향한 당신의 광적인 집착까지! 나 ‘존재를 부정하는 자’의 신명으로 확약하노니 그대의 모든 것을 한없이 부정(否定)하겠다!”
하지만 장삼봉은 점차 미약해져 가는 자신의 존재력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자, 잠깐! 내가 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여의환을 그대에게 건넸겠는가? 그 법보는 이 세계에 속한 물건이다! 나를 소멸시키고 그대가 다시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 위험한 법보는 이 세상에 그대로 남게 된다!”
조휘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자신이 아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인과율이 적용된 세상.
자신이 동료들의 중원으로 돌아가는 그 즉시 ‘우주의 법칙’은 인과율의 반작용을 인식하고 반드시 여의환을 소멸시킬 것이다.
“분명 그 여의환은 본 도의 후학(後學)들에게 닿을 것이고…… 무당은…… 본 도의 무당은…….”
이 순간 장삼봉은 제이, 제삼의 ‘수확하는 틈새’가 무당에서 배출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파괴할 것이다.”
장삼봉이 단호하게 소리친다.
“이미 내가 수도 없이 시도한 일! 여의환 속에 담겨 있는 법력은 그야말로 무량(無量)하다! 그 일은 결코 불가능……!”
“아니, 이 우주에서 오직 나만은 가능해.”
‘존재’를 부정하는 자.
여의환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우주의 유일한 성좌는 다름 아닌 조휘였다.
순간 장삼봉은 오늘의 일이 어떤 거대한 우주의 인과율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운명적으로 깨달았다.
“허허…….”
마침내 처연하게 웃으며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마는 장삼봉.
삐빅-
-에테르 에너지가 부족해 더 이상 염동 터널의 가상화를 지속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곧 균열…….
그 순간 조휘는 자신의 존재력을 끌어올려 갓박스에 주입시켰다.
-경고! 경고! 염동 가상화 터널 내부에서의 스피리츄얼 파워의 활용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조휘는 갓박스의 경고음을 무시하며 무심히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과연 자신의 시야에 닿은 전경이 천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 즉 조휘에게 적용된 인과(因果)는 장삼봉이 살아가는 세계의 인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애초부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조휘’가 억지로 침범한 꼴이니 차원 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
더 이상 이 장삼봉의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
“잘 가거라. 수확하는 틈새. 난 내 세계의 장삼봉만을 기억할 것이다.”
장삼봉의 정수리부터 천천히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허어…… 허허허……!”
존재를 부정하는 조휘의 의지는 이내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뿜던 그의 입마저 집어삼켰고.
츠츠츠츠츠-
결국 이 세상에서의 ‘장삼봉’이 모두 부정되었다.
조휘가 의지를 거두지 않는 이상 다시는 이 세계에 현신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사실상의 소멸을 맞이한 것.
강호 무림의 대영웅이자 도가의 신화적인 인물인 장삼봉의 최후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한 최후라 할 수 있었다.
“사부님!”
“태사조님!”
이변을 눈치챈 무당의 원로들과 제자들이 서둘러 장삼봉의 처소로 들이닥쳤으나.
그들이 본 것은 자신들의 선조가 천천히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해괴한 장면뿐이었다.
무당의 도사들은 갑자기 천지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현상이 일어난 것과 마치 세상에서 지워지는 듯한 도조(道祖)의 최후가 서로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무, 무량수불! 도조께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하시었다!”
“아아!”
“태사조시여!”
조휘는 이미 장삼봉의 도방에서 빠져나와 무심한 얼굴로 그런 무당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무당 제자들의 오해를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장삼봉이 인간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친 절대적인 마(魔)라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으리라.
남은 것은 이제 하나.
창공에 홀연히 떠 있던 조휘가 품에 갈무리하고 있던 여의환을 꺼내 들었다.
갓박스가 쉴 새 없이 경고성을 터뜨렸지만 조휘는 자신의 무한한 존재력을 일으켜 그대로 여의환을 부정(否定)했다.
우우우우웅-
‘뭐지?’
조휘는 지극히 당황하고 있었다.
가벼운 진동만 일으키다 잦아들었을 뿐 여의환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존재를 부정하는 자신의 권능이 부정(否定)되는 것은 억겁(億劫)의 세월을 살아온 조휘에게 처음 있는 일.
한데 그 순간.
화아아아아악!
여의환에게서 엄청난 광휘가 뿜어져 나온다.
조휘가 자신의 모든 존재력과 권능을 일으켜 그런 광휘를 막으려 들었지만 여의환에 담긴 법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
여의환에 담긴 에테르(ether)가 무한(infinity)에 가깝다고 묘사한 갓박스의 연산은 과연 정확했다.
