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
009화
합주실에 울려 퍼지는 악기 소리가 불협화음을 낸다.
완벽한 소리를 낼 거라고 기대한 적도 없지만, 완벽한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기에 이 자리에 앉아서 듣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전히 박자 감각이 왔다 갔다 하는 김지섭이 밴드를 리드하고 있는 합주실.
드럼 비트에 맞춰 밴드의 연주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걸 듣고 있자니 헛웃음만 나온다.
아마 카운터에 앉은 사장 아저씨도 이곳에서 새어 나가는 소리에 웃고 있지 않을까.
여기는 교대역에 있는 합주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7월 첫째 주 토요일. 밴드 멤버 15명이 모두 모여 합주실로 왔다.
슬프게도 도서관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건물은, 주말은 운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연습은 학교에서 할 수가 없었다.
이 허름한 지하 골방에 이름 붙여진 ‘쟁이’라는 이름의 합주실 사용료는 노래방보다 5천 원이나 비싸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싸구려 앰프, 싸구려 모니터링 스피커, 싸구려 마이크, 싸구려긴 하지만 진짜 드럼(요즘에는 전자 드럼이 놓인 곳이 많다) 그리고 간이 녹음용 데크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이 싸구려로 무장된 합주실이 이 동네에서 음악 한답시고 꼴값하는 모든 놈들의 아지트였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플루트 같이 비싸고 고상한 악기 하는 놈들은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있는 비싼 연습실을 가고, 밴드 음악 하는 놈들은 가격이 싼 이곳으로 모인다.
땅값 비싼 서초동에서 합주실을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이곳에 있는 장비들은 땅값에 비해 너무나 싼 것들뿐이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곳들 중 하나이니까.
명동보다는 싸지만, 상가로 이루어진 명동과는 다르게 이곳은 주택가다.
랩톱에 연결된 데크, 그리고 그 데크에서 뻗어나간 모니터링 스피커에서 메트로놈 소리가 들린다.
똑 딱 똑 딱.
가격이 싸지만 쓸만한 기타 이펙터 ‘메탈존’에 연결된 스트라토캐스터가 앰프를 울리게 만든다. 그 소리에 따라 리드 기타 유자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징징지~ 잉.
메탈존의 소리는 리얼 사운드다. 요즘에 숱하게 나오는 전자 이펙터들과는 다르게 순 아날로그로 납땜해서 만들어진 기타 이펙터.
일렉 기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돈에 여유가 생기면 바로 구입하는 그것. 신품 가격 약 10만 원. 중고가격 약 5만 원 선 되시는 바로 그 제품 되시겠다.
사이즈는 주먹 두 개 사이즈에 발로 밟을 때 미스 터치가 없도록 누르는 부분이 고무 처리가 되어 있다. 바닥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 패킹 처리가 되어 있고. 정확한 명칭은 BOSE Metal Zone MT-2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냥 메탈존이라고 부른다.
15만 원짜리 콜트 기타에 5만 원짜리 중고 메탈존 그리고 2만 원짜리 똘똘이 앰프까지. 기타와 이펙터 그리고 앰프를 연결하는 케이블까지 포함해서 30만 원 아래로 일렉 기타 풀 셋을 맞출 수 있는 거다. 이게 일렉 기타 입문 셋.
문제는 이펙터를 잘못 쓰면 백만 원이 넘는 스트라토캐스터와 입문자용 콜트의 사운드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노브 조절을 섬세하게 해서 톤 메이킹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고수는 못 되더라도 중수는 되어야 한다는 거지.
칵! 칵! 칵!
데크 앞에 앉아 있던 내가 드럼 스틱 두 개를 서로 두드려 소리를 내며 연습을 멈추게 만들었다.
“유자 너, 연습할 때는 이펙터 빼고 해. 지금 소리가 전에 쓰던 콜트랑 똑같이 나잖아. 이럴 거면 왜 샀어?”
“…알았어….”
유재욱은 금세 울상이 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 말고 다른 애들한테도 똑같이 할 거니까.
