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
011화
서울 사람은 모두 모인 것 같은 일요일 점심 시간대의 강남역 8번 출구.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어 다니고 있다. 이 가운데 내가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싶지만, 아마 생각보다는 많지 않을까. 한 두세 명 정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작은누나)은 친구랑 만나서 온다며 나보다 먼저 나갔고, 나는 이렇게 혼자 강남역 8번 출구에서 길을 잃었다.
‘언제 혼자 강남역에 와 봤어야지….’
혼자서 강남역에 오는 일은 항상 서점에 소설책을 사러 올 때 말고는 없었는데, 요즘에는 책마저 휴대폰으로 보기 때문에 언제 왔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약속 장소는 8번 출구에 바로 붙어있다고 했던 브라질리언 스테이크 하우스.
브라질리언은 뭐가 특별할까 생각해 봤는데 도저히 모르겠어서 거기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브라질에서는 메이저 콩쿠르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맛있겠지, 브라질리언?”
온갖 상상을 해 대며 혼자 레스토랑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어디에 붙어 있는 건지 보이질 않는다. 이 앞에 바로 붙어 있다더니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부르르르르르.
누나에게 전화가 온다. 내가 먼저 걸지 않아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길을 물어보면 부끄러우니까. 나름 그래도 이 동네 토박이인데.
“여보세요?”
[너 어디야?]“강남역 8번 출구.”
[거기에서 2분도 안 걸리는데 빨랑 와.]“어, 근데 나 거기 가 본 적이 없어서 어딘지 모르겠어.”
[야, 너는 이 동네 하루 이틀 사냐! 동네에 있는 걸 왜 몰라?]“몰라. 양재동으로 이사하고 나서 서초동은 잊기로 했어.”
강남역은 서초동과 역삼동에 걸쳐 있는 상업 구역이다. 5, 6, 7, 8 출구는 서초동, 1, 2, 3, 4 출구는 역삼동이다.
그리고 강남대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서 신논현역 쪽으로 가면 논현동과 반포동이다.
서초동의 주택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90%는 강남역에서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한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 10%는 서래마을이나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는 반포동을 이용하고 식자재는 양재 쪽에 있는 세 개의 대형 마트 중 한 곳을 이용한다.
하지만 강남역은 정말 한 달에 한 번씩 개변을 일으켜서 있던 가게도 없어지고 없던 가게도 생기니까 하나하나 기억하기에는 너무 변화가 빠르다.
[금방 갈게. 8번 출구에 딱 붙어 있어.]“엉, 알았어.”
다행이다. 그냥 전화로 길을 가르쳐 주는 건 알아듣기가 어려웠는데 말이지.
지하철역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지 8번 출구와 7번 출구 사이에 있는 작은 광장에는 만원 지하철을 방불케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는 진짜 언제 오더라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답답해지는 그런 느낌이다.
톡, 톡.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반짝거리는 커다란 눈을 보이며 쳐다보고 있다.
키는 한 165 조금 넘을까? 하늘색 셔츠에 플레어 스커트, 에나멜 단화를 신고 있는 사람이다. 머리는 여자치고는 좀 짧은 편.
이런 머리를 숏 컷이라고 하던가. 예전에 봤던 일본 배우 히로스에 료코의 머리 스타일인 것 같다.
보통, 사람에게 어울리기 가장 어려운 머리 스타일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나이는 대충 나랑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자 여자 쪽에서 말을 꺼낸다.
“이정현 씨 맞죠…?”
음? 누구지?
“누구… 신지?”
“맞죠? 맞죠?!”
누구냐고 물어보니 꺄아 꺄아 하면서 혼자 방방 뛰는데 여기에 있는 수백 명이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에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누구세요?”
“저 유지현이에요! 지혜 언니 동생!”
아, 교생 선생 동생이구나. 누나가 오는 줄 알았는데, 순간 당황했다.
“아…. 미안해요, 다른 사람이 올 줄은 몰랐어요. 누나가 오는 줄 알고….”
“원래 언니가 간다고 했는데, 내가 가겠다고 했어요. 흐흐, 제가 팬이라서….”
여자치고는 웃음소리가 독특하다. ‘흐흐’라니.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하이 텐션. 의외로 개그 캐릭터였을지도.
유지현을 따라 들어온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음악을 마주했다.
‘라 밤바 (La Bamba)’
멕시코의 민요. 우리나라에는 리치 발렌스의 편곡 버전(1958)으로 알려진 영화 OST가 유명한데, 사실 그 곡은 리치 발렌스의 버전이 아니라 로스 로보스 버전(1987)이다.
