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오랜만입니다! 마에스트로 뢰베!”
“그러게요, 거의 1년 만에 뵙는군요. 그래도 전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전에는 10여 년 만에 만났었는데.”
바이브가 종영한 이후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벌써 그 일이 일 년이나 지나 있었다. 어쩐지 얼마 전에 시즌 2 들어간다고 연락이 계속 왔었다.
시간이 없어서 참여할 수 없다는 답변만 했는데, 시즌 2는 잘되고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뭐, 내가 그렇게 큰 방송국을 걱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만.
“여기는 제 약혼녀인 메건 랭커스터입니다.”
“메건입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다소곳한 자세로 인사를 하는 메건을 보며, 내심 조금 무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조금 전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 TV나 신문으로만 만나 뵌 유명인을 이렇게 만나 보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페르디난트 뢰베라고 합니다. 지금은 빈 필하모닉의 지휘를 맡고 있지요.”
“메건도 음악을 배웠기에 당연히 마에스트로 뢰베를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
“그럼요,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보러 빈에 온 적도 있는걸요.”
“빈은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와 보아야 하는 도시죠.”
뢰베의 말대로 빈이라는 도시는 클래식을 사랑한다면 한 번쯤은 찾아올 수밖에 없는 도시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장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람을 꼽으라고 할 때, 1, 2위를 다툴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그들의 주 무대로 삼았던 곳이니까.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들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클래식계에 있어서는 성지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두 명의 거장 모두 빈에서 태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빈을 주력 무대로 삼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공연수익이 많았던 것도 있고, 베토벤이 태어난 오스트리아 제국과 모차르트가 태어난 합스부르크 제국 모두 수도가 빈이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나라건 수도가 활동하는 데 가장 편하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으니까.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두 거장의 음악을 주 무기로 삼는 관현악단이 나의 음악을 초연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는지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과거에 공연을 위해 한 번 무대에 올랐었던 기억이 있어, 무지크페라인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두근대는 가슴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무지크페라인에 방문하신 게 12년? 13년 만이신가요?”
“글쎄요. 그때는 워낙 어릴 때라 기억이 나질 않네요.”
금빛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로비를 지나 보통 골든 홀이라고 불리는 그로서잘 콘서트홀에 들어가니, 정면의 금빛 장식 사이에 보이는 파이프들이 나를 반겼다.
오르간이라니.
오르간이 들어간 음악은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는데, 무대 위에 양옆으로 펼쳐진 파이프들은 마치 커다란 날개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는 교회에 놓인 의자들처럼 곡선이 없는 좌석 구성은 언제 보아도 신선하다. 최근에 지어진 콘서트홀은 모든 곳에서 무대를 향해 좌석이 놓이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날개죠. 지금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아련한 눈빛으로 천장을 향해 뻗은 파이프를 바라보며 말을 하는 뢰베.
“망가진 건가요?”
분명 무대의 중앙에는 오르간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무대 위에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가 없는 파이프 오르간. 이 무대의 주인공처럼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한눈에 보아도 오래된 악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쟁의 흔적이죠. 세계 대전 때 망가진 것을 고치긴 했지만, 소리가 전쟁 전과는 달라졌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 주기는 하지만,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마치 꿈에서 들려 오는 소리처럼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아….”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콘서트홀에 전쟁의 참상이 남아 있다고 하는 말에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왜냐하면 콘서트홀 내부의 모든 시설은 완벽하게 정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이 바로 빈 필하모닉이 자랑하는 단원들입니다.”
뢰베의 뒤를 따라 단원들이 연습을 하는 연습실에 들어가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함께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의 눈을 마주할 때 떨려오는 것은 아무래도 본능인 것 같았다. 최고를 마주하는 순간에 떨려오는 것.
무지크페라인을 마주하며 느꼈던 두근거림이 알고 보니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정을 짧은 방학 기간에 맞춰 잡았기에 처음에는 살짝 불만도 있었으나, 지금은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이 상쾌함만이 남았다.
아직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이들이 나의 음악을 연주해 줄 것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만족스러움이 가득 차올랐다.
어렸을 때는 삶에 치이는 상황에 여기를 방문했기에 지금과 같은 떨림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바라보니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지켜볼 것은 아니라서 연습실을 나온 뒤 금빛으로 번쩍이는 콘서트홀로 돌아왔다. 로비에는 앉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건과 필립 그리고 경호원 몇 명은 먼저 호텔로 돌아갔고, 나는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그로서잘 홀에서 뢰베와 마주했다.
어쩌면 대화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뢰베가 배려해 이곳으로 안내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무실 같은 것도 있을 텐데 굳이 이곳으로 올 이유는 없었으니까.
“설마 진짜 금들은 아니겠죠?”
“어렸을 때는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눈을 하고 계셨는데, 나이가 들더니 이제 금은보화에 관심이 커지셨나 봅니다. 하하하.”
“…돈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가 더 심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는 이런 것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죠. 제가 가질 수 없는 거니까.”