“원만이 너는 베이스 치는 애가 피크를 왜 쓰는 거야. 손바닥 끝에 현이 계속 닿으니까 종음(끝나는 음)에 뮤트(소리가 나질 않음) 걸리잖아. 베이스가 바닥을 다져 줘야지 자꾸 리드 기타처럼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
백원빈은 원래 기타를 치고 싶어 했지만, 밴드의 기타 자리가 다 차 버리는 바람에 베이스로 전향한 놈이다.
고등학교에서 밴드 하는 것들이 다 그렇지만 관심 종자라 화려한 속주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찬 놈이지. 지속적으로 튀는 방법을 찾는 놈이다.
오늘 연습하는 곡은 미국의 밴드 ‘블랙 스톤 체리’의 Stay. 유명한 밴드는 아니지만 고음이 나오지 않는 목소리 깊숙한 곳을 긁어 대는 음색으로 승부하는 곡이다.
하드락 톤의 기타 사운드 싱글 베이스 드럼이 가미된 중후한 사운드. 얼터너티브처럼 가벼운 사운드가 아니고 메탈처럼 무거운 사운드도 아닌 그 중간에 위치하는 소리가 나야 한다.
“But, if I told you I loved you would it make you wanna stay~”
탁! 탁! 탁!
“그만, 그만!”
고등학교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과는 전혀 반대의 방향성을 가진 음악이다. 게다가 우리 보컬 진혁이의 목소리와 완전 상반되는 곡이기도 하고.
“진혁아. 모창하려고 하지 마. 네 목소리를 내. 베이스부터 다른 목소리인데 어설프게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네 목소리 그대로 깨끗하게 불러, 클린 톤으로.”
“네, 형….”
어설프게 본인의 목소리 톤과 맞지 않은 목소리의 모창을 하려고 하면, 본인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소리가 변질된다.
보컬이라는 건, 단 한 곡을 부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와 발성에 맞는 방법으로 불러야 한다는 거다.
발성에 문제가 생기면 몸은 무리해서라도 뇌가 시키는 대로 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호흡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결국 소리가 망가지게 되는 거지.
애들이 선곡을 원했던 수십 곡 중에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보컬 때문이다.
이 곡에는 샤우팅이 안 들어가는 곡이거든. 그냥 음색과 흉성으로 부르는 곡이지.
“네 목소리 괜찮아. 자신감 가져. 굳이 원곡처럼 허스키 보이스로 긁으려고 하지 마. 너 아직 긁는 건 준비 안 됐어.”
“네….”
밴드 음악에서는 목소리도 악기다. 기타나 베이스, 키보드, 드럼만 악기가 아니고 목소리도 악기다.
억지로 안 되는 소리를 내려 하면 100% 망가질 수밖에 없다. 보컬은 그 목소리의 연주자다. 발성법이나 호흡법은 악기의 연주법을 익혀가는 과정이고.
원래 4인조인 블랙 스톤 체리는 보컬 역시 어쿠스틱으로 리듬 기타를 친다.
하지만 연습을 이제 겨우 두 달 조금 넘게 한 이진혁에게 보컬을 하면서 기타 연주까지 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무리 기본 코드에 스트로크 주법만 사용하라고 하더라도.
게다가 원래 이 곡은 청량한 어쿠스틱 리듬 기타와 하드락 톤의 일렉트릭 리드 기타의 언밸런스되는 소리가 육중한 베이스 그리고 드럼 위에서 쌓여가는 곡이다.
그래서 어쿠스틱 사운드가 보컬의 위에서 눌러 준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리드 기타보다 중요한 파트라고 할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있는 건 키보디스트 김수원. 얘는 은근히 이것저것 할 줄 안다.
이 곡은 일렉 기타 톤 메이킹에서 와우(보통 와우 페달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명칭은 와-Wah다. 사용하면 소리가 와오~ 와오~ 와오~ 하고 소리가 울리도록 부스팅한다. 이 효과를 조절하는 부분이 발로 밟아서 조절하게 되어 있어 페달이라는 말이 붙는다)까지 간간이 사용하는 하드락 계통의 무거운 톤을 사용하는 곡.
