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7
126화
“언니, 정화 언니랑 친구고 어릴 때는 과외도 했다면서, 그걸 왜 수원 팀장님한테 부탁해?”
“야, 지현아. 너 정화가 자기 동생 고생 많이 했다고 얼마나 신경 쓰는지 몰라서 그래?”
유지현의 언니인 유지혜와 정현의 누나인 정화, 그리고 체리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박재경은 과는 달랐지만 대학교 시절 친구였다.
최근에는 많이 바빠지며 서로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만큼 서로를 잘 알았기에 상대가 싫어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정현이 처음 한국에서 사라졌을 무렵에도, 자신의 동생은 집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이 그렇게 고생을 했다면 정화 자신도 도망치고 싶었을 거라는 말도.
그렇기에 정현이 무너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원하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을 거라는 것도 재경은 알고 있었다.
직접 과외를 하면서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것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친구인 정화에게 연락해서 정현에게 곡을 부탁하는 일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싫어할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난 언니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만약에 수원 팀장님한테 연락한다면 정화 언니에게 말할 거야.”
“이게 나 혼자 잘되자고 하는 거야? 아니잖아. 다 같이 잘되자고 하는 거잖아. 그리고 걔가 자기 동생 건드리지 말라고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데.”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가 정현 님이었다고! 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내가 노래를 시작했던 거란 말이야!”
가수가 되게 훨씬 이전부터 정현의 광팬이었던 유지현에게는 박재경의 설득이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박재경이 김수원과 연락을 하려 하면 정화에게 말할 거라며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런 상황에서 재경 역시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서른이 넘어 이제는 인기가 떨어질 때도 되었지만, 백 명이 넘는 체리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유지현이었기 때문.
물론 다른 아티스트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비중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현의 음악으로 앨범을 만들었던 가수는 대한민국 내에서 유지현 딱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한번 불어왔던 역주행보다 훨씬 강력한 K팝의 폭탄이 세계에 세상에 떨어졌다.
이정현부터 시작한 K팝 붐이었기에 그 중심에 그의 음악으로 앨범을 만든 유지현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어휴…. 알았어! 이것아. 스케줄이나 가.”
“내가 지금 이 기분으로 어떻게 스케줄을 가! 못 가! 언니 수원 팀장님한테 연락하기만 해. 정화 언니한테 가서 다 말할 거야!”
정현의 이야기에 극도로 민감해진 유지현을 어르고 달래서, 일정에 펑크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박재경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정현에게 연이 닿지 않은 사람들 역시 연결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정현이 만든 곡들로 유지현의 앨범을 만들었던 JHJ 토탈 뮤직은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시달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
백작이 되었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오고, 수업이 없는 날에는 변함없이 소극장 현장에 나가는 것이 전부.
이미 대부분의 공원에는 소극장이 지어졌기에 공사 현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한 곳을 맡아 관리하고 있다는 게 조금 다른 점일까.
“제이드! 거기 비닐봉지 떨어져 있잖아. 그것도 줍고. 케이트는 예약한 아티스트하고 연락해서 일정 변화 없는지 체크해.”
“주우려고 했어요….”
“시간 맞춰서 온대요.”
시에스타를 소극장으로 불러 일을 시키는 것은 무대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에릭은 너무 바빠서 수여식 뒤 며칠만 봉사를 시켰지만, 시에스타는 아직 경험이 적으니까 조금 더 시키고 싶은 마음. 물론 내가 편해진다는 것도 있지만.
네 번째 미니앨범 활동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와 잠깐의 휴식기를 보내는 시에스타를 소극장으로 불러, 무대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는 것도 선배 된 도리라고 생각하니까.
열심히 일하는 네 명의 여자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검은 레게머리를 흔들며 다가온 헤나가 조용하게 물었다.
“저기, 사장님.”
“응?”
“사장님이 여기를 직접 관리하시는 건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으시는 거 아닌가요?”
“아…?”
그건 생각 못 했네. 런던 서북부 지역의 수많은 공원 중에 하나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소극장에 투입되는 사람은 두 명. 스케줄을 관리하는 사람과 청결을 관리하는 사람.
한 번의 공연에서 벌어들이는 돈에서 공연장 사용료로 내는 돈이 그들의 일당이었는데, 보통 입장료만으로도 서너 명의 일당은 되었기에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연주자의 공연에 만족도에 따라 사람들이 팁을 주고 가기도 했기에, 최근에는 가난한 연주자들뿐만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 관리자들이 힘들어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나름대로 그런 힘들어하는 관리자들을 대신한다고 여기에 나와 있던 거였는데, 내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혹시 사장님도 여기에서 일하면 돈을 받으시나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그렇지 않을까?”
