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5
104화
“무슨 일이십니까, 윌리엄스 교수님.”
나를 불러세운 것은 음악원의 작곡과 교수인 존 윌리엄스.
이름만 보면 성과 이름이 바뀐 것도 같은 이 사람이 지금 영국 음악계의 최전선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사람이었다.
‘어둠의 기사’의 삽입곡들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영화 음악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독일인 한스 필러와 친구라고 했던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 중이고, 자신이 얻은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려고 하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
“이렇게 학교에서 만나 뵈니 반갑군요! 제가 얼마나 이정현 경을 모셔 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수업 시작하기 며칠 전에 한 번 뵙지 않았습니까, 하하.”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일흔 넘은 할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려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요 앞 펍에서 맥주 한잔 어떠십니까?”
“지금요? 아직 오전 10시인데요?”
아침 열 시부터 술을 마시자는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시간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하.”
“그래도 아침 열 시에 술을 마시는 것은 좀….”
“그렇다면 제 사무실에서 제가 만든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커피를 한잔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커피 정도는 좋죠.”
뭔가 석연치 않은 감각이긴 했지만, 술을 마시러 가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2층에 있는 나의 사무실과 달리 1층에 있는 존의 사무실.
경호원에게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들어간 사무실은 내가 지내는 방과 전혀 다른 방이었다. 크기도 더 큰 원룸 같은 느낌. 이 방 안에는 화장실도 딸린 것 같았다.
“다른 교수님의 사무실에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인데 제 사무실과 구조가 다르네요.”
“이 건물이 워낙 오래되었다 보니, 크기가 모두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등을 돌리고 커피를 만들고 있던 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가 담긴 두 개의 머그잔을 들고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종신 교수직을 제안받아 이렇게 이곳에 있지만, 제 나이가 사실 사회에서는 이미 은퇴를 해야 했던 나이 아니겠습니까.”
“일흔넷이면 아직은 괜찮죠. 요즘 의학이 발달해서 장수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보통 회사들의 정년이 예순에서 예순다섯 정도였던가. 보통의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저는 음악이 너무 재밌습니다. 한스 그 친구의 추천으로 영화 음악을 시작하면서 더 재밌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작가들이 글을 쓰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영화 음악에는 손을 대어 본 적이 없어서….”
“아직 손을 대 보신 적이 없다고요? 배우자가 되실 분이 영화 음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마 윌리엄스 교수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곳의 졸업생이니까요. 영화 음악을 한다고 저도 듣기는 했지만, 저에게 들려 주진 않네요.”
대체 어디에서 그런 소문을 내는 거냐.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 손만 잡고 잔 것도 아니고, 결혼하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야.
점점 소문이 커지는 느낌이라 결혼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야 예쁜 외모에 좋은 가문인 메건과 결혼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솔직히 아직 그런 대화를 하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나.
손에 쥔 머그잔에 입을 살짝 갖다 대자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요즘에 제가 손을 대고 있는 영화의 삽입곡입니다.”
영화를 보며 주의 깊게 삽입곡들을 의식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영상 없이 음악만 흘러나오는 것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음악은 어떤 장면에 들어가는 걸까.
들려 오는 멜로디에 올라타고 가볍게 눈을 감았다.
따뜻한 햇볕에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
자연이 아니라 도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러브 스토리’에서 나온 음악과 분위기가 비슷하네요.”
“오! 1971년에 개봉한 그 영화를 알고 계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로맨스 영화의 삽입곡을 맡으면서 만들어 본 곡입니다.”
서른밖에 안 된 나이라 60년 전 영화를 당연히 몰라야 정상이겠지만, 한국에서 주말의 명화로 많이 방영되었던 영화였다. 러브 스토리, 라붐 같은 사랑에 대한 영화가 인기가 많았으니까.
특히 그 눈밭 위에 쓰러지는 장면은 최고였지.
“눈을 감았을 때 장면이 떠오르는 것만 봐도 어떤 영화인지 감이 옵니다.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인가 보네요.”
“맞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젊은 세대가 보게 될 영화의 음악을 맡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감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죠.”
“아무래도 걱정을 하실 수밖에 없겠죠. 영화라는 것이 시각과 청각에서 괴리가 생기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요.”
“역시 이정현 경은 영화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존 윌리엄스 교수는 흥분하며 말을 했고, 우리는 머그잔의 커피를 비울 때까지 열띤 토론을 했다.
나보다 40살이나 많은 교수였지만 음악을 이야기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는 그런 모습이 참 열정적인 사람.
