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수원아. 아니, 김 팀장아. 너 체리 엔터 사장이 부탁하는 거 안 된다고 했다며?”
정혁진은 낄낄대며 김수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었으면, 해 드렸겠죠. 제 입장에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는 부탁이었어요.”
“그 사람이 좀 억지스러운 부탁을 많이 하기는 하지. 대체 무슨 부탁이었길래?”
“저한테 정현이 곡을 받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수원은 정혁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둘의 대화에서 자신이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음…. 지난번에 유지현 앨범을 거의 이정현의 곡으로 채워서 그런 거 아냐? 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건 지난번 앨범이 특별한 거였어요. 그렇게 몇 달 동안 유지현이 우리 신곡을 거절하지 않았으면, 저도 정현이한테 받아 온 곡을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니까요.”
“그렇게 어려운 거냐? 그래도 어지간하면 들어주지 그랬어.”
정혁진은 아쉬움이 남은 건지 아니면 박재경에게서 부탁을 받았기 때문인지 끈덕지게 물어왔다.
“솔직히 말을 해서 저는 정현이에게 곡을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할 생각이 없어요. 그 누가 부탁해도 마찬가지예요.”
“그래, 고집을 부린다면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고집이라….”
“고집부리는 거 아냐? 별것도 아닌 부탁에.”
혁진은 부탁을 받아 주지 않는 것이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 혁진의 말이 수원은 어이가 없었다.
“정현이는 제가 부탁을 하면 들어주긴 할 거예요.
“그러면 부탁해 보면 되잖아.”
“그런데 그 부탁은 노래 한 곡을 받아내려고 저와 정현이의 연을 끊어 달라고 부탁하는 거랑 다름없다고요. 그걸 고집이라고 생각하다니 사장님도 참 대단하네요.”
“…….”
“정현이가 한국 내에서는 소송을 걸었던 사건이 워낙 크게 나서 쌈닭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표절은 못 할 거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연결 고리라고 생각하는 저한테 부탁하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강요는 하지 마세요. 정현이는 자기가 내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니까.”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는 혁진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그저 수원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
수원은 혁진을 회사 안에서는 어지간하면 선배라고 불렀지만, 사석에서는 종종 형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색을 하며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기에, 혁진은 수원이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 정도야?”
“답답하게 왜 이러세요. 부탁한다고 되는 거였으면 그냥 들어주고 말았겠죠.”
수원은 이 정도로 말했으면 혁진이 넘어가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단호하게 말했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워낙에 인간관계가 좁은 정현이었기에 한국에서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사람은 수원 외에는 가족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직접적으로 연락할 사람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수원 외에는 없었다. 가족들에게 연락하기엔 대외적인 이미지에서 겁이 났던 탓이었다.
단호하게 거절했던 수원이었지만 그의 단호함을 알아주는 사람은 사장인 혁진 외에는 없었기에, 수원의 전화기는 불이 붙었다.
***
똑똑똑-
“이정현 경.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서는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아침이 온 것을 알려 주었다. 의외로 시끄러운 알람들보다 아서의 목소리에 잠을 더 잘 깨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금방 갈게요.”
창문에 달린 커튼을 열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열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잔뜩 우거진 녹색 잎사귀가 여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잘 때 잠옷으로 사용하는 가벼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방의 문을 열자 문 앞에는 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평소처럼 식사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실 줄 알았는데.”
“식사 장소에는 안주인님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놈의 안주인이라는 말이 적응되려면 얼마나 많이 들어야 하는 걸까?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호칭에 살짝 거부감이 일어 몸을 부르르 떨었더니 아서가 물었다.
“몸이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뇨, 몸은 괜찮아요.”
“건강한 몸을 유지하셔야 다음 대를 위한….”
“어험 어험!”
아침부터 들어서는 안 되는 소리를 들어 버렸다. 메건이 이 집의 방 하나를 차지하던 그 날부터 같은 방을 쓰는 것이 아니었느냐부터 시작한 부모님에게서 들을 법한 이야기를 아서가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저 메건이 런던의 높은 방세를 직장도 없는 상황에서 지불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들어오라고 했던 것인데, 아서는 결혼 전에 신부 수업을 하러 들어온 새색시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나는 누가 들을까 싶어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오늘 아침 메뉴는 뭔가요?”
“늘 드시던 대로 베이컨과 스크램블드에그 그리고 베이크드 빈과 토스트 된 빵입니다.”
