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프러포즈를 또 하는 거예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번이 처음인데. 아니 이번 생을 통틀어서 누군가에게 프러포즈를 한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네?”
“지난번에 결혼하자고 했던 거. 그게 프러포즈 아니었어요?”
메건은 약혼식 전에 이야기를 했던 것을 떠올리며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악성 기사에 시달려서 이럴 거면 우리 그냥 결혼하자고 했던 그때.
지금과 거의 차이가 없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걸 프러포즈로 받아들였던 거였나?
“지… 지난번에는 반지가 없었잖아요!”
“푸훗.”
찬물이 가득 들어 있는 컵을 들이켜며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래 준 뒤에 웃음이 터진 메건에게 말했다.
나름 몇 번의 연애를 해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바라보자 10대 때에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이 느껴졌다.
나를 향해 내민 메건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며 풋풋한 그 마음을 느끼고 있던 그때.
“아저씨 얼굴이 왜 빨개요? 아파요?”
“…….”
어느새 수원의 손을 잡고 다가온 지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자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 혹시 아서 할아버지한테 어떻게 하면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는지 배워 온 거니?
다른 것보다 빤히 바라보는 똘망똘망한 지유의 눈이 나를 너무 뻘쭘하게 했다.
“지유야. 여기 삼촌은 아픈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 거야.”
“…설명하지 마라. 네가 설명하는 게 더 이상하거든?”
분명히 부끄러웠다는 것이 틀린 설명은 아니었지만, 그걸 그렇게 곧이곧대로 말하는 건 좀 다르지.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이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메건. 이미 메건의 마음은 다른 세상으로 가 버렸다.
최고의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엄청나게 고민했었는데 그렇게 고민한 시간들은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고민을 하게 만든 원흉이 여기 있네?
“야, 수원아.”
“응? 왜?”
“네가 말하는 거 하나도 도움이 안 되더라.”
“…나는 네가 내가 말하는 대로 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는데?”
그렇게 결혼 전에 프러포즈를 안 하면 평생 시달릴 거라고 말을 했던 수원은 태세를 전환하더니, 내가 오히려 시킨 대로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뭐야 내가 잘못한 건가?
“아이 가졌을 때 먹고 싶은 음식 사다 줘야 한다는 건 맞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네가 직접 사다 줄 일이 있겠냐?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데. 그냥 부탁만 하면 되잖아.”
들어보니 또 그럴싸하다. 어릴 때는 진짜 말 한마디 못하던 녀석이 어느새 이렇게 말빨이 좋아진 건지.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훅훅 빨려들어 갔다.
“그런가…?”
“두 분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있어요?”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메건이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별 이야기 아니에요. 이 녀석이 충고를 했던 것들 중에 맞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무슨 충고를 했는데요?”
되물어보는 메건의 말에 나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걸 그대로 말해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예의상 여러 명이 모인 장소에서 대화를 할 때는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메건을 위해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지유의 대화에 맞춰 주다 보니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한국어로 대화를 했기에 메건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다행인 점이었다.
“그, 그냥 결혼에 대한 것들…?”
“움…. 아무래도 나 한국어를 좀 배워야겠어요. 가끔 전화하는 거라든지 이정현 경이 수원 씨랑 하는 대화를 하는 걸 못 알아듣는 게 너무 답답해요.”
나의 도피처가 조금씩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
“너희 결혼할 때 우리도 같이할까 생각 중이야.”
“내가 결혼하는 거랑 너는 무슨 관계가 있냐? 그것보다 너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더 놀라운데 나는.”
결혼까지 보름밖에 남지 않은 10월 초가 되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유재욱은 뜬금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나와 김수원 그리고 유재욱 세 명이 모여서 이야기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김수원은 이미 유부남이 되었고 나는 유부남이 될 때까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 때문일까. 대화의 주제는 거의 결혼과 결혼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중에서 사귀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던 유재욱이 결혼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정말 뜬금포 중에서도 최고의 뜬금포.
“정현이랑 같이하는 건 힘들걸. 유자 너야 상관없겠지만, 얘 결혼식 할 때 사람들 엄청나게 몰려들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왜? 내 여자 친구도 영국 사람이니까, 영국에서도 하고 한국에서도 하려고 그랬지.”
“영국 여자를 만난다고? 미국에 영국 사람이 그렇게 많나?”
매일 회사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누구를 만날 시간이 있나 싶을 정도였는데, 연애를 외국 사람하고 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오히려 결혼을 한다고 하면 한국에서부터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말을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정현이 너. 크리스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못 들었어?”
“크리스? 크리스는 너랑 만나는 여자 본 적 있어?”
와. 나한테도 안 보여주고 크리스한테 보여 주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어떻게 보면 내가 회사의 사장이기 이전에 친구인데 말이지.
나는 서운한 마음이 조금 섞여 조금 흥분하며 말했다.
“…너 진짜 이런 쪽으로는 눈치 진짜 없다. 곡 쓰는 걸 보면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인데, 이렇게 눈치 없는 모습을 보면 또 인간다운 모습인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아니 솔직히 말을 해서 회사에 틀어박혀서 리카르도랑 기타만 치고 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그 방에 가면 신곡 만들었다고 곡이나 들려 줬지 언제 연애 이야기를 했냐고! 기타랑 연애한다고 하면 믿겠다.”
분명 대화의 주제는 결혼과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을 지나가자 나의 눈치 없음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어 있어 나도 모르게 버럭 하고 말았다.
“내 여자 친구가 크리스니까 그렇지!”
“뭐?!”
“응? 나랑 계약했던 크리스틴? 그 크리스틴이랑 유자가 사귄다고?”
