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여보세요? 메건?”
“네, 네?”
집 안에 남자가 둘이나 있는 집에서 자랐으면서 남자의 속옷을 보고 놀라다니.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집에서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가족들도 흔하게 마주했을 텐데.
메건의 반응은 오히려 내가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남자 속옷 처음 봐요?”
“아뇨, 그럴 리가요….”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놀라요?”
“제가 봐 왔던 이정현 경은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엄청난 곡들도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그런데 인간적인 면을 처음 본 것 같아서요.”
인간적인 면을 속옷에서 발견하지 말라고. 다른 곳도 인간적인 면이 많은데 하필이면 왜 속옷이야.
평소에는 참 도도한 귀족 집안 딸을 잘 연기하는 메건이었지만, 이런 곳에서 의외의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혼하게 되면 매일 봐야 할지도 몰라요.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그렇죠…. 결혼….”
메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에 나는 살짝 귀엽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보여 준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함께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사무적인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진 메건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몇 안 되는 나의 옷가지들을 가지런히 접어 여행용 가방에 넣어주었다.
그녀의 떨리는 손을 볼 수 있었지만 나는 모른 척해 주기로 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어도 따로 마음이 가는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결혼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지는 않았다.
양쪽 집안에서도 어서 하라는 느낌의 압박을 주고 있는 상황이라 날짜를 정하는 일만 남았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진도를 나가지?
***
적당히 담백한 기사들과 과장이 엄청나게 섞인 기사들이 함께 놓여 있는 가판대. 나는 도무지 신문을 집어들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물론 평소에도 신문을 사서 보는 편은 아니었으나 수업이 끝나 밥을 먹은 뒤에 심심할 때는 신문만 한 것이 없었기에, 볼 만한 것이 없나 하고 학교 앞 가판대에 나왔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정현 경! 이번에 빈 필하모닉과 함께 협업하시기로 한 것이 사실입니까?”
“이번에 순방하시면서 미스 랭커스터와 함께하셨던 모습에서 결혼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얼마 전에 미국에 있는 시에스타가 빌보드 차트 상단에 올라갔었는데, 조언 같은 것을 해 주신 겁니까?”
“말씀 좀 해 주세요! 이정현 경!”
경호원을 대동하고 나왔지만 아무도 없어 보였던 텅 빈 거리를 순식간에 기자들이 채울 줄 몰랐었다.
아마도 주변 카페나 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한 번에 모여든 것 같았다.
“학교 앞입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그러지 말고 한마디만 해 주세요. 이정현 경!”
차마 신문을 사려는 엄두가 나질 않아 다시 교문으로 들어가려는 데, 기자들 때문에 벌어진 소란 때문인지 학교 건물의 창문에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몰려드는 기자들을 한 명뿐인 경호원은 감당할 수 없었고, 조금씩 힘에 부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내일 기자 회견을 열어서 다 말씀드릴게요. 됐죠?”
“내일 기자 회견을 여신다는 것은 공식적인 입장입니까?”
“네, 내일 정오에 제 자택에서 기자 회견을 열겠습니다.”
“특종이다! 이정현이 기자 회견을 연대!”
“빨리 데스크에 알려! 빨리!”
그제야 아프리카의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던 기자들이 무리를 지어 퍼져 나갔다.
턱 밑까지 들이밀던 카메라와 녹음기들의 압박에 기자 회견을 열기로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경호원의 표정은 선글라스 너머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울해하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요. 어차피 이번 일의 결과는 알려야 했으니까. 그게 저희가 하는 일에 더 도움이 될 거예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현 경. 그리고 오늘 일을 보니 경호원을 조금 더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 한 명으로는 감당이 되질 않네요.”
현재 경호원은 24시간 교대제로 두 명이 맡아서 하고 있었기에, 내게 붙어 있는 인원은 언제나 한 명.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부담이 되어서 특별한 위험이 없다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하고 싶었는데, 이런 일이 계속 생긴다면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죠. 인원이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에 연락해서 인원을 늘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란스러웠던 점심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더 소란스러울 수는 없을 거라고 말이지.
다음 날.
나는 어제의 소란보다 더 큰 소란을 마주해야 했다.
“아! 밀지 마!”
“내가 먼저 맡은 자리라고!”
기자 회견 장소로 고지했던 집의 정원에는 방송사에서 사용하는 대형 ENG 카메라까지 서너 대가 세팅되어 있었고, 기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맡겠다고 아웅다웅하며 싸우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정현 경.”
“미안해요, 아서.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네요….”
딱 어제만큼의 기자들이 몰려들 것으로 생각해서 더 많은 의자를 준비하지 않았었는데, 어제 몰려들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그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아귀들이 튀어나오는 장면처럼,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험험! 여러분 정숙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기자 회견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귀다툼하던 기자들을 한 방에 잠재운 아서의 우렁찬 목소리는 넓은 정원에 메아리처럼 퍼져 나갔다.