“이 황금빛 무대를 꼭 주머니 속에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은 뜬구름을 잡는 듯한 뢰베의 답변에 살짝 의문을 띄운 채 쳐다보았다. 그는 무대를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지긋이 나를 바라보곤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이정현 씨가 만든 음악으로 공연을 한다면, 이 홀은 그 음악을 듣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찰 테니까요. 그러면 이곳을 가진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솔로몬의 지혜 같은 건가요?”
뢰베와의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간 뒤, 그는 신호탄을 발사했다.
“이제 슬슬 준비가 되셨나 보군요.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보죠.”
어느새인가 몸의 떨림이 멈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내 몸의 떨림이 심했었나 보다. 이렇게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니.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가슴속에 피어났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은 일이니까.
세계 클래식의 중심지라는 빈. 그리고 그 빈에서도 최고의 관현악단이라 불리는 빈 필하모닉과 함께할 음악 구상에 돌입했다.
***
“너 그 이야기 들었어?”
“또 어디에서 뭘 듣고 온 거야?”
이정현이 빈에 온 지 이틀. 빈에 있는 음악 학교 곳곳에서 수많은 소문들이 피어나고 있어 소문을 들어 주는 한스의 입장에서는 피곤함이 배로 늘었다.
“이정현이 빈 필하고 초연한다는 곡이 왈츠라던데?”
“…어제는 교향곡이라며. 어떻게 장르가 하루 만에 바뀌는 거야?”
빈은 왈츠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왈츠곡이 발생된 도시다. 자신이라면 왈츠곡을 만들어서 굳이 다른 거장들과 비교될 껀덕지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가 소문을 날라 준 친구의 말에 반박했다.
“소문이 워낙 많다고. 어디에서는 오페라를 만들 거라는 이야기도 하고 말이지. 나야 그냥 들리는 대로 너에게 전해 줄 뿐이야.”
“그래서 나온 게 소나타, 행진곡 그리고 교향곡에 왈츠까지라는 거야? 이러다가 모든 장르가 다 나오겠다.”
이대로라면 말 그대로 클래식에 존재하는 모든 장르를 다 말할 기세였다. 하루에 하나씩 장르가 늘어났으니.
“이정현이 모든 장르를 다 만들면 좋겠다. 발레곡까지 만들어서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보다 더 굉장한 인기를 끌면 좋을 것 같아. 팝에 R & B까지 만든 이정현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지금처럼 여러 거장을 공부할 필요는 없겠네. 이정현만 공부하면 다 알 수 있는 거니까.”
“오! 그거 좋겠다. 우리 1학년 수업 때 음악가들의 이름만 외우던 시간도 있었잖아. 그 수업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게 되겠냐?”
자신이 비꼬듯이 말하는 것에 맞장구를 치며 허황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말에, 한스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곤 고개를 돌리며 마무리를 지었다.
“차라리 이정현이 지휘를 한다고 하지 그러냐. 그게 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
“이쪽이 총보입니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모든 악기가 들어가 있는 악보지요.”
기본적으로 클래식을 하는 과정에서 총보라는 것을 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악기 연주를 하거나 성악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부분만 보게 된다.
나는 지난번에 메건이 악보를 만들어 주는 장면에서 총보를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총보가 상대적으로 조금은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보다 현실은 조금 더 가혹했다.
“일반적으로는 한 장의 악보에 네 가지 파트가 들어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사용하는 악기가 많을 경우에는 더 많은 악보를 넣어야 해서 음표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기도 하죠.”
“아, 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방에서 연주를 하거나 지휘를 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는 말.
그 말 한마디에 뢰베와 빈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내가 지휘를 하는 것이 확정된 것처럼 굴었다.
반대가 극심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단원들은 오히려 즐거워하며 재미있어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내 입에서 나왔던 말들을 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 되어 버렸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몰아가 버리니 이제 와서 안 되겠다고 거부하는 것은 늦은 것 같았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하고 여기저기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글자들이 쓰여 있는 악보. 저 글씨가 뢰베의 글씨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직접 자신의 악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저 공연만 보러 온 나는 평소에 뢰베가 사용하는 총보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총보를 보면서 각 파트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고 지시를 하시면 되는 겁니다. 총보를 빠르게 읽어낼 수만 있다면 지휘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렇군요….”
뢰베의 말은 당연히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물론 뢰베뿐만이 아니라 단원들까지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눈초리.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일단 오늘 저녁의 공연에서 제가 지휘하는 모습을 한 번 보시고,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케스트라의 꽃은 연주자 개개인이 아니라 그 연주자들 개개인의 소리가 합쳐져서 나오는 소리다. 그 소리를 조율하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
지휘를 결코 쉽게 바라본 적은 없었다.
지휘도 엄연히 4년간의 전문 과정을 가르치는 과가 있었고, 그 과를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 중에서 지휘자가 된 사람은 모두 연주자 출신이었으니까.
“한번 이 자리에서 연습해 보시죠. 여기 이 지휘봉을 받으시고….”
뢰베의 손에 들려 있던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원래는 하얀색에 가까웠을 코르크가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갈색이 되어 끝자락에 달린 40cm가량의 얇은 막대.
그 지휘봉을 손에 들고 단원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기대감이 가득 차 반짝거리는 눈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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