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1
100화
VIP실의 문이 열리고 미리 도착해 있던 두 사람이 보였다.
알버트와 그의 손녀 메건.
알버트는 내가 평소에 알던 그의 모습대로 정장을 입은 중후한 외모에 하얀색 백발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반면, 메건은 내가 몇 번이나 봐 왔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이정현 경.”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인사를 할 정도로 오늘의 메건은 눈이 부셨다.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거절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아…. 네…. 별말씀을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맞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렸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게 되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평소에는 알버트와 대화를 할 때도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겼던 적이 없던 것 같은데,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메건에게 향해 있는 눈에 모든 신경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화장품 하나 없이도 뚜렷하던 이목구비를 어떻게 꾸며 놓은 것인지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그녀가 입은 옷도 평소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신경을 쓴 느낌이었다.
머리 스타일은 90년대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던,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에서 보았던 것 같은 품위 있는 볼륨감.
입고 있는 옷은 어렸을 적에 보았던 ‘로마의 휴일’에서 보았던, 오드리 헵번의 옷같이 우아했다.
그러고 보니 컨셉이 약간 복고풍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절대로 촌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리에 도착해서 적당한 이야기로 거절을 하려 했는데, 이렇게 힘을 주고 나온 메건을 보니 거절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저 메이크업하며 머리 세팅까지 생각하면 아마 모르긴 해도 ‘웨딩 메이크업과 비슷한 급의 시간을 들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정성을 쏟은 듯한 모습.
전에 보았을 때처럼 머리를 빗은 뒤 가볍게 머리띠로 정리를 한 것이 아니라, 화보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오랫동안 손을 댄 것이 티가 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녀의 모습을 보다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한 가지.
메건이랑 잘되면 알버트가 내 할아버지가 되는 거잖아! 지금까지 엄청나게 이용해 먹었던 것 같은데….
나 할아버지를 이용해 먹은 천하의 나쁜 놈이 되는 건가?
“아시겠지만, 오늘 소개해 드릴 제 손녀 메건입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메건 그레이스 랭커스터입니다.”
“아, 네. 저는 아시겠지만 이정현입니다. 똑같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미들 네임 같은 것이 없어서요.”
그렇게 어색한 인사가 오간 다음 본격적인 소개팅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가볍게 윙크를 날린 알버트는 ‘젊은이들이 만나는 자리에 노인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 버렸는데, 그게 오히려 더 어색한 공기를 불러왔다.
“후…. 오늘 엄청나게 예쁘시네요.”
“오늘…. 말인가요?”
이런! 말실수한 것 같다.
오늘이 아니라 그냥 예쁘다고 해야 했는데, 오늘 예쁘다고 하면 이전에는 예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되어 버리는 것 같잖아.
그 말이 오간 뒤 양쪽 모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본격적으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에피타이저로 나온 치킨 샐러드를 포크로 조금씩 덜어 먹으며, 힐끔힐끔 메건을 훔쳐보고 있는데 갑자기 메건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시선은 치킨 샐러드를 향한 채.
“제 개인적인 사정이지만 영국의 귀족 사회에서 중매는 일생에 무조건 딱 한 번밖에 없다고 생각하셔도 돼요. 아마도 지금 이 자리가 제 인생에서 있을 수 있는 그 단 한 번이겠죠.”
“아…. 여기가 생각보다 무거운 자리였네요.”
메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평생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나를 만나기 위해 사용한다니.
아는 사이니까 그냥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해도 만나 줄 텐데 말이지. 내가 악보를 그려 줄 사람이 필요할 때 전화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일반적인 연애 결혼은 거의 일어나질 않거든요. 사교계에서 만나거나 중매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예요. 아무나 만날 수가 없죠. 가문의 이름을 이어야 하니까요.”
“아버지가 계시잖아요….”
그 말을 듣고 냉정하게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를 내가 빼앗았다고 볼 수도 있었으니까.
“저는 외동딸이에요. 아버님도 외동아들이죠. 그래서 가문의 이름을 이을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저는 형제가 없죠. 언젠가는 제가 가주가 되어야 합니다. 가문을 부흥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메건 양은 알버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 거예요? 자신의 의사도 없이?”
메건의 할아버지인 알버트가 어떤 직책인지는 가르쳐 준 적이 없었지만, 영국 정부의 고위직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형제나 가족의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물어보지 않았기에 알 방법이 없었다.
“저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저는 할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왔다면 이정현 경과 함께하는 것을 택했을 거예요. 지금은 이렇게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자리에 앉아 있지만 말이죠.”
“아….”
메건은 순식간에 파고들어 카운터 펀치를 날려 버렸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미녀가 날린 펀치는 너무 강력했다.
그 말에 나는 어질어질해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쪽 사교계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이정현 경에게 눈독 들이고 있어요. 서른 살도 되질 않아서 왕실 명예 훈장을 받을 정도의 실력도 있는 데다, 회사까지 크게 키울 정도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주변도 없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그런 높은 평가는 어색한데.
“그리고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하시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도 모르게 극존칭이 나와 버렸다. 지금 이 자리가 나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시집은 다 갔어요. 아마 이정현 경이 거절하신다면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몰라요.”
