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
010화
클럽 오디션을 보는 곡은 Stay로 정했으니 일단은 이 곡만 연습하는 것이 맞다.
어설프지만 그래도 그 어설픈 맛이 아마추어 밴드의 맛이다. 뭔가 아슬아슬하고 위험할 것 같은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놀이동산의 모 드롭처럼 그 짜릿함 말이지.
하지만, 한 곡을 더 준비해야 무대에 올라갈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멤버 녀석들이 하고 싶다고 했던 곡들 중에서 괜찮은 것이 있나 찾아보는 중.
첫 곡을 대중적이지 않은 곡을 골랐기 때문에, 두 번째 곡은 대중적이고 유명한 것으로 골라야 한다.
관중들에게 우리들의 색을 보여 주는 곡이 첫 번째 곡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곡은 모두 아는 곡을 골라서 관중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즐거워야 한다. 이 대전제는 밴드들이 밴드 활동을 하는 목적이자 의무다.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닌 무명 밴드가 자신들만의 색을 강요한다면, 그 음악은 사람들이 즐길 수가 없게 된다. 아마 금세 지쳐 나가떨어져 버리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라디오헤드의 Creep이나 High and Dry 같은 유명한 곡도 생각해 봤지만 글쎄….
두곡 연속으로 밝지 않은 곡을 한다는 건 관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밝은 노래를 한다는 건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사람이 밝은 음악보다 우울한 음악에 더 공감을 하게 된다는 건, 이미 여러 방면에서 증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어둡기만 한 곡을 선택한다면 관객이 지칠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마치 도돌이표처럼 발상을 시작하고 이 곡 저 곡 떠올릴 때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만들어 놓은 곡을 꺼내 놓는 것도 애매하다. 누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좋은지 안 좋은지를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히트를 한 유명한 곡이라는 전제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 번째 곡은 모두가 알고 있을 만한 곡을 골라야 호응도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첫 곡으로 사용할 Stay는 증명 단계, 두 번째 곡은 밴드와 관중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메이저 곡을 골라야 한다.
“아…. 머리 아파….”
합주실에서 다른 곡을 연습하는 와중에 두 번째 곡을 생각하고 있는 건 참 불성실하다 싶지만, 이놈들이 이 상황에서 금방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가 않아 나로서는 적당히 타협했다 싶다.
밴드 생활에서는 합주건 공연이건 끝났다고 해서 그럼 내일 봐 하고 헤어지는 일은 없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놈들 머릿속에는 한 것도 없으면서 뒤풀이는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곱창은 역시 양념 없는 것이 좋다. 소금에 참기름을 조금 두르면 곱창의 그 맛에 고소함을 더해 줄 수 있지.
그냥 소금장에만 찍어 먹어도 좋지만 쌈장을 조금 넣어서 쌈을 싸도 괜찮다.
교대역에는 은근히 많은 맛집들이 있는데 특히 곱창집이 많다. 이 동네에 원조 곱창집이라고 하는 곳 만 네 군데. 맛은 고만고만한데 죄다 원조라고 주장을 한다. 우리 같은 토박이는 진짜 원조가 어디인지 알고 있지만 말야.
그렇게 곱창의 맛을 음미하고 있으려니 진혁이가 말을 걸어온다.
“정현이 형. 다음에 합주할 때 한 곡만 불러 주시면 안 돼요?”
뒤풀이장으로 항상 우리가 애용하는 교대역 곱창집에서 진혁이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그건 또 뭔 소리야? 내가 왜 불러. 무대에도 안 올라가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를 질러 버렸다.
“수원이 형한테 들었는데, 형이 노래 잘하신다고 해서….”
이제는 자랑까지 하나 보다. 김수원 저놈은 나를 그렇게 오래 봐왔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한다.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성악과 락의 발성법이 달라서 성악을 잘한다고 무조건 락도 잘할 수는 없다.
내가 노래를 부른 것도 못 봐서 궁금한 것도 있을 거고.
한마디로 이놈은 증거를 보고 싶다는 거다. 수원이 놈이 했던 노래를 잘한다는 말에 대한 증거.
“…진혁이 너는 사기 조심해라. 사기꾼 입에서 나오는 걸 그렇게 쉽게 믿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 보증 같은 건 절대 서 주지 말고.”
“내가 뭘!”
