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화가 날 걸 알고 한 거잖아.”
“그래도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에 온 건데….”
크리스는 어디서 배워 온 것인지 애교 비슷한 것까지 보여 주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다.
“그래 축하해 주려고 와 준 건 고마운데, 다들 내일모레 작위 수여식이 끝난 뒤에 아무런 일정도 없지?”
“저는 보육원에 갈 생각이었는데.”
“저희는 없어요.”
그래 일정을 취소하고 온 건데 특별한 일정이 있을 리가 없지.
너희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해 주겠다. 무대의 소중함을 모르는 너희들에게 그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마.
일단 즐거운 마음으로 작위 수여식을 지켜본 다음에 말이지.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에 크게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아이들이 무대에 한 번 오를 때마다 받는 돈이 꽤 많단 말이지. 덕분에 회사가 상장 권유를 받을 만큼 커지기도 했고 내 주머니도 그 돈으로 채워져 빵빵해졌다.
내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이 아이들이 나에게 돈을 벌어다 주었다.
그런데 최저 임금 수준의 돈을 받기 위해 무대 사용을 예약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나니까, 이 아이들이 하는 짓이 배가 부른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어졌다.
이 아이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기라는 게 영원할 수는 없으니까.
“…끝나고 다들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에릭 너도 보육원은 나중에 같이 가고. 어차피 나도 프레스턴에 있는 집을 정리해야 하니까. 그때 같이 가고.”
“사부님 지금 얼굴이 너무 무서워요…. 공사장에서 실수하면 보던 얼굴이에요.”
마음속으로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나도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얼굴이 되었었나.
나는 에릭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표정 관리를 시작했다.
항상 밝은 얼굴이던 시에스타 아이들까지 긴장했는지,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지는 않고 있었다.
“혼내려는 건 아니야. 그렇게 긴장하지는 않아도 돼.”
“정말… 이죠?”
“에릭에게 물어봐 내가 혼낸 적이 있는지. 아마 없을걸? 내가 그렇게 자주 혼내는 사람이….”
“사부님 생각보다는 많을걸요. 몇 번인가 혼난 적이 있다고요.”
그럴 때는 아니라고 해야지 이 눈치 없는 에릭아.
일정까지 취소하고 놀러 온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을 아이들은 에릭의 말에 혼날 것으로 생각을 한 것인지 전보다 오히려 더 긴장한 눈치였다.
대놓고 혼냈다고 말을 하는 에릭 탓에 시원하게 혼내기가 애매해졌다.
어쩌면 에릭이 이걸 노리고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몇 년의 미국 생활 끝에 얻은 삶의 지혜인가?
만약에 정말 이걸 노리고 한 말이었다면, 예전의 그 어리바리해서 귀엽던 에릭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어험…. 일단 오늘하고 내일은 푹 쉬어. 영국에도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집에 가서 인사도 좀 하고.”
***
정현의 작위 수여식은 영국 잉글랜드 지방에 사는 모든 귀족이 참석했다.
공식적으로는 연합 왕국이라는 이름을 표방하는 영국.
이 나라의 왕위는 왕족이 아닌 세습 귀족들에게도 계승권이 존재했기에, 지금까지는 이처럼 계승 대상자들이 모두 모이는 일을 피해 왔었다.
그렇기에 세습 귀족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보통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테러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왕을 포함한 모든 귀족이 사라질 것이고 그 일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작위 수여식은 이들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국의 사회는 의도적으로 귀족의 수를 줄여나가는 과정에 있었는데, 이것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연합 왕국의 국왕이신 윌리엄 5세가 입장하십니다.]광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마치 커다란 전쟁에서 승전보를 들고 화려하게 귀환하는 왕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과 같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컹, 철컹-
이윽고 버킹엄궁의 커다란 철창이 열리고 그 안에서 여덟 명의 시종을 거느린 윌리엄 5세의 모습이 나타났다.
빠 바바밤 바밤~
국왕이 행진을 시작하며 함께 연주를 시작한 런던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영국의 국가보다도 많이 연주된다고 알려진 이 곡을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현이 만들어서 왕에게 헌정한 곡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 곡은 왕위 계승을 만든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행사는 기존에 사용되던 엘가의 음악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그가 이번 행사를 위해 마련된 레드카펫 위에 올라서자 기자들은 서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퍼퍼퍼펑!
수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의 플래시에도 여유 있는 미소와 당당한 걸음을 걷는 윌리엄 5세. 왕위 계승 이후 외부 행사를 최대한 줄였던 이전과는 다르게 위풍당당한 왕의 모습.
선왕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인기가 너무 많았기에, 그에 따른 기대감이 부담되어 왕위에 오른 뒤에도 외부에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았던 윌리엄 5세.
그가 이렇게 바뀐 이유는 윌리엄 5세가 왕위에 오른 뒤에 경제가 더욱 융성해졌다는 세간의 평가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번 행사를 버킹엄궁 안의 홀이 아닌,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도록 공개된 광장에서 진행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대대적으로 힘을 과시하여 자신과 왕국이 건재함을 보이는 것.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광장에 만들어진 커다란 무대를 둘러싼 귀족들, 그리고 그 무대를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단으로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광장을 찾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와아아아!“”
활성화된 경제만큼이나 하늘을 찌를 것처럼 올라간 왕의 인기에, 그를 향한 함성이 광장을 가득 채워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행진곡이 들리지 않을 정도.
