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한국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과 달리 영국의 새 학년이 시작하는 9월.
지난 몇 개월 동안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지금까지 보내지 못했던 휴가를 마음껏 만끽하고 드디어 첫 출근을 하는 날이 되었다.
“…꼭 학교까지 따라와야 하나요?”
“요인의 보호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시설 중의 하나가 학교나 공항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테러의 발생 확률이 가장 높아 오히려 더 많은 인원을 요청해야 하지만 싫어하셔서 저 혼자 따라온 겁니다.”
평소에도 항상 붙어 있는 경호원이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학교까지 동행했다. 거절할 수도 없는 이유를 대며.
메건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경호가 심해졌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알버트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나를 경호하는 겁니까 아니면 이거 감시하는 겁니까?
학교 출근에 사용하기 위해 눈에 띄는 롤스로이스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세단을 마련했다.
TV에도 여러 번 노출되며 이미 번호판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롤스로이스가 움직이면, 파파라치들이 따라붙는다는 경호원들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립 음악원은 내가 사는 곳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바로 옆에 대학이 두 개나 있어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속했다.
출근길에 처음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거리에 많은 사람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가 멈추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내려 주변의 안전을 먼저 점검한 다음 문을 열어 주었다.
“오늘은 오후 다섯 시 정도가 되어야 나올 거예요. 그때까지 편히 쉬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이정현 경.”
일주일에 두 시간의 수업이 배정되어 있었지만,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가겠다고 말하기는 조금 껄끄러웠다.
아무래도 부임 첫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운전 기사에게 돌아올 시간을 말을 한 다음에야 주차장을 벗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800년대에 지어졌다고 알려진 영국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하얀색과 갈색 벽돌이 조화롭게 구성된 오래된 건물 외관.
입구에 쓰인 ‘Royal Academy of Music’이라는 글자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주차장을 벗어나 길거리에 맞닿은 정문 쪽으로 향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다.
1교시인 아홉 시부터 수업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먹고 가야 한다고 말하는 아서의 말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모두 먹은 뒤에 차를 타고 도착한 시간은 여덟 시 반.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하고 말았다. 수업을 위해 준비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첫 수업이라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는데 말이지.
내가 하는 강의의 제목은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는 더 좋은 음악’.
제목과는 다르게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연주나 편곡이 된 같은 음악을 들려 주고 비교해서 차이를 알려 주는 수업이었다.
교재도 없고 무엇을 가르칠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수업.
그런데 희한하게 내 수업을 신청한 사람이 정원 40명보다 몇 배는 많았다고 한다. 학부생 400명 중에 반 이상이 신청했다나.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한 첫 학기라 전공 커리큘럼도 아니고, 교양으로 편입되어 전공 학점으로 인정도 받을 수 없는 수업이었는데 말이다.
많은 사람이 강의 신청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리처드 경이 조금 더 큰 강의실을 사용해서 강의할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40명도 매우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상 학생들 모두에게 신경을 써 주기는 어려울 테니까. 솔직히 열 명 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그렇게 적은 인원이 듣는 수업은 금방 닫아 버리겠지.
대신 강의를 영상으로 기록해서 학생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올려 두어도 괜찮겠냐 물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배정된 교수실의 문을 내가 열기 전에 경호원이 이상이 없는지 체크를 하고 열어 주자,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일찍 오셨군요. 이정현 경.”
“좋은 아침이에요, 알렉산드라.”
“알렉스라고 불러 주세요.”
“익숙해지면요.”
그리스에서 유학 온 알렉산드라라는 여학생. 나의 조교를 맡아 주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교재가 필요 없는 수업을 진행했기에 따로 정리해야 할 것은 없었다. 레포트 같은 것도 없었고 그저 정규 과정에는 두 번의 시험이 전부. 말이 시험이지 그냥 음악을 듣고 느낀 것을 적어내는 것이었다.
마른행주를 들고 방 안 이곳저곳을 닦던 알렉산드라는 내가 방 안에 들어가자, 인사를 한 뒤 문이 달린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첫 수업이라 긴장되지는 않으세요?”
“…긴장되죠. 알렉산드라도 같이 듣지 않던가요?”
졸업반인 알렉산드라는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조교를 맡는 외부 인원이나 대학원생이 아니었다. 조교 일을 맡기에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바쁜 졸업반이기에 조교를 맡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본인이 워낙에 열정적으로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졸업을 하기 위한 학점에 들어가지도 않는 내 수업까지 참여하기로 한, 좋게 말하자면 열정이 있는 학생이었다.
“네! 어떤 음악을 들려 주실지 기대되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그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아! 아! 아! 아! 말하지 말아 주세요. 영화 스포일러 당하는 기분이란 말이에요.”
“아….”
그리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상한 학생이었다.
지금도 오늘 수업 내용을 미리 말해 주려고 하자 자신의 귀를 막으면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럴 거면 조교를 안 했어야지….