오히려 성내는 게 더 사짜 같은 놈.
“얘가 하는 말들 중에 나에 대한 말은 99%가 뻥이라고 보면 되니까 믿지 말고 얼른 먹기나 해. 얘가 나랑 유치원 때부터 붙어 다닌 놈이라, 나 놀리고 싶어서 그런 거야.”
“네….”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곱창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진혁.
기말고사가 끝난 고등학교의 분위기는 대충 놀자판이라고 보면 된다.
방학이 시작할 때까지는 크게 요구하는 것도 없고, 또 다른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니 대략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놀자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분위기를 타고 방학 전에 연습을 빡세게 하면서 방학이 끝나기 전 클럽 공연을 하는 게 목표다. 그 전에 먼저 오디션을 봐야겠지만.
“아, 일단 두 번째 곡을 정해야 하는데 의견 없어?”
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듣는 사람이 많은 자리이지만, 그래도 두 번째 곡은 중요하다.
“원하는 곡들 적어서 준 건 봤는데 여기 대중적이고 유명한 곡이 하나도 없어서 고르기가 좀 애매해.”
쌈을 싸 먹으며 대중적이고 유명한 곡을 고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한다.
“메탈리카는 어때? Enter Sand Man이나 Master of Puppets.”
두 곡 다 메탈리카의 명곡이다. 개인적으로는 Fuel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유명하기로는 저 두 곡만 한 것이 없다. 김지섭은 은근히 취향이 메이저라니까.
“그리고 또?”
일단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메탈리카를 적어 넣는데, 유자가 말을 했다.
“메탈리카는 좀 무겁지 않을까? 보컬 톤도 중량감 실으려면 무리가 될 거고.”
쿨럭, 쿨럭.
뜬금없이 보컬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진혁이가 놀란 모양이다.
“이건 어때?”
말을 끝까지 해라, 이놈아. 일단 주목받고 싶어서 마구 던지는 느낌인데 이거. 유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했다.
“나탈리 임부룰리아.”
나탈리 임부룰리아. 호주의 배우 이자 가수. 1997년에 에드나 스왑의 Torn이라는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영국 및 미국의 빌보드를 폭격했다.
본업이 배우였다는 점과 이 Torn이라는 곡이 리메이크곡이라는 건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라디오의 음원 깡패였다.
2010년대까지도 이 노래 한 곡으로 먹고사는 다른 의미로 굉장한 사람이다. 자기가 만든 노래도 아닌데 말이지. 뭐, 다른 곡들은 안타깝게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음? Torn? 그거 원곡은 다른 사람인데. 에드나 스왑이었나?”
역시 김수원은 이것저것 다 알고 있구만. 유자가 하자고 말을 했던 것은 유명하고 다들 즐길 수 있을 만한 곡을 꼽자는 거였는데, 거기에서 다른 밴드가 원곡이라며 태클을 걸어 버린다.
원곡이 누구건 그런 건 상관없다고….
휴대폰 메모장에 나탈리 임부룰리아를 적어 넣고 내가 물었다.
“이거 하려면 편곡해야 하는 거 아니냐? 보컬이 여자잖아.”
“이거 남자 버전도 있어.”
이 노래에 남자 버전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워낙에 오랫동안 인기 있던 곡이고 굉장히 슬픈 가사에 제목부터 ‘찢어졌다’라는 걸 의미하는 Torn.
그런데 그 슬픈 가사를 상대적으로 밝은 반주가 받쳐 주는 어떻게 보면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밝은 이별 곡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광고건 어디건 간에 엄청나게 노출되었던 곡이라 모르는 사람도 없을 만한 메이저 곡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관객이 호응하는 문제는 그것과는 별개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의견을 구해 보기로 했다.
“또 다른 곡은? 나는 스키드로우도 괜찮을 것 같은데. I remember you나 Youth gone wild 같은 거.”
내가 스키드로우를 제시하자 그 말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밴드의 곡이 쏟아진다. 막 던지지 말라고, 이것들아.
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미스터 빅, 린킨 파크, 건스 앤 로지즈, 후바스 탱크 그리고 명곡 중의 명곡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까지.
“니네가 할 수 있는 걸 골라라, 막 던지지 말고. 우리가 레드 제플린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난이도는 둘째치고 8분짜리 곡인데.”
