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삥-
[본 항공기는 잠시 뒤 목적지인 뒤셀도르프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잊으신 물건이 없도록 소지품을 확인해 주십시오.]알림음과 함께 비행기 안에 흘러나온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활주로에 터치다운하는 소리가 나며 기체가 크게 요동쳤다.
“휴우…. 착륙은 언제나 긴장된다니까.”
“맞아요. 그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에 기체가 흔들릴 때 그 느낌이 긴장하게 만들어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메건이 혼잣말에 대답해 주었다.
이 항공기에 타고 있는 사람은 승무원을 제외하고 겨우 열 명밖에 되질 않았고, 나머지 여덟 명은 다른 곳에 있었다.
쓸데없이 커다랗기만 한 전용기를 타고 뒤셀도르프에 온 이유는 바로 독일의 가장 서부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뒤셀도르프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베를린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지나 빈에서 마무리가 되는 일정.
독일의 대도시 네 곳과 오스트리아의 두 곳을 가게 되었다.
일정을 누가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2주밖에 되질 않는 방학을 모두 써야 하는 일정을 짜 버렸다.
아마도 내가 수업에는 지장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 때문이겠지만, 방학을 쉬지도 못하고 보내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
관광도 아니고 일 때문에 간다니. 관광이었더라도 이렇게 급박한 일정을 짜지는 않았을 거다.
만약에 협상에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꺼냈다면 이렇게 독일에 오는 일이 없었을 텐데, 너무 혹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동의해 버린 일정.
바로 면세권.
그저 일반적인 직장인 수준의 수입만 벌어들인다면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지금 나에게 영국의 세금은 정말 살인적으로 과하기 때문이었다.
소득의 수준에 따라 나누는 영국에서, 벌어들이는 돈의 45%를 세금으로 가져가는 건 방학을 날리는 것보다도 불합리하다. 뭐, 그만큼 많이 버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미국의 소득도 영국에 신고하면 세금을 안 내게 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는 도중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와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나가실 때 조금 소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어느새 다가와 나에게 말을 하는 필립. 이번 유럽행의 수행원은 필립이었다.
당연히 함께할 것으로 예상했던 리처드나 알버트는 따라오질 않았다. 같은 학교에 있어도 얼굴을 보기 어렵던 리처드와 달리 알버트는 항상 여유 있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그에게 의외로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깐만요.”
알버트를 대신해 나와 일정을 동행하게 된 메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메건은 비행기의 입구 앞에서 나가려던 나를 돌려세운 뒤 넥타이를 고쳐 매 주었다. 넥타이 하는 것을 원래 좋아하질 않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나도 모르게 느슨하게 해 두었던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오늘 정말 멋있어요.”
활짝 웃어 주는 메건의 얼굴에 웃음으로 답해 주고, 열려 있는 비행기의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Willkommen in Deutschland! Welcome to Germany!”
““와아아아!!“”
고개를 내밀고 계단에 한 걸음 옮기자마자 들려 온 커다란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도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넘어졌다면 얼마나 꼴사나웠을지….
비행기 안에서 작은 출입문을 통해 밖을 내다볼 때는 공항 건물만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뭐 해요, 손이라도 흔들어 주셔야죠.”
“아, 깜박했네요.”
뒤에서 들려 온 메건의 목소리에 그제야 손을 들어 사람들의 함성에 답해 주었지만, 함성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퍼 펑 펑펑-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앞이 보이질 않았지만, 나는 꾸준히 사람들이 있었던 곳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으아아아! 이정현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어!”
“아니야, 이 멍청아! 나를 보고 흔든 거라고!”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안 보여.
그런데 왜 여기에서 영어로 소리를 치는 걸까. 분명 런던에서 한 시간 반을 날아왔는데, 아직 영국인 것은 아니겠지. 다들 독일인 척 연극을 하고 있다거나….
눈이 보이질 않아 들리는 소리로만 판단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의 팔을 잡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쪽입니다, 이정현 경.”
“오! 경호원 씨. 앞이 안 보여서….”
“…그러게 제가 선글라스 쓰시라고 꺼내드리지 않았습니까.”
“햇빛이 밝을 때 쓰라고 하는 건 줄 알았죠….”
경호원이 비행기에 타기 전에 건네주었던 선글라스를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나름 잊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생각해서 준 거였다니.
시간이 조금 지나서 앞이 조금 보이게 되었을 때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메건까지도.
살짝 배신감 느껴지네….
***
독일 베를린.
펍에 앉아 맥주를 손에 들고 마시는 사람들 사이의 기둥에 붙은 TV가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한 정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전혀 느끼고 있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의무적으로 배우는 악기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금세 나가떨어지는 베를린 필하모닉이었기 때문이었다.
극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이 자리를 잡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주어진 자리는 겨우 120여 석.
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안에 포함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음악을 포기하다시피 했고, 포기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 전에 파산해 버린 유럽 클래식 연합에 뒤통수를 맞고 영국으로 향했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음악 활동을 중단한 사람들뿐이었다.