“…수원이 넌 정현이 옆에 있을 땐, 뒷북치는 거 여전하구나. 그래도 정현이 없어졌을 때는 사람들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좀 있었는데.”
분명 내가 중매를 보기 전에 크리스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들었던 기억은 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 말을 해 주지는 않았었지만, 확실하게 연애를 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유자였다니. 올해 들었던 그 어떤 말들보다도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해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도 못 해 한인 타운에서만 밥을 먹던 유자가 영어밖에 못 하는 크리스와 연애를….
“아무튼, 너 결혼한다고 하니까 나도 결혼하고 싶어지더라고.”
“와….”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베스트맨은 수원이가 할 꺼고. 나는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부케는 크리스한테 받으라고 해야지. 결혼식 같이하고 싶었는데 아쉽네.”
“아니, 대체 어느 틈에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된 거야?”
“매일 밤마다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고 있는데 찾아와서 연주하는 거 들어 주고 박수 쳐 주고 그게 그렇게 예쁘더라고.”
나는 열심히 살을 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있던 그때 둘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진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눈곱만큼도 짐작도 못 했던 일이었기에 어질어질한 느낌까지 들었다.
“정현아 정신 차려. 우리 생각에는 아니더라도 유자도 결혼할 수 있겠지.”
“…너희 생각에 아니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냐?”
“시끄럽고. 결혼식은 지난번에 약혼식 올렸던 랭커스터 성에서 할 거 아냐. 그러면 우리가 따로 준비할 건 없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나를 깨워 주는 수원이의 말에 겨우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응? 아. 그냥 웨딩카 꾸미기 정도? 어차피 다른 것들은 모두 알버트 공이 준비해 준다고 하니까.”
“결혼식을 완전 날로먹네. 남들은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준비하는데.”
그랬다. 남들이 힘들어한다는 부분들은 이미 모두 결정이 되어 있었기에 내가 신경 쓸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너희 오늘 나랑 차 사러 가야 돼.”
“뭐?”
“오늘 산다고?”
집에 있는 차라고는 롤스로이스랑 중형 세단밖에 없어서 조금 예쁘게 생긴 차를 갖고 싶었다. 지금까지 크게 차에 욕심을 부렸던 적은 없었지만,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더 특별한 날이 될 수도 있었기에 특별한 차를 갖고 싶었다.
차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던 터라, 어떤 차가 좋고 예쁜지에 대한 것을 잘 몰랐기에 이런 때가 아니면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응. 차 추천 좀 해 줘 봐. 어떤 차가 예쁘냐?”
“남자라면 오픈카지. 컨버터블의 로망이 있거든.”
“영국은 비 자주 오잖아. 뚜껑 열리는 거 샀다가 비 쫄딱 맞고 다니는 거 아니냐? 차라리 퍼라리 같은 수퍼카 어때?”
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끝도 없이 나오는 의견들. 확실히 차는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는지 둘은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도 쉬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들을 말했다.
“결혼식 때만 쓸 건 아니고 메건에게 결혼 선물로 줄 거니까,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걸로 추천해 줘.”
“아…. 그러면 베타로미오 어떠냐. 예쁜 걸로 생각하면 베타로미오만 한 게 없는데.”
“안돼. 내가 타 봤는데 베타로미오는 잔고장이 너무 많더라. 하드탑 컨버터블로 해. 요즘에 예쁜 거 많던데. 아까 말했던 퍼라리에서 포르토피노라고 있는데 예쁘고 하드탑 컨버터블이라 빗물도 안 샐 거야.”
“오, 그거 괜찮네.”
그렇게 결정된 웨딩카는 퍼라리의 컨버터블. 내가 운전을 할 것이 아닌 데다가 수퍼카는 차고가 낮아서 힘들지 않을까 했었는데, 다행히 검색을 해 보았을 때 차고가 그렇게 낮지 않아서 운전하는 것도 편해 보였다.
“이거 내 드림카인데….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추천해 주는거야.”
“네 드림카면 네가 사면 되지 그걸 왜 추천을 해?”
“뒷좌석이 너무 좁아서 지유 카시트를 못 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수원은 대답했다. 이게 아이가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인가….
결혼 생활의 또 다른 단면을 살펴본 것 같은 느낌에 조금 씁쓸함이 느껴졌다.
“나가자. 차 계약하고, 찬 바람이나 좀 쐬고 들어오자.”
나는 오랜만에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런던 시내의 퍼라리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의 딜러는 차량을 구매하면 몇 달이 있어야 나온다고는 하며 난색을 표했지만, 결혼식 웨딩카로 쓰려 한다는 말에 본사까지 전화를 해서 순식간에 신차를 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정현 경. 저희 차량을 웨딩카로 사용해 주신다니! 본사에서도 이정현 경이 탈 거라는 말에 너무나 흔쾌히 수배해 주었습니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몇 달 걸릴지도 모른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를 주문하고 집에 돌아와서 웨딩카용 용품을 주문하는 사이트를 돌아보는 중에 차량 배달이 왔다.
며칠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빠르게 도착하는 바람에 차를 꾸미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길지 않을까 싶을 정도.
지난번에 차를 샀던 것도 내가 직접 구매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차량 운반용 트레일러에서 새 차가 내려지는 모습은 처음 볼 수 있었다.
새빨간 색으로 칠해진 스포츠카를 바라보니, 이런 맛에 스포츠카를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와…. 정현아 나 이거 한번 운전해 봐도 되냐?”
“야이씨! 야, 유재욱! 이거 내 드림카라니까!”
“…….”
나는 서로 먼저 운전해 보고 싶다며 난리를 치는 둘을 보자,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초딩 같은 놈들하고 결혼식에 같이 서 있어야 한다니.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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