결국 조휘는 여의환의 광휘에 그대로 집어삼켜졌다.
“크윽!”
가히 영혼이 짓눌리는 듯한 엄청난 법력의 압박 속에서, 조휘는 겨우 의식을 부여잡으며 여의환의 영계(靈界)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내 조휘의 시야에는 의천혈옥의 영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활한 공간이 펼쳐졌다.
광휘의 법력이 잦아들자 조휘가 서둘러 영계 내부를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으음…….”
영계의 하늘, 그 무한한 천공(天空) 속에서 무수한 영혼의 불꽃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조휘는 저 수많은 영혼들이 장삼봉이 집어삼킨 모든 인간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내뿜고 있는 생생하고도 처절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영육(靈肉)을 잃은 그들은 다시는 환생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의미 없는 공간에서 억겁의 시간 동안 부유하며 천천히 자아가 소멸되기를 기다릴 뿐.
그 지독한 고독을 경험으로 알기에 순간 조휘는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한데 그 순간.
저벅저벅-
자신을 향해 세 명의 노도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조휘는 그들을 단숨에 알아봤다.
“너희들은!”
고아하게 튼 머리를 감싼 저 진청색의 면류관(冕旒冠)은 의천존자의 상징.
고대의 선술(仙術)로 뭉게구름을 온몸에 드리우며 나타난 노인 역시 틀림없는 무천도인이었다.
그리고 혼세마(混世魔).
영계 전체에 드리워진 그의 측량할 수 없는 마기란 가히 전율이 치밀 정도다.
조휘는 극도로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의천존자와 무천도인의 영육이 온전하다는 것은 혼세마가 그들을 먹어 치운 것이 아니란 뜻.
설마 저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혼세마의 법력에 합일(合一)되기로 한 것이란 말인가?
“사부를 뵙소이다.”
정중한 예법으로 포권하는 의천존자.
조휘가 영계의 하늘에 무수히 떠도는 영혼의 불꽃들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대체 왜 이런 사악한 짓을 벌인 것이냐?”
의천존자가 면류관을 고쳐 쓰며 껄껄 웃었다.
“아직도 모르겠소 사부?”
무천도인이 그대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모두 당신의 인과(因果)요.”
혼세마 역시 당당히 좌정했으나 긴장하는 기색만큼은 역력했다.
“이것이 당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지.”
마치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린 듯한 그들의 태도에 조휘는 극도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부. 사부의 끝없는 투쟁은 애초부터 모두 사부의 욕망으로부터 잉태된 것이오.”
마치 자신의 기나긴 성좌대전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듯한 의천존자의 태도에 조휘가 황망하게 되물었다.
“네가 어찌……?”
이어진 무천도인의 한숨.
“후,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인간애(人間愛)를 진실한 사랑이라 여길 테지만, 아니오. 그것은 욕망이오.”
의천존자도 조용히 좌정했다.
“보시오. 애초부터 성좌들의 뜻을 무시한 것도 당신이고 법칙과 질서를 무시한 것도 당신이오. 인간을 지키고자 한다는 당신의 명분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는지 진정 모르겠소?”
자신과 얽혀 있는 우주적 비밀들을 연신 읊어 대는 옛 제자들을 바라보며 조휘는 그들의 진정한 정체를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너희들…….”
굳이 부정하지 않는 제자들.
“그렇소이다.”
“사부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소.”
이들은 다름 아닌 성좌들이 그토록 닿고 싶어 하는 격(格).
즉 창조자들의 화신(化身)이었다.
달마 시절, 이들과 인연이 닿았던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들의 의도였던 것!
오직 오늘을 위한 철저한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조휘가 조소를 머금었다.
“하위 종족이 살아가는 물질계에 창조자가 의지를 드리우다니! 이것은 그대들이 세운 ‘우주의 법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무천도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껄껄! 허면 그대는 스스로 창조한 차원이 절멸(絶滅)에 이르는 것을 방치할 수 있단 말인가?”
“절멸?”
의천존자가 꾸짖듯 소리친다.
“대부분의 성좌들이 법칙을 부정하며 하위 종족의 물질계를 침범했다! 법칙을 부정하는 존재에게 향할 형벌이 무엇인지 그대 역시 모르지 않는바! 그대는 진정 이 우주적인 파괴를 지켜만 볼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성좌들의 소멸(消滅).
인간종의 멸망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그야말로 우주적인 재앙이었다.
성좌들이 모두 사라진 우주가 어떤 재앙으로 치달을지는 창조자들조차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 * *
“보라! 존재를 부정하는 자여!”
