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3
122화
“내가 신데렐라예요? 옷에다 마차에다….”
“신데렐라는 가진 게 없이 외모만 가진 진흙 구더기 소녀잖아요. 이정현 경은 가진 것도 많은데 꾸미질 않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마차는 전통이에요.”
파티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옷을 사러 가는 것도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것도 코앞에 닥쳐야 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호박 마차가 아닌 것이 어디냐.
“문장은 정하셨어요?”
“벌써 문장을 정했겠어요? 당연히 아직….”
귀족 작위를 받으면 자신의 가문을 상징할 문장을 평의회에 제출해야 했다. 그런 문장을 정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림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작위 수여식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그렇게 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투덜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인형 옷 갈아입히기 행사에 참여해 상당히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퉁명스러웠을 나일 테지만 메건은 친절하게 에스코트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며 말했다.
“마차에 처음 타면 생각보다 멀미가 날 수 있어요. 속도가 일정하게 나오지 않거든요. 멀미가 나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이건 뭔가요?”
“멀미약이에요.”
“아….”
파티가 열리는 장소는 이곳에서 꽤 거리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영국의 국회 의사당의 역할을 하는 웨스트민스터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것이 그렇게 의외인 것은 아니었다.
그곳이 영국의 중심이니 당연히 귀족들의 모임도 그곳에서 열릴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일종의 사모임일 사교 파티 장소로 그곳을 대여했다는 것이 조금 의외인 점이었다.
좌석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고를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흔들리는 마차의 승차감에 나는 평소에 타고 다니던 차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승마도 하셔야 해요. 제가 레슨 일정을 잡아 드릴게요.”
“승마요…?”
“폴로는 이곳에서 사교 파티 다음으로 중요하거든요. 보통은 시가 타임이라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지만, 이정현 경은 비흡연자니까 그 모임에서는 제외될 거에요.”
점점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저 기류에 몸을 맡길 뿐이었는데,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 기류는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가는 그런 귀족들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삶이었다.
“지금 작위 수여를 취소할 수는 있을까요…?”
“…아마 힘들지 않을까요? 백 년 만의 귀족 탄생이라고 다들 축제 분위기라….”
나로 인해 축제 분위기가 되어 버린 런던의 분위기. 아직 5월밖에 되지 않은 이곳이 마치 지나버린 크리스마스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들떠 있었다.
모든 일간지에서 외국인에서 귀화하고, 기사 작위부터 귀족 작위까지 다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 기사를 만들어 싣고 있었다.
마치,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 주듯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근에는 바람을 피우는 축구 선수가 없었기에, 나에 대한 이야기 덕에 각종 일간지와 가쉽지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들었다.
출판 업계만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겠군.
도착할 때까지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멀미하는 일은 없었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어 주자, 가까운 곳에 조명이 켜진 웨스트민스터가 보였다.
평소의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아니라 건물에 불만 켜져 있는 모습.
조금은 불편한 객차의 계단을 밟고 내려서자 메건이 당부의 말을 해 주었다.
“지금 이정현 경이 사시는 곳이 첼시(런던 서부) 지역인데 그 부근에 많은 귀족이 살고 있어요. 안면을 트게 되면 앞으로는 종종 마주치실 거예요. 찾아오는 사람도 많을 거고 말이죠. 되도록 친하게 지내 주세요.”
“노력해 볼게요. 귀찮게 하지만 않는다면.”
“아마 이정현 경이 하시는 일에도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요.”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팔을 살짝 오므려 팔걸이를 만들어 메건에게 내밀었다.
메건은 그 사이에 반짝이는 하얀색 장갑을 낀 손을 끼우며, 수줍은 듯한 얼굴을 보였다.
“가시죠.”
오늘의 전장은 귀족들의 사교 파티. 내 안에서 귀족들의 사교 파티는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암투들이 난무하는 그런 곳이라는 이미지였기에 조금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입구를 향했다.
초대장을 발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은 초대장을 확인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유명해져 버린 얼굴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전에는 그저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런 얼굴이었을 텐데, 지금은 일간지에 하루에 한 번씩 내 얼굴이 들어간 기사들이 올라오는 중이니까.
처음에 영국에 도착했을 무렵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지내왔던 프레스턴 같은 시골에서도 이제는 내 얼굴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나라 안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없는 것이다.
커다란 기둥이 곳곳에 보이는 로비로 들어서자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출입구는 두 명의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안에서 파티가 진행 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경비원 둘은 그 큰 문을 잡고 열어 주며 소리쳤다.
“왕국의 기사, 이정현 경과 랭커스터 공작가의 레이디 메건이 입장하십니다.”
