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6
115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는 팔레르모.
최초의 마피아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많이 알려진 시칠리아인 만큼, 주력 산업이 마피아에 의해 시작된 것들이 많은 곳.
마피아들은 이미 이탈리아 본토로 떠났거나 조금 더 큰 무대인 미국으로 떠나 버려, 지금은 마피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 되어 버린 지 오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시칠리아의 대표 도시인 팔레르모를 구성하는 건물 대부분이 지어진 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이상이상이었다.
오래된 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좁은 길의 끝에 있는 마시모 극장.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오페라 하우스인 이 마시모 극장에 한 남자가 뛰어 들어갔다.
“에이 젠장. 돈을 얼마 갖고 나오지도 못했잖아. 기껏 해 봐야 12만 유로라니. 쳇. 몇 번은 더 공연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정도 갖고는 어림도 없다고!”
그의 이름은 로미오 몬테규. 얼마 전 유럽 클래식 연합의 공연 입장료를 횡령하고 사라진 그 남자였다.
로미오는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가 자꾸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아 사람이 많은 곳을 향해 도망가는 중이었다.
그 뒤를 쫓는 남자.
좁다란 팔레르모의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 질주한 끝에 마시모 극장에 다다랐다.
남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인파를 뚫고 마시모 극장을 향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건물의 옥상, 총에 달린 스코프를 통해 그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HQ, 여기는 브라보 원. 목표를 포착했다. 목표 확인 바람.”
-치이익. 브라보 원, 현장에 있는 오메가 식스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
“알았다. HQ.”
짧게 무전을 끝낸 사내는 로미오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남자를 주목했다. 그가 바로 코드명 오메가 식스로 불리는 남자였다.
팔레르모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마시모 극장이라, 그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밝게 빛나는 화려한 금발 머리와 수려한 외모는 그 누가 보더라도 기억에 남을 만큼 뛰어났다.
로미오와 오메가 식스는 건물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시모 극장의 높은 계단을 내려왔다. 로미오는 얇게 빛나는 케이블 타이로 포박된 채, 오메가 식스의 손에 질질 끌려 나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찌나 많이 맞았는지 원래 있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폭력은 이런 체포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
브라보 원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의 보스인 오메가 식스가 나선 일이라 뭐라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여기는 오메가 식스. 작전 종료. 수송기를 준비하여 팔레르모항에 대기하라.”
-치이익. 라져. 수송기 준비까지 십 분. 팔레르모항 헬리패드에서 대기 바람.
“지금 전 요원 잠복을 끝내고 현장에 집결하라. 집으로 돌아간다.”
-예스, 보스.
오메가 식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송기를 호출하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른 요원들을 불러들였다.
발아래에 깔린 로미오는 기절을 했는지 신음 소리조차 내질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시모 극장 앞에 모인 특수 부대의 복장을 한 그들을, 관광객들은 신기한 것을 보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들을 데려갈 차를 기다리는 데에 온 신경을 쏟을 뿐이었다.
대니얼은 도착한 밴의 구석에 포박된 로미오를 밀어 넣은 뒤 조수석에 올랐고, 네 명의 다른 요원들은 뒷좌석에 올라탔다.
이윽고 차가 출발하자 임무가 종료되었다는 것에 안심한 대원 한 명이 오메가 식스를 향해 말했다.
“웬일로 현장에 대장이 나오나 했더니 쉬운 일이었네요. 항상 이런 일만 있으면 좋을 텐데. 위험하지도 않고.”
“음….”
“그렇지만 조금 의외였어요. 최우선 지정 임무 대부분은 요인 암살이 많았었는데, 웬일로 생포래?”
대원의 말에 오메가 식스는 짐처럼 놓인 로미오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놈은 내 사위를 욕보였다. 쉽게 보낼 수는 없지.”
“컥….”
그들을 이끄는 대장인 오메가 식스는 평소에도 말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차 안은 목적지인 팔레르모항에 도착할 때까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는 사위가 지금 영국을 들끓게 만든 화제의 인물, 이정현이라는 걸 대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메가 식스의 아버지는 자신들이 속한 정보국의 국장이었기에, 최우선 지정 임무로 별것 아닌 것이 들어왔다고 좋아하던 얼굴들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잡히지 말지 그랬어….’
‘명복을 빌어 주마.’
‘나라면 죽는 게 더 나았을 거로 생각했을 거야.’
차가 항구에 있는 헬리패드에 도착해 준비되어 있던 헬기에 모든 인원이 옮겨 탈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보스인 오메가 식스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메가 식스, 대니얼 랭커스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
T3T
“용의자가 시칠리아에서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네? 용의자요?”
난데없이 용의자라는 말을 꺼내는 경호원의 말에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용의자라는 말이 나올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칠리아라니. 이탈리아는 로마와 피렌체밖에 가 본 적이 없어,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얼마 전에 공연 수익을 모두 들고 도망갔던 그놈 말입니다.”
“아….”
뜬금없이 두 달 전 이야기를 꺼내니까 기억이 안 나지. 3월이 된 지금은 그때의 일을 기억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
그 일이 끝나고 나서 정부의 요청으로 소극장을 설계하고, 런던으로 들어온 독일인 연주자들의 연주를 봐주느라 두 달이 순식간에 흘러갔던 탓이었다.
