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
원래도 나라에 이득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질 않았던 사람이라, 살짝 뜸을 들이는 듯한 알버트의 말에 윌리엄 5세는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려졌다.
“작위를 주는 겁니다.”
“작위라고요? 그는 이미 기사 작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가진 기사 작위 말고 귀족 작위를 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영국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지 않겠습니까?”
알버트의 말에 윌리엄 5세의 이마가 살짝 구겨졌다.
영국에서 21세기에 들어와 세습이 가능한 작위를 받은 일은 없었다.
1, 2차 대전 이후에 작위를 받을 만한 전공을 세울 전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귀족 작위가 내려진 것은 1926년.
100년이 넘게 주어지지 않던 세습이 가능한 작위를 주게 되는 것.
“그런데, 평의회가 귀족 작위를 주는 것에 동의할까요?”
“작위를 하사하는 것은 왕의 고유 권한입니다.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평의회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제가 반드시 동의를 얻어내도록 하겠습니다.”
귀족 평의회의 수장인 알버트의 말에 윌리엄 5세는 안심할 수 있었다. 구겨져 있던 그의 이마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알버트 경만 믿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모든 것이 폐하의 뜻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하하하.”
***
퉁 퉁 퉁 퉁-
오랜만에 망치를 잡고 현장에 들어오는 것은 조금은 즐거웠다. 주변 사람들은 그냥 설계만 하지 왜 현장까지 나오냐며, 망치를 잡은 내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8년 동안이나 목수로 살아 온 내가 망치를 잡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원에 헛간이라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려와서 간식 드세요!”
지붕 위로 올라갈 나무들을 연결하느라 사다리에 올라와 있었는데, 아래에서 간식을 먹으라며 소리치는 것이 들려 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메건. 요즘에는 종종 이렇게 공사 현장에 나와 있는 나에게 간식을 가져다주곤 했다.
나는 서둘러 사다리에서 내려와 손에 끼고 있던 두꺼운 장갑을 벗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바구니를 넘겨받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힘들지는 않으세요?”
“즐거워요. 오랜만에 나무를 만져서 그런가 봐요.”
게다가 요 몇 달 동안 공원마다 소극장을 만들며, 살이 쪘던 것도 많이 빠졌다. 이제는 예전의 몸매를 되찾은 듯했다.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건강해지니까.
메건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내가 현장에 나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직접 만들어다 준 간식에 설탕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내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다는데 이해해야겠지….
영국은 설탕이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는 십수 년 전의 발표 이후에 설탕을 안 쓰는 음식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설탕의 대체재로 쓰이는 감미료는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감미료를 설탕 대신에 사용하는 온건파들이 있지만, 아예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 강경파들이 있었고 메건은 강경파의 사람이었다.
덕분에 간간이 메건이 안 보는 사이에 몰래 달달한 것들을 먹는 것이 내 유일한 일탈이 되었다. 설탕 1kg짜리 한 포를 1파운드면 살 수 있는데….
이렇게 수업이 없는 날에는 소극장을 짓는 현장에 나와, 망치질하는 것이 나의 평화로운 일상이 되었다.
어차피 런던 안에 있는 대부분의 소극장은 내가 만든 설계도로 제작되었고, 음향 테스트까지 진행해야 했으니 완공되기 전에 많은 곳에 얼굴을 비추었다.
언제나 온화한 날씨인 영국의 가장 큰 단점은 비가 너무 자주 온다는 것. 그래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의 장비들이 갑자기 내린 비에 망가지는 일이 많았기에, 나는 소극장에 지붕을 얹어 그들의 장비를 보호하고 싶었다.
없는 살림에 조금씩 돈을 모아 장비를 샀을 텐데, 잠깐 내린 비 때문에 망가져서 울상을 짓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테니까.
오늘의 현장은 런던 시내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볼 수 있는 본드 스트리트 옆 버클리 스퀘어 공원. 명품 거리라고 불리기도 하는 본드 스트리트에는 명품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이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거의 모든 공원에 소극장을 설치한다는 정책이었기에 여기에도 설치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공연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장 주변을 둘러보며 잡생각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메건이 내밀고 있는 컵이 보였다.
“아, 미안해요. 진행 상황을 좀 생각하느라….”
“아니에요. 이정현 경이 집중하면 주위를 못 본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을걸요?”
“주위를 못 보는 정도는 아닌데….”
간식으로 가져온 스콘과 컵에 담긴 밀크티를 마시며 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무렵, 메건이 말을 이었다.
“지금 런던 내에만 수십 곳이 생긴 거죠?”
“그럴 거예요. 내가 모든 현장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가 본 곳만 해도 열 곳은 넘으니까요.”
“꽤 호평이더라고요. 소리도 좋고 입장료에서 바로 세금을 거둬서 세수도 늘어났다고 할아버님도 좋아하세요. 교통 카드로 가볍게 입장료를 낼 수도 있어서 편리하고, 공연하려는 사람들도 정부 웹사이트에서 직접 예약하니까 믿을 수 있고.”
그런 방식이었나. 세금을 거두는 방식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서 뭐라 대답할 것이 없었다. 그런 것은 대부분 정부 쪽 사람들이 생각한 것일 테니.
“잘됐네요. 그러면 알버트 경도 승진하는 건가…?”
“할아버님이 승진을 해요?”
“작위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공무원이잖아요. 실적 내면 승진하는 것 아니에요?”
