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4
133화
“신랑 신부 합근례!”
도우미들의 손에서 작은 잔에 담긴 술잔을 받아 한 잔 마셨다. 그런 와중에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전통 혼례라는 게 이렇게 복잡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그냥 하지 말자고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에서 지낼 만한 전통 한옥을 제주도에 구매한 뒤에 진행하는 결혼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아서 혼란스러웠던 영국보다는 조용하다는 점.
펑펑-
남는 것은 사진과 영상뿐이라는 생각에 고용한 사진 작가와 영상 기사, 그리고 전통 혼례 도우미를 제외하면 모두 아는 사람만 모인 결혼식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났다를 얼마나 반복하고 몇 번의 절을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이 정도면 거의 피트니스 센터 PT 수준인데…?
“두 분 백년해로하시길 바랍니다!”
“원판 사진 찍어야 하니 가족분들은 모두 모여 주세요!”
조용히 진행되었던 결혼식과는 달리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
나는 갑자기 달라지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도우미에게 물었다.
“끝난 거예요?”
“원판 사진 찍고 폐백하셔야 해요.”
“폐백은 뭐예요?”
“폐백은 그 한국 영화 보시면 신부 앞 수건에 밤, 대추 던지는 것 있죠? 그게 폐백이에요.”
“아….”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기러기 아범은 뭐고 맞절, 재배…. 게다가 폐백이라는 것까지 해야 했다.
이렇게 피곤함에 쩔은 나와 비교해 옆에 서 있는 메건은 멀쩡해 보이는 게 이상해서 나는 메건에게 물었다.
“안 피곤해요?”
“아뇨, 재밌는데요.”
양 볼에 연지 곤지를 찍고 쪽진 금발 머리 위에 검붉은 족두리를 얹고 있는 메건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자, 절수건이 조금 삐뚤어졌는데 신부님 왼팔을 조금 올려 보겠어요.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시니 신랑님이 위치 좀 잡아 주실래요? 좋습니다. 신랑님은 웃으셔야죠?”
“아하하하.”
“치아는 안 보이게 미소만 주세요.”
웃으라며…. 웃으라기에 웃었더니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진 작가네.
“신랑, 신부님 폐백하게 안채로 들어갈 겁니다.”
“네….”
결혼이라는 거 진짜 두 번은 못 할 짓이었다.
***
정현이 전통 혼례를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던 그때, 체리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박재경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규모가 점점 커졌기에 직원 수도 그만큼 늘어났었는데, 그 직원들의 인건비를 감당하기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서 들어오는 수익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유지현이 은퇴하게 된다면 그 인건비를 충당할 방법이 없었다.
박재경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은 마음에 JHJ 토탈 뮤직의 정혁진을 찾아가야 했다.
이제는 곡을 주더라도 불러 줄 사람이 없었기에 곡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김수원을 설득해서 이정현이 유지현에게 말 한마디만 해 준다면 은퇴를 번복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혁진은 평소와는 달리 회사가 아닌 외부의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박재경은 그저 커피가 마시고 싶었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JHJ 토탈 뮤직 건물의 길 건너편에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
약속 시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박재경은 입구가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뒤, 초조한 마음으로 정혁진을 기다렸다.
일을 의뢰하는 의뢰주였고 과거에는 고용주였기에,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어서 약속 시각에 일찍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혁진을 기다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오늘은 자신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늦을 수가 없었다.
딸랑딸랑-
입구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바로 정혁진.
그 반가운 얼굴에 박재경은 손을 들고 크게 소리를 쳤다.
“정 사장 여기!”
“아니, 여기 공공장소예요.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러도 그것보다는 작겠네.”
“혁진아, 주문도 하기 전에 이런 말부터 해서 미안한데…. 김 팀장한테 말 한마디만 해 주면 안 돼?”
“…어휴 마음 급한 건 알겠는데, 커피숍에 왔으면 커피 주문은 좀 합시다.”
계산대에서 커피를 계산하고 손에 들고 돌아온 혁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박재경을 향해 말했다.
“수원이 회사 그만뒀어요. 벌써 몇 달이나 지났는데.”
“아니 왜?”
