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0
099화
3월이 지나고 4월이 될 무렵.
회사의 나머지 사람들은 전세기를 타고 LA로 향했고, 나는 경호원들만 대동하고 런던으로 향했다.
알버트에게 워낙 신세 진 것이 많아서 만나 보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조금 걱정되는 것이 사실.
상대가 누구인지 알버트에게서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미 각종 뉴스에서 상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건이라….”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도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고 해야 할까. 기억 속 그녀의 외모는 확실히 아름다웠지만,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질 못했으니까.
처음 저택의 정원에서 보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만나지 못했던 것이 벌써 꽤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다 깜박 잠들었더니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나도 스트레스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열세 시간에 달하는 비행 시간에 거의 깨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경호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숨을 쉬는지 중간에 체크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누가 나를 암살할 거라고 한다면, 집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경호원들의 고용주도 알버트 경 아니었나?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네…. 하하…. 감사합니다.”
“Welcome Home Sir.”
“Thank You….”
출입국 관리소 직원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라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온 국민이 알고 있겠지.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빨개졌다.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이건 사생활이었으니까.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을 것이 없어서 급하게 바로 나간 출구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지금 살쪘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시는 거죠?”
15kg이나 쪄서 다이어트에 돌입했던 것이 몇 달 전이었는데, 한국에서 어머니 덕에 더 쪄 버렸다.
“하하. 그 정도는 살이 쪘다고 볼 수 없죠. 아시잖습니까. 런던에서 살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뚱뚱한지.”
“…아마, 제가 아무리 먹어도 그 정도로 살이 찌지는 않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걷기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잖아. 가끔 걷기 귀찮아서 휠체어 타는 사람도 있다고.
한국인의 DNA가 있으면 그 정도로 살이 찔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겠지 아마도.
여기에서 살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정말 사람의 몰골이 아니란 말이야.
저택에 놓여 있던 검은색 롤스로이스의 문을 열어 준 아서는 조수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 정말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소식인가요?”
“알버트 경과 가족의 연을 맺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들으면 알버트 경하고 무슨 일이 있는 걸로 오해하겠네….
그렇게 애매하고 야릇하게 말하지 말고, 손녀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시라고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에요….”
“지난번에 저희 정원에서 차를 드신 그분이죠?”
아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괜히 나에게 말을 한다. 분명 이름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는 사람인 척.
‘나랑 알고 지낸 시간보다 알버트 경과 알고 지냈던 시간이 더 길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모르는 척하고 대답을 해 주었다.
“맞아요. 대관식 음악을 만들 때 저와 함께 지냈던.”
“정말 아름다운 분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이정현 경과 인연이 되실 줄 몰랐네요.”
아니, 그러니까 확정 짓지 마시라니까?
아무래도 계속 이런 식으로 몰아갈 것 같은 느낌에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마쳤다.
런던에 들어와서 느낀 것 한 가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택에 돌아와 내 방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안심할 수 없었다.
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거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잖아.
분명,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왔기 때문에 면역이 되었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전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른 약속한 날짜인 내일이 지나서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워 잠이라도 자보려 했지만 잠도 오질 않았다.
결국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던 밤이 지나고 약속 장소에 나가기 위해 씻고 나왔더니, 아서는 식사 준비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잠을 못 잤던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거의 십 년만이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 들리던 소리 들을 비워낼 수 있게 되었던 그때부터는 적당히 노력하면 잠들 수 있었는데 말이지.
“오늘따라 굉장히 피곤해 보이십니다.”
“네,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거든요.”
“그럴만하지요. 저도 결혼을 할 무렵에는 항상 와이프 생각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답니다.”
“네….”
이제는 대답할 기운도 없다. 오해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말해 봤자 먹힐 것 같지 않았으니까.
이 저택에서 지내면 늘 그렇듯이 정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의 루틴.
평소처럼 정원의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는데, 아서가 신문을 가져다주었다.
“풉!”
고맙다고 말하며 집어 드는 순간, 입에 든 커피와 빵이 혼합된 무언가를 나도 모르게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켁. 콜록콜록.”
“괜찮으십니까?”
가까이 다가온 아서가 컵에 담긴 물을 건넸지만, 마시면서 본 그의 눈은 걱정하는 눈초리가 아니라 분명 웃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내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것 같은데?