“아하하하!”
메건은 나의 말에 소리를 내어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주변의 인부들까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요? 공무원이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해서요. 공무원은 공무원이네요. 나라에서 돈을 받는 건 맞으니까.”
메건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여태까지 고위직 공무원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장관이나 뭐 그런 쪽으로….
그런데 이번 소극장 건으로 정부의 장관들을 만나는 자리에 알버트는 나오질 않았기에, 적어도 장관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 뭐 차관이나 그런 거로….
“알버트 경…, 정체가 뭐예요…?”
“정체라…. 그걸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말하기 어렵다던 메건은 갑자기 휘파람을 불며 멜로디를 연주했다.
휘이이~ 휘이이~ 휘휘~
그녀가 연주한 곡은 누구나 다 아는 영화 007시리즈의 테마. 바로 타이틀이 등장할 때 나오는 시그니처 사운드.
뭐야, 설마 알버트가 007인 거야? 그거 영화잖아.
“그러면…!”
“쉬잇! 비밀이에요.”
직접 물어보려던 내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더니 자신의 입 앞에 총구처럼 손가락을 세우며 메건이 말했다.
결혼한 다음에 부부 싸움이라도 하면 암살자 보내는 각인가 이거…?
그런데 왕족이 왜 그런 걸 하고 있는지는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물어본다고 해서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공사 현장의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조용히 메건이 가져다준 간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죠….”
“응? 네? 쿨럭.”
먹는 도중에 급하게 대답을 하려다 목에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콜록콜록.”
메건이 내민 찻잔에 담긴 밀크티를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야 목이 멀쩡해졌다.
“어머니가 궁금해하세요. 우리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아….”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는 메건.
조금 전까지 할아버지가 정부의 비밀 요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물어보면, 도망칠 수도 없잖아….
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메건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죠….”
“뭔데요?”
“메건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이렇게 쉽게 결혼할 수 있어요?”
“제가 이정현 경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집에서 강제적으로 시켰을 중매라고 생각해서 사랑 없는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알버트 경이 중매를 보라고 해서 저를 만났던 것 아닌가요?”
“음…. 그것과는 조금 달라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정원에서 나는 이정현 경이라는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대부분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그렇듯이 오만할 거로 생각했어요.”
오만하다니. 어쩌면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수십 번의 콩쿠르를 전전하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을 때, 매번 인터뷰에서 우승을 하는 것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처음에는 그래도 조금 성의 있게 인터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우승을 반복하면서 그 인터뷰들마저도 지겨워졌으니.
“제가 생각할 때 저는 오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거리를 조금 두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 집중하는 모습이. 그때 담아 둔 영상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어요.”
메건의 이야기는 내 얼굴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부끄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사람은 보통 자기 자신이 무얼 하는 장면을 보는 일이 드물어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했을 때 거울로 볼 수 없는 내 모습은 내 눈에는 미친놈 같아 보였거든.
“그런데 그거랑 결혼과는 좀 다른 이야기 아닌가요?”
“…그 영상을 많이 볼 때는 1주일에 거의 서너 번 정도 봤어요. 전부 다 본 건 아니고 조금 빠르게 돌려서 보긴 했지만.”
길게 이야기를 하던 메건은 조금 목이 타들어 갔는지, 나에게 주려고 담아 놓은 밀크티를 단숨에 들이켜곤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알게 됐죠. 이 영상에 보이는 사람이 나의 뮤즈라는 걸.”
“뮤즈….”
뮤즈는 여신인데…. 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매를 거절하지 않은 거예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사실 기대는 안 했었어요. 그렇지만 자신의 뮤즈와 결혼할 기회를 거절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메건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꿈을 꾸는 것 같은 눈동자와 금발 머리를 단정하게 고정해 주는 체크무늬 머리띠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현실감을 사라지게 했다.
메건의 그런 모습은 나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중매를 받아들였으니까.
내게는 그저 누구를 좀 만나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에 고민하던 중에 들어온 제안 중 하나일 뿐이었다.
거기에서 메건의 외모가 예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외모만 갖고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애초에 연애라는 감정을 잊고 살았었다. 이렇게 메건을 만나 소개팅과 비슷한 중매를 하고, 약혼하고 나서도 연애 중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일종의 정략결혼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급하게 결혼 날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었는데,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속이 간질거리는 듯한….
“그러네요. 뮤즈와 결혼할 기회를 거절할 사람은 없겠죠.”
“그렇죠?”
대답하는 메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달아올랐다는 것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둘 사이의 대화가 소강상태가 되어 다시 담백한 스콘과 밀크티를 마시려고 입에 가져갔을 때, 메건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셋은 갖고 싶어요.”
풋-
“콜록콜록.”
“괜찮아요?”
“콜록, 아, 네 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뭐라고…?”
내 귀가 잘못 들었을 거다. 아직 잠자리는커녕 키스도 해 보질 못했는데, 아이를 갖자는 이야기를 했을 리가….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셋 갖고 싶다고요. 제가 외동으로 자라서 많이 외로웠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낳을 아이는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있었다.
순식간에 진도를 나가 버리는 메건의 말에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초봄의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버클리 스퀘어의 벤치에서 메건과 나는 미래의 자녀 계획과 육아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메건이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듣기만 했지만….
결혼 날짜도 안 잡혔는데 이렇게 미래 계획을 짜고 있어도 되는 건가? 프러포즈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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