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
012화
“Torn이요?”
“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정현 님이 부르시면 너무너무 아름다울 것 같아요.”
이 여자 뭔가 오해하고 있다.
“제가 부를 곡이 아닌데요.”
“네?”
“저 보컬 아니라구요.”
“아니, 정현 님이 밴드에 있는데 그 누가 보컬을 해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유지현이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쳤다. 집중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태양초 고추장만큼 빨개진 유지현의 얼굴. 이거 뭐야, 데자뷔인가? 왠지 한번 겪어 본 일 같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꾸벅꾸벅. 태엽 인형이 춤추는 것처럼, 360도로 돌아가며 열심히 사과를 한다.
“보컬은 1학년이에요. 지금 3개월 정도 발성하고 호흡 연습하는 애고 아직 어설프죠.”
“…저는 진짜 기대 많이 했었거든요. 정현 님이 밴드 음악도 하시나 보다 하고….”
“님이라고 하지 마세요. 부담돼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 분이.”
“우리 동갑이에요. 제가 외국에서 초, 중학교를 나와서 1년 빠른 것뿐이에요. 거기는 우리나라보다 학교를 1~2년 일찍 시작하거든요.”
“아, 네….”
“그리고 님이라고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정현 님은 하나만 우승하기도 어렵다고 하는 메이저 콩쿠르 그랜드 슬램 달성자라구요!”
아. 나는 나도 모르게 학년이 빨라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한국 땅에서는 나이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생각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나이를 물어본다.
나는 그런 꼰대 같은 마인드를 갖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아, 이런 개인 사정을 들으려고 시작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젠장.
집중이 깨지면 음악소리가 들려 오던 것 때문에, 한 가지를 생각하면 끊임없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 음악소리들을 꺼낼 수 있게 된 지금도 내가 마음대로 컨트롤을 할 수가 없어서 그런지, 어디 한 가지에 집중하려고 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얼른 다시 원래의 대화로 돌아가자.
“크흠…. 2옥타브 라 정도 올라가는 보컬이 부를 노래구요. 첫 공연이라 사람들의 호응을 좀 많이 얻었으면 좋겠어요. 무대가 주는 그 희열을 느껴 볼 수 있도록. 첫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어떤 일이든.”
“좋은 선배네요. 정현 님은….”
사실 나는 무대가 주는 희열을 알지 못한다. 무대에 올라서면 짜릿한 느낌과 사람들에게 받는 박수가 온몸을 감싸는 것처럼 벅차오르게 만들어 준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 들어 보았지.
나에게 무대라는 것은 아르바이트 현장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는 소리다.
그 누구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그 누구도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 파트 타임 잡의 역할은 생활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생계를 위한 일들에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생계라는 것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큰 희열을 주었던 것은 수도 없이 많은 무대 공연 끝에 얻게 된, 서초동의 월셋집을 벗어나 양재동에 내 이름으로 집을 샀던 그 순간뿐이었다.
“아쉽네요. 정말….”
목소리가 정말 나라 잃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확 처졌다. 너무 침울해하니까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나는 위로가 될까 싶어 다른 이야기도 꺼내 보았다.
“저는 다음 달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제 이름 걸고 하루 동안 공연해요.”
휙.
휙.
작은누나와 한창 요즘 유행하는 패션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유지혜의 눈과, 고개를 숙여 곡들을 정리해 놓은 내 수첩을 보고 있던 유지현의 눈이 동시에 나를 향한다.
“진짜예요? 무슨 공연? 성악? 밴드?”
“티켓은 어디서 팔아요? 인터팍? 예스72? 미리 예약되나요?”
뭐야, 이 사람들 무서워.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해 버렸다.
판매처만 물어보는 걸 보면 가격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부잣집 사람들인가?
“저, 저는 몰라요. 저는 그냥 공연만 하는 거라. 기획은 윤주란 교수님이라고 저 가르쳐 주신 분이 하셨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무서워서 너무 많은 정보들을 풀어 버렸다. 이거 비밀이었던가?
아직 홍보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혼나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2,500석 규모의 클래식 공연이 매진될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티케팅 못하면 나중에 공연자에게 나오는 초대권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대권 다섯 장은 주지 않을까? 우리 가족들 세 명과 유 자매 둘이면 되겠지.
유 자매와 만난 것에 큰 성과는 없었다. 이들은 내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뒤 밴드 공연에 관한 것은 잊어버린 듯했다.
둘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며 다른 세상에 가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 꺼내지 말 걸 하는 후회도 잠깐 했는데, 이런 것도 즐겁네. 평범한 일상 같은 느낌.
작은누나와 유 자매를 들여보내고 나는 걸어서 합주실로 향했다.
여전히 합주를 하고 있을 녀석들의 의견도 중요하니까. 지하철 한 정거장이라 지하철을 타도 괜찮았겠지만 소화도 시킬 겸 생각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Torn이라….
노래 제목을 떠올리자 도입부인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비트의 드럼이 따라오고 반 박자의 강렬한 스트로크, 그 뒤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I thought I saw a man brought to life~
스위치가 켜졌다.
언제부터인가 들리지 않던 음악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머릿속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던 게 항상 괴롭다고만 생각하던 나였는데, 의외로 편리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아서 이어폰 같은 것을 갖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민폐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합주실에 도착하기 전에 들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혁이가 부르면 어떨까? 이 곡은 여성 보컬에 맞게 청량한 음악인데….
