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5
124화
“메르디스는 iTV를 가진 컨소시엄의 실소유주예요.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 스포츠의 대주주이기도 하죠.”
“iTV면 BBC보다 한참 뒤처지는 민영 방송사잖아요. 그런데 왜 나에게 BBC에 대한 제재를 풀어 달라고 부탁을 하죠?”
iTV가 BBC에게 전체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은 바뀔 수 없는 현실. 내가 알고 있기로 iTV가 앞서가는 부분은 딱 한 가지, 프리미어 리그의 중계권을 갖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재미가 없다나 봐요.”
“재미?”
“뒤에서 따라가는 걸 즐기는 거죠.”
뭐 그런 변태 같은 이유가 다 있어. 전교 2등이 1등하고 싶은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게다가 아직 1등이 아닌 거로 아는데.
고작 음악 몇 개 갖고 시청자 점유율이 크게 바뀌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페어플레이를 원하는 건 아니고요?”
“그게 아니라 자신의 장난감에 남이 손을 대는 게 싫은 거예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말이죠.”
확실히 뼛속부터 귀족이었던 사람의 생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
그러고 보니 랭커스터가는 의외로 귀족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귀족도 아니고 왕족인데도 말이지.
어쩌면 내가 모르는 곳에 그런 부분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그렇게 느껴졌다.
알버트와의 대화를 끝낸 메르디스는 메건과 속삭이는 나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부탁할게요, 이정현 경. 유니버설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어주질 않더라고요. 유니버설을 살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건 좀 반칙 같아서….”
유니버설처럼 거대한 기업을 산다는 이야기를 무슨 슈퍼마켓에서 콜라 하나 사는 것처럼 말하는 메르디스.
유니버설 UK의 마크도 분명 대기업의 CEO인데, 엄청나게 시달렸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낄 압박감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압박이겠지.
“알겠습니다. 레이디 메르디스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렇게 할게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고마워요.”
고맙다는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상당히 기품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귀족은 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빚을 지워놓으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있지 않을까?
메르디스로 시작된 사람들의 러쉬는 끊이질 않았다.
다가오지 않던 사람들이 마치 수도꼭지를 열어 놓은 것처럼 메르디스 이후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정현 경. 지난번 곡 잘 들었습니다. 런던 필하모닉의 실력을 여지없이 들어 볼 수 있는 곡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을 칭찬하는 사람부터,
“사업을 더 확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진짜 사짜는 아니겠지만 사짜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사람까지.
그렇게 파티 홀에 있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안면을 텄다.
그리고 메르디스에게 부탁받은 대로 BBC의 내 회사의 음악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야 했다. 솔직히 너무 괘씸해서 풀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풀어 주는 게 맞겠지.
진이 빠질 정도로 사람들을 상대하며 대화를 하고 파티장을 빠져나오며, 마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새 학기가 시작하는 6월까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작위 수여식이 진행되는 날짜를 전달받았다.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존에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에도 감동 같은 것을 느껴 본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새 학기가 시작한 뒤에 수여식이 진행되는 것이 문제였다. 영국의 잉글랜드 지방의 모든 귀족이 모이는 날짜를 잡은 것도 사실은 부담이 되었다.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만 하면 되는 조촐한 행사일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이야기.
어차피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많이 없었다.
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쓰는 일 하나뿐.
“생각보다 초청 인원이 많네. 젠장.”
“여기 실링 왁스입니다.”
“이거 꼭 손으로 써야 하는 거예요? 컴퓨터로 프린트하면 안 돼요?”
“전통인지라….”
그놈의 전통. 아주 그냥 전통 두 번만 지키면 팔 아파 죽겠네.
요즘 세상에 누가 손으로 편지를 쓰냐. 연애편지도 휴대전화의 문자로 하고 만화도 컴퓨터로 그리는 세상에서,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을 쓰는 것부터가 문제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실링 왁스.
책상 앞에 켜 놓은 촛불에 왁스를 가져다 댄 후 녹인 것을 편지 봉투의 접합부에 흘린 다음, 인장을 찍어 밀봉하는 데 두 번이나 손을 데었다.
“하다못해 이 실링 왁스만이라도 좀 요즘 것으로 갖고 오면 안 돼요? 인터넷 찾아보니까 편하고 좋은 거 많더니만….”
“죄송합니다. 그런 일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이정현 경.”
아서는 너무나도 단호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두 번이나 손을 데었음에도,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네, 네. 전통이라는 거겠죠.”
한국에서는 제사도 간소하게 치르는 추세라던데, 여기는 21세기에 18세기 전통을 일부러 찾아서 한다.
일부러 번거롭고 귀찮게 하려고 해도 이것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기사 서훈을 받을 당시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작위가 세습되는 귀족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복잡하고 쓸모없는 일들을 많이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일부러 힘들게 하려고 이런 일을 시키는 건가?