의천존자가 법력을 일으키자 영계의 하늘이 거대한 동경(銅鏡)처럼 다른 장소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곳은 동료들이 성좌 군단들과 대치하고 있는 중원, 즉 천산(天山)의 대구릉이었다.
“그대가 아끼는 인간종보다 훨씬 많은 수의 성좌들이 저곳에 있다! 당신에게 저들은 진실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들인가!”
성좌들이 끝도 없이 도열해 있는 천산의 하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성좌들로 인해 천산 전체가 칠흑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그 수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때 의천존자가 성좌들의 수에 비해 형편없는 규모의 인간 진영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어째서 ‘사람의 불꽃’만이 우주의 모든 가치들 중에서 으뜸이란 말인가! 성좌들 역시 끝없는 재능과 열정으로 우주의 축복 속에서 스스로 격(格)을 이룬 찬란한 존재들!”
조휘의 타오르는 눈빛이 그대로 의천존자에게 작열한다.
“성좌들의 오롯한 가치를 부정한 적은 없다. 다만 나는 그대들이 만든 ‘우열의 법칙’이 싫을 뿐.”
지켜보던 무천도인이 한숨을 토한다.
“우열(優劣)이 없는 우주는 유지될 수가 없소. 은하가 성단을 거느리고, 별이 행성을 거느리는 우열의 도(道)가 없었다면 이 우주에 질서가 존재할 수 있겠소이까.”
조휘 역시 물질계를 관통하는 ‘우열의 법칙’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종의 세상 역시 ‘약육강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우열의 법칙’이 작동했다.
미생물을 양분 삼는 식물.
식물을 뜯어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초식 동물.
최종적으로 육식 동물이 그런 초식 동물들의 피와 살을 취한다.
이 약육강식의 법칙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 모든 먹이 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우열의 법칙이 사라진 세상에 펼쳐질 ‘무질서(Chaos)’의 위험성을, 조휘 역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휘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성좌들이 우열의 법칙을 구사하는 방식, 즉 ‘유희(遊戲)’였다.
“좌들과 하위 종족 사이에 우열의 법칙이 작동할 순 있다. 격을 이룬 존재들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하위 종족을 가지고 놀며 유희하는 것을 과연 그대로 방치해야 하나? 그들의 ‘놀이’와 ‘장난’에 의해 피폐해지는 하위 종족들의 영혼은 누가 구제해 주지? 진정 당신들은 성좌들의 ‘유희’까지도 우열의 법칙 아래 허용된다고 보는가?”
하나 창조자들의 화신들은 조휘의 말에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보라.”
이윽고 영계의 하늘에 나타난 것은 중원의 흔한 ‘투견장’과 ‘투계장’과 같은 지하 도박장이었다.
참혹하게 피를 흘려 대면서도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고 있는 싸움 개들.
인간의 손에 의해 날카롭게 벼려진 부리로 연신 서로의 몸을 찢어발기는 싸움닭들.
무천도인이 흥분과 희열, 분노와 증오로 얼룩져 흥분하고 있는 투견판의 인간들 얼굴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당신은 왜 인간들의 유희는 징치(懲治)하지 않는 것이오?”
의천존자가 더없이 고아한 표정으로 조휘를 끈덕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저 개와 닭들 사이에서 성좌가 탄생하여 그대를 향해 ‘법칙’의 모순을 운운한다면 과연 그대는 우리의 입장과 다를 것 같은가?”
“인간은……!”
조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말하려다 굳게 입을 닫고 말았다.
자신이 인간의 특별함을 내세우는 그 순간.
자신의 논리는 저 창조자의 화신들이 성좌를 보호하고자 하는 논리와 같아진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논리를 스스로 뒷받침해 주는 꼴.
“우리의 시선에는 당신이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종과 저 성좌들이 모두 동등하네. 또한 그들 모두가 법칙 아래 살아가며 또 순환되길 원하지.”
무천도인이 조휘의 전면에 나서며 그윽한 눈빛을 발했다.
“그들을 놓아주시오. 더 이상 우주의 법칙을 부정하면서까지 인간종을 수호하려는 그대의 의지를 허용할 수 없소.”
혼세마의 마기 그득한 눈빛이 그대로 조휘에게 작열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라. 인간들을 보호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우주적 재앙만 초래할 것이다. 당신의 도정은 끝없는 투쟁과 멸망만을 잉태할 뿐이다.”
조휘의 다소 지친 듯한 눈빛이 영계의 허공 속에 부유하고 있는 무수한 영혼들을 향한다.
“내가 계속 성좌들의 유희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지?”
혼세마의 단호한 외침.