진혁이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음악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남성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진혁이의 목소리보다는 더 저음인 걸 보니 내 목소리인가?
잘 모르겠다. 누구나 다 말하거나 노래 부르면서 느끼는 내 목소리와 녹음된 건 다른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조금만 가벼운 톤의 목소리로.’
목소리가 바뀌어 간다.
저음으로 울리던 목소리가 조금은 가벼운 남성의 목소리로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아직 목소리에 비해서 연주가 가볍다. 아직 여성 톤에 맞는 연주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베이스와 드럼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어쿠스틱에 비해 소리가 작다.
‘베이스와 드럼도 조금 더 단단한 하드 락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는데.’
쿵쿵! 둥둥!
곧이어 강렬한 드럼 사운드와 고막을 간지럽히는 베이스의 육중한 저음이 들려온다.
‘기타도 일렉 기타 2대로 바꾸고 싶다.’
촹촹~ 징~
생각을 떠올리자 음악이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 음이 약해지고 이펙터를 먹인 일렉 기타로 바뀌어 간다.
디리리링~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듬 기타가 뒤를 잇는다.
아…. 기타는 어쿠스틱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한데…?
화려하게 연주되던 리드 기타에서 이펙터 걸린 소리가 사라지고, 청량한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로 바뀌어 간다.
괜찮은 것 같다. 내가 원했던 곡에 가까워진다.
대중음악에 가까운 인기와 인지도를 갖는 팝을 서서히 조금씩 공연장의 밴드 음악으로 바꿔 간다.
‘아직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뭐지, 뭐가 부족하지?’
음악은 완성되어가는 느낌인데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
‘아, 키보드…. 키보드를 넣은 음악을 들어 보고 싶다.’
뚜뚜~ 둥.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반복되는 키보드의 음률이 더해진다.
‘어? 이거 괜찮은데?’
나 뭔가 알아낸 것 같다.
내 머리의 사용법.
이 곡이면 공연장에서 호응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합주실로 향하던 발을 돌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동아리 애들에게 말로 알려 주거나 연주로 들려 주기에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이건 만들어서 들려 줘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랩톱을 열어 쏟아냈다.
처음 만드는 것은 드럼. 브리티쉬 락 드럼을 기본 가상 악기로 지정하고 BPM을 잡는다.
보통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음악을 꺼낼 때, 나는 드럼 소리 먼저 꺼내는 편이다.
드럼은 기본적으로 반복되는 부분이 많고, 음악의 기초 공사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니까.
밝은 톤의 음악이니까 장조.
기타 사운드는 가상 악기에서 일렉 기타로 잡아 버리면 어이없는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일반 어쿠스틱으로 잡고 나중에 실 연주 톤 메이킹에서 잡도록 하자.
리드 기타는 스트로크만.
베이스는 나대는 걸 좋아하는 놈이니까 변주를 가끔 넣어주자. 솔로 파트를 넣기에는 부담스럽고. 변주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딸깍, 딸깍.
대략 4분 정도의 짧은 음악이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40~50분 정도의 교향곡들을 만들 때는 한 곡을 쏟아내는 데에 하루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 이런 밴드 음악들을 미디로 만드는 것에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아…. 가이드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머릿속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린다. 방금 작업했던 Torn.
아무래도 목소리를 넣지 않으면 계속 들릴 모양이다.
망할….
랩톱 기본 마이크도 상관없겠지?
다행이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내 방에서 음악소리가 새어 나가서 그걸 누구든 들었다면, 그건 또다시 엄청난 질문 공세에 시달리게 만들었을 거다.
기본 마이크로도 녹음이 되었다. 비록 비싸고 좋은 마이크들에 비해 조악한 소리이기는 했지만, 가이드 녹음이니까 이 정도로도 충분할 거라는 느낌.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과 동일하게 세부 볼륨을 조절하자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들리지 않게 되고 나서야 나는 MP3 파일을 뽑아냈다.
-내가 악보 작업은 할 줄 몰라서 이걸 악보로 보내주지는 못하겠다. 걍 애들끼리 나눠서 들어 보고, 코드 잘 따 보라고 해.
첨부 파일로 파일을 붙여넣는다. 당연하게도 보낼 사람은 김수원과 유재욱. 왜냐 번호가 두 명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합주 중이라서 그런지 답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까 곡 선택을 도와준 유지현에게도 예의상 보내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누나에게도 문자를 보내본다.
-누나, 아까 데리고 나왔던 누나 친구 동생 전화번호 좀 물어봐 줄래?
-어머! 너 걔 마음에 들어? 웬일이야~
저기… 혼자서 너무 앞서 나가시는데?
-그런 거 아니고 아까 같이 이야기하던 곡 결정된 것 같아서 들려 주려고.
-잘해 보렴, 동생아!
누나는 폭주한 상태로 한참이나 말을 했다. 분명 옆에 같이 있을 텐데 얼마나 음흉한 느낌으로 웃고 있을까?
그 뒤 유지현의 전화번호가 날아왔지만, 이거 아무래도 헛소문이 시작될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
우리 집 세 명의 모녀는 그 어떤 비밀도 없이 서로 모든 걸 공유하거든.
괜히 전화번호를 물어봤나?
이거 분명 시달리게 될 것 같은데…. 벌써부터 괴로워지는 것 같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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