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2
121화
“저는 이만 다시 돌아가 볼게요. 메건 양도….”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하려 하는 순간에 주머니에 있는 전화기가 진동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도 못하는 전화기의 진동이 꼭 이럴 때는 잘 느껴진단 말이지.
전화기 위에 알버트의 이름이 발신자로 떠올랐다.
“잠시만요 알버트 경에게 전화가 왔네요.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이정현 경.]“안녕하세요 알버트 경.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귀족 평의회의 결정 사항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공무라고 볼 수 있겠지요.]“귀족 평의회요?”
귀족 평의회라. 그런 것이 있다고는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정부의 모든 일이 법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귀족의 평의회라는 것이 필요할까?
중세 시대처럼 귀족의 뺨을 때렸더니 사형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데, 귀족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걸까.
[이정현 경이 104년 만의 후작위 수여자로 결정되셨거든요.]“네에?”
정말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 어차피 기사 작위는 갖고 있으니 변하는 게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귀찮은 일만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도구 가방에서 방금 망치를 꺼내 손에 쥐었었는데, 다시 망치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이제 귀족 사교계에 진출하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알버트의 전화를 끊으며, 나는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일그러진 미간을 보고 메건이 다가와 물었다.
“할아버지가 뭐라세요?”
“…제가 귀족이 될 거래요.”
“그건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요.”
“쓸모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현대 시대에 귀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의미를 모르겠거든요.”
내 말을 듣자마자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메건.
귀족의 정점인 공작가의 딸이 귀족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모르겠다는 말에 웃는 것도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웃어요?”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셔서요. 저도 철들 무렵에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요즘 시대에 귀족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해서.”
다행이었다. 메건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나는 한편으로 안심했다.
솔직히 이번 국가사업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얻은 면세권만으로도 나는 만족하고 있었지만, 귀족 작위를 받으면 귀찮은 일만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와닿았다.
그 뒤에 들려온 메건의 목소리.
“하지만 이정현 경이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를 거예요.”
“다르다니요. 쓸모없는 것 아닌가요? 그냥 끼리끼리 노는 파티잖아요.”
“중세 시대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도 권력을 쥔 사람들의 모임이거든요. 얻을 만한 것은 있을 거예요.”
“난 권력 따위 관심 없어요. 귀찮기만 할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손에 망치를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별일이야 있겠냐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현장의 목수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 것을 후회해야 했다. 내가 100년 만에 영국에서 귀족 작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난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유럽에 다녀오고 경호원을 늘리면서 기자들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잠잠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쉽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특성을 내가 너무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놈의 영국 땅은 놀 거리가 너무 없어서 가쉽을 좋아하는 게 문제라니까….
[그렇죠? 이번에 100년 만에 귀족작위를 수여한다는 것은 이 영국 사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토론 프로그램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황금시간대라고 하는 금요일 저녁 일곱 시에 예능인들이 모여서 잡담을 하는 영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
그 프로그램의 주제가 바로 새로운 귀족 탄생이었던 것이다.
집의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를 바라보고 있는데, 모든 프로그램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냥 끄고 방에 들어가서 잘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 마음은 곧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기나 하자는 심정이 되었다.
[중세 시대부터 영국 땅에 귀족이 늘어나는 건 사회와 문화가 굉장히 융성하던 시기에만 일어났거든요.]예능 프로그램인데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걸 예능이라고…. 몸으로 부딪치는 한국의 예능과는 다르게 말장난을 좋아하는 서구권의 예능은 대부분 이렇게 토크쇼 같은 진행을 했다.
그 나라의 언어를 아무리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더라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는 그런 예능이었다.
[마지막 작위 수여가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사이에 있었단 말이죠. 그 시기 이후로 작위가 수여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이 쇠퇴를 해 왔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죠.]“이야…. 내 작위부터 시작해서 영국 산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네. 이러다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다 이야기하겠어.”
“이정현 경은 귀족이라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앗, 깜짝이야. 기척 좀 하시라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아서의 말에 나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요즘에는 기척도 하고 그러더니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나저나 퇴근 안 하세요?”
“안주인께서 오셨습니다.”
“저기 퇴근 시간 지났는데… 퇴근은 안 하시냐고요.”
“모시겠습니다.”
아서는 나의 말에 전혀 반응조차 하지도 않으며, 메건을 데려왔다. 지난번에 그 기자 회견 이후에 삐친 것이 조금 오래가는 것 같은데.
아니, 메건이 안주인이면 나는 주인님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정현 경이고 메건은 왜 안주인이야.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말이지.
“미리 알려 드리지 못하고 찾아와서 미안해요. 할아버님께서 전해 달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이게 뭔데요?”
메건이 직접 들고 온 하얀색 봉투. 봉인된 씰은 붉은색에 장미 문양. 알버트 경이 직접 보낸 것인가보다.
“여기 있습니다.”
이제는 놀랄 기운도 없는 내게 아서가 빵칼 같은 것을 내밀었다.
간식이라도 먹으라는 건가 싶어 칼을 손에 쥐고 빵을 찾았지만, 빵은 보이질 않았다.
“빵이랑 잼은요?”
“…그 칼은 우편의 봉인을 뜯는 칼입니다.”
메건의 얼굴이 웃음을 참느라 빨개지는 것이 느껴진다.
진짜 자원 낭비도 이런 자원 낭비가 없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이런 봉인 씰 같은 걸 뜯는 전용 칼이 있다니. 그런 건 건네줄 때 미리 알려 줘도 되는 거였잖아. 노린 건가 설마?
