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신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 11월이 되어 나는 리처드에게 불려 학장실에 가게 되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정현 경.”
부임하고 나서 몇 번이나 학장실에 드나들었었지만, 사전에 무슨 용무인지 가르쳐 주지 않고 불렀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교수가 되었던 이유가 리처드의 권유에 의해서였기 때문에, 나를 찾을 때마다 항상 모든 이유를 미리 말해 주었었는데 이번은 아니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다름이 아니라 이정현 경의 수업을 늘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 수업을 늘리고 싶으신 건가요?”
일주일에 한 번의 수업을 하며 쏠쏠한 돈을 받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수업을 늘려 달라고 말하는 리처드.
뭐야, 진짜 편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야.
“그리고 수업을 필수 수업으로 편성하고 싶습니다.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들어야 하는 수업으로 말이죠.”
“교양 수업을 필수로 바꾸시겠다…?”
“그렇습니다.”
학부생이 400명인데 그 400명을 전부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솔직히 이건 좀 무리 아닐까.
리처드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는 지금 상태로 만족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일주일에 한 번 수업하시는 것도 괜찮지만, 요청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말이죠….”
“누가 요청을 해요?”
내 수업이 그렇게 재밌을 리가 없는데? 그걸 왜 요청하는 거야.
“아직 소식을 못 들으셨나 보군요. 얼마 전 교수진의 추천을 받지 못했던 학생이 쇼팽 콩쿠르의 1차 예선을 통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가요?”
“그 학생 말로는 이정현 경의 조언으로 단점을 고치게 되어 예선을 신청했다고 하더군요.”
“아? 그런 학생이 있었나요?”
내 수업에 들어왔던 학생 중에 쇼팽 콩쿠르에 나갈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던 학생은 없었는데, 정말 의외의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수업을 들어오는 학생 중 누군가가 콩쿠르에 참가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영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음악 학교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수준이 낮은 학생들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 결과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눠 본 결과, 이정현 경의 수업 시간을 늘리는 것이 우리 학교의 수준을 전체적으로 높이는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 일단 조금 생각해 볼게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게다가 내 자유 시간을 뺏기잖아. 지금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이틀을 나오게 되는 것은 둘째치고 학생들의 수가 두 배가 된다.
지금도 수업에 나오는 학생들 대부분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다음 학기부터 두 배로 수업을 하라니!
“그럼요. 당연하죠. 지금도 바쁘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영국 음악계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전혀 바쁘지 않은데 다들 나를 바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이니까.
학장실의 문을 닫고 나오면서 살짝 부담되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시험을 어떻게 해야 하지?
40명의 채점과 80명의 채점은 그 강도 자체가 다르지 않나.
아니 수업을 전교생이 모두 듣게 만든다고 하면 인원수도 늘리지 않을까?
***
“졸업하기 위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된다고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에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나를 보러 오는 메건과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다가, 리처드의 요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메건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지금까지 필수 수업이었던 것은 윌리엄스 교수님이 강의하셨던 ‘화성학의 기초’ 수업밖에 없었어요! 이건 엄청난 거라고요!”
“…그래도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건 저에게 큰 부담이란 말이에요. 아직 두 달밖에 안 되어서 적응이 막 끝났는데.”
“제가 아직 학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이정현 경의 수업을 듣고 지금처럼 슬럼프 같은 것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예요….”
요즘에 슬럼프에 빠져서 멜로디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메건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슬럼프에 빠진 것에서 내가 꺼내줄 수는 없겠지만, 제가 수업했던 걸 볼 수는 있어요.”
“정말요?!”
내 수업은 학교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저장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물론 학생이 아니라 교수라도 볼 수 있었으니 내 계정을 사용해서 보면 된다.
“그런데 정말 별거 없어요. 학생들 연주를 듣고 잘못된 걸 말해 주고, 서로 다른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고 차이점을 짚어 주는 것 정도거든요.”
“빨리 보고 싶어요!”
메건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찻잔을 들어 그 우아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단숨에 들이켜며 말했다.
엄청 뜨거워 보였는데 저걸 어떻게 한 번에 마시는 거야.
“기, 기다려요. 아직 뜨겁다고요.”
나의 붙잡고 컴퓨터 앞으로 이끄는 메건에 의해 처음 손을 잡아 볼 수 있었다. 아마 메건은 기억도 못 할 테지만….
그렇게 메건은 내가 수업하던 영상을 몇 편 보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이제 멜로디가 술술 나와요!]“…왜죠?”
[뭐가요?]“제 영상에서 뭘 보고 그렇게 되신 건가 궁금해서….”