이펙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조잡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데, 그 조잡한 느낌의 사운드를 보컬과 어쿠스틱이 억지로 잡아 줘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마추어 밴드들은 보컬의 입김이 강하다.
즉, 이 곡은 고등학교 밴드가 다룰 수 있는 수준보다 사운드 메이킹 난이도가 한참 높다는 소리다.
그래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보컬 이진혁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용 가능한 발성법을 사용해야 해서 어쩔 수가 없다.
“다들 잘 들어. 틀려도 돼. 너네 아마추어야. 안 틀릴 수가 없어. 프로들도 무대에서 틀릴 때 많아. 라이브를 녹음실에서 하듯이 무결점으로 한다고 생각하지 마.
그러면 더 힘들어져. 너네 시험 보는 거 아니야. 그냥 논다고 생각해. 일단 잠깐 쉬면서 음료수 하나 마시고 다시 하자.”
애들을 열심히 돌려 깠더니, 내가 더 힘들어져서 휴식 시간을 만들었다.
첫 공연이다. 학교 밴드의 가장 큰 단점은 경험이 없다는 것. 1학년은 익혀가는 과정이기에 2학년이 주력이 된다.
하지만, 그 2학년 과정도 1년밖에 되질 않는다. 3학년이 되면 대학교 입시 준비로 빠져야 하니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딱 1년.
리듬 기타나 코러스 등으로 투입될 수 있는 기타나 보컬의 경우에는 1학년이라도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드럼과 베이스는 1학년 때 뒤에서 보고만 있다가, 2학년이 딱 되자마자 처음 무대에 서게 된다.
따라서 경험이 없다는 것에서 발생한 긴장감에서 오는 실수가 다른 파트보다 많아진다.
드럼과 베이스는 건설 현장으로 따지자면 지반 공사다. 지반을 다지고 철근을 심은 뒤 콘크리트를 부어 튼튼하게 만들어 주어야 건물이 부실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밴드의 지반을 잡아 주어야 하는 드럼과 베이스가 무대 경험이 없으면, 밴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예술 고등학교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 밴드에서 경력 있는 드럼과 베이스를 영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 있고 잘하는 신입생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찾아보는 것은 정말 힘들다.
있다 하더라도 수준 낮은 학교 밴드보다는 외부에서 결성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경험을 만들어 줘야 한다.
실력은 혼자 하는 연습으로도 쌓을 수 있지만 경험은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선택되는 방법이 버스킹.
없는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버스커가 되어야 한다.
“1학년들은 연습하는 거 잘 봐뒀다가 나중에 합주할 때 참고하고, 버스킹 계획 잡아서 가져와.”
“네!”
“참, 너네 리더는 뽑았냐?”
“아니요.”
합주실을 쥐락펴락하는 내가 무서워 보였는지 1학년들은 칼 같은 대답을 했다.
학년 리더가 필요하다. 내년의 부장이 될 놈이지.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고, 내가 하는 것처럼 밴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서 개선 방향을 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듣는 귀가 좋아야 한다. 그게 선배들이 활동을 쥐뿔만큼도 안 한 나를 부장으로 뽑은 이유다.
그리고 리더를 다른 학년에서 뽑아서는 안 된다. 만약 상급생이 리더를 뽑는다면, 자발적으로 따라야 하는 멤버들의 반발이 생기게 되니까.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중요하다.
“진혁이 너는 2학년하고 공연 마치고 나면 1학년에 붙어서 버스킹도 해.”
“네, 형.”
아마 2학년 공연에서 보컬을 맡은 진혁이가 리더가 되겠지만, 그걸 내가 꽂을 수는 없으니 말은 아껴 두도록 하자.
짝짝짝!
“자, 일어나. 처음부터 연습 다시 간다. 모니터 스피커 볼륨 조금만 더 올려서 반주 잘 듣고, 지섭이 너는 박자 균일하게 하도록 노력해. 너무 흥분하지 말고, 이거 그런 노래 아니야.”
메트로놈의 추를 풀어 놓는다.
똑 딱 똑 딱.
“둘, 셋!”
촤촹~ 촹~
“I’d sell my soul just to see your face~”
합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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