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하지만 우리는 음악가 아니겠습니까. 말로 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좋은 음악을 들려 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끄으응…. 이정현 경의 말이 맞는 것 같군…. 나도 이제 늙었는지 금세 흥분해서 말로 받는단 말이지.”
“제가 들었던 윌리엄스 교수님의 음악에서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젊은 음악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겠죠.”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음악도 다른 것과 다를 바 없이 나이가 들어간다.
이 땅 위에 있는 것 중에 늙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유행은 돌고 돌아 과거에 인기가 있었던 곡이 현재에 인기가 생기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 인기가 있었던 곡이 오래된 음악이라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음악가라는 직업은 악보에 쓰인 음표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그 악보를 남긴 채 죽는다.
결국에는 음악가가 남긴 악보가 음악가를 대신한다.
그렇게 사라져간 수많은 음악가의 음악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각지의 교향악단이 연주하며 생명을 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가는 죽고 사라지지만,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가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
지금은 그저 제목으로만 불리는 나의 곡에도 언젠가는 내 이름이 붙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고대의 황제들이 바라던 불멸의 삶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존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가진 음악가는 이미 많은 악보를 세상에 남겨 놓았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 악보들에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붙여 줄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쌓아 온 악보 위에 서서 당당하게 있어도 좋을 나이에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중이었다.
윌리엄스에게 배웠던 학생들이 이제는 교수가 되어 그에게 했던 말이기에, 그는 더 화가 날 수밖에 없었겠지.
스승인 윌리엄스는 지금도 여전히 다른 이들의 음악에서 배워 가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었고, 그들은 가르치는 입장이라며 배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젊은 음악…. 정말 제 음악에서 그런 것이 느껴지셨습니까?”
“음악에 나이가 있다면 말이죠.”
내가 가볍게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하자,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젊은 교수들 사이에 나이 든 한 명. 누구보다도 고집 있다고 들었던 윌리엄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집스럽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말이지.
모였던 교수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거의 백 명이 넘어 보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윌리엄스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현재에 만족한 사람들. 내 눈에는 그들이 발전하기를 원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윌리엄스의 어깨를 감싸고 교수 모임을 빠져나가는 문을 열고, 문 앞에 뻗어 있는 복도를 따라 그와 함께 걸었다.
몇 걸음 걷기 시작하자 윌리엄스가 말을 시작했다.
“사실 이정현 경이 만드셨던 힙합 음악을 듣고 힙합을 하고 싶어져서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아직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다음에 한번 들려 주세요.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저에게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말만 했었는데, 저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이정현 경이 저를 제대로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일흔이라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수줍은 고백.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할아버지와 학교에서 절친이 되다니….
“이정현 경은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소리 말아 주세요…. 제가 엄청나게 나이 든 것 같잖아요.”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네.
윌리엄스뿐만이 아니라, 알버트나 리처드 그리고 재지까지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젠장, 나 영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잖아….
“아마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좋은 음악들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거겠죠….”
“윌리엄스 교수님의 음악들도 좋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정현 경입니다. 만드셨던 곡들을 듣고 영감이 넘쳐났지요.”
얼굴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하는 어린아이 같은 윌리엄스의 얼굴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런 말은 메건에게 들어도 부끄러울 것 같은데,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에게 듣다니.
내가 부끄러워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하하.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직은 일방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더 노력해야겠군요.”
말 그대로였다. 그는 나에게 아무런 영감도 주질 못했으니까. 그가 그만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자극할 만한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영감이라는 것은 자극을 받아야 나오는 것이니까. 아마 어렸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들은 모두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 나도 모르게 만들어졌던 것일 테니까.
“제가 게을러서 그럴 겁니다. 저는 내키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이니까요.”
“저도 좀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합니다만, 지금 멈춘다면 아마 다시는 일어서질 못할 겁니다. 그런 나이니까요.”
“언젠가는 저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겠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자신의 나이를 어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더는 나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은퇴하지 않는 고집쟁이 노교수라는 이미지였었는데, 그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
지난번 강의 시간에는 내 음악을 들으며 연주에서 작은 차이를 느끼게 하는 포인트를 알려 주었고, 이번 시간에는 각자의 연주를 들어 보려 악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는 정해진 것이 없는 수업이지만, 내가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딱 두 가지뿐.