기사 작위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냥 ‘이정현 씨가 입장합니다.’라는 말을 듣기에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안쪽에 한쪽 발이라도 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어떠한 지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메건은 아직 아무런 지위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그냥 레이디 메건이라고 불렸다.
“고마워요.”
열린 문을 통해 파티장 전경이 보였다.
높은 천장에 보이는 수많은 샹들리에, 화려한 금장으로 수 놓인 벽면이 이곳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을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아래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음식들의 산이 쌓여 있었지만, 이 안에 있는 누구도 음식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분명 경비원이 소리친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향해 있었으니까.
파티장에서는 잔잔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음악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에 마련된 작은 무대 위에 현악 5중주를 하는 연주자들이 보였다.
마치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 파티장 안에 있는 남녀노소 모두 중세 시대에 볼 법한 옷을 입은 모습. 어쩌면 굉장히 불편할 것 같은 코르셋으로 강하게 묶어 버린, 풍성한 치마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얇은 허리들.
오페라의 배우들이 눈앞에 있는 광경 같달까.
“저는 마실 만한 음료수 좀 가져올게요.”
“아, 네.”
나는 메건이 음료수를 가지러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이 들려왔을 때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들어오고 나서 파티장의 풍경만 살피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조금은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들어오면서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파티장의 분위기가 차츰 웅성대는 소리로 채워져 간다.
어쩌면 이번 파티의 주인공이 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쯤, 옆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이정현 경.”
“알버트 경. 이런 자리에서 뵙네요. 메건이 왔으니 안 오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가문에서 한 명만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메건은 잘 오지 않는 편이지요. 저는 평의회의 회장이라 빠질 수가 없어서 곤란합니다.”
평소의 중후한 클래식한 정장이 아닌 붉은색 제복을 입고 있는 알버트의 모습은 내가 입고 있는 제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커플룩이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
어깨부터 내려오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금박 로프까지도 옷과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네요.”
“아무래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오던 그들만의 세상에 이정현 경이 새롭게 들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저에게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네? 나쁜 짓이요? 하하하.”
나의 말에 크게 웃어넘기는 알버트. 하지만 나의 질문에 답한 것은 알버트가 아니었다.
“악당들의 모임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오오, 메건.”
“그 반대요?”
메건은 나에게 샴페인 잔을 내밀었다. 투명하지만 조금 노란 빛이 도는 액체에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사업체에 투자하고 있어요. 직접 경영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회사들의 소유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그건 또 몰랐네요.”
“랭커스터 가문은 왕족 사업체에 함께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지금은 돈이 권력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까요. 돈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가장 영향력이 큰 회사는 브리티시 페트롤이라는 정유 회사예요. 왕국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정유 사업을 하고 있어 세계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잔에 쥐어진 샴페인을 마시며 두 조손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은 귀족의 집단이 아니라 회사 소유주들의 모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중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지만 저는 귀족들이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요?”
“익명으로 회사를 소유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컨소시엄을 운영하는 것도 있고 투자 회사를 통한 방법도 있죠.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
확실히 회사라는 것을 운영하는 것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였기에, 모르는 방법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귀족으로 수백 년을 지내온 집안들에서 돈이 없을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했고. 장원이라는 것이 있을 때는 그 안에 있던 것이 모두 그들의 재산이었을 테니까.
그 많은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믿는 것이 더 말이 안 될 거로 생각하자 납득할 수 있었다.
“악당의 반대라고 하셨었죠? 돈으로 많은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면 오히려 악당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만화에서 나오는 악당들처럼 남의 것을 빼앗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남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메건의 말 그대로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미디어 쪽입니다. 음악이나 영화 같은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요. 재산을 늘리는 것은 이들이 고용한 전문 경영인들이 대신하니까요.”
“아, 미디어….”
그런 면에서는 중세 시대 귀족들과 큰 차이가 없구나. 결국에는 가진 것이 많아서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까.
물질에 관심이 없어지면 그다음부터는 노는 것에만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이들 모두 이정현 경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엥? 저에게요? 왜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미디어에만 관심 있다고 하더니 나에게 관심 가질 이유가 없잖아.
“지금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오픈되는 인물이 바로 이정현 경이니까요. 게다가 이들이 주로 즐기는 문화가 클래식이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아마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거예요. 저와 할아버님이 이 자리에 없다면 말이죠. 여기에서 이정현 경은 아이돌보다 더 인기가 많거든요.”
말로만 듣던 사교 파티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한번 와 봤더니, 하이에나 사이에 던져진 먹이가 돼 버린 건가?
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나를 노린다고 하니,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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