“어? 진짜 왔네?”
“정부에서 요청했다고 하던데? 영국이 이정현 제도 실행하면서 실업률이 내려갔다고 하잖아.”
“저런 걸 뭣 하러 직접 불러서 물어봐. 그냥 따라 하면 되는 거지. 사람들이 자존심도 없나. 어디 외국인을 불러서. 쯧.”
“몰라서 물어? 이정현 보려고 관광객이 평소보다 몇 배는 늘었다고 하잖아. 그걸 노린 거겠지!”
“안 되겠다. 나도 집에 가서 오랜만에 바이올린 연습을 좀 해야겠어.”
“어, 어? 다시는 음악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경쟁이 너무 치열해 음악을 포기했던 사람들까지 악기를 다시 손에 쥐게 만든 이정현 제도였다.
영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정현의 독일행을 홍보한 결과, 그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전 세계 수많은 클래식 팬들이 뒤셀도르프에 모여들었다.
그가 방문하고 각 지역에 있는 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할 것이라는 정보가 함께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뒤셀도르프의 숙식 업소들과 각종 기념품 가게, 그리고 공연장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정현이 도착한 뒤에 뒤셀도르프에서 벌어진 일은 삽시간에 베를린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고, 그 소문들은 정현이 방문할 것이라 알려진 다른 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수많은 관광 업체는 정현의 일정을 따라가는 관광 상품을 급하게 만들어 판매했고, 그 상품들은 순식간에 완판되었다. 더 만들어 팔려고 해도 팔 수가 없었다.
이미 정현이 관람할 것이라 알려진 공연의 티켓들이 매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관광 업계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현이 일으킨 바람은 독일의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독일의 정부와 클래식계는 합심하여 영국 정부로부터 정현이 만든 야외 소극장의 설계도를 받아 조금씩 독일식으로 수정하여 공원마다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정현의 이름이 붙은 정책이 퍼져 나갔다.
***
마지막 일정인 오스트리아의 빈에 도착했다. 처음 뒤셀도르프에 도착했을 때와 다름없이 기자들을 마주하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일정을 진행했다.
“이정현 씨. 클래식이 살아 숨을 쉬는 도시, 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모차르트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클래식이 살아 있는 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다음이 또 있다면 어떻게 인사말이 바뀔지 궁금해질 테지만, 빈에 머무르는 이틀이 이번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모든 지역에 방문할 때마다 기자들이 달라붙어서 질문하는 것에 답변해 줘야 한다는 것도, 엉망진창으로 연주하는 공연에 손뼉을 쳐 줘야 한다는 것도 지겨웠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연주가 엉망이네요 라며 직접적으로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공연을 보러 온 다른 관객들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다고 해서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나라를 대표해서 외국에 방문한 입장이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받겠습니다.”
필립의 탁월한 사람 다루는 솜씨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질문도 마지막에 이르렀다.
필립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손을 들고 있던 기자는 다른 사람들을 비집고 경호원이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이정현 씨 지금까지 초연을 모두 런던에서 진행하셨는데, 혹시 오스트리아의 빈 필하모닉과 협연하실 계획은 없나요?”
“음…. 지금까지 들었던 질문들에 대부분은 답해 드렸지만,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서 이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해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빈 필하모닉의 관계자를 만난다는 것은 알려 드릴 수 있겠네요.”
나의 답변에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필립은 그들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나서서 자리를 마무리 지어 버렸다.
“그러면 오늘 질의응답 시간을 마칩니다.”
“앗! 잠시만요! 하나만 더요!”
마지막 질문의 답변 이후 웅성대던 기자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마지막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살짝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들었다. 이번 유럽행에서 빈이 다른 도시와 다른 한 가지는 신곡의 초연을 위해 마에스트로 뢰베를 만난다는 것뿐.
물론 아직 곡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빈에서 신곡을 발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산업들은 과거에 거대한 제국이었다는 영광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나라였지만,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베토벤이 묻힌 곳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클래식에 대한 사랑은 그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았으니까.
“후아…. 빈은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 더 격렬하네요.”
“만약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따로 만날 거라고 하셨다면, 베를린에서도 같았을 겁니다.”
가볍게 웃으며 답하는 필립의 말에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미리 말해 주지 않고 나중에 말해 주었어도 별문제 없었을 텐데….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 정도의 기대감을 주는 건 팬서비스 차원에서도 해 줄 만한 것 같아요.”
“팬서비스요?”
“이정현 경은 팬서비스가 너무 약하거든요. 후후.”
“…….”
뭐라 대답할 말이 생각나질 않아 멍하니 있었는데, 메건은 갑자기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귀에다 속삭였다.
“가끔은 저에게도 팬서비스해 주세요.”
요염하게 웃는 메건의 얼굴은 처음 보았다. 여자는 표정이 참 다양하구나.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건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힘들었던 2주간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인파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빈 필하모닉 전용 콘서트홀 빈 무지크페라인의 앞에서 손을 흔드는 뢰베의 모습이 보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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