경호원은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알렉산드라의 모습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방 안 곳곳을 살펴보며 안전을 체크한 뒤에 말했다.
“이상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이웨이인 알렉산드라와 누가 나를 암살할지도 모른다는 기세로 안전 점검을 하는 경호원을 보며, 첫날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
학생들에게 첫 수업에서 들려 준 음악은 내가 만들었던 교향곡, 상실.
“분명 처음에 만들어서 협연하기로 했던 서울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완벽하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제가 나이가 조금 더 들자 부족하고 과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리메이크 버전이 발매된 후에도 여전히 빈티지 앨범이라며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잘 팔리고 있는 서울 교향악단 버전의 ‘상실’. 이 곡은 학생들도 잘 아는 곡이라 설명하기가 편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느껴지는 음악 소리에, 음악을 듣기 전에는 아직 멀게만 느껴지던 겨울이 바로 옆에 다가오는 것 같은 서늘함.
“이 부분에서 감정의 과잉이 느껴지죠. 제가 이 곡을 만들었을 때는 열일곱 살이었기에 감정의 절제라는 것을 모르던 때였습니다.”
부풀려진 감정선이 서늘함을 공포에 가까운 느낌의 오싹함으로 바꾸는 것이 나는 부담스러웠다.
“따라서 서울 필하모닉의 연주에서 제가 느꼈던 부족한 면을 런던 필하모닉과의 협연에서 고쳤던 것입니다.”
바로 이어서 들려 오는 런던 필하모닉이 연주한 리메이크 앨범 버전.
감정의 절제가 핵심이 되어 오싹함보다 허전함에 가깝게 만들어져, 누가 듣더라도 감정이 과잉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핵심이었다.
상실이라는 제목에서 상실감을 주는 것을 강화했다고 해야 할까. 원곡에서는 무언가를 잃어 허전하다는 것보다 괴롭다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차가운 것은 비슷했지만 원곡의 달라붙을 것 같은 드라이아이스가 아니라 물로 만들어진 얼음 같았다.
조금은 촉촉한 차가움. 겨울의 건조함에 약간의 촉촉함을 섞은 감정을 넣어서 편곡했다.
이 두 가지 음악을 만들 때 느꼈던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 주고, 수업의 마무리인 질문을 받기로 했다.
“자, 질문?”
척-
강의실에 앉아 있는 수십 명의 사람 중의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검은색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단발머리 여학생. 위에는 체크무늬 니트를 입었고, 그 안에는 하얀색 블라우스의 카라가 보였다.
“네, 질문하세요.”
“개인적으로는 원곡의 차가움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스트리밍 사이트의 판매량도 더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어째서 리메이크를 결심하셨습니까?”
어떻게 보면 근본적인 질문이다.
팔기 위해서 만들었던 매출이 잘 나오는 곡을 다시 편곡해서 발매한다?
이렇게 되면 판매의 총량의 차이는 없다. 어차피 듣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는 곡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곡가는 들어오는 수익은 변화가 크게 없음에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롭게 편곡을 한다.
이 질문의 핵심은 ‘전체 매출량은 변화가 거의 있을 수 없는데 왜 새로운 곡을 만드는 수고를 하였는가?’라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을 들일 거라면 돈이 되는 쪽에 손을 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질문으로 보아도 될 것 같았다.
“제 눈에 부족함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만들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요?”
아무래도 이 학생은 금전적이든 무엇이든 이것으로 인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듣고 싶은 것 같은데….
조금 실망을 안겨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해 줘야겠지.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죠. 중세 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라는 엄청나게 유명한 천장 벽화를 그려내었죠.
엄청나게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그리던 그에게 제자가 묻습니다. ‘스승님 천장의 벽화라 그렇게 세밀한 그림은 아무도 볼 수가 없습니다. 누가 본다고 그렇게 세세하게 그리십니까?’라고 말이죠.
제자의 말에 미켈란젤로는 무어라 대답했을까요?”
“…글쎄요….”
음악원의 학생들이 음악에만 신경을 쓰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상식적인 이야기도 잘 모른다는 건, 사람들의 모든 감정을 담아내야 하는 음악이라는 작업을 하기에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음악을 들으며 콩쿠르를 다니던 때보다, 집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때에 얻었던 것들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지.
이런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것들.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보잖아.’ 저도 그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들었을 때 부족함이 보였기 때문에 고쳤을 뿐이죠. 답변이 되었나요?”
“…네!”
내 답변을 듣고 실망할 거로 생각했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뀌면서 수업 시간은 끝이 났다.
“다음 주 수업에는 각자 전공하는 악기를 하나씩 들고 오세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때처럼 수업 종이 치지 않기에 수업을 언제 끝내든 그것은 내 마음대로였다.
공식적으로는 두 시간짜리 수업이었지만 한 시간 20분 만에 끝내 놓고 교수실로 향하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프로페서 리!”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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