“뉴스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왔을 정도니까요.”
메건은 긴장된 분위기를 줄여 보려고 했는지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나는 거기에 맞춰 주려고 했지만, 뜻대로 잘 안 되었다.
그로 인해 내가 생각보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똑똑, 드르륵-
“메인 디쉬인 안심 스테이크와 와인입니다.”
와인에 대해 조예가 없던 라벨을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던 웨이터는 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와인 나이프를 꺼내 봉인을 제거하고 코르크를 뽑아내어 잔을 채워 준 뒤에 방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이 30년 동안 셀러에서 잠들어 있었다는 와인은 가격이 얼마일까 라며 잠시 다른 세상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있는 현실의 메건에게 다시 눈이 닿았다.
“흠흠…. 저는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알고 있어요. 그렇게 느껴졌고요.”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방 안의 분위기에 도저히 스테이크에는 손이 가질 않아, 와인이 채워진 잔을 살짝 들어 한 모금하고 나는 말을 다시 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에서는 결혼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죠.”
“그건 영국 사람인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만 좋자고 가족이 반대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죠. 물론 이정현 경을 가족들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요.”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머릿속에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한번 만나 보면 되지.’
아, 엄마.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한번 만나 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집안의 사람이에요. 어쩌죠?
나는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속으로 어머니께 말을 걸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시라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니에요.”
“네? 아, 네….”
이런 ‘소개팅’ 자리에서 남자인 내가 분위기를 이끌지 못하고, 여자인 메건이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사실 남녀가 만나는 자리에서 누가 주도하느냐는 관계가 없지만, 남자가 이렇게 분위기에 이끌려만 가는 건 좀 멋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결국 남자인 내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결론.
나는 반쯤 차 있던 와인 잔을 단숨에 비우고 메건에게 말했다.
“우리 한번 만나 보죠.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결정합시다. 서로 여러 번 만나왔다고는 하지만, 결혼할 정도로 잘 아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 저에게 사귀자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오늘부터 우리 1일 하죠.”
“…네, 서로 알아가요.”
수줍게 대답하는 메건의 얼굴은 앞에 놓인 와인 잔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와인만큼이나 붉게 달아올랐다.
서른 살의 봄에 봄처럼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생긴 날이었다.
***
“아니 그러니까, 그냥 사귀기만 하는 거라고요. 결혼 날짜네 뭐네 그런 거 안 잡았다니까?”
[뉴스에서는 5월에 결혼할 거라고 하던데…. 5월의 신부가 될 거라고.]어머니는 한국의 뉴스에서 나온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계셨다.
대체 뭐라는 말이 나온 건지 알고 싶었지만, 일단 어머니에게 사실만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그건 어머니랑 함께 정해야죠, 나 혼자 어떻게 정해요. 그리고 아직 결혼한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소개받아서 사귀기로 한 거라니까요.”
[그런데 아들이 만난다는 사람이 정말 그 왕가의 공주님이야?]“공주는 아니고 공작 가문의 사람인 건 맞아요. 왕가라고 해서 전부 공주는 아니니까.”
[알지? 엄마가 그리는 동화책에 공주님하고 왕자님이 잔뜩 나오는 거? 뉴스에서 나온 그 아가씨 진짜 공주님처럼 생겼던데….]“언제 한번 오세요. 소개해 드릴게….”
[정말?]어머니는 소개해 드린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내가 살아온 30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목소리.
항상 분위기 있고 느긋하게 말씀하시던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는 소녀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깔깔대며 웃으시던 어머니는 가 봐야겠다며 갑자기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아마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러 가시는 거겠지.
이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싶다가도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한국과 영국은 문화적인 차이가 크니까. 혹시나 내가 메건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헤어진다면, 그 일에 따라올 다른 소문으로 마음 상하실 수도 있으니까.
“휴우….”
“걱정거리가 있으신가 봅니다.”
에이, 깜짝이야.
매번 그렇지만 갑자기 등 뒤에 나타나 말을 거는 아서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놀라 버렸다.
“아, 어머니예요. 메건 양과 사귀기로 했다고 말씀드리느라….”
“부모님들은 항상 자녀들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으시죠.”
“우리 집은 조금 심해요. 얼마 전에는 저를 앉혀 놓고 몇 시간 동안 연애를 해야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 하셨다니까요.”
“좋은 배필을 일찍 만나는 것도 효도의 한 방법입니다.”
아서 어르신…. 영국까지 와서 명절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아요….
한국이나 영국이나 나이 든 어른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내 집에 런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인 리처드가 찾아왔다.
“영국에 돌아오셨다고 해서 급하게 찾아왔습니다. 뉴스는 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리처드 경. 뉴스가 전부 사실은 아닌 것 아시죠?”
“자세한 이야기는 알버트 경에게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둘이 친하다는 것을 깜박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런던에 들어오셔서 해야 할 일이 많으시겠지만, 혹시 저희 왕실 음악원에 잠깐 시간을 투자해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왕실 음악원에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리처드와는 지난번 리메이크 앨범 때 이후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정현 경을 왕실 음악원의 비상임 교수로 초빙하고 싶어서, 제가 설득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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