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폐하께서 직접 전화를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정현 경의 수업에서 시험을 없애 달라는 요청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험을 없애면 리처드 경의 말대로 정말 왕립 음악원 학생들의 수준이 더 올라갈 수 있는 겁니까?]리처드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 5세는 시험을 없애서 어떻게 수준을 높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돌려서 하고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될 것을 다들 돌려서 말하는 것이 품위 있는 화법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사람은 귀찮고 짜증이 나지.
“시험을 없앤다고 학생들의 수준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을 없애 달라고 했던 것은 제가 조금 더 그들의 연주를 꼼꼼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일 뿐이죠. 시험 문제를 생각하고 채점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개개인의 연주를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아…. 그런 이야기였군요. 내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제가 왕립 음악원의 수준 전체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만, 지금보다 더 많은 학생들을 담당할 수 있을 겁니다. 리처드 경의 말로는 그렇게 하면 수준이 올라갈 거라고 하더군요.”
단점 몇 가지를 지적한다고 얼마나 연주가 나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로 좀 더 나은 수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아마도 모든 학생의 수준을 올릴 수 있을 거다.
[잘 알았습니다. 이정현 경이 원하는 대로 하시지요. 리처드 경에게는 말해 두겠습니다.]“감사합니다. 폐하.”
윌리엄 5세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서울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면 폐하니 뭐니 하는 말을 한다고 사람들이 미친놈 취급을 하지는 않았을까?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며 왕과 전화 통화를 하는 상상을 했더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컥! 콜록콜록.”
오늘도 어김없이 뒤에서 아서가 등장했다.
“여기 물 드시죠.”
“…기척 좀 하시라니까요. 내가 임산부였어 봐. 바로 애 떨어졌어요.”
컵에다 미리 물까지 준비한 걸 보면 놀랄 거라는 걸 예상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나를 놀라게 만드는 데에 재미를 붙인 것 같은데 별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내가 고용인이기는 하지만, 중세 시대처럼 상전은 아니니까. 게다가 돈도 내가 내주는 것이 아니고.
“전화를 기분 좋게 받으시는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그만 말을 걸었습니다.”
“…폐하께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요.”
“시험을 보지 않는 수업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제 수업은 시험이 필요한 수업이 아니거든요. 음악을 듣는 귀를 훈련하고, 연주할 때 단점을 고치는 것뿐이라.”
그리고 시험 문제를 생각하고 채점을 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만 생각해도 너무 편안한 수업이다. 사실 누군가의 연주를 지적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게 가장 부담이었으니까.
“호오…. 신기하군요. 이정현 경은 참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거 칭찬인 거죠?”
아서는 항상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하고 있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칭찬을 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저 아저씨, 나 놀리는 거 은근히 즐기는 것 같단 말이야.
***
“미스 랭커스터. 이번 삽입곡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관람객들의 반응도 너무 좋아요!”
“…칭찬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메건이 일하고 있는 미디어 삽입곡 전문 작곡 회사. 그녀는 거의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던 슬럼프를 이겨내고, 겨우겨우 곡을 제출해 개봉 일을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의 흥행 성적이 올라가며 삽입곡의 평가도 좋았기에 메건의 기분도 굉장히 좋았다.
“이거 혹시 이정현 경이 대신 만들어 준 것 아니에요?”
“만약에 그랬다면 한 달이나 걸리지는 않았겠죠…. 그는 앉은 자리에서 교향곡까지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조언은 받았어요.”
직접 해 준 조언은 아니었지만, 정현의 말을 듣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번 자신이 슬럼프 빠질 때면 밑바닥까지 떨어지기 전에 꺼내주었던 또 다른 영상을 생각하며 메건은 매니저에게 말했다.
“이정현 경의 조언이라…. 그것만으로 이렇게 퀄리티가 올라갈 수 있다니, 나도 한번 받아 보고 싶네요.”
“…….”
“결혼식에 초대해 줄 거예요? 뉴스에서는 내년 5월에 결혼한다고 하던데?”
둘의 관계가 뉴스에 지속해서 보도되고 있어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뉴스에서 생긴 궁금증을 메건에게 물어보는 것이 일상화가 되어 버렸다.
물론 메건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일은 없었지만.
“아직 모르겠어요. 날짜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이 정하실 거라서.”
“그렇지…. 미스 랭커스터는 공작가 사람이니까 직접 정하기는 어렵겠죠.”