메건은 나의 수업 영상을 보고 나서 슬럼프를 벗어났다고 이야기했다. 대체 내 수업에서 뭘 보고 슬럼프를 고친 거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메건은 평소처럼 점심시간에 전화하지 않고, 오전에 전화해서 자신의 슬럼프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제 음악에서 뭐가 부족한지만 생각하고 계속 추가하려고만 했었는데, 이정현 경의 영상을 보니 너무 많이 넣으려고 했던 것 같더라고요.그래서 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까지 뺐더니, 음악이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완벽해졌어요! 정말 너무 대단해요! 존경해요!]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자 친구가 존경한다고 말하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의외로 메건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교향악들을 비교하면서 했던 영상이 아니라,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지 말고 단순하게 한두 가지만 담는 게 더 좋은 연주를 만든다’라고 했던 말 한마디.
나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슬럼프를 이겨낸 것이 더 신기했다.
이 말은 기교를 너무 많이 부리려고 하던 학생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려서 제대로 된 연주를 못 하던 학생이라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었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어느 수준이 되면 알게 되는데, 그걸 실천하는 것은 아는 것보다 어려우니까.
[슬럼프에 빠지자마자 이정현 경에게 물어볼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진작에 나아졌을 텐데….]“저, 아무리 그래도 여자 친구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요….”
메건의 말에 모 한국 영화의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라는 명대사가 떠올랐다.
거기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사람이 될 것만 같단 말이지.
[아…. 우리 사귀는 사이였죠….]“그것도 양쪽 부모님들이 공인한 사이죠….”
길거리에 둘이 함께 돌아다니면 다음 날 신문 1면에 기사가 올라오는 사이.
뉴스에는 벌써 2세가 어쩌고 하는 기사까지 올라왔지만, 손 한 번 잡아 본 것이 전부인 사이.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이미 부부와도 다를 바가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으니까.
서로 어색해하다 전화를 끊고 집에서 다시 빈둥대는 삶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에 6일은 지금처럼 빈둥대고 학교에 나가는 날은 하루.
이런 날이 반복되며 조금은 무기력한 느낌이 든다.
“운동이라도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서가 보기에도 제가 운동 부족 같아 보이시나요…?”
“그런 것이 아니라 무료해 보이십니다.”
평소처럼 침대에 엎드려 멍하니 있었더니 아서가 찾아왔다. 아침을 먹고 들어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었나 보다.
“며칠 전에 수업 일수를 늘려 보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늘리면 좀 나아질까요?”
“수업을 늘려서 이정현 경이 불편한 점이 생긴다면 안 하시는 것이 옳겠지요.”
“그 말은 불편한 점이 없으면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건가요?”
“결정은 제가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연륜인가. 적절한 위치에서 피해 가는 아서의 말에 나는 조금 더 고민했다. 솔직히 학생 수를 늘린다고 피곤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제안을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메건의 말로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더는 고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계속 고민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결정을 내렸다.
***
“할게요.”
“오오! 정말 수업을 늘려 주시겠다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이로써 저희 왕립 음악원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거창하게 왕립 음악원이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리처드의 말에 조금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모든 학생이 수업을 듣게 하고 싶다는 것은 괜찮은데, 저는 솔직히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수업만 필수로 해 주시고, 시험이 아닌 출석으로만 점수를 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내 마음속에 걸렸던 것 한 가지. 내 수업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을 제외해 달라는 것. 즉, 시험을 없애 달라는 말이었다.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만 아니라면 학부생 400명뿐만이 아니라 대학원생까지 전부 들어도 상관없었다.
내 눈에는 학생들이 전부 수준 미달로 보여 점수를 내 기준으로 준다면, 적어도 세 명 중의 한 명은 낙제를 받을 것을 걱정했던 것뿐이니까.
“으음…. 모든 수업은 평가를 동반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리처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학교라는 것의 특성상 모든 수업의 성과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험을 면제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한번 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사회의 안건으로 올려두겠습니다. 제가 학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것을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학장이라고 하더라도 왕립 음악원의 특성상 이사회의 꼭대기에는 영국의 국왕이 있었으니까.
결국 대부분의 주요 안건들을 처리하는 것은 학장인 리처드가 아닌 윌리엄 국왕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결과가 나오면 말해 주십시오.”
수업도 없는 날에 학교에 찾아와 학장인 리처드와 이야기를 마쳤다.
일주일에 두 번의 수업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겠지만, 아직은 학교에 나오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정할 것들이 많은지 결과를 알려 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오랜만입니다. 이정현 경.]그리고 그 결과를 내게 알려 준 것은 리처드가 아니라, 영국의 국왕 윌리엄 5세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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