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2
101화
“이렇게 갑자기요?”
예전에도 나에게 교수직을 제안했었던 리처드.
하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내가 교수가 된다는 것에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기에 거절했던 기억이 있었다.
“제가 이번에 왕립 음악원의 학장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거든요.”
“어? 학장이 되신다고요? 그러면 상임 지휘자에서는 물러나시는 건가요?”
일반적으로 상임 지휘자는 교향악단의 공연 일정과 동일하게 함께 움직여야 하기에, 대학의 학장처럼 바쁜 위치에 있게 되면 물러나게 된다.
상임 지휘자는 그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를 같이했던 사람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버거울 수밖에.
“이제는 체력적으로 교향악단의 스케줄에 맞출 수가 없을 것 같더군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었지만, 저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했습니다. 교수가 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교수라는 직책에 학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사람이 교수가 되기도 하죠. 그리고 제가 학장이 되는 것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이 바로 이정현 경을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네요.”
“농담이 아닙니다. 현재 음악원에서 돌아다니는 이정현 경의 영상을 보았던 학생들이, 먼저 학교 측에 요청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영상이라고요?”
“메건 양이 제공했던 영상이었습니다. 저 역시 영상을 본 적이 있죠. 대관식의 음악을 만드시던 날에 촬영되었던 영상 말입니다.”
아, 그 영상. 영상이라고만 말해서 순간 긴장해 버렸다. 최근에 은근히 파파라치 몰카를 많이 당했던 것 때문이었다. 어떤 미친놈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찍었다고 했다.
어쨌거나 메건이 촬영했던 그 영상은 병원에서 퇴원한 뒤 나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완전히 잊고 살았었는데 리처드의 말에 기억이 났다.
“기억이 납니다. 몇 시간 동안 음악 작업만 하는 장면만 나오는 영상이었는데 말이죠.”
“그렇죠. 그렇게 한 가지에 몰입하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날은 정말 미친놈 같았지. 영상에서는 정말 밥을 먹었었나 하는 것 때문에 먹는 장면만 보았는데, 진짜 뭔가에 홀린 듯이 먹는 내 얼굴을 보고 공포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영상에 자극받은 작곡과 학생의 졸업 전시회에서 들려 준 작품들은 왕립 음악원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였죠.”
“제가 만드는 거는 뭐 그렇다 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큰 소질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으니까요.”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어야 남을 가르칠 수 있을 것 아닌가. 목소리만 갖고 있는 내가 남을 지적하는 걸 과연 받아들여 줄까?
피아노를 조금 연습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어 시작한 탓인지 이걸 피아노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하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저 역시 바이브를 예선부터 쭉 시청했던 애청자입니다만, 그런 것들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정현 경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역 교수들보다 예리했습니다.”
“…이건 상의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지금은 제가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결정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수십 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혼자서 쉽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게다가 지난번에 거절했을 때는 알겠다고 하며 바로 등 돌리고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확정을 짓겠다고 찾아온 모양새.
오늘은 이렇게 돌려보내고 결정은 상의를 거친 후에 해야겠지.
***
[필요 없는데?]“…내가 필요 없다고?”
[지금 여기는 잘 굴러가고 있어. 일이 터지기 전이나 새로운 앨범 나올 때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까, 아직 리가 필요하지는 않아. 문제들은 대부분 영수증 처리 같은 거니까.]크리스의 말에 조금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나 없이도 잘 굴러가게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었는지 알고 있을 텐데.
그나저나 말투가 점점 누구를 닮아가는 것 같은데 이거 누구 말투냐? …혹시 내 말투인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 봤다고 생각했더니 크리스의 말투가 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알았어. 특별한 일이 생기면 내가 바로 달려갈 테니까, 어지간한 일들은 모두 마리와 상의해서 결정해. 이제부터 지사장은 크리스가 하고, 의사 결정은 마리와 상의하는 거로….”
[아, 여자친구 생긴 거 축하해! 내가 매일 옆에 붙어 있었는데 언제 여자친구가 생긴 거지?]야, 내가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얘는 필터링 없이 바로 입으로 내뱉고 있었다. 나도 네가 남자친구 있다고 했을 때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전화를 끊자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LA에 채워 넣었던 대부분의 직원을 내가 직접 뽑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은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일까?
“차가운 음료수라도 드릴까요?”
아씨, 깜짝이야.
“아서, 심장 마비 걸리겠어요…. 기척 좀 내고 다녀주세요.”
“허허. 제 개인적으로는 혹시나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조용히 왔습니다.”
아니야. 분명히 이 아저씨 나 놀라게 하는 데에 맛 들인 거라고. 아니라면 매번 이럴 리가 없어.
아서의 눈빛은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단지 그의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에 조금 기분이 나빴다.
“아서에게 놀라서 심장 마비 걸리기 전에 운동을 좀 해야겠네요….”
“아, 다름이 아니라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요? 누군데요?”
요즘에는 매일매일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어제도 리처드가 찾아왔었으니까.
“김지숙 씨라고 이야기하면 아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런던에 오셨다.
이틀 전에 통화할 때 언제 한번 오시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바로 오실 줄….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셨어요?”
“언제 한번 오라는 말에 전화 끊고 바로 준비해서 달려왔지.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보고 싶은 건 내가 아니라 메건이었겠죠.