윌리엄 5세는 무대를 향한 계단에 오르며 관중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 정도로 여유를 보였다.
무대의 한가운데에 올라 손을 흔들며 관중에게 화답하던 그가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왕국의 미래를 함께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이에게, 왕국을 경영할 자격을 부여하게 됩니다.이는 세계가 위험에 빠졌던 세계 대전 이후 백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를 이정현 경의 업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왕국에 경제적인 이득과 실질적인 실업 인구를 줄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낸 업적에, 수많은 사람이 죽는 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을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생태계가 왕국뿐만이 아닌 유럽 전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관중들을 바라보며 꺼낸 말에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정현이 그저 음악을 만들던 사람으로 여겨졌기에 새로운 경제 사회를 창출해 낸 것에 대한 업적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총리의 발표에서 대부분의 성과를 왕가로 돌리며, 정현이 참여한다고만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발표였다.
지금까지 왕족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여겨지던 사업의 열쇠가 정현임을 왕의 입으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왕국의 기사인 이정현 경에게 우리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는 자리인 백작 작위를 수여하려 합니다!]““와! 이정현 백작!“”
백작이라는 것은 결코 낮은 작위가 아니었다. 세습되지 않는 준 남작 위를 제외한 세습 귀족의 작위는 남작부터 자작 백작 후작 공작까지 총 다섯 개.
공작이 실질적으로 왕족에게만 전해지는 작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징적으로 보았을 때 백작이라는 작위는 낮지 않았다.
현재 800여 명에 이르는 영국의 귀족의 숫자를 현대 사회에서 점차 줄여가기 위해, 세습 때마다 작위의 단계를 한 단계씩 낮추는 등의 정책이 나오는 등 세습 자체를 억누르는 정책들이 만들어졌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5세의 국민들을 향한 일장 연설이 끝나고, 그의 발언이 끝나는 것에 맞춰 정현이 앞으로 나서며 왕의 앞에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기사 서훈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장면은 대대적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게다가 그 작위를 받는 사람이 이정현이고 그가 기존 귀족 계층을 차지하던 영국계 백인이 아닌, 한국계 황인이라는 것은 방송을 지켜보던 한국인들의 가슴에 감동이 차오르게 했다.
정현의 어깨에 윌리엄 5세가 가져다 댄 칼이 화면에 보이자 감동으로 잠잠하던 채팅창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작위를 받으면 성 같은 것도 주는 건가? 왜 옛날에 작위를 주면 영지도 주고 그랬다니까.
-지금은 그냥 상징 아냐? 명예직이지 뭐. 이름 뒤에 붙는 거.
-지금까지 한국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영국인 같네…. 왜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냐.
-이번에 이정현이 만든 정책으로 영국이 유럽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던데?
-아니, 저런 실업 구제 정책을 만들 거였으면 한국에 있을 때 만들지. 취준생들 눈에 피눈물 나는 더러운 한국!
-이정현 한국의 가능성이 없다고 국적 포기하고 떠난 지가 언젠데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냐 ㅋㅋㅋㅋ
채팅창에 보이는 말들이 긍정적인 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부정적인 의견들 대부분은 무기력한 정부의 실업 구제 정책을 탓하는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정현이 작위를 받으며 사람들의 마음만 불타오른 것은 아니었다.
정현의 작위 수여식에서 한 달 정도 지난 7월 체리 엔터테인먼트.
“나 은퇴할까 봐….”
“뭐? 네가 왜 은퇴를 해?!”
한때는 한국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소리도 들었던 유지현이지만, 지금은 3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나이.
“체력이 달려. 이제는 무대 한번 오르기 너무 힘들어.”
“야, 지현아. 30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야. 20대가 약관 30대가 이립. 이립이 무슨 뜻인지 알아? 모든 것의 기초를 세운다는 뜻이야. 한창이라는 거지. 내가 보약 해 줄게.”
지난 한 달 동안 급격하게 활동량이 늘어나 힘들어하는 그녀를 다독여서 활동을 지속해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사장인 박재경의 역할이었다.
“보약 말고 일정을 조금만 줄여 줘. 체력 관리해야 하는 나이야 이제…. 언니, 이 말 하는 게 왜 이렇게 슬프냐?”
“알았어. 대신 지금 잡혀 있는 건 다 하고 나서 줄이자 응? 더 늘리지는 않을게.”
한참 동안 세계에서 팔리지 않았던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모두 내수 시장으로 집중했던 것이 최근 몇 년. 해외를 노리고 지속해서 확장하던 한국의 엔터 업계는 말 그대로 과포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다시 K팝 붐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규모를 줄이기 위해 신규 그룹보다 이미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에 집중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정현이 가져다준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호황.
그 선두에 유지현의 음악이 있었다.
정현이 백여 년 만에 영국의 귀족작위를 받는다는 것이 알려지자,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검색을 하며 정현이 참여한 음악들까지 덩달아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인기 있던 보이 그룹의 은퇴 이후 세계에서 인기가 사그라들었던 K팝의 인기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수많은 기획사는 동분서주하며 그런 흐름에 올라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이곳의 사장인 박재경 역시 그런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지현아, 그 JHJ에 있던 김 실장이라는 사람 말이야.”
“김수원 팀장님? 그 사람은 왜?”
“아 실장이 아니라 팀장이었니. 아무튼, 이정현이랑 친구라고 했지?”
자신이 아는 범위에 이정현의 지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박재경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안 좋은 쪽으로.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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