이런 건 그냥 손으로 뜯어도 되는 거잖아.
“큭큭.”
메건은 더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조금씩 웃음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우편의 봉인을 뜯는다는 그 용도에 맞게 칼로 붉은색 봉인을 뜯어내자, 그 안에 금박 테두리로 장식된 고급 편지지가 나왔다.
접혀 있던 편지지를 펼치자 안에 들어 있는 글자는 몇 글자 되지 않았다.
별다른 내용도 없이 날짜와 시간 장소뿐.
“축하드려요, 귀족 사교 파티에 데뷔하시게 됐네요.”
“이게 사교 파티 초대장이라고요? 다른 말도 없이 그냥 시간하고 장소만 나와 있는데?”
“원래는 귀족 평의회에 외부인이 참석할 때만 초대장을 보내요. 정기적으로 열리는 것이니까. 다들 그냥 알아서 모이는 편이죠.”
“이런 건 그냥 우체국을 통해서 보내도 되잖아요. 굳이 메건이 직접 가져오실 필요는 없지 않아요?”
“원래 귀족끼리는 우편이 아니라 직접 파발을 보내는 거래요. 참 쓸데없는 전통이죠.”
[그러니까 이정현 경이 이번에 후작위에 오르게 되는 것은 영국이 다시 위대한 나라가 되는 상징인 것이지요.]메건의 말이 끝나고 타이밍 좋게 들려 오는 TV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귀족이 될 것이라는 느낌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큰 차이가 없었다. 장원을 받아서 영지 국민을 지키며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중세 시대가 아니니까.
알버트에게 듣기로는 하루 만에 작위를 수여하는 수여식이 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국왕과 모든 귀족이 참석을 할 수 있는 날을 조율한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빈 필하고 협업할 음악을 뭐로 해야 하나 고심 중이었는데, 이런 귀찮은 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다니.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
며칠 뒤.
초청장에 예고되어 있던 그 날짜가 되며, 집 안은 부산스러워졌다.
파티에 가는 건 내가 가는 건데 왜 사용인들이 바빠지는 건데?
나는 지금 정신이 없다. 원래도 정신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더 없다.
수많은 사용인이 오가며 나에게 옷을 가져와 정신이 없었다. 내가 무슨 여자애들이 갖고 노는 인형도 아니고, 옷 갈아입히는 데 재미라도 들린 건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거실의 소파 앞을 수많은 전신 거울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옷은 어떠신가요?”
이게 몇 번째일까. 새로운 옷을 가져오고 몸에 대 보고 입어 보고 평가하고. 나는 괜찮다는데 더 좋은 옷을 가져오겠다며 아서가 오고 메이드가 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대체 옷들이 어디에서 나온 거야. 나는 옷을 사러 갔던 기억이 없는데 대체 사이즈는 어떻게 알아낸 거냐고.
“아무래도 지난번 푸른색 제복보다는 붉은색이 낫지 않나 싶어서 새롭게 만든 옷입니다. 아시겠지만 랭커스터가의 상징이 붉은색이니까요.”
이제는 조금 지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대충 입고 가면 안 되는 걸까.
“아무거나 입고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파티일 뿐이잖아요.”
“이정현 경…. 모든 자리에는 첫인상이 중요한 법입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줘 보세요.”
아서가 넘겨준 붉은색 제복으로 갈아입고 둘러싸고 있는 거울들을 보며 제법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푸른색 제복과 차이가 있는 것은 겨우 색깔일 뿐이잖아.
“역시 붉은색도 제법 잘 어울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 옷으로 하시지요. 그리고 머리를 잘라 줄 미용사가 도착해 있습니다.”
“머리도 잘라야 된다고요?”
“그다음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냥 모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옷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헤어 스타일에 메이크업까지. 아침부터 수선을 떨었던 것이 몇 시간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긴 시간을 준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가서 파악해 주겠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고 하면, 다시는 안 갈 테다.
파티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현관 앞 로비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아서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안주인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드디어 파티에 함께 갈 메건이 도착했다. 혼자 가도 충분하다고 했는데, 처음은 아주 힘들 것이라며 꼭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가요, 가죠…. 어후 힘들어. 온종일 목공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
나가는 길에 뒤에서 모든 사용인이 줄을 서서 인사를 했다.
“다녀오십시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한 뒤에 그다음부터 안 하더니,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체 인사.
이제는 하지 말라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다녀올게요….”
아서가 현관을 열어 주어 발걸음을 옮겨 저택의 입구로 향했다. 그렇게 입구의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늘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세워져 있던 그 자리에 4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 마차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부가 검은색에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의 문을 열어 주자 그 안에서 메건이 걸어 나왔다.
항상 하얀색 머리띠를 하던 그녀의 머리에는 웬일인지 머리띠가 보이지 않았고, 목에는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목걸이가 보였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지만, 화장하고 온 것인지 짙어진 아이라인과 마스카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도톰한 빨간 입술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붉은색에 하얀색 레이스로 포인트를 주어 우아하고 화려함을 동시에 갖는 드레스를 입은 메건, 마차에서 내려오는 그 발걸음부터 우아하던 그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조금 흥분한 듯이 소리치며 말을 했다.
“이정현 경! 오늘 옷이 너무 잘 어울리세요! 역시 제가 고른 것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니까요.”
너였구나! 나를 아침부터 괴롭힌 범인이….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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