“정해진 안배대로 그대는 이 영계와 함께 소멸될 것이다. 또한 그대의 세계에서 대치하고 있는 성좌들과 인간들을 중재(仲裁)하지 않겠다. 성좌들은 법칙을 부정한 죄로 모두 소멸될 것이며 인간종 역시 부정한 방법으로 각성한 죄를 물어 결국 멸종될 것이다.”
조휘가 미래 세계의 초과학으로 완성한 달마진경 즉 ‘뉴럴링크 칩’은 창조자들이 보기에 ‘시간의 절대성’을 위배한 부정한 물건.
이들은 지금 인간들의 죄(罪)를 말하고 있으나, 사실상 조휘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휘가 침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자신에게 더 이상의 환생의 도정을 모두 끊으라 말하고 있었다.
모든 인과의 고리를 끊고 성좌계로 되돌아가 자숙하라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 자신들과 같은 반열이 되길 원할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일의 대전제는 인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끊어 내는 것.
하지만 과연 옳은 일일까?
자신이 포기하고 사라지면 다시 인간들은 성좌들의 끝없는 노리개로 남아 때론 타락하며 때론 절망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비관할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의 화신들이 보여 준 ‘투견판의 논리’를 반박할 수가 없다.
저들은 이미 우열의 법칙이, 장구한 우주의 흐름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자연계의 순수성’이라 말하고 있다.
한데 그때.
지지지직!
지지지지직!
갑자기 영계의 하늘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누아!”
“주인!”
“싯다르타!”
“조휘!”
“이 새끼야!”
천요력(天妖力)을 모두 소진한 듯 처참한 몰골로 악착같이 균열의 틈을 벌리고 있는 여와, 진가희!
거대해진 여의봉을 균열에 쑤셔 박은 채 미친 듯이 지탱하고 있는 제천대성!
거대한 동체를 구겨 넣으며 영계로 진입하고 있는 남궁장호와 염상록의 채찍에 매달려 있는 모든 동료들이 조휘의 동공에 투영되었다.
“이, 이런 미친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가!
창조자의 화신들이 만들어 낸 영계다.
이 위험천만한 영계는 저들이 아무리 각성했다고 해도 감당할 수가 없다.
여와와 제천대성, 그리고 단천양은 이 영계에 침입하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들의 모든 존재력을 희생한 것으로 보였다.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래서다.
지켜 내고자 하는 이를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줄 아는 착한 인간들.
그들은 우주의 어떤 하위 종족보다도 인연(因緣)의 소중함을 아는 존재들이었고, 그 어떤 위험에도 굴복하지 않는 찬란한 용기와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의 끝없는 열정, 그 타오르는 불꽃이 너무도 기꺼웠기에 영원토록 지켜보고 싶었다.
“으아아아악!”
“아이고!”
마치 자신에게 안길 듯 영계로 추락해 오는 동료들을 응시하며 조휘는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순간 그런 조휘의 입에서 신령스러운 우주적 언어가 흘러나왔고.
이내 창조자들의 세 화신체는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천존자의 나지막한 외침.
-승낙하겠다.
화아아아아악!
균열에서 떨어지며 그대로 조휘에게 짓쳐 들던 조휘의 동료들.
한데 그들을 반긴 것은 조휘와 영계가 아니라 천산의 대구릉이었다.
쿠당당탕!
“악!”
“으악! 뭐야!”
눈밭을 구르며 화들짝 놀라 일어난 염상록이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뭐, 뭐야?”
하늘에 끝도 없이 도열해 있던 성좌 군단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성좌들이 사라지자 다시금 천산에 태양빛이 드리워졌고.
대구릉에 집결해 있던 모든 중원인들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궁장호가 거인화된 각성 형태를 거두며 진가희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일이오?”
진가희는 조휘가 서 있던 자리에 서서 소리 없이 오열하고 있었다.
그녀가 찬란하게 내리쬐는 빛의 포말들을 바라보며 슬픈 얼굴로 처연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은 느껴지지 않나요.”
오직 삼황오제의 여와만이 느낄 수 있었다.
인간종 전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어떤 가호(加護)를.
“뭐가 느껴진단 말이요? 조휘 녀석은 어디에 있는 것이오?”
“그는 위대한 존재들과 어떤 거래를 했어요. 그리고 그 대가로…….”
“거래?”
“대가?”
조휘의 동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제 성좌들은 자신들의 언령(言靈)을 하위 종족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어요. 오직 ‘의지’나 ‘뜻’을 겨우 표현해 올 뿐이죠.”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의지를 전달할 수 있단 말이오? 표현? 그건 뭘 의미하는 거요?”
