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소송 금액이 얼만데?”
“네?”
“이정현 쪽에서 내건 손해 배상 금액이 얼마냐고.”
“백만 유로입니다.”
백만 유로는 약 13억 원 정도 되는 금액. 물론 법원에서 금액 조정을 거치게 되면 조금은 낮아지겠지만, 사진 한 장을 사용한 것 치고는 확실히 과한 금액이었다.
부정적인 뉴스 기사들을 올려 달라고 언론에 이야기하기엔, 자신들의 인지도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얼마 전 메건과의 불화 기사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비난을 들었기에, 언론들은 이정현을 건드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
코너에 몰린 권투 선수처럼 빠져나갈 방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로미오는 마른 침을 삼키며 비서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때?”
“엄청나죠. 이정현이 오는 게 아니라, 그의 곡만 연주한다고 알려졌는데도 이미 매진이에요. 암표상들도 기승을 부리는 중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경우에는 공연의 티켓이 매진되는 일이 남아 있는 경우보다 많았다. 세계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의 힘이랄까.
하지만 유럽 클래식 연합의 주축이 되는 시민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매진은커녕 항상 관객석의 반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오케스트라의 수준에 있었다. 시민 오케스트라의 주축은 고용된 연주자들이 아니라 아마추어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의 티켓 가격은 절대 싸지 않았다. 특수를 노려 평소보다 30% 정도 비싼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티켓이 매진되었다니.
로미오는 이정현 효과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치 신데렐라에게 걸린 마법이 끝나는 것처럼, 이번 연휴가 끝날 때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이번에 얻은 이익들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배상금으로 내야 할지도 모른다.
“좌석…. 좌석을 더 늘릴 수는 없나?”
“좌석을 늘려요…?”
아마추어로 구성된 시민 교향악단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연주하는 콘서트홀은 지정된 좌석들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최상의 음질을 듣기 위해 고안된 2,000석 규모의 콘서트홀.
설치되어 있는 좌석들은 모두 음악을 듣기 가장 좋은 위치로 고안되어 설치되어 있기에, 비서의 머릿속에는 임의로 좌석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콘서트홀의 좌석은 고정식이라….”
“흠…. 계단에 의자를 놓으면 자리가 늘어나지 않겠나?”
로미오가 꺼낸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 지정된 좌석의 사이사이에 의자를 놓아 좌석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였다.
“말도 안 됩니다, 회장님! 그건….”
“좌석을 늘리고 수익을 늘린 후에 정산이 되면 바로 재단을 폭파하는 거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비서는 경악했다.
유럽 클래식 연합이라는 단체가 풀뿌리 교향악단의 부흥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그것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비서의 눈앞에 있는 회장은 이번 공연 수익을 빼먹은 뒤,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재단의 파산으로 배상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공연의 주체가 되었던 재단이 파산하게 되면 배상의 의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인간 미쳤어….’
재단이 없어지면 가난한 시민 교향악단의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직장을 갖고 시민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만, 일당을 받으며 연주를 하던 사람들은 전보다 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비서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수많은 사람이 느낄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새해를 맞이한 지 며칠이 지났다. 아직 랭커스터의 성에 남아 있는 나는 점점 살이 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종일 움직일 일이 없었는데, 이곳 랭커스터 성의 음식은 식사때마다 휘황찬란하게 차려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곳곳에 놓인 테이블마다 간식거리들도 항상 놓여 있었다.
뭔가 사육당하는 돼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도 진짜 돼지처럼 뒤룩뒤룩 쪄 가는 느낌이 들었고.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뭐가 안 돼요?”
나에게 주어진 손님용 방의 침대에서 빈둥대며 내뱉은 혼잣말에 누군가가 대답을 했다.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메건이 서 있었다.
나는 빈둥대느라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메건은 평소와 똑같이 잘 차려입은 차림새였다. 부끄럽게….
“왜 그리 놀라요? 노크도 하고 들어왔는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너무 게을러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원래 홀리데이 기간에는 게을러지는 게 당연한 거예요. 저도 원래는 게을러지지만, 이번에는 이정현 경이 와 있어서….”
“여기에 와서 살이 엄청나게 찐 것 같아요. 미국에 가서도 엄청나게 찌긴 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몸무게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내려다본 뱃살은 내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손으로 잡히는 뱃살이 지옥의 다이어트를 예고하고 있는 듯했다.
“휴…. 또 자전거 타야 하나.”
“그 정도는 괜찮아요. 일상으로 돌아가면 금세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거에요.”
메건의 말은 마치 여러 번 내가 겪은 일을 겪어 본 경험자의 말 같아서 신뢰가 갔다.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니 다행이긴 한데, 이제는 뱃살 말고 다른 데 살이 올라오는 것 같지는 않아서 걱정이네요.”
