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2
111화
“공연에 제 이름을 썼다고요? 그런 일은 흔하잖아요. 제 곡을 갖고 공연하는 곳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이름을 거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유통사에 요청을 해서 내 이름으로 내놓은 곡들로 공연을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직 다른 거장들처럼 전용 코드가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내 곡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정현 경의 사진까지 사용했습니다!”
“사진을요?”
경호원은 말하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흥분했다. 그렇게 감정 조절을 잘하던 사람이 이 정도로 화가 났다니.
그래, 이름을 사용할 수는 있다. 음악을 공개하며 내 이름이 붙은 악보가 시중에 팔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진을 사용하는 건 초상권 침해잖아.
사진을 사용했다는 이야기에 공공장소라는 것을 잊은 듯 메건이 소리를 쳤다.
“사진은 안 되죠!”
“마치 이정현 경이 공연에 방문하는 것처럼 포스터를 꾸며 놓았다고 합니다.”
내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이름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깊은 생각들을 하던 그 순간, 한 달 전에 나에게 연락을 해 왔었던 유럽 클래식 연합인지 뭔지 하는 곳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한 달 전쯤에 유럽 클래식 연합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온 적 있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연휴에 제 곡으로 공연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사진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을 하신 겁니까?”
“아뇨 그러지는 않았었죠.”
“그렇다면 이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알버트 경에게 전화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왜 알버트에게 전화를 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경호원의 말로는 보고를 해야 하는 대상이 알버트라고 했다.
맞네. 나를 감시하는 것이 경호원, 당신이었나! 사용인들만 의심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2교대를 하며 나와 거의 24시간 동안 붙어 있는 쪽은 경호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식자재만 사서 돌아가려고 했던 대형 마트 안에서, 뜬금없는 정보 때문에 한가운데 멈추어 서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뭐 해요. 더 사야 해요.”
“응? 아, 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사진을 가져다 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초상권 위반으로 소송당할 것이 뻔한데 그걸 썼잖아요. 그래서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다 알아서 해 주실 거예요.”
“알버트 경이요?”
“지금 할아버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바로 이정현 경이니까요.”
메건의 입에서 알버트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다 좋은데, 왜 나를 걱정하지?
“저를 왜 걱정해요?”
“나중에 직접 들어 보세요. 크리스마스에 랭커스터에서 만날 테니까.”
어? 나도 몰랐던 내 크리스마스 스케줄이 벌써 정해진 거였어?
메건은 그 말과 함께 하얀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내 초상권이 침해당했다는 순간에 이렇게 마트에서 웃으며 식자재를 고르고 있는 것이 이상했지만,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날이 갈수록 신경 쓸 것들이 늘어나는 게 싫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은데 다들 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진열대에 놓인 고기 한두 팩을 카트에 넣으며, 스트레스를 발산했다.
“…오늘 만들 음식에는 그런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요….”
“아…. 나도 모르게 그만.”
메건은 카트에서 내가 고른 고기 팩을 다시 집어 들고 원래 있던 매대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마트의 계산대에서 메건이 산 것이 무엇인가 하고 보니, 얇게 저민 고기와 감자 그리고 인스턴트 그레이비 소스가 보였다. 몇 가지의 채소들은 덤.
집으로 돌아와 메건은 사용인들이 쓰는 하얀색 레이스로 장식된 검은 앞치마를 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서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 같은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요리하는데 저렇게 비장할 필요가 있나 싶어 구경하려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는데.
“안 돼요. 거실에서 기다리세요. 다 되면 부를게요.”
“…알았어요.”
그렇게 쫓겨나서 거실에 홀로 남겨졌다. 부엌과 거리가 그리 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다 보니 조금 전까지 메건과 같이 있었다는 게 조금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분.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TV 프로그램 한두 개가 지나갔을 무렵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다 됐어요. 식사하세요!”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메건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잘 만들어서 만족하는 얼굴로 보였다.
“메건이 만든 음식을 먹게 된다니 참 신선한 경험이네요.”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 봤어요.”
그렇게 말한 메건은 나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식당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인체 실험당하는 건가, 나?
살짝 긴장하며 식탁 의자에 앉자 접시에 담긴 음식이 나왔다.
얇게 저민 고기를 구워내어 소스를 얹고, 그 위에 콩과 작은 당근, 감자들이 올라간 음식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포크를 사용해 고기부터 공략해 나아갔다.
고기를 쪄낸 건지 소고기 치고는 흐물흐물한 식감이 별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스턴트 그레이비 소스가 그 풍미를 돋우는 게 조금 이상한 조합.
그 뒤에 감자와 당근까지 먹어 보았지만, 맛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건강한 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분명 인스턴트 소스가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소스가 맛없는 게 분명하다.
고기를 어떻게 조리하면 이렇게 맛없게 만들 수 있는 걸까? 보통은 그냥 프라이팬에 굽기만 해도 맛있는 게 고기 아니었나?