이곳에 흐르고 있는 라 밤바는 멕시코 전통 음악이지만.
왜 브라질리언 레스토랑에서 멕시코 음악이 흐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음악만 들어봐서는 멕시코 음식인 타코도 팔 것 같은데 팔려나?
이곳이 멕시코 식당인지 브라질 식당인지 혼란스러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디 식당이건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탈리아 식당에서 햄버거도 파는 게 대한민국 땅인데.
“안녕하세요. 교생 생활은 어떠셨어요?”
“안녕~ 괜찮았어. 남학교라고 걱정 많이 했었는데 애들도 말 잘 들어주고.”
“야! 넌 동생이란 게 누나는 안 보이지? 하늘 같은 친누나를 봤으면 누나 안녕하세요, 해야 할 것 아냐.”
“누나는 맨날 보잖아, 집에서. 한 시간 전에도 봤던 것 같은데 또 인사해야 돼? 하라 그러면 하고. 안녕하세요, 이정화 씨. 오늘은 어제보다 더 못나 보이시네요.”
“푸흐.”
나의 옆에 앉은 작은누나와 티키타카를 보여 주자 내 건너편에 앉은 유지현은 물을 뿜어 버렸다. 설마 다른 집의 남매들은 이렇게 안 하는 건가?
남매들은 다 이런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내 주변 사람들 중에 남매가 없다.
수원이는 외동이고 유자는 형하고 남동생이 있다. 다른 애들은 집까지 찾아갈 정도로 친하지를 않네.
와, 이렇게 보니까 나 진짜 친구가 없구나.
어쨌거나 레스토랑의 시그니처인 브라질리언 디쉬를 주문했다. 나는 보통 처음 가는 식당에 가면 추천 메뉴나 시그니처를 주문하는데 그 이유는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웹 서핑에서 봤던 것 같은데,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이라는 걸 보았던 이후에 그렇게 정했다.
나의 시간이 고민하는 걸로 소비되는 게 싫으니까.
브라질리언 스테이크라고 해서 엄청나게 특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향이 좀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마 이것도 한국인에 맞게 향을 조금 약하게 한 거겠지.
개인적으로 소스는 그레이비 소스가 좋은데, 우리나라에서 그레이비 소스를 맛있게 직접 만드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보통은 소고기에 맞는 그레이비 소스는 소고기로 만들고 닭고기에 어울리는 것은 닭고기로 만든다. 해당하는 고기의 향이 더 우러나는 소스가 바로 그레이비 소스 되시겠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스는 보통은 스테이크 소스라고 부르는 소스다. 사실 좋아한다기보다는 익숙한 소스라고 말을 해야겠지만.
피자를 시키면 피클이랑 소스를 주는 거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해외는 안 주거든.
“넌 물어보고 싶은 거 있다고 사람 불러 놓고 돼지처럼 먹기만 하냐?”
아! 깜박했다. 내가 부른 거였지. 내가 누군가를 찾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아, 맞다. 맛있어서 까먹고 있었네.”
왜 보자고 했던 거였지? 아, 공연 곡 뽑아 보자고 했었지.
역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의식주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밥만 먹고 있어도 음악에 관한 건 전혀 생각나질 않으니까.
그중에서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함께 모인 나머지 세 명 중에 두 명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서양화 전공에 예고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그나마 평범에 가까운 것은 교생 선생이었던 유지혜인 것 같다.
“여기 맛있긴 하네. 나도 처음 와봤는데, 정화 너는 와 봤어?”
“아니, 내가 이렇게 비싼 데를 어떻게 와.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가난한데. 오늘도 동생이 사 준다고 하니까 온 거지.”
누나는 유지혜와 그런 대화를 하더니 신세 한탄을 하며 나에게 눈치를 준다.
얼마 전에 갖고 싶다고 하던 액정 타블렛을 눈빛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누나 그거 400만 원이나 하던데….
“흠흠! 제가 이렇게 뵙고자 한 건 다른 게 아니고, 학교 밴드에서 공연을 하는데 곡을 아직 못 골라서요.”
적당히 누나의 말을 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격식을 차리며 말을 꺼냈다.
“이정현 님이 밴드를 한다구요?!”
교생 선생의 동생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이 깜짝이야. 님이랜다. 님.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을 돌아보고 있다.
대화를 하고 있던 내가 이렇게 놀랐는데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오죽할까.
“앗….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유지현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식당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사과의 인사를 한다.
“저 밴드부 부장이에요.”