“정현이 오랜만이야.”
1층의 응접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장 친한 친구인 윤 교수님 그리고 혹 하나를 더 달고 오셨다.
바로 작은누나였다.
“집 엄청 좋네?”
“어? 누나도 왔네? 마감하느라고 바쁘다고 큰누나 결혼식에서도 금방 돌아가더니.”
“솔직히 그 자리에 내가 남아 있었어 봐. 엄마가 결혼할 사람 데려오라고 아주 그냥 잡아먹으려고 난리를 쳤을걸?”
그 마음 나도 잘 안다. 한국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그렇게 시달렸으니까.
“…. 나도 알지. 이해해 그 마음.”
“그래도 다행인 게 너 여자친구 생겼다는 소리에 엄마가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잖아. 역시 딸보다는 아들이라는 거겠지.”
내가 물어볼 때마다 누나들은 알아서 연애 잘하고 있으니 나보고 얼른 여자친구 만들라고 하시더니, 사실 작은누나도 혼자였나보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기엔 좀 늦지 않았나?
“전화라도 하고 오시지. 그러면 미리 전화해서 불렀을 텐데….”
“우리는 신경 쓰지 마. 그냥 평소랑 똑같이 해도 돼.”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을 하더라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
마치 첫 경기에 들어가는 선수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왕립 음악원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봐야겠다.
“얼마 전에 왕립 음악원 교수직 제의를 받았는데요.”
““교수?!“”
셋은 동시에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솔직히 어머니와 누나는 놀랄 거로 생각했지만, 윤 교수까지 놀랄 줄이야.
너무 놀라니까 말을 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계속 말해 봐. 교수직 제의를 받았는데?”
“아…. 교수직 제의를 받았는데, 내가 해도 되나 싶어서 그걸 물어보고 싶었죠.”
어머니는 내가 교수직 제의를 받은 것이 기쁜지 얼굴이 붉게 흥분하신 채로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이 교수님이 된다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할지 안 할지 저에게 물어봐서 일단은 고민해 보고 대답해 준다고 했으니까.”
“그게 고민할 게 있니? 아직 서른밖에 안 되었는데 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것부터가 대단한 건데.”
윤 교수는 서른에 교수직 제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평소의 차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어머니와 소리를 치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두 분이 친한 눈치가 별로 보이질 않아서 친구라는 것이 믿기질 않았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진짜 친해 보였다.
“…. 부럽다…. 언니도 국예종 교수직 제의받은 것 같던데…. 나만 매주 마감에 쫓겨 살잖아….”
“큰누나야 실적이 좋았잖아.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개인 앨범 판매 성적도 제일 좋고.”
항간에는 곡을 만들어 준 동생 덕을 보았네! 어쨌네! 라며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앨범을 내고 자신의 활동을 꾸준히 했던 것이 결국 인정을 받은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더 신기하네. 쉴 새 없이 계속 개인 공연과 협연을 했던 거로 들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한 걸까.
“엄마는 찬성이야. 무조건 찬성!”
“나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거라고 봐.”
여전히 흥분해서 찬성이라 외치는 어머니의 옆에서 어느새 특유의 차분함을 찾고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하는 윤 교수.
어차피 할 마음이 있기는 했다. 회사도 내가 없이 잘 굴러간다고 하니까, 조금은 여유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내가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고 해야겠지. 음악은 확실히 어떤 게 옳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교수직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거든.
“그나저나 이렇게 영국에서 만나니까 좀 신기하네요. 이 집에 가족들이 온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집이 엄청 좋네. 여기가 신혼집이라고 뉴스에 나왔던 거기 맞지?”
그 신혼집이 여기였어? 신혼집은 보통 결혼하고 나서 마련한 집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었나?
이건 한참 전에 마련한 집인데. 게다가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일종의 왕으로부터 받은 하사품이란 말이지.
21세기에 하사품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사실이니까.
“신혼집은 무슨 아직 손도 안 잡아 봤는데…. 그리고 이 집은 왕이 준 거예요. 내가 돈 주고 산 게 아니고.”
“나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도 모르겠어. 여기가 크니 아니면 LA에 있는 집이 크니?”
“여기가 열 배는 클걸요.”
“집 크기가 무슨 대학교 크기만 해! 이런 집에 혼자 살고 있는 거야?”
“대학교는 좀 과장 아냐? 내가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과장은 좀….”
여긴 뒷마당이 무슨 공원급 사이즈니까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산타모니카에 있는 집은 언덕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전망은 정말 좋지만, 크기만 갖고 비교한다면 이 집과 비교할 수는 없지.
“흠흠!”
아서가 등장했다. 분명 응접실에 네 명밖에 없었던 것 같았는데, 어디에서 등장한 것인지 전혀 눈치도 채질 못했다.
기척 좀 내 달라고 했더니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헛기침을 하면서 자신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렸다.
“어서 오세요, 아서. 무슨 일이신가요?”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또 누구야? 진짜 요 며칠 찾아오는 사람이 많네.
“누군데요?”
“알버트 경과 메건 양이 오셨습니다.”
이런…. 어머니가 만나고 싶다고 해도 일부러 메건을 불러서 보여 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이곳을 찾아왔다. 거기에 할아버지인 알버트까지 덤.
오늘 무슨 상견례 하는 건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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