나 때문에 공연 수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뭐가 예쁘다고 연주를 봐주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연주를 손봐 주고 공연장을 섭외해 주었던 것은, 그들을 볼 때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우리 아버지가 생각났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동정심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그들 중에도 가장이 있을 테니까.
그 범인을 잡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범인에게 돈을 받아 대관료를 내줄 것도 아니었고, 밀린 임금을 지불할 것도 아니었으니.
“잡아서 뭐 하겠어요. 횡령했다는 돈도 겨우 12만 유로던데.”
“물론 손해 배상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를 잡음으로써 영국이 유럽 클래식의 중심이 될 기회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 사람이랑 클래식의 중심이 된다는 건 전혀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정확하게는 영국에 이정현 경이 있으시니 기회가 될 수 있는 거죠.”
들뜬 듯이 이야기하는 경호원의 말에 나는 그다지 공감이 가질 않았다. 중심이 되어 무엇을 할 것인가. 난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단체의 중심이 된다고 치더라도 내가 관심 없는 여러 관현악곡에 대한 것들을 공연하는 스케줄을 만들고 뭐 그런 것뿐일 텐데, 중심이 될 필요 자체가 없잖아. 더 귀찮아지는 일인데.
“난 유럽의 중심 같은 것에 관심 없어요. 어디 얽매이는 것도 싫고, 지금 학교에 나가면서 회사 관리하기에도 빠듯하거든요. 게다가 남는 시간에는 이렇게 소극장을 만들잖아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정현 경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경호원에서 조금 다른 사람의 느낌을 주는 사람으로 변한 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흥분해서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나의 일상은 그날 이후로도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들려 주고, 연주의 잘못된 점들을 잡아 주며 지냈다. 남는 시간에는 소극장을 만드는 현장에 나가기도 하면서.
그리고 경호원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끝내고 교수실 책상에 앉아 있던 날.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노크한 뒤에 열린 문 뒤에 서 있던 사람은 나를 이곳에 불렀지만, 바빠서 자주 볼 수는 없던 리처드 경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 사무실의 가운데에 있는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제가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정현 경.”
“아닙니다, 리처드 경. 수업을 끝내고 방금 자리에 앉았는걸요.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밀크티로 부탁드립니다.”
이 방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알렉산드라를 제외하곤 전부 영국 사람들이라, 커피 외에도 품질 좋은 홍차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밀크티를 위한 우유도 항상 냉장고에 채워져 있었고.
마침 알렉산드라는 다른 수업이 있어 자리에 없었기에, 차를 타 줄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내가 어설픈 솜씨로 밀크티를 만들어 리처드에게 내밀자, 그는 살짝 입을 대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클래식계가 시끄러워졌습니다.”
“그 범인이 잡혔다는 것 때문에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음악가들의 임금을 빼돌린 범인이 잡혔다는 것은 뉴스에도 나오며,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했을 정도였으니 클래식계가 떠들썩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니요.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이정현 경이 새로 만든 생태계 때문입니다.”
“소극장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제가 만든 게 아니라 나라에서 만든 거죠. 저는 그저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인데요.”
“허허, 런던에서 소극장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로 경제적 효과가 엄청나다는 이야기가 들려 오는데,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하.”
“유럽 각지에 그자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재단들이 있습니다. 소란스러워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죠.”
그런 썩어 가는 재단들이 각지에 있다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리처드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세계 클래식의 중심은 항상 유럽이라고 외쳐 온 그들의 더러운 이면을 보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주체할 수가 없어 몸을 쓰다듬었다.
“그들이 모두 이정현 경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합니다.”
“…벤치마킹한다고요?”
내가 만든 소극장을 벤치마킹해서 따라 한다면, 각지의 가난한 음악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유동 인구가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면, 수익이 보장될 수 없는데 그걸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겠지.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아마도 런던에 설치된 소극장들과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 내겠죠. 클래식의 중심인 베를린이나 빈에도 말입니다.”
“이건 개인이나 작은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국가 규모에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에요. 수익을 보장할 수 없는 일에 누가 나서겠습니까?”
내가 걱정되는 것은 바로 이것. 일반적으로 사업을 하는 규모만큼 큰 수익을 만들 수 없는 사업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유럽의 클래식계 중심에 영국이 올라가기 위해서 이정현 경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리처드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말이 나올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충 얼굴을 비추고 영국에서 벌이는 일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고 그런 것이겠지.
흔히들 홍보 대사 역할이라고 부르는 얼굴 마담.
“바쁘신 이정현 경에게 특별히 신경 쓰거나 피곤해질 일을 부탁드릴 수는 없지요. 그저 유럽 각지를 돌면서 한두 차례씩 공연을 관람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제게 얼굴 마담을 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의미로 느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만, 이정현 경이 공연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각지에 몰려드는 관광객에 의한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니까요.”
맞네, 얼굴 마담.
얼굴 마담이라는 것에 기분 나빠한다고 생각했는지, 리처드는 급하게 이런저런 말을 돌려가면서 했지만 나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괜찮아요. 홍보 대사로 제가 필요하다면 해 드릴 수는 있죠.”
“역시! 이정현 경이라면 그렇게 말씀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얻게 되는 건 뭔가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지. 이제는 협상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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