LA에서 자전거를 한참이나 탔던 경험에 의하면, 나는 쉽게 살이 찌지도 않지만, 쉽게 빠지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살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는 나에게 메건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님이 잠깐 뵙자고 하시네요.”
“네? 저를요?”
그렇게 게으름의 한복판에서 뒹굴뒹굴하다 메건의 손에 이끌려 알버트를 만나러 거실로 내려오게 되었다.
거실에는 알버트 뿐만이 아니라 메건의 아버지인 대니얼과 비서 필립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정현 경.”
“아,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모두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홀로 일어나 나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필립.
그의 차림새는 처음에 런던 유스턴역에서 보았을 때와 전혀 차이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그의 인사에 뒤이어 알버트가 말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이정현 경. 메건, 너는 잠시 자리를 비워 주었으면 좋겠구나.”
“저를 빼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에요?”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들어서 좋은 이야기는 아니란다.”
알버트의 말에 군소리 없이 거실을 떠나는 메건의 등을 바라보며, 이렇게까지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알버트가 조금은 생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에는 놀고먹느라 거의 우스갯소리나 잡담들만 나눴기 때문이었다. 대니얼도 처음에는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누고 같이 지내다 보니 세상 편한 상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평소의 분위기와는 달리, 오늘 이 자리의 분위기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것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유럽 클래식 연합의 일입니다.”
“아, 저는 또 뭔가 했네요. 거기는 초상권 침해와 저작권 위반으로 소송을 건다고 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진행되는 상황 아닌가요?”
내가 알버트를 향해 한 질문에 대니얼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청구 금액은 소소하게 백만 유로로 정했었죠.”
백만 유로가 소소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파운드가 유로보다 비싸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빨리 환율을 계산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렇게 크게 와닿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적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금액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돈은 받건 받지 못하건 별로 상관없어요. 돈보다는 사진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 아니었나요?”
일부러 조금 많은 금액을 청구했다. 너무 낮은 금액을 청구하면 다른 곳에서도 나의 사진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송으로 얻어낼 것은 돈보다는 초상권에 대한 무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지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물음에 답해 준 것은 필립이었다.
“유럽 클래식 연합이 오늘 파산했습니다.”
“파산이요?”
“그리고 그 연합회의 회장인 로미오 몬테규는 현재 이번 공연의 수익을 모두 횡령한 혐의로 수배 중입니다만,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탈리아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죠.”
세상에. 내 사진을 사용하고, 청구된 금액을 물어주기가 싫어서 재단을 파산을 시켰다고?
그런 미친놈이 세상에 있었다니.
“연주자들에게 임금도 주지 않고 수익 전부를 들고 튀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연주자들의 임금뿐만이 아니라 대관 비용까지 지불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한 번의 공연을 할 때, 티켓의 가격은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런던의 경우에는 조금 가격이 센 편이라고 하더라도 대략 10~15파운드. 유럽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콘서트홀 하나에 들어가는 관객의 수가 적게는 1천 명에서 많게는 3천 명까지 다양하니까, 수익은 최대 4만 5천 유로 정도겠지.
크리스마스 공연은 3일 동안 이어진다고 했으니, 10만 유로 조금 넘는 돈을 들고 회장이 도주했다.
3일 공연에서 입을 이득이 아닌 손해가 90만 유로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대관 비용이나 임금 문제 같은 것은 애초에 저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애초에 베를린의 법원에서 청구된 금액을 모두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었죠.”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요?”
“유럽 클래식 연합의 파산 원인을 이정현 경의 소송으로 발표하면서, 임금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 클래식 연주가들이 그 책임을 이정현 경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걸 내 책임으로 돌렸다고? 진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초에 그쪽에서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소송을 걸 일도 없었는데, 그게 이렇게 되어 버리네.
어이가 없어서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알버트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제 영국은 유럽 연합의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 범죄자로 수배를 하면, 인터폴의 도움을 받아 체포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체포를 한다고 해서, 이번 일로 타격을 받게 될 이정현 경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나아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벌인 일도 아닌데 제가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고요?”
“애초에 그쪽에서 그걸 노리고 계획적으로 벌인 일 같다는 게 저희 쪽의 판단입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애초에 소송에 응할 생각 자체가 없었고, 회장이었던 사람은 이번 공연으로 얻은 돈을 들고 날랐다는 이야기네요? 그 원인을 저에게 뒤집어씌운 거고?”
짧게 줄였지만 복잡하다. 피해를 보았지만 가해자가 된 듯했다.
나는 이번 일이 그냥 단순한 사진 도용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문제가 심각해졌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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