별것 아닐 것으로 생각해서 하루면 끝나겠지 했는데, 감사 편지를 쓰는 것에 2주나 걸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치이익-
톡, 톡, 톡-
마지막 편지의 봉투를 실링 왁스로 봉인하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섞인 말이 새어 나왔다.
“드디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또 있어요?!”
“아뇨, 편지를 쓰시는 동안 왔던 연락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아서가 다음이라는 말을 할 때, 무언가 또 힘들게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첫날 힘들어서 휴대전화고 뭐고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아서에게 중요한 연락만 연결해 달라고 했었는데, 중요한 것은 없었는지 다 쓰는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었는데 연락이 오기는 왔었구나.
아서가 넘겨준 목록은 대부분 증권 투자 회사. 회사의 규모가 커졌으니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회사로 만들라는 권유였다.
자신들의 회사를 통하면 조금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쓸모없는 말들만 잔뜩 늘어놓은 말들.
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해 보다 주주라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참견만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를 더 받아서 크게 확장할 생각도 없었고, 이대로 유지할 테니 주식회사가 될 필요는 없겠지.
아서가 넘겨준 것들 대부분은 쓸데없는 연락들이 많았지만, 도무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연락이 하나 끼어 있었다.
“어휴…. 왜 이런 걸 참여한다는 거야.”
“많이 참여하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기쁜 일이니 말이지요.”
“그냥 오는 거면 안 말리죠. 일정을 취소하고 온다잖아요.”
원래 에릭이나 시에스타 모두 참여해야 하는 일정이 있지만 취소하고,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아티스트와 직원들이 모두 오겠다는 연락.
나는 정기적으로 회사 일이 잘되어 간다는 보고를 받아 보다가, 매번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게 듣기 싫어서 지금은 이메일로 회사 업무 결과를 받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미국의 전화 신호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Hello?]“나야.”
[‘나’가 누구신데요?]“응? 크리스 전화 아닌가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전화를 자주 걸질 않아서 혹시나 잘못 걸었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국제 전화였다. 진짜 정신없이 살았구나.
“나 정현인데, 이런 걸 왜 참여하겠다는 거야? 재밌는 일도 없구만.”
[아니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서 하는 말이 겨우 그거야? 잘 지내냐는 말이나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냐. 이런 건 안 궁금하고?]“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했겠지. 연락이 없었으니 잘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어?”
[그렇기는 하지만….]사실 마리가 아니었다면 믿고 맡길 수 없었을 테지만, 마리가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기에 마음을 놓고 있는 것도 있었다.
아무래도 실무를 대기업에서 배워 놔서 이것저것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마리가 과연 회사의 문을 닫고 회사 사장의 작위 수여식에 오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마리는 괜찮다고 한 거야?”
[에릭이 외부에 나와서 성인이 된 것도 있어서 한번 방문해야 하기는 했어. 시에스타는 에릭이 가고 싶다니까 자신들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고….]“그런 건 됐고, 마리가 괜찮다고 한 거냐고.”
[…아니….]그럼 그렇지. 마리가 이런 것에 동의를 했을 리가 없다. 휴가를 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실무진 교육을 마친 뒤, 일하러 돌아갔을 정도의 워커홀릭이니까.
“마리가 허락하면 와. 내가 마리에게 전달해 놓을게.”
[아니, 잠깐만. 내가 마리보다 지위가 높은데…?]“끊는다.”
[자, 잠깐만….]참 쓸데없는 전화였다. 일을 왜 다 취소하고 온다는 거야.
요즘 런던 소극장에 예약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허용할 수 없었다.
오를 수 있는 무대가 없어서 소극장에서 공연하며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잡혀 있는 무대까지 취소하면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내가 알기로 마리는 회사 내에서 가장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별것 아닌 일처럼 지나가며 전화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행사 이틀 전.
나는 평소처럼 거실에 놓인 TV를 보다가 마시던 차를 뿜어 버릴 뻔했다.
[오늘 이정현 사단의 아티스트들과 직원들이 히스로 공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익명의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회사의 수장인 이정현 경의 작위 수여식에 참여하기 위해 입국을 했을 것으로 보며….]
어찌나 고집이 세신지 그 철벽같던 마리에게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그냥 애초에 안 된다고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후회를 하는 것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이정현 경.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군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네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인기를 얻었다고 무대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서의 뒤를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처럼 따라 들어온 손님들은 바로 에릭 그리고 시에스타. 마리는 의외로 함께 오질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 저희 왔어요!”
“집 엄청 좋네요! 런던에 이렇게 큰 집이 있다니!”
오랜만에 보는 것에서 오는 반가움이 반, 일정을 취소하고 왔다는 당혹함이 반 섞인 심정이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멍하니 있었는데, 그들의 뒤에 숨어 있다 나오는 얼굴.
“…미안, 혹시 화났어?”
이번 사건의 범인인 크리스가 에릭의 뒤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나를 바라보았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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