“고마워요.”
그런 말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아서의 대를 잇는 좋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 야외에서 식사하기 위해 정원으로 향하자, 정원의 테이블에는 메건이 먼저 와 있었다.
“왔어요?”
“잘 잤어요?”
빛나는 금발을 하얀색 머리띠로 고정한 것을 보니 여기에서 처음 아침을 같이 먹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 달리 조금은 헐렁한 셔츠를 입은 것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다른 점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아침에도 옷을 차려입었었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친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제가 여기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몸에 딱 맞는 블라우스에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죠. 머리띠는 그때랑 비슷한 것 같네요.”
“그때는 긴장을 너무 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었어요. 피곤함이 많이 남아서 화장으로 가리는 수밖에 없었다고요.”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것을 메건은 입으로 말했다.
거기에서 사람은 역시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껴 가볍게 미소를 짓자 메건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던 그때, 마치 아서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신문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신문에는 조금 이상한 루머가 있습니다.”
“루머요?”
“내용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악의적인 루머인 것 같습니다.”
진지하게 말하는 아서의 목소리에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평소라면 식사를 하고 나서 신문을 펼치는 편이었지만, 그 말이 신경 쓰여 도무지 무시하고 포크를 들 수가 없었다.
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은 별것 없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영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의 국적을 회복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을 했다는 기사였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가 있나…?”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라 생각하던 것이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영국에서 지내면 면세를 포함한 각종 혜택들이 있는데 굳이 한국에 돌아갈 일은, 결혼식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하고 한국에서 살 생각은 아니었기에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만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아뇨,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 관계자라고 표현된 사람은 저보다 제 사정을 더 잘 아나 봐요.”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들어찬 말투로 질문을 하는 메건. 누가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간다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것은 결혼 다음에 할 것이라고 말했었…. 응?
내가 누구한테 이걸 말했었지?
결혼을 하게 되면 복수 국적이 허용이 되기 때문에 그때 국적 회복 신청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걸 듣고 오해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또 안 좋은 기사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이 기사가 사실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가족들과 결혼식을 하기 위해 간다고 하죠. 뭐. 결혼식 때문에 가긴 갈 생각이었으니까.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잖아요?”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영국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결혼식을 하기로 했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에게 친구라곤 수원이 하나뿐인데 굳이 결혼식을 한국에서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닌 메건이었다. 어디에서 검색한 것인지 한국 전통 혼례 사진을 들고 와서 ‘한국에서 결혼하면 저도 이렇게 입나요?’라는 말을 하며 얼굴을 붉혔으니까.
그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한 메건에게 ‘아뇨, 지금은 아무도 전통 혼례를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한복이 예쁘긴 예쁘지. 유럽뿐만이 아니라 서구권의 드레스들보다 한복은 오묘한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할까. 메건은 그런 부분에 매력을 느꼈나 보다.
“메건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중 국적이 허용이 돼요. 그때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건 영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저는 오해하지 않아요. 그냥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걱정이 될 뿐이에요.”
“식기 전에 먹죠. 벌써 다 식었겠다.”
“괜찮아요. 베이컨은 차가워도 맛있는걸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서민적인 식성을 뽐내는 메건은 식어 버린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아침 식사는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갔지만, 마음속으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소문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그냥 악의적으로 만들어 냈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었으니까.
예전처럼 관계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런 걸 밝혀내고 원망하고 그러는 것이 더 지치는 듯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어쩌면 그런 소모전을 원해서 이런 일을 벌였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어머님이 결혼식을 10월에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요? 10월이 좋긴 하죠. 날씨도 선선하고. 놀러 가기도 좋고.”
“이정현 경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할게요.”
“그러면 나는 우리 어머니께도 말해 놔야겠네요. 아직 3개월은 남아 있지만 두 나라에서 진행하는 거라 날짜를 조율하는 게 어려울 테니.”
나는 테이블에 놓인 빵 위에 베이컨을 얹어 먹으며 대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확정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정현 경 어머님이 10월이라고 말씀하신 건데요?”
“응? 언제부터 우리 어머니랑 따로 연락을…?”
이건 정말 의외인데? 지난번에 우리 어머니가 영국에 왔을 때도 나를 빼고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는 것 같았었는데,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그것보다 어머니가 나의 일을 나와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 메건하고 먼저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깐만, 그러면 3개월 뒤에 결혼하는 거로 확정되는 건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뒤에서 아서가 미소 짓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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