간혹 나이 들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집 같은 것이 느껴졌었는데, 이 사람에게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즐겁습니다! 정말 즐거워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이정현 경의 깊이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뭘요. 저 역시 윌리엄스 교수님께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은데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커피잔을 비우고 이야기에 소강상태가 왔을 때, 윌리엄스 교수는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찾아 돌아왔다.
그가 손에 들고 온 것은 태블릿 PC.
“바로 이 영화입니다. 아직 음악이 삽입된 것은 아니지요. 지금 후처리가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음악은 아직 완성되질 않았습니다.”
“…이렇게 외부인에게 보여 줘도 되는 건가요?”
영화는 사전에 유출되면 안 된다며 대본조차도 외부인에게 보여 주는 것을 꺼리는데, 이건 거의 완성이 다 된 영상이잖아.
“이정현 경이 어떻게 외부인입니까? 저와 이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영감을 불어넣어 주셨으니, 저도 어떤 장면을 두고 만들었는지 보여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아…. 네.”
은근히 논리적이다. 이 사람을 보고 있으면 한국에 있는 윤 교수가 생각난다. 열정적이고 하는 말들이 모두 논리적인 사람. 그런데 윤 교수와는 다르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갖고 있었다.
그에게 받은 태블릿 PC를 들고 내 방에 돌아오자 알렉산드라는 다른 수업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방에 경호원과 단둘이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해서 말을 걸어 보려고 했지만, 그는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싫은지 길게 이어가질 않았다.
Brrrr-
그때 타이밍 좋게 전화기가 진동했다.
“네, 이정현입니다.”
[메건이에요.]벌써 점심시간이 되었었나. 최근에는 회사에서 매번 점심시간이 되면 전화를 걸어 오는 메건이었다.
“마침 잘됐네요, 동료 교수님과 메건의 이야기를 해서 생각나던 참이에요.”
[제 이야기를… 요?]“네, 존 윌리엄스 교수요. 최근에 영화 음악을 하신다고 해서 이야기하다가 메건의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아…. 최근 영국 영화계에서 윌리엄스 교수님에게 러브콜을 많이 넣었었는데, 결국에는 영화 음악을 하기로 하셨나 보네요.]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길래 원래 영화 음악을 하던 사람이었나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었나 보다.
“저에게 최근에 작업 중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라고 태블릿 PC를 넘겨주셨는데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까칠하기로 유명하신 분인데 이정현 경은 벌써 인정받으셨나 봐요. 저에게는 졸업할 때까지 인정은커녕 학점도 제대로 안 주셨는데….]“그 정도로 어려운 사람 같지는 않던데요…. 저와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재밌었어요.”
그 사람 좋은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던데. 그냥 마음씨 좋은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메건에게 전혀 의외의 정보를 듣고 차분하게 그에 대한 것을 떠올려 봤지만, 내가 내었던 의견들을 수용해 주기도 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고집부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생각보다 그의 고집 있는 모습을 볼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교수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흥분해 있는 윌리엄스를 모두 나서서 말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은퇴를 하지 않고 왜 종신 교수직을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남은 삶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네!”
“그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윌리엄스 교수님. 저 역시 윌리엄스 교수님께 배웠던 학생이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어째서 내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가 아닌 뒷방 늙은이로 죽어 가라는 말을 하는 건가?!”
“그런 말 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있으시니, 쉬엄쉬엄하라는 이야기였지 않습니까.”
말싸움의 수준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낮았다. 누군가가 이제는 은퇴하셔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꺼냈던 것 같았다.
그 말에 흥분한 윌리엄스가 반발하며 큰 목소리를 내었고, 이내 말싸움이 되어 버렸다.
“영국의 음악은 나보다 더 나이가 들었어. 나도 새로운 것들을 요즘 세대들에게 배우며 살고 있지만, 자네들은 가르치려고만 하지 전혀 배우려 하질 않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영국의 음악이 인정받지 못하게 된 거네!”
가르치려고만 하고 남에게 배우려 하질 않는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야 발전이 있다. 고집을 부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그가 하는 말의 주된 내용은 이런 이야기였다. 필터를 전혀 장착하지 않은 속사포를 동료 교수들에게 발사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메건이 나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 전혀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 말이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머리가 굳어 버려 더는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윌리엄스 교수님 여기까지 하시죠.”
“험험. 이정현 경. 언제 오셨소.”
내가 직접 나서 다른 사람들과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것 같은 그의 어깨를 감싸며 말을 걸자, 그는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금세 흥분한 기색을 감추었다.
“저는 교수님 말씀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정현 경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지!”
“하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말해 주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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