얼마 전에 나온 뉴스 기사보니까 화학조미료랑 향신료가 몸에 나쁘지 않다던데…. 왜 다들 조미료량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는 걸까.
이러한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메건의 입이 열렸다.
“입맛에 맞으세요?”
“네, 맛있네요….”
열심히 만들어 준 정성을 생각해서 묵묵히 먹었다. 아버지가 내 나이 때도 이런 기분이셨을까…?
내게는 차마 이 음식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용기가 없었다.
***
“무어라?! 내 손녀사위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네, 알버트 경. 경호원이 이정현 경 본인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사용이라고 합니다.]보고를 받은 알버트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최근 런던의 관광 수익이 과거에 비해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여 주는 것이, 자신의 손녀사위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정현의 공이라는 보고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의 후광을 사용하려는 집단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인지 알아 올 수 있도록 하게. 그리고 바로 이정현 경의 동의를 얻어서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고, 합의는 없다고 못 박아 두게.”
[예!]온 가족이 모일 것으로 기대되는 이틀 뒤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그날, 런던의 경제를 활성화해 준 자랑스러운 손녀사위도 참석할 것이기에 집 안 장식에 힘을 쏟고 있던 알버트.
행복한 마음만 가득하던 크리스마스 장식 시간을 방해한 그 몹쓸 단체를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아버님, 아범을 부를까요?”
그런 알버트의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는 며느리.
“아니다. 댄을 부를 만큼 큰일은 아니야.”
“그러면 별것 아닌 일이잖아요. 기분 푸세요. 아버님.”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손녀와 꼭 닮은 며느리의 말에 화를 조금 누그러뜨린 알버트는 다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댄이 오겠다고 하더라.”
“메건의 생일에도 얼굴을 안 비추던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오다니! 신기한 일이네요.”
“결혼식 전에 메건을 볼 시간이 많이 부족할 테니까.”
영국에서 여성의 결혼은 남편의 성으로 부인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기에, 결혼을 출가외인이라 말하는 한국의 결혼과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혼을 함으로써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결혼할 때 성을 바꾸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메건은 바꾸고 싶어 할까요?”
“그게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사랑하는 사람의 성을 자신의 이름에 붙이는 것이 결혼 제도인데 말이야. 며늘아기도 그렇지 않았더냐.”
조금 전에 소송을 진행하라는 지시를 한 사람의 분위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소한 집안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며느리와 시아버지였다.
***
유럽 클래식 연합의 회장실.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아 들떠 있는 바깥의 분위기와는 달리 냉랭하게 얼어붙기 직전이었다.
유럽 클래식 연합의 회장 로미오 몬테규와 그에게 보고하는 다른 남자.
“뢰베가 언론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 분위기가 말이 아닙니다. 회장님.”
“뢰베는 미국에서 TV 쇼 출연을 하고 나서 빈 필하모닉으로 돌아간 것 아니었나?”
“빈은 상임 지휘자를 지정하지 않는 곳이라, 뢰베의 소속은 빈 필하모닉이 아닙니다. 회장님.”
“그 작자는 자기가 할 일이나 신경 쓸 것이지 왜 우리 일에 끼어들고 그러는 거야!”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평소처럼 신경도 쓰지 않아 방해하지도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유럽 클래식의 거장인 뢰베.
로미오는 그가 언론에 부정적인 말을 했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유럽 클래식 연합이라는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높은 급이라고 인정하는 몇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인 뢰베.
수많은 유럽의 교향악단에서 이름을 날리는 곳은 몇 곳 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클래식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독일의 베를린과 오스트리아의 빈이라고 하더라도, 대표 관현악단을 제외한 다른 곳의 운영은 공연 수익이 아닌 기부금으로 운영될 정도로 열악했으니까.
그렇게 클래식의 중심이라고 알려진 몇몇 주요 관현악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단체가 바로 유럽 클래식 연합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계 클래식의 중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벌컥-
그때 누군가가 회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이정현이 초상권 침해로 국제 소송을 걸었다고 합니다!”
“뭐?!”
쾅!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던 로미오는 보고를 받고 마호가니 책상을 내리쳤다.
“사진 한 장 사용한 사소한 일로 국제 소송이라니 말이 되나!”
“국제 소송뿐만이 아니라 초상권 침해로 국내 법원에서도 기소되어, 연휴가 끝난 뒤 법원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그깟 사진 한 장이 무슨 대수라고!”
“지금 사진을 바로 내리셔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 전단을 만들기 위해 만든 돈은 어떻게 할 건데? 그 돈을 법원에서 보상해 주기라도 하나?”
“그렇지만 계속해서 그 사진을 사용한다면 더 큰 추징금을 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는 남자의 말에 로미오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지금 당장 이정현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용 허가를 얻어내!”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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