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3
132화
“야, 나비넥타이 어떻게 매는 거야?”
“….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
“너 중학교 때부터 콩쿠르 나간다고 자주 맸잖아.”
김수원이라는 놈은 정말 쓸데없는 것은 잘 기억하는 놈이다. 내가 맬 줄 안다고 쳐도 외간 남자의 넥타이를 매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그걸 굳이 여기까지 와서 물어볼 줄이야.
“그냥 일반 타이를 매지, 꼭 나비넥타이를 해야겠어?”
“턱시도에는 나비넥타이잖아. 내가 턱시도를 입어 볼 일이 몇 번이나 있겠냐?”
“말을 말자….”
이상한 선입견을 갖고 고집을 부리는 수원의 목에 나비넥타이를 매 주는 그 순간.
팡-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두 손은 수원의 목에 넥타이를 매 주며 주변을 둘러보자, 언제 들어온 것인지 카메라를 든 기자 한 명이 보였다.
여기는 성의 한 가운데에 있는 방을 신랑 대기실로 꾸며 놓은 곳이라 그렇게 쉽게 가드들을 뚫고 들어올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정말 닌자 뺨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팡, 팡, 팡-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자, 기자는 몇 장의 사진을 더 찍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그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랭커스터 성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나타나 그 기자에게 말을 걸며 다가가자, 기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얼마 지나가지 않아서 붙잡힐 테지만, 공식 보도 사진을 결혼식 이후에 뿌리게 될 텐데 대체 이렇게까지 이 안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야, 아퍼!”
“어? 미안.”
나도 모르게 넥타이를 계속 조이고 있었는지 수원이 목이 아프다는 소리를 내었다.
“넥타이 두 번 매면 아주 죽겠다.”
“매는 법을 배워. 그러면 이럴 일이 없잖아.”
“내가 나비넥타이 매는 게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시상식 같은 곳에 올라갈 때 은근히 많이 매니까 배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때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코디네이터들이 전부 세팅해 줄 테지만.
“준비 아직도 안 됐냐? 수원이 너는 신랑 대기실에서 뭐하냐?”
영국식 전통 혼례는 결혼식을 위해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얼굴을 식장에 들어오기 전에 마주해서는 안 되기에, 손님을 맞이하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베스트맨, 임마.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있어요. 결혼반지를 신랑에게 건네줘야 하는 임무 말이야.”
“…중요하네. 정현이가 산 거면 엄청나게 비쌀 테니까.”
“응? 가격은 안 물어봤는데, 이거 비싼 거냐?”
“몰라 임마. 들어갈 준비나 하자. 이제 슬슬 나가야지. 폐하가 오는 건 맞이해야 하니까.”
성의 입구로 나가 결혼식장으로 꾸며진 정원 쪽으로 향하는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프, 기자들이 들어오려고 합니다!”
“초대장이 없으면 무조건 막아!”
기자들이 들어오려고 아직도 서성이는지 주변이 꽤 소란스러웠다. 이렇게까지 거창한 결혼식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자들이 난리를 치는 것은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에 국왕이 끼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냥 아무런 소란도 없이 지나갔으면 좋았을 테지만, 나와 결혼할 사람인 메건은 지금 아무런 작위가 없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왕위 계승 순위에 있는 왕가의 친척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오래된 성이었고 일부는 이미 관광지가 되어 방어에는 허술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렇기에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모두 막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걸 더 많은 사람을 투입해 막는다니.
이게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가끔 보면 얘네들은 한국보다 어이없는 일들을 더 많이 벌이는 것 같다니까.
결혼식은 조용히 가족들끼리만 치르겠다고 결심했던 나였지만, 왕이 온다고 하는 말에 가족들끼리 모여서 할 것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예상했던 규모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어서 몰려든 사람 역시 많았다.
얼마 후에 한국에서 진행하는 결혼식에는 정말 아는 사람만 불러야지 라고 생각하며, 시장통보다 더 시끄러워진 식장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입구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 왔다.
투다다다다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날아온 국왕 윌리엄 5세가 도착하는 소리였다.
소리가 잦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비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온 윌리엄 5세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축하의 말을 해 주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정현 경.”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아무리 국왕이 오는 것 때문에 소란스러워졌다고 하더라도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아무런 권력도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의 국왕이었으니까.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때, 결혼식의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려 왔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서 자리를 뜨며 녹색 정원에 하얀색 장식으로 꾸며 놓은 결혼식장을 향해 걸었다.
한국에서 찾아온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수원이의 어머니인 윤 교수가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결혼을 한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결혼식의 예복으로 제복을 입었기에 나의 목에는 넥타이가 없었지만, 붉은색 제복의 목 부분이 조금 전보다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잔디밭 위에 얹어놓은 레드카펫 위를 걸어 교회의 주교가 주례를 하게 될 단상 앞까지 걸어가자, 먼저 와 있던 수원이와 유자가 어울리지도 않는 턱시도를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풋….”
아까처럼 까불거리던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 시절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뒤에 서 있던 수원이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걸었다.
“그래…. 이제 넌 자유의 몸이 아니야. 내가 그 마음 안다.”
“뭐래, 이 미친놈은. 우는 거 아니니까, 네 자리로 가라.”
내가 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뒤에서 다가와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수원은 위로를 해 주려고 한 것 같았지만 전혀 잘못 짚고 있었다.