대중음악의 길이가 4분 내외가 된 것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제한 시간 때문인 것도 있지만, 밴드 연주에서 5분 전후로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도 있다.
특히 드럼. 박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 이상의 것도 볼 수 있게 된다.
4분. 그게 대중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악에 주어진 시간이다. 그러니까 8분이면 아마추어 밴드에게는 정말 연주의 난이도 이상으로 힘든 곡이 될 거라는 소리다.
그나저나 툭하면 삼천포로 가 버리는 대화의 끝은 역시나 선곡보다는 하고 싶은 목표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밴드 곡들 중에 명곡이라 불리는 것들 대부분 80~90년대에 몰려 있다.
그래서 여전히 90년대 곡들을 리메이크하는 밴드들도 많고 방송국에서도 추억팔이로 장사가 되니 그 곡들은 여전히 잘 팔린다.
머라이어 캐리가 매년 크리스마스에 거둬들이는 금액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꾸준히 팔리는 음악들이라고 해야겠지.
지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밴드 곡이라고 한정한다면 퀸의 곡들이 유력하지 않을까 싶지만 퀸은 100% 다른 밴드가 할 거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거의 천만 관객을 동원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니까.
때문에 하루에 6개의 밴드가 무대에 서는 클럽 공연에서, 우리를 제외한 5개의 밴드 중에 퀸 노래를 커버하지 않을 가능성은 오히려 낮을 거다. 그러니까 퀸은 제외하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밴드를 하는 것들은 전부 관심 종자이기 때문이다.
원곡을 부른 밴드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호응을 자신들을 향한 호응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안 되는 건데, 관심 종자들은 그걸 자신들이 그 밴드의 인기만큼 가졌다고 착각을 해버린다.
그래서 무조건 메이저 밴드의 메이저 곡을 커버한다. 그들의 인기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지.
뒤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애들이 던져 준 수많은 곡들 중에 유명하고 대중적이지만, 누구도 클럽 공연에서 커버하지 않을 만한 곡을 찾아야 한다.
나는 작은누나에게 묻기로 했다. 공연하는 라이브 클럽 말고 춤추는 클럽에 갈 정도로 이 집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람이다.
클래식 공연 찾아다니는 큰누나나 어머니보다는 훨씬.
휴대폰의 메모장을 보여 주면서 어떤 곡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보니.
“이게 뭔데?”
“학교 밴드에서 공연하는데 어떤 곡이 나을까 해서.”
“학교 밴드? 너 학교 밴드를 하고 있었어?”
“왜? 그게 뭐가 문제야?”
“아니, 너 성악했었잖아. 밴드랑 성악은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누나는 내가 성악하는 거 들어 본 적도 없잖아.”
“뭐, 그거야 니가 안 불러서 그런거고.”
나는 가족들을 콩쿠르에 부른 적이 없다. 그 말은 가족들이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던 적이 없다는 거다. 노래방도 안 가니까.
그런데도 가족에게까지 ‘성악 하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번에 봤던 내 친구 지혜, 걔 동생이랑 이야기해 볼래? 걔는 좀 알지도 몰라. 예고라고 하잖아. 나는 여기에 있는 거 하나도 모르겠거든.”
아, 6월에 교생 실습을 마치고 갔던 작은누나의 친구. 이름이 유지혜라고 했었지. 동생이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인싸 중의 인싸인 누나보다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확실히 밴드 음악이 많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명곡들이라고 정리해 뒀던 건데, 이 나라에서 20대 초중반의 여성이 락 밴드의 곡들을 알고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아무래도.
“그래,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내가 그냥 막 정해도 되는데, 기왕 하는 거 관객 호응이랑 이런저런 걸 생각해야 해서 이 동생 머리가 아프다.”
“그럼 내일 보자고 할까?”
“처음 보는 사람을 집으로 부른다고? 내일 바쁘지 않으면 그냥 밖에서 점심이나 먹자고 해. 내가 살게.”
“비싼 거 사 줄 거야?”
“나 맛집 같은 건 모르니까 메뉴랑 장소는 알아서들 정하시고.”
고민은 남에게 맡기기로 하자. 동아리 놈들도 나에게 고민을 맡겼으니, 나도 남에게 고민 외주를 주자.
아, 이게 가진 자의 입장인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거 생각보다 편할 것 같은데?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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