수원이 재경의 제안을 거절한 뒤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었기에, 재경은 오히려 당황했다.
“수원이 걔 내 학교 후배고 실력도 좋아서 예전부터 엄청나게 아껴 왔던 녀석이에요. 그런 애가 회사를 그만둘 만큼 얼마나 시달렸는지는 생각 못 하는 거예요?”
“이정현이랑 어릴 때부터 친구라더니 그런 사소한 부탁도 들어주지 못할 정도였던 거야?”
“어릴 때부터 친구라서, 서로가 뭘 싫어하는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죠.”
정혁진은 속으로 기가 차서 박재경에게 말했다. 처음 작은 기획사였던 체리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던 박재경이었다.
그런데 유지현이 인기 차트를 점령하던 때부터였던가, 박재경이 돈방석에 앉게 된 후 욕심을 부리기 시작할 때쯤 정혁진은 체리 엔터테인먼트를 나와 자신의 회사를 차렸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 같은 박재경의 모습이 너무 생소했다.
“누님이 술자리에서 수원이와 이정현에 대한 것을 여기저기 말한 덕분에 이쪽은 능력 좋은 작곡가 하나 잃었죠.”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는 별다른 말 안 했었다고. 술 마시고 그러는 건 누구나 다 하는 실수일 뿐이잖아.”
“아니에요, 누님. 그만하죠. 어차피 수원이 회사 그만두고 미국 갔다고 들었으니까, 우리가 이러는 것도 이제는 의미 없어요.”
“미국?”
“네. 다른 회사 들어갔다고요.”
한국의 기획사에서 일하다가 외국회사로 진출했던 일은 거의 없었다. 업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달랐기에 매니저는 당연히 힘들었고, 작곡가 역시도 마찬가지.
음악이라는 것은 살아 왔던 환경을 반영하는 부분이 컸기에, 문화적인 차이에 적응을 못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국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작곡가라 하더라도, 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재경의 머릿속에는 이정현의 곡을 부탁하는 것보다, 차라리 김수원에게 곡을 부탁을 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혁진의 말대로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능력이 진짜 엄청나게 좋았었나 보네….”
“안 좋았으면 제가 지현이 앨범 작업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죠. 어릴 때부터 그 이정현이랑 함께 자란 녀석인데 평범하겠어요? 그런 녀석을 놓쳐서 덕분에 우리 회사도 많이 힘들어요.”
수원을 중심으로 꾸며 놓았던 3팀이 팀장의 부재로 공중분해되었다.
그렇기에 회사 내에서도 팀 해체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진 박재경을 반기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회사가 아닌 외부에서 만났던 것이었다.
“어떤 방법이 없을까? 우리 지현이 없으면 회사 매출 자체가 반 토막 나. 아니 반 토막이 아니라 3분의 2는 날아갈 거야.”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힘내시라고 응원하는 것밖에 없어요.”
“진짜 없어…?”
“지금 농담하는 거로 보이세요? 우리 회사도 지금 위험하다니까요.”
희망을 품고 혁진을 찾아왔던 재경의 마음속은 지현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더욱 심란해졌다.
드르르르륵-
그때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재경의 휴대폰이 울리며 침울했던 분위기를 잠깐 날렸다.
혁진은 전화가 온 것을 보고 손을 저으며 전화를 받으라는 동작을 취했다.
재경이 손을 뻗어 확인한 휴대폰에 떠 있는 발신자는 회사.
“여보세요.”
[사장님, 이정현이 한국에 들어왔대요. 지금 뉴스 속보 떴어요!]“에휴…. 이제는 아무런 의미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전화를 건 직원은 그들이 유지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탁해야 할 대상인 김수원이 더는 JHJ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부탁할 사람이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
[…….]재경은 참지 못해 죄 없는 전화기를 향해 큰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직원은 당황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혁진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었다.
“누님.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 볼게요.”
“혁진아…!”
“욕심을 조금 버리지 그러셨어요.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하셨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혁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려 커피숍 밖으로 사라졌고, 재경은 혁진이 열고 나간 문을 바라보며 혼자 남겨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더는 기댈 곳이 없는데….’