단상 앞에 서서 가만히 신부의 입장을 기다리는 그 순간, 이상한 말을 해 준 수원 덕분에 현실성이 없어 보이던 이 자리에 현실감이 들었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속으로 피식하며 웃고 있던 그때, 내가 만들었던 의 도입부가 들려 왔다.
댕 댕 댕-
세 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 뒤에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
그 뒤를 이어 화려한 선율을 수놓는 현악기들의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 온다.
바닥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버진 로드로 바뀌어 버린 레드카펫을 바라보자, 하얀색 면사포를 쓴 메건이 그의 아버지인 대니얼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음악의 리듬마다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 내 앞에 다가와 잡고 있던 메건의 손을 내미는 대니얼.
그는 메건의 손을 나의 손에 쥐여 주곤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잘 부탁하네.”
그의 입으로 전해진 말은 짧았지만, 메건을 향한 사랑이 묻어나오는 한마디였다.
성공회 주교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 그가 말하는 다른 것들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메건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쿡쿡-
등 뒤에서 허리를 가볍게 찌르는 느낌이 들어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현아. 반지.”
“응? 아, 고맙다.”
수원이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원에게 건네받은 반지의 케이스를 열어 레이스로 만들어진 장갑을 끼고 있는 메건의 손가락을 향해 가져갔다.
“장갑은 벗겨 주셔야죠….”
장갑 위에 반지를 넣으려고 했던 내게 메건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해 주었다.
“미안해요. 결혼이 처음이라….”
“푸훗. 저도 처음이에요.”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몇 번 가 본 적이 없었기에 절차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일까. 이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메건이 내민 왼손의 장갑을 벗기고 반지를 약지에 끼워 주는 순간, 오른쪽에서 주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나님의 뜻대로 결혼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두 분 키스하세요.”
뭐? 키스? 지금까지 손밖에 안 잡아 본 사람하고 다른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 데에서 키스를 하라고?
나는 주교의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메건은 그 말을 듣고 나의 허리를 가까이 끌어 자신에게 당겼다.
진한 파란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조금씩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는데,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붉은색 립스틱이 칠해진 입술이 열리며 작게 속삭였다.
“이런 재미가 있어서 아서가 이정현 경을 놀라게 하나 봐요…. 항상 완벽한 모습만 보이던 사람이 이렇게 순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 중독되겠어요.”
나는 그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메건은 나에게 대답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의 첫 키스는 결혼식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다른 사람과 입을 맞춘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그게 결혼식일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메건과 약혼을 하기 이전에는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입을 맞추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아서 잠시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을 때, 그제야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머리에 피가 몰려서인지 귀가 제대로 들려오질 않았었던 모양이었다.
휘이이익-
놀리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보내는 수원과 유자의 소리도 바로 뒤에서 들려 왔는데, 이 녀석들이 만드는 소리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뭐만 했다 하면 놀리는 기분이라는 말이지.
하지만 이놈들을 뒤돌아보며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수는 없었다.
아직 내 앞에는 두 손을 마주 잡은 메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혼 선언 후에 입맞춤을 하고 나서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는 우리 둘에게 쏟아지는 박수는 끊이지 않았고, 한참 동안이나 손을 잡고 있어야 했다.
영화라면 나는 이 결혼 반대일세 라며 소리치는 사람이 결혼식장에 뛰어 들어올 타이밍 같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혼자 들어왔던 길을 메건의 손을 잡은 채 걸어 나갔다.
물론 결혼식이 이걸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서의 결혼식은 식이 끝났다고 해서 바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함께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피로연을 즐기는 것까지 모두 하나의 일정.
“와 주셔서 감사해요.”
“메건! 오늘 너무 아름다웠어요! 행복하게 사세요!”
어느새 조금 가벼운 파티용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온 메건이 옆에 서서 함께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부인 메건을 향해서 칭찬 세례를 퍼부었고,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메건은 낯을 붉히며 가볍게 웃어넘기는 모습만 보여 주었다.
인사를 모두 마치고 며칠에 걸쳐 아기자기한 장식들과 ‘Just Married’ 마크로 꾸며 놓은 웨딩카가 있는 곳에 다가가자, 메건은 차를 바라보며 정말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와…. 차가 너무 예뻐요. 항상 커다란 세단만 타고 다녀서 나는 이정현 경이 그런 차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차를 가져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 차들은 내가 산 차가 아니에요. 폐하에게 받은 차죠. 자 여기 열쇠.”
나의 취향이 아저씨 같다고 직접적으로 말해 주지 않아서 너무 고맙네.
하지만 아저씨 같다고 말을 하더라도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차에 대한 취향 자체가 없었으니까.
“여기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야 해요. 맨체스터 공항에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어서 다 같이 큰 차를 타고 가기로 했거든요.”
“이걸 타고 공항으로 가면 안 되나요? 어차피 전세기니까 언제 가더라도 상관없잖아요.”
“…그래도 되긴 하는데…. 괜찮겠어요?”
“가 보면 알겠죠.”
뚜껑이 열려진 차에 올라타며 메건은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밝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얼굴.
메건은 뒷좌석에 신고 있던 하이힐을 집어 던지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쿠르르릉-
땅을 울리는 엔진 시동음이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는 박력 있게 출발했고, 나의 손은 안전띠를 찾아 헤매야 했다.
“메건! 천천히! 천천히!”
“이런 차를 천천히 모는 건 차에 대한 모독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가 기다리는 맨체스터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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