첫 번째는 지난번 수업에서 했던 것처럼 음악의 차이를 짚어 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연주를 할 때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잘못된 연주를 짚어 주기 위해, 이곳 왕립 음악원의 이론 강의실을 썼던 지난번 강의와는 달리 이번에는 피아노가 있는 실습 강의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난번보다 확연히 많은 학생이 보인다. 분명 40인 수업이었을 텐데 그 배는 많아 보이는 게 내 눈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과 다음 수업까지 악기를 실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지난번보다 학생 수가 많아 보이는데 신청한 학생 수가 늘어난 건 아니겠죠?”
“아하하하.”
별로 웃기지도 않은 것에 웃어 주는 학생들.
“마흔 명의 악기 연주를 모두 듣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신청하지 않고 청강을 하기 위해 들어오신 분들은 부디 남는 시간을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에 신청하지 않은 사람의 연주를 듣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내가 교육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원하는 것 한두 가지는 해 줄 수가 있을 테니.
게다가 일주일에 두 시간만으로 돈을 잔뜩 받고 있으니, 이 정도쯤이야 해 줘도 상관없지.
“먼저, 에이드리언. 전공 악기가 피아노라고 되어 있네요. 나와서 한번 연주해 주시겠어요?”
“지, 지금 바로요?”
나는 그냥 이름이 올라와 있는 알파벳 순서에서 가장 위에 있는 에이드리언을 불렀을 뿐인데, 정작 본인의 이름이 불려 굉장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출석부에 나온 이름 순서대로 부르는 것이 이상한 건가.
“미안해요. 목록에 올라온 이름대로 체크를 해 줘야 중복되거나 빠지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적어도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 위주로 진행을 해야지,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신경 쓰기에는 지금 이 강의실 안에 들어와 있는 학생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 친구들은 내가 어렸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다른 것을 할 시간도 없이 음악만 하며 살아 와서 상식도 없고, 특별히 다른 취미도 없는 학생들.
콩쿠르에 나서기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습하는 학생들이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잘못된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는 것뿐.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자와 탈락자의 연주에는 정말 작은 차이만 있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는 것만이 높은 순위로 올라가는 방법이니까.
자신의 이름이 불릴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 해 봤다는 얼굴로 피아노 앞에 앉은 에이드리언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다시 물었다.
“어떤 곡을 치면 되나요?”
“그냥 좋아하는 곡을 쳐 보세요.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곡이면 됩니다.”
그렇게 학생들의 연주를 들으며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려 주는 시간을 가졌다.
***
“야, 에이드리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이 교수님 수업! 장난 아니라는데? 뭐가 부족한지 한순간에 파악하고 다 알려 주신대. 그 수업 듣고 실력 엄청나게 좋아졌다고 에이드리언이 그러더라.”
“진짜? 나도 신청했었는데…. 40명밖에 못 듣는다고 해서 잘렸었어….”
학교 앞 카페에서 두 명의 학생은 갑자기 실력이 확 좋아졌다고 하는 같은 과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울상을 지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단점을 고치기도 어렵지만, 알아채는 것 역시 어렵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단점을 알게 되면 고치는 데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알아채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수는 크게 잘못된 점이 없는 이상 알려 주지 않았다. 사소한 것들을 건드려 학생들의 연주가 더 안 좋아지면 그 원망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두 명당 한 명의 교수가 가르친다고 알려진 왕립 음악원의 상태가 이러했으니, 다른 학교들은 안 좋으면 안 좋았지 더 나아지질 못했다.
“우리 학교 측에 수업 확장 건의해 보자. 지금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리면 학부생 400명 중의 80명은 들을 수 있는 거잖아.”
“이정현 경 일 때문에 엄청 바쁘다고 들었는데 수업을 늘려 줄까?”
“일단 건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잖아. 바쁘지 않으면 만들어 주지 않을까?”
영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음악 학교라고 알려진 왕립 음악원.
이곳에 들어올 정도라는 것은 이미 굉장히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들의 연주에서 잘못된 부분을 알아채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
하지만 잘못된 점과 개선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알려 주는 것은, 왕립 음악원에서 가르치는 수많은 교수 중에 정현이 유일했다.
아직 학기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정현의 수업은 입소문을 타고 학생들의 사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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