“그러면 성… 성악은 이제 안 하시나요?”
“학교 동아리랑 성악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저희 학교에는 성악 동아리 같은 게 없거든요.”
“아…. 인문계 고등학교셨죠….”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다음에 이어져 나올 말들도 알 것 같다. 나는 그것과 관련해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선수를 치기로 한다.
“네, 지현… 씨는 예고라고 들었는데.”
“앗! 저는 실용 음악과예요. 보컬 전공.”
오, 다행이다. 실음과면 내가 물어보는 걸 잘 알지 않을까? 아…. 잘 아는 게 오히려 더 별로일지도 모르겠다.
대중적인 음악을 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전문가가 보는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
“8월에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데 거기에서 할 곡을 아직 못 정해서요. 목록은 있는데 아직 고민이 되어서 그걸 물어보고 싶어서 모셔 달라고 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 그러시구나….”
주머니를 뒤져 리스트가 담긴 수첩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설명을 하긴 해야 하는데, 실용 음악과인 교생 선생의 동생은 이 노래들을 다 알지 않을까?
“좀 대중적인 걸로 하고 싶어서요.”
대중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갈리는 거지.
만약 클래식 음악을 항상 듣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중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교향곡 같은 클래식 음악이 될 것이고,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 대중적이라는 말은 춤에 어울리는 음악이 되겠지.
그 안에는 또 세부적인 전공에 따라 갈릴 것이다. 피아노 전공이면 피아노. 재즈댄스 전공이면 재즈댄스가 되겠지.
“전공이 보컬이면 밴드 음악 잘 아시겠네요? 학년이…?”
“3학년이에요.”
나보다 한 학년 높았구나. 나랑 동갑이라고 들었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을지도.
“3학년이셨구나. 저는 2학년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누나가 둘이라 누나라는 호칭에 거부감은 없다.
다만 누나가 많은 사람에게 누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듣는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게 굉장히 거리를 두는 호칭이라는 것.
차라리 누구누구 씨라고 말을 하는 것이 더 가까운 호칭이다.
‘누나’라는 건 함께 자란 남동생에게는 ‘공포’를 의미하는 여러 가지 말들 가운데 하나니까.
“이게 선곡표예요?”
목록을 보며 유지현이 나에게 물었다.
“선곡된 건 아니구요. 이 중에서 고를까 고민하는 정도? 두 곡 할 거거든요. 한 곡은 정했는데 두 번째 곡이 아직이에요.”
“다른 곡은 뭔데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누나와 교생 선생은 이미 이쪽과는 다른 별개의 대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부탁한 것들은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한 눈치.
이럴 줄 알았으면 유지현만 보자고 하는 건데, 4인분의 식대를 계산하게 생겼다.
분명 같은 테이블을 쓰고 있는데, 반쪽은 패션과 뷰티의 이야기 쪽을 하는 분위기 같다.
휴대폰에 띄워 놓은 쇼핑몰의 상품들을 보면서 꺄악거리는 두 명의 대학 졸업반.
내 계획은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는 교생 선생에게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아마 모르는 곡일 거예요. 좀 마이너한 밴드의 곡이라. 블랙 스톤 체리라는 밴드의 Stay라는 곡이에요.”
후식으로 고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는 대답했다. 맛이 없다. 식당의 후식으로 나온 커피들은 왜 한결같이 맛이 없는 걸까.
“음…. 확실히 들어 본 적은 없네요.”
“그래서 두 번째 곡은 좀 대중적인 곡으로 고르고 싶었거든요. 다들 알고 좋아하는 곡이지만 공연에서는 많이 안 할 만한 곡으로.”
“확실히 두 곡을 연속으로 마이너한 곡으로 선곡하면 관중의 호응을 끌어내기 어렵겠죠.”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두 번째로 대중적이라는 말을 했다.
어제 합주실에서 만들었던 리스트 중에 대중적인 곡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유명한 밴드의 곡이 대중적이라는 말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우리나라 락 밴드의 곡을 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 락 밴드의 곡은 대부분 샤우팅을 우선시해서 발성을 하는 곡이 많기 때문에 보컬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TV 가요 프로그램에 나왔었던 수많은 락발라드 곡들을 보더라도, 샤우팅이 없으면 대부분 음역대를 소화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아이돌 밴드들은 실제로 연주도 하지 않는 핸드 싱크를 하는 사기꾼들이기도 해서 싫기도 하고.
“흐음….”
유지현은 목록을 보면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이 곡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긴 고민 끝에 나온 그녀의 선택은 정말 의외의 곡이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