항상 차분하게 말을 하던 아서의 큰 목소리는 처음 들었기에 나조차도 놀랐다.
그의 목소리에 정원에 있는 나무의 잎사귀들까지 떨려오는 듯했다.
“제가 질문자를 선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히 손만 들어 주십시오. 각 질문자는 하나의 질문만 부탁드립니다.”
다시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온 아서의 진행으로 기자 회견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디언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빈 필과 협업을 하신다는 루머가 나왔는데, 확정이 된 건가요? 확정되었다면 공연하는 날짜는 언제입니까?”
“협업 자체는 확정이 되었지만, 공연 날짜는 미정입니다. 아직 곡을 쓰지도 않았기에 기간은 조금 늦춰질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여름이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던 기자들은 모두 한 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BBC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유럽 순방 일정에 미스 랭커스터와 함께하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결혼이 임박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일단 그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와 미스 랭커스터의 집안에서는 현재 날짜를 조율 중에 있습니다.”
결혼 루머도 엄청나게 돌았던 것 같은데 이걸로 조금 가라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공식적인 답변만큼 공신력이 있는 것들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프러포즈는 하신 겁니까?”
“질문은 하나씩만 부탁드립니다.”
아서는 한 명에 하나씩만 질문해 달라는 말을 무시하고 두 개의 질문을 한 기자에게 강렬한 눈빛을 쏘았다. 살짝 움츠러드는 모습이 보이자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의 질문에 답변해 주기로 했다.
“아직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프러포즈가 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아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기자 회견이었다. 내가 했던 몇 안 되는 기자 회견 중에서는 가장 분위기가 좋았다고 해야 할까.
논란이 될 때만 기자 회견을 열다가 이렇게 좋은 일에 기자 회견을 여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서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기자 회견이라 생각했다.
기자 회견이 끝난 뒤 소강상태가 되어 버린 정원을 바라보며 아서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잔디로 뒤덮여 있던 아름다운 정원은 파헤쳐지고 짓밟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음에 또 기자 회견을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다시는 정원에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상의도 없이 기자 회견을 열었다며 삐친 아서는 일주일 동안 나에게 간식을 주지 않았다.
***
언제나 영국의 대표 일간지인 가디언의 1면을 차지하던 것은 축구 선수들의 스캔들.
그렇지만 정현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에 현지에서 했던 인터뷰들을 종합한 기사가 1면에 올라왔다.
영국 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종 미디어에서는 정현의 유럽 소식을 앞다투어 실었다.
많은 사람이 정현의 유럽 진출을 반겼고, 클래식의 본고장이라고 여겨지는 빈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기대했다.
그리고 그 소식에 가장 기뻐한 곳은 국왕인 윌리엄 5세가 머무는 버킹엄궁.
“이정현 경이 만든 정책 덕에 제가 조금 힘이 생겼습니다. 무능력한 왕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감축드립니다, 폐하. 이번에 유럽 주요 도시에 진출하며 거둬들일 금액도 꽤 클 것 같다는 예상입니다.”
“오, 그래요? 좋습니다. 좋네요. 이로써 선위를 해 주신 선왕께 면목이 설 것 같습니다.”
윌리엄 5세는 알버트에게 정현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일부는 이정현이 유럽에 방문한 것을 빗대어 국부 유출이라고 했지만, 정현이 유럽으로 향할 때 함께했던 필립이 각국의 수뇌부와 회의를 거쳐 정책을 진행한 것이 엄청난 일을 불러일으켰다.
유럽 주요 도시 내에서 발생하는 소극장의 이용료를 각국 정부와 나누는 협상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국외에서 벌려진 사업은 영국 왕실의 투자로 진행되어 그 수익을 왕실에서 온전히 거둬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왕족이라 하더라도 세금을 내야 하는 영국에서는 정부에도 좋은 일이었다.
즉,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사업이 된 것이었다.
“이제 왕국의 문화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폐하.”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이지요.”
산업 혁명 이후 문화보다는 산업에 더 큰 신경을 쏟으며 발전시켜 왔던 영국의 산업이 해외의 기업으로 팔려나가며, 이제는 남아 있는 영국 업체들이 거의 없어 타국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 혹은 과거의 별명을 비꼬며 해가 지는 나라라는 오명을 들었던 것도 사실.
현재 영국을 떠받들고 있는 것은 3차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이나 보험이었기에, 정현이 기반을 다진 정책은 꺼지기 전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던 영국에 기름을 채워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윌리엄 5세와 알버트가 바라보는 영국의 미래에 정현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면세권 말고 또 다른 것은 없겠습니까? 아무리 더 주어도 부족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더 주게 된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왕실의 저택과 면세권까지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하지만 이것은 어떻겠습니까?”
곧 손녀사위가 될 정현이 받게 될 상을 생각하며 알버트의 얼굴에 미소가 크게 번져 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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