남궁장호는 진가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그들의 ‘유희’에 커다란 제약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해요.”
장일룡이 호탕하게 웃었다.
“어쨌든 형님께서 우주의 대신(大神)들과 거래를 했단 말이잖수? 크허허! 역시 조가대상회의 회장님이시오! 뼛속까지 상인이구려!”
옷매를 가다듬으며 진가희에게 다가오는 제갈운.
“그럼 조휘 녀석은 어찌 된 거죠? 그런 엄청난 가호가 인간에게 주어졌다면 분명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내어 줘야 했을 텐데?”
염상록도 함께 말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을 다시 볼 순 있는 거냐고?”
진가희는 그 말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 * *
파파파파팍!
파파파파파팍!
수천 발의 폭죽이 터지며 자욱한 연기가 피어난 대로변에는 포양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있었다.
“저게 그 조가천상복합루란 것이우?”
“시상에! 저, 저게 도대체 몇 층이냐고!”
그 거대한 전각 단지들의 위용이 웅장하다 못해 압도될 지경!
포양호 수변을 따라 절묘하게 지어진 십 층 높이의 전각들이란 중원인들에게 마치 천혜의 절경(絶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선사하고 있었다.
전각들의 주변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기화이초들.
거대하게 조성된 연못과 둘레길, 삐거덕거리며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물레방아, 그런 물레방아의 수력(水力)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온갖 기관들!
과연 천상의 선계(仙界)가 있다면 과연 이곳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포양호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조가천상복합루 단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음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허! 일 단지는 우리 팽가(彭家)의 것이네! 이미 조휘 회장의 약조가 있었다니까!”
“무슨 소리요! 소검신께서는 분명 우리 당가(唐家)에게 일 단지를 약속하셨소! 여, 여기 계약서를 보시오!”
“뭣!”
조가대상회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계약서의 무수한 조항을 살피더니 하북팽가주 무극도왕(無極刀王) 팽율천이 대노했다.
“이런 육시랄! 감히 이 무극도왕을 뭘로 보고!”
한데 그때.
“무량수불, 그 무슨 섭섭할 소릴.”
화려한 라이더 재킷을 멋들어지게 입고 도착한 무당 장문 청허진자(淸虛眞子).
위는 라이더 재킷, 아래는 도포 하의를 입고 있는 그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으나 그 표정만큼은 근엄하기 짝이 없었다.
곧 그가 당가주 독룡제를 향해 조휘의 친필 서신을 들이밀었다.
“보시게. 조가대상회와 무당파 사이에는 이미 오랜 밀약이 있었네.”
“그 무슨?”
“어허, 이걸 보래도. 틀림없이 일 단지는 우리 무당의 것이라는 것을 그가 약조하지 않았는가.”
“뭣이!”
거듭되는 혼란!
준공식을 주관하고 있던 제갈운이 그런 황당한 광경을 목도하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런 개자식!”
조휘가 중원의 대문파들과 거래를 트며 맺은 온갖 공수표들!
그때그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했던 조휘의 입 발린 약속들이 드디어 무시무시한 청구서가 되어 모두 자신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장일룡의 솥단지 같은 손이, 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섬섬옥수가 제갈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흐흐, 형님께서는 이 아우에게도 꼭대기 층을 약조하셨수.”
“뭐, 뭐라고!”
조가천상복합루의 꼭대기 층은 최고의 자재로 완성된, 복층 구조의 그야말로 대궐과 같은 저택이었다.
무수한 편의 시설을 자랑하는 꼭대기 층은 왕족, 혹은 그에 준하는 신분을 지닌 자들에게 이미 모두 완판된 상태.
“안 돼! 거기가 얼만 줄 알아?”
장일룡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싯팔, 우리끼리 이러기요?”
남궁장호의 여동생, 남궁소소가 호호 웃으며 제갈운의 팔짱을 끼었다.
“저와 오라버니가 함께 살 집인데 어떻게 안 되겠어요?”
“뭐, 뭐라고요?”
뒷머리를 긁적이는 장일룡.
“그, 그렇게 됐수다.”
“이런 씨…….”
남궁소소가 제갈운을 표독하게 쏘아붙였다.
“뭐 안 된다면 할 수 없죠. 할아버지께 일러…….”
으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장내를 벗어나 버리는 제갈운.
멀리 지붕 위에 올라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진가희가 시리도록 푸른 포양호의 하늘을 응시했다.
‘내내 평안하시기를.’
어디선가.
살아 있는 내내.
그는 인간을 사랑할 것이다.
그의 희생과 가호 아래 살아갈 머나먼 미래의 인간들도 내내 안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