***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던 정현은 자신이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누군가와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과거 몇 번 있었던 만남과 헤어짐의 끝에 알게 되었던 것은, 연애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걸으려 했던 평범한 길이었을 뿐, 상대를 정말 사랑해서 연애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현은 자연스럽게 연애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이후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필요성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사방에서 몰려오는 압박감을 음악을 만들어서 평가받는 것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한편, 할아버지인 알버트가 잡아 놓은 약속에 나가기 위해 메건은 예약했던 메이크업 샵에서 한껏 꾸미는 중이었다.
“몇 년 전에 사교계에 데뷔하실 때 이후 오랜만인 것 같은데, 오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다 알고 계시잖아요. 괜히 제 입으로 듣고 싶어서 물어보시는 것 아니에요?”
신문과 TV 뉴스에서 매시간 보도되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샵에 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메이크업 살롱의 사장.
런던에 사는 많은 귀족의 메이크업을 전담하기에, 그들 사이 소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메이크업 살롱이었다.
다들 이곳에서 귀족 집안의 뒷이야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소문의 근원지랄까? 사장 역시도 자신의 가게가 소문의 중심이 되는 것을 원했고 즐겼다.
영국의 귀족계에는 사교 파티에 데뷔하는 것이 필수일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메이크업에 힘을 주기 위해 예약을 했던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던 해. 사교계에 데뷔하기 위해 이 샵에서 메이크업했던 메건은, 현재 영국에 몇 남지 않은 공작가의 자녀였기에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귀족계의 사정을 잘 아는 사장은 그녀의 얼굴 역시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사교계에 데뷔하기 위해 참석했던 파티에서 너무 까칠하고 도도하다는 이미지가 박혔던 메건.
이후 귀족계에서 그녀의 별명은 아름다운 외모에서 따온 얼음 공주가 되었고, 그 누구도 메건과의 중매를 원하지 않았다. 공작가의 사람이라는 것도 이유였지만, 역시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메건 역시 사교 파티에 다시는 참석하는 일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그때도 메건의 메이크업을 해 주었던 사장은 소문의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하지만, 메건은 그런 얕은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각종 권모술수가 많은 것이 귀족 사회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알버트로부터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까칠하시네. 설마 이정현 경과 만나는 자리에 나가서도 이러시는 것은 아니겠죠?”
“……. 메이크업 예쁘게 해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예쁘게 해 드릴 테니까, 잘되시면 이정현 경하고 한번 방문해 주세요. 아셨죠?”
“…….”
자신의 속마음이 읽혔다고 생각한 사장은 이제는 숨기지도 않으며 대놓고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결혼식 때도 꼭 저희 샵에 예약하시는 것 잊지 마세요.”
“…휴…. 알겠어요.”
마지못해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한 메건의 한마디에 사장의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메건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게를 나가더라도, 당장 내일부터 몇 달 동안 다 받지 못할 정도로 예약 손님이 넘치게 될 테니까.
***
약속 장소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정하고 싶었지만, 알버트가 정한 장소는 런던의 한복판 웨스트민스터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땅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런던에서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는 고급 레스토랑.
사실 영국에서 살면서 외식을 하게 되면 패스트푸드나 펍이었기 때문에, 고급 음식점을 잘 몰랐던 점이 내가 주도적으로 약속 장소를 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앗! 이정현이다.”
“얼마 전에 한국이라는 기사 봤는데, 정말 여기 있네? 신문에 나 있는 기사 그거 그냥 루머 아니었어?”
“얼마 후에 결혼한다는 게 정말이었나 봐.”
입구부터 보이는 각자의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정도 크기면 속삭이는 게 아니라 소리치는 거라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가볍게 들려 오는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과 시선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곡. 내가 만든 곡이었다. 음악 때문에 왠지 두 배로 부담스러운 것 같은 느낌.
“이정현 경. 일행분이 기다리고 계신 안쪽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입구에서 조금 당황한 사이에 다가온 웨이터는 나에게 예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묻지 않고 알아서 안내를 시작했다. 이런 상태라면 7천만 영국인이 모두 알지 않을까?
웨이터의 뒤를 따라 출입구를 지나고 방으로 향하는 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등을 찌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모르는 것 아니지만, 살짝 부담되었다.
잠도 안 자고 왔더니 눈까지 아파졌다.
등 뒤에 살짝 느껴지는 촉촉함. 식은땀이 흘러내린 증거.
몇 시간인 것처럼 느껴진 수십 초를 따라와 웨이터가 멈춘 곳은 VIP라고 쓰인 방의 문 앞.
똑똑-
“일행분 도착하셨습니다.”
웨이터가 노크하고 문을 열며 내가 도착했음을 방 안에 알렸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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