홀로 머릿속에 수많은 방법을 떠올리며 재경은 초조한 마음으로 휴대폰에 있는 연락처를 살펴보았다.
저장되어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수백 명의 전화번호들.
하지만 그 가운데 유지현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던 중 연락처 목록에서 보인 이름. 자신이 술을 마시고 하소연을 하듯 김수원과 이정현의 관계를 이야기했었던 바로 그 사람.
업계 1위 기획사 아르테미스의 사장 조어진. 재경은 자신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을 소문낸 조어진이 원망스러웠다.
원망스러운 마음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연락처의 목록에 있는 조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박 사장. 무슨 일이십니까.]“조 사장님 혹시 시간 되시면 한번 뵙죠.”
재경은 급한 마음에 두서도 없이 서둘러 약속을 잡으려 했다.
[용건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잡으시다니, 박 사장님답지 않으십니다. 뭐, 중요한 일은 없으니 오늘 저녁에라도 괜찮으시다면 뵙도록 하지요.]“감사합니다.”
재경은 복수심이 불타오르는 머릿속으로 곧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릴 자신의 회사, 체리 엔터테인먼트를 아르테미스로 넘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한국의 시장 점유율을 50% 넘게 독점하고 있는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돌까지 소속되어 있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르테미스.
이번 체리 엔터테인먼트와의 합병으로 인해 음반 시장에 대격변이 이뤄졌다.
3강 구도로 이루어지던 대형 기획사 시장은 이로 인해 무너졌고,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지현의 재계약 여부.
아르테미스는 현란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유지현이 재계약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떠들었지만, 정작 유지현 본인은 재계약을 할 마음은 전혀 없이 은퇴를 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청담동의 아르테미스 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
“유지현 씨 그냥 도장 찍죠. 이게 회사 인수 조건이었다니까요?”
“회사 인수랑 저랑 아무런 상관없다는 거 잘 알아요. 제가 그렇게 바보처럼 보이시나 보죠? 변호사 불러 주세요.”
아르테미스의 실장은 협박이 조금 섞인 으름장을 놓으며,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유도하고 있었지만, 전혀 먹히질 않았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박재경에게서 원하지 않았던 모습을 여러 번 보게 되면서, 이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환멸을 느낀 유지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지현이었지만, 국내 음반 시장의 독보적인 판매량을 보이는 최고의 디바.
아르테미스의 사장인 조어진의 입장에서 체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이유가 유지현뿐이었기에,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
“저희가 원하시는 조건들 모두 맞춰 드릴게요. 원하시는 걸 말씀해 보세요.”
“은퇴하길 원해요. 다른 건 없어요.”
조어진으로부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재계약을 얻어내도록 지시를 받은 직원은 화를 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하며, 유지현을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유지현 씨 이제 겨우 서른 초반이에요. 지금 은퇴하면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러세요.”
“남이야 놀든 말든 그게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죠?”
“저 이대로 돌아가면 회사에서 잘려요…. 집에서 가족들이….”
“저도 제 가족 있고, 동정심으로 계약을 하지는 않아요.”
급기야는 동정심에도 호소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은퇴를 앞둔 아티스트를 무리하게 돌리는 것도 기획사 입장에서는 있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방송 출연 자리를 따내는 것은 유지현처럼 인지도가 있는 입장에서는 밥을 먹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었지만, 끼워 팔기를 하기에는 호락호락하게 신인을 띄워 줄 정도로 협조적이지도 않았다.
“유지현 씨…. 대체 원하시는 게 뭐예요?”
“알면서 왜 물어요. 은퇴라고 했잖아요. 모아 놓은 돈도 많으니까,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거예요. 할 말 다 하셨으면 가 볼게요. 약속이 있어서.”
유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유유히 빠져나갔고, 재계약을 위해 온종일 윽박지르고 달래기를 반복했던 직원은 울상이 되었다.
계약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아르테미스 측에서는 유지현을 잡을 방법이 없었고, 거액의 돈을 들여 체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돈 지랄이 되었다.
조어진은 체리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었던 박재경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고, 그렇게 한국 연예 기획사 역사에 남을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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