“…근데 저희는 왜 무료 봉사예요. 그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논리에 딱 맞는 말들만 골라 하는 헤나. 그 말들에 나는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내일 신문 1면에 ‘이정현 아티스트 무료 봉사 논란’ 이런 기사가 올라오는 건 아닐까?
무대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겠다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괜히 쉬는 날 불러내서 일을 시켰나 보다.
“이정현 경. 간식 드세요. 응? 시에스타도 와 있네요? 안녕~?”
“안녕하세요, 사모님.”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관리를 맡겼으면 두 명분의 인건비만 지출될 텐데, 네 명의 임금을 주면 오히려 손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네 명의 최저임금을 계산하던 중에 메건이 와 주었다.
“메건….”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 내일 신문 기사를 걱정하느라….”
“신문 기사요?”
나도 모르게 신문 기사라는 이야기를 해 버렸다. 돈 계산을 하다, 신문의 일면으로 생각이 넘어갔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아니에요, 잘못 말했네. 시에스타 인건비를 계산하고 있었어요.”
“이거 봉사 활동 아니었어요? 봉사 활동에 왜 인건비를 계산해요? 이정현 경에게도 안 나오는데?”
“응? 나도 자원 봉사로 일하고 있던 거였어요?”
나는 그냥 내가 만들었기에 손을 댔지만, 돈도 안 나오는 일을 하고 있었다니. 그건 나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어험. 나도 자원 봉사였다고 하네.”
“네….”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좋은 정보를 전해 준 메건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메건의 말을 들은 시에스타는 조용히 내가 시킨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정현 경은 귀족이 되었어도 변하는 게 없네요.”
“뭔가 변해야 하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지위가 올라가거나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조금씩 변하잖아요.”
“지금 이게 많이 변한 거예요. 귀찮고 싫어도 하는 일들이 많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집에서 쉬는 게 가장 좋거든요.”
솔직히 현실에는 너무 귀찮은 일들이 많다. 그냥 조용히 혼자 지내며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음악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던 그때만 하더라도, 정말 다시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작한 목수 생활이 그리워질 정도로 음악의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네요. 지금과 다른 이정현 경은 떠올릴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음악을 엄청나게 싫어했었어요. 지금처럼 음악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그때의 나에게 말해 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요.”
“정말요? 믿을 수 없어요!”
메건은 다른 말들을 할 때는 그리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음악을 싫어했다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크게 반응을 했다.
“아버지가 교향악단에서 쫓겨나셨을 때만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음악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때만 하더라도 음악이 그렇게 싫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오랜만에 예전의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삶을 살지 않겠다며 한국에서 도망치듯 떠나 영국에 자리를 잡았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나 안정감을 갖게 된 지금에서야 떠오르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메건에게만 고백하는 건데, 나는 음악을 공부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애초에 음악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공부할 필요도 없었죠. 싫어하는 걸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잖아요.”
“…음악에 관해 공부하지 않았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이정현 경은 악보 쓰는 법도 모르고 계셨으니까.”
“내게 음악이라는 건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거예요.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곡이 연주되죠. 지금은 내가 조금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릴 때는 제 멋대로 연주가 들려 와서 힘들었었어요.”
이야기가 길어지며, 무대의 가에 걸터앉아 메건과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했었던 나의 과거의 이야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메건에게만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와 남은 삶을 함께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면 지금은 어때요? 아직도 음악을 싫어하세요?”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참 어렵네요. 지금 내가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이 음악 덕분인데, 음악을 좋아하냐 싫어하냐는 질문에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가 없으니까.”
“음악으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고, 이렇게 영국을 대표하는 귀족까지 될 수 있었는데도요?”
“메건, 그거 아세요? 애정과 증오는 동전의 앞 뒷면처럼 붙어 있다는 것.”
그래, 어느 순간부터인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그 감정의 무게에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음악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이 음악밖에 없었으니까.
잘하는 것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잘하는 것을 버리고 가족들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잖아.
어쩌면 하기 싫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난 어쩌면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싫어하는 것을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주어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네요. 싫어하는 걸 해서 좋은 것들을 얻는다니.”
“지금은 내가 음악을 싫어하는 건지 아닌 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게 되어버렸지만, 내게는 먹고 살려고 음악을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난 가난한 음악가들의 일들이 전혀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거죠.”
“…저는 이정현 경이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소극장을 만들자고 한 건 줄은 진짜 몰랐어요.”
메건의 진지한 대답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소극장을 만들자고 했던 것도 진지한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이상적인 상황을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Brrrr-
품속에 넣어둔 전화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미안해요. 전화가 와서.”
“괜찮아요. 어서 받으세요.”
메건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수원아 웬일이야?”
오랜만에 전화를 건 수원이 전화를 받자마자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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