“그렇죠….”
귀족 집안에 대한 일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나 만화에서 보았던 것들로 지레짐작하며 이야기를 했다.
메건은 오히려 이런 식으로 짐작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았다. 자신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보아왔던 상황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니까.
“그럼 수고했어요.”
“앗! 저기 매니저님!”
“네?”
“저 이번 일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메건은 마음속에 결정해 두었던 말을 매니저에게 꺼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꼈던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끙끙 앓으며 조금도 진행하지 못했던 것을 정현의 수업 영상을 보고 단숨에 돌파하게 된 것을 느끼며 아직 현업에 나서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아쉽네요. 그러면 일을 그만두고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신부 수업에 들어가나요?”
“아뇨. 대학원에 들어가려고요.”
“대학원이요?”
“네…. 제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서요. 이정현 경의 조언 없이도 완벽한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메건의 말에 매니저는 입을 벌리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현과 연인 관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고 예쁜 귀족 집안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던 메건의 오기로 뭉친 말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는 메건이 언젠가는 그만두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워낙에 잘나간다고 알려진 음악가인 이정현과 결혼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상대였고, 집안도 왕가의 방계라 돈이 부족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요…. 나중에 멋진 곡을 들려 주기를 기대할게요.”
“지금까지 모자란 저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니저는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메건을 붙잡지는 않았다.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작곡가들이 넘쳐났던 것도 이유였지만, 창작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강요한다고 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유명인이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고.
그렇게 메건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 큰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도 재밌었지만, 정말 자신에게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회사를 그만둔 것에 언론은 난리가 났다. 결혼이 임박해 회사를 그만두고 신부 수업에 돌입하는 것이라는 루머가 여기저기에서 피어났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악성 가쉽지에는 정현과 결별한 뒤, 그 충격에 식음을 전폐해서 회사에서 잘렸다는 이야기도 실렸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언론에 잠시라도 비추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테지만, 메건은 정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결정에서 만들어진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들 예쁘기만 한 공작가의 손녀라고 알고 있는 메건 랭커스터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고집이 있었다.
***
“아니, 어쩌다가 이런 기사가 나가게 내버려 둔 거예요?”
매주 한두 번씩 찾아오던 메건이 2주 정도 찾아오질 않아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뒤늦게 확인하자 언론들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신부 수업설, 파혼설 심지어 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뒀거든요. 그걸 자기네들 멋대로 생각하는 거예요.]“회사를 그만뒀다고 식음을 전폐해서 폐인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온다고요?”
아무리 삼류 가쉽지라고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나열한 기사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기사 자체를 추측성으로 썼기 때문에 소송을 걸어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처음에는 다들 신부 수업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그게 점점 변해가더라고요….]“그래서 진짜 신부 수업하는 거예요?”
[아뇨. 집에서 멍하니 있었어요….]“차 보낼 테니까 타고 와요. 오늘 저녁은 나랑 먹어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메건을 데려올 차를 보냈다. 이 정도면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부탁해도 됐을 텐데, 독립심이 강한 건지 아니면 미련한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한 메건과 함께 한인 타운에 있는 한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파파라치들이 보란 듯이 돌아다녔다.
입소문이 빠르기로 유명한 한인 커뮤니티 안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퍼질 거다.
“이렇게 같이 있는 모습만 보여줘도 잠잠해질 거예요.”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그렇게 당차던 메건은 어디로 간 거예요?”
“제가 문제를 만들면 이정현 경에게 민폐가 되니까, 저만 조금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메건이 보인 의외의 희생정신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내게 꼭 말해요.”
“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처음에는 굉장히 당돌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공작가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캐릭터가 바뀌어 버렸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연락을 좀 더 자주 해야 했는데, 되려 내가 미안하네요.”
“…….”
항상 연락을 받는 입장이라 내가 먼저 할 생각을 못 했다. 메건은 예전과 달리 굉장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혹시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안 좋은 소문이 도는 것이 처음이라 충격을 받았던 걸까?
“이번 일로 충격받았어요?”
“…네…. 사실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면 기분이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정현 경이 왜 언론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됐었죠….”
“이제는 내가 왜 언론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네요?”
메건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괴로움을 이번 일로 정말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지금 당장은 괴롭겠지만, 미디어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테니.
그런데 아무리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을 거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는 건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아직 결혼은 무리인 것 같고 이참에 약혼이라도 할래요?”
나는 메건에게 물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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