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19
118화
넓은 연습실의 연주자들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지휘자의 단상. 무대에 올라가는 것과 동일한 구성으로 앉아 있는 단원들이 단상 위에서 모두 보였다.
이런 시선으로 단원들을 바라보는 거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무대 위에 여러 번 올라갔었지만, 단상 위까지 올라가서 다른 단원들을 바라보았던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러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에 뢰베가 말을 걸었다.
“한번 지휘해 보시죠. 그러면 또 느낌이 달라질 겁니다.”
“아, 예….”
연습곡으로 책정된 곡은 모차르트의 대표 교향곡.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을 .
말 그대로 현악기가 주로 사용되는 곡이라 심포니 오케스트라 구성에서는 자주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보통은 현악 5중주에서 많이 연주하는 곡.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건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인지 가슴이 떨려왔다.
100명이 넘는 단원들의 눈이 모두 나의 손을 향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지휘자가 지휘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처럼, 바이올린 파트에 있는 콘서트마스터와 눈을 살짝 맞추고 첼로를 쳐다보았다.
곧 시작하겠다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
현악기를 든 단원들이 모두 자세를 잡는다.
처음에는 빠르게, 서장 알레그로.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동시에 활을 내리긋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빰 빠빰 빠빰-
단원들의 연주를 보느라 총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내 머릿속에서 연주되는 현악 세레나데가 모두 알려 주었으니까.
지휘봉을 잡고 흔들 때마다 하나의 음표를 연주한다.
이 곡의 시그니처 파트라고 할 수 있는 도입부가 지나고 부드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나온다.
손의 움직임이 본능적으로 간결하고 빠르게 바뀌며 음악의 선율도 바뀌어 간다.
그래 이게 음악이지. 이게 음악이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음악. 마치 내가 악기를 손에 쥐고 연주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주된다.
나도 모르게 연주를 하고 있다는 기분에 심취해서 동작이 격해지면 악기 소리가 커지고, 작아질 때면 악기 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운 브릿지에 돌입하며 현악기의 소리가 약해진다.
콘트라베이스 위에 얹어지는 첼로와 비올라 그리고 바이올린의 선율.
온몸을 휘감는 소리의 전율.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지휘자가 서는 단상이 가장 좋은 객석이었다는 것을.
객석에서 듣는 것 이상으로 확실하게 살아 있는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끊임없이 반복될 것만 같은 격렬했던 K.525의 1악장이 끝이 났다. 뒤에 이어지는 것은 2악장의 로맨스 안단테.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 2악장의 도입부를 시작하려 했는데, 뒤에서 걸어오는 말소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떠셨습니까?”
“네? 아, 네. 마치 제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기분이네요….”
뢰베의 말에 정신을 차리자, 이마에서 흘러내려 오는 땀방울이 눈을 찔렀다.
이마뿐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려 옷이 젖어 조금은 춥게 느껴질 정도.
옷을 더 적시기 전에 뢰베가 나를 깨워 준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총보를 넘기지 않으시는 모습에,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곡이잖아요. 서울 교향악단에서 많이 연주되던 곡이기도 하고….”
그래. 아버지가 집에서 끊임없이 연습하던 곡이었다. 어쩌면 그때 들어 보았던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머릿속에 남아 악보를 보지 않아도 기억이 났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곡 말고도 수많은 곡을 연습하셨었지만….
뒤따라 나오려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억지로 삼켜내었다.
“저는 제가 써 놓은 메모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자주 보는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실제 연주에서는 총보를 볼 수 없으니까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총보라는 것을 처음 본 이유가 무대에서 볼 수가 없어서였네요. 무대에 올랐던 것이 오래되어 잊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번에 지휘자로 무대에 오르게 되신다면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겁니다. 어쩌면 예전에 턱시도와 나비넥타이를 하고 무대에 올랐던 꼬맹이 사진과 비교를 할지도 모르죠.”
“하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제 사진이 아직 여기저기 많이 남아있을 테니까.”
지휘봉을 잡고 흔들며 같이 흔들렸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흥분감과 고양감이 약해지며 점차 숨이 차오는 것도 약해졌다.
“그렇지요. 얼마 전 신년 음악회에서 평소처럼 왈츠곡들을 지휘할 때에도 제가 어찌나 춤을 추고 싶던지. 하하. 다 늙어서 주책입니다. 만약에 그 위에서 춤을 췄다면 제 사진이 영원히 신문 위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빈은 왈츠로 유명한 곳이었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라는 거장이 있었던 곳이지만, 이곳의 신년 음악회는 언제나 왈츠와 폴카 같은 곡이 연주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곡은 매번 빠지지 않고 연주되었다.
그런 곡들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둘째치고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객석에서 움직이고 싶었을지, 상상만 해도 재미있는 광경.
“그렇죠. 비록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출 수는 없지만, 새해의 분위기를 밝게 띄워 줄 수 있는 곡들입니다.”
“내년 새해에 다시 방문해서 들어 봐야겠네요.”
“오, 영광이죠. 빈 필의 대표에게도 전해 두겠습니다. 꼭 초청장을 보내 달라고 말이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단상에서 내려오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무래도 알레그로 파트를 지휘하며 격렬하게 움직인 덕에 체력이 바닥난 모양.
“저런, 아직 식도 올리지 않으셨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시다니요.”
“네? 아하하하.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알레그로 파트에서 체력 소모를 꽤 많이 한 모양이에요.”
“지휘는 체력의 분배도 중요합니다. 다리를 움직이기가 어렵죠. 지금처럼 짧은 곡이라면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50분이 넘어가는 교향곡이라면 온몸을 가눌 수도 없을 정도로 힘이 드는 일입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뢰베와 이야기하면서 지휘에 대한 개념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내 안에서 지휘라는 것을 연주보다 쉬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00명이 넘어가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모두와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뢰베와 함께 연습실을 빠져나와 금빛으로 빛나는 로비로 나오자, 그는 이번에 함께 만들어 갈 곡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시겠지만 빈 필에는 상임 지휘자가 없습니다. 콘서트마스터와도 이야기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객원 지휘자로 출몰하는 저보다 더 권력이 강한 친구입니다. 하하하.”
“로베르토 무디입니다. 무디라고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잘 부탁드립니다. 무디.”
무디는 이탈리아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관현악단이기에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 사람인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이탈리아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느끼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었는데, 어쩌면 그 일로 생길 뻔했던 선입견을 없애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 한 가지 깜박하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는데, 제가 유니버설 UK와 계약된 상태라 제가 만드는 음악은 모두 그곳에서 발매가 됩니다. 혹시 빈 필이 계약된 배급사가 있나요?”
“그런 것은 경영진에서 알고 있을 것 같네요. 이야기해 보고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무디는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어쩌면 영어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야기를 길게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원하는 컨셉 같은 것이 있다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그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서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 과연. 이정현 씨는 확실히 다른 음악가들과는 다르군요.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물어보는 일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띄워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협업하는 것에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나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말하는 다른 음악가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전혀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말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클래식의 최고 전성기라고 여겨지는 18, 19세기를 지나오며, 새롭게 등장했던 음악가들은 모두 잊혀버렸으니 말이다.
21세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금도 그때의 음악을 듣는 것에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말 그대로 ‘클래식’. 고전적인 음악 임에도 그 누구도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 만들어진 교향곡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그 곡들을 만든 음악가까지도.
“곧 유럽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겠네요. 그 중심에 빈 필이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 역시 영광입니다. 마에스트로 뢰베 그리고 무디.”
나는 두 명의 노인과 손을 맞잡았다.
***
“후아….”
나는 호텔로 돌아와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느슨하게 하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넥타이라는 것만큼 불편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직 땀에 젖은 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내 목을 조이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비행기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 빈에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의 히스로 공항으로 돌아가 내일 하루는 푹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똑똑-
“네 잠시만요.”
호텔 방은 외부에서 열쇠가 없이는 열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어, 나는 짐을 정리하기 위해 침대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다가갔다.
오래된 놋쇠 손잡이를 잡아 돌리며 가볍게 당기자, 문 앞에는 메건이 있었다.
“어? 아직 시간이 좀 있지 않나요?”
“짐 싸는 거 도와드리려고요. 빈 필하모닉과의 대화가 예상보다 오래 걸리셨잖아요.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라실 것 같아서….”
문을 잡고 있던 틈으로 메건이 파고들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는 메건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용기로 온 거라 비행 시간에 큰 상관은 없지 않나요?”
“그, 그렇기는 해도 준비를 빠르게 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메건은 엉망진창인 방 안을 보며 할 말을 잊었는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조금 전에 풀어 놓은 넥타이와 침대 위에 던져 둔 재킷. 그리고 짐을 싸기 위해 열어 놓은 여행용 가방까지 모두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미안해요, 메건 말대로 짐을 싸던 중이라. 엉망이죠….”
“…….”
나는 재빨리 말이 없어진 메건에게 다가가 그녀와 침대 사이에 들어가 시야를 가렸다.
“메건? 여보세요~?”
“…….”
“뭐야, 왜 얼었지?”
나는 메건의 시선이 고정되어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행용 가방을 열다가 그 틈에서 떨어진 나의 속옷이 있었다. 그것도 새것이 아닌 입다가 넣어놓은 속옷이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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